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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혼란 피한 '강제징용 제3자 변제안'에… 철 지난 '반일 선동'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이 기금 마련...재단이 일본기업 대신 판결금 변제'1965 청구권협정'과 '2018 대법원 판결'의 우위를 명시하지 않은 절충안비엔나협약에 따라 청구권협정이 상위 규범...국내법 이유로 불이행 안 돼일본 "청구권자금을 피해자 개인에게 지급" vs 한국 "경제 발전에 활용"일본, 고노·나오토·무라야마 담화 통해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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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정 기자
입력 2023-01-13 17:10 | 수정 2023-01-13 17:10
▲ ⓒ뉴시스
정부는 2018년 대법원이 확정판결한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배상을 행정안전부 산하 '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한 '제3자 변제'로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의 국내 '수혜 기업'들이 기부금을 마련하면 제3자인 재단이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으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정부가 검토하는 '중첩적(병존적) 채무 인수안'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 가운데 무엇이 상위 규범인지 확정하지 않은 '절충안'에 불과하지만, 얽히고 설킨 청구권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았다고 볼 수 있다.
한국은 1965년 일본과 '한일청구권협정'을 맺고 유무상 5억 달러를 지원받음으로써 청구권 문제를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제2조 제1항)"했지만,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한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이 나오면서 법적 혼란과 한일 갈등이 증폭했다.
비엔나협약 제27조, 청구권협정이 대법원 판결에 우선
그러나 한국이 당사국으로 참여하고 있는 '조약에 관한 비엔나협약' 제27조를 이 문제에 적용하면 청구권협정이 대법원 판결에 우선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어느 당사국도 조약의 불이행을 정당화(justification for its failure to perform a treaty)하는 방법으로 그 국내법 규정(provisions of its internal law)을 원용해서는 안 된다"는 제27조는 국내법을 이유로 조약 불이행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의미다.
우리 헌법 역시 제6조 제1항에서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했다.
1965년 일본 "피해자에 직접 배상" vs 한국 "개인 청구권자금으로 경제 발전"
협정 체결 당시 일본정부는 식민지배의 직접적인 피해자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자국의 원호법에 따라 직접 배상하겠다고 했지만, 우리 정부(장면정권과 박정희정권)는 청구권자금의 총액을 정부 차원에서 일괄적으로 받겠다며 거절했다.
정부는 청구권자금으로 받은 무상 3억 달러와 유상 2억 달러로 소양강댐과 경부고속도로 등을 건설했다. 청구권자금을 지원받아 성장한 기업은 ㈜포스코(옛 포항종합제철㈜)뿐 아니라 한국도로공사·한국전력·코레일·KT&G·외환은행(현 하나은행)·한국수자원공사 등 16곳에 이른다.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 배상은 뒤늦게, 그리고 매우 약소하게 이뤄졌다. 피해자들 몫은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 3억 달러의 9.7%인 약 92억원에 불과했지만, 포스코에는 유무상 5억 달러의 23.9%에 해당하는 무상자금 3080만 달러와 유상자금 8868만 달러가 지원됐다.
정부는 1971년부터 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 8만3519건을 접수받고 1977년까지 92억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을 전달했는데, 이는 피징용 사망자 한 명당 현재가치로 약 3000만원 수준이다.
1차 배상이 불충분하다는 지적이 나옴에 따라 2008년 6184억원을 추가로 지급했다. 국가 경제발전에 희생된 피해자들에 대해 위로금의 지급 주체는 일본정부가 아닌 우리 정부이자 청구권 수혜 기업이 돼야 한다는 주장은 이러한 배경에서 출발한다.
강제징용 문제가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하면서 피해자들의 의견도 대법원 판결의 피고인 일본기업의 기금 참여 여부, 일본정부·기업의 사죄 여부 등을 놓고 크게 엇갈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외교부와 정진석 한일의원연맹 회장이 공동 주최한 '강제징용 해법 논의 공개토론회'에서 신경전을 벌이다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갔다. 표면적으로는 대법원 판결의 피고인 ▲일본기업의 배상(기금 참여) 여부와 ▲사죄 ▲일본정부의 사죄 여부를 놓고 벌어진 갈등이지만, 근본적으로는 결국 '한일청구권협정' 해석 문제다.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피해자들을 대리한 임재성 법무법인 해마루 변호사는 이날 토론회에서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중첩적(병존적) 채무 인수안'을 "한국정부가 지원하는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주체가 돼 한국기업의 돈으로 한국 피해자들의 채권을 소멸시키는 안"이라고 비판했다.
일본제철(신일철주금)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대리하고 있는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은 국가 간 조약인 청구권협정을 뒤집은 2018년 대법원 확정판결을 "일본의 침략전쟁, 식민지배와 직결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한 (개인의) 위자료 청구권은 한일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아주 역사적인, 세계사적인 판결"이라고 높이 평가하며 "소송을 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포괄적인 배상도 얻어낼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길윤형 한겨레신문 국제부장은 "재단이 한일 기업의 기금을 모아 지불하되, 그 전제조건으로 유족들이나 피해자들이 원하는 피해 기업의 사죄, 기금(배상)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일본이 이미 표명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성실히 유지 계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이날 서민정 외교부 아시아태평양국장의 발언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그러나 '진정성 있는 사과'와 관련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눈높이 차이는 차치하고, 일본이 식민지배를 공식적으로 사과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과가 ▲1993년 고노 담화 ▲1995년 무라야마 담화 ▲2010년 간 나오토 담화다.
이 중에서도 특히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은 2010년 '식민지배가 한국인들의 의사에 반해 강제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인정하고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과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정부는 이후 조선왕실의궤 등 1300점에 달하는 문화재를 반환한 바 있다.
2015년에 체결한 '한일 위안부합의'는 민간기금이 아닌 일본정부 예산으로 보상하고 사죄를 표명했다는 점에서 더욱 진일보한 합의였다는 평가도 나온다.
조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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