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1-24

알라딘: 아버지의 해방일지

알라딘: 아버지의 해방일지


아버지의 해방지아 (은이)창비2022-09-02





































소설/시/희곡 주간 1위, 종합 1위 3주|
Sales Point : 329,041

9.5 100자평(99)리뷰(76)
이 책 어때요?
전자책
12,000원
268쪽

편집장의 선택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정지아의 이 장편소설은 추석연휴와 함께 독자에게 닿기 시작했다. 유시민 작가가 아나키스트인 아버지와 아들이 벌이는 코미디물인 오쿠다 히데오의 <남쪽으로 튀어!>의 예를 들며 이 소설을 추천하면서부터다. "올해 읽은 책 중 제일 재밌고 강력하다!"는 평을 얻은 이 소설. <빨치산의 딸> 출간 시 판매금지, 기소 등의 사건을 겪은 정지아 작가가 32년만에 소설의 첫 문장을 다시 쓴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7쪽) 대학교 강사인 딸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의 장례를 겪으며 3일 동안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닌, 아버지의 다른 일면에 대해 체험하게 된다. 아버지는 누구였을까? 빨치산인 아버지. 먼지 한 톨도 유물론적으로 귀중하다고 청소를 하지 않겠다고 궤변을 늘어놓던. 유물론자라 죽음 뒤를 믿지 않는다고 말하던. 사회주의자이지만 노동은 도무지 익지 않아 소주로 자신을 마취하며 노동을 견뎌온. 연좌제로 작은 아버지 아들의 진학에 해를 끼친. 바람을 피우던. 빨치산은 스스로 빨치산 되기를 택한 것이지만 빨치산의 딸은 자신이 택한 삶이 아니기에, 이 '늙은 혁명가의 비루한 현실'(52쪽)을 딸은 복합적인 기분을 품고 추억한다. "하염없이, 라는 말을 처음으로 이해할 듯"(62쪽)하다는 소설 속 인물의 고백처럼, 우리 각자의 아버지가, 그 밉고 비천하고 안쓰러운 모습이 자꾸 '하염없이' 어른거린다.
- 소설 MD 김효선 (2022.09.16)


출판사 제공 카드리뷰











책소개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목차


아버지의 해방일지
작가의 말


책속에서


첫문장
아버지가 죽었다.



P. 7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만우절은 아니었다. 만우절이라 한들 그런 장난이나 유머가 오가는 집안도 아니었다. 유머라니. 유머는 우리 집안에서 일종의 금기였다. 그렇다고 유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유머일 수밖에 ... 더보기
P. 29 개 이름 같은 아리는 내 이름이다.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딴 이름 덕분에 나는 숱한 홍역을 치렀다(사실 아버지가 주로 활동한 곳은 백아산보다는 백운산이었다. 그런데도 백아산의 아를 따온 것은 백운산의 백이나 운이 여자아이 이름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그러니까 제 아무리 남녀평등을 주장했다 한들 반봉건시대에 태어나 가부장제의 그늘을 아주 벗어나지는 못한 반봉건적 사유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교에서나 관공서에서나 고아리, 내 이름을 말하면 아유, 이름이 참 예쁘네, 얼굴도 참…… 하면서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말줄임표가 뒤따랐다. 접기
P. 94 유물론자다운 대답이 나는 만족스러웠다.
“그럼 제사는?”
“지사는 무신 지사. 헹제라도 많아서 핑계 김에 얼굴이나 볼라먼 모릴까 니 혼찬디 지사는 무신 지사.”
아버지는 뼛속까지 유물론자였다. 부모가 여든 넘도록 장지 마련은 고사하고 영정사진 찍어둘 생각조차 못한 불효자식이었으나 아버지의 유지가 그러하였으니 따르면 될 터였다. 역시 유물론은 산뜻해서 좋다. 접기
P. 102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겄어, 이 밤중에!”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은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 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접기
P. 150 “노동이…… 노동이…… 힘들어.”
그때까지 위태위태 잘 참고 있던 나는 노동이 힘들다는 빨치산의 고백에 그만 풉, 웃음을 뿜고 말았다. 스스로도 염치가 없었는지 그가 비식 웃으며 덧붙였다.
“사흘 노가다 뛰고 석달 입원했네. 나는 암만해도 노동과 친해지질 않아.”
“저놈의 부르주아 근성은 머리가 희캐져도 뿌리가 안 뽑히그마이. 그런 놈이 멀라고 뽈갱이는 돼가꼬……”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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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글
배척과 갈등의 말, 금기어로 여겨져온 ‘빨갱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유령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시절을 보낸 이들의 세계를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만나는 얽히고설킨 사연들에 빠져들다보면 그들이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 그저 저마다의 삶을 꾸려온 ‘사람’이었음을 알게 된다. 무채색의 크고 작은 파문을 서로에게 일으키며 한 시대를 함께 건너온 이들에게서, 이념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결국엔 나약하고 또 강인한 우리 인생이 보인다. 정지아의 소설은 그래서 매력적이다.
- 박혜진 (아나운서)

