오월의 사회과학 -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새롭게 재구성한 5월 광주의 삶과 진실 |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6
최정운 (지은이)
오월의봄2012-05-10
초판출간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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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100자평(14)리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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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여섯 번째 이야기. 5·18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다. 정치학자 최정운은 외관으로서의 사실이 아니라 시민들이 겪었던 내적 경험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말하자면 증언을 통해 시민들이 당시 가졌던 생각, 감정 상태 등을 감정이입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5·18을 마치 자신이 겪은 사건처럼 다시 서술하고자 한다. 이러한 내적 경험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을 막스 베버의 ‘이해하기 위한 사회과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베버가 발명한 특이한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적 사건이나 어떤 역사적 시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흔히 사용하는 ‘생각하는 방법’을 베버가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은 1999년 처음 발간된 것을 다시 펴낸 것이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중 한 권으로 뽑혀 외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소개된 바도 있는 명저이다. 무엇보다 ‘사회과학을 보면서 울 수도 있구나’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감정이입을 통해 서술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가슴이 울렁이고, 눈물이 고이게 된다. ‘우리의 사회과학’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목차
책을 펴내며
머리말
5?·18 상황 일지
1부 폭력과 언어의 정치: 5·18담론의 정치사회학
1. 침묵의 역사
‘광주사태’와 ‘5·18민주화운동’
2. 폭력의 전선과 언어의 전선
폭력과 투쟁의 언어: 5월 18일부터 21일까지|유착과 명분: 5월 22일부터 27일까지|심판의 시대, 신군부에 의해 조작되다
3. 부활의 언어
4. 담론과 현실
폭도론|불순 정치집단론|유언비어론|과잉 진압론|민주화론|민중론|혁명론
5. 광주 시민이 남긴 최후의 담론
2부 폭력과 사랑의 변증법: 절대공동체의 등장
1. 말과 몸
2. 음모론
3.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사회과학적 설명
민주화운동과 5·18|호남 차별의 한|저항의 역사|공동체와 계급구조
4. 공포와 분노의 논리
5. 절대공동체의 등장
6. 젊은 그들이 도청에서 죽음으로 지켜낸 것
3부 삶과 진실: 해방광주의 고뇌
1. 절대공동체의 균열과 분절
2. 정치와 계급
3. 일상으로의 복귀
4. 마지막 항전과 죽음의 의미
5. 광주의 진실을 죽음으로 지키다
4부 해방광주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해석의 시도와 이론적 문제점
1. 폭력의 성격
2. 저항의 논리
3. 그날 이후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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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5 · 18은 가히 세계사에 유례없는 사건이었다.
P. 26 “5·18이라는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피해의 규모 문제 외에 특이한 차원이 있다. 5·18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되돌아보게 한다. 5·18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며,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각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단적으로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 5·18은 우리의 몸에서 출발하여 영혼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접기
P. 113 “광주 시민들이 ‘폭도’라는 말에 그토록 격분한 것은 바로 그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싸운 존엄한 인간임을 스스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동체 차원의 투쟁의 동기는 생명의 보호였다. 광주 시민들의 공동체는 삶과 죽음을 공동체 차원에서 정의했고 광주 시민들은 서로가 모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젊은이들을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연약한 아녀자들을 지키고, 어린아이들을 지키고, 광주 땅과 그 땅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이 공포와 분노와 해방감에서 이루어졌다면 생명을 보호하고 고향을 지키는 투쟁은 냉철한 결의에서 일관되었다.” 접기
P. 122 “광주 시민들은 공수부대의 그런 행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국군 병사들이 대도시 중심가에서 백주에 보이는 대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 끔직한 진압봉으로 패고, 대검으로 찌르고, 발가벗긴 채 비인간적인 기합을 주고, 트럭에 짐짝처럼 실어가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은 시민들의 눈에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공수부대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실제로 1979년 부산에서 불과 10여 분 만에 시내를 무인지경으로 만들었던 행위가 광주에서는 잠시 후 다시 시위대가 출현하고 다음날에는 더 많아지고 급기야는 전 시민이 똘똘 뭉쳐 저항하는 사태가 전개되었으니 현장에 있던 군인들이나 후에 5·18에 대해 연구하는 학자들에게는 신비스러울 뿐이었다.” 접기
P. 127 “또한 시민들의 저항도 합리적인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5월 18일 저녁 무렵에는 진압이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19일 아침 다시 시작되었고 19일 정오 무렵에도 시위는 끝난 것처럼 보였으나 오후에 들어서는 더욱 거세게 재개되었으며, 19일 저녁에는 비가 내려 모든 것이 다시 한 번 끝난 것으로 보였지만 다음날부터는 본격적인 항쟁이 전개되었다.” 접기
P. 171 “금남로에서 또 유사한 시간에 시내의 다른 곳에서도 시민들 간에는 구체적인 공동체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전통적 공동체와는 다른 절대공동체였다. 이 절대공동체는 마이크를 잡고 선동한 어떤 리더가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모든 시민들이 각자 지도자였다. 절대공동체는 군대와 같이 누군가 투쟁의 목적을 위해 개인을 억압하여 만든 조직이 아니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공포와 자신에 대한 수치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서로가 진정한 인간임을, 공포를 극복한 용기와 이성 있는 시민임을 인정하고 축하하고 결합한 절대공동체였다. 시민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투쟁하며 추구하던 인간의 존엄성은 이제 비로소 존엄한 인간끼리의 만남 그리고 바로 이 공동체에서 서로의 인정과 축하를 통해 객관화되었다. 절대공동체에서 시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고 그들은 다시 태어난 것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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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최정운 (지은이)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이다.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을 거쳐 시카고대학교 정치학과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오랫동안 서양 정치사상을 연구하면서 정작 우리 사회를 이해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한국 근현대 사상사의 부재를 깨닫고 이를 발굴, 정립하는 연구에 매진해왔다. 전작 『한국인의 탄생』과 이 책 『한국인의 발견』은 그러한 지적 여정의 결과물이다.
