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상적 정치적 입장은 중도(中道)다.
이 ‘중도(中道)’가 사상이나 정치 무대에서 주류가 되어 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조선(朝鮮)은 망했고, 독립운동이나 해방공간이나 건국과정에서도 합작(合作)이나 연합(聯合)보다는 격렬한 대립으로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어야 했다.
다행히 산업화와 민주화에 성공함으로써 2차대전 후 독립한 나라 가운데서는 유일하게 세계 10대 부국(富國)의 민주주의 국가로 나라의 위상을 세울 수 있었지만, 오늘 위기 앞에 직면하고 있다. 외적 요인보다는 그동안 ‘중도(中道)’가 사상과 정치의 주류로 되어본 적이 없는 우리 내부의 업보(業報)라고 나는 보고 있다.
중도(中道)는 양극단으로부터 두들겨 맞는 허약한 중간 지대가 아니다. 우리가 제대로 중도를 주류로 만들어 본 경험이 없기때문에 ‘중도’라는 말이 이렇게 비치고 있을 뿐이다.
중도(中道)는 양극단을 두들겨(叩其兩端) 시대 정신의 과녁을 적중(的中)하는 사상이며 정치다.
양극단에는 진리가 숨쉬기 힘들다는 것은 모든 성현들의 일치된 견해이기도 하지만, 역사를 거치며 거칠게 증명되어 온 사실이다.
‘중도’는 다양한 문화권이나 정치권에서 여러 말들로 표현된다.
미국은 남북전쟁을 겪고 나서 국민을 통합하는 철학 사상으로 프래그머티즘을 탄생시켰다. 실용주의라고 주로 번역하지만, 내용은 중도 철학이다. 이 철학으로 국가를 운영할 수 있었다는 것이 미국을 그동안 세계의 영도국가로 만들었던 배경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미국은 중도의 철학 사상이 더 이상 국가 운영의 중심으로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내부도 심각한 심리적 내전 상태라는 말을 듣고 있다.
그동안의 밑천이 있어서 아직도 막강한 힘을 유지하고는 있지만, 미래 세계를 주도할 사상 철학적 기반을 잃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정권은 그런 현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단면이다.
물론 미국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는 미지의 영역에 속한다.
대한민국은 근래 악성의 편가름 속에서 증오와 적대의 정치를 확대해 왔다.
그 극단적 결과가 2024년 12.3 내란(內亂) 사태였다.
다행히 실패한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지금도 여전히 내전(內戰) 중이다.
탄핵과 처벌로 내란이 조속히 진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내전(內戰)이 종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위기는 기회를 동반한다.
퇴행적이고 망국적인 악성 편가름에서 벗어나 ‘중도’의 바탕에서 연합정치와 협동정치를 성공시킬 수 있는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양쪽에서 두들겨 맞는 허약한 중간 세력이 아니라, 양쪽을 두들겨 시대정신을 구현하는 진짜 중도가 무대의 중심으로 나와야 한다.
이것은 최근의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오랜 역사를 거치며 한결같이 바라온 민족의 비원(悲願)이기도 하다.
지금의 정치 지형에서는 꿈같은 이야기로 치부하거나 지레 좌절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대가 요구하고 있고, 국민이 바라고 있다.
양극단의 중오와 대결의 정치를 멈추지 않으면 나라는 쇠망한다.
강령과 정책을 통하여 ‘새로운 담론(시대정신)과 도덕(정치문화)’을 선명한 기치로 세우는 중도 정치 세력이 결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급박하게 진행될 정치 정세 속에서 어떻게 가능하겠느냐는 회의론이 아직은 더 강할지 모르지만, 그것은 단기간에 이루어지는 속성품이 아니라 오랜 역사적 축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체(結晶體)가 될 것이다.
양(量)보다는 질(質), 합종(合從)연횡(連橫)의 정치 공학(잔 꾀)보다는 대의(大義)의 기치를 세우는 정공법(正攻法)이 시대와 정치를 바꾸는 마중물로 만들 것이다.
마중물에서 출발하여 점차 중심 무대로 나아간다.
중도의 공개적이고 당당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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