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3

김용삼 선생의 '김일성 신화의 진실'의 허구



mediocris cum fortitudine




김용삼 선생의 '김일성 신화의 진실'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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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서


선생께서 쓰신 ‘김일성 신화의 진실’이라는 책을 구입하여 색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꼼꼼히 읽었습니다. 출판 전부터 대단한 책일 거라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습니다만, 읽으면 읽을수록 기대에 비례한 실망도 컸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1940년 11월 소련으로 도망가기 이전의 북괴 김성주를 미화한 기존의 서술과 차이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의 김성주의 행적에 관해서는 모르던 사실까지 알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만, ‘김일성 진실 찾기’라는 관점에서 보면 해방 이후의 행적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김일성 왜곡의 선구자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김일성의 만주항일전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사상, 이데올로기의 알파요, 오메가다.”라는 진술처럼 북괴 김성주는 만주항일전쟁의 영웅으로 미화되어 한국 사회가 종북의 소굴이 되고 이념 갈등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올바른 ‘김일성 진실 찾기’가 되려면 해방 이후보다 1940년 11월 이전의 김성주는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지 않았으며, 왕청유격대의 제3중대장도 아니었고, 보천보 야습의 영웅도 아니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김성주의 미화, 왜곡을 뿌리부터 제거해야 합니다.


선생은 공정한 시각이라는 이름 아래 김일성 미화, 왜곡을 밝혀줄 증거와 증언들을 외면하거나 미화, 왜곡 자체와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써 김성주가 중공당에 가입했고, 왕청유격대의 제3중대장이었으며, 보천보 야습의 지휘관으로써 참가했다는 기존의 김성주 미화, 왜곡을 그대로 답습하는 2차 사료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선생이 책의 내용을 수정한다고 해도 선생의 책을 악용하는 종북 좌파들에게 아무런 대응도 할 수 없는 고약한 상황을 초래하게 되었습니다. 선생의 ‘김일성 신화의 진실’ 추구는 출판하지 않은 것보다 못하게 되었습니다.


왜 선생의 책에 실망하게 되었는가


1995년 해방 50주년을 맞이하여 조선족 계열의 요녕민족출판사는 ‘항일투쟁 반세기’라는 기념비적인 책을 출판했습니다. 지질과 활자가 조악한 회고담 형식이지만, 북괴 정권에서 주요 직책을 담당했던 최용건이나 김책은 기록하면서도 김성주나 김일성의 이름은 전혀 등장시키지 않았으니 이는 중국측의 ‘동북항일열사전’도 마찬가지입니다. 1994년에 사망한 김성주를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었던 1995년에 김성주를 제외시켰다는 의미는 김성주는 항일투쟁을 하지 않았으며 김성주를 만주항일전쟁사에 편입시키는 순간 항일전쟁사 전체가 왜곡됨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프게 들리겠지만, 선생은 참고서적조차 제대로 꼼꼼히 읽지 않았습니다. 몇 개의 오류는 사소한 실수로 치부하더라도, 김성주의 중공당 입당 여부와 왕청유격대 가담 등은 참고서적만 제대로 분석했더라도 미화와 왜곡의 들러리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고의든 아니든 선생은 북괴의 역사 왜곡과 이를 인용한 와다를 비롯한 ‘역사 돌려막기’에 참여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김성주의 처 김혜순의 별명이 한성희라는 정체 불명의 증언은 인용하면서 김혜순이야말로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인 결정적 증거라는 이명영을 외면하는 선생의 태도에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저의 가혹한 평가는 기존의 오류를 벗어나려는 우직한 김일성 연구의 결과입니다. 2년 전부터 선생의 ‘김일성 신화의 진실’ 말미의 연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상세한 연보를 작성해 왔습니다. 김성주 관련 사건을 연월일 순으로 정리한 연보 작성을 위해 선생의 책에서 거론한 서적 이외에 수많은 서적을 참조하여 지금도 계속 내용을 보완하고 있습니다. 연보는 빡빡한 MS 워드 A4 형식으로 36장을 넘기고 있습니다. 연보 작성의 결과 김성주는 중공당에 가입할 수도, 왕청유격대에도 합류할 수 없었고, 제3단 정치위원은 터무니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김성주의 중국공산당 가입 여부