소설을 읽고 운 것이 대체 얼마 만의 일인가. 빨려들듯 몰입하여 책 한권을 앉은자리에서 다 읽은 것은 또 얼마 만인가. 책장을 덮고 나서도 먹먹한 가슴을 어쩌지 못해 나는 한참을 가만히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이라는 사건 하나로 잊히거나 지워진 우리 현대사의 상흔들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펼쳐놓고 관련 인물들을 죄다 불러내 각각의 사연을 풀어놓는, 그것들이 종으로 횡으로 오지랖 넓게 뻗어나가다 결국은 헤쳐 모여 이미 소멸한 아버지를 불멸의 존재로 소생시키는, 이런 소설은 어떻게 쓰는 것일까. 서글프지 않은 일화가 없는데 실실 웃음이 나올 만큼 재미있고, 억울하지 않은 삶이 없는데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램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이런 소설은. 정지아의 전작을 따라 읽어왔으니 이만하면 성실한 독자라 자부할 만한데도 나는 모른다. 그가 등단작부터 천착해온 주제를 어느 정도 예상하고 책을 펼쳤는데도 어찌하여 처음 보는 내용인 듯 순식간에 빠져들게 되는지, 어찌하여 새삼스레 경탄하고 오히려 더 깊이 감화하게 되는지를. 알 도리가 없으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긍게 정지아제.
- 김미월 (소설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22년 9월 2일자 '책&생각'
서울신문
- 서울신문 2022년 9월 2일자
국민일보
- 국민일보 2022년 9월 1일자 '200자 읽기'
조선일보
- 조선일보 2022년 9월 3일자 '한줄읽기'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22년 9월 3일자 '새로 나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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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향신문 2022년 9월 2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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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일보 2022년 9월 6일자
한국일보
- 한국일보 2022년 10월 26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정지아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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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전남 구례 출생. 중앙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고, 2006년 단편 [풍경]으로 제7회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했다.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1990), 소설집 《행복》(2004)과 《봄빛》(2008)이 있으며, 어린이 책으로는 《숙자 언니》, 《어둠의 숲에 떨어진 일곱 번째 눈물》(2005), 《슈바이처》(2006), 《신사임당》(2006), 《춘향전》(2005) 등이 있다.

수상 : 2020년 김유정문학상, 2020년 심훈문학대상, 2008년 한무숙문학상, 2006년 이효석문학상,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최근작 : <임종국, 친일의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아버지의 해방일지>,<[큰글자도서] 자본주의의 적> … 총 61종 (모두보기)
정지아(지은이)의 말
(…)
고향에 돌아오니 서울서 보이지 않던 아름다움 천지다. 섬진강변의 벚꽃길, 반야봉의 낙조, 노고단의 운해만 아름다운 게 아니다. 벚꽃은 정 읎어 싫고 산수유는 속 읎어 싫다는 동네 할매,, 필요 없다고 해도 밥을 묵어야 힘이 난다며 기어이 가져다주는 식당 주인, 심지어는 먹도 못할 억센 나물을 삶으면 부드럽다고 뻥쳐서 파는 장터 할매, 주방에서 가장 먼 안쪽 테이블에 앉았더니 사람도 없는데 가차이 앉으라고 호통치는 식당 아줌마(알고 보니 그이는 관절염이 심했다)까지, 이곳엔 사람 냄새 넘치는 사람이 그득하다. 오죽하면 할매가 뻥을 치겠는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급하면 뻥도 치고 호통도 치는 것이 사람 아닌가.
사램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 걸 그랬다.
아버지. 아버지 딸, 참 오래도 잘못 살았습니다. 그래도 뭐, 환갑 전에 알기는 했으니 쭉 모르는 것보다는 낫겠지요? 딸을 대장부의 몸으로 낳아주신 것도, 하의 상의 인물로 낳아주신 것도 다 이해할 터이니 그간의 오만을, 무례를, 어리석음을 너그러이 용서하시길…… 감사합니다, 아버지. 애기도 하는 이 쉬운 말을 환갑 목전에 두고 아버지 가고 난 이제야 합니다. 어쩌겠어요? 그게 아버지 딸인걸. 이 못난 딸이 이 책을 아버지께 바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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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헤드라이너>,<어른이 되면 고민이 끝날까?>,<씨앗 두 알>등 총 2,941종
대표분야 : 국내창작동화 1위 (브랜드 지수 2,669,333점), 청소년 소설 1위 (브랜드 지수 1,209,531점), 여성학/젠더 1위 (브랜드 지수 166,133점)





출판사 제공 책소개


새삼스럽게 경탄스럽다!
압도적인 몰입감, 가슴 먹먹한 감동
정지아의 손끝에서 펼쳐지는 시대의 온기

미스터리 같은 한 남자가 헤쳐온 역사의 격랑
그 안에서 발견하는 끝끝내 강인한 우리의 인생

김유정문학상 심훈문학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문학성을 두루 입증받은 ‘리얼리스트’ 정지아가 무려 32년 만에 장편소설을 발표했다. 써내는 작품마다 삶의 현존을 정확하게 묘사하며 독자와 평단의 찬사를 받아온 작가는 이번에 역사의 상흔과 가족의 사랑을 엮어낸 대작을 선보임으로써 선 굵은 서사에 목마른 독자들에게 한모금 청량음료 같은 해갈을 선사한다. 탁월한 언어적 세공으로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법을 제시”(문학평론가 정홍수)하기를 거듭해온 정지아는 한 시대를 풍미한 『빨치산의 딸』(1990) 이래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아버지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은 ‘전직 빨치산’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시간만을 현재적 배경으로 다루지만, 장례식장에서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해방 이후 70년 현대사의 질곡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웅장한 스케일과 함께 손을 놓을 수 없는 몰입감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은 정지아만이 가능한 서사적 역량이다. 그러나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는 어쩌면 ‘가벼움’에 있다. “아버지가 죽었다. (…) 이런 젠장”으로 시작하는 첫 챕터에서 독자들은 감을 잡겠지만 이 책은 진중한 주제의식에도 불구하고 ‘각 잡고’ 진지한 소설이 아니다. 남도의 구수한 입말로 풀어낸 일화들은 저마다 서글프지만 피식피식 웃기고, “울분이 솟다 말고 ‘긍게 사람이제’ 한마디로 가슴이 따뜻”(추천사, 김미월)해진다.

