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문학 어디까지 왔나 독일 통합의 교훈
임헌영(문학평론가) 2011년 10월30일
1. 분단문학의 변모과정
한국문학사에서 분단의식의 변모과정은 범박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은 과정을 거쳐 왔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① 전쟁문학의 초기단계 : 종군문학부터 김장수의 <백마고지>, 선우휘의 <불꽃>, 강용준의 등.
② 인간 존재의 탐구와 반전의식의 문학 : 장용학의 <요한시집>, 서기원의 <이 성숙한 밤의 포옹>, 한말숙의 <신화의 단애> 등 전후문학파의 인간상실과 실존주의적 경향의 작품들.
③ 민족의식의 반성 혹은 민족적 허무주의 : 최인훈의 ? , 박경리의 ?등 60년대 문학에 나타난 한국전쟁관의 변모.
④ 민중 수난사로서의 분단 인식의 출발 : 김원일의 ? , 윤흥길의 <장마>, 이문구의 등 70년대의 분단 소재 문학.
⑤ 역사적 접근법 : 이병주의 ?, 조정래의 ?등 80년대의 역사적인 특정사건 소재소설 유행. 특히 이 단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해외동포 문학작품의 기여이다. 김달수의 , 김석범의
⑥ 과거 회상과 현재와의 융합 : 김영현의 ?, 이창동의 <소지(燒紙)> 등 대학생 주인공과 그 부모 세대가 지닌 분단 희생자 이미지를 결합시키는 구도의 작품들.
1990년대 초기까지 우리 문학이 추구해왔던 위와 같은 분단소재 소설의 변모양상은 한마디로 1~2까지가 당대적인 고통을 그대로 분출시켰다면, 3~5까지는 과거 지향성으로 역사 바로 알기에 해당하는 작가적 시각에 입각해 있다. 그러다가 6에 이르면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시점으로 그 과거를 현재와 밀착시켰는데, 그 다음 단계 즉 7의 단계가 곧 남북한 통합을 직-간접적으로 다룬 문학에 해당하는 미래지향성 작품이 된다.
여기서 미래 지향성이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째는 6까지의 소설이 현재의 '남한 주민'만을 그 등장인물로 설정했던 소재의 한계를 벗어나 '북한 주민'도 등장시킨다는 뜻이며, 이들 등장인물들이 어떤 경위를 통했든 서로 만나게 된다는 의미를 지닌다. 말하자면 남북한 주민이 서로 만나 사건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뜻이다. 남북이 서로 만나는 사건을 소재로 한 문학이 이제는 허구가 아닌 역사적 실체로서의 진실성과 전형성을 가진다고 보며, 이런 의미에서 남북한 통합 문제에서 문학적 접근은 단연 남북 주인공들의 상봉 소재를 그 본론으로 삼을만할 것이다.
분단소재 문학이 7단계인 남북한 주민의 서로 만남으로 환치시키게 된 것은 분명히 통일지향문학에서 남북통합문학으로의 방향전환을 의미한다. 이것은 사회과학에서의 통일 당위론으로부터 남북한 사회통합론으로의 전환처럼 문학에서 통일론의 현실적 대응이며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될 발전적 변모라 하겠다. 과거 지향성 문학이 파고들수록 진리와 반진리, 정의와 불의의 흑백논리적 대결구도로 이어져 증오와 불신의 감정을 증폭시킬 수 있다면 미래 지향성의 만남은 지난 시대의 반감을 감소시킬 수 있는 상처의 치유제 역할을 한다는 뜻에서도 통합의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소재는 남북한 주민의 만남이라 할 만하다.
2.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인가
분단문학을 위해서는 북한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질문은 아무리 반복해도 지나치지 않은데, 이종석은 몇 가지 관점으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북한체제 인식 방법론과 주장자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1. 전체주의론 ; 프리드리히(Carl J. Friedrich)와 브레진스키(Zbigniev K. Brezezinski).
유일적 이데올로기, 1인에 의해서 지도되는 유일당, 테러적인 경찰, 정보 독점, 무력 독점, 중앙집권적 통제경제 등에다 영토의 확장, 사법부에 대한 행정력의 통제 추가.
2. 사회주의적 조합주의론 ; 커밍스(B. Cumings).
파시시트와 공산주의의 전체주의적 독재는 차이가 있다는 입장에서, 중앙집권주의와 하향원칙은 스탈린식 사회주의를 모방했지만 아시아 문화적 특징으로서 위계적 질서와 상급자와 연장자에 대한 복종의 원칙이 결합된 것으로 파악한다. 커밍스는 북한을 위계적 질서, 유기적 관련성, 가족이라는 세 개의 테마와 이 테마들에 알맞는 정치적 부성(fatherhood), 정체(body politic), 거대한 사슬(Great chain)이란 세 이미지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
3. 신전체주의론 ; 매코맥(G. McComack).
전통적인 전체주의와는 달리 감시. 테러. 국가행사를 통한 대중 동원이란 3중혼합 모델로 파악.
