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0

알라딘: 박종인 대한민국 징비록

알라딘: 대한민국 징비록

대한민국 징비록 - 역사가 던지는 뼈아픈 경고장  
박종인 (지은이)와이즈맵2019-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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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쪽
152*225mm
690g
ISBN : 9791189328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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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류성룡이 쓴 <징비록>은 처참했던 임진왜란의 상처를 돌이켜보며 잘못을 경계해 미래의 우환을 삼가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다시 말해 '실패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다. 이 책 <대한민국 징비록> 또한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 기록되었다.

저자 박종인 기자는 우리는 왜, 뼈아픈 과거를 겪었음에도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 전역은 물론 폴란드 현지를 취재하고, 온갖 사료와 서적들을 파헤친 끝에 그는 우리가 믿어왔던 것과 상반된 진실을 마주했다. 그렇게 완성된 책 <대한민국 징비록>은 과거를 겸허히 인정하고 미래를 바로잡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1543년'이다. 이 해에 유럽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공인되며 대항해 시대를 맞이한다. 그 결과 같은 해, 세상을 향한 문을 연 일본에 철포가 전래된다. 그 철포를 거액에 사들여 일본식 조총으로 개량해낸 것은 불과 15세의 영주였다. 그리고 같은 해, 조선은 성리학 서원을 설립하며 세상을 향한 문을 더 굳게 닫아걸었다.

1543년을 기점으로 두 나라는 엇갈린 선택을 거듭하며 확연히 다른 미래를 향하기 시작했다. 조선이 폐기한 혁신적인 은 제련술이 어떻게 일본의 군사력을 만들어냈는지, 조선의 천민이었던 도공들이 어떻게 일본의 사무라이로 거듭났는지, 찬란했던 세종시대의 과학과 무기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등등. 이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을 접할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_ 미래를 위한 불쾌한 반성
브리핑_ 1543년, 세상의 문이 열리다

1부. 운명의 1543년
1장. 탐욕의 대륙 유럽
-대항해 시대
화기의 탄생 | 유대인의 추방과 욕망의 분열

2장. 모든 것은 그 해에 시작되었다
-1543년 코페르니쿠스, 지구를 움직이다
여호수아의 명령 | 대항해의 시대와 코페르니쿠스 | 깜깜한 세상, 회전, 혁명 | 지동설 출판과 반발 | 그가 지구를 움직인 이유는 | 혁명가의 나라, 폴란드
-1543년 일본, 지구를 돌아온 철포 두 자루
상선의 좌초와 철포의 전래 | 철포를 따라 들어온 문명 | 조선을 스쳐간 철포 | 조총을 만든 선조, 이를 비난한 사관 | 우주선 하야부사의 귀환
-1543년 조선, 서원을 설립하다
신임 군수의 교육지표 | 토지신이 선물한 학교 건립 비용 | 소 잡기를 일삼다 | ‘빽’이 난무한 공무원 조직 | 정치 투쟁과 연산군의 폭정 | 백운동서원, 소수서원이 되다 | 서원,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다 | 지방대를 위한 특별고시 | 성리학에 갇혀버린 지식사회

2부. 닫아버린 눈과 귀
3장. 불길한 징조
-실종된 세종의 과학시대
세종의 신무기 시스템 구축 | 농업 진흥, 역법과 천문기구 | 칠정산역법의 탄생 | 앙부일구에서 흠경각까지 | 성리학이 질식시킨 과학 | 멸종된 과학 | 일본, 조용히 움직이다
-일본으로 간 조선의 은
첨단 은 제련법, ‘회취법’ | 대항해 시대와 이와미은광 | 조선인 기술자 종단과 계수 | 세종의 은광 폐쇄령 | 잡아보지도 못한 기회들 | 은의 역습
-로마로 간 아이들과 히데요시의 근거 있는 광기
신, 일본에 상륙하다 | 1591년 3월 3일 히데요시 저택 | 유럽으로 떠난 아이들 | 조선만 몰랐던 전쟁 | 소년들이 떠날 때 이미 망가진 조선 | 문명사가 충돌한 임진왜란

4장. 요동치는 천하
-일본의 비상구 데지마
명의 몰락과 청의 등장 | 기이하고 어이없는 하멜 표류기 | 해적의 시대, 쇄국의 시대 | 영국인 사무라이, 미우라 안진 | 쇄국, 그리고 데지마의 개항 | 란가쿠와 열린 지성 | ‘요 임금 창자나 폭군 걸 창자나’ | 근대화의 서막, 해체신서 | 개혁군주 정조의 지식독점
-비상구 없는 조선과 일본의 역전
조선통신사와 란가쿠 | 조선 중화와 쇄국 | 일본의 정보원 데지마 풍설서 | “왜 명나라 옷을 입었는가” | “공자를 죽인다” “교화가 필요” | 란가쿠 의사와 조선 의사 | “부귀영화를 어찌하여 오랑캐가 누린다는 말인가!”