시트콤 같은 일화들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아버지는 지리산과 백운산을 카빈 소총을 들고 누빈 빨치산이었다. 그는 일제강점기가 끝난 직후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싸웠으나 처절하게 패배했다. 동지들은 하나둘 죽었고, 아버지는 위장 자수로 조직을 재건하려 하지만 그마저 실패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자본주의 한국에서 평생을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평등한 세상이 올 거라는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고, 생판 초면인 이들의 어려움도 무시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조금 우스꽝스럽게 생각한다. 누구나 배불리 먹고 차별없이 교육받는 세상이 이미 이뤄진 마당에 혁명을 목전에 둔 듯 행동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누가 봐도 블랙코미디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행선을 달려온 ‘나’와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죽었다. 노동절 새벽,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이 이야기는 크게 네 줄기로 이뤄진다. 첫번째는 아버지와 평생을 반목해온, 그의 동생인 작은아버지와의 이야기다. ‘빨갱이’ 형 때문에 집안이 망했다고 생각하는 작은아버지는, 형의 죽음을 알리는 전화를 대꾸도 없이 끊을 만큼 냉담하다. 평생 술꾼으로 산 작은아버지는 이따금 집에 찾아와 “니는 그리 잘나서 집안 말아묵었냐?”(38면)라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맞서지 않고 묵묵부답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차라리 작은아버지가 장례식장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의 등장 여부는 장례식장에 모인 모두의 관심사인 한편, 독자들도 책을 읽는 내내 흥미진진 궁금하게 지켜보게 된다. 죽은 아버지와 산 작은아버지는 화해할 수 있을까.
두번째는 구례에서 아버지가 사귀어온 친구들의 이야기다. 이들의 면면은 실로 다양하고 입체적이라 살펴보는 것만으로 한편의 시트콤을 보는 듯하다. 아버지의 소학교 동창이자 시계방을 운영하는 박선생. 그는 평생을 군인과 교련선생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대척점에 있지만 아버지의 둘도 없는 친구다. 정치적 지향 차이로 발생하는 두 노인의 투닥거림은 어딘지 귀엽고, 그 끝에 “그래도 사램은 갸가 젤 낫아야”(47면)라는 말은 지금의 정치권이 배웠으면 싶은 생각도 든다. 그리고 이 장례식에 어울리지 않게 등장한 샛노란 머리의 소녀. 어찌된 영문인지 그는 아버지의 “담배 친구”(139면)란다. 열일곱살 소녀와 허물없이 친해지는 것은 아버지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그 와중에도 어머니가 베트남인인 소녀에게 ‘미 제국주의’ 운운하는 것을 잊지 않는 아버지의 캐릭터는 여전히 웃음을 자아낸다. 그밖에 ‘학수’를 비롯해 아버지의 아들을 자처하는 많은 사람들, 총부리를 맞서고 싸웠지만 이윽고 친구가 된 웃지 못할 사연들이 속속 등장한다.

내가 알던 아버지는 진짜일까?
그가 남기고 간 수많은 에피소드

세번째는 ‘나’와 아버지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가장 큰 줄기는 ‘빨치산의 딸’로 힘들게 살아온 딸이 아버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사회주의자이고 혁명전사였기에 생활력은 없었고, 그런 주제에 “보증을 서”(57면)주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기에 늘 가난했던 집안 형편은 전부 아버지 탓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아버지가 늘어놓는 장광설은 지금 현실과는 맞지 않았고, 그런 만큼 ‘나’는 아버지가 있는 고향을 떠나고 싶어했다. 그런데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내가 알던 아버지의 얼굴이 아주 일부였음을 깨닫는다. 아버지의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면들이 밝혀지고, 사람들을 감화시킨 담대한 모습들도 드러난다. 무엇보다 내가 잊고 있었던, ‘나’를 사랑했던 순간순간들이 떠오른다. 마침내 ‘나’는 아버지의 유골을 손에 들고, 아버지를 가장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보낼 한가지 결심을 한다.
마지막 네번째는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의 일화들이다. 이들은 서사의 무게를 한층 발랄하게 만들며 독자들의 웃음을 자아낸다. 평생의 동지이자 그 역시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보다는 현실적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런저런 일로 늘 구박을 받는다. 옷을 털지 않아서 술 담배를 끊지 못해서 같은 비교적 소소한 일도 있고, 빚보증을 서서 농사를 내팽겨져서 같은 큰일도 있다. 어찌 보면 앙숙 같은 이들은 ‘유물론’과 ‘민족’ 앞에서 경건하게 하나가 되기도 하는데,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티키타카’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유쾌한 촉매제가 되어준다.

“빨치산의 딸, 한국문학의 딸로”
정지아라는 센세이션

32년 전 정지아의 등장은 한국문학에서 하나의 센세이션이었다. 판매금지와 공안 당국의 기소 같은 일련의 사건 때문이 아니라, 그가 보여준 핍진한 서술과 역사를 대하는 진지한 태도 때문이었다. 이제 정지아는 그 태도에 더해 사실과 허구를 섞어가며 자유자재로 이야기를 다루는 관록과, 마지막 페이지까지 독자의 손을 꼭 붙들어놓는 대가의 면모까지 갖추었다. 32년 만에 내놓는 이 소설로 정지아가 다시 한번 그 존재감을 증명하게 되리라 기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정지아는 빨치산의 딸일 뿐 아니라 우리 문학의 귀하디귀한 딸”(소설가 김미월)이 되었다는 말에, 한국문학을 사랑하는 모두가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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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달에는 어떤책으로 독서모임을 할까요?
몽라딘 2022-12-21조회수 (218)공감 (4)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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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제목 : 아버지의 해방일지 ◎ 지은이 : 정지아 ◎ 펴낸곳 : 창비 ◎ 2022년 12월 28일, 초판 20쇄, 268쪽 ◎ 내 마음대로 별점 : ★★★★ 이 책이 작년 서점가를 잠식했을 때는 거들떠보지 않았다. 이유는 두 가지인데 첫째는 표지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고 두 번째는 제목 때문이다. 손석구가 나와서 좋았는데 내용이 엉망으로 흘러가... 더보기
미류나무 2023-01-19 공감 (6) 댓글 (0)



