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 분단의 내면화인가, 평화통일인가? > 특집 | (재)기독교서회
(2015년 8월호)
평화통일로 가는 길, 기독교가 가는 길
참석자 : 김영주, 소강석, 손봉호, 윤경로, 박종화
장소 : 대한기독교서회 회의실
시간 : 2015년 7월 8일
참석자 : 김영주(KNCC 총무), 소강석(새에덴교회 목사), 손봉호(나눔국민운동본부 대표),
윤경로(전 한성대학교 총장, 역사학자), 박종화(사회, 경동교회 목사)
「기독교사상」에서는 지난 6월-8월호를 통해 다음과 같은 주제를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6월) 전쟁에서 평화로! - 동북아 평화와 한중일 기독교의 역할
(7월) 2015년, 한국기독교 통일을 원하는가?
(8월) 한국기독교, 분단의 내면화인가, 평화통일인가?
이 세 번에 걸쳐 다룬 주제의 핵심 단어는 ‘분단,’ ‘평화,’ ‘통일,’ 그리고 ‘기독교의 역할’입니다. 이런 주제를 세 달 연속 다룬 것은 2015년이 한반도 해방과 분단 7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는 이 특집들을 마무리하는 뜻에서 ‘특집좌담’을 마련했습니다.
이 좌담에서는 무엇을 설명하고 정의를 내리기보다 ‘우리 현실에서,’ ‘기독교가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를 말하려고 했습니다. 교파나 진영, 생각과 방법의 차이를 극복하고 한 가지라도 평화와 통일에 기독교가 순기능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들, 소위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분들을 모셨습니다. 이 좌담이 유익하기를 바랍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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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화(사회) : 오늘은 주로 역사, 교회, 희망, 연합활동에 관련한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습니다. 특별히 어떤 의제를 정하기보다 그냥 분단 70년, 해방 70년, 앞으로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과제, 교회의 역할을 놓고 마음껏 말씀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저보고 사회를 보라고 하시는데 순서대로 분단 이후 지내온 이야기, 한국교회 과거와 현재의 문제점, 앞으로의 대안을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우리 윤경로 장로님은 사학자로서 역사적인 분쟁에 대해 말씀해 주시고, 손봉호 장로님은 개혁운동에 앞장 서 계시는데 이와 연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겠고, 통일운동 일선에 계신 KNCC 총무 김영주 목사님은 통일운동의 실제적인 면을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특별히 모신 소강석 목사님은 남북관계에서 남들이 상상도 못할 일을 많이 하십니다. 소 목사님은 보수교회를 목회하시니 보수교회를 대표하는 입장에서 통일 문제를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 토론하고 보면 맨 집안 식구들이 모여가지고 같은 이야기만 반복하는데 이건 좋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통일 문제는 복음운동의 역사이지요. 차이가 있지만, 생각은 다 같이 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아주 폭 넓은 이야기를 맘껏 나눠주시면 합니다.
나라가 분단되는 것은 그 나라에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경우처럼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분단이 되었을까요? 책임은 일본에 있는데 말입니다. 유럽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일본이 남일본 북일본이 되었어야 옳지 왜 엉뚱하게 한반도가 분단국이 되었느냐고. 그런 쪽으로는 생각을 안 해봤지만 어쨌든 우리나라는 반쪽만 해방된 것이기도 하고 이것은 우리가 극복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요즘 유럽 신학의 화두는, 다 알고 계시는 내용이겠지만, ‘과거를 용서해라, 그래야 새로 산다. 그러나 재발을 막기 위해서 잊지는 마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용서하되 역사적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손봉호(손) : 우리가 책임을 묻는 것은 대답을 알아내기 위한 것도 아니고 복수를 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 책임이 없다고 자위하는 것 또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기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도산 안창호의 말에 상당히 자극을 받았습니다. 도산은 ‘우리는 힘이 없기 때문에 일본에 수모를 당한 것이다. 우리가 힘이 없는 것은 단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결하지 못한 것은 우리가 서로를 속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부정직성이 우리를 약하게 만들었고 그것이 결국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게 만들었다.’고 분석을 했습니다. 물론 다른 이유도 많겠지만 저는 도덕운동가로서 이를 상당히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베트남의 경우 가장 강대한 미국을 쫓아냈습니다. 미국을 이긴 나라는 역사상 베트남 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베트남을 그렇게 강하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단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확실히 단결하지 못하는 약점이 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이렇게 갈등이 심하고 갈라져 있는 사회는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더 심한 나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정도의 문화수준이나 경제수준을 가진 나라 중에 이렇게 갈등이 심한 나라가 있을까요? 저는 분단과 관련해서 외부에 책임을 묻기보다는 오히려 우리 자신의 책임을 먼저 물어야 한다고 봅니다.
또한 우리나라가 이렇게 세계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것은 역시 우리의 고난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지 않고 점진적으로 개화를 했더라면 지금 정도의 영향력과 힘을 갖게 됐을까요? 그동안 고난의 크기는 엄청났지만 결국 그 고난 때문에 우리가 이만큼 성취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책임 문제는 우리 자신의 잘못을 고치는 것, 또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우선 그렇게 생각합니다.
사회자 : 역사학자께서 이어주시지요. 책임에 대해서요. 책임, 고난 이런 얘기를 하시지 않습니까?