지은 책으로 『한국인의 탄생』(2013년) 『오월의 사회과학』(1999년), 『지식국가론』(1992년)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푸코의 눈: 현상학 비판과 ... 더보기
최근작 : <[큰글자책] 한국인의 탄생>,<[큰글씨책] 한국인의 발견>,<지식국가론> … 총 14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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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소개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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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국가에 관한 질문들>,<나는 남자들이 두렵다>,<골골한 청년들>등 총 198종
대표분야 : 한국사회비평/칼럼 4위 (브랜드 지수 136,72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광주’는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진 절대공동체는 어떻게 탄생하고, 몰락했는가?
새로운 사회과학 글쓰기로 해방광주를 생생하게 복원한 우리 시대의 명저
5 · 18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
“5·18은 사건으로서 엄청난 사회과학 이론적 함의를 갖고 있다. 현대 한국 사회, 1980년대 이후의 한국 사회는 5·18과 5·18의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고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는 외딴 무인도에서 서양의 역사를 바꾸어놓았다. 마찬가지로 외딴 섬 나라 ‘광주’는 우리의 역사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이 변화의 원인과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면 현대 한국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
5·18은 한국 현대사를 바꿔놓은 큰 사건이었다. 《오월의 사회과학》의 저자 최정운은 5 · 18이 없었다면 6월 항쟁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의 우리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만큼 5 · 18의 의미는 우리 현대사에서 간단치 않다. 하지만 그 진상과 의미는 32년을 맞은 지금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사건으로 인식되며 점점 잊혀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더군다나 요즘 젊은 세대들은 5 · 18 자체를 잘 알지도 못한다. 또 국가 권력의 횡포는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당시 학살 책임자도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상황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고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 기존의 5 · 18 관련 연구 자료들은 ‘진상규명’과 ‘사실’들에 지나치게 매달려왔다. 그리고 이미 설정된 서구 담론의 틀에 끼워 맞춰 해석하거나, 필자들의 이념 지형에 사건을 끼워 맞춰 재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정치학자 최정운은 이런 방식으로는 사건의 참모습을 그려낼 수 없다고 말하며 이 역사적 사건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한다.
《오월의 사회과학》은 그동안 발표된 5·18 관련 서적, 논문 등과는 완전히 다른 책이다. 시각도 새롭고 글쓰기 방식도 새롭다. 우선 저자는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의 광주 상황을 박진감 넘치는 문체로 생생하게 복원한다. 그래서 이 글을 읽으면 마치 당시 현장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 또한 역사적 사건에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저자 최정운은 외관으로서의 사실이 아니라 시민들이 겪었던 내적 경험 속으로 파고들어간다. 말하자면 증언을 통해 시민들이 당시 가졌던 생각, 감정 상태 등을 감정이입을 통해 재구성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5·18을 마치 자신이 겪은 사건처럼 다시 서술하는 것이다. “이러한 내면을 추구하는 사회과학만이 인간과 인간의 역사에 대하여 몇 백 배 깊이 있는 이해에 다다를 수 있다고 필자는 확신한다.”
이러한 내적 경험으로 사건에 접근하는 방법을 막스 베버의 ‘이해하기 위한 사회과학’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베버가 발명한 특이한 방법론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적 사건이나 어떤 역사적 시대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흔히 사용하는 ‘생각하는 방법’을 베버가 재구성하여 정리한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러한 방법론으로 저자는 해방광주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만든 공동체를 ‘절대공동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며, 절대공동체의 형성과 몰락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절대공동체는 폭력에 대한 공포와 자신에 대한 수치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서로가 진정한 인간임을, 공포를 극복한 용기와 이성 있는 시민임을 인정하고 축하하고 결합한 공동체였다. 시민들이 공포를 극복하고 투쟁하며 추구하던 인간의 존엄성은 이제 비로소 존엄한 인간끼리의 만남 그리고 바로 이 공동체에서 서로의 인정과 축하를 통해 객관화되었다. 절대공동체에서 시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찾았고 그들은 다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5 · 18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피해의 규모 문제 외에 특이한 차원이 있다고 말한다. 5 · 18이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되돌아보게 한다는 것이다. “5·18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며,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각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단적으로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 5·18은 우리의 몸에서 출발하여 영혼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저자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의 감정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방대한 분량의 증언록 《광주오월민중항쟁사료전집》(한국현대사료연구소 편)에서 찾았다.
