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31

09 패싸움 자주 일어나는 중국 - 전근대 중국 시골의 대혈전, 계투(械鬪)

패싸움 자주 일어나는 중국 - 중앙일보:

패싸움 자주 일어나는 중국
중앙일보
입력 2009.05.13 


 중국 사회에는 집단으로 벌이는 패싸움 전통이 뿌리 깊다. 맨 몸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무기까지 동원한다. 그래서 중국의 패싸움을 ‘계투(械鬪)’라고 부르기도 한다. 계(械)는 무기를 뜻한다. 

계투는 이주민과 먼저 정착한 사람들 사이에 토지와 물 등 자원을 둘러싸고 수많은 갈등이 벌어졌던 동남부 지방에서 특히 많이 발생했다. 청(淸)대에 본지인과 이주민 집단인 객가(客家) 사이에 벌어진 어떤 계투는 12년간 이어져 10만 여명이 죽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지난 8일 허난(河南)성에서 발행되는 하남상보(河南商報)는 무술학교 학생들과 노점상 단속원 사이에 벌어진 집단 패싸움 사건을 보도했다. 계투의 전통이 만연한 중국이지만 공무원과 무술학교 학생들이 서로 싸움을 벌이는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중국 언론이 전하는 이 특별한 싸움의 전말이다. 

안후이(安徽)성 난양(南陽)시 탕허(唐河)현 노점상 단속원 10여 명이 5월 5일 오전 7시 단속에 나섰다가 무술학교 학생 30여명에게 집단구타를 당했다. 이 사건으로 단속 차량이 파손되고 단속원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날 단속에 나선 인원은 10여 명. 마구잡이로 들어선 노점상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탕허현이 만든 노점상 관련 규정은 이렇다. 
▶반드시 지정된 장소에서만 영업할 수 있으며 
▶주변 위생관리는 노점주가 책임지며 
▶아침을 파는 노점상은 오전 7시 이후 실내에서만 영업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이 규정을 어긴 노점상들에 대해 단속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자 노점상 한 명이 욕을 하며 단속원들의 옷깃을 잡아 끄는 등 거세게 반발했다. ◇전화 한 통으로 무술학교 학생 30여명 몰려와=결국 물건이 몰수당하는 것을 바라보던 이 여인은 오빠인 탕허현 사오린(少林)무술학교 교장 펑젠쥔(彭建軍)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다. 
전화 내용을 들은 단속원들 역시 사태가 악화할 것을 우려해 관리국에 즉시 지원을 요청했다. 잠시 뒤 지원요청을 받은 단속원들과 30여명의 무술학교 학생들이 현장으로 몰려왔다. 무술학교 학생 가운데는 긴 칼을 들고 온 학생도 있었다. 무술 사범 두 명과 30여 명의 학생들이 단속반을 에워쌌다. 펑젠쥔 교장이 학생들을 향해 “손 좀 봐줘라”고 외치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학생들은 단속원들을 구타하는 한편 단속원들이 타고 온 차량 유리창을 부수고 운전자를 칼로 찔렀다. 십 여분간 계속된 집단구타로 단속원들은 머리를 다쳐 피를 흘리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어떤 단속원은 머리카락을 잡아 뜯기는 부상을 입기도 했다. 

난동은 경찰이 출동한 뒤에 비로소 수습됐다. 이 폭행 사건으로 단속원 7명이 부상을 입었다. 카메라 한 대가 부서지고 휴대폰 한 대를 갈취 당하는 등의 피해도 발생했다. 
사건 발생 당일 저녁 경찰은 무술학교교장 펑젠쥔과 현장에 있던 무술 사범 2명을 체포했다.

 탕허현 위원회와 현정부는 난동자들을 엄중 처리키로 방침을 정했다. 현지의 남양일보(南陽日報)는 사건 발생 직후 현정부가 4개 특별팀을 꾸려 즉시 사건 수습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탕허현 공안국 역시 전담조를 편성해 앞으로 이러한 집단 구타 사건에 엄중 대처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현재 펑젠쥔 무술학교교장과 폭행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구속 수감돼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피해를 입은 단속원들은 현재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사건을 맡은 차이톈양(蔡天陽) 탕허현 공안국 치안대대장은 “이번 집단폭행에 가담한 10여명의 학생은 대부분 어린 학생들”이라고 말했다. 

선우경선 중앙일보 중국연구소 =kysun.sw@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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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2013/08/17 12:14:10
Name 신불해
Subject 전근대 중국 시골의 대혈전, 계투(械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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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로부터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법이니, 법이라는게 국가의 수장으로부터 길바닥의 노숙자에 이르기까지 칼처럼 적용이 되는 현대 이전 전근대 사회에서는 법에까지 갈 필요도 없이 두 주먹으로 해결되는 일들이 종종 많았다. 물론 주먹이 안되는 수준이면 칼, 창을 들기도 해야 할 터이다. 

 법에 의해 해결을 못 볼 정도의 상황이라면 상당히 심각한 일이고, 이 상황에서 등을 맡기고 믿을만한 존재는 달리 많지 않다. 한 가지 확실한 집단이 있다면, 바로 가족일 것이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중국의 계투(械鬪)는 이러한 가족, 종족(宗族) 패싸움이 절정에 달한 사례다.

 말하자면 계투란 종족이나 촌락 등 - 전근대 이전 중국의 농촌이란 대단히 배타적인 곳이므로, 종족과 거의 유사할 것이다 - 집단간에 다툼에 대해 무기를 들고 해결하려는 행위를 말한다. 이와 같은 행위가 더 전에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심화된것은 명 - 청 시대였으며, 특히 청나라 중기를 넘어 옹정 연간 무렵에는 굉장히 격렬해져 제국의 황제마저도 관심을 나타내는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게 되었다.

 일반적인 계투는 우선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우선 여러가지 문제로 인해 다툼이 발생하여, "주먹" 으로 손을 봐줘야 할만한 일이 생겼다고 치자. 그렇다면 족내에서는 선봉이 되는 사람이 나서, 다방면의 방법을 통해 족원이라는 '전력' 을 소집해온다. 그리고 어느 시기에 다른 종족 - 촌락과 맞짱을 뜨리고 정하는 것이다.

 물론 2,000년 전에 한 인물이 "이제 좀 서로 머리 식히고 다 좋게좋게 살면 좋잖아." 라고 말한 탓에 십자가에 매달리는 사례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시끄러운 분쟁을 원하는 사람보다는 좀 조용조용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 지구상에는 더 많을 것이다. 따라서 족내에서 "저 놈들 하고 한판 뜨자!" 라고 말한다고 해도, "난 좀 그런데……" 영 껄끄러운 사람도 있기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계투를 치루는데 있어 이러한 '개인의 의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중국의 농촌은 대단히 배타적이고, 또한 이러한 '공동체' 의 수장인 유력자나 연장자의 의사는 대단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으므로 감히 공동체를 거스르려 했다가는 무슨 험한 꼴을 당할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벌금을 매기는 정도에서 끝나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고, 끌려가서 신나게 두들겨 맞는다던지 장형을 얻어맞는다던지,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학술적인 이야기보다 경험담 쪽을 듣는 편이 더 와닿을 것이다. 

 "……나의 할머니는 우리들 모두를 자신의 노예로 생각했다. 할머니는 심한 아편 중독자였고, 나는 아편 냄새를 혐오했다. 어느날 밤 더 이상 그 냄새를 참을 수 없어진 나는 벌떡 일어나 난로에 얹어 놓은 아편 그릇을 발로 차버렸다. 할머니는 격노했고, 친족회의를 소집하여 '불효자식' 인 나를 '물에 빠뜨려 죽여야' 한다고 정식으로 요구했다. 할머니는 나의 죄상을 낱낱이 열거했다. 친족들은 할머니의 요구를 받아들여 실행할 작정이었다. 계모는 나를 죽여야 한다는데 동의했고, 아버지는 그것이 일단 친족의 뜻인 이상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때 마침 외삼촌이 나를 변호하고 나섰다." 에드가 스노우, 중국의 붉은 별 pp. 302

 여기서 말하는 '나' 란 다름아닌 그 유명한 펑더화이(彭德懷)다. 하나의 사례로 전체를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1900년전 농촌 공동체의 모습이 이러한 정도라면 그 2백년 전에는 어떠한 모습이었을지는 짐작 할 순 있다.

 여하긴 이러한 요소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족원은 빠짐없이 계투에 나서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 인원이 전부 싸움을 벌이는것은 아니다. 제비를 뽑거나, 혹은 유력자의 결정에 따라 족원들은 계투에 나서 적들을 두들겨 팰 '전투원' 과, 계투가 끝난 후 벌어질 관의 책임 추궁에 대해 '독박' 을 쓸 인물을 구분하였다. 경우에 따라 계투 전에 거창하게 제사를 치루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계투를 치루기로 했다손 쳐도 이쪽의 전력이 아무리 생각해도 견적이 안 날 경우가 있다. 저쪽에는 덩치들이 우글우글한데 이쪽은 비리비리 하거나, 혹은 숫자 자체가 부족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전력의 열세' 에서 실제 전쟁이라면 병력을 보급하거나 해서 처리하겠지만, 계투의 경우는 어떠할까?

이 경우 실제 전투와 유사하다. 병력을 '보급' 하는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는 외부인을 '용병' 으로 데려와서 내세우는 차이점이 있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무시무시한 흉악범이라기 보다는, 이런 일에라도 불려오지 않으면 먹고 살 길이 막막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다가다 불러모은 사람들을 내세우면, 그 사람들이 실제 족원인지 아닌지 저쪽에서 구별할 수 있을 방법이 무엇이 있겠는가?

 이러한 '대타' 작전은 '전투원' 의 공급 뿐만 아니라 '독박' 요원에도 적용되었다. 외부인을 독박용의 대타로 내세우면, 거의 대부분의 관리들은 누가 진짜이며 가짜인지 구별을 하지 않고 처리를 했다. 가끔 성가시게 조사를 하는 관리가 있다면, 그것은 돈 좀 내놓으라는 무언의 표시였다. 뇌물을 적당히 찔러주면 관리들은 알아서 뒷처리를 깔끔하게 해주었다.

문제는 이렇게 계투가 체계성을 보이면서 성행하다보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폭력성이 강화되어 끝장으로 치닫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방관이 "싸우지 마라" 라고 하면 지방관을 공격하는 충격과 공포스러운 일도 종종 있었다. 그리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하는 지방관의 경우는 어차피 '대타' 를 통해 자신의 체면은 유지할 수 있었으므로, 딱히 나서서 막을 필요성도 그리 느끼지 못했다.