윤경로(윤) : 우리 민족의 분단에 관한 원인이나 책임은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히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많은 점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저는 무엇보다 1876년 강화도조약이 타율적으로 맺어진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이 우리의 자율적이고 내재적인 역량을 갖춘 속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고 그런 것이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타율적으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것이 쌓여오다가 식민지로 가게 되었고, 결국 분단에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분단의 책임을 얘기한다면 외적으로는, 아까 박 목사님 말씀하신대로, 일본의 침략에 있지만, 자성적인 입장에서 보면 내적 분열도 남북이 갈라지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여기 오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올해가 분단 70주년이라고 그러는데 저는 올해가 140년이라는 말을 쓰고 싶어요.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올해가 2015년인데 꼭 140년 전인 1875년, 그러니까 강화도조약이 체결되기 바로 전 해에 운양호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게 단초가 되어서 우리나라는 일제 식민지로 전락해 1945년까지 70년을 보내왔고, 해방 이후로 다시 70년을 보내왔지요. 앞의 70년이 내리막길이었다고 한다면, 1945년 이후는 6·25 전쟁도 있고 여러 가지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큰 안목에서 보면 오르막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70년이 오르막이 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내리막으로 갈 건지 이런 생각을 해보니까 조금 우려되는 일이 많아요. 하여튼 저는 꼭 숫자에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2015년 올해의 의미를 역사적인 관점에서 새롭게 인식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올해가 육십갑자로 보면 을미년입니다. 지난해가 갑오년이었지요. 그런데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 전쟁 때 동학농민군들이 부른 농민군가에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합니다.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거리다 병신되면 못가리.” ‘갑오세’는 갑오년이란 뜻입니다. ‘가보세’는 가자란 뜻이에요. 이 노래는 갑오년 개혁을 을미년까지 못하면 병신년까지 가게 되어 성공하지 못하게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년이 바로 병신년입니다. 주제하고 맞는지 모르겠지만, 이런 두 가지 점에서 2015년이 우리가 새롭게 역사적으로 인식을 하고 가야 할 그런 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소강석(소) : 손봉호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우리 자신의 능력부족 때문에 결국 그렇게 됐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저는 6·25 이후에 태어났고 제가 바라볼 때 당시 광복운동, 해방운동을 열심히 한 선각자들이 계셨지만 당시의 상황으로 볼 때 민족의식보다 이념의 분열이나 어떤 사상적 흐름이 한반도를 강타했다고 생각됩니다. 진영 간 갈등이 대립되는 상황에서 과연 그걸 누가 막을 수 있었을까요? 김구 선생님도 그렇게 애절하게 하나 되자, 하나의 정부를 수립하자고 했지만 결국은 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런 분들이 많았으면 모르지만 당시의 선각자, 선구자들은 그것까지는 준비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운명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지만 지나간 일은 역사적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야겠지요. 그래서 저는 분단의 원인도 중요하지만 현재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계속 역사의 쳇바퀴 속에서 체념 속에 살아가야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는 현재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주(김) : 서양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 당시 조선은 독립국가가 아니었습니다. 당시는 일제 강점기가 아니었는데도 말이에요. 저는 우리가 5천 년 동안 문화의 민족이었고 지배를 받은 적이 없었다는 민족주의적 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 중 하나로서 조선이 독립국가가 아니었다는 서양 사람이 쓴 책을 읽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식민사관으로 보면 조선이 일본에게 점령당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만약에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이겼다면 조선이 러시아의 속국이 됐을 텐데 일본이 이겼으니 일본의 속국이 된 것이지요. 이러한 생각은, 정치적 부담 때문에 이야기는 못하지만, 소위 우리나라 지식인들의 내면에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때 우리가 그렇게 형편없었는가? 이런 질문을 하는데 그 당시 일본사람들이 한국을 점령하고 난 뒤 제가 알기론 한국의 발달된 농업기술, 과학기술을 보고 놀랐다고 해요.
어쨌든 잘 아시는 대로 우리보다 훨씬 더 성장하고 발달한 중국이나 세계사적 문명의 기원이자 과학이 굉장히 발달된 인도 역시 서양세력에 의해서 몰락되었습니다. 따라서 분단 상황을 우리 민족의 개인적, 도덕적 문제만으로 보기에는 설명이 안 되는 복잡한 세계사적 전환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한마디로 정리하기에는 너무 벅찹니다. 사회자께서 너무 무거운 질문을 던졌다라고 생각합니다.
통일 문제로 돌아가서 얘기하자면, 우리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분단 문제에 관해서 말할 때 주변 4강대국의 책임을 많이 이야기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1995년을 희년으로 선포하면서 ‘희년대선언’을 하기 위해 주요 이론가들을 모아 토론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희년대선언을 못했습니다. 희년대선언은 용서의 선언이에요. 책임을 언제까지 주변 4강대국에만 묻지 말고 한번 우리에게 찾아보자 이런 논리였어요. 이제는 우리가 이만큼 성장도 하고 국력도 되고 발언권도 가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니 주변 4강대국을 위해서 우리가 오히려 용서하고 분단 극복을 위한 평화로의 초대를 하자, 그래서 동등한 자격으로 같이 평화통일 운동에 세계 교회와 양심 있는 시민들이 동참하도록 하자, 이런 포맷이었어요. 그런데 용서의 선언이란 부분에서 상당히 의견이 엇갈렸어요. 많은 논의를 했지만 결국, 용서의 선언, 평화통일로의 초대, 양심 있는 세계 시민으로서 평화통일 운동에 연대…… 이 포맷을 못 썼습니다. 제가 그 당시 실무자인데 지금도 가만 생각하면 그때 좀 더 논의를 더해서 대단원의 토론을 한번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쨌든 이런 여러 가지 개인적인 책임이나 당시 역사적인 책임도 있지만 기본적인 철학이나 기본적인 윤리 없이 강자들이 나눠먹는 사회, 그런 부분에서 해방 이후에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할 때 한국이 초대를 받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전범국인 일본은 초대를 받아서 그 나라의 보상 문제를 이야기했는데 전쟁의 피해자인 한국은 초대를 못 받았지요. 미국이 볼 때 한국은 나라가 아니었어요. 그런 걸 볼 때 우리의 용서, 우리의 부족이라는 차원에서 보기에는 너무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어서 조금 절망스런 부분이 있습니다.
소 : 저는 분단만 얘기할줄 알았는데 식민까지 얘기한다면, 물론 그 역사적인 추세를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나 선조들이 정말 힘이 있었다면 이런 일은 없었지 않겠습니까? 하버드대학교 역사학자 요한 바그너도 『역사의 대실패』에서 조선이 멸망한 것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국론이 분열됐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선조들, 정치지도자들이 부도덕하고 연합하지 못하고 또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지 못한 역사는 기억해야 한다고 봅니다. 강대국들의 야수적인 여러 욕심도 있었지만, 그러나 우리가 강력하게 뭉쳐 있었으면 우리가 그런 식민과 수치를 당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사회 : 분단 이후 북에 지지 않아야 한다는 엄청난 결단이 남쪽을 상승세로 몰았다, 일단 그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과 반대로 북쪽이 자본주의이고 우리가 공산화 진영에 있었다면 우리는 북쪽과 엄청난 격차가 벌어졌을 겁니다. 그나마 남쪽이 북에게 이기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이렇게 발전했다는 데 동의하고 싶어요. 물론 이런 경쟁에서 반공을 주장한 불상사는 있었어요.