이 책은 1999년 처음 발간된 것을 다시 펴낸 것이다.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책 중 한 권으로 뽑혀 외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소개된 바도 있는 명저이다. 무엇보다 이 책은 ‘사회과학을 보면서 울 수도 있구나’를 알려주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가 감정이입을 통해 서술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가슴이 울렁이고, 눈물이 고이게 된다. ‘우리의 사회과학’ 글쓰기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5월 18일 광주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1980년 5월 18일 정오 무렵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주시 중심가 금남로 일대에는 비상계엄 해제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졌고 기동경찰대가 출동하여 이들을 진압하고 있었다. 이 대학생 데모는 당시 한국 대도시에서 심심치 않게 보아오던 것이었다. 대학생이 데모를 하면, 경찰이 진압을 하는 모습은 지금까지도 자주 볼 수 있는 것으로 이때까지만 해도 특이한 사항 같은 것은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오후 4시에 터졌다. 경찰이 아니라 공수부대가 출동해 무차별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치명적인 진압봉으로 폭력을 가했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까지 욕설을 퍼부으며 구타하고 여성들을 폭행하고 옷을 찢고 심지어 젖가슴을 대검으로 난자하는 성도착적인 잔인성을 보였다. 그때부터 벌어진 일들은 그 광경을 본 사람들이 머릿속에 준비하고 있던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었고 목격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전달해줄 수도 없었다. 그 광경을 목격한 사람들은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광경을 일일이 묘사해 전해주면 대부분의 사람들, 광주 시민이나 타 지역 사람들이나 사실로 믿지 않았다. 시민들은 공수부대가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짐승’이었고, 그들의 행동에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공수부대의 이런 잔인한 진압 방식은 전시적 폭력, 즉 폭력극장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구타를 당하는 사람 외에 그것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공포를 주는 것이며, 따라서 끔찍하면 끔찍할수록 더욱 효과적이라 여겼다. 죽거나 살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처참하게 패고 찌르고 자르는 등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진압의 기본 원칙이었다.
공수부대는 여기서 끝이 날 줄 알았다. 실제로 그 전 해 1979년에 있었던 부마사태는 이 상태에서 모두 진압이 되었다. 하지만 광주 시민들은 물러나지 않았다. 18일, 19일 이틀에 걸쳐 일어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만행’에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자기 자신이 인간 이하라는 수치에 대한 분노 그리고 자신이 인간 이하임은 폭력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됐다는 분노는 광주 시민들을 사선을 넘어 공수부대와 싸워야만 했던 운명으로 만들었다. 광주 시민들이 목숨을 걸고 과감히 투쟁에 참여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 ‘인간임’을 회복하기 위해 이성으로 하여금 공포를 뚫고 과감히 분노를 분출하도록 내린 결단에 의한 것이었다.” 광주 시민들은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이성적인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19일 공수부대는 장갑차도 동원했고 그들의 잔인함은 맹위를 떨쳤다. 다시 점심때쯤 거리는 텅 비어버렸고 공수부대는 안심하고 주둔지로 식사를 하기 위해 철수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자 수많은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며 시위대가 다시 형성되었다. 이날 오후부터 시위대는 학생들 중심이 아니었다. 중심가의 시민들이 참여했고, 양복 입은 회사원들 그리고 노동자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대다수를 이루었다. 그리고 고등학생들도 시위에 가담하기 시작했다.” 시민들의 분노는 이미 폭발했고, 시민들은 공동체의 책임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20일, 공수부대들은 전날과 다르게 공손해져 있었다. 그날 오후 시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내로 나왔고,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시민들은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며, 스크럼을 짜고 물러서지 않았다. 시민과 기사들이 참여한 대규모 차량시위도 이날 벌어졌다.
내 것, 네 것이 없는 절대공동체가 이루어지다
저자 최정운은 20일 오후 꿈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저자는 ‘절대공동체’의 개념을 만들어 그날의 상황을 설명한다. 이 절대공동체는 마이크를 잡고 선동한 어떤 리더가 이루어낸 것이 아니었다. 모든 시민이 각자 지도자였고, 각자가 자기 할 일을 하며 계엄군과 싸웠다. 이곳에는 사유재산도 없었고, 생명도 내 것 네 것이 따로 없었다. 광주 시민 30만 명이 금남로에 나와 <아리랑>을 목청껏 부르며 계엄군과 대치하는 상황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한 도시 인구 전체가 거의 빠짐없이 시위에 참가해 완전한 합일을 이룬 상황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20일 수만 명에 이른 시위대는 시간도 잊고 피로도 잊고 밤을 지새우며 싸웠다. 일부는 돌아가며 골목에서 거적을 깔고 눈을 붙이기도 했고 근처 여관, 민가 어디에서나 잠깐씩 눈을 붙이고는 다시 교대로 싸웠다. 새벽 4시 광주역에서 공수부대를 몰아내고 승리의 새벽을 맞는 듯했다.
그러나 21일 공수부대는 대원들에게 은밀히 실탄을 나눠주었고, 애국가를 신호로 기어이 도청에서 집단발포를 가하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전쟁이었다. 이제 시민들도 총을 들기 시작했다. 21일 저녁 시민군들은 도청에 진입했고 공수부대는 이미 철수한 뒤였다. 감격스러운 승리였다. 광주 시민들이 무려 3개 여단의 공수부대를 나흘간의 투쟁을 통해 물리친 것이다. 이렇게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절대공동체를 이루어냈기 때문이었다. 이 절대공동체는 애초에 존재했던 광주 시민들 간의 전통적 농촌 배경의 공동체와는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 이 과정의 경험은 공포를 이성으로 극복하고 인간이 되기 위해 나섰던 각각의 시민들이 다수의 동료들을 만나 하나로 융합되고 그곳에서 새로운 자신, 인간의 존엄성에 의혹이 없는 자신을 발견하는 변화의 과정이었고 이는 해방을 의미했다.
계급의 등장, 절대공동체에 균열이 생기다
시민들이 무기를 잡은 순간 절대공동체는 작은 균열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광주 시민들은 돌연 그곳에서 계급을 보았다. 그리고 서로가 같지 않고 다름을 보았다. 19일, 공수부대의 탄압이 극심해지던 시기 대학생들은 이미 시위대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총을 든 시민들은 대부분 노동자계급, 기층민이었다. 그 사실을 안 사람들은 서로가 다른 삶을 사는 집단, 다른 계급에 속해 있다는 것을 안 것이다. 절대공동체가 분해되며 새롭게 제기된 문제는 개인과 집단의 정체성 문제였다. 한편으로 이 문제는 권력 문제였고 다른 한편 계급 문제였다. 절대공동체에서는 아무도 물어보지 않던 질문, ‘당신 누구야?’, ‘당신 뭐야?’ 하는 질문들이 어디서나 튀어나왔고 여기서 요구되는 답은 늘 신분과 계급에 관련된 것이었다. 이 질문에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잘 대답할 수 있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대답을 해도 도무지 들리지 않았다. 너와 내가 구분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으로써 절대공동체는 새롭게 재편되었고, 새로운 것을 요구받게 되었다.