 그리하여 문제의 계투가 벌어질 무렵이 되면, 이 배틀로얄에 참가하는 족원들은 몽둥이, 칼, 창은 기본에 심지어 활이나 총까지 쏘아댈 지경이었다. 따라서 피해는 대단히 컸다. 사건이 해결된 뒤 지방관이 당도해봐야 범인은 잡혀가느니 저항을 하고, 군대를 끌고 올 정도가 되면 이미 달아나는 무렵이라 처벌할 방법도 마땅치 않았다. 차라리 지방관들은 앞서 말한대로 '대타' 를 내세워서 자신의 체면을 살리고, 이 일로 은근히 압박을 주어 돈을 챙기는 쪽을 택했다.

 그렇다면 한번의 전투후에 계투는 완전히 종료가 되었는가?

 그렇지도 않다. 계투에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많은 자금에는 무조건적인 확률도 파리떼가 꼬이게 된다. 종족 유력자의 경우는 계투를 치루면서 많은 "떡고물" 을 챙길 수 있음으로 계투를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또한 종족 내 양아치 청년들의 경우는 땅도 없고 여자도 없는데, 하잘 것 없이 농사나 짓느니 롸끈하게 한판 붙으면 챙길 수 있는것도 있어서 오히려 계투가 일어나길 바라고 있었다. 이런 경우 때문에 계투는 일부러 빨리 종료가 되지 않고 질질 늘어지기도 하였으며, 양측의 전력이 엇비슷할 경우 수십년에서 심하면 백여년간 계투를 치루는 경우도 있었다.

 한 계투가 수십년에서 백여년에 이를 정도가 되면 이제 당사자들은 단순히 양쪽 세력 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더해진 "동맹 세력" 들이 추가되어 엄청난 규모로 확대되었다. 기껏 한판 승부에서 이겼다쳐도, 패배 쪽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관에 소송을 제기하거나 하면 다시 이것을 무마하는 과정에서 많은 돈이 오가고 또 계투가 벌어지기도 했으니, 완전히 손을 털고 화해를 하던지 아니면 완전히 재기의 여지도 없을 만큼 다른 세력이 끝장나던지 간에 시간은 많이 걸릴 수 밖에 없어써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떡고물" 을 챙기거나 할 처지가 못 되는 대다수 일반 족원들은 피폐해져갔다. 무기를 구입하고 무뢰배 집단을 전투용 대타로 고용하기 위해 돈을 내야 했던건 이들이었으며, 전투 이후 다치고 죽는 문제도 컸다. 계투에 집중하느라 농사에 집중하지 못하는 측면도 있었다. 

 하지만 종족원들은 그러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계투에 나서야 했다. 심지어 농촌이 아닌 도시에 살고 있는 족원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였는데, 현실적으로 족원들은 자신들을 보호해줄 장치가 같은 족원 외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종족을 떠난 족원은 그 후부터는 누구에게도 보호받기 힘들었다. 

 이렇게 계투의 폐단이 뿌리가 깊어졌기 때문에 이제 지방관들도 계투가 벌어지면 오히려 좋아라 하면서 양측으로부터 돈을 뜯어낸 일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설사 강직한 지방관이 오더라도 사태는 비슷했는데, 지방관은 그렇다쳐도 그 밑에 있는 서리나 아역들은 유력 종족에 포함되어 있거나 유력자의 수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계투의 폐단을 막으려면 그 원인이 되는 부분까지 지속적으로 관리가 되어야 했지만, 대다수 지방관들은 이제 좀 현지 사정에 익숙해진다 싶으면 다른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계투가 지속되면서 적응이 된 것은 지방관 뿐만 아니라 계투에 투입되는 대타용 전투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저 할게 없어서 모인 사람들이었지만, 점차 익숙해진 집단들은 계투를 직업처럼 삼는 무뢰배 집단이 되어갔고, 평소에는 다른곳에서 불법을 자행하고 살다가도 계투가 치뤄진다 하면 모여들었다. 이러한 집단은 건륭 연간을 넘어 가경 시대가 될 무렵에는 확연한 "용병" 집단이 되어 전문적으로 계투를 청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면 어찌해서 계투가 갑자기 청나라 중기에 이르러 규모가 확대되었을까? 물론 '중국인의 본성은 대체로 험악 - 잔혹하여 피와 분쟁을 즐긴다' 고 하면 아주 간단하겠지만 그런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해서야 그 사람의 수준을 아주 잘 보여주는 정도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계투 역시 경제적 - 사회적 문제가 있었다. 이러한 문제를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1. 명말 - 청초에 이어진 전란으로 인해 대혼란이 벌어지고 농촌의 자율적인 질서가 파괴되었다. 이에 집단무장과 폭력적인 자율구제가 더욱 일상화 되었다. 

2. 둘째. 청나라는 대만의 정씨 정권을 제압하기 위해 해금령을 실시했는데, 이는 첫번째 요소와 함께 기존 질서를 완전히 붕괴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해금령은 단순히 바다로 나가지 못하게 막는 수준을 넘어, 백성을 내지로 옮기는 천계령(遷界令)과 더불어 실시되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터전을 잃은 주민들이 있고 밑도 끝도 없이 의심스런 이웃이 생긴 주민들이 있으니, 분쟁이 나지 않기가 더 힘들었다.

3. 여러 혼란, 그리고 그 와중의 기회를 틈타 작았던 소성(姓 작은 성씨)들은 본래 지방에서 강력하던 대성들에 적극적으로 대항하기 시작했다. 소성들은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연합을 했고, 이 와중에 계투는 더욱더 커져만 갔다.

4. 해금령, 천계령등으로 인해 기존의 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다. 청나라 시대에 이르러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 어업이나 무역같은 경제적 요건은 완전히 다르게 변하다 보니, 점차 곤궁해진 주민들은 한정된 자원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살기 위해 서로를 향해 칼을 들이밀었다.

5. 이렇게 일상화된 계투를 주민들이 토지, 수리, 분묘, 시장 등 온갖 문제에 적응시키면서 커져만 가고 있었는데, 국가의 행정력은 비대해져 가는 나라를 맞춰 제대로 발전하지 못했다. 청나라의 인구는 경이적일 정도로 엄청난 숫자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사회문제도 더욱 복잡해져갔다. 하지만 행정력의 발전은 더뎠다. 되려 지방관의 이동만 더 늘어나 제대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떠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소송이나 사건이 쌓여도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질질 끄는 경우가 많아졌다. 

게다가 송사, 서리, 아역, 그리고 지방관 역시 뇌물을 탐냈으므로, 그 긴 재판 기간을 계속 버티다 보면 이것 역시 경제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되었다. 따라서 국가 행정력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계투는 이러한 요소 등이 겹쳐서 발생했고, 여기서 더 복잡해지면 복잡해졌지 그 원인이 간략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실제 계투가 가장 성행하고 문제가 되었던 곳이 해금령 - 천계령의 여파를 직접적으로 받는 민남 지역이라는 것은 그 원인을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참초  : 
淸 中期 민남의 械鬪 盛行과 그 背景 - 원정식
淸代 福建社會 연구 : 淸 전·중기 민남사회의 변화와 宗族活動 - 원정식
淸前期 天地會 硏究 - 고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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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릭스해시 아이콘13/08/17 12:29
잘 읽었습니다. 할머니가 일종의 가부장으로서의 권리를 행할 수 있었다는 건 또 의외네요.

인간사회에서 윤리와 도덕이(어떤형태로든) 필요한건 저런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위해서겠지요.

Pretzel해시 아이콘13/08/17 13:12
얼마전에 중국 한국 교포 배 과수원을 중국주민 800명이 몰려가서 배나무를 다 뽑아버리고 베어버린 사건이 있었는데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900139
공안이 와서도 지켜만보고 있었다는게 이해가 안됬는데
이런 계투라는 문화적인 배경이 있었군요.

Neuschwanstein해시 아이콘13/08/17 13:49
우리도 석전이라는 전통이 있어서 사상자가 나올 정도로 거칠었다고 하는데... 역시 대륙 스케일은 다르군요 이건 뭐 말 그대로 전쟁;

미스터H해시 아이콘13/08/17 19:30
딱 보면서 드는 생각이 무림이네요. 역시 무협소설이 쓰일 대륙 답다는 생각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마에해시 아이콘13/08/18 00:26
읽으면서 소설 '아리랑'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비슷하겠죠...?

오단기아해시 아이콘13/08/18 07:49
현재에도 계투가 남아있는 곳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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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근대 대만의 사회적 폭력, 계투(械鬪)] 
[前近代臺灣的社會暴力,械鬪]
(* 2011년에 작성한 학부 논문의 앞부분을 간략히 정리하여 올립니다)

