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통일적 ‘분족론’(分族論)
[녹취문]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기자명 정수일
입력 2021.12.17
이 원고는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이 통일뉴스 창간 21주년 기념식(11월 26일)에서 동영상으로 한 기념강연 녹취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첨삭과 수정을 가해 논문식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독자들의 요구와 통일뉴스의 ‘통일담론 활성화 정책’에 부응하고자 녹취문을 전재합니다. / 편집자 주
통일뉴스 창간 21주년 기념식에서 동영상으로 기념강연을 하고 있는 정수일 한국문명교류연구소 소장. [사진-유튜브 갈무리]
우선, 지난 20여 년 동안 오직 직필정론(直筆正論)의 한길만을 꿋꿋이 걸어온 통일뉴스의 창간 21주년을 맞이해 애독자로서 열렬한 축하를 드리면서 앞으로도 계속 이 한길로 매진할 것을 기원 드립니다.
당면하여 통일을 저해하는 요인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외세의 반통일적 간섭과 제재에서 비롯된 외연적(객관적) 요인이고,
다른 하나는 반(反)통일적 ‘분족론’과 탈(脫)통일적 ‘평화지상주의’에 의한 내재적(주관적) 요인입니다. 본 강연에서는 내재적 요인으로서의 반통일적 ‘분족론’의 실상과 부당성에 관해서만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Ⅰ. ‘분족론’과 그 실상
‘분족론’이란 우리 한민족과 같이 민족 구성의 객관적 요소(혈연, 언어, 경제, 문화, 역사, 지역 등)와 주관적 요소(귀속의식, 연대의식, 민족수호 의지, 발전지향성 등)를 모두 갖춘 완벽한 인간공동체로서의 민족이 생성과정에서 인위적으로 겪게 되는 분열을 의제로 하는 담론을 말합니다. ‘분족론’은 원래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오던 동족을 서로가 자의반 타의반 타자화(他者化)하는 담론으로서 일명 ‘타민족론’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구실을 대든, 어떤 미사여구로 분장하든, ‘분족론’은 역사의 거역이고 시대의 역행이며 민족의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분족론’의 이러한 적폐를 자각한 대부분 나라들과 민족들은 분연히 일어나 분족의 비극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독 우리 한민족만은 아직껏 분족의 쇠사슬에 묶여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작금 이러한 수치스러운 모습에 자괴자성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영구 분족을 꾀하는 ‘분족론’이 혼탁한 시류를 타고 세차게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갈라진 국토와 민족을 하나로 되돌려놓는 것은 국내외 8천만 우리 겨레의 한결같은 민족적 숙원입니다. 이 소원의 근원적 당위성은 남북한은 오로지 하나의 민족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엄연한 사실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분족론’이나, ‘친구론’ 같은 사이비 민족론에 잠식당하고 있으며, 그 여진으로 인해 통일운동은 원동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족론자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견강부회적(牽强附會的)인 언설들을 한번 들어보기로 합시다.
이제 “역사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민족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다.”, “민족이란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투표와 같은 의지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민족에 의해 민족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입된 민족주의에 의해 민족이 만들어진다”(‘민족만들기’),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 ‘민족은 계약공동체’, ‘매일 결속하는 의지공동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군더더기로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여기에 같은 민족이라고 덧붙여 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민족이란 단지 이름일 뿐이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 남과 북의 주민이 과연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루는 것이 두루 행복이 될까?”,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해서 우리는 민족이란 마술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민족이란 문화공동체인데 이제 남북은 ‘판이한 정치제도와 경제구조로 인해 더 이상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는 문화공동체’가 아니다.”, “이제 ‘핏줄로도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없으니’ 단일민족이란 근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일민족에 근거한 당위적 통일 논리로는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등등.
이상의 몇 가지 노골적인 주장들에서 우리는 허무맹랑한 ‘분족론’의 실상을 갈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남북한은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제도와 경제구조 및 언어나 핏줄을 가진 다른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민족구성요소들의 공통성, 특히 경제적 공통성의 상실에서 찾고 있습니다.