광주의 진실을 죽음으로 지키다
광주는 시민군들에 의해 해방되었다. 도청에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사태를 수습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우선 수습파가 먼저 나섰다. 그들은 당장 무기를 회수하자고 주장했고, 실제로 무기를 회수했다. 이들은 얼른 이 사태를 정리하고 이전의 사회로 되돌아가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전의 공동체로 돌아가는 것은, 해방광주와 절대공동체의 경험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주장에 반하는 세력이 곧 적극 주장하고 나섰다. 윤상원을 중심으로 한 항쟁파와 시민군 세력이었다. 그리고 곧 윤상원은 이들을 중심으로 항쟁지도부를 구성하고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시민군은 무기 회수로 대부분 붕괴된 상태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집에 돌아가버린 상황이었다. 그리고 공수부대가 27일 새벽 도청을 공격한다는 정보도 알고 있었다. 윤상원은 이 사실을 시민들에게 알리고, 최후까지 싸울 사람은 남고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자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윤상원은 마지막 항전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마지막 항전을 하지 않으면,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결과가 없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27일 새벽 계엄군은 사방에서 밀려 들어왔다. 도청 정면에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계엄군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 시민군들이 모두 정면으로 응사하는 동안 뒷담을 넘어 들어온 3공수 특공대는 도청 건물로 잠입하여 보이는 대로 총을 난사하고 여기저기 수류탄을 까 넣었다. 그러고는 확인 사살까지 했다. 많은 시민군들은 특공대가 들어오는 것을 보았지만 차마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일부 살아남은 시민군들은 손을 들어 항복했고 그들은 모두 ‘굴비처럼’ 엮여 버스 4대로 상무대 영창으로 끌려갔다. 이날 새벽 도청에서 사망한 숫자는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도청의 시민군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싸웠지만 계엄군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들은 다만 광주의 진실, 투쟁의 진실을 죽음으로 지켰을 따름이었다. 그들은 적들이 진실을 영원히 파괴하지 못하도록, 모든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생매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명정한 정신으로 그 자리에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투쟁의 진실을 깊은 땅 속으로 감추어 자신들의 몸과 함께 언젠가는 우리 앞에 진실로서 부활할 수 있도록 화석으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 희생의 제단 위에서 우리의 역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들이 무기를 놓고 도청을 계엄군에게 비워줬더라면 6월 항쟁은 없었을 것이며 지금 이 시간도 ‘5공’ 치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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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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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앞에선 온몸을 다해 오열하는게 더 사회과학스러울 수 있다. 구매
킹킹킹 2016-04-29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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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광주에 관한 한국사회과학의 한 업적. 구매
두크나이트 2019-02-01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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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어서는 안 될 5월 구매
낮에뜬별 2014-05-2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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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쉽게 쓰여진 책인데도, (내용 때문에) 정말 읽기가 어렵다. 명저다. 구매
어머여사님 2012-07-23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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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적으로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 이상 본문 중에서 발췌. 이 책의 방식, 사회과학으로 5.18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구매
📚 오월의 사회과학 / 최정운 새창으로 보기
#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인 필자는 1997년 한국정치학회 연구 이사직을 맡게 되었고 예기치 않게 5월에 있을 프레스 센터에서의 주제 발표를 맡게 하게 되었다. 이듬해 다시 한국 사회학회에 참석하면서 5.18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된다.이 책의 첫 번째 목적은 5.18이라는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일어났던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정치학, 나아가서 사회과학의 이론적인 소재로서 5.18을 다루어 보고자 함이다. 더불어 이 책은 5.18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사건을 알려주기 위한 책도 아니다. 적어도 황석영의 <... + 더보기
초록별 2020-04-29 공감(26)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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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의 사회과학
사회과학자의 시선으로 5·18광주 민주화 항쟁을 재조명한 책 <오월의 사회과학>이다. 저자인 최정운 교수는 현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자는 책을 시작하며 5·18의 특수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5·18이라는 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는 피해의 규모 문제 외에 특이한 차원이 있다. 필자도 서두에서 되풀이해지만 5·18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처음부터 되돌아보게 한다. 5·18은 우리 역사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사건이며, 아울러 우리 모두에게 각자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단적으로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 5·18은 우리의 몸에서 출발하여 영혼을 일깨운 사건이었다."
5·18은 인구 80만 명의 도시에 무려 3개 여단 3,000명의 최정예 공수특전단이 투입된 사건이다. 또한 놀랍게도 시민들에 의해 일시적으로 공수부대가 후퇴하기도 했다. 5·18을 통해 광주 시민들은 민족공동체를 경험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반면, 다른 지방의 사람들은 민족을 이질적으로 보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공수부대의 잔인한 진압에 광주 시민들은 경악했고 분노했다. 그리고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인간됨'으로 인해 그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자발적으로 자신의 물질, 시간, 심지어 목숨까지 내어 놓으며 민족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광주 시민들이 투쟁한 것은 인간의 존엄성, '인간임'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민족공동체는 지속되지 못했다.