계투(械鬪)는 "무기를 가지고 싸운다(持械相鬪)."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이 명칭은 단순히 집단적 폭력만을 지칭한다고 할 수 있으나 당시의 사회적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폭력성이 부각된다고 하기 보다는 사회의 한 현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분류계투(分類械鬪)의 명칭은 18세기 중엽의 상주문에서 처음 보이며, 도광연간에 그 명칭이 대만으로 파견된 관원의 보고에 자주 언급되면서 의해 고유명사로 사용되었다. 
특별히 대만의 계투를 분류계투로 따로 구분하여 지칭하는 것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이 '분류(分類)'라는 단어는 "분문별류(分門別類)"의 약자로, 계투에 참가하는 무장집단 간의 대립양상이 명확히 드러나며, 그 피아가 분명한 집단간의 충돌이라는 특징을 표현하고자 이 분류라는 명칭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계투의 발생 원인이 가지고 있는 특징뿐만 아니라 이러한 분류계투를 통해 집단내부의 결속력을 다지고 타 집단에 대한 배척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         
청대 대만의 계투가 언제부터 발생되었는가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없다. 다만 지방지나 관련 문서 및 개인의 문집을 통해 크고 작은 계투의 사례가 대만사회에 지속적으로 존재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현재 참고할 수 있는 문헌 중에서 계투에 관한 기록은 地方志, 檔案, 古文書, 族譜 등이 있으며, 대표적으로 『主修臺灣府志』를 비롯하여 高拱乾의 『臺灣部志』, 陳夢林의 『諸羅縣志』, 陳文達의『鳳山縣志』, 『臺灣縣志』, 如周璽의『彰化縣志』, 陳倍桂의 『淡水廳志』의 「雜記志」나 「雜識志」 등에 記載되어 있다.
대만의 분류계투의 발생원인에는 다양한 견해가 있다. 국내에 대만의 청대 중국남부지방의 사회 변동과 대만지역의 토지소유 문제, 그리고 천지회의 활동에 대한 관련 연구는 있으나 계투만을 주제로 하는 연구는 복건지방의 계투 사례를 다룬 연구가 유일하다(2011년 기준).
우선 분류계투의 원인은 다양하고 할 수 있다. 종족 간의 갈등이나 토지 문제에 기인한 사례가 대다수를 이루나 도박이나 사소한 언쟁을 도화선으로 촉발된 경우도 다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의 사례만을 두고 계투의 범위와 개념을 규정하려고 한다면 자칫 일개 향촌 사회의 이권  다툼 수준으로 속단해버리는 착오를 범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계투의 원인과 맥락은 먼저 청대 대만의 인구증가와 사회 변동이라는 큰 틀에서 나온 사회 현상으로 보는 시각이 전제되어야 한다. 
계투는 종족, 이권집단 등과 깊은 관계이 있다. 漳泉械鬪, 閩吳械鬪, 縣里械鬪、異姓械鬪, 同姓宗族械鬪, 職業團體械鬪 등 발생원인과 관련된 집단에 따라 지칭하는 명칭 또한 다양하다. 기존연구에서는 청대 중엽의 인구증가와 해금의 폐지으로 인해 대륙에서 대만으로의 한인 이주를 주원인으로 들고 있다. 
기존 학설(2011년 기준)을 정리해보자면, 건륭연간 이후,  많은 수의 이주 한인이 대만에 들어서 臺灣에 먼저 온 한인들과 뒤늦게 온 한인들 간에 土地 所有를 두고 충돌이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특히, 수로, 토지 소유, 촌락의 영역 문제가 가장 주된 원인이었다. 또한 건륭연간 당시 대만에서 청의 행정력과 통제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하여 계투의 발생이 야기 또는 방관하였다는 점이다.
淸의 官員이 械鬪를 야기했다는 사실은 邊疆을 統治해야하는 官員의 責務와 상반되는 사실이지만, 당시 정성공 세력의 잔존세력이 아직 대만일대에 산재해 있다는 우려와 이 세력을 소멸시키기 위해 일부러 패를 나누게 하여 서로 견제하기 위한 방법으로 계투를 이용했다는 설이 있다.
다음으로는 복건의 천주와 장주 지역에서 이주해온 집단이 서로 가까운 곳에 촌락을 이루고 지내다가 각자의 생활 및 생산 반경이 점점 넓혀짐에 따라 토지 등 이권이 상충하게 되고 이로 인해 분쟁이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종교와 배맹(拜盟)의 신앙 차이로 인한 원인도 있다. 
가장 특이한 사례로 나한각(羅漢脚)으로 인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으며, 원주민과 한인 간 토지와 생산물을 두고 충돌이 일어난 경우도 있다. 즉, 출신와 종교, 종족 그리고 나한각, 한인과 원주민과의 충돌은 그 종류는 다양하지만, 본질은 청대 대만의 인구 유입과 그로 인해 발생한 개척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던 충돌이었다. 당시 『臺灣省通志』에 따르면 "三年마다 小反이 있고 五年마다 大反이 있다" 라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사회가 안정되지 못한 상태라는 기록이 이를 반증한다. 
개척 초기에는 대륙의 閩, 粵 혹은 漳, 泉 등의 지역에서 이주해온 사람 가운데 漳人이 粵人과 연합하여 泉人을 쫓아내거나 泉人이 粵人과 함께 漳人을 공격하는 사례가 있었다. 이후 개척이 점차 진행됨에 따라 계투의 주체 또한 변화가 있었다.  토지의 소유가 점차 진행됨에 따라 地主와 佃戶로 構成된 이른바 "地主集團"이 생겨났다. 이들은 처음에는 地主(墾首)가 佃戶를 받아들이면서 同鄕, 同籍, 血緣을 기준으로 하였으나 이후 地緣性이 점차 강해지고 血緣性이 희박해짐에 따라 地域에서 利益을 共有하게 되면 굳이 血緣을 따지지 않더라도 같은 構成員으로 認定해주었다. 이 地主集團은 地主(墾首)를 求心點모여 外部로부터 土地를 占有하려는 자들을 막고 同屬의 分爭을 돕고 내부적으로 거두어들인 租穀을 바탕으로 勢力을 擴張시키기도 하였다. 
참고로, 『噶瑪蘭廳志』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각지의 漳人이 가장 많고 泉人과 粵人이 그 다음입니다. 漳州의 18개 성씨 중에 오직 林, 吳, 張 성의 사람이 가장 많고 집단의 규모가 큽니다".
초기 械鬪 事例 중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유형은 閩粵械鬪, 漳泉械鬪, 이른바 지역과 종족을 위주로한 械鬪이다. 건륭연간부터 광서연간에까지 계투의 주종을 이루는 것은 위의 유형이다. 이 중, 각 集團이 점차 조직구성을 갖추고,배타적 성질을 갖춘 조직 정체성을 가지게 됨에 따라 후대로 갈수록 械鬪가 집단화되는 양상이 생겨난다.
정치적인 관점에서도 계투의 원인을 찾아본다면, 대만 통치에 대한 시랑(施琅)의 끈질긴 주장이 있기 전후로 청조의 대만점령 이후 청 조정에서 대만통치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해 기류(棄留)에 대한 논의가 있었던 것에서도 그 원인을 들 수 있다. 또한, 이주자들이 향촌 내외의 문제를 다투면서도 청의 행정 및 공권력에 의존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자연히 자신의 종족 및 씨족 등 이권을 함께하는 집단을 통해 해결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발생 지역의 변천과정에도 특징이 있다. 械鬪 發生地를 살펴보면, 康熙, 雍正, 乾隆年間에는 臺灣縣과 鳳山縣(11次), 諸羅縣(4次)과 같이 주로 대만 南部地方에 集中되었다. 그러다 臺灣의 開發의 점차 中部와 北部로 옮겨짐에 따라 中, 西部 平野地帶의 彭化縣(14次), 淡水廳(26次) 等地에서도 일어난다. 그리고 嘉慶年間에 噶瑪蘭 開拓이 進行됨에 따라 嘉慶以後에는 噶瑪蘭 地域도 械鬪發生地域(11次)에 包含되었다.
각 사례의 종족구분을 살펴보자면, 처음 계투가 발생한 南部地方의 경우, 閩粵械鬪가 주를 이루었고, 이 두 종족집단의 세력도 南部에서는 균등한 형세를 이루고 있었다. 중부지방의 경우, 漳泉械鬪의 사례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북부지방의 경우에는 타이베이 분지 일대는 漳泉械鬪가, 현 신죽(新竹) 이남 지역은 閩粵械鬪를 위주로 각각 발생의 편차를 보인다. 東部 갈마란(噶瑪蘭) 지역 같은 경우, 이주자의 대부분이 漳人으로 구성되어 있어 종족간의 계투보다는 같은 동적인끼리의 토지 소유 분쟁이나 이권 다툼의 사례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였다. 淸 初中期의 福建地方의 械鬪 역시 臺灣의 分類械鬪와 동일한 유형을 보인다고 할 수 있으며, 대만의 경우에도 표면적으로는 宗族과 지역 출신의 갈등으로 표출되고 있다.

이에 대만의 黃秀政과 같은 학자는 청대 대만의 무력 갈등을 정치적 폭력과 사회적 폭력으로 구분하여 반청복명反淸服明과 같이 정치적인 동기를 가진 민변(民變)을 정치적 폭력으로 규정한 바 있다. 그리고 계투는 정치적 목적이나 동기를 두지 않는 사회적 폭력에 속한다고 설명하였다. 
때론 이 사회적 폭력인 계투가 정치적 폭력인 민변으로 발전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일반적으로 이 계투는 사회적 폭력에 해당하며, 거주민들 간의 다양한 이권 다툼(예를 들어 거마꾼 간의 영역 다툼, 심지어 악단樂團 내부의 음계音系 다툼 등도 있지만 주로 토지와 도박의 시비가 주를 이룬다)도 포함되기에 다른 인터넷이나 블로그에서와 같이 계투를 단순히 이주민과 원주민의 유혈 충돌로 해석하는 것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

- 이후 계투의 특징과 다른 학설에 대해서는 다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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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thropologie et Sociétés Review of OK Pak English Google translation below

Pak Ok-Kyung, 2019, Les plongeuses jamnyo (haenyo) de Jeju en Corée, préface de Kyung-Soo Chun, traduit de l’anglais par Alice Boucher. Genève et Lausanne, Fondation culturelle Musée Barbier-Mueller et Ides et Calendes, 176 p., cartes, illustr., glossaire, bibliogr.

Sous les dehors accueillants d’un album de photographies (prises par Ok-Kyung Pak et Koh Sing-Mi), cet ouvrage nous offre une étude ethnographique succincte mais rigoureuse des jamnyo, femmes plongeuses en apnée, de Jeju, en Corée du Sud, une île volcanique de 1840 km2 située au large de la péninsule coréenne. Les plongeuses jamnyo (haenyo) de Jeju en Corée s’inscrit dans un intérêt grandissant pour les sociétés où les femmes occupent des positions sociales importantes. Comme les femmes plongeuses ama du Japon, les jamnyo ont longtemps fait vivre leurs communautés de leur activité de pêche. Plus récemment, elles ont attiré l’attention des journalistes et des entreprises de tourisme, mais peu de chercheurs se sont adressés aux femmes elles-mêmes, longtemps dépeintes par la société dominante comme des travailleuses ignorantes et immorales — ne respectant ni par leurs comportements ni par leur indépendance économique et sociale les conventions du code éthique et social du néoconfucianisme.

Il existe au sujet de la société insulaire de Jeju très peu de sources qui ne soient pas de langue coréenne ; ce nouvel apport en français est donc a priori le bienvenu. Le livre de Pak se démarque aussi par son approche ethnographique classique en partie émique : la plupart des références coréennes servent en effet les idéaux néo-confucéens de la civilisation coréenne continentale, considérés comme la référence idéale ou « culture réelle » par les lettrés coréens. Pak prend au contraire pour point de départ la culture vécue localement par les femmes elles-mêmes. Il s’agit donc ici d’un apport original d’un grand intérêt. Les photographies en couleurs sont plus que des illustrations : elles démontrent d’une part la part du paysage dans l’identité des insulaires et, d’autre part, l’engagement personnel, physique et corporel des femmes dans leur travail et dans leur communauté. 