그런데 갈등은 항상 파괴적일까요? 지금 우리나라는 정치, 언론 할 것 없이 엄청난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것을 없앨 수는 없어요. 그럼 이걸 어떻게 생산적 갈등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요? 그런데 사실 이 부분은 훈련이 잘 안 되어 있습니다. 갈등을 생산적으로 승화시키려면 갈등하는 주체끼리의 공통점을 찾고 상호간 존재를 인정하며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등의 큰 틀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뭘까? 여기에 과제가 있어요. 그게 고난하고 연결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처음 이야기한 대로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교회는 저항에는 아주 강합니다. 우리는 누르면 튑니다. 핍박에 대항해서 교회를 하는 신앙공동체는 잘하는데 평화 시절에 좋은 것을 세우는 데는 아주 약해요. 교회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 민족이 그런 것 같아요. 저항적 힘과 생산된 건설의 힘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었으면 좋겠는데 우린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는 통일을 못 세웁니다. 통일은 저항이 아니고 세움입니다. 그런 문제가 있어서 미리 한국 문제를 다시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손 : 부정이 긍정적인 힘을 포함하고 있다는 게 변증법의 특징인데 지금 일본과 관계에서 저는 그런 글도 썼습니다. 아베가 나쁜 놈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우리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어요. 아베가 저렇게 나오는 것은 우리가 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강해져야 됩니다. 그래서 내가 글을 썼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고함만 지르지 말고 교통신호 하나 제대로 지켜라. 그게 진짜 애국자이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고함만 지른다고 우리가 일본한테 이기겠는가?’ 언젠가 일본 대학총장하고 얘기했습니다. ‘우리 일본하고 경쟁 좀 하자. 경제, 무기 이런 것 가지고 하지 말고 문화적으로 하자’고 했더니 박수를 쳤습니다. 저는 우리가 일본보다 문화적으로 우수하다, 과거에도 우수했지만 앞으로 더 우수하게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 아직까지 경제적으로나 외교적으로 일본에 약세에 있으니까 이런 경쟁을 이용할 가치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도 한창 자랄 때는 분열하지만 약해지면 단결합니다. 캐나다나 인도 교회들도 그랬습니다. 지금 합쳐지는 것이 우리가 성숙해서 갈등이 덜 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약하니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왜 이렇게 됐나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 : 1985년 독일 바이체크 대통령이 독일 패전 40주년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독일이 패망한 날은 1945년 5월 4일입니다. 공적으로는 5월 8일이 최종 패망한 날로 되어 있어요. 40주년 기념 강연에서 대통령은 ‘오늘을 독일이 패망의 날로 기념하지 말고 나치즘에서 해방되어 세계 평화를 위해 공헌한 날로 경축하자’라고 말했습니다. 이 연설 후에 독일이 난리가 났습니다. 보수계에서는 패망해서 화가 나 죽겠는데 무슨 해방이냐고 했고요. 독일은 통일이 구호만 가지고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내적인 일치가 선행되어야 하는데, 그 하나 됨의 내용을 ‘자유’로 보았어요. 섣부른 통일을 외치는 것에 앞서 동서가 함께 자유를 누리는 것을 통일의 내용으로 삼자고 했지요. 이것도 우리가 참고할 내용입니다.
제가 1986년 와세다 대학 크리스천 교수협의회에서 일본 교수들에게 ‘나는 화해하고 싶다, 용서하고 싶다, 단 조건이 있다. 8월 15일을 일본과 한국이 똑같은 광복의 날로 해방의 날로 보자.’ 이렇게 제안했어요. 한국은 지긋지긋한 식민 압제에서 해방이고, 당신들은 식민 압제자의 멘탈리티에서 해방되어 평화로 가라는 것이지요. 그날 엄청난 토론이 벌어졌어요. 제가 사실 이 얘기는 내가 아니라 독일 바이체크 대통령 말을 원용한 것이라고 말하자 상황이 달라졌어요. 한국에서 온 새파란 교수가 건방지게 이러다가 바이체크 얘기가 나오니까 태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독일과 일본의 관계 때문인데요, 그게 기분은 나빴지만 일본 교수의 답문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냐면 저는 식민지에서는 안 살았지만 역사를 통해서 분노가 있습니다. 과거 영역은 용서할 수 있어요. 미래를 위해서, 내가 살아야 되니까.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동의하시는지 모르겠는데 내가 원수를 가지니까 원수가 내 삶을 지배해요. 문제는 그것입니다. 원수를 가진 사람이 지배를 당합니다. 그래서 원수 사랑이라는 것이 예수께서도 네가 원수한테 지배당하지 말고 원수하고 자유하여 자주적인 인간이 되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광복절을 되든 안 되든 한일 간의 민간차원에서 같이 해방의 날로 지키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를 교회 차원에서 발전시키는 것도 좋고, 시민사회에서 아베를 향해 던질 수 있는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합니다.
김 : 일본의 지도층이 우리나라에 와서 사죄를 합니다. 미안했다, 우리하고 똑같이 해방을 지키자. 그런데 묘한 게 있어요. 마음으로 강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은 약자하고 같이 안 놀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강해지자. 강해져야 동북아 평화를 위해 일본을 향한 이런 저런 제의가 가능하다고 흔히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강해져야 된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그 강하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저는 목사로서 강하고 크고 능력 있는 것을 성경에서 강한 것이라고 말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성경은 작은 자와 작은 것을 말하는데, 우리가 국제 정서를 이야기하고 나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꾸 강해져야 된다고 표현합니다. 강해야 상대가 우리한테 온다는 이 ‘강함’이라는 것을 조금 규정을 하고 이야기를 해야지 나는 정리가 안 된 상태로 강해져야 한다는 것에 동의를 못하거든요.
소 : 그 강함이라고 하는 것은 첫째 저는 도덕적인 강함이고요, 두 번째는 사상과 정신의 무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 사람들이 왜 우리를 얕잡아 봤느냐 하면, 우리가 시대정신도 읽지 못했고 국론이 분열되었을 뿐 아니라, 소위 지도자들의 부패 때문이 아닙니까? 오죽하면 임오군란이 나왔겠어요?. 그러니까 얕잡아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복음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약한 자를 섬기는 것도 있지만 동시에 연합하고 성숙하게 대처해서 정의가 살아있게 하는 것 아닙니까? 진영논리도 뛰어넘어 사마리아에 가서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는 예수 복음의 정신, 그 도덕성과 영성 정신 이것이 우리의 민족을 강하게 하고 우리 국력을 신장시키는 강함이라고 보면 안 되겠습니까?
손 : 나도 소 목사님과 그건 동일합니다. 무력이나 경제력 가지고 강해진다고 생각 안 해요. 가령 줄을 당길 때 한 사람은 지금 당기고 다음 사람은 다음 순간에 당기고 이래 가지고는 절대로 이길 수가 없어요. 하나, 둘, 셋 해서 같이 줄을 당겨야 이기는데, 지금 우리가 조금만 양보하고 법도 좀 지키고 약한 사람도 돕고 그러면 낭비가 엄청나게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강해지지 어떤 사람은 엄청나게 뛰어난 무기를 개발하고 다른 놈은 또 엉뚱한 데 가서 사대고 그렇게 하면 암만 무기 좋은 것 있어도 이길 수가 없어요. 저는 역시 성숙성,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배려하고 말하자면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 그게 강한 사회가 아닌가 그렇게 생각해요.