Ⅱ. ‘분족론’의 부당성
지난 70여 년간의 한반도 분단사는 아직까지도 통일의 철학적 기조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을 세우지 못한 채 임기응변의 기능주의적 방편식으로 통일과 민족문제에 접근하다보니, ‘분족론’ 같은 사이비 통일담론이 거침없이 통일의 행보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남북 간의 동질성 상실’이라는 조작된 허구에 떠밀려 단일민족의 실재가 부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극히 소박하고 근원적인 통일의 당위성마저도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급기야 ‘젊은 층일수록 통일을 원치않는다’는 낙담(落膽)이 매체의 댓글로 둔갑하고, 이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까지도 ‘분족론’을 정강으로 명문화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성의 양식이 살아서 숨 쉬어야 할 학계는 또 학계대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무턱대고 색 바랜 의제로 터부시하면서, 자칫 이념논쟁에 휘말릴까 눈치보고 쭈빗거리기만 합니다. 심히 우려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통일문제의 종국적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전략적 전환이 모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분족론’ 같이 미적지근하게 다뤄오던 중요한 문제들을 이론실천적으로 명백히 밝혀내는 것은 절박한 시대적 요청입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해 필자는 ‘분족론’이 내포하고 있는 부당성을 3가지 측면에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민족론에 대한 심각한 무지와 오해입니다. 분족론자들은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객관적 요소들의 공통성(공유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반면에 이질성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남북한이 더 이상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라고 강변합니다. 이런 강변에 일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식자층이나 전문연구자들마저도 분별없이 현혹되어 맹종하고 있습니다.
분족론자들은 혈연이나 언어, 문화, 지역의 이질성과 더불어 특히 경제적 이질성을 앞세워 자신들의 허망한 ‘논리’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남북한 간에는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차이 때문에 민족구성의 주요한 객관적 요소의 하나인 경제적 공통성이 이미 사라졌으며, 나아가 그로 인해 남북한은 더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들고 나오는 천박한 ‘논리’입니다. 사실 이러한 표피적인 경제 논리가 분족론자들이 일관하게 주장하는 ‘분족’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 것입니다.
원래 민족의 객관적 구성요소로서의 경제적 공통성이란,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기층구조(농업이나 공상업 등)와 경제생활(주로 의식주),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지리적 여건(기후와 부존자원 등)의 3대 요인에서 나타나는 공통성을 말합니다.
역사가 증언하다시피, 봉건제도나 자본주의제도 등 각이한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을 겪어오면서도 경제적 공통성은 시종 상실되지 않고 민족구성요소로서의 원초적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위의 3대 요인 때문입니다.
작금 남북한 간에 경제적 소통이나 경제제도 및 경제수준의 상호보완 같은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도, 이 3대 요인에 바탕한 경제적 공통성은 질적 변화 없이 여전히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의 상차를 근거로 남북한의 단일민족성을 부정하고 타민족론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종의 어불성설에 불과합니다.
혈연이나 언어, 문화면에서의 남북한 간의 차이와 공통성문제에 관해서도 이와 같은 실사구시한 문제의식으로 접근한다면 틀림없이 바른 이해가 도모될 것입니다. 이것은 '분족론'이나 '친구론' 같은 반민족론을 극복하는 데서 유력한 이론적 무기가 될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의 활력소로도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그 부당성은 남북 간 합의에 대한 공공연한 거역과 도전입니다. 분단 이래 지난 70여 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과 결렬의 위기까지를 겪으면서도 남북한 정상들 사이에 이루어진 통일 관련 6대 합의서(성명, 선언)를 비롯한 수많은 합의문서는 시종일관 통일문제를 단일민족(‘1민족’) 내부의 문제(혹은 민족끼리 문제)로 다루었지, ‘분열된 민족들(분족)’ 간의 문제로 왜곡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남북 간의 첫 공식 합의문서인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은 그 엄혹한 ‘대결의 동면(冬眠)’ 속에서도 조국통일의 셋째 원칙으로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라고, 둘 아닌 오직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는 것’을 선차적 통일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55년간 정권이 여덟 차례나 바뀌는 과정에서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와 ‘공백의 시대’(김영삼 정권 시대), ‘공든 탑이 무너지는 퇴행의 시대’(이명박-박근해 정권 시대)를 제외한 나머지 ‘장미빛 합의의 시대’(노태우 정권 시대)와 ‘접촉의 시대’(김대중-노무현 정권 시대), 재접촉의 시대(문재인 정권 시대)에 남북한 수뇌들 간에 맺어진 4번의 통일 관련 합의서에는 ‘1민족, 2국가, 2체제...’라는 표현으로 통일의 주체가 ‘하나의 민족’임을 명시하거나 암시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5년간 ‘공백의 시대’를 보내면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1994)에서도 통일과정은 기존의 통일 3대 원칙(7.4남북공동성명)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철학’을 바탕으로 화해 협력과 남북연합, 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통일의 3단계론을 제기하였습니다.