1929년, 1931년 또는 1932년 어느 시점에서 김성주가 중국공산당에 가입할 수 있었겠습니까? 중공당은 가입하겠다고 원하기만 하면 입당이 허용되는 그런 조직이 아닙니다. 그래서 김성주의 상관 노릇을 하던 이종락도 끝내 중공당에 가입하지 못했습니다. ‘준엄한 시련 속에서’ 140쪽에서 1916년생인 여영준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1932년부터 어린 나이로 연락원이나 통신원으로 시작해 1933년 유격대 생활을 시작해 제2군 군장 왕덕태의 경위대원으로 또는 위증민의 측근에서 싸우면서 1936년 봄이 되어서야 비로서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입당을 비준 받습니다.


2012년 개정된 중국공산당 당장(党章)에 의한 당원이 되려면 18세 이상의 노동자•농민•군인•지식인 및 기타 사회계층의 선진분자로서 정식 당원 2명의 추천을 받아야 입당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신청서를 내면 ‘적극분자’가 되어 1~2년 동안 교육, 훈련, 봉사활동을 통해 사상, 능력, 태도를 평가 받고 평가가 당 지부대회에서 통과해야 정식입당 지원서를 내고 예비당원이 됩니다. 예비당원 관찰기간 동안 자질 인증을 받고 당원대회에서 당원들의 표결로 통과되면 상급 당 위원회의 현지 조사를 통과해 비준을 받고 입당 선서를 마쳐야 비로소 공산당원증을 받습니다.


경쟁률이 7대 1이나 된다는 현재와는 다르고, 1930년 5월 24일 발표로 조선인의 중공당 가입을 장려했다고는 하나, 1928년 7월 10일 중국공산당 6차 전당대회(中共六大)에서 통과되어 1945년까지 유지된 중공당 당장(党章)은 노동자 농민이라도 정식 당원의 추천이 있어야 당원 가입을 신청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김성주 같은 다른 정당 이탈분자(脱离其他政党)들은 제3장 3조 (丁)항에 따라 반드시 1년 이상의 당적을 소유한 3인의 소개를 받아야(须经有党籍一年以上之党员三人介绍) 입당을 신청할 수 있고, 중앙의 비준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则须经中央之批准).


민생단 사건이 보여주듯 피아를 쉽게 구별할 수 없는 만주 상황을 고려하면 중공당의 조치는 당연했으며 김성주도 여기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더구나 김성주는 1929년 5월 조선공산청년회 사건이나 1932년 2월의 고동뢰 참살사건 등으로 줄곧 도피하던 신분이었으므로 중공당 입당을 신청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1932년에도 남만에서 배회하거나 통화의 양세봉 사령에게 투항하여 머물거나 어머니의 죽음 뒤 안도현을 오갈 뿐 중공당에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김성주의 중공당 가입 주장은 북한의 역사책을 베낀 와다의 왜곡을 재인용한 무지에 불과합니다.


김성주의 왕청유격대 합류와 동령현성 전투


선생의 돌이킬 수 없는 오류는 102∼103쪽에서 북괴 김성주가 “1933년 9월 22일 중국 구국군 오의성(吳義成) 부대와 동만 공산유격대의 왕청유격대(대장 梁成龍)가 합동으로 진행한 동령현성 전투에 양성룡 부대의 일개 소대로 참가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단정한 기술입니다. 한마디로 김성주는 양성룡의 왕청유격대의 일원으로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장준익의 책을 인용하여 잘못을 반복하는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장준익은 검증용으로만 유의미한 북한의 ‘김일성 동지 전기’나 ‘조선전사’를 참고하면서도 이명영이나 허동찬의 저술은 외면했습니다.