시민들의 손에 무기가 쥐어지면서 그들의 공동체는 균열이 발생한다. 일단 총은 아무나 쉽게 죽일 수 있는 도구였다. 즉, 공동체로 인식하고 정신없이 총을 나눠주다보니 그 총을 가진 사람이 누구인지 돌아보게 된 것이다. 또한 이어서 무기를 반납하자는 입장과 끝까지 도청을 중심으로 싸우자는 시민들이 생겨난 것이다. 총을 반납하는 것은 굴복하는 것이고 이는 먼저 희생된 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닐뿐더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저자에 이들의 입장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국민들에 대한 그 같은 행위는 윤리적 열등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륜에 대한 범죄였기 때문이다. 광주 시민들은 '피의 값'을 받지 않고서는 무기를 놓고 국가의 지배 하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 이유는 무엇보다 공수부대에 의해 짐승 이하의 취급을 받고 영원히 '폭도'로 남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신군부는 광주를 외부와 단절시키고 미디어를 조종했으며 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광주 시민들을 '폭도', '고정간첩', '남파 간첩' 등으로 매도했기에 광주 시민들의 분노와 억울함을 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외딴섬에 고립된 이들이었다. 누구를 믿을 수도 의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스스로를 지키지 않으면 죽음을 당할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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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굴데굴 2018-02-02 공감(2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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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오월의 사회과학
비겁한 사람만이 주목받는 비참한 시대,오월 광주에서 스러져간 사람들은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있을까?역사를 비틀어 지워버리려는 권력자들의 만행은 줄기차게 이어지는데 그에 맞서는 사람들은 고립되고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80년 5월의 광주처럼.역사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딛고 있는 삶임을 환기시켜주는 책.
start 2016-08-09 공감(15) 댓글(0)
몸서리 치게 잔인한 역사의 아이러니
오늘날에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 그러니까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일이 대한민국에선 얼마나 힘들게 쟁취한 권리인지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나는 그 일이 1980년 5월에 시작됐다고 생각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이 날을 기점으로 중대한 변화를 겪게 된다.
아프리카의 어떤 나라에서 시민들의 선거를 막기 위해 오른 손목을 강제로 자른다는 뉴스를 보고 나면 사람들은 후진국의 야만성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것이다. 하지만 1980년 5월 광주에서 군인이 지나가는 임산부의 배를 대검으로 갈라 죽였다는 얘기를 들으면 어떻게 반응할까? 1980년은 그리 오래된 과거가 아니다. 당시 그 지옥을 살아서 이겨낸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남아 그 지옥을 만들어낸 악마들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 한다. 지구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야만적인 일은 내전이나 인종갈등으로 고통 받는 먼나라가 아니라 경제 대국이자 어엿한 민주주의 공화국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5.18의 원인을 한 마디로 규정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시작은 언제나 그렇듯 대학생들이었다. 그들은 1972년 10월 유신 헌법에 의해 종신 직권 체제를 구축한 박정희와 오랜 싸움을 해왔던 터였다. 그런데 1979년 10월 26일 이 독재자가 중정부장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지고 이틈을 타 전두환의 신군부가 12.12 군사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움켜쥔다. 드디어 대한민국에 봄이 오리라 기대했던 사람들은 새롭게 등장한 악마에게 맞서기 위해 다시 한 번 전열을 가다듬어야 했고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명령은 드디어 전면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 핵심에 광주가 있었다.
광주에 파견된 공수부대는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이유 없이 구타하고 연행해 인간 이하의 고문을 자행했다. 이는 시위대에게만 행해진 폭력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내를 돌며 젊은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였다. 이는 부마 사태의 성공적 진압 이후 공수부대가 자신감을 갖게 된 전략이었다. 무고한 시민들에게 까지 무차별 폭력을 가해 일반 시민들의 시위 가담을 막는 것.
"공수부대의 데모 진압은 이를테면 '전시적 폭력'이었다. 붙잡힌 사람은 사정없이 폭력을 가하여 그 광경을 보는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다시는 데모는커녕 얼씬대지도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공수부대의 폭력은 당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다. (중략)
죽거나 살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처참하고 눈 뜨고 볼 수 없게 패고 찌르고 자르는 등 엽기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이 진압의 기본 원칙이었고, 이를 위해 이미 4월에 특수 진압봉을 주문했으며 처음부터 대검을 사용했다.(중략)
이러한 폭력은 시위 진압이라 할 수 없으며 통상적 폭력도 아니었다. 이는 시각적 언어였고 명쾌한 뜻을 전하고 있었다. (중략) 또한 중요한 점은 이들의 폭력, 특히 전설처럼 남아 있는 엽기적 행위는 결코 인간의 공격적 본능이나 분노의 표현이나 환각제의 효과가 아니라 고도로 훈련되고 오랜 연습을 통해 익힌 전문 기술이며 주로 월남전에서 갈고닦은 것이었다." (90~91p)
신군부는 오랫동안 휴가 및 외출, 외박을 금지하거나 밥을 굶기거나 야간 훈련을 지속함으로써 시위대에 대한 공수부대의 적개심을 의도적으로 키워왔다. 광주 진압의 훈련명이 '화려한 외출'이었다는 사실은 이 폭력이 철저히 기획된 것이며 불만에 가득 찬 군인들에게 제공되는 '축제' 였음을 증언한다. 광주 시민은 이 끔찍한 살육제의 희생양이 되어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다. 특히 노인, 아이, 여자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시민들을 심한 분노와 공포 그리고 그걸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자괴감 속으로 몰아 넣었다.
그러나 광주 시민의 격렬한 투쟁을 공수부대에 대한 복수심의 발로로 이해해선 안 된다. 시민들은 폭력을 폭력으로 되갚아주기 위해 일어선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 투쟁했다. 시간이 흐를 수록 민주화, 전두환 타도와 같은 정치 구호가 등장하긴 했으나 이는 시위 과정에서 이 모든 사태를 초래한 원흉이 누구인지 학습하고 알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구호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실제로 저자는 시위대의 대다수가 전두환이 누구인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5월 18일 광주 시민들을 움직인건 인간이고 싶은 열망, 즉 시대적, 이념적 가치를 초월한 기본권에 대한 사수 의지였다.
