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3

“‘하면 된다’로 선진국 된 한국...‘정치 과잉’으로 망할 수 있어” - 조선일보

“‘하면 된다’로 선진국 된 한국...‘정치 과잉’으로 망할 수 있어” - 조선일보

“‘하면 된다’로 선진국 된 한국...‘정치 과잉’으로 망할 수 있어”

[송의달이 만난 사람] 39년째 한국 특파원 근무 중인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
송의달 선임기자
입력 2021.10.22 

한일(韓日)국교 정상화 후 최장수 서울특파원이자, 대한민국 정부 수립후 최장기 주한(駐韓) 외국 언론인이 있다. 올해로 58년차 현역 언론인인 구로다 가쓰히로(黑田勝弘·80) 일본 산케이신문 객원논설위원이다. ·

교토대 경제학부 졸업 후 1964년 교도통신에 입사한 그는 1978년 서울에서 1년간 한국어 연수를 했다. 이후 교도통신 서울지국장(1980~84년), 산케이(産經)신문에서 서울지국장(1989~2011년), 특별기자 겸 논설위원, 서울주재 객원논설위원으로 명함만 바꾸었을 뿐 만 38년동안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80평생의 절반 가까이를 한국에 쏟아부은 셈이다.

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객원논설위원은 한국의 참 모습을 알기 위해 국내 지방을 자주 찾아간다. 2021년 봄 경북 고령의 왕릉 주변에서 찍은 모습/구로다 가쓰히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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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의식 품고 39년째 서울특파원”

1990년대 초 김영삼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 장소에서 ‘구로다 상’이라고 직접 불러 그를 유명 인물로 만들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시절 대학강사 겸직 문제로 추방 위기를 겪었고, 이명박 대통령 때는 정부의 ‘음식 세계화’ 품목인 비빔밥에 대한 문제제기로 논란을 빚었다.

하지만 “나는 한국에 대한 미안함과 속죄의식으로 특파원 생활을 시작했고 그 마음은 지금껏 변함없다”고 말한다. 서울을 거쳐간 수많은 일본 언론인들 가운데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며, 널리 알리는 ‘애한(愛韓), 친한(親韓)파’라는 고백이다.

그의 한국 생활과 한국관은 어떤지, 특파원으로서 소회 등을 듣기 위해 이달 14일과 19일 서울 광화문에서 구로다 기자를 두차례 만났다.

2009년 12월 26일자 산케이신문에 실린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의 비빔밥 칼럼. 그는 이 글에서 "비빔밥이 한식 세계화의 대표선수로 적합한지 의문"이라고 했다./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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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생활이 올해로 39년째인데?

“눈깜박하는 사이에 지나갔다. 지겹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들어본 적 조차 없다. 끊임없는 자극과 재미, 매일 쏟아지는 기사거리에다 세계 어디에도 없는 한일(韓·日)의 깊은 인연으로 서울 생활은 너무 재미있다.”

- 한 나라에 이렇게 오래 특파원으로 일하는 경우가 일본에 자주 있나?

“일본 언론계에서도 처음이다. 그런 점에서 전문성에 대한 경의(敬意)랄까, 경험과 경륜을 존중하는 산케이신문은 특이하고 감사한다.”

부인과 두 딸은 도쿄에서, 본인은 서울 신촌사거리 일대에서 줄곧 지내 온 그는 “온 몸으로 한국을 알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살고 있다”고 말했다.


◇“호기심과 예의....매일 신문 4개 2시간 읽어”

- 언론인으로서 원칙, 신념이 있다면?

“호기심과 낮은 자세, 예의(禮儀), 일본인으로서의 긍지를 갖자는 것이다. 매일 개척 정신으로 임하고 있다.”

- 요즘 서울 생활은?

“오전 6시30분부터 집에서 조선일보를 시작으로 한국의 4개 신문을 2시간 동안 정독한다. 밤 12시쯤 한국과 일본 마지막 뉴스를 본 다음 잠자리에 든다. 32년째 한 주(週)도 쉬지 않고 매주 연재하는 ‘서울에서 여보세요’ 코너를 비롯해 산케이신문에 매주 1회, 매월 2회씩 기사와 칼럼을 써서 보내고 있다.”