Cho Hae-Jeong, ethnologue coréenne, aborda en 1978-1979 cette « culture des femmes » par le biais d’une approche féministe. Tout en donnant son accord aux conclusions de sa collègue, Pak adopte une vision élargie du contexte historique, social, culturel et religieux de la vie de ces femmes. Elle a dans sa mire autant les voix féminines que les voix masculines, autant les rites confucéens que les rituels chamaniques, autant les relations historiques difficiles et douloureuses avec l’extérieur que les développements technologiques et les soubresauts du marché international. À un autre niveau, cette monographie est aussi un plaidoyer passionné pour le respect dû à ces femmes, et dû aussi à l’héritage qu’elles laissent au monde, inscrit au patrimoine culturel immatériel de l’humanité de l’UNESCO depuis décembre 2016. 

L’ouvrage se divise en cinq chapitres descriptifs suivis d’une courte conclusion. Un premier chapitre survole l’histoire de ce peuple qui fut, jusqu’à la fin du premier millénaire, un royaume maritime et commercial semi-indépendant. L’île de Jeju eut ensuite à souffrir plus de dix siècles de pillage et d’invasions successives par les royaumes coréens (918-1392), puis par les Mongols (1260-1368), puis par le royaume Koryo (jusqu’en 1392) qui fit de Jeju une forteresse militaire, imposant taxes et tributs aux familles, et forçant les hommes — et même les femmes — à servir dans ses armées. Le royaume coréen de Choseon (1392-1910) enferma Jeju dans un néo-confucianisme rigide, détruisant les sanctuaires chamaniques (1702), limitant la pêche et imposant finalement une quarantaine de deux siècles à la population (entre 1629 et 1839). Les femmes prirent la relève pour assurer la subsistance de leur famille. En 1910, les armées japonaises réorganisèrent le travail des femmes au profit du Japon. La fin de la Seconde Guerre mondiale vit de nouvelles révoltes à Jeju, dont la fameuse insurrection du 3 avril 1948, dite « Gauchiste », dont la répression fit 30 000 morts (un dixième de la population), détruisit 160 villages et dura jusqu’à la fin de la guerre de Corée en 1953. Jeju fut mise à l’écart et oubliée par le continent. Ce n’est qu’à partir de 1960 que l’économie se redressa avec l’exportation de produits de la mer et des vergers qui permit aux femmes de confirmer leur dominance sur l’économie et leur indépendance, des acquis mis en danger par le développement d’une nouvelle industrie : le tourisme de masse. 

Le deuxième chapitre décrit le système de parenté particulier de Jeju, que les habitants appellent le kwendang. Ce système de parenté bilatéral coexiste avec des éléments d’un système de parenté strictement patrilinéaire et néo-confucéen, qui affirme la supériorité des hommes et contrôle leur statut officiel dans la sphère publique et les affaires officielles. Par contre, au quotidien, Pak décrit des relations de parenté pragmatiques, admettant des liens horizontaux où le voisinage, la cohabitation et la coopération sont des facteurs essentiels, imbriqués dans le territoire et la vie du village, d’où le terme parenté de village. Le village est constitué de familles nucléaires reliées entre elles par le kwendang, dont les membres sont recrutés pour les grands travaux, et qui permet aux femmes, chefs de famille, de gérer ellesmêmes l’organisation de la vie quotidienne de leur famille et de leurs communautés, depuis les équipes de plongée et les travaux des champs jusqu’aux rituels chamaniques. 

Le troisième chapitre décrit le monde des plongeuses. Les jamnyo travaillent en équipes composées de femmes du village, donc apparentées. Le produit de leur pêche nourrit leur famille et assure le financement des activités du village. Activité autrefois partagée avec les hommes, la pêche en plongée est dangereuse : elle exige compétence, discipline et coopération entre les plongeuses, et elle est supportée par des rituels qui soulignent les liens sacrés de parenté entre les habitants de la terre et les puissances de la mer. Les hommes, autrefois pêcheurs, marins et éleveurs de chevaux, n’ont plus accès à la mer.

Le quatrième chapitre détaille les rituels du complexe chamanique local. Ce complexe dote les femmes d’une filiation matrilinéaire qui en fait des descendantes des déesses locales et, ultimement, de la déesse-dragon, déesse ancestrale de la mer. Ces déesses cautionnent, entre autres, les activités de plongée et de collecte des produits de la mer par les femmes. Les dix-huit mille divinités locales (dont 80 % sont des déesses) honorées dans les 350 sanctuaires de l’île accueillent hommes et femmes de leurs villages pour des rituels communautaires organisés par les femmes, en particulier par les plongeuses, bien que les hommes puissent aussi y participer. Un second système de rituels masculins et néo-confucéens, conduits par des prêtres, s’adresse aux ancêtres de la lignée paternelle. Fait à signaler : les sanctuaires conservent les archives et la littérature orale chamanique préserve la mémoire collective en rappelant les événements historiques.

Le cinquième chapitre résume l’influence du néo-confucianisme à Jeju. Les administrateurs coréens ne purent imposer à l’île qu’une version affaiblie des normes confucéennes qui demeurèrent un rêve inachevé pour les élites de la petite colonie. Comme l’explique Pak, la question de l’identité de l’île en tant que société culturellement différente des autres territoires coréens est le thème central des études savantes sur Jeju, études qui reprennent des notions comme une « double réalité » ou une « culture du compromis ». Mais Pak conteste ces notions et soutient l’idée que la culture de Jeju s’est construite à partir de la coexistence d’éléments de la culture continentale avec une culture indigène encore active et qui soutient en particulier l’indépendance des femmes : « Les rapports entre un système national dominant [en ce cas-ci, néo-confucéen] et une ancienne société civile locale ne sont pas nécessairement antagonistes, même si celle-ci a pu être contrainte de vivre dans des conditions de précarité, de marginalisation, et de colonisation » (p. 30).

Les plongeuses jamnyo (haenyo) de Jeju en Corée nous laisse nécessairement sur notre faim en ce qui concerne l’origine de ce système social particulier alors que l’auteure fait allusion, sans conclure, à des racines qui paraissent plus profondes que les circonstances historiques et géographiques privilégiées par les auteurs coréens comme explication des tendances matrilinéaires. L’auteure réfute, implicitement mais fermement, le schéma classique d’une matrilinéarité provoquée par l’affaiblissement des domaines masculins et la nécessité pour les femmes de prendre en main la pêche et le travail des champs. Les insulaires s’accordent pour reconnaître un double système de parenté, l’un que l’on peut dater du XVIIe siècle, l’autre qui semble plus ancien, d’autant plus qu’il correspond d’une certaine façon à celui de la Corée préconfucéenne. Ensuite, les systèmes rituels chamaniques aujourd’hui féminins, mais autrefois ouverts aux hommes comme aux femmes, les mythes d’origine et les sanctuaires locaux dédiés à des déesses ancestrales sont autant d’indices qui renvoient à une ancienne influence matrilinéaire.

Si la quasi-totalité des auteurs cités reprend l’idée que l’idéologie néo-confucéenne a échoué à s’implanter définitivement dans l’île de Jeju parce que le milieu naturel est trop rude pour que s’y développe une société normale, Pak fournit, sans s’imposer, assez d’indices pour que l’on puisse supposer une autre hypothèse : se pourrait-il que les habitants de Jeju aient résisté aux modèles chinois à cause de la force de leur culture originelle, sinon matrilinéaire, du moins bilatérale, et d’un idéal de coopération sociale et écologique solidement enraciné parmi les femmes ?

Cet ouvrage est accessible sans connaissances préalables et s’adresse au grand public autant qu’aux chercheurs. 

Marie-Françoise Guédon 

Département d’études anciennes et de sciences des religions 

Université d’Ottawa, Ottawa (Ontario), Cana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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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k Ok-Kyung, 2019, Jamnyo (haenyo) divers from Jeju in Korea, preface by Kyung-Soo Chun, translated from English by Alice Boucher. Geneva and Lausanne, Cultural Foundation Musée Barbier-Mueller and Ides et Calendes, 176 p., Maps, illustrations, glossary, bibliography.

Under the welcoming exterior of an album of photographs (taken by Ok-Kyung Pak and Koh Sing-Mi), this book offers us a succinct but rigorous ethnographic study of the jamnyo, women freedivers, of Jeju, South Korea, an 1840 km2 volcanic island located off the Korean Peninsula. The Jamnyo (haenyo) divers of Jeju, Korea is part of a growing interest in societies where women occupy important social positions. Like the female Ama divers of Japan, the jamnyo have long supported their communities with their fishing activity. More recently, they have attracted the attention of journalists and tourism companies, but few researchers have addressed the women themselves,

There are very few non-Korean language sources for Jeju Island society; this new contribution in French is therefore a priori welcome. Pak's book also stands out for its classical ethnographic approach which is partly emic: most Korean references indeed serve the neo-Confucian ideals of mainland Korean civilization, considered as the ideal reference or "real culture" by Korean scholars. On the contrary, Pak takes as its starting point the culture experienced locally by the women themselves. This is therefore an original contribution of great interest. Color photographs are more than illustrations: they demonstrate on the one hand the part of the landscape in the identity of the islanders and, on the other hand, personal commitment, 

Cho Hae-Jeong, Korean ethnologist, in 1978-1979 approached this “culture of women” through a feminist approach. While agreeing to her colleague's conclusions, Pak takes a broader view of the historical, social, cultural and religious context  of the lives of these women. She has in her sights both female and male voices, Confucian rites as well as shamanic rituals, as much difficult and painful historical relations with the outside as technological developments and upheavals in the international market. At another level, this monograph is also a passionate plea for the respect due to these women, and also due to the legacy they leave to the world, registered in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 by UNESCO since December 2016. . 

The work is divided into five descriptive chapters followed by a short conclusion. 