미국의 정치학자들 가운데 ‘민주주의 국가끼리는 절대 전쟁하지 않는다.’ 그런 이론을 내세운 사람들이 있어요. 역사적으로 보면 적어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아주 민주적인 국가 사이에는 전쟁을 안 한 것이 사실이거든요. 그 사람들 논리를 보면 그렇게 되어 있는 것 같고, 역시 민주주의라는 것이 다수 의견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저는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약자가 인정을 받고 보호를 받는 게 민주주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정의가 어느 정도 살아 있으면 사회도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통일 논의를 할 때, 동북아에서 대한민국이 강하지 않으면 중국, 일본, 미국, 러시아에게 먹힌다고 말합니다. 그럼 무엇이 강한 것일까요? 물량적인 수치 가지고 강한 것을 논하는 것은 어려울 것 같고, 사람의 혼과 정신이 강해야 하는데, 여기에 실제적인 면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말씀하신대로 강함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강변해서 그게 실세가 되어야 합니다. 이 사회에서 그것이 실질적 세력이 아니고 도덕적 언사로만 남아 있으니까 그냥 막 밟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때 기독교 자신이 좀 깨끗하고 강하면 할 얘기가 있는데 우리가 완전히 밟히니까 할 말을 잃은 것입니다.
왜 일본이 과거사 반성을 안 하느냐. 그것은 정신적으로 일본이 약해서 안 하는 것이다. 그럼 독일은 강하냐고 물어봤더니 독일이 뭐가 강하냐, 독일은 하나님 ‘빽’ 믿고 강하다. 이런 얘기를 한 것이 기억납니다. 정신적 강자는 회개할 수 있어도 정신적 약자는 회개하기 어렵다는 말입니다.
손 : 독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철저합니다. 회개에 대해서 독일 고등학생들이 신념을 가지고 자기들이 잘못했다고 합니다. 나는 그런 나라는 처음 봤습니다. 그 역시 교육 아니겠습니까? 교육은 신앙입니다.
윤 : 저는 또 좀 다른 측면을 생각합니다. 일본과 독일의 차이점은 민족성, 신앙적 측면도 있겠지만 정치나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지금까지 정치, 정당, 인맥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반해서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에 완전히 나치 정권이 무너지고 새로운 정권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지금까지 그대로인 일본에 비해서 독일의 경우 반나치 민주정권이 들어서서 철저하게 반성을 했습니다. 또 교육을 통해서 젊은이들의 가치관도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점을 같이 봐야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소 : 공자가 복음은 몰랐지만 그는 양과 음으로 세상을 보지 않습니까? 양은 정신, 우리로 말하면 영성이고 음은 물질입니다. 그런데 공자의 주장에 의하면 양이 음을 다스려야 하는데 음이 양 위에 있어버리면 그야말로 정치도 타락하고 종교도 타락하고 모든 게 타락이다… 공자의 언어를 그대로 빌린다면 지금은 양의 시대가 아니고 음의 시대입니다. 물질과 육체 중심 아닙니까? 교회도 큰 교회일수록 수난을 당합니다. 그것은 초고속성장 내지는 압축성장의 결과로 교회가 정신적 가치, 복음적 가치, 영적 가치를 잃고 물량적 가치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다스려지게 되니까 사회적인 비난을 받고 공격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가 좀 더 복음의 정신을 따라서 예수님의 정신을 따라서 소외되고 약하고 그늘진 부분을 섬겼다면 우리는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겁니다.
에이미 추아가 쓴 『제국의 미래』라는 책이 있는데 거기에 보면 정복자가 관용을 베풀고 뚜렷한 섬김의 정치철학이 있을 때 그 강대국은 오래가고, 약소국가들을 짓밟은 나라는 오래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미래의 제국 역시 관용으로, 섬김으로 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도 한 개인의 도덕성과 더불어서 이런 정신이 있을 때 그것이 힘이고 또 더 나아가서 여러 가지 물량적이고 필요한 정치적인 힘도 생겨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다시 한 번 해봅니다.
손 : 저는 통일과 관계해서 우선 왜 통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교회가 합의를 이루었으면 좋겠어요. 나는 나이가 많으니까 통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적으로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에는 자신이 없어요.
박종화 목사님 글을 읽어보니까 독일 사람들은 전혀 통일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고 했어요. 통일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지 통일하려고 노력도 안했다는 겁니다. 우리도 그런 접근을 해야 되지 않을까요? 통일을 앞세우지 말고 북한에서 우리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거기에 초점을 맞춰야 되지 않나 싶어요. 저는 한 세 가지를 늘 생각했습니다.
첫째는 우리 기독교가 배고픈 사람을 먹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계산 없이 북한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배고픈 사람은 무조건 먹여야 된다! 교회가 이걸 들고 일어나야 되지 않나 싶어요. 둘째 인권은 기독교의 가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북한의 인권탄압이 잘못됐다고 목소리를 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두 가지를 병행하면 좋겠어요. 그 다음이 평화인데, 일단 한국교회가 통일에 이바지하기 위해서는 통일을 앞세우지 말고 기독교적 원칙에 입각해서 북한에서 우리 기독교가 해야 할 일이 뭐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을 까 생각합니다. 정치적, 군사적 배려 없이 무조건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계산 없이 무조건해야 한다. 통일이 나중 결과로 이루어지면 참 감사하게 받지만, 우리가 통일을 앞세우고 실질적인 일을 못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윤 : 통일이 우리의 과제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통일’이라고 하니까 오해가 생깁니다. 최근에 ‘통일대박’이란 말이 나왔는데, 통일이라는 용어에 위협적인 측면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통일을 이야기할 때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느 쪽이 어느 쪽을 흡수를 한다든지 이런 식으로 가면 더 큰 혼란을 가져옵니다. 이런 점에서 통일이라는 말보다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여 우선 남북이 소통하는 시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분단의 시대를 넘어 불통의 시대라는 생각이 들어요. 남북 간에 소통이 전혀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니까요. 분단된 이후에 자기 나름대로 북한에 대한 어떤 선입견이나 각인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런 것을 불식시키기 위해 양측이 서로 오고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통일’이라는 용어 문제가 좀 있다고 봅니다.
김 : 용어 문제는 이런 것입니다. 옛날에는 통일이라는 단어를 우리 민간이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가 독점을 했지요. 그러다 민중이 권력자들에게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빼앗아 와서 통일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이 당연했는데 지금은 소위 정치적 입지를 높이고 지도력을 확보하는데 통일이라는 단어가 또 사용이 되기 시작해요. 다시 말해 통일을 정치 이데올로기 삼아 권력을 잡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일 이데올로기화 시켜버렸기 때문에, 손봉호 교수님이 지적한대로 이 통일이라는 단어를 가려서 써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을 비난하면 할수록 애국자이고 건강한 시민으로 생각을 해왔습니다. 북쪽에 장점이 있는지 살펴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사회는 북쪽에 대해 뭘 따져보고 묻고 질문하고 호기심을 가지는 것조차 금기시 되었던 사회였던 것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살다보니까 어느 사회학자의 말처럼 대한민국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는 반공주의 회로 판이 있다는 겁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이론적 반공주의가 아니라 6·25를 통한 체험적 반공주의인데 이 체험적 반공주의 결과는 이렇습니다. 일단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상대를 잘 속이는 것이 전쟁에서는 좋은 전술이지 않습니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것이지요. 또한 승자와 패자만 있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림픽에 나가서 은메달을 딴 선수가 그걸 패배라고 받아들입니다. 게다가 아부, 학연, 지연, 인연, 이런 게 아니면 생존하기 힘든 사회가 되어버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우리 사회가 정말로 건강한 시민사회, 건강한 인격의 완성을 이루려면 통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통일이라는 단어를 안 쓰고 할 수 없겠는지도 생각해봅니다.