올곧은 빨갱이, 자신의 신념 하나만은 꼭 지키며 살아온 아버지가 아버지 다운 죽음을 맞이하며 소설은 시작한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7P 사실 첫 문장에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주인공인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시작하자마자 돌아가시다니, 실망... 더보기
러블리땡 2023-01-16 공감 (30) 댓글 (1)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 하반기 내내 각계각층에서 가장 많은추천을 받은 책이 정지아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아닌가 싶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 님도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책 제목 때문에 별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 작년에방영된 인기 드라마의 제목에서 따온 듯한 책... 더보기
bookholic 2023-01-11 공감 (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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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덮고 난 후에도 눈시울이 따갑고 항꾼에, 좋았다. ‘당하지 않으려고 사회주의에 발을 디뎠던‘ ‘순수한 참사람‘의 일생이,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에서 부활함‘을 무엇에도 목숨 걸었던 적이 없던 사람에게 이 가을, 천수관음보살처럼 귀하고 아름다운 손님이 되어 찾아왔다.
appletreeje 2022-09-20 공감 (6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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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하루에 다 읽긴 요즘 불가능인데 저녁 시간 빼고 손에서 놓지 않고 읽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와 관련된 개인적인 과거를 회상하는 내용. 책을 읽으며 웃다가 울다가 반복, 진정한 블랙 코미디! 사투리도 쨩, 우리의 아픈 과거를 다시 돌아보았던 시간, 영화로도 나오길 기대한다!!
라로 2022-09-29 공감 (3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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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읽은 소설 책 중에 최고
사실적이고 담담한데 슬프고도 유머러스한 문장의 매력과
아버지의 아픈 역사이지만 사랑과 애정이 듬쁙 담긴 소설책이다. 정지아 작가를 알게 해준 유시민 작가에게 감사하다



산초 2022-09-20 공감 (2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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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의 딸부터 시작하여 행복, 봄빛, 숲의 대화, 자본주의 적까지 작가를 쭈욱 따라 왔는데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와서 그간 내 안에 고여 있던 눈물이 새어 나와 세상 빛을 봤다. 귀하디 귀한 아름다운 소설이다. 여순부터 제주, 지리산도 사실 말고 그 진실들이 더 많이 나오기를 진심 소망한다.
소나무 2022-09-15 공감 (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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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리산에서 살아남은 빨치산을 아버지로 둔 화자.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벌어지는 한바탕의 해원.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은 후에 읽기를 추천.
노을 2022-12-23 공감 (1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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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작년 하반기 내내 각계각층에서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책이 정지아 님의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아닌가 싶구나. 아빠가 좋아하는 유시민 님도 이 책을 추천해 주셔서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어. 처음에는 책 제목 때문에 별로 읽을 생각을 하지 않았어. 작년에 방영된 인기 드라마의 제목에서 따온 듯한 책 제목이 별로였거든. 해방일지라는 말을 잘 쓰지 않는데, 책 제목에 넣은 것은 드라마의 영향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점이 아빠에게는 마이너스 요소였단다.

책을 읽고 나니, 굳이 제목을 <아버지의 해방일지>라고 하지 않아도 충분히 인기를 끌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만큼 책 내용이 너무 좋으면서 재미있고 사람들이 왜 그렇게들 추천하는지 알겠더구나. 음, 그러면 제목이 뭐였으면 좋았을까? 창의적이지 못한 아빠가 이 책의 제목을 짓는다면…. <나의 아버지>? 음 이것도 드라마의 제목과 유사한가?^^ 소설의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는 어떨까?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짧은 첫 문장 속에 소설의 성격을 어느 정도 담겨 있는 듯 했어.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라는 높임말이 아닌, ‘아버지가 죽었다’라는 말에 아버지와 딸 사이에 관계가 그리 좋지 않았고, 나이 드실 만큼 드신 다음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슬픈 감정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어. 아버지가 죽은 것도 희한하게도 전봇대에 머리를 박았기 때문이라고 했어. 아무튼 첫 문장부터 끌어당기는 그런 소설이었단다.

주인공 정지아 님의 소설은 아빠가 처음 읽어보았는데 이름 꼭 기억해야겠구나. 정지아 님의 또 다른 대표작 <빨치산의 딸>도 꼭 읽어봐야겠구나. 정지아 님의 또 다른 책이 무엇이 있나? 찾아보았더니, 앗, 그 중에 우리 집에도 있는 책이 무려 두 권이 있더구나. 그러니까 정지아 님의 글을 그 이전에도 읽었더구나. 하나는 <민중의 기록하라>라는 책으로 여러 사람들의 같이 지은 책인데, 정지아 님도 포함되어 있었어. 나머지 하나는 아빠가 너희들 읽으라고 사준, 우리나라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에 과한 책 <하늘을 쫓는 아이>를 정지아 님이 쓰셨더구나. 알고 보니 정지아 님은 어린이들을 위한 책들도 많이 쓰셨더구나.






1.

자, 그러면 <아버지의 해방일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게. 이야기를 끌어가는 이는 고아리. 고아리의 아버지는 고상욱. 평범하신 분은 아니었어. 빨치산 경력을 갖고 계시고 철저한 사회주의자셨어. 빨치산 경력 때문에 십 수 년 감방생활도 하셨어. 감방에 나오셔도 여전히 사회주의자였어. 어머니도 빨치산 경력이 있었고, 두 분은 동지로 만났다가 결혼까지 하게 되었단다. 빨치산 이력으로 변변한 직업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와 멀찍이 떨어지려는 의도로 깡촌에서 농사를 지내며 지내셨어. 그런데 농사를 지내 본 적이 없으신 분들은 농사일도 쉽지는 않았어.