The first chapter covers the history of this people which was, until the end of the first millennium, a semi-independent maritime and commercial kingdom. Jeju Island then had to suffer more than ten centuries of looting and successive invasions by the Korean kingdoms (918-1392), then by the Mongols (1260-1368), then by the Koryo kingdom (until 1392 ) who made Jeju a military fortress, imposing taxes and tributes on families, and forcing men - and even women - to serve in its armies. The Korean kingdom of Choseon (1392-1910) locked Jeju into a rigid neo-Confucianism, destroying shamanic shrines (1702), limiting fishing and ultimately imposing a quarantine of two centuries on the population (between 1629 and 1839). Women took over to ensure the subsistence of their families. In 1910, the Japanese armies reorganized the work of women for the benefit of Japan. The end of World War II saw new revolts in Jeju, including the famous insurrection of April 3, 1948, known as the "Leftist", whose repression left 30,000 dead (one tenth of the population), destroyed 160 villages and lasted until at the end of the Korean War in 1953. Jeju was sidelined and forgotten by the mainland. It was not until 1960 that the economy recovered with the export of seafood and orchard products which enabled women to confirm their dominance over the economy and their independence, gains endangered by the development of a new industry: mass tourism.  

The second chapter describes Jeju's particular kinship system, which locals call kwendang. This bilateral kinship system coexists with elements of a strictly patrilineal and neo-Confucian kinship system, which asserts the superiority of men and controls their official status in public and official affairs. On the other hand, on a daily basis, Pak describes pragmatic kinship relations, admitting horizontal links where neighborhood, cohabitation and cooperation are essential factors, interwoven in the territory and the life of the village, hence the term kinship of village.The village is made up of nuclear families linked together by the kwendang, whose members are recruited for major works, and which allows women, heads of families, 

The third chapter describes the world of female divers. The jamnyo work in teams made up of women from the village, who are therefore related. The product of their fishing feeds their families and ensures the financing of the activities of the village. An activity once shared with men, diving fishing is dangerous: it requires skill, discipline and cooperation among divers, and it is supported by rituals that emphasize the sacred bonds of kinship between the inhabitants of the earth and the powers of the Earth. sea. Men, formerly fishermen, sailors and horse breeders, no longer have access to the sea.

The fourth chapter details the rituals of the local shamanic complex. This complex endows women with a matrilineal lineage which makes them descendants of the local goddesses and, ultimately, of the dragon goddess, ancestral goddess of the sea. These goddesses endorse, among other things, diving and product collection activities. of the sea by women. The eighteen thousand local deities (of which 80% are goddesses) honored in the 350 shrines of the island welcome men and women from their villages for community rituals organized by women, especially divers, although men can also participate. A second system of male and neo-Confucian rituals, led by priests, is addressed to ancestors of the paternal line. Note: the sanctuaries preserve the archives and the shamanic oral literature preserves the collective memory by recalling historical events.

The fifth chapter summarizes the influence of neo-Confucianism in Jeju. Korean administrators could only impose on the island a weakened version of Confucian standards that remained an unfulfilled dream for the elites of the small colony. As Pak explains, the question of the identity of the island as a culturally different society from other Korean territories is the central theme of scholarly studies of Jeju, studies which take up notions like a "double reality" or a " culture of compromise ”. But Pak contests these notions and supports the idea that the culture of Jeju was built on the coexistence of elements of the continental culture with an indigenous culture still active and which supports in particular the independence of the women: relationship between a dominant national system [in this case,

The jamnyo (haenyo) divers of Jeju, Korea necessarily leaves us unsatisfied with regard to the origin of this particular social system, as the author alludes, without concluding, to roots that seem deeper than historical circumstances. and geographic areas favored by Korean authors as an explanation of matrilineal tendencies. The author refutes, implicitly but firmly, the classic pattern of matrilineality caused by the weakening of male domains and the need for women to take charge of fishing and work in the fields. The islanders agree in recognizing a double system of kinship, one which can be dated from the 17th century, the other which seems older, especially since it corresponds in a certain way to that of pre-Confucian Korea. Next,

If almost all of the authors cited take up the idea that neo-Confucian ideology has failed to establish itself definitively on Jeju Island because the natural environment is too harsh for a normal society to develop there, Pak provides, without imposing itself, enough clues to suggest another hypothesis: could it be that the inhabitants of Jeju resisted the Chinese models because of the strength of their original, if not matrilineal, culture, at least bilateral, and an ideal of social and ecological cooperation firmly rooted among women?

This book is accessible without prior knowledge and is intended for the general public as well as for researchers. 

Marie-Françoise Guédon 

Department of Ancient Studies and Religious Studies 

University of Ottawa, Ottawa, Ontario, Canada


안미정* 서평: 박옥경, 『제주 잠녀: 한국 해녀와 신유교, 이중의 신화』

 서평·한국문화인류학 54–1: 403~408(2021. 03) 한국문화인류학회

서평: 박옥경, 『제주 잠녀: 한국 해녀와 신유교, 이중의 신화』 

Ok-Kyung Pak, 2018, The Jamnyo of Jeju, The Women Divers of Korea and Neo-Confucianism, a Dual Mythology, Genève: Fondation Culturelle Musée Barbier-Mueller

안미정*

* 한국해양대학교 국제해양문제연구소 부교수, gasiri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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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잠녀에 관한 여러 책들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주목할 만한 하나 의 작품이 있다. 캐나다에서 은퇴한 한 인류학자의 손에서 탄생한 제주 잠 녀에 관한 이 저서는 비단 사회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해녀’에 주목하는 이들 외에도 한국 인류학계가 주목할 만한 저작이다. 이 책을 쓴 저자 박 옥경 교수는 1979년 10월부터 1981년 5월까지 모계 사회로 알려진 인도 네시아 수마트라 미낭카바우(Minangkabau)를 연구한 사회인류학자이다. 미낭카바우는 재산, 성씨, 토지가 어머니에게서 딸로 계승되는 모계 사회 로 알려지고 있다. 미낭카바우 사람들의 친족제도와 토지소유제, 여성의 사회적 위치 등에 주목해 온 박옥경 교수는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다 수의 저작을 발간하였을 뿐 아니라, 캐나다 정부에서 양성평등 자문위원 으로 활약하는 등 성 평등을 실천해 온 인류학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제주 대학의 초청으로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머물렀으며, 그리고 2016년 수개월 간은 우도(제주도 동쪽 섬)에서 현지조사를 하였는데 바비에뮬러 재단(Fondation Barbiere–Mueller)이 이를 후원하였다. 이 재단의 설립자 장 폴 바비에뮬러(Jean Paul Barbier–Mueller)는 스위스의 수집가이자 박물관 설립자로 세계 여러 지역의 부족 예술 컬렉션을 전시, 연구, 출판하는 데 전념해 온 인물이다. 

책의 서문에서 서울대 전경수 명예교수는 “한국 사회의 지역적 변이성 을 탐구한 저자의 관점은 사회과학은 물론 한국 인류학 상 최초의 시도이 며, 세계 학술계의 한국학은 물론 한국의 인류학계에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이라고 크게 호평하고 있다. 이러한 호평은 지나침이 없다. 제주의 역사 와 신화, 잠녀들의 어로와 의례를 아우르는 해외 영문 저작으로는 이 책이 처음일 것이다. 특히 저자가 친족제도 및 모계 사회를 연구해온 사회인류 학자로서 앞으로 제주를 연구하는 이들에게 좋은 귀감이 되리라 생각한다. 책의 제목처럼 ‘잠녀’를 중심에 두고 제주의 문화를 기술하고 있는 이 책이 기존의 다른 유사한 책들과 다르게 생각되는 것은, 단지 ‘살아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제주 잠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연구서이거나, 혹은 ‘사 라져가는 위기의 문화’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어서가 아니다. 필자는 이 책이 하나의 제주도 민족지라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고 보며, 어느 누가 제 주도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고자 할 때 좋은 가이드가 되어 줄 수도 있고, 또는 국내 인류학계에서 미약한/열악한 친족 연구의 사례이자 그 가치를 보여주는 것으로서도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총 176쪽의 분량 안에는 그녀의 글을 돋보이게 하는 사진들이 다수 들어 있다. 문외한 인 필자가 보기에도 사진가 고성미(Koh Sung–Mi)의 사진들은 본문의 내 용들을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전하는 역할 외에도, 작가의 시선은 현장의 사실성이나 예술적 심미성에 집착해 있는 것이 아니라 잠녀 문화 에 대한 작가의 해석을 포착해 보여주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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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내용에 있어서는 여러 주제들, 즉 제주 섬 문화에 대한 생태학적 해석 외에도 잠녀들의 어로와 샤머니즘 의례, 여성들의 경제활동을 통한 사회적 위치 등을 아우르는 동시에 제주의 친족제도와 한반도에서 유입 된 유교주의를 두 축으로 하여 제주문화를 총체적이고 구조적으로 접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저작은 인류학의 전통적 주제, 즉 친족과 종교를 중심에 두고 제주 문화를 총체적으로 해석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제 주의 현실(reality)을 다루고 있는 도입 부분에서는, 제주 사회가 잠녀에 주 목하는 현상을 잠녀가 제주 정체성의 일부분으로 이에 집착(몰입)하는 것 이라고 보았다. 이는 2016년 12월 유네스코에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이슈가 되었던 제주 사회의 모습을 지적한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기존 제주 사회와 잠녀를 둘러싼 주요 담론들을 보여주며, 제주의 정체성을 다루기 위해—그것은 곧 인류학자에게는 문화의 해석을 요구하 는 것이므로—, 제1장의 내용을 신화와 역사로 시작한다. 제주 사람의 기원을 중국의 곤륜산으로 언명하고 있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이지만, 설문대 할망의 신화를 시작으로 최근의 변화까지를 통사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제2장의 제주 친족 시스템을 분석한 데에 있다. 제주의 친족 연구에 관해서는 최재석(『제주도의 친족조직』, 1984) 과 김혜숙(『제주도 가족과 궨당』, 1999)가 널리 알려져 왔는데, 이 책에서는 문화인류학자 김창민(『환금작물과 제주농민문화』, 1995) 교수의 연구에 기반 해 저자가 여성의 교환(혼인)을 중심에 두고 분석하고 있다. 아울러 저자는 자신이 이 책을 쓰기 위해 모델로 삼은 것이 Living Kinship in the Pacific(Toren and Pauwels ed., 2015)과 What Kinship Is … And Is Not (Sahlins 2013) 였음을 말하고 있다.  친족 연구가 인류학의 전통적 영역임 에도 불구하고 한국 인류학계가 이에 대한 연구가 미약하다는 현실을 떠 올려 보면 이 책이 던지는 시사점은 자못 크다. 또 저자에게 있어서도 이 책은 자신의 삶의 여정을 담고 있는 작품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1980 년 인도네시아 모계 사회를 연구하기 시작했던 그 연장선상에 제주 잠녀가 있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다만, 세계 여러 곳에서 현장연구를 했던 수십 년의 시간을 지나서, ‘모국’의 한 지역 제주도라는 섬을 대상으로 비교연구를 실현한 결과물인 것이다. 제3장의 제주의 여성 잠수부인 잠녀들 의 어로 문화와 역사를, 제4장에서는 샤머니즘 의례를, 제5장은 신유교주 의 영향을 내용으로 한다. 3장과 4장은 필자를 포함 여러 연구자들이 잠 녀 연구에서 주목해 온 영역으로 인류학 외에도 민속학과 법학, 경제학, 역사학, 사회학 등 여러 분야의 연구들이 이어져 왔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제주 잠녀를 제주도의 안과 밖을 동시에 한 앵글에 두고 바라봄으로 써 이 문화의 ‘위치’를 다시금 조명하여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 둔다. 그 까닭은 그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서 조사연구 활동을 해온 저자의 활동이 이러한 저력을 만들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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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이 책에서 얻을 감응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필자는 제주도 출신이자 제주 잠녀 문화에 관심을 두어 온 한 연구자로서 그리고 친족연구가 왜 힘을 발휘하는가를 조금씩 알아가는 위치에서 주목하는 내용 두 가지만을 언급하고자 한다. 

