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年 11月 16日
2차 대전 이후 세대 일본인의 국가인식과 책임의식
2015년 1차 세계 대전 100주년에 즈음하여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차 대 전 승전국으로서의 일본은 세계에 자랑할 만한 선진국의 하나로 진입한 자랑스러운 역사를 내세워야 한다고 공언하였다. 그 후의 어두운 역사 등을 강조하는 역사적인 죄의식의 기억 보다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내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전쟁과 관련없는 후세대들에게 어두운 과거의 짐을 지게 할 수는 없다고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 인구의 대부분이 1945년 이후 출생자들인 것을 감안하면, 일본 국민은 과거의 잘못에 대한 책임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이전부터도 전후 세대들 중에는 출생 이전에 일어난 일, 조상들이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책임을 질 필요가 있는가 하는 생각을 품는 사람들이 있던 터에 아베 총리의 이러한 공개 발 언은 일본 국민들에게 스스로 면죄부를 줄 뿐만 아니라 선진 국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 려는 의도였다고 하겠다. 과연 옳은 방향일까?
일본 국민들이 생물학적인 출생 구분으로 과거의 잘못으로부터 단절될 수 있는가? 그것이 아무런 조건 없이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일본의 잘못은 일본인들의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이요 국가적 책임이라고 봐야 한다면 명백한 것은 국가의 정체(Political Identity) 틀이 바뀌는 것이라 할 수 있겠지만, 거기에도 역사적 연속체로서의 국가라는 실체는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2차 대전 후 정체가 바뀌어도 전쟁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을 보 면 알 수 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는 일찍이 1950년대 초 일본에는 ‘무책임의 체계’만이 있을 뿐 궁극적인 책임은 누구도 지고 있지 않다고 하였다(『現代政治の思想と行動』). 즉 일본 국내 어디에도 전쟁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의식은 없었다고 하였다. 이러한 체계 속에서 사람들은 명령에만 따를 뿐 선악이나 죄의식에 대한 주체적인 판단은 할 수가 없었다. 잔혹한 전쟁 범 죄도 의식하지 못하고, 명령에 따르는 것이 국민된 도리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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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범죄에 대하여 언급한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의 판단은 보다 명확하였다. 1960년대 나치 전범으로 이스라엘에서 재판받고 처형당한 아이히만의 재판과정을 참관하 며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에서, 아이히만이 끝까지 나치 범죄에 대한 죄의식을 느끼지 못한 것은 banality of evil(흔 히 ‘악의 평범성’이라고 번역하지만 원래 의도한 뜻과는 꼭 맞지 않는다) 때문이라고 아렌 트는 보았다. 오히려 악에 대한 무관심의 만연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상태, 즉 자기의 주체 적 책임은 인식하지 못하고, 또는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나 조직에 위임하여 스스로는 다른 세계 속에 있는 듯한 정신적 상황을 지적한 것이다. 아이히만은 죄의식 없이 나치의 틀 속에 갇혀서 생을 마감했지만, 독일 국민들은 국가의 정체성이 바뀜에 따라 이러한 상황에서 벗 어나는 데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독일인들 대부분은 독일이라는 국가의 역사 적 연속체 속에서 역사로서의 전쟁책임을 아직도 의식하고 있다고 보인다. 그들은 전쟁을 지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가르치고 기억하게 하여, 다시는 그러한 전쟁의 참화를 일으키지 않아야 한다는 교훈을 새기고 있다.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만들어 피해자 지원과 교육 및 기념사업 등을 맡고 있으며 전쟁의 흔적을 지우려 하지 않는다. 어두운 역사를 찾아 내어 독일 국민들이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 물론 일본인들의 일반적인 틀을 벗어난 양심적 일본인들이 없진 않 지만 그들의 영향력이 극히 한정되어, 세가 너무 약하고 일본 내에서는 오히려 국익에 반하 는 행동을 한다고 매도당하고 있다. 일본 국내의 일반적 분위기는 압도적인 국가, 국익 중심 적 사상을 추구하는 것이며 국제환경의 변화를 이에 맞춰 가고 있다.
일본이 선진국이 되고 든든한 동아시아의 우방이 되려면 가장 근원적인 역사의 문제를 풀 어야 한다.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과감한 진상규명과 이를 직시하는 아픔의 과정, 그리고 사 죄와 용서, 화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프고 힘든 과거의 짐을 털어버리고 이제는 잊어버 리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잘못에 대하여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반성하고 이에 상응하는 태 도를 지켜가야 하지 않을까? 책임을 회피하고 묻어버리는 심리와 태도는 이웃나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을 수 없다. 책임 의식이란, 책임을 인정하고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피해국을 포함하여 국 제적 인정을 받는 것이다. 이러기 위해서는 일본인들의 국가인식 태도가 바르게 정립되어야 한다. 과거의 짐을 벗어난다는 것은 과거와의 단절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 더 구체적으로는 어두운 역사는 털어내고 밝고 자랑스러운 것만을 일본 역사의 내용으로 하자는 것이 가능할까? 일본이라는 나라는 앞서 말했듯이 역사적 연속체이다. 더구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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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일본은 천황제를 비롯하여 정치 경제적 리더십이 큰 틀에서는 1945년 이전과 이어져 왔 다. 일본 국민은 이러한 역사적 일본의 구성원이다. 현재의 일본인이라 해도 역사적 연속체 인 일본국가에 귀속되는 것이다.
‘무책임의 체계’ 속에서 아무 생각 없이 끌려갔다면 그들은 전혀 책임이 없는 것인가? Banality처럼 악이 사회를 휩쓸고 지배할 때 이에 동조하여 악행을 거듭한 것은 용서받을 수 있을까? 물론 철저히 반성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한다면 이웃 지역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이 과정이 분명하지 않고 (특히 정체 의 연속성 때문에) 사과의 진정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거듭 사과를 요구받는 것 은 사과 이후의 행동이 사과 내용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과거에 대하여 피로감을 느끼며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일본인이 줄어들고, 올바르게 국가의 역사성과 역사적 책임을 인식하는 일본인이 확산될 때 일본국의 국제적 위치와 권 위는 인정받을 수 있다.
- 첨언 -
불행한 과거사를 특수한 두 나라 간의 문제로 보는 것은 그 내용의 본질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한일 간의 역사문제를 특수한 한일관계로 시야를 한정하여, 감성적으로 일본에 사죄를 거듭 강요하는 듯한 행동을 할 때, 일본인에게는 한국에 대한 피로감이 더 쌓여갈 수도 있고, 일본인의 국가인식의 길을 넓히지 못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배상 문제의 경우 피해자를 소송 당사자에 국한하는 것 또한 논리적인 모순이다. 피해 당사자가 모 두 사라진다면 배상 문제는 자연히 없어지는 것인가? 압도적인 다수의 무명의 희생자들에 대하여 국 가는 어떻게 할 것인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이다.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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