5장. 뒷걸음친 천하
-폐기된 이데올로기, 성리학
조선을 암흑으로 내몬, 성리학 | 하루 세 번 공부한 조선 국왕 | 명청 교체기와 주변 국가
-외교: 망해버린 명나라에 사대하다
1637년 남한산성 | 송시열과 만동묘 | 북벌 군주 효종이 송시열을 만난 이유 | 북벌을 거부한 송시열 | 정치 논리에 실종된 북벌 | 만동묘, 북벌론의 종언 | 대보단과 정신승리 | 비겁한 대보단 | ‘개혁군주’ 정조, 그리고 대보단
-정치: 지식독재와 사문난적
지식권력과 지식독재 | 송시열의 시작과 끝, 주자 | 사문난적 윤휴 | 송시열, 벗을 버리다 | 이경석 신도비와 삼전도비 | 이경석 장수 축하파티와 송시열 | 노론과 소론 갈라지다 | 사문난적과 박세당
-학문: 억압된 자유
‘이학의 금’과 코페르니쿠스 | 만천명월주인옹 | 주자 말씀 담은 책 | 바티칸도 놀랄 금서 정책 | 지식권력의 완성체, 정조 | ‘거중기’는 기록에 남기지 말라 | 빛 보지 못한 실학

3부. 근대의 시작, 종말의 서막
6장. 아편전쟁과 실종된 조선 도공
-1840년 아편전쟁
네덜란드 그리고 아편전쟁 | 아편전쟁과 천하의 붕괴 | 나가사키와 막부의 정보력 | 적에게서 배운다 | “문자는 같은 줄 알았네”
-일본의 부국강병과 히젠의 요괴
히젠의 요괴 나베시마 나오마사 | 난벽 영주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개혁 | 또 적에게서 배운다
-요괴들의 돈보따리, 조선 백자
혼마루역사관의 대포와 대은인 | 끌려간 조선 도공 | 3만 8,717명의 귀, 산 사람 80명 | 신이 된 조선의 도공 | 일본 자기의 혁신 | 군함을 만든 조선 도공의 기술
-돌아오지 않은 도공들
황제의 하사품, 청화백자 | 퇴화하는 백자 기술 | 영조의 검약 정치 | 무본억말과 굶어죽은 도공들 | 지식권력의 위선_책가도와 송절차와 노비 | 일본으로 돌아간 도공들

7장. 일어서는 일본
-근대에 대처했던 두 나라의 자세
-목숨을 건 개국, 목숨을 건 쇄국
척화비와 이와쿠라사절단 | “본디 우리는 외교가 없으니” | 권력 유지를 위한 천주교 탄압 | 매국, 망국, 위국 | “일본이여 조심하시게” | 장엄하고 처참했던 신미양요 | 근대국가의 문, 이와쿠라사절단 | 사활을 건 근대화
-메이지유신과 목숨을 건 혁명가들
시골 서당 쇼카손주쿠 동창생들 | 260년을 기다린 복수극 | 조슈번의 큰 그림, 존왕양이와 국가주의 | 다카스기의 각성 | 조슈 5걸의 밀항 | 쇼카손주쿠의 사내들과 조선 | 다카스기의 헌신과 회천 거병 | 목숨을 건 혁명가들 | 풍운아 사카모토 료마 | 료마와 사쓰마-조슈의 연합 | 선공후사의 희생, 가쓰 가이슈
-유학생들의 대결투, 청일전쟁
영국의 조공과 건륭제의 거부 | 1876년 이홍장과 모리의 대화 | 조기유학 프로젝트 ‘유미유동’ | 써먹지도 못한 기술 | 유학생의 전쟁 1편_청일전쟁 | 유학생의 전쟁 2편_시모노세키 | 죽어서 끝난 다카스기 신사쿠의 회천

8장. 붕괴되는 조선
-서점 없는 나라 조선
훈민정음의 탄생 | 훈민정음으로 낸 책들 | 국가가 독점한 출판과 유통 | 책쾌들의 대학살 | 부활한 책쾌와 책 대여점 | 서점 있는 나라와 문명의 진보 | 서점 없는 나라와 무서운 백성
-갑신년 겨울의 녹슨 총, 조선 혁명가들의 최후
민란과 이양선의 시대 | 동래 난출-왜관을 뛰쳐나온 외교관 | 고종 친정과 운요호 사건 | 초점 빗나간 근대화 | 왕십리의 반란, 임오군란 | 반동의 역사, 식민 조선 | 목숨을 건 조선의 혁명가들 | 5년을 앞당긴 약속 | 무기고 속의 녹슨 총 | 혁명가들의 최후 | 도해포적사 지운영
-껍데기 대한제국
절멸된 개화파, 멸종된 인재 | 살해된 민비와 아관에서의 1년 | 대한제국 선포와 원구단 | 폭풍 속 조선, 천제를 올리다 | “군복은 외제로“ | 가난한 제국, 갑부 황제 | 독립협회의 붕괴와 좌절된 대중의 각성 | 황제의, 오직 황제를 위한 | 강제 중단된 연명치료
-명품 고물 군함 양무호와 허세의 군주
황태자, 생일잔치를 청하다 | 황제, 즉위 기념식을 명하다 | 파티 메들리 | 평양행궁과 기념비각 | 칭경 40주년 기념식 | 창궐한 콜레라, 나랏돈 100만 원 | 군함 양무호 | 명품으로 치장한 군함

9장. 옹졸한 멸망

에필로그_ 개방과 각성
주석
접기


책속에서


첫문장
서기 1453년 5월 29일, 오스만제국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동로마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했다.