1] 우선, 제주 마을의 구성이 한반도(제주에서 일컫는 “육지”)와 다르다는 것은 여러 학자들도 지적해 왔다. 제주도의 마을들은 여러 성씨 집단으로 구성되어 있어 마을 안에서 혼인이 이뤄지므로 마을 전체적으로 친족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를 ‘마을 내의 혼인’으로 족내혼이라고 말하고 있다. 필자는 마을 내 혼인이 성씨가 같을 때에는 회피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족내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디까지 ‘마을사람’으로 하나의 동족성을 인식하고 규정하는 지는 또 다른 연구를 기대해야 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실제 제주 마을 사람들이 하는 친족 호칭을 보면, 일상적으로 이 웃의 다른 성씨 집단의 사람에게도 “삼춘(삼촌)”으로 부르거나 “사돈의 팔촌”으로 사회관계를 표현하는 말들은, 제주의 유연한 친족 시스템에 대한 궁금증을 불러온다. 그러면 친족이 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때, 살린스는 같은 이름, 같은 음식을 공유하는 것도 서로가 위험을 넘기고 살아남기 위해 도움을 주는 친족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혈연 공동체보다 마을이라는 공동체 의식이 보다 강하게 표출되는 제주 문화는, 제주에 서 친족이란 ‘같은’ 장소나 경험, 그리고 기억이나 의례, 신화 등 무언가를 함께 공유하였고 또 현재 공유하고 있다는 지금의 시점에 준거해 만들어 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이러한 유연성이 육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제주의 괜당 문화를 생동시키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2] 또 한 가지는 잠녀들의 경제활동을 통해 생각해보게 되는 제주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관한 것이다. 저자가 수마트라 미낭카바우에서 현지조사 했던 시점은 제주도 우도에서 조혜정 교수가 현지조사했던 때 와 거의 일치한다. 동시대를 살았던 두 여성 인류학자가 시간차를 두고 같 은 지역에서 하나의 주제에 몰입하였다는 것은 무얼 말하는 것일까? 

조혜정 교수는 우도의 현지연구를 통해 ‘양편비우세론’을 제기하였는데, 남자 는 제사의 영역을, 여자는 경제의 영역에서 우위적 역할을 하므로 어느 한 쪽의 성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라고 말하였다. 이후 이 주장은 제주 잠녀 및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설명하는 하나의 공고한 틀이 되어 왔다. 저자는 제주에서 여성중심성의 또 다른 요소로 제주의 친족제도(“괜당”) 가 여성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마을 내에서의 혼인이 이뤄짐 으로써 여성은 부계 혈연의 친족제 안에서도 유연하게 친정 부모의 집을 돌볼 수 있는 평등한 사회관계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는 제주도가 본토 (한반도)의 성리학을 그대로 수용하였다기보다는 섬의 자연적 환경 속에 살아야 하는 타협적인 결과이며, 이러한 제주의 친족 시스템은 여성의 경제적 자율로부터 이뤄진 것이라고 보았다. 저자는 제주의 “괜당”이라는 친족 개념을 양친의 결혼으로 연관된 사람들 모두를 포함하는 문화적 범주라고 말한다. 괜당은 부모자식, 형제자매, 결혼과 관련된 시댁을 통해 관계된 사람들이다. 어머니와 성이 같고 출신지가 같은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도 괜당이다. 이처럼 조사지였던 마을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괜당이 라는 친족 관계 안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괜당은 공유재산을 가 지지 않으며 공동의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구적인 것도 아니다. 그것 은 종종 노동력을 확보하거나 정치적 목적의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 이 같은 괜당은 김창민 교수가 지적했듯이 제주환경에서 토지 소유보다 더 가치 있는 “노동의 저수지(labour reservoir)”가 된다는 것이다. 나아가 저자는 괜당이 신유교주의 원칙을 과시하는 가까운 친척의 결혼으로 이어 질 잠재적 파트너들의 저수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이 책의 내용들은 잠녀의 어로, 노동을 제주사회의 괜당 친족 시스템 안에서 해석함으로써 여성의 역할과 지위가 육지에서 유입된 신 유교주의와 어떻게 결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독자들은 이 책의 구성과 내용이 구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될 것 이다. 책머리에서 밝혔듯이 모계 사회를 연구했던 저자가 그녀 자신이 제주에 거주하기 시작한 ‘어머니를 따라 가게 되면서’ 잠녀를 알게 된 것이 이 책의 시작이었다. 잠녀문화를 해석하기 위한 무대 위에, 제주의 신화와 역사가 등장하고 여성의 지위를 해석하기 위해 친족시스템과 의례, 신유 교주의가 등장한다. 그리고 말미는 에코 페미니즘이 맡고 있다. 긴 시간을 관통하는 긴 이야기가 있지만 그녀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자신의 어머니 를 따라 제주에 오게 되었던 연유처럼, 이 책의 가장 핵심적 키워드는 여성–모계라는 말로 압축될 듯하다.

 


A brief summary of Okkyung Pak’s book + 한역

A brief summary of Okkyung Pak’s book :

The Jamnyo of Jeju, the Women Divers of Korea and Neo-Confucianism, A Dual Mythology, 2018 , 
176 pp. including 140 photos, 
published by Fondation Culturelle Musée Barbière-Mueller, Geneva, Swiss


Table of contents:

Preface

Forward

Author’s preface

Introduction: Discovering Jeju reality

Ch.1. People of the sea: geographical and historical traces

Ch.2. Women ’s place in the Jeju kinship system (kwendang)

Ch.3. Jeju women divers (jamnyo)

Ch. 4. Shamanism and the 18,000 gods-goddesses

Ch.5. Neo-Confucian influence on Jeju

Concl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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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book is, broadly speaking, a summary of jeju academic discourses (on Jeju divers, Jeju mythology, Jeju kinship system, Jeju shamanism and Neo-confucian influence from mainland on Jeju) combined with data collected among divers' community in a small island of Udo, Jeju in 2016. Jeju scholars have published so many fascinating stories-books, but they are all in Korean language, hence not accessible to foreigners. This book is the first of its kind in English synthesizing what have been said about Jeju society since Jeju Studies started 70 years ago on the island.

The book carries also a partly feminist point of view, projecting jeju as a "women centred society" rather similar to an Indonesian (West Sumatra - the Minangkabau people) matrilinial society that the author studied for her doctoral thesis long ago (thesis completed in 1986; a representative article, 2006: “Enigma of male ancestors among the matrilineal Minangkabau of West Sumatra”, in Nicole-Claude Mathieu (ed), A House without a Daughter is a Dead House: Person and Gender in Matrilineal and\or Uxorilocal Societies (in French), Paris: Editions de l’Herne).

Jeju jamnyo’s life style could be named, in modern language, « eco-feminism » living in symbiosis with the nature, promoting the protection and nurturing nature.

This book will be useful to students interested in gender studies, kinship system studies, island studies, geo-political history and culture of Korea/Jeju from the perspective of women’s place and also for people looking for an alternative model of society.


Back cover description of the book:

On Jeju Island, located off the southern tip of the Korean Peninsula, jamnyo (women divers) meet in the early morning on the shore to enter the sea together. Fifteen days per month, they carry out this ritual of free diving risking their lives, staying in the water for between four and seven hours to support their families.

Through the study of the kinship-exchange system (kwendang), and the communal and value system of the jamnyo, anthropologist Ok-Kyung Pak describes and analyses a society « centred on women » in which the women divers’ shamanic rituals for the sea goddess, who offers them her protection, coexist with the influence of the mainland’s Neo-Confucianism (the basis of male-centred Korean patriarchal system). In addition, she traces the various steps leading to the formation of this social model returning to the protection of and the symbiosis with nature. This study is all the more relevant as the number of jamnyo divers is shrinking due to industrial development and the oceanic pol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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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site addresses where this book can be bought:

http://www.barbier-mueller.ch/store/index.php?dispatch=products.view&product_id=194 (English version)

http://www.barbier-mueller.ch/store/index.php?dispatch=products.view&product_id=193 (Fre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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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옥경의 책 요약:

제주 잠녀, 한국 여성 다이버들과 성리학, 이중 신화, 2018,
176pp. 140장의 사진을 포함해서,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Fondation Culturelle Musée 바르비에르 뮐러 출판사



목차:

서문

앞으로

작성자 서문

소개: 제주 현실탐구

제1장 바다의 사람들 : 지리적, 역사적 흔적

제2장 제주 친족 제도 내 여성의 위치(권당)

3장. 제주 해녀(잠녀)

4장 샤머니즘과 18,000명의 여신들

제5장 성리학이 제주에 미친 영향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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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체로 2016년 제주 우도의 작은 섬에서 수집한 다이버 커뮤니티 자료(제주 다이버, 제주 신화, 제주 친족제도, 제주 샤머니즘, 제주 본토의 성리학 영향력)를 종합한 것이다. 제주 학자들은 너무나 많은 흥미로운 이야기 책들을 출판해 왔지만 모두 한국어로 되어 있어 외국인들이 쉽게 접할 수 없다. 이 책은 제주도에서 70년 전 제주학이 시작된 이래 제주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종합한 최초의 영어 책이다.