평생을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는 말년이 되셔서 치매도 겪게 되었어. 다른 사람에게 치매 걸렸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었던 아버지는 어느날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돌아가시고 말았단다. 어머니도 아버지 따라 깡촌에서 농사를 지내며 살았지만, 책도 많이 읽으시고 공부도 많이 하시고 그랬어. 어머니도 평생 철저한 사회주의자.



그런 부모님을 보는 친척들의 시선은 좋지 못했단다. 친척 가족 중에 빨치산 이력이 있다면, 예전에는 제약이 많았거든. 그래서 작은 아버지는 원하는 아버지와 평생을 원수지간처럼 지냈어. 나중에는 눈물을 자아내는 진실이 드러나지만 말이야. 고아리의 아버지 고상욱의 성격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서 아빠가 소설 속 글을 발췌해 보았단다. 딸 고아리가 느끼는 아버지 고상욱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이해하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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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고통이든 슬픔이든 분노든 잘 참는 사람은 싸우지 않고 그저 견딘다.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들고일어나 누군가는 쌈꾼이 되고 누군가는 혁명가는 된다. 아버지는 잘 못 참는 사람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친일파가 득세하는 것도 참지 못했고,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와 결혼하라는 봉건잔재도 참지 못했으며, 가진 자들의 횡포도 참지 못했다. 물론 두시간의 노동도 참지 못했다. 그런데 얼어 죽을 것 같은 고통은, 굶어 죽을 뻔한 고통은, 생사의 고비를 함께 넘은 동료들이 바로 곁에서 죽어가는 고통은 어떻게 견뎠을까? 신념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내려와봤자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뿐이라는 지극히 절망적인 현실 인식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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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많은 사람들이 왔단다. 그들을 통해서 아버지의 새로운 모습, 아니 몰랐던 모습을 뒤늦게 알게 되었단다. 아버지는 평생 철저한 사회주의자이자 유물론자였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사람 그 자체였단다. 사람이 좋으면 사상보다 앞섰어. 그러니 사상적으로 정반대였단 사람들과도 잘 어울렸단다. 심지어 잘 죽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생전에 술 한잔 잘 기울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사람을 가장 먼저 생각했던 아버지의 철학이 아니었을까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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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잘 죽었다고 침을 뱉을 수 있는 사람과 아버지는 어떻게 술을 마시며 살아온 것일까? 들을 수 없는 답이지만 나는 아버지의 대답을 알 것 같았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내가 목소리를 높일 때마다 아버지는 말했다. 긍게 사램이제. 사람이니 실수를 하고 사람이니 배신을 하고 사람이니 살인도 하고 사람이니 용서도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실수투성이인 인간이 싫었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관계를 맺지 않았다. 사람에게 늘 뒤통수 맞는 아버지를 보고 자란 탓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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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니, 아버지는 공감능력도 뛰어났단다. 모르는 십대 소녀와 맞담배를 피면서 조언을 해주어 그 소녀가 검정고시까지 볼 수 있도록 해주었어.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담배 핀다고 잔소리만 늘어 놓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자신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고 담배조차 이해를 해주는 어른의 이야기라면 자신도 귀담아 듣지 않았을까 싶구나. 아버지의 빨치산 경력 때문에 친척들이 간혹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친척들의 어려움이 있을 때면 가장 먼저 달려가서 일을 해결해주는 것도 아버지였단다.



고아리는 장례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고, 뒤늦게 친밀감을 느끼게 된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제서야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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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사무치게,라는 표현은 내게는 과하다. 감옥에 갇힌 아버지야말로 긴긴밤마다 그런 시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으리라.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야 겨우 깨닫는 못난 딸인 것이다. 아빠, 나는 들을 리 없는, 유물론자답게 마음 한줌 남기지 않고 사라져, 그저 빛의 장난에 불과한 영정을 향해 소리 내 불렀다. 당연히 대답도 어떤 파장 따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도 하지. 영정 속 아버지가, 이틀 내 봤던, 아까도 봤던 영정 속 아버지가 전과 달리 그립던 어떤 날들처럼 친밀하게 느껴졌다. 죽음으로 비로소 아버지는 빨치산이 아니라 나의 아버지로, 친밀했던 어린 날의 아버지로 부활한 듯했다.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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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아리는 마지막으로 깨닫게 된단다. 아버지는 혁명가이고 빨치산이고 사회주의자이고 유물론자이기 전에 나의 아버지였다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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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249)

오십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잠이 더 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가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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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읽는 이들은 모두 자신의 아버지를 떠오르게 할 거야. 아빠도 아빠의 아버지, 그러니까 너희들의 할아버지가 떠오르더구나. 어떤 특별한 사상을 가지시지는 않았지만,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신 아버지. 하지만 아빠가 본 모습이 전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또 다른 모습을 가지고 계시겠지. 어쩌면 아빠도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 더 진짜일 모습을 평생 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새해가 밝았구나. 한 해 한 해 지날 때마다 나이 드신 부모님 걱정은 커져만 갈 수 밖에 없는데, 건강히 오래오래 함께 하셨으면 좋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아버지가 죽었다.

책의 끝 문장: 그게 나의 아버지, 빨치산이 아닌, 빨갱이도 아닌, 나의 아버지.