요컨대, 역대 남북 간의 공식 합의문서에서는 적어도 명문상으로 ‘1민족’(하나의 민족)에 의한, ‘1민족’을 위한 통일만이 공식화되고 있으며, ‘분족론’은 아예 입지(立地)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분족론’을 주장하는 것은 남북 간의 합의와 공론에 반하는 공공연한 거역과 도전이라는 각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분족론’의 부당성은 우리의 통일민족사에 대한 반역적인 이탈과 포기에 있습니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275개 성씨 중 무려 136개 성씨(46%)가 외래의 귀화성입니다. 그 중 40개는 신라시대에, 60개는 고려시대에, 30개는 다들 ‘은둔국’이니 ‘쇄국’이니 하는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혈통적으로 30여 인종을 아우른 다민족 다문화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조상들은 선진 문명과 강성한 국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용력을 발휘해 슬기롭게 다민족을 단일민족으로 응집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사상 희유의 통일민족 국가를 출범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의 일례로 그 실상을 헤아려보기로 합시다.
고려 초기 1백 년 동안 외래인 17만 명이나 고려 땅을 찾아와 자진 귀화를 청했습니다. 당시 고려 인구가 약 230만 명이었으니, 인구 대비 귀화인 수효는 약 7.4%를 차지해 그 비율이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고려는 튼튼한 국력과 높은 문화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내자불거(來者不拒)’, 즉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라는 대범한 귀화책을 쓰면서 유례없는 포용과 우대의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귀화자는 호적에 편입시키고 한국 성을 하사하며, 적격한 관직을 제수하고, 작위와 식읍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착용 주택과 전답, 미곡, 의복, 기물, 가축도 시여하였으며, 안전을 위해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착시키는 등 주도세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고려라는 큰 용광로 속에 귀화인들은 스스로가 용해되어 비록 생물학적 핏줄이야 하나로 될 수 없었지만, 혈연을 제외하고는 생활문화나 의식구조 면에서 단일민족 구성에 하등의 하자가 없는 동질성과 일체성이 확보됨으로써 구경에는 완벽한 하나의 민족으로 응결되었던 것입니다. 신라나 조선시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보장되는 환경 속에서 낯선 외래 귀화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복잡다기한 다민족문제 해결에서 자랑스러운 수범을 세웠던 것입니다. 삼삼오오 흩어져 살길을 찾아온 지구상 30여종 인종이 불과 1,000년 좀 남직한 기간에 8,000만 단일민족 대공동체로 급성장하게 된 것은 사상 희유의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혈육의 정으로 끈끈히 뭉친 단일민족 대공동체야말로 우리가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유산이며, 값진 자산이고, 인류사에 대한 불멸의 기여입니다. 그러한 유산과 자산을 홀대하고 무시하며 망각하는 ‘분족론’이야말로 통일민족사에 대한 반역적 이탈과 포기이며, 고마운 조상에 대한 배은망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으로, ‘분족론’과 더불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근간에 튀어나온 이른바 ‘친구론’입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어느 한 정당의 정책연구소가 펴낸 홍보책에는 남북한이 ‘1민족 2국가’라는 특수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형제이자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순된 극단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남북관계를 특별한 ‘친구관계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변합니다.
