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3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자유와 소유(돈)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자유와 소유(돈)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금강일보
[김조년의 맑고 낮은 목소리] 자유와 소유(돈)
기자명 금강일보   입력 2021.10.04

한남대 명예교수

[금강일보] 사람은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적절한 소유(돈)가 필요하다. 필요한 무엇인가를 가지면 동시에 부자유하기 시작한다. 인류의 역사상 이 두 가지는 서로 대립하면서 동시에 삶을 위하여 꼭 있어야 할 것들이었다. 아무리 출중하게 정신수련을 하였다 하더라도 삶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한의 것을 소유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구차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하여 적절한 만큼 무엇인가를 소유하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서 무엇을 가진다는 것은 개인의 것으로 소유할 수도 있고, 남의 것을 적절한 시간 빌려 쓸 수도 있다. 빌리든 가지든 삶을 위한 면에서는 같은 뜻이다. 다만 ‘적절한 만큼’이 얼마나한 것인지를 객관화하여 말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객관화한 적절함의 수치도 없다. 그렇게 보면 ‘적절’이라는 것은 없는 것인가 하고 의문이 든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여 모두가 힘껏 노력한다. 그렇게 하여 무엇인가를 가지면, 그러니까 적절한 돈(재산)이든지, 권력이나 명예를 가지면, 그것을 가지는 순간 사람들은 그것들에 매여 부자유스럽기 시작한다. 자유롭고 싶어서 내가 소유한 그것들 때문에 자유를 잃는다. 내가 소유한 그것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놓아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더 그것들을 증강시키라고 부추긴다. 그렇게 증강시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가진 그것들마저 잃거나 떠나가버려 자유스런 삶을 살 기초가 없어진다고 느낀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가지면 꼭 잡으려 하고,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런 몸부림은 곧 부자유함으로 나타난다. 이런 부자유스러움은 개인의 성격과 특성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회문화의 속성처럼 역사를 관통하여 작용하는 듯이 보인다.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도 명예든, 권력이든, 재산이든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런데 거의 모든 사람들은, 특별한 몇몇의 사람들을 빼놓고는 이성이 가르치는 영속하지 못한다는 것을 따르지 않고, 감정이나 마음 또는 사회관습이나 흐름이 지시하는 영속할 것 같은 착각을 따라서 살려고 한다. 그래서 거짓말을 하고, 남을 속이고, 부당하게 이득을 얻으려 하고, 억압하고 착취하려고 한다. 선하게, 올바르게 맘을 먹고 행동하여서는 그런 것들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고 말하고 믿으려고 한다. 상당한 경우에는 바보처럼 선하게 살려는 사람들은 뜯기고 빼앗기고 잃는다. 그런 것을 경험한 사람은 그가 가진 속성상 그렇게 하지도 못하면서 악하고 바르지 않은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런 억울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그런 것들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기 위하여 발버둥치지만 되지가 않는다. 개인에게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법이라는 것을 만들고, 그 법을 지키자는 약속을 이행하려고 적절한 기관을 만든다.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또 법의 테두리에서 부자유스럽게 살아간다. 왜냐하면 어떤 법도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것이 없고, 그 법에 따라 이해득실이 갈린다. 이런 모순들이 극명하게 되면 그것을 극복하기 위하여 촘촘한 법망을 만든다. 그것을 도구로 세상을 정상으로 만들겠다고 한다. 이른바 법치라는 것이다. 그런데 세상 어디에도 정당한 법치는 없다. 설령 그 법들이 잘 지켜지고, 그 법망에 의하여 사회질서가 잘 잡힌다고 할지라도 수준 높은 사람들이 사는 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법을 만들어 통치하는 것, 법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는 아주 낮은 단계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길을 잃었을 때 법이라는 지혜와 도구를 통하여 사회질서를 잡아보려고 한다. 그러나 법이라는 지혜가 나타나면 언제나 그 법을 뚫고 나가는 더 날카롭고 예민한 잔꾀들이 더 발달하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을 노자는 ‘세상에서 도가 사라지니 인의가 나타나고, 지혜가 나오니 더 놀라운 허위들이 나타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되면 모두가 다, 사회가 온통 더 자유스럽지가 않다.

여기에서 나는 자유스럽게 살기 위하여 몇 가지 엉뚱한 의문스런 생각을 나누어본다. 소유는 자유를 보장해 주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이미 다 들어났다. 그렇다면 자유하기 위하여 소유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인가?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소유’로 잘 살았던 이들을 찬양하고 좋아하고 흠모한다. 그렇게 산 그들은 자유롭게 참을 찾아서 고상하게 살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많이 소유한 사람들은 다른 차원에서 산다. 소유하지 않으면 자유롭게 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몇 년 퇴직금으로 몇 십억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그것이 정당하다고 아무도 믿지 않는다. 준 사람도 받은 사람도 다 자유롭지가 않다. 사회관행으로 보아서 옳다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사회관행은 일종의 사회양심인데, 그것을 기준으로 또 법을 만들어 집행한다. 그런 법들이 만들어지면 문제들이 잘 풀어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궁여지책으로 법을 만들고 그것에 따라서 정치하고 행정하며 생활하자고 한다. 허무하고 무의미하다는 그것을 위하여 온갖 것을 다 바치려고 한다. 이 때 좀 다른 방향의 생각과 정치와 행정과 법집행의 길은 나타날 수 없는 것인가? 온통 마음과 몸과 생활의 자유를 위하여 ‘적절한 소유’를 생활화할 수 있는 소박하지만 고상한 교육 종교 문화 예술 기업 행정 산업 정치행위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인가? 개인과 사회가 자유롭기 위하여 ‘적절한 소유’의 참 길은 찾아지지 않는 것일까?

저작권자 © 금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금강일보 opinion@ggilbo.com
 

No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