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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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한민국 대통령은 노태우 전 대통령처럼 북한지도자의 생각과 노동당의 정책을 바꿀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내일 영결식이 끝나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게 된다.
나는 어제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망명록에 ‘탁월한 선견지명으로 국제적인 냉전체제 붕괴에 기여하시고 남북한의 유엔동시 가입을 성공시켜 한반도의 평화를 유엔을 통해 정착시켜 놓으신 위대한 국가 지도자이시다’ 라는 글을 남겼다.
이 세상의 모든 국가 지도자들이 그러하듯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도 공과 과가 있다.
나도 노 전 대통령이 생전에 직접 5.18 희생자들에게 사죄의 뜻을 밝히지 못한 점은 아쉽게 생각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이 노태우 전 대통령이 분단 70여년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김일성의 고집을 꺾고 북한 노동당의 정책을 바꾼 지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한다.
물론 노 전 대통령의 북방정책이 냉전체제 붕괴라는 세계적인 순풍에 편승하여 성과를 올릴수 있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5년부터 소련 공산당과 동구권에서 일어나고 있는 페레스트로이카의 흐름을 먼저 파악하고, 세계 정세를 예견하여 미국의 동의를 얻어 88 올림픽을 동서화합의 무대로 만든 유능한 지도자였다.
한반도에서의 치열한 이념대결 속에 아직 우리의 위상이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그 시절 대한민국 서울에 와본 동구권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이루어낸 ‘한강의 기적’을 보고 공산주의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은 연이어 북방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고 총력전을 벌여 소련, 중국 등과 수교를 이루어냈다.
지금와서 보면 노태우 전 대통령은 외교의 귀재였다.
남북한 유엔동시 가입을 미국에만 맡겨놓지 않고 본인이 직접 소련, 중국 지도자들을 만나 김일성을 설득 시켜 줄 것을 부탁하고 실제로 소련과 중국 지도자들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당시 김일성은 수십년동안 북한 노동당의 정책인 ‘두개 조선 유엔 동시 가입 반대’정책을 계속 고집했다. 김일성도 판이 이미 기울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더 큰 고민은 북한 지도부와 주민들 앞에서 유엔 동시 가입을 어떻게 합리화 하겠는가였다.
북한에서 신과 같은 존재인 김일성이 정책 실패을 인정한다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이었다.
당시 북한 외교부에서도 유엔 동시가입을 합리화 할 수 있는 안을 찾아보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추진하지 못해 절절 매고 있었다.
이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밀사를 통해 납북한이 2개 국가로 유엔에 가입해도 ‘남북관계는 국가간 관계가 아닌 통일 지향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새로운 정의를 북으로 전달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이 사안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이 합의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김일성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결국 체면을 살릴수 있게 되었다. 이후 북한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유엔 동시 가입을 정책화 했다.
김일성은 ‘노태우가 군인인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북한 외교부 간부들 앞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물론 노태우 전 대통령이 처음부터 다 구상하고 설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철언 전 장관을 비롯하여 당시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다 모여 만든 작품일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리더쉽은 바로 행정과 전문가들의 수 많은 제안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안을 선택하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전 국가적인 힘을 어떻게 동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결국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남북 분단역사에서 북한 지도자의 생각과 노동당의 정책을 바꾼 유일한 대한민국 대통령이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고 반대로 북한을 이끌고 나간 지도자, 북한에 남한의 요구를 관철시키면서도 북한 지도자가 체면을 살릴수 있는 퇴로까지 열어준 지도자, 앞으로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후보들은 부디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를 다시금 학습하기 바란다.
2021년 10월 29일 국민의힘 국회의원 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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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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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해도 얻을 게 없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노태우의 북방정책은 세계공산주의 세력의 몰락이라는 세계사적 변화 속에서 수세에 몰린 중국, 소련 등을 상대로 일시적인 우위를 누린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당시의 중국은 천안문의 폭력적 진압으로 미국의 대대적인 제재 속에 놓여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었고 소련은 무너지는 동구권 속에서 자기 자신조차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북조선조차도 앞날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란한 상황이었기에 상대적으로 체제 자신감을 갖고 있던 한국이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었다. 고립 속의 중국은 한국의 손길을 반가워 할 수밖에 없었고 소련은 한국과의 수교 속에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다. 그런 상황이니 북조선도 끌려갈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었다.
이 말은 노태우의 북방정책이란 사실상 북방의 대륙세력들이 심각한 체제위협을 맞이했을 때에만 이룩할 수 있는 천운도 상당히 많이 끼어있다는 것이다. 다시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이상, 북방 대륙세력이 확고하게 힘을 갖고 있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일이란 중국혁명 - 조선혁명의 여파로 분단된 중국분단 - 조선분단이라는 조건 속에서 최대한 한국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용조용하게 넘어가는 것밖에는 없다. 당장 주한미군을 대만으로 뺀다는 얘기가 미국에서 공공연하게 나오는 상황에서 한국이 북방정책을 배워서 뭘 어쩔 수 있다는건가? 한국이 북조선과 중국, 러시아 등을 변화시킬 수 있는 상황인가? 배워도 얻을 게 많지 않다. 우리가 북방정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제6공화국 내에서 할 수 있는 외교적 영역이 남북관계 등에 의해 구조화되었다는 것밖에 없다. 노태우 찬양은 적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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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n Ha Chang
2 h ·
<The Art of Diplomacy>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고 반대로 북한을 이끌고 나간 지도자, 북한에 남한의 요구를 관철시키면서도 북한 지도자가 체면을 살릴수 있는 퇴로까지 열어준 지도자,"
"이때 노태우 전 대통령은 밀사를 통해 납북한이 2개 국가로 유엔에 가입해도 ‘남북관계는 국가간 관계가 아닌 통일 지향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새로운 정의를 북으로 전달했다. 또 노 전 대통령은 이 사안을 남북기본합의서를 통해 남북이 합의하는 형식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김일성은 ‘이렇게 하면 된다’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고 결국 체면을 살릴수 있게 되었다. 이후 북한 공산당은 공식적으로 유엔 동시 가입을 정책화 했다.
김일성은 ‘노태우가 군인인데 어떻게 저런 생각을 했을까‘ 하고 북한 외교부 간부들 앞에서 여러번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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