그는 “신문사로부터는 고정 월급 없이 원고료만 받으며 TV프로 출연, 잡지와 인터넷 매체 기고 등도 한다”며 “최근 1년은 성균관대 이대근 명예교수가 쓴 700쪽 분량의 ‘귀속재산 연구’(※귀속재산은 1945년 해방 때까지 일본인이 한반도에서 축적한 재산으로 한국에서는 ‘적산(敵産) 재산’으로 불린다)라는 책을 500여쪽의 일본어로 번역·출간하느라 더 바빴다”고 했다.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가 쓴 <귀속재산 연구>의 일본어판. 2021년 10월 초 일본 문예춘추사가 냈다.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는 번역 겸 감수를 했다./amazon japan 캡처


◇“조용필의 ‘대전 블루스’ 듣고 한국에 매료”

- 한국 특파원을 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1971년 사회부 기자 시절 취미삼아 매주 1회 재일교포 노인에게서 한글을 배웠다. 그러다가 그해 여름 1주일 한국에 여행왔다가 조용필의 ‘대전 블루스’ 노래를 듣고 매료돼 한국을 제대로 탐구하는 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 특파원의 매력은 무엇인가?

“기자는 아래위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일한다는 게 좋다. 특파원은 해당 국가에서 자기책임으로 한 나라를 이해하고 알리는 무거운 책무를 지고 있지만 엄청난 보람과 지적(知的) 쾌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다.”

- 다른 주한 특파원들과의 차이점이라면?

“1971년 한국 첫 방문시 내가 처음 찾아간 곳은 3.1운동 당시 독립 만세를 외치다 완전히 불타버린 수원 제암리 교회였다. 진보 성향의 청년으로서 한국에 대한 속죄의식, 미안한 마음을 갖고 편견없이 있는 그대로의 한국 모습을 취재해 알리고 싶었고 지금도 똑같다.”


그는 “산케이신문사의 영입 제의를 받고 ‘현지에서 계속 일하고 싶다. 한국 주재 근무를 기한없이 맘껏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걸고 수락받은 다음 옮겼다”고 했다.

- 하지만 한국에서 구로다 기자는 ‘극우(極右) 성향’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친한파’, ‘배신자’라며 나를 비난하는 글과 댓글들이 넘친다. 나는 기자라는 직업에 충실해오고 있다고 자부한다. 산케이신문의 한국 관련 사설(社說과 보도 내용을 반박하는 글을 산케이신문의 내 고정 코너에 실은 적도 여러번이다. ‘극우’라는 브랜드는 한국인들이 붙여줬을 뿐이다.”


“최고 애창곡은 나훈아의 ‘고향역’이고 ‘머나먼 고향’ ‘비내리는 고모령’ 등도 즐겨 부른다. 일본엔 없는 한국의 탕(湯) 종류 음식을 좋아한다.”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의 취미는 한국 지방에서 하는 계류 낚시이다. 그가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들어 보이고 있다./구로다 가쓰히로 제공


◇“나는 가만 있는데, 한국 사회 왼쪽으로 이동”

- 한국인들에게 왜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졌을까?

“김대중 대통령 시절 산케이신문 계열사가 우익 성향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 ‘산케이신문=극우’라는 이미지가 한국에 형성됐는데 이게 나에게 덧씌여졌다. 나는 ‘구로다와 산케이는 그대로 있는데 한국 사회가 왼쪽으로 많이 기울어져서 그렇게 보이는 게 아니냐’고 한국과 일본 친구들에게 얘기한다.”


- 문재인 정부의 북한과 중국 접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중국이나 북한식 국가 체제를 가치관이나 인생관으로 삼고 있는 한국 정치인은 없다. 정치적 동기나 외교적 수단으로 이용하는 인상인데, 한국이 많이 성장한 만큼 자신감을 갖고 이런 시도를 하는 걸로 본다. 나는 한국인들을 믿고 그들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일본 지인들에게 얘기한다.”