기본권에 대한 파괴는 80만 광주 시민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그들은 역사상 유례 없는 절대공동체를 형성한다. 이 공동체 안에서 개인은 사라졌고 개인이 사라지고 나니 개인이 품을 수 밖에 없는 자기애와 이기심도 사라져 버렸다. 그들은 하나였으나 혼자가 아니었고 그것을 자각하는 순간 죽음 조차 아무 것도 아닌 일이 되어 버렸다.
<오월의 사회과학>은 이 절대공동체가 어떤 과정으로 형성됐고 또 어떤 계기로 해체되었는지를 차분히 분석함으로써 이 책이 왜 '그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월의 '사회과학'인지를 증명한다. 일목요연한 사건 개요, 르포, 이야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다. 5.18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면, 이 끔찍한 권력의 폭력을 끝까지 파헤치기 위해, 공수부대의 잔학성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는 다른 책을 먼저 읽어 적의를 불태우는 것도 좋을 것이다.
5.18같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이토록 조용히 묻혀온 데는 권력자들의 억압과 은폐, 호남에 대한 타지역 사람들의 편견에 기인한 바가 클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5.18에 대한 분노를 호남 사람들의 지긋지긋한 피해 의식의 발로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혹은 그런 얘기는 운동권이나 사상적으로 불순한 사람들의 주장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권력이 우리에게 짜놓은 프레임이 얼마나 강력했는지를, 그것을 유지하는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를 말해준다. 광주 시민들은 5.18에 대해 말할 수도 없고 말하지 않을 수도 없다. 피해자들이 내는 목소리는 언제나 피해에 의해 편향된 것이라는 오해를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광주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연고도 없는 사람이 쓴 <오월의 사회과학>은 우리를 기쁘게 하면서 동시에 슬프게 만든다. 나는 사건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 그래서 목숨을 온전히 부지한 삼자만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기술할 권리를 갖는다는 사실이 몸서리치게 무섭다.
1980년 5월 광주에 내려진 '신화적' 폭력은 이제 거의 잊혀질 위기에 처해 있다. 어느날 전두환이 죽었을 때 사람들은 그를 그저 박정희의 뒤를 이은 또 한 명의 군부 독재자라고 기억할지 모른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이렇듯 '단기 기억 상실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악마는 단지 이름을 바꿨을 뿐이지만 국민은 그 새로운 지도자가 이번엔 정말 '신한국'을 만들어 줄 거라 희망한다. 지구인을 애완 동물로 키우는 외계인이 있다면, 아마 우리를 금붕어라고 부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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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깨짱 2017-04-02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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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과학은 무엇을 볼 것인가?
이 책을 학부 때 처음 읽었었는데, 최근에 출판사를 바꾸어 새로 출간되어 다시 읽었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이 책의 수준과 진가를 다시 느끼게 되었다. 사회과학이 5·18을 그리고 사회적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지를 모범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나온 한국 사회과학자의 저서 가운데 단연 최고이며 굳이 따지자면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보다 앞에 놓여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 출간된 이 책이 부디 널리 읽혔으면 한다.
"그간 우리는 진상규명을 부르짖으며 '사실'들에 매달려왔다. 그러한 사실들이란 주로 제삼자가 밖에서 본 모습을 말한다. '200명 죽었다'. '2000명 죽었다' 등의 이야기는, 사실 'one little Indian, two little Indian……'처럼 밖에서 본 모습을 말한다. 또 어떤 경우에는 '14시 30분, 금남로에 시위대 3000, 제봉로에 1500……' 등의 경우는 높은 곳에서, 헬리콥터에서 본 모습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은 우선 시위를 진압하려는 사람들에게나 필요한 것일 것이다. 그리고 '누가 발포를 명령했는가?'에 대한 답은 그 사람을 법정에 세워 사형 언도를 받아내는 데 필요한 사실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역사적 '사실'이라고 흔히 부르는 것은 대부분 '남'의 사실이지, 우리 자신들의 '사실'과는 거리가 있는 것이다. 비록 아직 정확한 사망자의 숫자도 알려져 있지 않은 처지지만 그러한 숫자 말고도 우리에게는 분석해야 할 사실들이 너무나 많다. 말하자면 이미 5·18 진상의 95% 이상은 시민들의 증언을 통해 다 드러난 것이 현실이며 군부의 핵심 자료가 없다고 해서 연구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오히려 어불성설일 것이다."(23)
"5·18은 구조주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라 구조를 만든 사건이었고 모든 인간적 사회적 요인들을 다시 배열시킨 사건이었다."(26)
"5·18이 왜 필연적으로 일어났어야만 했고, 방지할 수 없었던 구조적 원인에 의한 사건이었다는 논거는 5·18이라는 특정한 사건의 경험적 연구에서 도출된 결과라기보다는 사회과학의 언어구조, 특히 맑시스트 정치경제학 언어구조에 근거하고 있다. 즉 5·18에 대한 사회과학 담론은 서양의 실증주의 사회과학 담론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담론은 5·18을 특정한 사건으로 보지 않고 여러 사건 중의 하나 또는 '구조적 조건'의 발현으로 보아 사건으로서의 5·18을 매몰시켰다는 것이다. …… 우리 사회에서 맑시즘에 경도되어 있는 사회과학은 분명히 5·18의 소산이다. 5·18에 대한 복수를 생각하고 거대한 투쟁과 혁명을 기대하고 그 가능성을 생각하던 시점에서 맑시즘의 경제결정론과 계급투쟁론이 우리 지식인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5·18의 투쟁주의가 배태한 우리의 사회과학은 자신의 출생의 역사를 다시 쓰며 자신의 모태를 매장해버렸다."(77)