2019년의 대한민국은 200년 전 조선 국제관계와 소름끼칠 정도로 똑같다. 지도자들은 어떤가. 깨어 있는가. 힘은 센가. 200년 전 눈 감고 있던 조선은 각성한 일본에게 망했다. 지금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200년, 아니 400년 전과 똑같이 세상을 외면하고 자만하며 무사안일하게 나라를 이끌고 있지는 않은가.
조선왕조 500년 동안 지도자들이 한 행태를 저들 대한민국 지도자들이 버리지 않는 한 대한민국은 망한다. 찬란한 문화전통과 애민정신으로 무장한 성리철학과 슬기로운 성왕이 조선을 지배했는데, 그 조선이 망했다. 틀림없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선은, 1밀리미터도 오차가 없는 인과의 법칙에 따라 망한 것이다. 두 번 망하지 않기 위해, 200년 아니 500년 전부터 이 나라 지도자들이 헛디딘 땅들을 찾아 징비를 해볼 작정이다. 미래를 위해서,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 프롤로그 「미래를 위한 불쾌한 반성」 중에서 접기
1543년 9월 23일 일본 다네가시마에 큰 배 한 척이 들어왔다. 선원만 100명이 넘었다. 생김새도 기이했고 말도 통하지 않았다. 동승했던 명나라 유생 오봉은 이들이 서남만인 상인들이라 했다. 이틀 뒤 도주 다네가시마 도키타카가 이들을 만났다. … 이들 손에는 두세 자짜리 작대기가 들려 있었다. 작대기는 가운데가 뚫려 있었다. 바위 위에 술잔을 놓고 그 작대기에 눈을 대고 겨누니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소리가 나며 잔이 박살났다. 은으로 만든 산도 무너뜨리고 쇠로 만든 벽도 뚫을 것 같았다. 도키타카는 “보기 드문 보물이로다”라며 거금을 주고 두 자루를 사고 화약 제조법도 배워 가보로 삼았다. 열다섯 살이던 도키타카는 “모든 이가 원하는 것이니 내 어찌 이를 혼자 숨겨두겠는가”라며 기슈에 있는 승병 장군 스노기노보에게 보냈다. 한 자루는 대장장이인 야이타 킨베에게 하사해 역설계를 명했다.
- 2장 「모든 것은 그 해에 시작되었다」 중에서 접기
일본이 철포를 얻은 지 12년이 지난 1555년 5 월 21일, 비변사가 명종에게 보고했다. … 대마도 사람 평장친은 그때 동래에 와서 자기를 조선이 받아주면 총통 만드는 법을 전수하겠다고 했다. … 다음날 사간원이 명종에게 “총통을 주조해야 하는데 철재가 없으므로 버려둔 큰 종으로 총통을 주조하게 해 달라”고 건의했다. … 명종이 딱 부러지게 답했다. “오래된 물건은 신령스러우니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물건을 부수어서 쓰는 것은 옳지 못하다.”
1589년 7월 1일, 대마도 사람들이 조선 경복궁을 방문해 선조에게 조총을 바쳤다. ‘대마도주 평의지 등이 조총 수삼 정을 바친 것이다. 우리나라가 조총이 있게 된 것은 이때부터다.’ … 그날 평의지는 공작새 한 마리도 선물했다. 조선 정부는 공작새는 남쪽 바다 섬에 풀어주고 조총은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그 총으로 사격을 했고 분해를 했고 청소를 했다는 기록은 없다. 그냥, 아무도 모르게 무기고에 집어넣었다. … 3년 뒤인 1592년 임진년, 도요토미의 조총 부대가 조선을 짓밟았다.
- 2장 「모든 것은 그 해에 시작되었다」 중에서 접기
1852년이다. 세종 때 설치했던 앙부일구 2개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대신 “종묘 문 앞에 네모난 돌이 있는데 전하기로 앙부일구를 안치하던 대석”이라 했다. 1930년 6월 초 경성 종로 4정목 45번지 국수집 앞 인도 지하에서 바로 그 네모난 대석이 발굴됐다. 1889년 종로에 전차 궤도를 부설하면서 땅에 묻어버린 것이었다. … 앙부일구에 담긴 과학정신과 대중화 정책은 단순히 역사로 묻혀서는 아니 될 물건이었다. … 조선은 세계 최초로 측우기를 발명해 실용적으로 사용한 나라였고, 역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개발해 서적을 대량으로 인쇄한 국가였다. 그 조선에서 자기가 만든 과학기술 사용법을 다 까먹어버리는 참극이 벌어지는 동안 이웃나라 일본은 조선을 추월했다. 성리학 프레임에 매몰된 조선 학자들은 성리학 이외 일체 학문을 그저 성인들이 ‘권계하던 기구’로 쓰고 치워버렸다.
- 3장 「불길한 징조」 중에서 접기
1796년 수원 화성이 완공됐다. 신하들이 그 기록을 남기자고 청했다. 특히 공기 단축과 비용 절감을 이룬 획기적인 기술, ‘거중기’를 왕의 문집 《홍재전서》에 싣자고 했다.
거중기는 정조가 청나라에서 은화 2,150냥을 들여 사온 《고금도서집성》에 소개된 기계였다. 정조는 이 책에서 도르래 원리를 적은 ‘기기도설’을 직접 골라 정약용에게 알려주며 화성 건설 감독을 맡긴 것이다. 총 감독인 정조의 성과를 정조의 문집에 수록하자고 한 건의는 지극히 당연했다. 이 당연하고 합리적인 건의를 정조는 불허했다. 이유는 단순하고, 뜻밖이었다. “공예의 말단에 불과하니, 어찌 후세에 남겨줄 만한 것이겠는가.” … 성리학적 공론 외에 실용적 학문과 기술은 정조에게 기록으로 남길 가치가 없었다. … 정조를 제외한 모두가 찬양했던 거중기는 다시 홍문관에 처박혀 버렸고 학자들은 왕과 함께 또 성리학 책을 꺼내들었다.
- 5장 「뒷걸음친 천하」 중에서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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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박종인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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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교를 다닌 소위 386세대 신문 기자.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 뉴질랜드 UNITEC School of Design에서 현대사진학을 전공했다. ‘직시(直視)하는 사실의 역사만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으로 <조선일보〉에 ‘박종인의 땅의 역사’를 연재 중이다. 〈TV조선〉에 같은 제목의 역사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잊히고 은폐된 역사를 발굴해 바로잡아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20년 ‘서재필 언론문화상’을 받았다.
지은 책으로는 『매국노 고종』, 『대한민국 징비록』, 『박종인의 땅의 역사』1·2·3, 『여행의 품격』, 『기자의 글쓰기』, 『한국의 고집쟁이들』, 『행복한 고집쟁이들』, 『내가 만난 노자』, 『나마스떼』, 『우리는 천사의 눈물을 보았다』(공저), 『다섯 가지 지독한 여행 이야기』가 있고,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마하바라타』를 옮겼다.

seno@chosun.com 접기


최근작 : <땅의 역사 4>,<땅의 역사 3>,<[큰글자책] 땅의 역사 2 > … 총 30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임진왜란과 선조, 대한제국과 고종, 그리고 2019년 대한민국…
“치욕의 역사는 왜 반복되는가!”