이 책은 또한 오래 전 저자가 박사 학위 논문을 위해 연구한 인도네시아(서수마트라-미낭카바우족) 모계 사회와 다소 유사한 "여성 중심 사회"로 제주를 추정하면서 부분적으로 페미니스트의 관점을 담고 있다.니콜-클로드 마티외(ed)에서 "딸이 없는 집은 죽은 집: 모계 및 우소릴로컬 사회(프랑스어: Editions del'Herne)의 사람과 성별입니다.

제주 잠녀의 생활 양식은 현대어로 자연과 공생하며 자연을 보호하고 가꾸는 생태 페미니즘라고 명명될 수 있다.


이 책은 여성의 입장에서 한국/제주의 성별학, 친족제도학, 섬학, 지리정치사, 문화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유용할 것이며, 사회의 대체 모델을 찾는 사람들에게도 유용할 것이다.


책의 뒷표지 설명:

한반도 남단에 위치한 제주도에서는 새벽 해상에서 잠녀들이 만나 함께 바다로 들어간다. 매달 보름씩 목숨을 걸고 자유다이빙을 하며 4~7시간 동안 물 속에 틀어박혀 가족을 부양한다.

인류학자 박옥경은 친족교류체계(권당)와 잠녀의 공동성과 가치체계에 대한 연구를 통해 바다여신을 보호해주는 해녀의 무속 의식이 본토 성리학의 영향과 공존하는 사회를 묘사하고 분석한다 (남성 중심의 한국 가부장제도의 기초) 또한, 그녀는 이러한 사회적 모델이 자연 보호와 공생으로 돌아가게 되는 다양한 단계를 추적한다. 이 연구는 산업 발전과 해양 오염으로 잠뇨 다이버 수가 줄어들고 있어 더욱 관련이 깊다.


 

박옥경 제주의 잠녀 (해녀), 차례 (한글, 영어) Preface by Prof. Chun, Kyung-soo

책제목: 제주의 잠녀 (해녀), 이중신화 와 신유교사상

서문  :  전경수 교수ㅡ 서울대 사회인류학과 은퇴 교수

소개말: 살라뎅 앙글류교수, 라발대학 (케백주) 사회인류학과 은퇴 교수


저자의 들어가는 말:

1. Dedication and acknowledgement

2. 제주 학자들의 중요한 2개의 논설: 제주 정체성 과 살아져가는 잠녀

3. 저자의 수마트라섬 (인도네시아) 의 모계사회에 대한 저서와 잠녀사회의 비교


소갯말 - 제주의 현실을 발견하면서:


1. 흘러가는 배

2. 제주의 현실 - 화산섬과 어려운 환경

3. 제주의 현실과 신유교 사상의 영향 -  제주의 유일한 성관계의 유래

4. 제주 정체성과 잠녀

5. 여성중심 사회

6. 이책을 바침하는 데이터의 출처

7. 제정적인 받침


1장.   해민 (바다의 사람들) -  지리학적, 역사적 자취들


1. 제주의 지리

2. 제주섬을 채운 사람들과 그들의 유래

3. <물건너땅> - 제주

4. 삼국시대때 탐나왕국의 해상 무역

5. 고려시대와 몽골의 침략

6. 조선시대와 신유교 사상

7. 일본식민지 시대와 근대화

8. 4.3 사건과 한국 전쟁

9. 1960부터 현재까지의 제주 


2장.   제주 가족제도에서의 여성의 위치


1. 가족제도 안에서의 제주 정체성

2. 신유교사상 안에서의 가족제도

3. 제주가족제도의 모순

4. 제주가족제도안의 양성평등쪽의 경향

5. 제주가족제도 - 궨당

6. 우도섬 하우목동 마을 의 궨당 관계 

7. 제주 가족제도에 나타나는 제주의 성관계

8. 부부중심의 핵 가족관계 에 나타나는 평등성


3장.  제주의 잠녀 (해녀)


1. 한국의 아마존 - 외국인이 본 제주여인 - 너무도 떳떳한 한국의 아마존 여인

2.  한국의 카작- 제주 학자가 본 제주인들

3. 제주 신화에나오는 여성상

4. 잠녀에대한 제주 학계의 논설

5. 제주여성들의 잠수일의 역사적 배경

6. 해안과 중산지역 마을의  사회적-경제적  조건

7. 제주의 경제를 유지한 여인들 - 제주섬밖으로의 원정 물질

8. 잠녀들의 야간학교 교육과 일제 저항

9. 잠녀들의 세상과 그들의 가치관

10. 어장 (바다) - 잠녀들의 공동 재산

11. 잠녀들의 규칙

12. 잠녀들의 남자

13. 숨빗 - 잠녀들의 용기와 지혜 : 제주사회의 도덕적인 등뼈


4장. 잠녀들의 무속 신앙과 의식 (잠수굿)


1. 제주문화안의 샤마니즘

2. 마을의 신당 - 마을 사회의 중심

3. 제주마을 의식의 이중 구조

4. 잠녀, 무당 과 바다의 여신 사이의 관계

5. 바다여신을 위한 잠녀들의 굿 - 김녕 마을의 예

6. 잠녀들의 굿의 역활


5장. 한국 반도와 제주에 신유교사상의 영향

1. 제주인들의 신유교사상에대한  집착

2. 신유교사상 - 조선시대의 새로건국하는 나라를 짖는데 필요한   수단

3. 조상숭배 (제사) 는 부계사회를 강하게하는 수단

4. 고려 사회 - 신유교사상이 들어오기전에는 여성의 위치가 높앗다

5. 제주에 들어온 신유교사상 의 영향

6. 깊은 부계조상의 뿌리 의 예


6장. 과거의 제인가 - 거인여신 신화: 계속과 변화

1. 제주돌문화 공원 의 테마 - 거인여신 신화

2. 제주돌문화공의 역사와 공간

3. 제주 돌문화 박물관

4. 거인여신 설문대 할망관

5. 돌문화 공원에서 매년 열리는 설문대할망 제 

6. 설화에서 신화로의 개조

7. 현대에서 보는 설문대할망의 뜻: « 역사 » (history)에서 « 그녀의 이야기 » (her story) - 제주정체성의 새로운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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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Dual Mythology, Neo-Confucianism and Women Divers (Jamnyo) of Jeju, Korea (2018)

Table of content 

Transcription of the Language 

Preface

Foreward

Author’s preface 

1. Dedication and acknowledgement

2. Two burning issues: Jeju identity and disappearing women divers

3. My earlier work on a matrilineal society of West Sumatra


Introduction - Discovering Jeju Reality

1. “A drifting boat”

2. The reality of Jeju - volcanic island and harsh environment

3. Jeju reality and Neo-Confucian influence:  The origin of a unique form of gender relations

4. Jeju identity and women divers

5. “Women centred society”

6. Sources of data used

7. Financial support, fieldwork location and methodology


Chapter 1. People of the Sea -  geographical and historical traces

1. Geography of Jeju

2. Peopling of Jeju and its origin

3. “District across the water” - Jeju

4. Tamna kingdom’s maritime trade during the Three kingdoms period

5. The Koryo period (918-1390) and the Mongol invasion

6. The Choseon dynasty (1390-1910)  and Neo-Confucianism

7. Japanese Colonialism (1910-1945) and modernization 

8. The April 3rd event (1948-49) and the Korean War (1950-53)

9. Jeju from the 1960’s to the present (2016)


Chapter 2. Women’s place in the Jeju kinship system 

1. Jeju identity in the domain of kinship 

2. The kinship system in the Neo-Confucian ideoloy

3. Contradictions in Jeju kinship system

4. The  “Neither sex dominant” tendency in Jeju kinship system 

5. Kwendang” in the Jeju kinship system

6. Kwendang relationship in Haumokdong village, Udo

7. Jeju gender relations as represented in the features of kinship system

8. Egalitarian nature of “couple centred” nuclear family relationship


Chapter 3.  Diving Women of Jeju (Jamnyo)

1. The Amazon of Korea - A foreigner’s view on Jeju women

2. The Kazak  of Korea - a Jeju scholar’s view on Jeju people

3. an image of women in Jeju mythology

4. Academic debate on women divers

5. Historical background of women diving

6. Socio-economic conditions of coastal and plains   villages

7. Supporters of the Jeju economy - Diving migrating outside the island

8. Divers’ anti-Japanese movement and night school education

9. The divers’ world and their value system

10. Fishing grounds (the sea) as a collective property

11. The divers’ rules

12. The divers’ men

13. Breathing out - Divers’ courage and wisdom - Moral backbone of Jeju society


Chapter 4.  Shamanic ritual of the divers 

1. Shamanism in Jeju Culture

2. Village shamanic shrines - Centre of the village   community

3. Double structure of Jeju village rituals

4. Relations between divers, shamans and the sea goddess

5. Divers’ shamanic Ritual for the sea goddess - the case of Gimnyung village

6. The role of divers’ shamanic ritual


Chapter 5. Neo-Confucian influence in cultures of Korea and Jeju 

1. Jeju people’s obsession with the Neo-Confucianism

2. Neo-Confucianism as a tool of change in building a new nation in the Choseon Dynasty

3. Ancestor worship ritual as a way of strengthening patrilineal lineages

4. Koryo - prior to coming of the Neo-Confucianism

5. Coming of the Neo-Confucianism to Jeju

6. Tracing deep patrilineal ancestral roots - an example


Chapter 6. Re-appropriation of the past and the “giant goddess mythology”: continuity and change 

1. The theme of Jeju Stone Park

2. Jeju Stone Park: history and space

3. eju Stone Museum

4. Seolmundae Halmang complex

5. Seolmundae Halmang Ritual at the Stone Park

6. Recomposition: from legend to myth

7. Meaning of Seolmundae Halmang myth in present time: From “History” to “Her story”: Re-defining the group identity


Glossary

Bibliography

Acknowledge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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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face by Prof. Chun, Kyung-soo (prof. emerite , seoul National University)

A serendipity arrived

Everywhere ethnographers have ultimately and everywhere been struggling with ethnographies ever since Malinowski’s Trobriand ethnography was published. Here is an ethnography based on Cheju island in Korea conducted by Dr. Pak Ok-kyung who acquired experience in matrilineal societies when studying the Minangkabau of Indonesia some years ago. Cheju, like Korea, has a tradition of patrilineality. Anthropologists(both female and male) in Korea has been raised in a patrilineal society. It seems to me that the ethnographer’s gender position is a key element in interpreting the nature of a society in terms of social structure. Annette Weiner raised at the question of the ethnographer’s gender in her work on Trobriand: “The women’s mortuary ceremony was a Pandora’s box…”(Weiner, A. 1976, Women of Value, Men of Renown: New Perspectives in Trobriand Exchange, p.8). The box was, in fact, closed in Malinowski’s ethnographies on Trobriand and Weiner needed to open it eventually. Malinowski used the interesting term,  “imponderabilia” of social life in human society in his work while Weiner tried to make it ponderable with her knowledge of gender. I believe she has successfully accomplished that at least to some extent. 

