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1

강준만 “文 이어 이재명도 팬덤에 끌려다녀…증오의 좀비정치” : 신동아

강준만 “文 이어 이재명도 팬덤에 끌려다녀…증오의 좀비정치” : 신동아


강준만 “文 이어 이재명도 팬덤에 끌려다녀…증오의 좀비정치”

[강준만의 회색지대] 文·李 팬덤의 ‘권력감정’ 중독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입력2021-10-27


● 文의 실패 위해 애쓰는 文 팬덤?
● 정치인 팬덤 움직이는 원동력, 증오
● 디지털 혁명, 정치군수업을 키우다!
● 김용민·강병원·김영배의 문자폭탄 옹호론
● “절대 금태섭처럼 하면 안 된다”는 교훈
● 親文 정치군수업자와 文의 묘한 이해관계
● 盧 죽음서 비롯한 ‘약자의 원한’과 권력감정
● ‘文 지키기’, 盧에 대한 애도 정치의 완수
● ‘대장동 사건’에서 이재명式 증오담론, 자충수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는 예리한 통찰과 탁월한 인물 비평을 통해 숱한 의제를 공론화한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그가 일찍이 제시한 ‘강남 좌파’ ‘싸가지 없는 진보’ ‘증오 상업주의’ 등은 한국 정치의 본질을 꿰뚫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창간 90주년을 맞은 ‘신동아’는 이번 호부터 새 연재 ‘강준만의 회색지대’를 시작한다. 진영논리의 덫을 넘어선 탁견(卓見)이 오롯이 담길 예정이다.<편집자 주>




19대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2017년 5월 8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마지막 유세가 열리는 가운데, ‘이니는 우리가 지킨다’는 피켓이 보인다. [뉴스1]“문재인은 레임덕 없는 첫 번째 대통령이다.” 정치컨설턴트 박시영의 주장이다. 그간 많은 언론도 비슷한 견해를 밝혀왔다. 그렇게 된 이유야 별도로 따져볼 문제이겠지만, 국정 운영의 안정이라는 점에서 보자면 반가운 일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지지율만 놓고 보자면 레임덕이 없을 것 같긴 한데, 속된 말로 대통령의 ‘말발’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도무지 먹히지 않는 일이 올 1월부터 일어났으니 말이다.

1월 29일 문재인은 신임 법무부 장관 박범계에게 “법무부는 검찰개혁으로 수사 체제의 변동이 있었는데 국민이 변화로 인해 불편하지 않도록 안착시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는 검찰개혁을 둘러싼 여권 기류가 ‘수사권 완전박탈론’과 ‘속도조절론’으로 갈린 상황에서 ‘속도조절 당부’로 해석됐다.

그러나 민주당 ‘수사기소권분리 TF’ 팀장인 박주민(서울 은평구갑·재선)은 방송에 출연해 “대통령이 검찰개혁 속도조절을 주문하지 않았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열린민주당의 초·재선 강경파는 ‘속도조절’은커녕 오히려 ‘가속’을 외치고 나섰다.

8월 말 청와대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를 당 지도부에 전한 사실이 확인됐지만, ‘문재인 1기’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김영배(서울 성북구갑·초선)는 방송에서 “청와대가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박주민이 좌장인 강경파 초·재선 모임 소속 김승원(경기 수원시갑·초선)은 언론중재법 직권 상정을 거부한 국회의장 이름 뒤에 욕설로 짐작되는 ‘GSGG’를 붙여 논란을 빚었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을까이런 일련의 사건에 주목한 ‘한겨레’ 논설위원 이세영은 9월 9일 ‘팬덤은 책임지지 않는다’는 제목의 칼럼에서 논란의 당사자들 모두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동으로 대통령의 팬덤과 수시로 소통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팬덤의 핵심 관심사인 검찰·언론개혁의 운명이 걸린 상황이라면 소통의 성실함과 집요함도 더해진다. 글이 오르기 무섭게 ‘좋아요’와 지지 댓글이 수백 건씩 줄을 잇는 상황이니, 중진과 지도부는 물론 대선주자들조차 이들 눈치를 살피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어 이세영은 이런 구조 아래선 잘못된 결정의 책임을 묻는 것이 난망해진다는 점을 우려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지도부는 자신들을 압박한 소장 그룹에, 소장 그룹은 다시 강성 팬덤에 책임을 미룬다. 그러나 ‘익명의 다수’는 책임질 수 없고, 책임을 이양할 대상도 없다. 그 결과 목격하게 되는 것은 누구도 결정에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의 난장’이다.”