또 그놈의 오죽하면 타령이었다. 사람이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는 아버지의 십팔번이었다. 나는 아버지와 달리 오죽해서 아버지를 찾는 마음을 믿지 않았다. 사람은 힘들 때 가장 믿거나 가장 만만한 사람을 찾는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마찬가지다. 힘들 때 도움받는 그 마음을 평생 간직하는사람은 열에 하나도 되지 않는다. 대개는 도움을 준 사람보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먼저 잊어버린다. 굳이 뭘 바라고 도운 것은 아니나 잊어버린 그 마음이 서운해서 도움 준 사람들은 상처를 받는다. 대다수의 사람은 그렇다. 그러나 사회주의자 아버지는 그렇다한들 상처받지 않았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의 구조적 모순 탓이고, 그래서 더더욱 혁명이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었다. - P102



결과적으로 옳았든 틀렸든 아버지는 목숨을 걸고 무언가를 지키려 했다. 나는 불편한 모든 현실에서 몇발짝 물러나 노상 투덜댔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버지를 비아냥거릴 자격이나 있었던 것인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미안했다. 들어오는 순간부처 나를 불편하게 한 아버지의 동지들은 목청 높여 아버지와 인연을, 조국통일에의 열정을 쏟아내고 있었다. 동지들의 장례식에 갈 때마다 참석한 동지들이 한둘씩 줄고, 십년쯤 지나면 누군가의 부고가 들린다 해도 갈 수 없는 몸이 될 사람들이었다. - P148



질 게 뻔한 싸움을 하는 이십대의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목숨을 살려주었던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려 했던 이십대의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영정 속의 아버지가 꿈틀꿈틀 삼차원의 입체감을 갖는 듯했다. 살아서의 아버지는 뜨문뜨문, 클럽의 명멸하는 조명 속에 순간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는 사람 같았다. 그런데 죽은 아버지가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살아서의 모든 순간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자신의 부고를 듣고는 헤쳐 모여를 하듯 모여들어 거대하고도 뚜렷한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아빠. 그 뚜렷한 존재를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불렀다. - P181



아버지는 죽음 앞에서 담담했을까? 인간의 시원은 먼지, 누구라도 언젠가는 그 시원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불변의 과학이라 생각하는 사람답게 담담하게 맞이했을 것도 같고, 아는 것은 머리요, 정작 죽음이 닥쳤을 때는 머리만 바위 밑으로 디밀었다는 김일성대 출신의 엘리트처럼 공포에 떨었을 것도 같았다. 뇌출혈이었으니 죽음을 두려워할 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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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3-01-11 공감(38)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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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치게 그리고 하염없이




세상에 허명은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려고 했으나, 나에게 그런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문장을 날렸고, 책이 도착하기 전에 기다릴 수가 없어서 미리보기로 몸풀기를 끝냈다. 어제 집에 돌아가 보니 책이 도착해 있었다. 바로 다 읽어 버렸다.



‘아버지가 죽었다’로 시작되는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기>에는 질곡진 한국 현대사의 그 무엇이 오롯하게 담겨져 있었다. 누가 봐도 그 엄혹한 시절을 체험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을 그런 이야기들을 작가는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소멸의 시간을 통해 독자들에게 자신이 맹근 시그널을 날린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자꾸 오래 전에 만났던 영화 <학생부군신위>와 소설 <녹슬은 해방구> 생각이 나는지 모르겠다.



혈육보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꾼 고아리 박사님의 아버지 고상욱 씨는 뼈속까지 투철한 유물론자이자 혁명가였다. 그를 원수로 생각하는 진영에서는 빨치산 혹은 빨갱이로 불렀다. 그런 고인이 노동절에 죽음을 맞으면서부터 소설의 서사가 굴러간다. 서울에서 보따리 장사(강사)를 하던 상주 고아리 박사는 고향 구례로 향한다. 그리고 그곳의 장례식장에서 죽음이라는 삶의 엔딩이 선물한 시대의 화해 혹은 자신이 몰랐던 구빨치 아버지의 진짜 모습을 만나게 된다.



소설에서는 고상하고 순화된 사회주의자라는 표현을 쓰지만, 아마 고인은 사회주의자라기 보다 공산주의자에 더 가깝지 않았나 싶다. 우익의 세상에서 전향한 공산주의자는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였으리라. 그리고 자신 말고도 다른 가족들까지 모두 연좌제로 몰아 정상적 사회생활을 하는데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기도 했다.



산사람으로 사선을 누비며 동지들이 숱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한 고상욱 할배는 산에서 내려와 “새농민”으로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산에서 죽고 살던 동지에게는 위장 자수한 “인사”에 불과했고, 세상은 그를 전향한 빨치산이자 요주의 인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버렸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치매를 앓던 고인은 어느 날 갑자기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먼 길을 떠나 버렸다. 그리고 유물론자답게 자신의 시원이 먼지이니, 굳이 묘를 쓸 것도 없이 상주 아리에게 타고 남은 재를 뿌리고 싶은 곳에 뿌리라는 말을 남긴다. 진짜 뿌리 깊은 유물론자가 아닌가 말이다.



다음에 이어지는 진행은 클리셰이다. 망자와의 화해가 이루어지지 않은 작은아버지와 갈등, 연좌제로 숱한 고초를 겪은 사촌형제들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 앞에 다시 뭉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그리고 제각각 고인과의 소중한 인연을 지닌 이들이 문상에 나서게 되고, 상주와 마주하게 되면서 펼쳐지는 그동안 도무지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은 참 사무치기도 하고 또 하염없기도 했다.



