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노태우 前대통령 추모시.."질긴 질경이꽃"김연정 입력 2021. 10. 29. 12:29 수정 2021. 10. 29. 17:22 댓글 366개
노태우정부 신설 문화부 초대장관 지내
(서울=연합뉴스) 김연정 홍준석 기자 = 노태우 정부 당시 신설된 문화부의 초대 장관을 지낸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조시(弔詩)를 띄웠다.
29일 노 전 대통령 유족에 따르면, 이 전 장관은 병상에서 쓴 글이라며 '영전에 바치는 질경이 꽃 하나의 의미'라는 제목의 조시를 보내왔다.
조시는「남들이 고인의 영전에 국화 한송이 바칠 때에 용서하세요. 질경이꽃 하나 캐다 올리겠나이다. / 하필 마찻길 바퀴자국 난 굳은 땅 골라서 뿌리내리고 꽃 피운다하에 차화(車花)라고도 부르는 잡초입니다. / 독재와 독선, 역사의 두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 밑에서 어렵게 피어난 질긴 질경이 꽃모습을 그려봅니다.」라는 구절로 시작한다.
이어 「남들이 서쪽으로 난 편하고 따듯한 길 찾아 다닐 때 북녘 차거운 바람 미끄러운 얼음위에 오솔길 내시고 / 남들이 색깔이 다른 차일을 치고 잔칫상을 벌일 때 보통 사람과 함께 손 잡고 가자고 사릿문 여시고 / 남들이 부국강병에 골몰하여 버려둔 황야에 세든 문화의 집 따로 한 채 만들어 세우시고 / 이제 정상의 영욕을 역사의 길목에 묻고 가셨습니다.」는 내용이 담겼다.
조시는 「어느 맑게 개인날 망각에서 깨어난 질경이 꽃 하나 / 남들이 모르는 참용기의 뜻, 참아라 용서하라 기다려라 / 낮은 음자리표 바람 소리로 전하고 갈 것입니다.」는 구절로 마무리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2020.1.9) [촬영 홍해인]
이 전 장관은 조시와 함께 유족에게 보낸 글에서 "몸이 성치 않아서 옛날같이 글을 쓰지 못하고 컴퓨터 입력도 어려워 음성입력으로 쓰다 보니 부끄러운 글을 되풀이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군사독재와 문민 독선의 두 역사의 수레바퀴에 굳어진 정치풍토에서 모든 고정관념과 편견 속에서 싸우시면 질기고 질긴 질경이 꽃을 피우셨다"며 "보통사람의 시대, 북방외교 시대, 그리고 문화부를 처음 신설해 문화를 여신 업적이 바로 그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요즘 사람들은 꽃집에서 파는 꽃만 알고 질경이꽃은 모른다. 질경이 풀은 잡초가 아니라 만병을 치유하는 약초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며 "병문안도 드리지 못한 채 불경스럽게 조시를 쓰고 있는 저의 참을 수 없는 아픔을 통찰해 주시고 서툰 글 너무 꾸짖지 마시기를 빈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그는 지난 28일 빈소를 직접 찾아 조문했고, 노 전 대통령의 국가장을 주관할 장례위원회의 유족 측 장례위원에도 이름을 올렸다.
yjkim8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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