이 칼럼을 감명 깊게 읽은 나로서는 이 주제를 더 발전시켜 ‘문재인 팬덤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싶다. 늘 문재인의 뜻에 따르면서 문재인의 성공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사는가? 얼른 생각하면 그럴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문재인의 성공을 위해 문재인의 뜻을 거스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문재인의 뜻에 따르건 따르지 않건 팬덤이 오히려 문재인의 실패를 위해 애쓰는 경우도 가능하다. 그간 우리가 목격해 온 건 후자에 가깝다. 왜 이런 어이없는 일이 벌어진 걸까?

우리는 정치인 팬덤을 연예인 팬덤과 비슷한 팬덤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둘은 속성이 전혀 다르다. 연예인 팬덤이 특정 연예인을 사랑하는 것처럼 정치인 팬덤도 특정 정치인을 사랑한다. 그러나 둘은 사랑의 목적과 수단에서 다르다. 연예인 팬덤은 연예인을 사랑하며 그게 바로 팬덤의 목적이자 수단이지만, 정치인 팬덤에게 정치인에 대한 사랑은 수단일 뿐 목적은 아니다. 정치인 팬덤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사랑이라기보다는 증오이며, 그 증오의 실현을 위한 매개체로서 정치인을 사랑할 뿐이다.

당신은 특정 정치인의 팬이거나 팬에 가까운 지지자인가? 가슴에 손을 얹고 자문자답해 보시라. 당신이 지지의 이유로 내세운 가치의 실현은 증오와 무관한가? 그럴 수는 없다. 당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선 반드시 누군가를 권력의 자리에서 밀어내야만 한다. 그런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동력이 바로 증오다.

독일 정치학자 카를 슈미트는 “정치적인 행동이나 동기의 원인으로 여겨지는 특정한 정치적 구별이란 적과 동지의 구별이다”라며 “적과 동지의 구별이 사라지면, 정치 생활도 없어진다”고 했다. 슈미트의 나치 전과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적과 동지를 구별하는 것”이라는 그의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통용되는 ‘진리’가 되고 말았다. 정치의 속성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슈미트의 말이 아름답진 않지만 정치 세계의 진실을 말했다는 데에 흔쾌히 동의할 게다.




5월 2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열린 임시전국대의원대회에서 신임 대표로 선출된 송영길 후보와 최고위원 당선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영배, 백혜련, 전혜숙 최고위원, 송영길 당대표, 김용민, 강병원 최고위원. [사진공동취재단]
‘문빠’가 된 이유를 배반하라니…적에 대한 증오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증오는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프랑스 작가 에밀 졸라는 “증오란 신성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압제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미국의 노예폐지 운동가였던 헨리 워드 비처는 “증오만큼 끈질기고 보편적인 정신력은 없다”고 했는데, 노예주나 노예제도 지지자들에 대한 증오 없이 어떻게 목숨을 건 노예폐지 운동을 할 수 있었겠는가.

민주주의 체제하의 정치도 다를 게 없다. 미국 역사가 헨리 브룩스 애덤스는 “현실 정치는 무엇을 가장하든, 언제나 체계적인 증오를 조직화하는 데 달려 있다”고 했다. 모든 정치 담론을 잘 뜯어보시라. 상대편에 대한 증오를 선동하는 게 대부분이다. 예컨대, ‘적폐청산’은 그 대의와 명분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적폐 세력에 대한 증오 없이는 청산의 동력을 얻기 어려운 법이다.

게다가 증오는 삶의 활력을 제공한다. 미국 사회운동가 에릭 호퍼는 “열정적인 증오는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며 이렇게 말한다.

“인생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새로운 의미를 찾기 위한 노력으로 어떤 숭고한 대의에 헌신할 뿐만 아니라 열광적인 불평불만을 키워나간다. 대중운동은 그들에게 이 둘을 다 충족하는 무한한 기회다.”