김성주가 양성룡의 왕청유격대에 참가했다는 주장이 거짓인 이유는 김성주가 이끌고 왕청유격대에 합류했다는 안도유격대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가공의 유령부대이기 때문입니다. 북괴가 인민군 창설기념일이라고 내세우는 1930년 4월 25일의 안도현에는 김성주의 안도유격대커녕 어떤 형태의 조선인 유격대나 심지어 중공유격대조차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존재하지도 않았던 안도유격대가 양성룡의 왕청유격대에 합류할 수 없었으므로 김성주는 절대로 왕청유격대대 제3단 정치위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안도유격대라는 유령부대를 만든 장본인은 북한 림춘추의 ‘항일투쟁시기를 회상하며’ 24쪽∼25쪽입니다. 림춘추가 김일성에 아부하여 살아남기 위해 지어낸 소설을 와다는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번역본 94쪽에서 “1932년 11월에 안도부대가 합류하여 유격대대가 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김일성 부대의 기술로 보면 1933년 2월에 왕청유격대에 합류한 것으로 된다.”고 기술했습니다. 이것을 6년이 지난 1998년의 ‘북조선’ 번역본 44쪽에서는 아예 “1932년 안투(安圖)에서 구국군 유(于) 사령부대의 별동대로서 조선인 무장부대를 조직하였다.”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림춘추는 만주항일투쟁사에 나오는 차광수, 김일용, 박훈 등 마구잡이로 그러모은 9명으로 안도유격대라는 가공의 유령부대를 만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아부가 더해질수록 규모가 커져서 나중에는 100명까지로 늘어납니다. 아무리 김성주의 역사가 제멋대로 지어내는 소설이라지만, 안도유격대는 너무 심했습니다. 터무니 없는 안도유격대를 바탕으로 와다는 김일성이 ‘소련 야영지에서 썼다는(북조선 44쪽)’ ‘항련제1로군략사’와 이를 인용한 ‘동북항일군사료’를 인용하여 “김일성이 대대정치위원으로” 되었다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역사가 아니라 코미디입니다.


1930년 4월 25일에 안도유격대는 창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가공의 유령부대가 동령현성 전투에서 양성룡의 왕청유격대에 합류하는 사건은 불가능합니다. 림춘추도 문제의 ‘회상기’ 68쪽에서 김성주를 보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왕청유격대에 합류한 사실이 없으므로 김성주가 왕청유격대대 제3단 정치위원이 되었다는 주장도 거짓말입니다. 1933년 9월 22일 동령현성 전투에서 오의성의 당번병인 김성주는 10명도 안 되는 새날동맹 패거리와 함께 양성룡 부대가 아닌 구국군 주위를 얼쩡거렸을 뿐입니다. 그걸 뒷받침하는 중요한 증언들을 선생은 외면했습니다.


제2방면군장 진짜 김일성과 그의 처 김혜순


선생은 제2방면군장 김일성과 그의 아내 김혜순에 관한 기록들을 간과하거나 편파적으로 인용하는 또 다른 오류를 저질렀습니다. 제2방면군장과 김혜순은 가짜 김일성을 밝혀내는 결정적인 열쇠입니다. 김성주가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아내 김혜순을 만나는 장면과 김혜순의 본명이 한성희라고 기록한 임은의 ‘김일성왕조비사’는 북괴 김성주가 가짜 김일성임을 자백하는 자충수에 불과합니다. 회고록이나 역사서 어디에도 김혜순이 북괴 김일성의 아내라고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선생은 이기봉이 잘못 인용한 전거 불명의 판타지를 재인용 했습니다.


김성주 전기의 완결판인 ‘세기와 더불어’에 김혜순이 등장하는 대목은 많지 않습니다. 4권 183페이지의 김혜순이 꾀꼬리처럼 노래 잘하는 반일자위대원이라는 부분과 4권 192페이지의 김성주의 동생 김영주에게 밥을 해준 김혜순을 1936년에 김성주가 만났다는 장면 외에 북괴 김성주와 관련하여 특별한 관계로 기술된 대목은 없습니다. 김혜순에 대한 내용은 전 8권을 통틀어 4권의 몇 군데뿐이고 4권 이후론 슬그머니 사라져 버립니다. ‘세기와 더불어’ 어디에서도 김혜순이 북괴 김성주의 아내라고 읽히는 대목은 없습니다. 김혜순은 북괴 김성주의 아내가 아닙니다.