이것은 ‘형제이자 주적’이라는 동서고금에 유례없는 반인륜적 관계를 ‘친구’라는 미명으로 포장하려는 얄팍한 발상일 따름입니다. 형제면 영원히 형제여야 하지 어떻게 좀 귀찮다고 해서 형제가 ‘친구’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친구론’은 ‘분족론’의 아류에 불과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으로, ‘친구’ 아닌 형제로, 피를 나눈 혈육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세세연년 그렇게 살아 갈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이 없이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됨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며, 이러한 신념을 굳건히 간직할 때 ‘분족론’은 퇴치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간략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Ⅰ. ‘분족론’과 그 실상
‘분족론’이란 우리 한민족과 같이 민족 구성의 객관적 요소(혈연, 언어, 경제, 문화, 역사, 지역 등)와 주관적 요소(귀속의식, 연대의식, 민족수호 의지, 발전지향성 등)를 모두 갖춘 완벽한 인간공동체로서의 민족이 생성과정에서 인위적으로 겪게 되는 분열을 의제로 하는 담론을 말합니다. ‘분족론’은 원래 하나의 공동체로 살아오던 동족을 서로가 자의반 타의반 타자화(他者化)하는 담론으로서 일명 ‘타민족론’이라고도 합니다. 어떤 구실을 대든, 어떤 미사여구로 분장하든, ‘분족론’은 역사의 거역이고 시대의 역행이며 민족의 불행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하여 ‘분족론’의 이러한 적폐를 자각한 대부분 나라들과 민족들은 분연히 일어나 분족의 비극에 종지부를 찍고 민족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독 우리 한민족만은 아직껏 분족의 쇠사슬에 묶여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작금 이러한 수치스러운 모습에 자괴자성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영구 분족을 꾀하는 ‘분족론’이 혼탁한 시류를 타고 세차게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위적으로 갈라진 국토와 민족을 하나로 되돌려놓는 것은 국내외 8천만 우리 겨레의 한결같은 민족적 숙원입니다. 이 소원의 근원적 당위성은 남북한은 오로지 하나의 민족이라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엄연한 사실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분족론’이나, ‘친구론’ 같은 사이비 민족론에 잠식당하고 있으며, 그 여진으로 인해 통일운동은 원동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분족론자들이 주장하는 몇 가지 견강부회적(牽强附會的)인 언설들을 한번 들어보기로 합시다.
이제 “역사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민족 개념은 성립하기 어렵다.”, “민족이란 안정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투표와 같은 의지의 선택에 의해 결정된다”, “민족에 의해 민족주의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입된 민족주의에 의해 민족이 만들어진다”(‘민족만들기’), “민족은 상상의 공동체”, ‘민족은 계약공동체’, ‘매일 결속하는 의지공동체’, “같은 민족이라는 것은 군더더기로 보인다.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하면 충분하다. 여기에 같은 민족이라고 덧붙여 말할 필요가 전혀 없다... 민족이란 단지 이름일 뿐이다”, “이렇게 완전히 다른 사회에 살고 있는 남과 북의 주민이 과연 하나의 민족국가를 형성할 수 있을까? 또 하나의 민족국가를 이루는 것이 두루 행복이 될까?”, “북한 핵실험을 계기로 해서 우리는 민족이란 마술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민족이란 문화공동체인데 이제 남북은 ‘판이한 정치제도와 경제구조로 인해 더 이상 문화적 유사성을 공유하는 문화공동체’가 아니다.”, “이제 ‘핏줄로도 같은 민족이라고 할 수 없으니’ 단일민족이란 근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단일민족에 근거한 당위적 통일 논리로는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 등등.
이상의 몇 가지 노골적인 주장들에서 우리는 허무맹랑한 ‘분족론’의 실상을 갈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남북한은 이제 더 이상 단일민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정치제도와 경제구조 및 언어나 핏줄을 가진 다른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 근거를 민족구성요소들의 공통성, 특히 경제적 공통성의 상실에서 찾고 있습니다.
Ⅱ. ‘분족론’의 부당성
지난 70여 년간의 한반도 분단사는 아직까지도 통일의 철학적 기조에 대한 확고부동한 신념을 세우지 못한 채 임기응변의 기능주의적 방편식으로 통일과 민족문제에 접근하다보니, ‘분족론’ 같은 사이비 통일담론이 거침없이 통일의 행보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예컨대, ‘남북 간의 동질성 상실’이라는 조작된 허구에 떠밀려 단일민족의 실재가 부정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극히 소박하고 근원적인 통일의 당위성마저도 의문시되고 있습니다. 급기야 ‘젊은 층일수록 통일을 원치않는다’는 낙담(落膽)이 매체의 댓글로 둔갑하고, 이 나라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까지도 ‘분족론’을 정강으로 명문화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지성의 양식이 살아서 숨 쉬어야 할 학계는 또 학계대로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민족이나 민족주의를 무턱대고 색 바랜 의제로 터부시하면서, 자칫 이념논쟁에 휘말릴까 눈치보고 쭈빗거리기만 합니다. 심히 우려스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특히 통일문제의 종국적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새로운 전략적 전환이 모색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분족론’ 같이 미적지근하게 다뤄오던 중요한 문제들을 이론실천적으로 명백히 밝혀내는 것은 절박한 시대적 요청입니다. 이러한 요청에 부응해 필자는 ‘분족론’이 내포하고 있는 부당성을 3가지 측면에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는 민족론에 대한 심각한 무지와 오해입니다. 분족론자들은 민족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가지 객관적 요소들의 공통성(공유성)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반면에 이질성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남북한이 더 이상 하나의 민족이 아니라 다른 민족이라고 강변합니다. 이런 강변에 일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식자층이나 전문연구자들마저도 분별없이 현혹되어 맹종하고 있습니다.