에밀 졸라의 증오는 아름답지만, 그건 특수한 상황에서 발휘될 수 있는 예외에 가깝다. 단지 자신의 공허한 삶에 의미와 목적을 줄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묻지마 증오’의 전사(戰士)가 되기를 자처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설령 정의를 표방한 증오일망정 그들에게 그런 명분은 부차적인 것일 수 있다. 증오를 발산하거나 배설하는 재미없이 정의를 위해 헌신하라고? 견해가 다른 사람들에게 낮은 자세로 설득도 하고 호소도 하라고? 그렇게 할 사람은 거의 없다. 증오의 발산이 우선이다!

이게 바로 정치인 팬덤과 연예인 팬덤의 근본적 차이다. 2018년 어느 강연회에서 “저도 ‘문빠’지만…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산다고 밝힌 여성학자 정희진은 “저는 ‘문빠’ 문화가 아이돌 팬 문화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면서 이렇게 말했다.

“제가 동방신기 팬이면 팬을 모으기 위해 노력을 하죠. 그런데 지금 ‘빠’들은 그 반대예요. 기존의 지지자조차 쫓아내고 있어요. 아는 지역구 국회의원 관계자들에게 물어보니, ‘문빠’나 ‘박사모’나 행동과 사고방식은 똑같다고 하더군요. 골치 아파 죽겠대요. 문재인 정권이 ‘문빠’의 덕을 볼까요?”

그러나 어이하랴. 증오의 발산을 자제하라는 건 ‘문빠’가 된 이유를 배반하는 것이라 결코 따를 수 없는 것을. 연예인 팬덤에도 자신이 사랑하는 연예인의 경쟁자를 향한 일탈행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그건 팬덤 전체의 자율 규제에 의해 통제 가능하다. 그러나 정치인 팬덤에는 그런 자율 규제의 메커니즘이 없다. 오히려 정반대로 증오를 선동하는 ‘좀비 정치’의 메커니즘만 존재할 뿐이다.


정치군수업자 판치는 ‘좀비 정치’영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런시먼은 “국민들이 때를 가려 박수나 치는 공연 관람객 정도의 역할”만 하는 ‘구경꾼 민주주의’를 가리켜 ‘좀비 민주주의’라고 했지만, 한국에서 쓰이는 ‘좀비 정치’의 의미는 전혀 다르다. 한국에서도 ‘좀비 정치’의 의미는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나는 전 민주당 의원 표창원의 정의를 따르고자 한다.

표창원은 올 3월에 출간한 ‘게으른 정의’에서 ‘좀비 정치’를 “우리 편은 ‘선’, 상대방은 ‘악’으로 규정하고 ‘다름’은 ‘틀림’으로 인식, 사실관계 확인이나 맥락, 입장 등은 무시한 채 상대방 혹은 의견이 다른 이를 무조건 공격하고 물어뜯는 정치”로 정의한다. “품격·논리·근거·존중·배려 등의 덕목과 가치를 내팽개치고, ‘적’으로 규정한 상대를 향해 잔혹하고 가학적인 공격을 퍼붓는 것만이 ‘정치’라고 착각한 이들”의 모습이 “뇌와 심장이 멎은 상태에서 물어뜯고 먹어치우는 기능만 남은 좀비”와 많이 닮아 있지 않으냐는 것이다.

표창원은 ‘좀비 정치’를 주도하거나 지원하면서 큰 이익을 얻는 무리로 “정적(政敵)과의 전쟁 같은 상황을 조성하고 선동하면서 선출직 혹은 임명직 공직을 차지하고 밀고 당기며 나누는 소위 ‘실세들’”과 “극단적·일방적으로 자기편에 유리한 선동을 하며 금전적 이익을 챙기는 언론이나 유튜버 등 소위 ‘진영 스피커’들”을 지목했다. 그는 후자의 무리를 가리켜 ‘정치군수업자’라고 했는데, 정말 적합한 표현이다.