임은의 ‘김일성왕조비사’ 64페이지에서 김혜순의 본명이라던 한성희는 ‘세기와 더불어’에서는 전혀 다른 인물입니다. 4권 10페이지의 한성희는 영안현 이도하자에서 체포되어 심문 도중 탈출을 도운 조선인 보초와 부부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North Korea’ 115페이지에 김혜순이 일본군에게 체포되어 죽었다고 쓴 브루스 커밍스는 날조된 북한 역사서의 꼭두각시일 뿐입니다. 모든 희극의 발단은 북괴 김성주가 진짜 김일성임을 공증받기 위해 김혜순을 만났으며, 그로 인해 북한에서 북괴 김일성의 부인이 김혜순 또는 한성희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기 때문입니다.


김혜순이나 한성희 모두 북괴 김성주의 아내가 아닙니다. 김성주가 김혜순을 만난 이유는 동아일보 보도를 통해 김혜순이 제2방면군장 김일성의 아내라는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북괴 김성주는 김혜순을 만남으로써 자신이 진짜 김일성으로 인정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북괴 김성주가 바라던 효과는 없이 가짜 김일성이라는 증거만 남겼습니다. 북괴 김성주의 회고록 날조 집단인 ‘백두청년회 산하 백두편집부’는 무슨 수를 쓰든지 김혜순 문제를 해결해야 했습니다. 그들의 선택은 4권에서 노래 잘하는 자위대원으로 등장시켰다가 지워버리는 방법이었습니다.


회고록을 날조하는 ‘백두편집부’의 유치함은 북괴 김성주를 제2방면군장 김일성으로 조작하여 혁명박물관에 전시하는 사진 조작과 비슷합니다. ‘세기와 더불어’ 4권에 김혜순의 사진은 나오지만, 한성희의 사진은 아예 싣지 않았습니다. 김혜순 사진의 출처는 어디일까요? 이명영의 ‘김일성 열전’ 319페이지에서 언급한 조총련 유광수(柳光守)가 일본군 토벌대 나카지마 다마지로오(長島玉次郞)에게 빌려가서 돌려주지 않았다는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 아내 김혜순과 찍은 사진입니다. 진짜 김일성이 누구인지 밝혀질 수 있는 선명한 사진에서 김혜순만 오려낸 것입니다.


‘세기와 더불어’는 제2방면군장인 진짜 김일성의 아내 김혜순을 노래 잘하는 자위대원으로 등장시켰다가 없애고, 김혜순의 본명이라는 가공의 인물 한성희는 일본군에 체포되어 심문 도중 탈출을 도운 조선인 보초와 부부가 되고 항일투쟁 대오에서 탈락된 것으로 처리했습니다. 가짜 김일성은 이것으로 골치 아픈 김혜순, 한성희 문제가 완결되었다고 보았을까요? 날조를 밥 먹듯 하는 그들의 사고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들만의 착각입니다. 제2방면군장 진짜 김일성의 아내가 김혜순이라는 증거는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북괴 김성주가 가짜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남들이 하기 어려운 일을 해낸 선생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고의든 아니든 선생이 저지른 결코 사소하지 않은 오류로 인해서 북괴 김성주를 진짜 김일성으로 미화, 왜곡하고 그를 추종하는 집단에 의해 악용되는 빈틈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개인적 안타까움도 크지만, 진실을 위해서는 선생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선생은 보천보 야습을 기획하면서 진짜 김일성과 여러 번 만났으므로 누구보다도 진짜 김일성을 잘 아는 박달과 박록금의 증언은 외면하고, ‘시체 바꿔치기’를 했다는 이기봉의 기괴한 주장은 편파적으로 기술했습니다.