굳이 저자는 늙은 혁명가의 소싯적 행적을 신원하고자 하지 않는다. 자본의 힘이 모든 걸 삼켜 버린 마당에 철지난 이데올로기 타령을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우리들의 할아버지 아버지들은 자신들이 소중하게 생각한 평등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지만, 체제와 자본에 순치된 우리 후손들은 그저 자신들의 일상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어쩌다 이런 세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타협과 화해의 시간이 장례라는 생로병사의 마지막 이벤트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이 아마도 나에게 영화 <학생부군신위>를 연상시킨 게 아니었을까. 그 위에 한국 현대사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토핑으로 얹고, 다소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고인의 장례식 준비에 나선 사촌들의 몸을 내던지는 애도와 품앗이 그리고 다양한 인연을 지닌 이들의 등장으로 상쇄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은 일품이었다.



“빨치산의 딸”이 반동 신문이 주최한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 활동에 나섰다는 점은 우리 현대사가 가진 구조적 모순을 대변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생 유물론자였던 혁명가가 말했다시피, 우리 모두는 저만의 사정이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오죽하면 말이지. 작년에 발표된 소설집 <자본주의의 적>이라는 책도 있다고 하는데,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듯 작가의 전작들을 한 번 만나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겨울의 문턱에 선 이번 가을, 간만에 수작을 만나 기분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뱀다리] 노동자 농민이 평등한 세상의 도래를 위해 자신의 하나 뿐인 목숨을 걸고 투쟁에 나섰던 혁명가들이 정작 노동의 현장에서, 우리 보통 사람들이 하는 노동을 버거워 하는 장면은 정말 그들이 지닌 구조적 모순에 대한 신랄한 저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혁명이란, 노동의 현장이 아닌 오직 그들의 머리와 판타지 속에서만 가능했단 말인가?








해방정국에서 피 끓는 청년들을 사로잡았던 이데올로기 투쟁이 정작 당장 눈앞에 닥친 먹고사니즘 앞에서는 어떤 위력도 발휘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그들은 정작 몰랐단 말인가. 어쩌면 모든 가치와 사회적 정의조차 집어삼키는 21세기 무시무시한 자본의 위력과 그에 따른 선전선동 앞에 무력해진 개인의 무력함에 대한 경종일 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담즙 같은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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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11-03 공감(32) 댓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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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마지막 해방일지

올곧은 빨갱이, 자신의 신념 하나만은 꼭 지키며 살아온 아버지가 아버지 다운 죽음을 맞이하며 소설은 시작한다.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7P사실 첫 문장에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버지가 주인공인 이야기인 것 같았는데 시작하자마자 돌아가시다니, 실망도 잠시, 바로 뒷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와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되었다. 아버지 고상욱씨는 1948년 5.10 단선 반대 유인물을 살포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이때 성기에 전선을 꽂... + 더보기
러블리땡 2023-01-16 공감(30)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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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삶은 참 아이러니하다. 부모님은 빨치산이었지만 그 딸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빨치산 부모님 덕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공산당이 싫어요.'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어렴풋 하지만 학교에서 '공산당이 싫어요.' 같은 포스터를 본 것 같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공산당이 싫어요.'




한 때 세계에는 공산주의, 사회주의 광풍이 불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 당시 인텔리, 소위 먹물 깨나 먹었던 사람들 중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한 사람이 많았다. 비록 시간이 지나고 공산주의의 폐해와 몰락을 보면서 신념을 바꾸긴 했지만, 유명한 지식인, 유명인 중에서도 공산주의 사상을 옹호한 사람이 많았다. 프라다도 사회당원이었고 공산주의자 시위에도 참여했다. 사회주의 사상은 현재 우리 삶에 스며들어 있다. 복지에 스며들어 있고 노동법에 스며들어 있다. 유럽은 사회주의 정당이 집권한 국가도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 공산당은 용인되지 않았다. 북한의 영향이 클 것이다. 공산주의는 적이요, 악이였다. 심지어 연좌제까지 적용되었다.




책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에 국민의 모든 재산을 모아서 n분의 1로 나누준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과반수 이상은 찬성하지 않을까? 리셋을 한 번 하는 것이다. 그 후는 다시 현재처럼 자본주의로 이어나가지만.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현대사를 이야기하지만 시종일관 유머와 해학, 풍자가 있어 슬프면서도 웃겼다. 신념과 이상보다도 현실과 삶이 먼저다. 이상과 현실이 부딪히는 모습들을 웃프게 그려낸다. 단순한 풍자에 머무르지 않고 따뜻한 휴머니즘으로 감싸안는다.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뭐가 그렇게 중요하랴.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것. 기쁨과 슬픔도 함께 나누는 것. 용서하는 것. 이상에 눈이 멀어 이런 것들이 경시되진 않았는지 묻게 된다.




오랜만에 한국작가 소설을 읽었다. 나는 문화사대주의가 있어서 한국 작가의 책을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한강, 박완서 이후로 또 한 분의 멋진 작가를 알게 되서 기뻤다.




첫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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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23-01-10 공감(28) 댓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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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이해하지 않아도





죽음은 그러니까, 끝은 아니구나, 나는 생각했다. 삶은 죽음을 통해 누군가의 기억 속에 부활하는 거라고. 그러니까 화해나 용서 또한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231페이지)




대문 밖 아버지는 호인이었다. 사람들에게 술과 밥을 잘 사고, 얘기도 잘했다. 무엇보다 놀란 건 아버지가 웃는 모습이었다. 어느 날 아버지를 찾으러 갔던 동네 경로당 출입문을 열고 마주한 장면은,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웃고 있던 아버지의 얼굴이었다. 우리 아버지,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었나? 그런데 집에서는 왜 그래? 웃기는커녕 욕하고 화내고 큰소리만 치던 기억이 전부였는데, 지금 내가 본 건 뭐지? 뭔가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간 것 같은 기분에 더 오래 고민하진 못했다. 나중에 그날의 장면을 가끔 떠올렸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잘 모르겠다는 생각만 든다.




