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7

[BOOK]조선인 60만 노예가 되다 - 주간경향

[BOOK]조선인 60만 노예가 되다 - 주간경향

[BOOK]조선인 60만 노예가 되다

역사소설로 꾸민 병자호란, 그 후


외세의 침략 후에는 인적·물적인 ‘강제 공출’이 있게 마련이다. 침략 세력은 전쟁 물자를 확보하기 위해 침략지의 자원을 강제로 거두어갈 뿐 아니라 선량한 사람들마저 강제로 동원해 모자란 노동력을 충당한다. 물자 공출보다 더 아픈 것이 사람 공출이다. 강제 동원된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노예로 전락해 온갖 천대와 멸시를 받으며 비참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일제시대에는 물론이거니와 고려 때 원나라에 지배당했던 때도 그랬으며 임진왜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유독 병자호란 때만은 이 부분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혹한이 몰아친 겨울, 인조가 한강 나루 삼전도에서 찬 흙바닥에 무릎을 꿇고 청 태종에게 굴욕적으로 항복한 사실은 알아도 당시 조선의 수많은 사람이 청나라에 노예로 끌려간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조선인 60만 노예가 되다’는 바로 이 점을 밝힌 책이다.

책의 제목에서 이미 눈치 챘을 테지만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60만 명이 청에 끌려갔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대략 1000만 명이었다고 하니 60만 명이라면 어마어마한 수다. 이들은 청나라 선양의 노예시장에서 팔려나갔다. 이들은 청이 명과 벌인 전쟁에 군인으로 동원되기도 했고 농사와 공사에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도 했다. 폭행당하는 것은 일쑤였고 부녀자들은 수시로 강간당했다. 소현세자와 동생 봉림대군도 인질로 잡혀갔다. 두 왕자의 삶이 비참했을진대 하물며 노예로 끌려간 일반 백성의 삶은 오죽했을까. 저자는 이 책에서 청에 끌려간 조선 백성의 비참한 처지와 삶을 생생하게 복원해냈다. 더불어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삶도 외면하지 않았다.

저자는 다소 독특한 방식으로 이 책을 구성했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인의 피랍사를 다루었지만 통계자료와 역사적 사료 등을 증거물로 제시하고 논문처럼 서술하지 않았다. 마치 한 편의 역사소설처럼 이야기를 구성해나간 것이다. 생동감과 재미를 주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이 독특한 구성의 핵심에는 저자가 창조한 두 명의 가공 인물인 김분남과 길영복이 있다. 이들은 물론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저자는 당시 조선 백성의 처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이 두 명의 가공 인물을 만들었고 이들을 앞세워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저자는 스스로 “새로운 장르인 ‘사실(史實)소설’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병자호란은 청이 명을 무너뜨리고 중국 본토를 몽땅 차지하고 난 후 일으킨 것이 아니다. 명을 치기 전에 조선부터 침략한 것이다. 궁극적으로 청이 조선을 침략한 가장 큰 목적은 명과의 전쟁에서 부족한 군인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조선의 수많은 사람이 청의 노예로 끌려간 것은 당연했다. 당초 목적이 사람에 있었기 때문이다. 인조의 항복을 받고 나서 청이 싹 철군한 것이나, 호란 이후 청이 조선에 별다른 요구를 하지 않았다는 점 등도 이를 증명한다.

조선인 포로는 돈을 받고 조선에 속환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100냥 정도이던 속가가 점점 치솟아 1000~1500냥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사실상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속가를 마련하느라 고생하고 청나라 사람 앞에서 울며불며 애원하는 가족 앞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많았다.

저자는 그동안 여러 낭설로 둘러싸여 있던 소현세자의 사인(死因)도 밝혀냈다. 청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귀국한 소현세자가 아버지 인조에게 벼루로 맞아 죽었다거나 독살당했다는 설은 잘못됐다고 말한다. 기록으로 볼 때 소현세자는 간경화나 간암으로 죽었을 확률이 더욱 높다는 것이다.


훗날 봉림대군은 효종으로 즉위한다.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인조가 봉림대군에게 왕위를 물려준 점, 봉림대군이 인조에게 받은 쾌도(快刀)를 품고 군대를 양성했으며 북벌에 애쓴 점 등은 모두 청의 대규모 인력 공출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똑똑히 알 수 있다.

이 책은 간과했던 우리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비록 그것이 뼈아프기는 하지만 무시하고 묻어두기에는 너무나 큰 사건이었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원문보기: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6&artid=16354#csidx59c49b1a389774eb2bed84db90a09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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