무능한 권력, 붕괴된 경제, 위기의 안보, 그리고 고립과 몰락까지
불편하지만 기억해야 할 역사의 진실!

우리는 왜 조선이 망했는지, 알지를 못한다.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착한 조선이 어느 날 악한 일본에 억울하게 망하고 말았다고 알고, 그리 살고 있다. 그래서 좋은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또 망할 것인가. 18세기 외교관 조명채처럼 통분하며 살 것인가. 아니면 일본을 쪽발이라 비하하며 통쾌한 정신승리를 구가하며 살 것인가.
- 프롤로그 중에서

진실을 외면하는 순간, 치욕의 역사는 반복된다!
대한민국 사회가 심상치 않다. 정치, 경제, 안보, 외교 전 분야에 걸쳐 사상 유래 없는 위기의 증표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한일 관계는 백색국가 제외, 지소미아 폐기, 경제보복, 불매운동 등으로 이어지며 끝 모를 결말로 치닫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두 진영으로 나뉜 채 거친 논쟁을 거듭하는 중이다. 무능한 지도자, 굴욕적인 사대주의, 외교적 고립, 경제와 안보의 붕괴 등에 의해 500년 조선 왕조는 옹졸하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2019년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은 마지막 시기의 대한제국을 떠올리게 할 만큼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류성룡이 쓴 《징비록》은 처참했던 임진왜란의 상처를 돌이켜보며 잘못을 경계해 미래의 우환을 삼가기 위한 목적으로 기록한 책이다. 다시 말해 ‘실패의 역사에 대한 보고서’다. 이 책 《대한민국 징비록》 또한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비극의 반복을 막기 위해 기록되었다. 찬란한 역사, 자긍의 역사만을 배워온 우리에게 그늘 속 진실은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실패의 기록, 회한의 흔적 또한 우리의 역사다. 이런 과거의 경고를 무시하는 순간 비극은 또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불쾌한 반성!
저자 박종인 기자는 우리는 왜, 뼈아픈 과거를 겪었음에도 똑같은 역사를 반복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한국과 일본 전역은 물론 폴란드 현지를 취재하고, 온갖 사료와 서적들을 파헤친 끝에 그는 우리가 믿어왔던 것과 상반된 진실을 마주했다. 그렇게 완성된 책 《대한민국 징비록》은 과거를 겸허히 인정하고 미래를 바로잡기 위한 여정의 시작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바로 ‘1543년’이다. 이 해에 유럽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공인되며 대항해 시대를 맞이한다. 그 결과 같은 해, 세상을 향한 문을 연 일본에 철포가 전래된다. 그 철포를 거액에 사들여 일본식 조총으로 개량해낸 것은 불과 15세의 영주였다. 그리고 같은 해, 조선은 성리학 서원을 설립하며 세상을 향한 문을 더 굳게 닫아걸었다. 1543년을 기점으로 두 나라는 엇갈린 선택을 거듭하며 확연히 다른 미래를 향하기 시작했다. 조선이 폐기한 혁신적인 은 제련술이 어떻게 일본의 군사력을 만들어냈는지, 조선의 천민이었던 도공들이 어떻게 일본의 사무라이로 거듭났는지, 찬란했던 세종시대의 과학과 무기들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등등.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의 이면을 고스란히 접하게 될 것이다.

각성한 대중만이 비극을 막을 수 있다!
《대한민국 징비록》은 조선과 일본 두 나라의 미래가 엇갈린 1543년부터 대한제국이 멸망하기까지의 기록이다. 1부 <운명의 1543년>에서는 전 재산을 들여 철포를 일본에 전파시킨 15세 영주, 제 발로 굴러들어온 총을 창고에 처박아버린 명종, 그리고 중국의 속국을 자처하며 성리학 서원을 설립한 조선의 선택 등 1543년에 일어난 일들을 살펴본다. 2부 <닫아버린 눈과 귀>에서는 일본은 어떻게 세상의 문을 통해 서구와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며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나갔는지를 소개한다. 또한 성리학이 주도한 조선에서는 어떻게 상업과 공업이 억압되고 과학시대가 소멸되었는지를 냉철하게 파헤친다. 3부 <근대의 시작, 종말의 서막>에서는 조선과 일본이 근대화 시대에 대처한 선택의 결과를 다루며, 대한제국이 무기력하게 멸망해가는 모습을 상세히 보여준다.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를 보유한 조선에는 왜 서점이 없었는지, 개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조선의 혁명가들은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 그리고 자신의 즉위 기념행사에 나랏돈 13퍼센트를 써버린 고종의 이야기 등 그늘 속에 감춰져왔던 역사의 실체를 들여다보게 된다.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한 목적은 결코 우리의 역사를 비하하기 위함이 아니다. 뼈를 깎는 심정으로 써내려간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역사의 진실을 깨닫고 각성한 국민만이 반복되는 비극을 막을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정치 논리에 휩쓸려 실패한 역사의 반복을 지켜볼 것인지, 진실을 마주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것인지 말이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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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에 나왔어야 될 책이다. 아직도 국뽕의 환상에 빠져 이 책에 평점 테러를 가하는 사람들을 보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중국 문화의 찌끄러기를 고집스럽게 끌어 안고 살았던 조선이 왜 제대로 저항다운 저항 한번 못해보고 수치스럽게 망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
Little House 2020-02-28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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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공부 합시다
maitri 2019-10-01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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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괜찮은 글실력을 이런 데에 발휘한 걸까. 역사적 사실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이 책은 역사책이라기보다는 역사 에세이에 더 가깝다. 사료를 편의에 따라 골라서 전개하면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것쯤이야 손쉽다. 하지만 그것은 역사가 아니다.
xeric 2019-10-18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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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일본을 극복하지 못한 근대화 컴플렉스의 관한 저자의 인식이 드러나는 역작입니다. 여기저기 틀린 내용도 많고 특히 19세기 후반즈음의 메이지유신 자체에 초점을 두고 조선심판론의 담론을 조선역사 500년으로 때려맞추는 관점이라 감성배설서의 역할에 충실한 내용입니다.
ㄱㅅㄱ 2019-10-17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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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징비록