분족론자들은 혈연이나 언어, 문화, 지역의 이질성과 더불어 특히 경제적 이질성을 앞세워 자신들의 허망한 ‘논리’를 합리화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남북한 간에는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그러한 차이 때문에 민족구성의 주요한 객관적 요소의 하나인 경제적 공통성이 이미 사라졌으며, 나아가 그로 인해 남북한은 더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 남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이 들고 나오는 천박한 ‘논리’입니다. 사실 이러한 표피적인 경제 논리가 분족론자들이 일관하게 주장하는 ‘분족’의 가장 중요한 근거인 것입니다.
원래 민족의 객관적 구성요소로서의 경제적 공통성이란,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의 기층구조(농업이나 공상업 등)와 경제생활(주로 의식주), 그리고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자연지리적 여건(기후와 부존자원 등)의 3대 요인에서 나타나는 공통성을 말합니다.
역사가 증언하다시피, 봉건제도나 자본주의제도 등 각이한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을 겪어오면서도 경제적 공통성은 시종 상실되지 않고 민족구성요소로서의 원초적 기능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위의 3대 요인 때문입니다.
작금 남북한 간에 경제적 소통이나 경제제도 및 경제수준의 상호보완 같은 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도, 이 3대 요인에 바탕한 경제적 공통성은 질적 변화 없이 여전히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경제제도나 경제수준의 상차를 근거로 남북한의 단일민족성을 부정하고 타민족론을 주장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무지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종의 어불성설에 불과합니다.
혈연이나 언어, 문화면에서의 남북한 간의 차이와 공통성문제에 관해서도 이와 같은 실사구시한 문제의식으로 접근한다면 틀림없이 바른 이해가 도모될 것입니다. 이것은 '분족론'이나 '친구론' 같은 반민족론을 극복하는 데서 유력한 이론적 무기가 될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의 활력소로도 기능하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그 부당성은 남북 간 합의에 대한 공공연한 거역과 도전입니다. 분단 이래 지난 70여 년 동안 숱한 우여곡절과 결렬의 위기까지를 겪으면서도 남북한 정상들 사이에 이루어진 통일 관련 6대 합의서(성명, 선언)를 비롯한 수많은 합의문서는 시종일관 통일문제를 단일민족(‘1민족’) 내부의 문제(혹은 민족끼리 문제)로 다루었지, ‘분열된 민족들(분족)’ 간의 문제로 왜곡시킨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남북 간의 첫 공식 합의문서인 1972년의 ‘7.4남북공동성명’은 그 엄혹한 ‘대결의 동면(冬眠)’ 속에서도 조국통일의 셋째 원칙으로 “사상과 이념,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여야 한다.”라고, 둘 아닌 오직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단결을 도모하는 것’을 선차적 통일원칙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55년간 정권이 여덟 차례나 바뀌는 과정에서 ‘전두환 군사독재 시대’와 ‘공백의 시대’(김영삼 정권 시대), ‘공든 탑이 무너지는 퇴행의 시대’(이명박-박근해 정권 시대)를 제외한 나머지 ‘장미빛 합의의 시대’(노태우 정권 시대)와 ‘접촉의 시대’(김대중-노무현 정권 시대), 재접촉의 시대(문재인 정권 시대)에 남북한 수뇌들 간에 맺어진 4번의 통일 관련 합의서에는 ‘1민족, 2국가, 2체제...’라는 표현으로 통일의 주체가 ‘하나의 민족’임을 명시하거나 암시하고 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5년간 ‘공백의 시대’를 보내면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1994)에서도 통일과정은 기존의 통일 3대 원칙(7.4남북공동성명)과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철학’을 바탕으로 화해 협력과 남북연합, 통일국가 완성의 3단계를 거쳐 1민족, 1국가, 1체제, 1정부의 통일국가를 완성해야 한다는 통일의 3단계론을 제기하였습니다.