1940년 위증민의 코민테른 보고가 북괴 김성주가 김일성이라는 충분조건은 되지 않습니다. 제2, 제3의 김일성이 행명하는데 위증민이 굳이 김일성이 죽었다고 보고할 이유도 없습니다. 살아있는 6사대원 김성주를 만났다는 동생 김영주의 증언이 북괴 김성주가 보천보를 습격한 제2방면군장 진짜 김일성이라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북괴 김성주는 자신이 제2방면군장 김일성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사진을 조작하고 회고록을 조작했습니다. 자신이 진짜 김일성이라면 조작할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조작했다는 것은 진짜 김일성이 아니라는 명백한 반증입니다.


6사장 김일성의 죽음을 ‘시체 바꿔치기’라거나 김혜순이 ‘한성희’라는 이기봉의 주장은 인용하면서 이명영의 증언을 외면하는 이유가 정말 궁금합니다. 선생은 북한의 왜곡을 베낀 와다나 이기봉의 기괴한 주장을 동등 비교함으로써 허동찬의 예리한 추적들과 이명영 교수가 각고의 노력으로 수집한 일본인 토벌대원들의 중요한 증언들의 증언으로써의 효력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얼핏 공정한 역사적 서술로 보이겠지만, 사실 규명 노력과는 전혀 관계없는 잘못된 기술 방식입니다. 악의가 있다고 오해 받기에 충분한 행위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만 그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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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ocris2016-08-03 14:39
가짜 김일성 관련 포스팅이 뉴스비평 밸리에 적당치 않다고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뉴스(news)라고 생각해서 뉴밸에 올리는 이유도 있지만, 가짜 김일성은 대한민국의 현존하는 모든 이념 갈등의 근원이라는 판단이 더 크게 작용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짜 김일성은 언제나 ‘살아있는’ 뉴스입니다. 베네데토 크로체가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고 말한 이유도 이런 의미라고 판단합니다.

타마2016-08-03 16:43
역사에대한 새로운 해석은 역사비평이 아닐런지... / 대한민국의 이념 갈등의 근원이라면 인문사회가 아닐런지...
솔직히 이게 뉴스비평인진 잘 모르겠어요. 그냥 뉴스라곤 할 수 있지만 뉴스비평이라고 하긴 이상 미묘한 느낌?

Mediocris2016-08-04 00:11
대한민국에서의 이념 갈등은 역사 해석의 차원을 넘는 현실이며, 항상 새롭고(new) 새로운 정치적 문제들(news)입니다.
비공개2016-08-03 14:55
비공개 덧글입니다.

비공개2016-08-03 15:09
비공개 덧글입니다.
Mediocris2016-08-03 23:45
오늘 김용삼 선생의 메일 dragon0033@hanmail.net 로 <선생의 책 ‘김일성 신화의 진실’에 적힌 북앤피플의 메일로 보냈으나 회답이 없어 직접 보냅니다. 선생의 의견의 무엇인지 꼭 듣고 싶습니다.>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대답이 올 지 안 올 지, 어떤 내용의 대답이 올 지 기다려 보겠습니다.
ㅇㅇ2016-08-09 16:25
님의 카테고리를 읽으니 현대사에 대한 조예가깊고 저따위보다 훨씬 필력도 좋네요

여유가 되시고 계정이 있으시면 나무위키에서 활동하셨으면 좋겠네요
아시겠지만 구글에치면 이승만-박정희-각종 시국공안폭동 등 곧바로 최상위에 노출되어 파급력이 가장 거대ㅐ서요

내용수정하면 곧바로 반달로 찍혀 내용이 되돌리져고 활동차단되기 일쑤지만
토론게시판에 붙이면 좌좀들이 파리떼처럼 몰려와 피곤하긴해도 괜찮습니다
보수에 불만이 좌가 점령한 온라인상에 내공있는 분들이 분명히 있어도 활동을 방관한다는 점입니다
조인성2016-08-30 06:44
김일성의 허구에 찬 일대기른 파헤치고 연구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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