눈 뜬 놈이 센 놈미다. 남들보다 앞서 눈을 뜨고 각성한 놈이 힘센 놈이다. 그 놈이 만드는 게 역사다. 정의가 이긴다면, 도덕 공부나 하고 살면 된다.우리가 원하는, 보고 싶어하는 그대로 역사를 바라보면, 역사는 그저 정의롭다.그러면 일찌감치 눈을 떠 힘을 키운 놈이 우리 역사를 압살해 버린다.늘 그랬다. (-7-)


자기 용맨을 과신하고 신무기에 대해 파악하려는 노력도 하지 않은 대가가 부대원 몰살과 국가 패망이었다. 무장이 그러하건대, 문신들의 황당함은 말할 나위가 없었다. (-54-)


1741년 영조는 갑오정식 이후 설립된 모든 서원에 또 한 번 철폐령을 내렸고, 130년 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은 사액서원 47개를 제외한 모든 서원을 없애버렸다. (-71-)


조선에서는 모든 조서적인 가치를 옭아매는 철학, 성리학이 깊게 뿌리를 내렸다.그 모든 것이 1543년 그 해에 시작되었다. (-74-)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와미 은광 유네스코센터 전시장 초입에는 철포와 은과 회취법을 한 줄로 요약한 안내문이 걸려 있다.1526년 은광 발견, 1533년 회취법 도입, 1543년 철포 전래,안개처럼 조선 정치인들 손아귀에 들어왔다가 빠져나간 기회들이 나란히 적혀 있다. (-100-)


세종이 이룩해 낸 과학 기술 성과와 군사력은 100년 세월 동안 사라져 버렸고 조선 지도자들은 조선 땅에 거듭 들어왔던 철포를 외면했다. 철포를 만들 수 있는 자본, 은 또한 조선 땅 지하에 묻혀 버렸고 그 제련법은 일본으로 유출됐다. (-119-)


오사카 시내에 왜 서점이 가득했는지 ,오랑캐 의사가 왜 사람 몸 속을 들여다봤는지 조선 엘리트들은 궁금해 하지 않았다.일본 가는 곳곳마다 이층집이 즐비하고 집집마다 황금으로 치장을 하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이유에 대해 알려하지 않았다.남두민도 , 신유한도 잘못은 없었다.그런 의사와 그런 학자를 대량생산한 성리학과 성리학으로 장난을 친 조선의 지식 권력 시스템이 문제였다.문명사적 각성을 불가능하게 만든 시스템이었다. (-149-)


아리타는 임진왜한 때 조선으로 출정한 나베시마 나오시케가 조선 도공을 끌고 와 만든 마을이다.산꼭대기에는 도조 이삼평 기념비가 서 있다.(-227-)


책 매매는 성리학에 반하는 사업 행위였다.성리학적 윤리를 담은 책들은 모두 국가에서 편찬하고 출판하고 유통시켰다.공식적으로 책을 사고파는 민간 서점은 존재하지 않았다.유학자에게 필요한 책은 국가에서 금속활자나 목판으로 찍어 '나눠줬다"(-303-)


가난한 왕국 국왕은 기어코 제국을 건설했다.가난하기 짝이 없는 제국 황제는 거듭해서 궁궐을 수리하고 불탄 궁궐을 다시 만들라고 명령했다.돈 들여 키운 군사는 황궁 수비와 치안에 투입됐다.백성 기름과 피를 쥐어짠 세금은 황실 주머니로 들어갔다.갑신년과 병신년에 죽여버린 개혁파 인재들은 돌아오지 않았다.전제군주 황제는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 황제 눈에 든 근왕파들이 요직을 차지하고 서로 싸우며 '주식회사 대한제국'을 경영했다.참으로 허세였다. (-340-)


안빈낙도 하려면 나무늘보처럼 살면 된다.여러 나라 언어로 '나태하다'는 단어로 쓰이는 나무늘보는 세상에서 제일 게으르고 느린 동물이다. 근육량이 적어서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동작도 느리게 진화했다.하루에 나뭇잎 세장만 먹어도 생존이 가능하다.대신 하루 18시간 자을 잔다.전력질주하면 최고속도는 시속 200미터다.근육도 없고 그나마 맛도 없어서 남들보다 사냥감이 될 일도 적다. 안빈낙도의 전형이다.선비다. (-374-)


