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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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우문에 대한 현답》

나라임자추천 0조회 7420.01.17 05:20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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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출판 보고사에서 발간한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우문에 대한 현답》



신간 안내(보도 자료)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는《세종은 과연 성군인가》(2018)라는 책에서 세종은 양반들을 위한 성군일지라도 만백성의 성군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 우리 사회의 충격파를 던져 준 바 있다. 《세종은 과연 성군인가, 우문에 대한 현답》은 바로 이영훈(2018)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전면적으로 반박한 책이다.

이영훈(2018)이 출간 된 뒤 2018년 6월 여주대학교 박현모 교수가 주간조선을 통해 이영훈의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했고, 약 두 달 동안 몇 차례에 걸쳐 같은 지면을 통한 공방이 있었으나, 이영훈(2018)에 대해 한 권의 책으로 전면 반론을 제기한 책이 출간된 것은 처음이다. 또한 전문가가 학술적으로 출간한 책 내용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박한 책을 출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세종과 세종시대를 연구하는 원정재(대표 임종화) 저자들은 이영훈(2018)이 《세종실록》 등의 역사 기록에서 자신의 주장에 적합한 부분만을 잘라 내세우고, 흐름을 이해할 수 있는 다른 기록을 외면하는 방법으로 세종을 깎아 내리는데 집중한 것으로 보았다. 특히 세종이 재위 32년 동안 행한 긍정적인 부분은 거론하지 않고, 오로지 부정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것을, 그것도 대부분은 사실이 아닌 것만 인용해 세종이 부도덕하거나 무능한 군주였던 것으로 평가받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고 독자들이 이를 사실이나 진실로 받아들일 위험성이 있다고 보았다.

이영훈(2018)의 주장을 네 장으로 나눠 반박한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각 장의 핵심내용



1장 세종의 사대는 위민보국의 전략이다 _ 임종화



이영훈(2018)은, “21세기 현대 한국에서 세종을 성군으로 받는 것은 환상이고, 그러한 환상을 방치하면 이 나라는 다시 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영훈이 ‘세종을 성군으로 받는 것은 환상’이라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세종에 의해 사대주의 국가체제가 정비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한 근거들은 사실과 다른 부분과 왜곡 해석한 부분이 아주 많다. 핵심내용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조선은 기자조선을 이은 나라라는 주장 등에 대해

이영훈은, “조선이 고려라는 국호를 폐하고 기자조선을 잇는 국호를 자청한 것은 한국문명사에서 더없이 큰 단절을 의미한다.”라고 했으나 조선이라는 국호는 단군조선에서 이어져 온 것이다.



세종이 진헌할 처녀를 16차례나 간택했다는 주장에 대해

이영훈은, ‘세종 8년 12월부터 9년 4월까지 이루어진 진헌에서 세종은 16차례나 처녀를 직접 간택하였다. 혹시나 새로운 황제의 심사에 어긋나는 처녀여서는 곤란하였다.’라고 했는데, 이 시기에 세자빈 간택과 진헌할 처녀의 간택이 겹친 것이다. 진헌할 처녀를 간택했다는 기사는 4건이다.



해청(海靑)을 진헌하는 일에 대해

이영훈은, “해청(海靑)을 진헌하는 일은 당초 황제가 적극적으로 지시한 것도 아니었다. 잡히면 바치라는 정도의 권유였다.’”라고 했으나, 당시 황제인 선덕제는 수차례 문서를 보내 해청(海靑)을 잡아 바칠 것을 지시했다.



2장 세종은 과연 노비 양산과 억압 원인을 제공했는가 _김기섭



이영훈(2018)은 세종이 노비 양산과 억압 원인을 제공했다고 주장하면서 “21세기에도 과연 세종은 성군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그뿐 아니라 세종이 백성들의 법적 권리를 위축시키고 노비의 권리를 박탈했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을 들여다보면 실록의 기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사실과 다른 근거를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영훈(2018)이 제기한 주장의 문제점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영훈(2018)은 “조선 왕조는 노비를 죽인 죄인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라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세종은 노비를 함부로 대하고 죽인 양반에게 장을 치고 직첩과 벼슬을 빼앗고, 지방으로 내쫓기까지 했다. 집현전 권채는 세종이 아끼는 둘도 없는 신하다. 하지만 그가 노비를 잔혹하게 고문하고 학대하자 세종은 그의 직첩을 빼앗고 귀양까지 보낸다.



둘째, 이영훈(2018)은 실록의 기사를 자의적인 해석하여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컨대 세종이 노비를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한 변계량의 말을 아름답게 여겼다고 주장하면서 세종을 몰인정한 임금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세종 8년(1426) 12월 8일의 기사를 잘못 해석한 것이다. 세종이 아름답게 여긴 것은, ‘살인은 비록 중하지만 노비를 죽이는 것과 같은 것이 어찌 경하지 않다 하겠는가.’라는 주자의 말이 아니라 앞말에 이어지는 변계량의 다음 말, 즉 ‘이제 만일 형벌을 잘못 써 죽게 한 자가 있다면, 비록 법을 세우지 않더라도 율(律)에 따라 논죄(論罪)하는 것이 또한 무엇이 어렵겠습니까.’이다.