이런 입장은 “미일(美·日) 자유민주 가치 동맹에서 한국이 이탈해 중국의 속국(屬國)이 되고 있다”는 일본내 극우 시각과는 궤를 달리하는 것으로, 구로다 기자가 한국 사회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 한국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라면?

“1986년 아시안게임 개막식 때였다.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현장에서 ‘한국이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 행사를 주최할 정도로 국제적 나라가 됐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했다. 지금도 그 순간이 생생하다.”

광주광역시와 대구광역시가 2021년 5월 26일 국회에서 '2038년 아시안게임 공동유치 선언'을 했다. 우리나라는 서울에 이어 부산과 인천시가 아시안게임을 각각 주최한 바 있다./광주-대구광역시 제공
◇“한국 관련 책 40권...9만~10만부 팔리기도”

- 한국 관련 책도 많이 쓰지 않았나?

“일본에서 45권, 한국에서 9권을 냈다. 45권 가운데 한국 관련 단행본이 40권이다. 시사(時事) 문제 외에 <한국을 걷는다> <한국을 먹는다> <박근혜의 혼밥, 문재인의 혼밥> <한글은 재밌다> <한글은 어렵지 않다>처럼 여행, 음식, 한글 배우기 같은 한국의 면모를 다양하게 살펴보는 책들을 꽤 썼다.”

그는 “<한국인의 발상>과 <반일 감정의 정체>는 일본에서 각각 10만부, 9만부 팔렸고 1983년 한국에서 출간한 <한국인 당신은 누구인가>는 10만부 정도 판매됐다”고 밝혔다.

구로다 가쓰히로 기자가 1983년 출간해 한국에서만 10만부 팔린 책(왼쪽). 그가 2001년 낸 한국 음식 관련 서적(오른쪽)/송의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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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40년 만에 선진국 됐다”

- 일본내 한류(韓流) 붐이 불 때, 구로다 기자의 인기도 매우 높았겠다.

“그렇다. 특히 1986~88년 일본에 1차 한류 붐으로 가수 조용필이 일본 열도 전국 순회공연을 할 무렵, 나는 TV 출연과 특강 등으로 신문사 월급 보다 외부 수입이 더 많았다.”

지금도 일본의 각종 TV 등 언론 매체와 시민단체, 정부 기관 등은 그를 수시로 초청한다.

구로다 기자는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에서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를 비롯해 수많은 사건과 사고가 있었지만, 분명한 것은 개개인의 질서 의식이 높아지고 매사에 깨끗한 선진국이 됐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1995년 6월 29일 오후 지상 5층 건물이 순식간에 붕괴된 서울 서초구 삼풍백화점 사고 현장 모습/조선일보 DB

- 한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하면 된다’는 경쟁심과 상승(上昇)지향 의식이다. TV프로그램이나 저녁 생활, 음식 모두 한국은 역동적이고, 재밌고, 에너지가 넘친다. 한국의 장점은 변화에 대한 민감함과 모험(venture) 정신이다.”

◇“스페셜리스트를 천대하는 한국”

- 단점이나 부족한 점이라면?

“급속한 인구 감소와 고령화가 구조적 취약점이다. 기초와 기본을 경시(輕視)하고 한 분야를 깊게 파는 프로의식도 빈약하다. 평생 한 분야를 파는 스페셜리스트를 바보처럼 여기는 풍토도 있다. 한국이 단단한 선진국이 되려면 한 업(業)에 평생을 거는 스페셜리스트들이 많아야 한다.”

- ‘한국도 선진국이 됐다. 더 이상 일본에서 배울 게 없다’는 시각도 일부 있다.