우리가 북쪽을 아는 것 같지만 실상 몇몇 탈북자를 통해서 혹은 북한을 적대국으로 삼고 있는 나라들이 주는 정보, 이런 걸 통해서 듣는 겁니다. 이러다 보니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아, 북한은 그런 거야’라고 정리를 하는 것입니다. 또 6·25 전쟁의 분노가 아직까지 해소가 안 된 상황이다 보니 북한은 무조건 나쁘다고 판단합니다. 손 선생님 말씀대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얘기하는 게 독도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통신호를 지키는 것도 독도를 지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내 주변 사람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훈련, 연습, 서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진지한 노력 이게 결국 통일운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따라서 저는 정치적,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통일이라는 말에 동의를 합니다.
소 : 통일은 시대적 소명이고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 민족주의 입장에서 통일은 무엇보다 민족적 과제입니다. 게다가 화해 정신은 성경적인 가치 아닙니까? 또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평화의 한반도를 물려주어야 하고, 국력신장을 위해서도 통일은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먼저 교회가 해야 합니다.
사실 아무리 북한에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체제를 우리가 인정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주의적인 면에서 그들을 돕는 일에 우리 교회가 앞장서야 됩니다. 한국교회가 같은 민족으로서 배고프고 힘들 때 우리를 잊지 않았다라고 하는 이런 선한 이미지를 심어줘야 되는데 우리는 지금 그렇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평양을 7번쯤 다녀왔는데 말로는 표현 못하지만 젊은 친구들에게서 이대로는 우리 북쪽도 살아남기 힘들다고 하는 의식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그들을 배려하고 품어주는 모습을 보여야지, 계속 갈등과 긴장만 부추기면 이건 통일을 오히려 방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소통이 필요합니다. 정부와 정부는 대치하고 총부리를 겨누지만 우리는 소통의 매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 한국교회가 먼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합의된 통일신학을 구축하고 북한을 인도적으로 돕고 북한과 교류하는 데 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제가 가 보니까 지금은 여기 다르고 저기 다르고 오히려 헷갈리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정부도 우리 시각과 우리 원칙만 가지고 상대를 대하면 안 됩니다. 협상이론에서 그러잖아요. 내 의식만 가지고 대하면 형제도 안 통합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적은 것이라도 가치 있게 주면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끌어내는 것이 협상인 것인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돌아가셨지만 김대중 대통령께서 하신 평화공존, 평화교류, 평화통일, 그 3단계 통일 전략을 저는 적극 지지하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단지 대북송금문제를 당시 야당과도 소통하고 함께 논의구조를 가지고 갔으면 통일문제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 것인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통일이라는 것이 금방 이뤄질 수는 없고 예를 들어 김정은 정권이 붕괴된다 하더라도 우선은 집단지도체제로 끌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일단 공존, 교류, 소통을 해야겠지요. 그렇게 되면 평화가 유지된 상태에서 언젠가 아름다운 일치, 평화가 복음 안에서 이뤄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사회 : 지금 대화에 공감대가 많습니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고 통일의 내용은 화해하고 평화를 이루고 소통하는 것이다, 독자들에게 이것 없이 구호나 주장으로서의 통일은 옳지 않다는 얘기를 해줘야 된다고 봅니다. 사실 북쪽도 통일이 뭐냐고 물어보면 아무 내용도 모르고 통일은 우리 주석님이 하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거기는 거기 식의 적화통일이고 우리는 흡수통일입니다. 둘 다 가능하지 않아요. 그럼 교회가 민간 주체로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배고프고 울고 가난한 자에게 주는 것입니다. 조선일보 1면에 최근 5년간 해외 무상원조가 3조 5천억인데 이 중 대북원조는 566억이었다는 기사가 났습니다. 0.2%가 안 되지요. 이걸 보면, 퍼줬다는 것은 말도 안 되요. 이건 사고가 틀려먹은 겁니다. 우리 교회도 거기에 편승했어요. 회개해야 합니다.
요즘 북한 인권 문제가 나오는데 저는 인권을 진보, 보수가 같이 말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인권에 대해서는 전두환, 박정희 때 보수는 그 운동을 외면했고, 인권운동을 했던 진보는 얻어맞았어요. 그런데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가 앞장서고 진보가 안 해요. 이것이 우리 현실인데 왜냐고 물을 필요 없이 안 해요. 그런데 유엔이 엄청난 대안을 발표했어요. 보도를 안 하던데… 서울에 사무실도 있어요. 유엔 인권조사위는 북한 인권과 관련, 정치적 인권, 경제적 생존권, 사회적 자율권 등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분류하고 다시 9개 항목으로 세분화했어요. 다 기억을 못합니다만, 정치범 문제, 장애인 차별(굉장히 심합니다. 장애아를 출산하면 죽입니다.), 성적차별, 당원과 비당원 사이의 성분차별, 빈곤문제, 아동인권 등이에요. 유엔이 정한 거니까 이걸 서로 나누어서 우리는 인권 중에 이 분야 하겠다…이렇게 분야별로 나누어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북한을 이기기 위해서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어야 하고, 경제적으로 나눠줘야 하고, 사회적으로 북한을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에 풍선 날리는 것도 하라 말라 할 것 없이, 하라!… 단 상대를 욕하는 내용을 담지 말고 우리의 자랑만 넣어라. 돈도 좀 넣고요… 반대로 그쪽에서 박근혜 대통령 나쁘다고만 하면 우리는 좋겠어요?
이제 남북 사이에는 어떤 경쟁이 되냐 하면 서로 욕하는 경쟁이 아니고 도덕적 가치 경쟁을 하자, 이렇게 우리가 탈출구를 찾으면 어떨까요? 이제는 우리 교회도 욕하는 대북통일선교에서 우리의 허물도 고백하고… 젊은 사람들도 공감하는 설득력 있는 대북선교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 : 제가 통독 이후 일 년 만에 독일을 가봤습니다. 동서독을 가봤는데 서독 측 교회지도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동서독 사이, 정부 사이에는 갈등이 상당히 있었지만 그 사이 중간 역할은 교회가 했더라고요. 예를 들어 북한이 핵무기를 가졌다는 등의 정치적 문제는 우리 교회가 감당할 만한 몫이 아닙니다. 국토적 통일 문제나 정치적 통일 문제는 우리가 거론할 만한 실력도 안 되고 또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귐과 협력 연대, 이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사람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연민, 협력에 의한 동참…. 사실 우리가 같은 남한 사회에 살면서도 서로 갈등하고 분열하는데 오랫동안 다른 체제에서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다른 교육을 받아온 남북 사람이 어느 날 정치적, 국토적 통일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같이 살 수 있을까요? 저는 그게 통일보다도, 더 분단보다도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치적, 국토적 통일이 정치가의 몫이라고 한다면 사람과 사람과의 통일은 사회와 사회와의 통합, 이거는 우리 민간의 몫이 아닐까요? 기독교가 이 부분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할 일이 많거든요.