내가 사는 영주에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이 있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서는 선비정신을 강조한다.여기서 내가 그동안 생각해왔던 지역에서 강조하는 선비정신의 실체, 선비정신의 본질에 대해서 하나의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선비정신의 본질은 지자체가 강조하는 '인성'이 아니라 , 이 책에서 언급하는 나태함과 안빈낙도였다. 선비는 조선시대 착취의 주인공이었다. 중중 때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만들어지고 난 이후, 조선에는 성리학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성리학 그 자체는 아무 잘못이 없다.문제는 그 성리학을 받아들이는 사람, 주체가 잘못이다. 성리학을 조선시대의 주류의 시스템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상업이 배척되고, 농업이 발달한 이유가 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근대화 속도가 느려졌으며,세종 임금 때 우리가 자랑했던 조선의 과학기술이 등한시 되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조선의 사회가 세종 임금 이후 중종 때까지 정체되어 있는 과정에서 일본은 서구사회의 문물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조선을 삼키려는 야욕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기 시작하게 된다. 먼저 조선의 은을 채취하는 제련기술을 일본이 가져가게 되었고, 조선의 기술자들은 조선이 아닌 일본을 선택하게 된다. 그건 조선이 성리학을 도입하면서, 그들이 조선 땅에 설 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조선의 엘리트층, 우리가 자란스럽게 생각하는 선비들이 조선의 현주소를 너무나 모르고 살아간다는 점이다. 그들은 조선시대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였고, 시대의 변화에 역행하게 된다.그들의 허세는 자아도취에 빠져 들었고, 일본의 근대화를 남의 일처럼 치부하게 된다.일본은 일찌감치 서구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의학기술 또한 흡수하게 된다. 서구의 종교를 자신의 것으로 흡수하고, 나름대로 일본은 농업 뿐 아니라 상업 분야에서도 성장을 꾀하게 되었다. 그러나 조선은 그렇지 못하였다. 조선의 지식인층은 우물안 개구리 마냥 그들 사이에 우월감과 열등감,허세에 도취되고 있었다. 남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고, 남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못함으로서, 필연적으로 임진왜란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막땋뜨리게 된다.


일본은 기세 등등하였다. 조선을 금방 삼킬 듯하였다. 돌이켜 보면 지금 우리는 임진왜한의 주동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욕하고 비판하지만, 임진왜란의 본질적인 문제는 조선의 지식인, 즉 선비의 자가당착적인 사고방식에 있었다. 그들은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서툴면서 자충수를 두게 된다. 일본은 치밀하게 계산하고 조금씩 조금씩 조선 땅을 삼키려 했지만, 조선은 그렇지 못하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웠다. 선비정신을 강조하고, 소수서원의 가치를 강조해왔던 지역의 현주소가 이 책의 내용과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는 현실의 문제를 냉정하게 바라보지 못하고, 근시안적으로 문제를 풀려고 한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의 지식인들 중에는 조선의 선비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이들이 대다수이다.그래서 현재의 문제를 직접 깨닫지 못하고, 그들이 내놓은 대안이 현실과 접촉할 때 제대루 문제를 풀지 못하는 우려섞인 상황이 여전히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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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10-17 공감(7)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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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서


징비록을 읽고서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니 거의 같다 그때를 교훈삼아 다시한번 생각해 보는것이좋겠다
찬스최 2019-11-17 공감(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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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욕의 역사도 알껀 알아야 한다




찬란한 역사를 자랑하던 우리나라가 수백년동안 호시탐탐 노리던 일본에게 나라를 뺏기는 치욕을 당하고 광복이 된지 이제 반세기가 조금 지났다. 대륙의 중국이나 한때 세계 최강국이었던 몽골에게도 수십년을 버티면서 결코 굴하지 않았던 그 나라가 아니던가. 그것에 비하면 별로 저항다운 저항도 못해보고 나라가 망하고 말았다. 당시 조선은 일제가 아니라고 해도 망해가고 있었기에 그런 저항도 못했던 것이다. 이제와서 그것을 원통하게 여긴들 뭐하겠는가. 이제는 다시 그런 굴욕을 겪지 않기 위해 어떻게 왜 그렇게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다시는 그런일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나라 교육이 문제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그중에 하나가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이다. 너무 시험위주로 공부하다보니 역사 자체에 대한 흥미가 떨어진다. 그리고 역사가 긴 만큼 배울꺼가 많아서 왕조사 위주로 짧게 짧게 외우는거밖에 안한다. 그러니 맥락도 모르고 뜻도 모르고 역사에서 배우는것도 적다. 배우는 시간은 짧고 5000년의 역사를 알려고 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 역사에 멋진면이 있는것도 잘 모르고 반대로 망국의 역사도 잘 모른다. 개인적으로 조선망국사랑 독립운동사를 독립된 교과로 해서 자세히 다루었음 좋겠다. 실패를 알아야 그것을 대비하고 또 독립운동이 어떤건가를 알아야 그 어려움을 알수 있지 않겠는가.



이 책은 그중에서 왜 조선이 망해서 지금까지도 그 영향하에 있는가에 대한 고찰로 조선이 혁신하지 못하고 있을때 다른 나라는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우리가 어떤 이유로 뒤쳐지고 일본은 어떻게 발전을 해서 우리를 침략하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한다. 실패의 역사를 알자고 하는건데 지은이는 우리가 서양이나 일본과 격차가 생기게 된 기점을 1453년으로 보고 있다. 그때를 기준으로 우리는 망국의 길로 나아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453년 서양에서는 오스만제국이 동로마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 입성한 해이다. 그리고 혁명적인 사고인 지동설이 발표가 되었고 일본에서는 서양에서 철포를 들여오게 된다. 그리고 운명의 조선은 그때 서원이 세워진다. 서양이나 일본은 혁신적인 발명이나 이론이 정립이 되는데 조선은 성리학의 세계로 더 빠져들어가게 된다. 지은이는 이 차이가 결국 1910년의 치욕을 겪게 되는 기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좀 비약하는 면이 있긴 하지만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때 이후로 서양은 지리상의 발견을 하면서 국부를 키우게 되고 일본은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서양문물을 자기화하면서 국력을 키워나가는데 조선은 공리공론적인 이론에만 치우치게 된다는 말이다.