요컨대, 역대 남북 간의 공식 합의문서에서는 적어도 명문상으로 ‘1민족’(하나의 민족)에 의한, ‘1민족’을 위한 통일만이 공식화되고 있으며, ‘분족론’은 아예 입지(立地)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따라서 ‘분족론’을 주장하는 것은 남북 간의 합의와 공론에 반하는 공공연한 거역과 도전이라는 각인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셋째로, ‘분족론’의 부당성은 우리의 통일민족사에 대한 반역적인 이탈과 포기에 있습니다. 공식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275개 성씨 중 무려 136개 성씨(46%)가 외래의 귀화성입니다. 그 중 40개는 신라시대에, 60개는 고려시대에, 30개는 다들 ‘은둔국’이니 ‘쇄국’이니 하는 조선시대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나라는 혈통적으로 30여 인종을 아우른 다민족 다문화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조상들은 선진 문명과 강성한 국력을 바탕으로 높은 수용력을 발휘해 슬기롭게 다민족을 단일민족으로 응집하는데 성공함으로써 사상 희유의 통일민족 국가를 출범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고려시대의 일례로 그 실상을 헤아려보기로 합시다.
고려 초기 1백 년 동안 외래인 17만 명이나 고려 땅을 찾아와 자진 귀화를 청했습니다. 당시 고려 인구가 약 230만 명이었으니, 인구 대비 귀화인 수효는 약 7.4%를 차지해 그 비율이 결코 가볍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고려는 튼튼한 국력과 높은 문화적 자부심을 바탕으로 ‘내자불거(來者不拒)’, 즉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는다’라는 대범한 귀화책을 쓰면서 유례없는 포용과 우대의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귀화자는 호적에 편입시키고 한국 성을 하사하며, 적격한 관직을 제수하고, 작위와 식읍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착용 주택과 전답, 미곡, 의복, 기물, 가축도 시여하였으며, 안전을 위해 국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안착시키는 등 주도세밀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고려라는 큰 용광로 속에 귀화인들은 스스로가 용해되어 비록 생물학적 핏줄이야 하나로 될 수 없었지만, 혈연을 제외하고는 생활문화나 의식구조 면에서 단일민족 구성에 하등의 하자가 없는 동질성과 일체성이 확보됨으로써 구경에는 완벽한 하나의 민족으로 응결되었던 것입니다. 신라나 조선시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이 보장되는 환경 속에서 낯선 외래 귀화인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한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복잡다기한 다민족문제 해결에서 자랑스러운 수범을 세웠던 것입니다. 삼삼오오 흩어져 살길을 찾아온 지구상 30여종 인종이 불과 1,000년 좀 남직한 기간에 8,000만 단일민족 대공동체로 급성장하게 된 것은 사상 희유의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혈육의 정으로 끈끈히 뭉친 단일민족 대공동체야말로 우리가 물려받은 가장 소중한 유산이며, 값진 자산이고, 인류사에 대한 불멸의 기여입니다. 그러한 유산과 자산을 홀대하고 무시하며 망각하는 ‘분족론’이야말로 통일민족사에 대한 반역적 이탈과 포기이며, 고마운 조상에 대한 배은망덕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끝으로, ‘분족론’과 더불어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근간에 튀어나온 이른바 ‘친구론’입니다. 진보를 표방하는 어느 한 정당의 정책연구소가 펴낸 홍보책에는 남북한이 ‘1민족 2국가’라는 특수한 관계 속에서 서로를 ‘형제이자 주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모순된 극단상황을 극복하는 데는 남북관계를 특별한 ‘친구관계로 전환’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변합니다.
이것은 ‘형제이자 주적’이라는 동서고금에 유례없는 반인륜적 관계를 ‘친구’라는 미명으로 포장하려는 얄팍한 발상일 따름입니다. 형제면 영원히 형제여야 하지 어떻게 좀 귀찮다고 해서 형제가 ‘친구’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따지고 보면, ‘친구론’은 ‘분족론’의 아류에 불과합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남북한은 하나의 민족으로, ‘친구’ 아닌 형제로, 피를 나눈 혈육으로 살아왔으며, 앞으로도 세세연년 그렇게 살아 갈 것입니다. 이러한 신념이 없이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됨을 외치는 것은 공염불에 불과하며, 이러한 신념을 굳건히 간직할 때 ‘분족론’은 퇴치될 것입니다.
이것으로 간략한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경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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