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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4대 통일부장관 강인덕 康仁德 | Kang In-deok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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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본관 | 곡산 강씨(谷山 康氏) |
현직 | 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 고문 |
재임기간 | 제24대 통일부장관 |
1932년 11월 10일 평안남도 평양부에서 아버지 강기선과 어머니 김병기 사이에서 6남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950년에 평양제2중학교를 졸업한 뒤 곧 6.25 전쟁이 발발하여 1.4 후퇴 직전 월남하였다. 이후 대한민국 육군에 학도병으로 입대하여 경기도 모 예비사단에서 정훈병으로 복무한 뒤 병장으로 만기전역하였다.
정전 협정 체결 후 국방부 정훈국 대북방송요원으로 임용되었다. 이후 이하영 내무부 치안국 특수정보과장의 배려로 5년간 특수정보과 촉탁으로 근무하였고, 이때 6.25 전쟁 중에 지리산지구 전투에서 노획한 빨치산 관련 문서로 공산주의 사상을 연구할 수 있었다. 또한 재직 중이던 1954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노어과(54학번)에 진학하여 1958년 졸업하였다.
1958년 4월 문희석 국방대학원 초대 교수부장의 소개로 해병사관후보생 26기로 입교한 뒤 1959년 1월 대한민국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해병대사령부 작전교육국에 발령되어 국방대학원에서 강의를 맡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중위로 전역하였다.[3]
예편 이후 박정희 정부에서 신설된 중앙정보부의 초대 북한과장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아주지역학과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공산과장을 거쳐 1971년 해외정보국장, 1972년 북한정보국장 겸 남북대화협의회 사무국장, 1975년 심리전국장 등 간부직을 역임하였다. 1977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8년에 북한/공산권 연구소 (재)극동문제연구소(현 한올)를 세우고 초대 이사장 겸 소장을 맡아 1981년부터 12년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이념분과위원장을 지냈다.
1980년 1월부터 1998년 2월까지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심리전 프로그램 <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를 진행했다. 그 외에 KBS 1TV <남북의 창> 같은 북한 관련 TV프로나 뉴스에 단골 출연했고, 1982년에 <어린이세계> 발행을 맡는 (주)극동문화를 세웠다.
6.25 참전 경력과 중앙정보부 재직 이력 탓에 강경 보수 우익 성향으로 분류됐으나,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임명 과정에서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천거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1999년 옷로비 사건 청문회 때 아내 배정숙씨가 "미안합니다 몸이 아파서..."라는 말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당시 신인이었던 개그맨 김영철이 이 말을 따라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계기가 된다.
퇴임 후 2000년에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재취임해 운영 일선에 복귀했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에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통일/북한분야로 위촉됐고, 2015년에는 극동문제연구소를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에게 넘기며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 2월부터 <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라는 대북방송을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초반에는 매주 월요일에 방송했다가 현재는 매주 수요일 방송하고 있다. #
정전 협정 체결 후 국방부 정훈국 대북방송요원으로 임용되었다. 이후 이하영 내무부 치안국 특수정보과장의 배려로 5년간 특수정보과 촉탁으로 근무하였고, 이때 6.25 전쟁 중에 지리산지구 전투에서 노획한 빨치산 관련 문서로 공산주의 사상을 연구할 수 있었다. 또한 재직 중이던 1954년에는 한국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노어과(54학번)에 진학하여 1958년 졸업하였다.
1958년 4월 문희석 국방대학원 초대 교수부장의 소개로 해병사관후보생 26기로 입교한 뒤 1959년 1월 대한민국 해병대 소위로 임관하였다. 이후 해병대사령부 작전교육국에 발령되어 국방대학원에서 강의를 맡았다. 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중위로 전역하였다.[3]
예편 이후 박정희 정부에서 신설된 중앙정보부의 초대 북한과장으로 발탁되었다. 이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아주지역학과에서 국제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이후 공산과장을 거쳐 1971년 해외정보국장, 1972년 북한정보국장 겸 남북대화협의회 사무국장, 1975년 심리전국장 등 간부직을 역임하였다. 1977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78년에 북한/공산권 연구소 (재)극동문제연구소(현 한올)를 세우고 초대 이사장 겸 소장을 맡아 1981년부터 12년간 평화통일정책자문회의 이념분과위원장을 지냈다.
1980년 1월부터 1998년 2월까지 KBS 사회교육방송에서 심리전 프로그램 <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를 진행했다. 그 외에 KBS 1TV <남북의 창> 같은 북한 관련 TV프로나 뉴스에 단골 출연했고, 1982년에 <어린이세계> 발행을 맡는 (주)극동문화를 세웠다.
6.25 참전 경력과 중앙정보부 재직 이력 탓에 강경 보수 우익 성향으로 분류됐으나, 국민의 정부에서 초대 통일부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임명 과정에서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천거했다는 후문이 있었다.
1999년 옷로비 사건 청문회 때 아내 배정숙씨가 "미안합니다 몸이 아파서..."라는 말을 하여 화제가 되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은 당시 신인이었던 개그맨 김영철이 이 말을 따라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는 계기가 된다.
퇴임 후 2000년에 극동문제연구소 소장으로 재취임해 운영 일선에 복귀했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뒤에 대통령 국가안보자문단 통일/북한분야로 위촉됐고, 2015년에는 극동문제연구소를 김형성 성균관대 법학대학원 교수에게 넘기며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초빙교수로 재직했다.
2016년 2월부터 <북한 노동당 간부들에게>라는 대북방송을 자유아시아방송을 통해 진행하고 있다. 초반에는 매주 월요일에 방송했다가 현재는 매주 수요일 방송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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