Here I have another Weiner at this moment. When Dr. Pak’s ethnography on Cheju appeared as a manuscript in front of me, I had to look over other ethnographies on the island published by Cho Hae-Jeong(1979) and Kim Chang-Min(1992). The former stressed women’s life style and finally used a term of “neither dominance” for describing the society in Cheju while the latter solely focused on the kindred known as Kwendang. Cho took the position of feminist anthropology while Kim kept his traditional position of social anthropology. Cho certainly opened up a new perspective in understanding Cheju society by focusing on the productive side of the lives of jamnyo (women divers) in contrast to men’s ritual obligations. Cho had successfully questioned the perspective of Jeju and also Korea as male dominant societies, in terms of the power relationships between female and male. However, in my opinion she failed to uncover the fundamental basis of the social structure of the island as being kinship where its main approach to social relationship is Kwendang. Kim’s contribution clearly touched upon this issue of kindred in his ethnography about Cheju. What’s missing from both ethnographies? Both had the perspective of laterality of kinship as a system in society and then obviously put aside that of lineality focusing on the rule of descent of which had tacitly and correctly been taken for granted in both ethnographies. Why did it happen like this? Both seemed ironically to be contaminated by a sort of touristic perspective, focusing solely on the Jamno whoes daily work (diving for sea food) supports their families.  

Dr. Pak’s contribution with this ethnography to explore the local variation of  the society of Cheju must be recognized as her comparative perspective on matrilineality, based on her studies of the Minangkabau. Her perspective of exploring this local variation of patrilineality in Korean soceity, adapted to this island, is the first attempt in the history of Korean anthropology as well as social science as a whole. This must be acknowledged as an eye-opener for Korean anthropology, as well as Korean studies in the international academic community. Jamnyo as a matter of fact have economic power in terms of everyday life at home and furthermore extend their social relationships in the community too. It could be viewed as a phenomenon of the matrilateral extension within the realm of patrilineal society with virilocality as the rule of residence. How does the “women-centered” life style function in this patrilineal society? This is the key question of Dr. Pak’s work. This is the serendipitous lesson for Koreans and Korean scholarship in terms of theory building to understand Korean society both in synchronicity and diachronicity. Critical discussion should never be ending with the explorations of this valuable ethnography on Korean studies. 


서문 전경수 교수 (명예 교수, 서울대학교)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말리노프스키의 트로브리안드 민족지학이 출판된 이후 모든 곳의 민족지학자들이 궁극적으로 그리고 모든 곳에서 민족지학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몇 년 전 인도네시아의 미낭카바우를 연구하면서 모계 사회 경험을 쌓은 박옥경 박사가 한국 제주도에 근거한 민족지학이다. 제주도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가계의 전통이 있다. 한국의 인류학자(여성과 남성 모두)는 부계 사회에서 길러졌다. 내가 보기에 민족학자의 성별 입장은 사회의 성격을 사회구조적으로 해석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로 보인다. 아네트 와이너는 트로브리안드에 관한 자신의 작품에서 인종학자의 성별에 대한 질문에 "여성의 장례식은 판도라의 상자였다"고 말했다. Trobriand Exchange의 새로운 관점, 페이지 8). 사실 이 상자는 트로브리앙드에 대한 말리노프스키의 민족지학에서 닫혔고 바이너는 결국 이 상자를 열어야 했다. 말리노프스키가 그의 작품에서 사회생활에 대한 흥미로운 용어인 "불가해성"을 사용한 반면, 와이너는 그녀의 성에 대한 지식으로 그것을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성공적으로 해냈다고 믿습니다.

여기 또 다른 와이너가 있습니다. 박 박사의 제주 민족지학이 눈앞에 필사본으로 등장하자 조혜정(1979), 김창민(1992)이 펴낸 제주도 내 다른 민족지학들을 살펴봐야 했다. 전자는 여성의 생활방식을 강조하며 마침내 제주 사회를 묘사할 때 "두 쪽 다 지배"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후자는 권당이라는 동족에만 초점을 맞췄다. 조씨는 페미니스트 인류학, 김씨는 사회인류학의 전통적인 위치를 지켰다. 조씨는 남성 의례의무와 대조적으로 잠녀(여성 다이버)의 삶의 생산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며 제주 사회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열게 됐다. 조씨는 여성과 남성의 권력관계 측면에서 제주도와 남성 지배사회로서의 한국의 시각에 의문을 제기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녀는 권당이라는 섬 사회구조의 근본적 근거를 친족관계로 밝혀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김씨의 기여는 제주에 대한 그의 민족지학에서 이 같은 문제에 명백히 언급되었다. 두 민족 모두 뭐가 부족하죠? 두 사람 모두 사회적 체계로서의 친족성에 대한 편협성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고, 두 민족지학에서 암묵적으로 그리고 올바르게 여겨졌던 혈통 통치에 초점을 둔 선성의 관점은 분명히 제쳐두었다. 왜 이렇게 된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둘 다 가족들에게 매일 하는 일(해식용 다이빙)에만 집중하는 일종의 관광적 관점에 오염되어 있는 것 같았다.

박 박사가 이 민족지리학에 기여한 공로는 미낭카바우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모계성에 대한 비교적 시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 섬에 적응된 한국 사회의 이러한 지역적 모계성을 탐구하는 그녀의 관점은 사회과학은 물론 한국 인류학 역사상 첫 시도이다. 이는 한국 인류학뿐만 아니라 국제학계에서 한국학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잠뇨는 사실 가정에서의 일상 생활에서 경제력을 가지고 있으며, 지역사회에서도 사회적 관계를 더욱 넓혀가고 있습니다. 주거의 법칙으로 바이러스성을 지닌 부계 사회 영역 내 모계연장의 현상으로 볼 수 있다. 이 3부제 사회에서 "여성 중심" 생활 방식은 어떻게 기능할까요? 이것이 닥터 박의 연구에 대한 핵심 질문입니다. 이것은 이론의 관점에서 한국인과 한국학자가 한국 사회를 동시성과 동시성으로 이해해야 하는 우연한 교훈이다. 비판적인 논의는 결코 한국학에 대한 이 귀중한 민족지학의 탐구로 끝나서는 안된다.











Warriors of the Rainbow: Seediq Bale Review | SBS Mov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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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s the true story of the Wushe Incident in which Aboriginal Seediq tribe warrior Mouna Rudo led his people to rebel against the Japanese occupation. Rudo’s men of 300 fought with ancient gun, spears and minimal weaponry and seeking to reclaim their land, their dignity and their honor, they took on the Japanese army of 3000 for two weeks.
By
Don Groves

1 JAN 2009 - 12:00 AM UPDATED 27 MAY 2020 - 12:56 PM
3.5





Bruising, brutal tale of rebellion in early 20th Century Taiwan suffers from overkill.


Taiwanese writer/director Wei Te-Sheng’s action-drama vividly recounts the oppression of his country’s Indigenous population and subsequent rebellion against their Japanese rulers in the early 20th century, a situation that’s comparable to the plight of Australian Aboriginals and Native Americans.


Warriors of the Rainbow: Seediq Bale is a brutal, epic tale of suffering, courage, sacrifice, tribal rivalry and revenge, marked by some truly spectacular battle scenes and mystical elements.


"A brutal, epic tale of suffering, courage and sacrifice"

The narrative opens in 1895 when China ceded the island of Taiwan to Japan. The colonialists viewed the Aboriginal tribes such as the Seediq clans in a remote highlands region as savages and set out to 'civilise" them.

The chief protagonist is Mouna Rudo (Da-Ching), a young Seediq warrior who’s renowned for his fearlessness and fighting prowess. After killing a rival tribesman, Mouna is initiated as a Seediq Bale (a 'true man") by having a tattoo engraved on his face. He takes part in the first uprising against a group of Japanese soldiers who are ambushed and crushed by falling rocks.

Fast forward 25 years and the tribes have been forced into slave labour, building schools, houses and stores, while they spend their meagre wages on getting drunk on cheap millet wine.

Mouna (now played by Lin Ching-Tai) is the chief of his Mehebu tribe, who tries to keep the peace with the Japanese and with rival clans. But beneath the surface he is seething, admitting, 'I am a chief but all I can do is get drunk and pretend I see nothing and hear nothing. What else can I do?"

He saves the life of an abusive Japanese cop, who vows revenge. Mouna is reluctant to go to war against the Japanese, fearing they are too powerful. But he changes his mind after seeing an apparition of his father, who reminds him of their ancestors’ spirits and the virtues of sacrifice.

Mouna plans to attack on a day when many Japanese gather to watch sports events and seeks to enlist the support of other clans, some of whom refuse. He mobilises a force of 300 warriors who stage a massacre then retreat, thereafter relying on guerrilla warfare.

The resolution of the climactic battle in 1930 is never in doubt given the superiority of the Japanese army and their firepower. Deaths inflicted by machete, spear, gunfire, cannon and poison gas are expertly staged but through sheer repetition the brutality becomes oppressive; the beheadings are especially gruesome. Several scenes which portray mass or individual suicides by both men and women are chilling and profoundly moving.

Wei focuses on the action to the detriment of being able to flesh out his characters. Most of the Japanese cops and soldiers are one dimensional, depicted as cruel and racist, except for Kojima Genji (Ando Masanobu) who shows both sympathy for the oppressed and that he has a conscience.

Bowkeh Kowsang registers strongly as Dakis, a Seediq who is conflicted as he works for the Japanese as a cop. Among the numerous Aboriginal characters it’s sometimes hard to work out who’s who and how or whether they are related. The performances by Lin, Da-Ching and Lin Yuan-Jieas as a boy warrior who is mentored by the chief are impressive considering they are non-actors, but the female cast is underused.

The production values are admirable, reflecting the budget of $US23 million, which ranks as one of the most expensive Taiwanese films. Chin Ting-Chang’s widescreen photography moves nimbly through the lush, claustrophobic forests, imbuing the film with a grey, gloomy look, and the close-ups are graph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