디지털혁명은 정치군수업을 신흥 성장산업으로 키웠다. 소셜미디어와 유튜브가 공론장을 같은 편끼리만 모이는 곳으로 재편성한 가운데, 이른바 ‘집단사고’ ‘필터버블’ ‘반향실 효과’ 등과 같은 현상이 대중의 일상적 삶을 지배하게 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과잉 연결이 낳은 저주다. 증오와 혐오를 발산할 더 많은 기회와 더 화끈한 콘텐츠를 제공해 달라는 수요가 폭증하면서 스타급 정치군수업자들은 돈도 벌면서 소비자의 사랑과 존경까지 누리는 정신적 지도자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친문(親文) 정치군수업자들의 이해관계와 문재인의 이해관계는 대부분 일치하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도 많다. 군수업체에 평화 무드가 재앙이듯이, 정치군수업자들에게 대화나 타협의 무드는 재앙이다. 자신의 일자리를 잃게 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안전과 번영을 위해 음모론을 자주 구사한다. 음모론은 공포심을 부추겨 적에 대한 ‘증오의 정치’를 정당화하며 증폭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정 운영을 책임진 대통령으로선 늘 ‘증오 마케팅’만을 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다른 자세를 취하고자 할 때에 관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팬덤을 설득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래서 이른바 ‘실세들’이나 그 위치를 지향하는 정치인들은 대통령보다는 사실상 정당을 장악한 팬덤과 이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치군수업자들의 뜻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렇게 하는 게 자신들에게 더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올 1월에 일어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서약서 사건’을 보자. 극성 팬덤은 의원들에게 ‘문재인 정부 임기 내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서약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서약서를 안 낸 의원들에겐 문자폭탄을 보내는 등 압박을 가했다. 실제로 10명 안팎의 의원이 서약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져 논란이 일었다. 여기저기서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들리자 의원들은 잇달아 서약서를 SNS에서 삭제했지만, 어쩌다 의회정치가 이 지경이 됐는지 개탄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민주당 내의 희한한 ‘성공 방정식’민주당의 5·2 전당대회도 극성 팬덤의 위력을 잘 보여준 사건이었다. 전당대회 직전 논란이 된 것은 일부 강성 권리당원들의 문자폭탄 공세였다. 모든 민주당 의원들이 나서서 자제를 부탁해야 마땅한 일이었건만, 놀랍게도 최고위원에 출마한 일부 의원들은 문자폭탄 옹호론을 폈다. 투표 결과에 40%가 반영되는 권리당원 표심을 겨냥한 행동이었을까?

김용민(경기 남양주시병·초선)은 ‘문자폭탄’ 사태에 대해 “저는 적극적으로 의사를 표시하는 지지자들이라고 생각한다”라며 “당연히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그런 적극적인 의사표시는 권장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강병원(서울 은평구을·재선)은 “문자폭탄 자체가 건강성을 해친다고 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태극기 부대와 다르다”고 주장했다. 김영배는 ‘문자폭탄’에 대해 “표현 자체가 잘못됐다”며 “일부 언론사의 오보나 가짜뉴스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지적을 하지 않으면서 민주당 내 특정 현상을 그렇게 지칭하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소신파 의원인 조응천(경기 남양주시갑·재선)은 김용민의 문자폭탄 옹호론에 대해 “김 의원이 박주민·김종민 의원 등 그동안 전당대회에서 1위했던 성공한 방정식을 따라가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그가 개탄한 ‘성공 방정식’은 5·2 전당대회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됐다. 최고위원 5명은 김용민·강병원·백혜련·김영배·전혜숙 등 ‘친문 일색’이었으며, 문자폭탄을 적극 옹호한 김용민·강병원·김영배가 각각 1, 2, 4위를 차지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의원이 감히 강성 지지자들의 뜻을 거스르는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의원들은 좀비 역할을 거부하다가 사실상 민주당에서 쫓겨난 전 국회의원 금태섭을 보면서 “절대 금태섭처럼 하면 안 된다”는 뼈저린 교훈을 음미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때 소신파의 별명으로 통한 ‘조금박해’(조응천, 금태섭, 박용진, 김해영)의 일원이던 박용진(서울 강북구을·재선)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겨우 1%대의 누적 득표율을 기록한 걸 보면서 ‘좀비 역할에 충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또 할지도 모르겠다.


팬덤 정치의 지배자는 팬덤!민주당 의원들에게 좀비가 될 걸 요구한 문재인 팬덤은 무슨 비전과 책임감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다. 이 팬덤의 출발점은 노무현의 죽음에서 비롯된, 니체가 말한 ‘약자의 원한’이었다. 이 점을 성균관대 교수 천정환이 ‘촛불항쟁 이후의 시민정치와 공론장의 변화’(2017)라는 논문에서 잘 지적했다.