“1980~90년대 ‘세계 1위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라는 예찬이 퍼졌을 때, ‘서양에서 배울 게 없다’고 생각한 일본인은 없었다. 선진국은 양(量)이 아니고 질(質)이다. 지금 중국을 선진국이라고 하는 사람 있나?”
에즈라 보겔 하버드대 교수가 1979년 출간한 <Japan As Number One>.일본인의 근면성과 정확함과 성실성 등을 예찬했다. 그해 일본에서만 50만부가 팔렸다./amazon.com 캡처

- 한국에선 툭하면 대기업들을 때리고 있다.

“삼성, 현대차, LG 등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면서 한국도 ‘경제 국가’, ‘기업 국가’가 됐고 이 덕분에 선진국이 됐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기업과 기업인을 비난한다. 국제 무대에서 경쟁을 이기고 돈 버는 행위를 폄하하고 있다.”


◇“‘
정치 과잉’에다 正義, 도덕만 최고로 여겨”

-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정치인과 지식인, 언론인들이 정의(正義), 도덕, 공정만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이 ‘유교적 도덕 국가’로 되돌아간다는 느낌도 든다. 이는 한국이 글로, 즉 머리로 산 선비들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일본은 개척 농민인 사무라이가 움직여 왔다. 몸으로 부딪쳐 온 사무라이 영향으로 일본은 실용주의 마인드가 지배적이다.”

- 앞으로 한국 사회를 위협하는 요인이라면?

“가장 큰 위협은 ‘정치 과잉’이다. 정치란 중국의 요순(堯舜)시대처럼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최상이다. 그러나 한국은 청와대 신문고와 광화문 시위에서 보듯 국민들의 직접 정치가 일상화돼 있고 정치적 관심이 너무 뜨겁다. 정치 과잉이 한국 기업과 경제에 상처를 입히고, 국제관계에까지 악영향을 주면 한국 사회의 진운(進運)에 큰 타격이 될 것이다.”

2004년 초 서울 광화문 사거리에 일반 시민과 시민단체 회원등이 모여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조선일보 DB

구로다 기자는 “한국 정치는 시대에 맞게 국민이 선택하며 절묘하게 진행돼 왔다는 점에서 감탄할만하다”면서도 “정치 과잉시대 졸업 여부가 한국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사에 대한 집착과 집요한 공세”

- 일본에서 반한(反韓), 혐한(嫌韓) 정서가 더 깊고 넓어지고 있다. 왜 그런가?

“한국인들의 과거사 문제에 대한 집요한 공세와 집착 탓이 크다. 위안부, 징용공, 독도, 소녀상 등. 일부 한국 정치인의 도쿄올림픽 보이콧 주장은 이웃나라의 스포츠 잔치에 재를 뿌리려는 심보로 큰 역풍을 불러 일으켰다.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처리문제도 미국, 유럽 등은 문제없다는데 한국만 비판적이다. 한국에선 과학적이고 냉정한 대일(對日) 관점은 거의 없고 과거사에 기초한 감정적 분출만 횡행하고 있다.”


일본 도쿄역 마루젠 서점에 2017년 당시 혐한 서적들이 진열돼 있다./조선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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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생 언론인으로서 한국 언론의 일본 보도를 평가한다면?

“일본 사회의 다양성과 구조 변화를 간과하고 한국만의 고정된 과거 시각에 머물며 감성적 보도를 하고 있다. 이는 한국 독자들을 오도(誤導)하고 한일 관계 진전을 가로막는다. 예컨대 욱일기(旭日旗)를 문제삼는 나라는 전 세계에 한국 뿐이다. 국제 감각과 국제 기준없이 한국만의 잣대로 일본 보도를 해서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그는 “하지만 혐한(嫌韓) 감정이 지배하는 정치와 별개로 민간은 완전히 따로 움직인다. ‘K팝 한류’ 붐이 다시 불면서 최근 한글 학습서를 써달라는 일본 출판사의 부탁을 받았다”고 말했다.

- 앞으로 계획은?

“딸이 시집 가 있는 대만에서 특파원을 하면서 대만과 중국쪽에서 한반도를 조망하는 기사를 써보고 싶다. 그때에도 지칠줄 모르는 호기심으로 승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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