"우리는 그가 5·18의 역사 쓰기, 사회과학 쓰기에서 '진상규명'을 의식하여 그간 사망자의 숫자, '발포 명령자는 누구였다?', '누구의 명령으로 공수단이 작전을 했는가?' 등의 이른바 '사실'에 치중해왔고, 이러한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것에 좌절을 느껴왔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사실'들이란 주로 밖에서 본 모습들로서 법적인 의미와 중요성이 있는 사실들이며, 우리가 이러한 사실들에 매달려왔다는 것은 5·18의 '진상규명'을 복수의 수단만으로, 제삼자에게 복수를 구걸하기 위한 제물로만 생각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5·18의 진상은 광주 시민 모두에게, 그리고 그 참담한 '시대정신'에 참여했던 모든 국민들에게 명쾌한 것이며, 그 '진상'마저 우리가 군부에게 의존하고 있다면 그것은 과연 비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거짓이 우리의 진실을 박탈할 수는 없다. 5·18의 진상은 엄연히 우리 몸 안에 있는 것이며 그들이 숨기고 있는 사실들은 진상의 아주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할 뿐이다. 이 글의 목적은 우리의 진실만으로 5·18에 대한 글쓰기 그리고 5·18을 계기로 한 우리의 사회과학을 다시 시도하기 위함이다."(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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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루 2012-06-19 공감(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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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인간사냥에 맞선 '이성적 분노'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76929.html
등록 :1999-05-18
5.18은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분수령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그 진상과 의미는 발생 19돌을 맞은 지금까지 4.19혁명처럼 분명한 모습으로 자리매김되지 못했다.
정부공식문서에 5.18은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의 이름으로 머물러 있고, 학살 책임자들은 백주대로를 활보하며 힘을 과시한다. 이 혼란스러운 때에 5.18이라는 당대의 '화두'를 놓고 그 실체를 새롭게 해명한 연구서가 나왔다. 최정운(46) 서울대 교수(외교학)가 지은 (오월의 사회과학)(풀빛 펴냄, 1만3천원)이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를 파고든 저작이다.
최 교수가 2년여 연구 끝에 내놓은 이 책은 지금까지의 5.18 관련 논문과는 뚜렷이 다른 책이다. 지은이는 사회과학자의 엄정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의 상황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복원한다. 이런 서술 전략을 택한 이유를 그는 책 앞쪽에 먼저 밝힌다.
"이전의 논문들은 주로 구조적.역사적 방법론을 앞세워 사건을 이미 설정된 개념의 틀에 끼워맞추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참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필자들의 이념적 입맛에 맞게 과장.축소됐다." 그가 이런 오류를 피하는 장치로 선택한 것이 사건을 객관적.개념적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감정.생각 속으로 들어가 5.18을 자신의 일로 다시 경험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 현장의 입구를 방대한 분량의 증언록에서 찾았다.
베버의 '이해사회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방법을 통해 그가 발견한 항쟁 발발의 가장 중요한 직접적 원인은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이다. 사건은 정확하게 5월18일 오후 4시에 터졌다. 18일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광주의 데모는 통상적인 대학생 데모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투입된 공수부대의 진압은 진압이 아니라 만행이었다. 증언에 따르면 그것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은" 짓이었고, 공수부대는 "도저히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짐승"이었다.
공수부대의 이런 '진압'방식은 '전시적 폭력'으로써 군중을 제압하는 '폭력 극장'을 연출하는 형태였다. 부.마항쟁에서 강력한 효과를 본 이 방식은 광주에 와서 극도의 잔인한 모습으로 증폭됐다. 학살을 즐기듯 웃음기까지 머금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검과 곤봉을 휘두르며 "인간을 사냥하는" 공수부대의 모습은 시민들에게 "너희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특이한 것은 이 상황에서 시민들이 물러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겁에 질려 도망온 시민들은 곧 공포를 극복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분노를 표출했다. 이 분노를 최 교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륜을 파괴하는"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한 "이성적인 분노"였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이어 분노에 찬 시민시위대의 모습에서 '절대공동체'라는 개념을 뽑아낸다. 외부와 단절된 채 계엄군의 무차별 학살에 당하던 시민들은 사건 3일째인 20일에 이르러 공수부대와 대등한'전쟁'을 벌일 정도로 그 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한 순간 이 거대한 무리는 절대공동체를 형성한다. "절대공동체는 군대와 같이 누군가 투쟁의 목적을 위해 개인을 억압하여 만든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공포와 자신에 대한 수치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서로가 진정한 인간임을 축하하고 결합한" 것이었다. 최 교수는 이 절대공동체의 체험이 광주시민만이 겪은, 그래서 외부에서는 이해하기 여려운 원초적 체험이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에 대항해 시민이 총으로 무장해 이들을 시 외곽으로 밀어낸 뒤 열린 '해방광주'와 그 종말, 특히 절대공동체의 균열과 계급차에 따른 투쟁방식의 분화를 설명하는 데 긴 지면을 할애한다. 윤상원 중심의 항전파는 부르주아 '유지' 중심의 수습파를 제치고 최후의 항전을 결행했다. 이에 대한 최 교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들이 무기를 놓고 도청을 계엄군에게 비워줬더라면 6월항쟁은 없었을 것이며 지금 이 시간도 '5공' 치하였을 것이다."