지은이는 조선 세종때의 눈부신 과학 발전을 소개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축소가 되고 결국에는 사라져버리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때 만든 기구가 수백년동안 방치되다가 그 운용법을 잃어버려서 작동하는 법을 모르는 상태가 되는것도 있었는데 참 한심할 뿐이었다. 기술이란것이 갈수록 좋아져야 하는데 어찌 수백년전의 기술에도 못미칠수가 있을까.



이에 반해서 서양은 차츰차츰 기술을 발달하게 되어서 나중에 산업혁명으로 단숨에 동양을 앞서게 되었고 조금씩 서양 기술을 들여오던 일본은 조총을 대량생산, 실제 전투에서도 씀으로써 기존의 전쟁 양상 자체를 바꿔버렸다. 그것을 바탕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것을 보면 그때까지도 우리에게 어느정도의 자산이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을 비롯해서 여러 신식 무기들을 보면 확실히 그때는 과거의 전통이 있었고 그런 전체적인 역량이 전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뿐, 말싸움만 하다가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어쨌든 평화시대가 도래했지만 더욱 더 성리학 위주의 나라가 되면서 시대를 타지 못했던 것이 결국 망국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싶다.



책은 여러가지 면에서 서양 및 일본과 당시 조선을 비교하면서 인식이나 제도면에서 하나씩 뒤쳐진것이 수년이 쌓여서 뒤쳐지게 되는 과정을 잘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것은 교과서에 나오지 않기에 이런일이 있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다음에 이런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대비할수있으니까.



책은 흥미롭게 잘 쓰여졌지만 이 책만 읽으면 안될꺼 같다. 분명 우리역사에는 자랑할만한 일도 많고 승리의 일도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 오랜 세월을 나라로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의 찬란한 역사도 알면서 이 책의 내용처럼 우리의 못한 점을 안다면 균형있게 역사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은이는 지금 이 시대를 구한말과 비슷하다면서 일본과의 현상황에 대해서 우리의 잘못인양 비판하고 있는데 비록 그 부분은 책에서 한 문장밖에 안되지만 그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현재의 상황을 만든 것은 분명 일본 잘못이고 우리가 이 시점에서 어떻게 대응하는가는 여러가지가 있을수 있는데 지금 대응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우리의 지정학적 위치가 예나 지금이나 열강들에게 둘러쌓여서 어려움을 겪을 상황이기에 어떤 정권 탓을 할 수는 없다. 게다가 지금 우리의 국력은 구한말이 아니다. 그때보다 훨씬 쎄진 국력이다. 물론 섬세하게 운용해야겠지만 지나친 패배주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에서 은근하게 그런 느낌을 받았는데 지은이가 그만큼 우리나라를 걱정하고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생각해서 쓴 글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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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리에르 2019-10-1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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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위기의 데자뷔










조선시대하면 주로 왕의 업적과 주변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공부를 했고 붕당정치와 쇄국정책으로 쇠락의 길을 걸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학창시절에는 주로 유구한 역사를 가진 선비의 나라이자 동방 예의지국이라는 등의 좋은 면을 더 부각해서 배웠던 것 같다. 하지만 과거사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조선시대의 모습이 한심스럽기 그지없다. 게다가 실질적으로 일본과 비교하면서 조목조목 다 까발려 놓은 걸 보니 더 기가 찰 노릇이다.



이 책의 전반적인 내용을 쉽게 말하자면 조선은 선비의 나라랍시고 실속없는 서원만 세워 이론 공부만 하다가 나라꼴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실전 따위는 개나 주고 방구석에 틀어박혀 말만 늘어놓으며 서로 잘난 채만 했다. 당연히 바깥세상을 제대로 볼 수 없으니 미래지향적인 사고방식이 될 리가 없다. 성리학을 너무나 중시한 탓에 다른 사상은 이단 취급을 했고 상업이나 과학 등을 천대 시 했다. 권력자들은 안정을 택하려고만 했으며 거대한 중국의 눈치만 보며 부국강병을 도모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1543년, 세상의 문이 열리고 있었다. 일본도 그에 맞춰 나라의 문을 열고 세계정세에 발맞춰가고 있을 때 조선은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죽어라 학문만 팠다. 그래서 일본은 흥했고 조선은 망했다. 역사 속에서는 늘 쎈 놈이 이겼다.











징비록이라 함은 다시 말해 반성문이다. 반성하고 다시는 이런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책이다. 그래서 위에서 간단히 언급한 모든 내용이 이 책 한 권에 상세히 기록이 되어 있다. 1543년을 기점으로 조선, 일본, 유럽의 정세를 한 번에 보여주며 한반도가 얼마나 한심하게 대처를 하였는지 뼈아프게 바라볼 수 있다.



유럽은 대항해 시대가 열렸고 피비린내 나는 무차별 영토 확장이 시작되었다. 일본까지 찾아온 유럽인들을 일본은 기꺼이 문을 열어 주었다.



아무도 몰랐다. 레콩키스타가 유대인 추방으로 이어지고, 유대인으로부터 강탈한 돈으로 콜럼버스가 대서양을 횡단하게 될 줄은. 아주 먼 훗날 엉뚱하게도 늪지대 가득한 소국 네델란드를 초강대국으로 만들더니

마침내 극동의 섬나라 일본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대국으로 만들게 될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 1543년까지는. -p.30



일본이 유럽에서 철포를 두 자루 구입할 때 조선은 서원을 세웠고 코페르니쿠스는 지동설을 주장했다. 이 얼마나 대비되는 상황인가. 고작 서원이라니....



