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제일일보
박정학의 역사산책
또 나타난 ‘식민지 근대화론’
2020. 06. 16 by 울산제일일보
친일파들의 대표적인 역사논리 중 하나가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에 더 잘 근대화되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최근 우리 학자의 주장을 근거로 일본인이 이런 내용을 산케이 신문에 게재한 것이 화제가 되고 있어 잠시 산책한다.
지난 6월 7일자 산케이 신문의 서울 주재 객원논설위원인 구로다 가쓰히로가 투고한 ‘발전의 근원은 일본 자산’이라는 칼럼이 도쿄 발 연합뉴스에 보도되면서 서울경제 등 여러 곳에서 기사로 취급했다. 구로다 위원은 일본이 식민지 지배를 끝내고 한국을 떠날 때 두고 간 재산(적산)은 당시 통화로 52억 달러였고 현재 가치로 수천억 달러(수백조원)는 될 것이므로 과거 보상 문제는 모두 한국에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내용을 종합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SK그룹처럼 일본이 남긴 기업을 이어받아 발전한 한국 기업이 지금도 많이 존재한다. 미군에 의해 접수된 일본 기업은 2천373개였고, 이것들이 한국인 소유가 되면서 한국 경제발전의 기초가 됐다. 이처럼 한국의 발전은 일본이 남긴 자산 덕분이다. 『귀속재산 연구』라는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굉장한 책’에 이런 사례들이 많이 적시돼 있다.”
일본 외무성도 2015년 각국 언어로 제작한 ‘전후 국제사회의 국가건설 :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 일본’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에서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국제사회에 복귀한 일본은 1954년 미얀마를 시작으로 일찍부터 아시아 각국에 대한 경제협력을 개시했다.’며 포항종합제철소 건설도 그런 일본의 지원으로 이루어졌음을 강조한 바 있다.
구로다 위원의 칼럼이나 일본 외무성의 동영상은 식민지 지배 과정에서 발생한 수탈, 착취, 인권침해 등 우리가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내재적 역량을 파괴한 내용은 소개하지 않았으므로 논리적 타당성이 결여된 억지주장이다. 따라서 목적이 다른 데에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대법원은 2018년 10월 30일 일본 기업이 강제징용자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반인도적인 불법행위에 해당하고, 이러한 불법행위로 인해 원고(징용피해자)들이 정신적 고통을 입었음은 경험칙상 명백하므로 일본 기업이 위자료를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확정 판결했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협정으로 모든 배상이 마무리 되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경제보복을 함으로써 한일 간 갈등이 심화되었다. 현재 당시 피해를 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강제매각 절차가 진행 중이며 8월에 발효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대법원 판결에 대한 일본 정부의 대응- 경제보복으로 한일관계는 물론이고 일본 내부적으로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점에 다시 등장한 구로다의 식민지 근대화론이 노리는 것이 ‘일본의 어려움을 푸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는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문제는 이런 편파적, 일방적 논리로 풀 수는 없다. 그런 주장에 하나하나 반박할 필요도 가치도 없다. 그 반대논리로 ‘일제가 강점하여 우리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길을 막았다’는 ‘내재적 발전론’도 있지만, 그것을 특별히 강조할 필요도 없다.
우리 겨레는 광복 후 6·25전쟁과 남북 군사대치 및 이념 갈등을 겪으면서도 일본보다 훨씬 빠른 산업화를 달성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세계인이 열광하는 한류가 확산되고 코로나19 사태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데서 내재적 민족저력의 존재를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을 따라가는 형태의 발전이 아니라 이런 민족저력을 살려 인류사회를 ‘무한경쟁이 아닌 평화로운 공동번영’으로 선도해 가야 하는 입장에 있다. 그 소명이 더 급하기 때문이다.
박정학 사단법인 한배달 이사장·역사학박사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