셋째, 그의 주장의 대부분은 근거가 부족하다. 이영훈(2018)은, 노비제는 집현전 학사들이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집현전 학사들이 노비제와 관련하여 이렇다 할 주장을 하였다는 실록 기사는 제시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세종의 노비제도와 관련한 이영훈의 비판은 부끄럽게도 편협하고 오류투성이다.



3장 훈민정음 한자음 발음기호 창제설은 허구다_김슬옹



이영훈(2018)은 훈민정음은 양반 사대부들의 한자음 적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것이니 세종은 양반들의 성군일 수 있는 있어도 만백성의 성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훈민정음 창제 핵심 동기가 한자음 발음 적기라는 이른바 ‘한자음 발음기호설’은 관련 핵심 문헌(훈민정음 해례본, 실록)과 창제 전후 맥락으로 보아 성립할 수 없는 견해다. 이영훈(2018) 주장의 핵심 문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훈민정음 발음기호설은 1차적인 훈민정음 창제 대상을 양반으로 보는 모순이 있다. 이는 창제자인 세종이 직접 1차 대상이 한자 모르는 백성임을 밝혔으므로 모순이다.

둘째, 세종은 한자음이든 순우리말이든 우리말을 제대로 적기 위해 만들었는데 이를 무시하고 있다. 15세기 말이든 지금의 말이든 우리말은 토박이말과 한자말로 이루어졌다는 것은 기본 상식인데, 이를 무시하고 마치 한자음만을 적기 위한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해례본에서 예를 든 123개의 낱말은 논란이 될 수 있는 한두 낱말을 제외하고는 한자어가 아닌 순우리말로만 이루어져있다. 한자음 발음기호로 만들었다면 순우리말로만 예로 들 필요가 없다.

셋째, 한글 창제에 관해 논하려면 마땅히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할 ≪훈민정음≫ 해례본을 기본 문헌으로 삼아야 한다. 해례본에는 세종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이유와 목적이 세종과 8인의 사대부들의 입을 통해 자세하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이영훈은 이를 무시하고 있다.

넷째, 훈민정음의 창제 핵심 동기는 한자 모르는 백성의 문해력이었으므로 한자음 적기는 부차적인 목적 가운데 하나임을 말해주는 논저들이 무수히 많은데도 일체 무시하고 참고하지 않았다.



4장 진정한 성군은 어떤 의미인가_권오향



이영훈(2018)은 사대부들이 세종을 '해동의 요순'이라고 추앙한 것을 그는 오히려 백성을 뒤로 하고 사대부와. 한통속의 왕이었던 양 글을 써서 세종을 폄하하였다. 이는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역사사료 고증에 대한 선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맹자가 “옛사람을 논하려면 그가 시를 외우고 글을 읽음과 당시 그가 한일과 행동을 논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세종을 평가하려면 당시의 세(勢)를 알고 그의 인간됨과 지식수준을 보고 다음으로 정치적 업적을 살펴야한다.

조선은 개국하며 성리학을 정치사상으로 택했다. 성리학은 민본정치를 행하되 사대부 지식인이 정치 주체가 된다. 왕을 중심으로 토의는 하나 삼정승이 의논하여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사대부들이 왕을 칭송하는 것은 왕이 칭찬 받을만 했고 그들에게는 맡은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내각중심의 정치와 유사한 점이 있다.

세종은 나면서 영특하였고. 책읽기를 좋아해서 경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분의 책을 읽어 전문적 지식까지 쌓아 대신 중 누구도 그를 따를 자가 없었다고 전한다. 게다가 효제(孝悌)를 행하여 나라 안팎에서 칭송하였다고 태종실록과 세종실록에 전하고 있다. 또 많은 치적을 쌓아 왕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책 끝머리에서 원정재 대표 임종화는 이승만학당주식회사 대표이사 이영훈이 이영훈(21018)을 집필한 목적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띠우기 위한 수단인 것으로 판단했고, 이영훈이 4. 19민주혁명 주체를 이승만 등이 이식하고자 했던 가치와 이념에 저항한 세력으로 폄하한 것의 부당함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영훈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성군은 아니더라고 존숭 받는 인물로 삼고자 한다면 그의 치적과 인품을 소개하는 글을 써서 설득할 것이지 세종을 막무가내로 끌어 내리는 이영훈의 의도는 옳지 않다.



각 장별 저자 소개

1장 임종화 원정재 대표. 세종실록연구가

2장 김기섭 세종리더십개발센터 대표, 세종리더십연구자. 전 용인송담대 기초교양교육센터 교수

3장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세종대왕기념사업회 전문위원, 세종대왕나신곳성역화국민위원회 사무총장
4장 권오향 철학박사(중국 철학 전공) (사)인문예술 연구소 선임연구원. 전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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