일본이 사들인 철포 두 자루가 조선을 쑥대밭으로 만드리라고는 그 누구도 몰랐다. 서원을 세운 것이 뭐가 문제냐고 하겠지만 그 폐단은 정치였다. 정치 뒤에 부패권력이, 부패권력 뒤에 교육은 참담했다. 성리학이 나라를 망친 꼴이다. 일본이 철포 두 자루를 들고 연구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 동안 조선은 철포를 처박아두었다. 그 뒤 조선을 침략한 일본은 우리의 도자기 장인들을 납치해서 발전시킨다. 도자기 무역으로 짭짤하게 번 돈으로 군수산업에 투자해 세계정복을 꿈꿀 동안 우리는 철저히 쇄국정책만 고집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의 것조차 제대로 지키지도 못하고 숨이 끊어진 것이다.



본질적인 원인은 조선 권력의 가면 뒤에 숨어 있다. -p.238​










일본은 네덜란드와 독점 무역을 통해 나라 정세가 빠르게 변화한다. 자국민을 유학 보내 무엇이든 신문물을 배우게 한다. 일본이 발 빠르게 교류를 넓혀갈 동안 조선은 찾아오는 외국배도 내쫓고 더욱 폐쇄정책을 고집한다.

일본이 은으로 무역을 하며 돈을 벌 동안 조선은 금은 광산을 폐쇄하는 등 일본 경제가 탄탄해질 동안 조선 경제는 망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일본이 조선을 찾지 않았던데는 더 배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개국, 목숨을 건 쇄국이었다.










나라가 변하기 위해서는 국민 의식이 변해야 한다. 일본이 개방정책을 펴서 서양문물을 흡수하기 바빴다면 조선은 한글을 창제하고도 서민들의 개화는 더뎠다. 글과 지식을 독점하고자 하던 지도자들로 인해 서민들은 책을 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고 어려운 한자와 병행된 글을 읽을 수조차 없었다.

그에 반해 일본 지도자들은 지식을 대중과 공유했고 다양한 학문이 활성화되어 전문서적이 출간되고 대형서점도 생겨났다. 서점 없는 나라, 조선의 미래는 이미 예견된 불행의 길을 걷고 있었다.



고종집권당시 지식인들이 나섰음에도 혁명이 실패로 돌아간 데는 무능한 왕과 무지한 민중 때문이었다. 기운을 다 빼버린 고종 때문에 분노한 민중의 목소리도 힘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것이 500년 왕조의 적나라한 현실이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여전히 일본에 경제적으로 뒤지고 있을 수만은 없다.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기회로 삼을지는 우리에게 달렸다. 현 정세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길러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내 반성문만 쓰다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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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과 별사탕 2019-10-11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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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있는 지도자와 호민이 필요할 때




박종인 저 대한민국징비록을 읽었다. 가슴이 아리다. 동방의 성리학을 완성하고 이를 500년 왕국의 국가철학으로 이어져왔는데 그것이 망국의 원인이었다는 결론을 보게 되면서이다.

난 다시 생각해봤다. 인륜을 함양하고 이를 생활 문화에 심어놓은 것은 높은 도덕의 인간을 육성하는 국책사업으로서 맞는 것이라고. 그런데 그 지도자들, 왕과 국정의 대소신료들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각성하지 아니하고 개인의 혹은 집단의 권력욕에 사로잡혀 백성의 혼을 나약하게 하였다고. 호민(豪民)을 기르지 않아 대중의 각성없이 무엇이 위험하고 무엇이 기회인지를 인식하지 못하게 하였다고...마침내 조선은 망했고 그 백성의 삶은 참담하였다.



1543년, 유럽은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지동설이, 일본은 데지마에서 화란으로부터 총포2정을 들여왔다. 조선은 영주의 백운동서원을 세웠다. 이후 300여년후에 조선이 세계열강의 먹이가 되었던 씨앗이 된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후 저자가 실록과 외교문서, 참고문헌 등의 사료를 바탕으로 적나라하게 써내려간 징비록이다. 보통의 책이었으면 5일내에 다 읽었을 책의 두께였는데 열흘이 넘게 걸렸다. 그만큼 읽어나가는데 가슴이 먹먹하고 분노가 치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내린 결론은 단순명쾌하다.



쎈놈이 이긴다. 이긴 놈이 기록에 남는 역사를 쓴다.



우리나라는 조선 개국이래 성리학을 도입하여 도덕군자연하다가 나라를 걸어잠근채 장님과 귀머거리로 살다가 마침내 오랑캐라던 이웃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다. 치욕도 이런 치욕이 있을런가. 다 못난 지도자의 탓이 크다. 그가 고종이다. 신문물을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오직 왕권강화와 정치생명 연장, 훗날의 안락을 도모할 뿐이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이 이제와서 친일파 패주기가 극성이다. 일본은 자기보다 나은 것이 있으면-신문물에 대해- 어떻게든 배워서 거듭나려고 하였고, 우리는 코웃음치며 뭐 아무일 없다는듯이 지냈다. 사대만 하면 끝이었다. 망국적 사대주의..



중국과 북한을 믿을 수 있는가? 그들은 한국을 자기네 팽창 패권주의에 도구로 쓰려고 하지 않는가? 북한은 3대째 대를 이어 혁명-남한 복속통일-을 완수하려고 온갖 무력을 증강시켜오지 않았는가? 우린 과연 살아남아 대한민국의 문화를 확장시키고 그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까?



지금의 정치 지도자에게 모든 것을 맡겨도 되는 것인지...깨어있는 국민들이 필요한 시기이다. 개방과 혁신을 끝까지 추구하지 아니하고 조선의 붕당정치처럼 국가를 팽겨칠 때는 어김없이 나락으로 굴러떨어짐을 국가지도자는 늘 명심해야 할텐데..그런 인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신 구한말’의 엄중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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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geocoex 2021-02-13 공감(2) 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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