손 : 정치적 통일을 배제하는 것은 우리 교회가 하나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정치적인 것을 배제해야 쉽게 단결이 되지 그것 가지고 자꾸 갈라집니다. 우리는 성경이 요구하는 대로 배고픈 사람을 먹어야 된다, 북한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먹이자, 나는 여기에 그동안 우리가 충분히 적극적이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허락을 안 하니까 못 준다는 것은 너무 소극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단체를 이용해야지요. 중국단체를 이용하고 미국단체를 이용하고. 중국에 가니까 우리 조선족, 북한에 많이 들어왔어요. 그 사람들이 저보고 그럽디다. 왜 남한 정부는 우리를 이용 안 하는지 모르겠다. 그 사람들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어요. 조금 적극적으로 해야 됩니다.
소 : 정권은 항상 조건을 제시하고 항상 조건적인 원조를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 교회는 무조건적이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는 보수 성향이기 때문에 함부로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래도 대북지원은 어느 진보교회보다 많이 해왔습니다. 줄기차게 곧은 마음으로 쭉 하니까 믿어주고 서로 농담도 합니다. 김영주 총무님 말씀하신대로 그렇게 친분을 두텁게 하면 그들의 마음을 얻으면 이제 통일의 몫은 하나님이시지 우리가 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실 것을 우리가 신뢰해야 합니다.
사회 : 기독교란 사랑에 의해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 마음과 마음이 제1차 타깃입니다. 사람이 배고프면 상황을 묻지 않고 당연히 먹여야 하지요. 「조선일보」가 오죽했으면 남의 나라에 3조 5천억을 주고 북한에 566억을 주었느냐는 기사를 냈겠습니까. 이것은 말이 안 되거든. 독일교회가 정치범 거래를 주도했습니다. 정치범 거래에 사용한 돈이 3조 5천억이에요. 3만 명의 정치범을 데리고 왔어요. 돈은 정부 돈입니다. 처음만 현금을 주고 두 번째부터는 물건을 줬어요. 그런데 어느 독일교회도 이를 홍보하지 않았어요.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어요. 우리 같으면 기자 회견을 하고 큰일 났을 겁니다. 또 하나는 3조 5천억 중에 2조 1천억이 샜어요. 3조 5천억 중에 2조 천억이 나가면 2/3가 샌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업을 계속했습니다. 이유는 뭐냐면 정치범을 3만 명 사오니까 동독에서 누구나 정치범 되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팔려 갈려고 말입니다. 결과적으로 동독 사회가 깨진 거예요. 그 값이 훨씬 큰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이 있었지만, 대의를 보고 나갔던 거지요. 이런 역할을 독일교회가 했고요.
또 인권이라는 것은 나 이 분야에 가겠다. 어린이, 영유아, 정해놓고 당신은 거기서 해라. 같이 하면서 얘기하고 같이 가자. 이렇게 우리끼리 성숙한 태도를 보이자는 거지요. 딴 논리 끼어 넣지 말고. 사실 기독교는 수치를 따지지 말고 일해야 합니다. 성령은 이런 것을 통해 알게 모르게 역사하십니다. 교회가 할 일이 얼마든지 있는데 모든 것을 정치 논리로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 5년제이니까 5년마다 통일정책이 바뀝니다. 기독교는 5년마다 바뀌지 말고 ‘사랑’으로 초지일관 했으면 합니다.
김 : 저는 초창기부터 기독교 라운드 테이블 만들자, 각각 성향이나 정치적 입장이 다르지만 우리끼리 정보는 나누자고 제안했지만 그게 안 되더라고요. 아무튼 아까 말한 대로 3조 5천억을 풀었다고 할 때 그 돈이 서독교회에서 동독으로, 형식은 서독교회에서 루겐스타인 은행을 통해서 중립국을 통해서, 동독교회로 들어갔습니다. 돈의 액수가 너무 어마어마해서 제가 서독교회 지도자한테 당신들 돈 많네 했더니 씩 웃으면서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한테 직접 주면 정치적 이슈가 되니까 그 역할을 교회가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그렇게 한다면 정부하고 기독교가 충돌할 것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통일 문제는 민과 관이 따로 있을 수 없고 진보와 보수가 같이 풀어야 될 공동의 과제라는 것입니다. 이런 의제를 「기독교사상」에서 설정하고 제의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통일을 지향하는 모든 교회나 단체를 보면 한심한 부분이 많아요.
박 : 참고로 독일 외상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한 말인데, 기가 막힌 이야기입니다. 자기들이 워싱턴과 모스코바에 간 이야기를 하면서 모스코바에 가서 돈을 주면서 동독에 줘라, 차관을 소련에 주고 소련이 동독으로 재차관을 한다는 거죠. 동독이 그것을 알아요. 서로 국제적인 체면이 있는 거죠. 서로 아는데 국제관례를 지킨 것입니다. 그러면서 국제관례가 이자가 2%이면 반감해서 1%로 이자를 줍니다. 이런 애기가 다 그 당시에 발표되었어요. 중요한 것은 뭐냐면 소련이 얻어먹을 때 동독 좀 차관을 줘라 했는데, 그것만 줬겠어요? 소련에 심부름 값을 또 주고 공식적으로는 차관으로 올려놓았어요.
이렇게 이제는 국제 관계 안 풀리면 남북 관계가 어렵습니다. 중국한테 좀 줘라, 공동으로 하든지, 일본도 해라, 러시아도 하고… 이래서요. 같은 돈을 주어도 체통 살리면서 엮어 매라는 것입니다. 교회도 말입니다. 중국에는 아미티파운데이션(애덕기금)을 통해서 같이 줍시다. 미국교회, 독일교회, WCC, 복음주의협의회를 통해서 줄 수 있으면 우리나라 혼자 주지 말고 모아서 주는데 다 알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원군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내 교회가, 내가 직접 가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100% 이용당합니다.
소 목사님 계시니까 잘 아실텐데 앞으로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북을 도와주는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 평양에 러시아정교회가 있잖아요. 러시아정교회와 팀을 만들어서 그것을 통로로 해서 러시아정교회에 100만 불 주면 50만 불은 북에 보내라 할 수 있잖아요. 요것을 해야 러시아가 신나지. 평양에는 러시아 정교회를 통해 주는데 러시아 정교회는 평양주재 러시아 대사가 출석하게 되어 있습니다. 국교니까. 통로가 많은데, 이를 이용하지 않고, 안 된다고만 생각하는 것은 바보 중에 바보에요.