4. 유격대국가론 ;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당, 국가, 사회단체가 일체화한 구조로서의 국가사회주의에 기초하여 수령에 대한 충실성과 공산주의적 인간성을 지향하는 혁명전통의 체현으로 인식.
5. 수령제론 ; 스즈키 마사유키(鐸木昌之).
소련형의 당국가 시스템 이에 수령을 올려놓은 체제로 해석.
6. 유일체제론 ; 이종석.
1인 집중 권력 뿐만 아니라 최고 지도자(수령) 중심으로전체사회가 전일적인 하나의 틀로 편재되어 혁명적 수령관. 후계자론. 사회정치적 생명체론으로 일관된다고 분석.
(이종석 , 113~122쪽에서 간추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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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관점이든 남북한의 이질적인 가치관은 변함이 없는데, 이에 비하여 1990년대 중반 이후 ‘통일방법론’의 모색에서 남북한 ‘사회통합론’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남북 사회통합론에 대한 연구 추세가 지닌 역사적인 의의는 “90년도 전반기의 남북한의 인구구조에서 한국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 즉 1954년(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의 경우 약 69%, 북한의 경우는 약 74%에 이른다. 그러나 공존체제가 무르익는 2010년이 되면 전후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은 한국의 경우 약 80%, 북한의 경우 약 90%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양호민 외, <통일-어떻게 되어갈까>(제2부), , 나남, 1992, 228면 참조)는 지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통합은 통일이 만들어 내는 상황이고 통일 이후에 일어나는 과정이다. 통일이 완성되면 문화 통합이 시작된다. 통합은 integration이란 낱말이 시사하듯이 두 개 이상의 체제가 잘 기능하는 하나의 체제를 이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통합은 통일에 이르는 과정에서 거쳐야할 하나의 단계로 파악하기보다는 남북 분단 상태가 종식된 후, 통일된 사회 내에서 남북한 주민이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정착시켜 가는 과정을 뜻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협, <남북한 사회통합의 과제와 전망>, (이온죽 외), 삶과 꿈, 1997, 133면에서 재인용. 이 저서는 남북한 통합문제에 대한 총체적인 접근론 연구에 유용함. 이 분야에 대한 참고로는 이온죽, , 서울대 출판부, 1988. 이 저서에는 북한 사회분석의 자료로 북한소설을 활용했다,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설교로부터 벗어나 한국문학이 남북한 통합의 현실적인 정서적 형상화를 창출해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검토되어야 할까. 먼저 이제까지의 분단주제 문학이 이룩해냈던 성과에 대한 평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진로 모색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3. 만남의 문학 유형
휴전 이후 남북 주민이 처음으로 소설에서 만난 것은 이호철의 <판문점>일 것이다. 1961년에 발표된 이 작품은 진수가 광명통신 기자 이름을 빌려 어느 가을 날 취재차 갔던 판문점 초행길에서 “눈알이 투명하게 샛노랗고 얼굴이 납작하고 기미가 끼고 전체가 옴푹 파인 듯이 탄탄하게” 생긴 북측 여기자와의 여우비 같은 사랑을 다룬다. 회담 취재로 듬성하게 흩어져 있던 각국 기자들의 틈새에서 둘이 만나 입씨름 중 갑자기 비가 내리자 진수는 그녀의 손을 잡고 가까이 있던 지프에 올라 문을 잠그고는 총각 처녀가 단 둘이 있을 때 발생할 법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그녀는 남쪽 사람과 북쪽 사람이 여기서 만날 때 으레 짓는 그 경계와 방어태세가 깃들인 표정으로 피해서 갔다.” 그 뒷모습을 건너보며 진수는 “기집애, 요만하면 쓸 만한데……쓸 만해.” 라고 쓸쓸하게 웃으며 역시 자신의 처지로 돌아온다.
이로부터 남북은 소설을 통해서조차도 서로 만나지 못했다. 그러다가 1972년 7 ․ 4남북공동성명 선포를 전후하여 이정환은 <부르는 소리>란 소품을 통해 월남하여 재혼한 사나이의 꿈에 북의 아내가 나타나 “분단 오입” 그만 하라고 강박하는 장면을 보여주었으며, 송원희는 <분단>에서 북에 아내를 둔 남편과의 소시민적인 행복한 삶 속에서 꿈에 북의 본처가 나타나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통일이란 민족적 염원이 이처럼 개개인에게는 더 큰 상처로도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이 시기를 지나면 남북의 만남은 전혀 예기치 못했던 남파 간첩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남파 간첩 모티브는 장용학의 이후 이병주의 <삐에로와 국화>, 김민숙의 <봉숭아 꽃물>, 홍상화의 장편 , 김용만의 <어느 계절의 벽>, 김하기의 <완전한 만남> 등 계속되고 있다. 그 관점과 방법은 다르나 대개 월북-남파-자수 혹은 생포-북의 가족을 고려하여 피체됐다고 주장하나 인생론으로 회귀(곧 심정적인 전향)한다는 줄거리들이다.