천정환은 “소위 ‘친노’ ‘노빠’들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이명박근혜’에 대한 분노·증오의 감정을 노무현에 대한 우상화를 통해 역(逆)승화하려 하거나 현실 정치에서의 힘으로 사용하려 했다”며 “‘문재인 지키기’의 정치의식은 주로 여기 근거한다. ‘문재인 지키기’는 노무현에 대한 애도의 정치의 완수에 해당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이제 ‘문빠’로 다시 태어난 그들은 “노무현이 우파와 그 언론은 물론 ‘좌파’로부터도 협공을 당하여 실패하고 죽음에 이르렀다는 인식”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면서 문재인에 대한 그 어떤 내부 비판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젠 ‘약자’가 아닌 ‘강자’의 편에 섰건만, 자신들이 여전히 ‘약자’라고 주장한다. 이른바 ‘피포위 의식(siege mentality)’에 사로잡혀 그러는 이들도 있겠지만, ‘약자의 원한’을 발휘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권력감정’에 중독된 이들도 많다.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의 정의에 따르자면, 권력감정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갖고 있다는 의식, 사람들을 지배하는 권력에 참여하고 있다는 의식,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의 신경의 줄 하나를 손에 쥐고 있다는 감정”이다. 권력감정에 중독된 팬덤은 권력 재생산을 꿈꾸지만, 그 방법론은 ‘증오의 정치’ 일변도인지라 오히려 역효과를 낳기 십상이다.

문재인은 ‘양념’ 운운하거나 “좀 담담하게 생각하라” 등의 말로 팬덤의 ‘증오의 정치’를 옹호하곤 했지만, 그가 팬덤의 지배자는 아니다. 오히려 팬덤에 끌려다니는 면이 강했다. 아니 문재인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정치인도 팬덤을 완전히 장악할 수는 없다. 팬덤은 끊임없이 증오를 발산할 기회를 원하기 때문이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정치인이 증오의 반대 방향으로 나가면 팬덤은 저항하면서 비난을 퍼붓는다.




2007년 5월 3일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비서실장이 집무실에서 국정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동아DB]
달라진 건 이재명이지, ‘손가혁’이 아니다문재인이 자신의 팬덤과 갈등을 빚는 것에 대해 발설한 적은 없지만, 매사에 화끈한 경기지사 이재명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이재명이 열렬한 정치 팬덤을 갖게 된 것은 ‘유능한 진보’ 이미지와 더불어 화끈한 증오의 담론 덕분이었다. 국정농단에 대한 분노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던 2016년 12월 인기를 끈 ‘이재명의 대표적 4대 사이다’라는 동영상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누린 그의 사이다 발언은 이런 것이었다.

“내가 노무현 대통령을 보면서 타산지석으로 배운 게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너무 착해서 상대 진영도 나처럼 인간이겠거니 하며 믿었다. 하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다. 어설픈 관용과 용서는 참극을 부른다.”

그 어떤 관용도 없이 상대 진영을 청산해야 할 대상으로만 보는 이재명의 호전성은 그를 유력 대선 후보의 지위에까지 올려놓았다. 이재명의 정치 팬덤인 ‘손가락혁명군(손가혁)’은 심지어 경쟁자인 문재인마저 증오의 대상으로 보았다. 데이터 기반 전략컨설팅업체 아르스프락시아가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2016년 12월 9일부터 2017년 1월 말까지 대선 후보들의 팬 카페 게시글 1만4500건을 분석한 결과가 흥미롭다. 공격성과 활동성이 가장 두드러진 집단은 손가혁이었다. 손가혁은 문재인에게 강도 높은 비난과 비판을 퍼부었으며, 문재인 지지자를 ‘친문독재패거리들’ ‘문베충’(일베충을 빗댄 말)으로 매도했다.

이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이재명이 경기지사 출마를 염두에 둔 가운데 문재인 비판을 멈추고 오히려 찬양조로 돌아서자, 일부 팬덤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한때 이재명 지지했는데, 내가 손가혁이었는데 왜 (이재명이) ‘문빠’가 됐냐?”고 비판한 손가혁이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재명은 “이런 극렬 지지자는 부담스럽다”고 했지만, 이 말은 절반의 진실만 담고 있을 뿐이다.