글 고명섭, 사진 손홍주 기자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인간사냥에 맞선 '이성적 분노'
https://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76929.html
등록 :1999-05-18
5.18은 한국 현대사의 커다란 분수령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그 진상과 의미는 발생 19돌을 맞은 지금까지 4.19혁명처럼 분명한 모습으로 자리매김되지 못했다.
정부공식문서에 5.18은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어정쩡한 정치적 타협의 이름으로 머물러 있고, 학살 책임자들은 백주대로를 활보하며 힘을 과시한다. 이 혼란스러운 때에 5.18이라는 당대의 '화두'를 놓고 그 실체를 새롭게 해명한 연구서가 나왔다. 최정운(46) 서울대 교수(외교학)가 지은 (오월의 사회과학)(풀빛 펴냄, 1만3천원)이 우리 시대의 가장 논쟁적인 주제를 파고든 저작이다.
최 교수가 2년여 연구 끝에 내놓은 이 책은 지금까지의 5.18 관련 논문과는 뚜렷이 다른 책이다. 지은이는 사회과학자의 엄정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 광주의 상황을 소설처럼 생생하게 복원한다. 이런 서술 전략을 택한 이유를 그는 책 앞쪽에 먼저 밝힌다.
"이전의 논문들은 주로 구조적.역사적 방법론을 앞세워 사건을 이미 설정된 개념의 틀에 끼워맞추는 방식을 취했다. 그러다 보니 사건의 참모습이 제대로 드러나기도 전에 필자들의 이념적 입맛에 맞게 과장.축소됐다." 그가 이런 오류를 피하는 장치로 선택한 것이 사건을 객관적.개념적으로 이해하기에 앞서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감정.생각 속으로 들어가 5.18을 자신의 일로 다시 경험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 현장의 입구를 방대한 분량의 증언록에서 찾았다.
베버의 '이해사회학'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방법을 통해 그가 발견한 항쟁 발발의 가장 중요한 직접적 원인은 공수부대의 폭력 진압이다. 사건은 정확하게 5월18일 오후 4시에 터졌다. 18일 아침부터 오후 4시까지 광주의 데모는 통상적인 대학생 데모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투입된 공수부대의 진압은 진압이 아니라 만행이었다. 증언에 따르면 그것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은" 짓이었고, 공수부대는 "도저히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짐승"이었다.
공수부대의 이런 '진압'방식은 '전시적 폭력'으로써 군중을 제압하는 '폭력 극장'을 연출하는 형태였다. 부.마항쟁에서 강력한 효과를 본 이 방식은 광주에 와서 극도의 잔인한 모습으로 증폭됐다. 학살을 즐기듯 웃음기까지 머금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대검과 곤봉을 휘두르며 "인간을 사냥하는" 공수부대의 모습은 시민들에게 "너희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인식을 심어줬다.
특이한 것은 이 상황에서 시민들이 물러서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겁에 질려 도망온 시민들은 곧 공포를 극복하고 거리로 뛰쳐나와 분노를 표출했다. 이 분노를 최 교수는 "인간의 존엄성과 인륜을 파괴하는" 극악무도한 행위에 대한 "이성적인 분노"였다고 말한다.
최 교수는 이어 분노에 찬 시민시위대의 모습에서 '절대공동체'라는 개념을 뽑아낸다. 외부와 단절된 채 계엄군의 무차별 학살에 당하던 시민들은 사건 3일째인 20일에 이르러 공수부대와 대등한'전쟁'을 벌일 정도로 그 수가 늘어난다. 그리고 한 순간 이 거대한 무리는 절대공동체를 형성한다. "절대공동체는 군대와 같이 누군가 투쟁의 목적을 위해 개인을 억압하여 만든 조직이 아니다. 그것은 폭력에 대한 공포와 자신에 대한 수치를 이성과 용기로 극복하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들이 만나 서로가 진정한 인간임을 축하하고 결합한" 것이었다. 최 교수는 이 절대공동체의 체험이 광주시민만이 겪은, 그래서 외부에서는 이해하기 여려운 원초적 체험이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21일 계엄군의 집단발포에 대항해 시민이 총으로 무장해 이들을 시 외곽으로 밀어낸 뒤 열린 '해방광주'와 그 종말, 특히 절대공동체의 균열과 계급차에 따른 투쟁방식의 분화를 설명하는 데 긴 지면을 할애한다. 윤상원 중심의 항전파는 부르주아 '유지' 중심의 수습파를 제치고 최후의 항전을 결행했다. 이에 대한 최 교수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이들이 무기를 놓고 도청을 계엄군에게 비워줬더라면 6월항쟁은 없었을 것이며 지금 이 시간도 '5공' 치하였을 것이다."
글 고명섭, 사진 손홍주 기자
[털어놓고 말해보자면] 5.18 광주항쟁을 '절대적'인 사건이라 칭찬하며 넘겨버리고 싶어하는 욕망에 관하여 -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에 대한 짧은 평
혁명읽는사람
01/28 02:46
2012년 이후 한동안 뜸했던 것과 달리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진보적인 역사학계, 사회과학계에서는 5.18 광주항쟁에 대한 이런저런 해석을 담은 연구서들을 많이 내고 있다. 5.18 광주항쟁에 대한 교과서를 자임하는 <너와 나의 5.18>(오월의봄, 2019> 같은 책도 나왔을 정도로 해석에 있어 어떤 보편적인 합의의 틀이 형성되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2017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5.18 광주항쟁과 관련된 연구서라 할만한 책으로는 정해구 등의 집단연구였던 <광주민주항쟁연구>(사계절, 1990)정도 외에는 그다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사실상 최정운의 <오월의 사회과학>(풀빛, 1999; 오월의봄, 2012)이 5.18에 대한 교과서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었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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