김 : 잘 아시는 대로 중국은 기독교를 침략 앞잡이로 보았습니다. 중국이 개신교 선교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어서 그에 대한 대응으로 나타난 게 삼자정책입니다. 그 삼자정책의 원칙에 어긋나지 않고 만들어진 절묘한 타협을 통해 아미티파운데이션이 생겼습니다. 아미티파운데이션을 홍콩에 두고 서방세계, 서방교회로 하여금 자원봉사자들도 받고 계정도 주고 하면서 돈도 받고 이것이 중국 사회에 개발자금으로 들어가고 해서 지금 아미티재단이 엄청나게 큽니다.
그것이 반관반민(半官半民)으로 중국계 공산주의 사회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법인입니다. 민간법인입니다. 그러니까 손봉호 교수님께서는 아미티파운데이션을 연구해보세요. 우리가 설명을 하면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손 교수님이 연구해서 펼치면 신뢰가 훨씬 갈 겁니다.
저는 초창기에 중국이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하고 난 뒤 그해에 중국하고 관계를 했습니다. 당시 중국교회는 한국교회를 아무도 상대 안 하고 NCC만 상대했어요. 그때 성서공회를 통해서 중국교회가 프린팅하우스를 만들었는데 조그마했어요. 최근에 갔더니 직원이 4만 명이나 되더라고요. 우리는 대한성서공회가 최고라고 하는데 중국교회는 성서공회를 전국 전역하고 소수민족이 하는데 내가 볼 때는 훨씬 더 규모가 커요. 그런데 그게 한 십수 년 됩니다. 그 통로 역할을 아미티파운데이션이 했어요. 제가 그걸 보면서 우리는 경직된 이념을 가지고 모든 사물을 대하는데 중국 사람들은 실용주의적 이론으로 접근하는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북쪽에 ‘야, 우리 공부하자. 너희도 공부해라, 공부해서 남쪽 교회만이라도 아까 말한 대로 프로젝트를 우리는 어린 아이들, 우리는 장애인들만 하겠다. 우리 교회의 교인들에게는 장애인들만 설득이 된다, 이거 하겠다. 그렇게 하고 조금 더 여유 있는 곳에서는 유니버시아드대회도 온다가 하니까 우리는 장애인 농구팀들 한번 돌봐주겠다.’ 이렇게 해서 각 교회마다 자기 사업을 가지고 각 교회가 아기자기하게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통로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하면 참 멋있을 건데, 다들 경쟁적으로 자기가 하려고 하니까 문제인 거지요.
그런데 우리가 이 경쟁을 협력으로 바꾸면 국제적 협력도 정교회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영국 교회를 통해서도 할 수 있고… 얼마든지 지금 현재가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진보 보수나 현실적으로 맞는가 안 맞는가 모르겠지만 상관없이 애큐메니칼 진영인지 비에큐메니칼 진영인지, 보수인지 진보인지 뭐 어떻게 하든지 한국교회가 그런 부분에서 통일운동에 앞장을 서는 길이다. 이번에 70주년을 맞아서 한국교회가 그런 것을 한번 해보자,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떨까 생각이 드네요.
사회 : 처음 공개하는 얘기인데요… DJ를 모시고 갔을 때 동독의 사회부 장관이 이런 말을 했어요. ‘통일을 제대로 하고 싶으면, 남쪽에서 통일하게 되면, 숙청은 없다, 다 끌어안고 새 나라를 시작하겠다고 선언을 하라.’ 이것이 무엇이냐면 통일하게 되면 간부들은 어차피 다 치는 거예요. 밑에는 아무 죄가 없는 거고. 스스로 숙청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 안지 못하는 통일은 혼란만 생길 뿐입니다. 독일도 이 문제로 혼이 났습니다. 나중에는 바로 잡았지만…
동독의 장관 말은, 한국이 그것을 반복하지 말라는 것이었지요. 그때 DJ가 맞다, 맞다 그러셨어요. 또 민심을 얻는데 공무원들이 절대적인 역할을 합니다. 지금은 통일이 되면 잘못하면 다 죽는다고 하니까 김정은을 따라간다는 사람도 있고, 김정은이 아주 포악하니까 탈출을 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일반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미래는 남쪽과 같이 사는 데 있다는 의식을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민심을 얻는 것입니다. 민초의 민심도 중요하지만 간부급들의 민심도 중요합니다.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강조했어요. 그래서 그 양반의 머릿속에 ‘맞아. 내가 북한을 끌어안아야 해.’는 생각이 각인되었지요.
손 : 야속하지만 우리 정부가 선언을 해야 해요. ‘김 씨 일가 외에는 다 사면한다.’고.
김 : 제가 한번 동독에 갔는데, 그때 동베를린의 형편과 처지를 우리한테 예기해준 사람이 누구였나 하면 전 동독시장이었어요. 나는 독일어를 잘 몰라서 통역으로 알아들었는데 그 사람이 이야기할 때 마음의 분노가 그대로 표출되는 것이 느껴졌어요. 그는 동독시장을 하다가 갑자기 여행가 안내원이 됐어요. 더 못 견디는 것 중 하나는 동베를린에도 훌륭한 대학들이 많잖아요. 철학가 교수들 특히 이런 분들이 동서독 통합이 되고 나니까 서독의 젊은 학자들에게 원서를 내고 재취업을 했어요. 소위 사상지도 받을 때, 사회주의 국가에서 내노라 하는 노 철학자 교수가 서독의 젊은 교수한테 원서를 내놓고 토론을 하고 다시 재임용 절차를 밟고 있는 그 초라함, 그 분노…
사회 : 그뿐 아니에요. 동독의 부장판사들은 사법연수원에 다시 입소했습니다. 우리는 진심으로 수용과 용서와 포용과 화해의 정치를 선언해야 됩니다.
손 : 정치적 색깔을 완전히 배제하고 성경이 가르친 대로 하는데 그걸 좀 적극적으로 했으면 합니다. 지금처럼 정부가 가라 하면 가고 그러지 말고 좀 공격적으로, 그러니까 아까 말한 아미티파운데이션 이런 것을 이용해가지고 적극적으로 해서 북한이 느끼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정말 애를 쓰는구나, 우리를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구나 하는 것을 북한 주민들이 알도록 만들어야 됩니다.
김 : 죄송한 이야기지만 북한의 기독교가 우리 남한 기독교를 감당할 능력이 없습니다.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교회가 조그만 해요. 서독교회가 서독 정부와 협력을 해서 태양광 발전시설을 하기로 해서 수십, 수백억을 정부로부터 받아가지고 주려고 했어요. 그런데,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이 그것을 주체적으로 받을 능력이 없는 거예요. 공산주의 사회니까 여기다 설치하려고 하면 모두 다들 정부하고 협의해야 하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낸 게 아미티파운데이션입니다. 북쪽 교회와 정부가 한꺼번에 나와 있는 아미티파운데이션을 중국의 모처에 만들어서 우리 개신교들은 굳이 북쪽하고 상관없이 아미티파운데이션 사무실에 모여서 돈이 얼마 드는데 아무 교회는 얼마 내겠냐? 영국은 얼마 내겠냐?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면 얼마든지 우리가 현행법도 어기지 않고 활동을 할 수 있잖아요?