이들은 예외 없이 한국에서 성장했을 뿐 아니라 이곳이 고향으로 친인척들이 다 있는 데다 정서적으로도 소시민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런 만남의 모티브는 현실정치체제에서 금기시 되어있는 간첩이란 직능을 상정했다는 점에서 이색적이면서도 남북 사회통합의 기초 자료로 가치가 있을 성싶다.
한편 박덕규의 <노루 사냥>이나 정을병의 <남과 북> 등은 탈북자를 다루고 있다. 어느 작품이나 다 남북의 만남이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탈북자들의 급증과 함께 탈북자 문학은 앞으로 새로운 도전을 기다리고 있다.
4. 통일 가상 소설의 허구성
분단문학을 통합의 문학으로 방향 전환시킨 첫 작품은 최윤의 <아버지 감시>(1990)로 이 소설은 부자간의 만남의 무대가 파리로 설정되어있다. 월북, 북에서의 재혼, 중국으로 탈출해 국적을 바꿔 살고 있던 아버지가, 파리의 국립식물연구원에 근무하는 아들 창연을 찾아와 함께 보낸 며칠간을 다룬 이 소설은 남북의 만남을 처음으로 대등관계로 삼아 긴장감을 지탱시켜 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가 상대를 탐색이라도 하듯이 대화보다는 침묵으로 사흘을 보내는데, 이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다. 즉 남북의 만남이란 극적인 감동과 울음보다는 오히려 이들 부자처럼 어색한 침묵이 더 제격이지 않을까 싶다. 여기서 울음은 창연 어머니와 아버지 세대의 몫이고, 아들과 아버지만 해도 어느새 그 감격의 도수는 낮아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념과 체제가 다른 아버지와 아들이 대면하면서 점점 애정을 느껴간다는 이 소설의 줄거리는 분단시대의 금과옥조였던 ‘이데올로기는 피보다 진하다’는 냉전시대의 우상을 ‘피는 이데올로기보다 진하다’로 바꿔주었다.
파리에서 만났던 남북한은 이제 연변으로 그 무대를 바꿨는데, 이문열의 <아우와의 만남>이 그 한 전형을 이룬다. 월북-재혼으로 이복형제의 출생-아버지의 사망-이복형제 만나기의 소설구도는 당분간 유효하며, 이를 통해서 남북은 사회통합의 방안을 암시받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연변이나 러시아 등 외국을 배경으로 한 남북의 만남은 홍상화의 <어머니 마음>, 이원규의 <강물은 바람을 안고 운다>, 이순원의 <혜산 가는 길>, 고종석의 장편 등 상당수에 이르며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여기까지의 만남이 가족 구성원 중심의 재회였다면 권현숙의 는 이념이 지배하는 시대일지라도 건전한 남녀는 사랑까지 가능함을 입증해 준 남북 통합의식의 성과이다. 알제리에서 만난 한국인 미국 유학생 이향과 북한의 공작원 한승엽은 서로의 이념적 이질성에도 불구하고 민족애를 바탕으로 한 사랑에 이르는데 아무런 장애도 없다. 이 작품이야말로 남북사회 통합론에 걸맞은 연구 대상으로 우리 문학이 이제는 과거 지향성에서 미래 지향으로, 그 무대 역시 한반도나 강대국 4개국에서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어야 할 전환기를 맞고 있음을 예고해 준다. 마치 다시 이호철의 <판문점>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한국문학은 이제 남북한 통합의 준비 시대를 맞아 비록 첫걸음이긴 하지만 분명히 변모하고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북한문학 역시 변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음은 우연이 아니다.
5. 맺는 말 - 독일 통합의 교훈
남북한 주민의 만남을 다룬 소설이나 통일가상 소설은 그 한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당분간 절실한 소재로 지속될 것이다.
이미 통합화의 안정기로 접어들고 있는 독일이 겪었던 동서 분단 시기의 여러 정황을 보노라면 우리는 여전히 분단시대의 가치관에 얽매여 있음을 실감케 된다.
한국문학은 여러 면에서 독일과는 다를 것이다. 비록 닫힌 사회체제 속에서 독일 같은 교류와 창작의 자유스런 활동을 보장받지는 못할지라도 분단문학의 풍성한 목록과 영향력은 독일을 능가한다고 볼 수 있다. 어차피 남북한은 민족문학의 세기를 보내고 세계문학의 시대에 맞게 될 통일일 테지만 그래도 여전히 남북문제에서는 독일보다는 훨씬 응집력이 강한 민족의식을 보유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통일 가상소설과 함께 유행하고 있는 일련의 역사대체 대하소설들이 대개가 ‘민족 이데올로기’를 옹호하고 있으며, 북한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란 점에서 ‘민족 이데올로기의 통합’ 가능성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며 그것은 만남의 문학으로 재충전되어 갈 것이다.
임헌영 (임준열) 문학평론가
1941년 경상북도 의성 출생.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2010년 제15회 현대불교문학상 평론부문 수상.
현 민족문제연구소 소장,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출처] 백령도세미나/분단문학 어디까지 왔나/임헌영 (통일문학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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