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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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일 선생의 ‘시대인, 소명에 따르다’를 일단 다 읽었다.
읽는 동안 그의 천재성과 불요불굴의 의지에 경탄하면서도, 그의 소명감이 한국의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넘어서지 못해서 스스로 좌절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해 수구화한 어떤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천재적 능력과 자기 나름의 소명감이 결합하는데서 오는 단정적(확증편향적) 태도에 당혹감을 느꼈다.
나는 그의 업적을 평가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그의 천재성과 의지 앞에서 어떤 비판을 하기에는 내 자신이 너무 작아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동 시대를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면서, 지식인의 혁명적 열정을 가지고 비슷한 소명감으로 출발하였으나, 여러 외적 내적 경계에 부딪치면서 스스로 변화시켜 도달한 그 세계관이나 문명관, 민족주의나 통일관 등을 보면서, 경탄과 동시에 안타까움과 당혹감을 함께 함을 밝히지 않을 수 없다.
큰 거시적 안목에서의 일치와
현실 판단에서의 좀처럼 만나지지 않는 심지어는 대립적인 판단과 정서,
이런 느낌은 한국의 저명한 학자나 이론가들에게서 이미 여러 차례 느끼고 있는 것이다.
현실에 바탕을 두고, 현실을 변혁하며, 인류 보편의 이상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거시담론이 북극성이라면 현실에 대한 실사구시적 판단은 항해의 나침판이라고 할 수 있다.
북극성은 함께 바라보지만, 나침판이 다르거나 나침판에 이상(異狀)이 있으면 항해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횡 세계일주를 통해 어렵사리 ‘세계의 일체성’을 발견하고 확인했으며 선양해 왔다.
그 일체성은 인류가 공통적 조상에서 진화했다는 인류의 혈통적 동조(同祖), 세계 역사는 공통적 발전 법칙을 공유하고 있다는 역사의 통칙(通則), 문명 간에 부단한 소통과 교류가 이어져 왔다는 문명의 통섭(通涉) 그리고 숭고한 보편가치를 다 같이 누리려 한다는 보편가치의 공유(共有), 이 네가지 공통요소에서 발현되고 있다. 아울러 이 일체성이야말로 미래의 인류를 다 같이 공생공영할 수 있게 하는 역사의 원초적 뿌리이며 밑거름이라는 불변의 확신을 갖게 했다“
위에 언급한 내용이 그의 사상과 소명을 잘 나타내는 문장 같아서 발췌 소개했다.
이 속에 내가 공감하는 거시적 안목과 동시에 내가 껄끄러워지는 그의 단정적 태도가 잘 나타나 있다.
특히 역사의 통칙(通則)에서는 그가 젊은 시절 가졌던 세계관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가 생각하는 보편가치 또한 그의 경험 세계와 소명감이라는 주관적 태도에 갇혀 있는 듯하다.
그의 민족주의 담론은 그의 문명교류에 대한 학문적 업적에 비하면 그렇게 대단한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닌 것으로 나에게는 보인다.
특히 통일에 대해서 남쪽 사상계나 이론계의 여러 담론들을 거침없이 비판 때로는 비난하면서, 그가 들고 나오는 ‘진화통일론’이 내가 제안하는 두 국가의 공존을 통한 민족주의나 통일의 발전적 전개와 어떻게 다른지, 어떤 것이 더 현실적인지를 묻고 싶다.
북(北)의 현실에 대해 한 마디도 언급이 없는 것을
이해하려고는 하지만,
그런 태도가 어떻게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상적인 세계나 그것에 부합하고 그것을 선도적으로 추진하는 민족주의 담론과 통일 담론을 전개할 수 있는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면이 있다.
물론 그가 회고록의 말미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지만, 그가 출옥한 이후
종횡 세계일주를 통해서 ‘문명교류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은 굴절되고 험난한 역사 속에서도 발전해 온 한국의 역동적인 현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도 상기하게 된다.
회고록의 마지막 말에서 시대를 온 몸으로 살아온 그의 감상을 들으면서, 비록 같은 시대, 다른 세계를 살아왔지만, 노년의 감회를 함께 나누게 된다.
“이제 나는 그 ‘불급함’을 내일의 여명을 잉태한 낙조에 고이 묻고 미련 없이 훨훨 떠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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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여태권
어렵지만 공유하여 이해 가능할 때까지 읽어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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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철
공감이 갑니다ㆍ 대의민주주의중앙집권통치체제인 한국의 87년체제도 낡고 부패한 기득권카르텔체제가 되어버렸습니다ㆍ이체제는 1:9:90% 헬조선신양반제사회를 만들어왔으며 이체제를 그대로두면 이 불의한 사회를 더욱 고착화시킬것입니다ㆍ
그러나 네오직접민주주의를 가능케하는 4차산업혁명의 물결과 민중의 직접민주주의 민치에의 요구는 직접민주주의민치(시민정치+주민자치+공론정치)와 대의민주주의통치(대의정치+관치)가 이중적으로 구동되는 직접민주주의자치분권협치체제를 만들어갈것입니다ㆍ각기 자기결정권을 가진 시군구단위 지역당과 읍면동단위 동네정당을 기반으로 보충성의 원리와 연방제의 원리에 의거하여 직접민주주의진보정당을 건설하려는 실천적 흐름이 단적인 예가 될것입니다ㆍ
이러한 직접민주주의자치분권협치국가의 흐름으로부터 북한도 예외일수없기에 선생님의 견해에 공감이 가는게지요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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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용식
저는 선생님이 비판하시는 그 대목에 대해 이렇게 생각합니다.
정수일 선생이 북한에서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무하마드 깐쑤가 되기 위한 교육에 들어간 게 1984년 3월이고,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공안기관에 체포된 게 1996년 7월입니다.
이번 회고록은 그 사이 22년 5개월간의 기록은 거의 빠져 있습니다.
이 시기가 얼마나 격변의 시기입니까? 국내적으로는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적 정통성을 갖춘 정부가 들어섰고, 국제적으로는 소련이 해체되고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는 냉전체제가 무너졌습니다.
이 격변의 시기에 깐쑤의 통일관, 통일운동 노선도 틀림없이 커다란 변화를 맞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활동 내용에서도 변화가 있었을 것이고요.
그런데 이 회고록은 깐쑤가 되기까지의 과정, 깐쑤가 되어 활동한 내용, 그 활동에 대한 회고는 대부분 생략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 <정수일 회고록>일 뿐, 선생이 가명을 쓰고 활동했던 <무하마드 깐쑤 회고록>이 아니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추후에 <무하마드 깐쑤의 회고록>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데, 정수일 선생님의 건강이 과연 이를 허락할까 걱정입니다.
Reply1 h
Namgok Lee
문용식 무슨 말씀인지 이해하겠습니다.
저도 행간을 읽으려고 노력했습니다만, 위에 적은 독후감은 역시 제 자신의 감각과 판단일 뿐입니다.
정 선생님의 '민족주의론'이나 '진화통일론'은 제 자신 오랫 동안 고민했던 테마들입니다.
저는 민족주의자는 아닙니다만, 민족에 대한 애정과 긍지는 남 못지 않게 높은 편입니다.
정서적으로는 저의 진화통일론은 옛 사람의 다음 싯구에 가깝습니다.
萬國活計南朝鮮
文明開化三千國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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