달라진 건 이재명이지, 손가혁이 아니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건 ‘극렬 지지자’가 아니라 늘 증오의 담론만 구사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재명은 야당에 대한 공격으로 출구를 찾았지만, 그가 이 방법을 ‘대장동 사건’에서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초강경 모드로 써먹은 건 앞으로 자충수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인정할 건 인정하면서 합리적으로 해명하면 좋았을 텐데, 자신의 팬덤이 원하는 그림을 충족해 주기 위해 그럴 수 없었던 걸까?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경기지사가 5월 13일 오후 K-반도체 전략보고 행사장인 경기 평택 삼성전자 평택단지 3라인 건설 현장으로 함께 입장하고 있다. [청와대 사진기자단]
회색지대 부정은 잔인한 망상팬덤의 증오는 습관이 된다. 그냥 넘어가도 좋을 평범한 시민들의 발언에까지 증오를 발동한다. 그 유명한 ‘아산의 반찬가게 사건’을 보자. 문재인이 “(경기가) 좀 어떠세요”라고 묻자 주인은 “(요즘 경기가) 거지 같아요. 너무 장사 안 돼요”라고 답했다. 문빠들은 “대통령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다” “주인장 마음씨가 고약하다”는 등 인신공격성 댓글을 달고 반찬가게 상호와 주소, 주인의 휴대전화 번호까지 공개하는 신상털이로 불매운동까지 벌였다. 반찬가게 주인은 가게로 찾아와 욕하는 문빠들 때문에 공포에 떨었다고 했다.

‘광주 커피숍 사건’은 어떤가. 커피숍 주인 배모 씨가 자영업자의 처지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증오의 난장판이 벌어졌다. 배씨는 “전화 폭탄과 함께 인터넷에서 신상 캐기가 시작된 뒤 저와 아내, 직원들의 영혼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운동권 출신인 배씨는 “전두환·노태우 타도를 외치며 투쟁했던 대학 시절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고 했다.

이런 사건이 터지면 문재인 팬덤과 지지자들이 꼭 하는 말이 있다. 극소수 예외적인 사례로 팬덤 전체를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항변이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팬덤이 나서서 그런 가해자들을 꾸짖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러나 그런 법은 거의 없다.

증오를 먹고사는 정치인 팬덤은 책임을 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정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사전에 ‘책임’이란 단어는 없다. 그들이 밀어붙인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그건 자기들의 문제가 아니라 반대편의 음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내부의 적을 찾아내 모든 실패의 책임을 떠넘긴다. 문재인 정권이 노무현 정권의 실패에서 아무런 배움이나 교훈도 얻지 못한 건 바로 이런 ‘증오의 무책임 메커니즘’ 때문이다.

이제 문제는 ‘이재명 팬덤’이지만, 팬덤이 유발하는 ‘좀비 정치’는 모든 정치 팬덤의 공통된 문제로 이해하는 게 옳다. 어떻게 해야 이런 ‘좀비 정치’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문제의 출발점은 흑백 이분법이다. 이는 ‘앗쌀함’을 사랑하거나 강요당해 온 한국인의 성향과 친화적이다. ‘회색분자’나 ‘회색주의자’라는 말이 얼마나 큰 욕으로 쓰여왔는지를 상기해 보라. 그러나 세상은 원래 회색이다. 백에 가까운 10% 명도의 회색에서부터 흑에 가까운 90% 명도의 회색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세상이 100%의 순도로 흑이나 백으로 나뉠 수 있다는 가정은 망상이다. 위험하고도 잔인한 망상이다. 정치 팬덤은 그런 망상이 가능하며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가상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를 무조건 공격하고 물어뜯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선 결코 그렇지 않을, 더할 나위 없이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까지 말이다. 회색의 다양성에 대한 증오가 판치는 가상세계에서 탈출해 다양한 회색 옷을 입는 사람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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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 1956년 출생
● 성균관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메디슨캠퍼스 언론학 박사
● 現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 저서 : ‘발칙한 이준석: THE 인물과사상 2’ ‘싸가지 없는 정치’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강남 좌파’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김대중 죽이기’ 등 다수

신동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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