그 다음에 전에 5·24 조치 이후에 우리 정부가 다 막아서 우리 NCC가 보낸 밀가루 70톤? 얼마 안됐어요. 그 다음에 북한을 갔더니 당시 북한의 목사님이 하는 말이 한국NCC가 보내온 70톤은 당시 우리한테 7,000톤이었어.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지금 북한은 사회를 대규모로 개발하고 있어요. 그래서 북한 경제가 좋아집니까? 했더니 우리가 중국에 많이 빌어먹고 있지요. 중국 놈들이 우리한테 그냥 주겠습니까? 라고 하는 것입니다.
윤 : 다들 전문가 수준으로 말씀하시니까 역사학자는 별 할 말이 없지만 이런 이야기들은 다 좋은 이야기인데 저는 결국 통일 문제의 이니셔티브는 정부가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이걸 깨야 된다고 봐요. 문익환 목사님이 북한에 가신 것이 1990년도이던가요? 그런 용기 있는 사람들이 나와야 된다고 봅니다. 교계에서…
지금 MB, 박근혜 정부로 오면서 말도 안 되는 대북정책을 하는데, 대북정책을 한다는 사람이 북한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은 전혀 북한을 모릅니다. 북한대학원에 교수로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가 과거에 안기부 이런 데 있던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반통일적인 논리를 만들어내고 거기다 통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만 하게 하고 북에 대해 과도하게 왜곡시킵니다. 이런 것을 먼저 깨야지, 아미티파운데이션을 통해서 뭐 하고 이건 그 다음에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왜 통일이 필요하냐고 했는데 우리 민족이 살 길은 통일입니다. 이제는 통일운동이 이념적 통일운동이 아니고 남쪽이 살기 위해서라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건설회사 중소기업들이 할 일이 없어요. 건설업체도 신작로 다리 다 놓아서 더 이상 할 곳이 없습니다. 북한을 갈 수밖에 없어요. 가면 할 일 많잖아요.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학생들 다 어디로 갈 겁니까? 해외선교사로만 보낼 수 없잖아요? 북쪽이 열리면 얼마나 공간이 넓어집니까? 앞으로 우리의 국민소득은 정체된 상태에서 가치관만 타락이 되어가고 있는데 이런 걸 업그레이드 하는 방법도 난 통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니까 아까 제가 2015년 올해를 기점으로 해서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인지,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것인지의 열쇠는 남북문제를 푸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김 : 제가 알기로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설 때 북한이 기대가 컸습니다. 왜냐하면 진보적인 정권하고 해보니까 재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공격도 받고 하니까 보수정권이 들어서서 좋다, 그 다음에 임기 말에 하니까 재미가 없었어요. 김대중 대통령도 비교적 임기 말에 했습니다. 그 다음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을 받았는데 DJ의 통일철학을 그대로 계승해서 해야 되는데 따로 그것도 임기 말에 했어요. 노무현 대통령 때 합의한 서해안 개발 프로젝트는 그게 만약에 실현만 됐으면 완전 통일됐을 겁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해보니까 재미가 없거든요. 두 가지였어요. 보수적인 정권이 오히려 나을 수 있다. 그 다음 두 번째로 임기 초에 힘 있을 때 하자. 그때 남북관계가 좋아졌잖아요.
하여간 중국, 러시아는 어디까지 와 있느냐 하면 가스 설치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되어 있습니다. 러시아도 남한에 가스를 팔아먹어야 되는데, 일본까지 간답니다. 남한도 가스가 들어오면 양질의 가스를 싸게 살 수가 있고 다 경제로 연결이 되는데 제가 볼 때는 참 어리석어요.
보수적인 사람들의 통일 성명서를 보니까 항상 뭐라고 얘기 하냐 하면 우리는 반공주의 시각을 가지고 있는 기독교 단체로서 이 정권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독교인데 기독교는 반공을 제 일선의 과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자꾸 수식어로 달고 있어요. 내가 성명서 보면서 재밌게 봤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기독교이지 공산주의를 찬성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기반으로 해서 우리가 당신들을 비판한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얼마나 불안합니까?
윤 : 그리고 분단을 즐기는 집단, 말하자면 분단을 내면화시키고 거기서 기득권을 지키는 집단이 한동안 이런 것을 속으로만 생각했어요. 속으로 ‘통일되면 내가 어떻게 될까…’ 그러던 사람들이 지금은 내놓고 그런 말을 하고 분단을 고착시키면서 자신의 기득권이나 이익을 그대로 더욱 확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런 세력들을 수그러지는 분위기로 가야 해요.
지금 분단을 즐기거나 분단을 통해서 이익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대세를 이루거나 기득권을 계속 가지고 간다면 통일은 안 됩니다. 그 사람들은 분단이 되어 있어야 정권을 유지하기도 좋고 자기 권력도 유지할 수 있어요. 저도 처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섰을 때, 통일 문제에서는 훨씬 좋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큰 오해였지만요.
김 : 지금이라도 박근혜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은 통일입니다. 요번에 이희호 여사가 하려나 모르겠네요.
손 : 우리는 너무 떠들지 말고 조용하게 실제로 돕는 쪽으로 가야 됩니다. 괜히 신문에 뭐 나고 그러면 또 그런 세력들이 일어나서 온갖 비방을 할 테니까, 우리 단순하게 성경적인 원칙에 입각해서 굶는 사람 먹인다… 그러면 바로 옆에 굶는 사람 있는데 비만 걸려서 음식 내버리고 다이어트하고 이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윤 : 또 하나는 교인들의 기도, 통일이나 남북문제에 대한 기도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나가는 교회는 보수적이라 그런지 모르지만 기도라는 게 보면 늘 북한정권이 빨리 무너지게 해달라는 식의 기도거든요. 왜 우리가 70년 동안 이러고만 있는가? 도저히 하나님이 들어줄 수 없는 기도만 하고 있거든요.
사회 : 누군가 드라이브를 해주어야 해요. 저분도 하시네, 해도 괜찮겠구나. 의식적으로 남들이 보기에 진보, 보수가 자주 모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같은 진영사람끼리 모이는 것은 소용이 없어요. 이런 모임이 대담을 통해서든 뭐든 포맷을 잡아서 가주어야 우리 사회가 안심하고 돌아가요. 참 묘합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잘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손 : 이런 모임을 추진하는 사람들이 무슨 명예나 정치적인 것이나 이런 데 관심 없이 순수하게 하면 인정을 받습니다. 처음에는 오해를 받더라도 결국은 양쪽에 다, 북쪽도 인정할 거고… 순수한 게 좋습니다.
사회 : 길게 얘기 했는데 결국 하나로 모아지네요. 긴 시간 동안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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