소설 속 평생 빨치산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존재는 딱히, 그렇게 의미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머지 가족들의 삶이 조금 평탄했을까.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아버지의 혁명은 계속되었으나 함께한 동지들은 죽어갔고, 아버지의 위장 자수 계획도 실패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한국의 자본주의 속에서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아버지가 바라던 ‘평등’은 지금 우리에게 닿은 세상일까? 일상의 많은 부분이 평등하게 이뤄진 세상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혁명에 힘을 쏟았다. 그런 아버지의 삶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을 테다. 아버지의 ‘빨치산’이라는 수식어는 작은아버지의 인생을 무너뜨렸고, ‘나’의 인생에도 도움 될 게 없다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런 아버지가 노동절 새벽에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치러지는 사흘 동안의 이야기가 한 사람의 긴 생을 그대로 담아낸 것에 놀랐다. 누군가의 인생이 이렇게 펼쳐질 수도 있구나 싶었다. 평생 형을 원망하며 살아온 작은아버지가 이 장례식에 등장할지 궁금했다. 형의 죽음을 알았지만, 대꾸도 없이 끊어버린 전화는 그의 닫힌 마음이 여전하다는 걸 증명했고, 그러니 증오하는 이의 죽음 따위 애도할 마음이 없다고 여겼다. 이 소설이 끝날 때까지 가장 확인하고 싶던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아버지는 딸뿐만 아니라 작은아버지에게도 평생 받아들이기 힘든 상처를 준 이였기에 말이다. 반면에 아버지가 구례에서 사귄 이들은 사흘 내내 장례식장을 꽉 채운다. 누군가는 사흘 내내 머물면서, 누군가는 바통 터치하듯 찾아오면서 아버지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와의 추억을 꺼낸다. 정치적 지향점이 다르면서도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내온 이가 있는가 하면, 다문화 소녀의 인생 한 장면에 기록될 일도 마다하지 않은 아버지였다. 혁명을 위하는 중에도 인간다움을 잊지 않으며 딸 같은 나이 청년의 삶도 바꿔놓았다.




그들이 소환하는 아버지는 딸이 기억하는 아버지와 너무 달랐다. 생활력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아버지, 습관처럼 보증 서주며 집안을 말아먹은 아버지, 어느 시절의 ‘-라떼’인지 현실과 동떨어진 사고는 공감하기 어려웠다. 그런 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를, 고향을 떠나고 싶었을 테다.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알던 아버지가 아버지의 일부였음을. 막무가내 같았던 아버지가 누군가의 인생을 구하기도 하고, 오지라퍼 같은 행동이 감동을 불러왔으며, 기억에서 사라진 아버지와 ‘나’의 애틋한 시간을 다시 그리는, 아버지의 장례식은 그런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늦게나마 차근차근 아버지의 삶을 복기하던 ‘나’는 아버지가 바라던, 딱 아버지다운 방식으로 이번 생에서 놓아주려고 한다.




책으로 농사를 배우고, 그마저도 완전하게 배울 생각을 못 하는 아버지를 지켜보는 어머니의 속은 얼마나 타들어 갔을까. 그놈의 혁명이고 뭐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농사라도 지어야 식구들 먹고살 텐데, 이놈의 영감탱이 허구한 날 혁명 타령이나 하고 남편이 아니라 ‘남의 편’으로 평생 살아가는 모습에 화병도 났을 법하건만, 아버지의 혁명 동지로 살아온 어머니가 아버지보다 조금 더 현실적이라 하더라도 그 바탕은 변하지 않더라. 사상의 지향점 앞에서 한편이 되었다가 상황에 따라 반대편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이 우습다. 아마도 아버지의 삶을 온전하게 이해한 유일한 사람이 어머니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해방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버지의 장례식 사흘의 시간이 한 사람의 생을 정리하는 시간 그대로 가치 있었다. 이래서 죽은 이를 보내는 애도의 시간이 필요한 건가 싶기도 했다. 아버지는 죽음으로 이룬 자유를 이제 다른 곳에서 또 다른 혁명을 꿈꾸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딸은 이제야 비로소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답게 살다간 아버지의 인생을 이렇게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작은아버지가 비로소 아버지와 화해하고 죽음 후의 자리까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이루는 모든 관계가 언젠가는 다 풀리게 되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혹여나 그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말이다.




오십 년 가까이 살아온 어머니도 아버지의 사정을, 남자의 사정을, 이제야 이해하는 중인 모양이었다. 나 또한 그러했다. 아버지는 혁명가였고 빨치산의 동지였지만 그전에 자식이고 형제였으며, 남자이고 연인이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남편이고 나의 아버지였으며, 친구이고 이웃이었다. 천수관음보살만 팔이 천 개인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도 천 개의 얼굴이 있다. 나는 아버지의 몇 개의 얼굴을 보았을까? 내 평생 알아 온 얼굴보다 장례식장에서 알게 된 얼굴이 더 많은 것도 같았다. 하자고 졸랐다는 아버지의 젊은 어느 날 밤이 더이상 웃기지 않았다. 그런 남자가 내 아버지였다. 누구나의 아버지가 그러할 터이듯. 그저 내가 몰랐을 뿐이다. (248~249페이지)




여전히 나는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이제는 서로 치열하게 싸우던 시간마저 희미해졌다. 대화다운 대화 한번 해보지 못한 채로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정리되었다. 지금 이렇게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혹시 또 모르겠다. 살아있는 동안 말하지 못했던 어떤 마음이 가슴 속에 자리한 채로 떠났는지도.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지금 내 마음이 다독여질 것 같다. 평생 자기만 알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기억된다면 내 인생에서 작게나마 남아있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참 의미 없어질 것 같다. 어쨌든, 각자의 고단한 인생을 잘 정리하고 떠났다면, 그랬다면 된 거다. 굳이 이해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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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씨 2022-10-28 공감(24)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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