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덕(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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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 - 편조백방(遍照百邦), 투시백년(透視百年)의 기세로 |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강인덕 (지은이)경인문화사2022-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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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회고록이다. 국가 중앙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요원들 사이에는 묵시적 준칙 같은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근무시 인지한 기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 중앙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KCIA)」에서 16년간 근무한 제1세대 정보분석관이였던 필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두 가지 이유를 가지고 이 묵시적 준칙의 일부를 파기하기로 했다.
그 하나는 후대 집권세력들이 앞을 다투듯 주창한 「중앙정보부」와 그 근무자에 대한 비난과 매도에 답하기 위함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적, 프로급 공작원과 정보분석관의 양성과 성장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이들의 역할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기 위함이다.
목차
출판에 즈음하여
제1부 1950년대 실향(失鄕)・고행 속에 평생 갈 길을 찾다
8・15 해방의 기쁨 : 곧이어 닥친 이산(離散)의 아픔
평양 제1고급중학교 시절 그리고 월남
학도의용대 입대 : 정훈요원으로
동두천 101예비사단에서의 병영생활
「위문편지」로 맺어진 천생배필
한국외국어대학 노어과 입학
금기된 「공산권 연구」의 행운을 잡다
해병장교 임관
제2부 1960년대 풋내기 중앙정보 분석관 : 뼈저리게 느낀 책임감
4・19 혁명 : 군인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곳에 있었을 것
사회혼란기 해병대 전략분석관의 고민
「올 것이 왔다」 : 5・16 군사정변
「5・16 혁명」과 중앙정보부 창설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 시사정보과 보직
쿠바 사태 판단 : 처음 겪은 해외정보 분석관의 시련
중소과 과장 시절 : 실시간 첩보분석을 통한 공산권 연구의 특전
한일회담 반대 소용돌이와 「민족적 민주주의론」 비판
한일회담 : 조기 타결을 위한 분석관들의 노력
베트남 파병 : 중앙정보부 조사단의 일원으로 느낀 것
「1・21 사태」 예측 판단 보고와 청와대 기습 사건
미 해군 첩보함 푸에블로호 사건과 한・미 공조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
일본항공(JAL) 요도(Yodo)호 납치사건
김일성의 대중군(大衆軍) 사상과 권력 유지를 위한 북한군 사병화(私兵化)
제3부 1970년대 전반 고향땅을 다시 밟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전기를 조성한 「8・15 평화통일구상 선언」 준비 참가
김일성이 제시한 「인민민주주의혁명」에 대한 대응
새로운 대북전략의 연구와 남북적십자회담 제의
남북 고위급 인사의 비밀 교환방문 제기와 실현
「7・4 남북공동성명」의 탄생(?) 경위
남북대화와 「10월 유신」 발표
남북조절위원회 대표단원으로 평양 방문 (1차 방문)
평양 체류 첫날 : 모란봉 초대소에서 일어난 일
김일성의 초대 식사 : “합작합시다!”
청와대에서의 귀환보고 : “전략적 변환는 없습니다”
남북조절위원회 북측 대표단의 서울 방문 : 지켜지지 않는 ‘대남 비방방송 중지’
제2차 남북조절위원회 회의 참가 : 두 번째 평양 방문
만경대 방문에서 생길 일 : 6・25 때 행방불명된 넷째 형님 소식을 듣고
제4부 1970년대 후반 다양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역할 경험
「김대중 납치사건」과 추락하는 중앙정보부의 위신
베트남의 공산화와 특수 홍보활동 전개
각종 정보원(情報源)의 발굴 노력
북한의 「8・18 도끼 만행 사건」과 그 대응 : 미국의 강력 대응은 없었다
북한 핵 정보의 과소평가 - 나의 오판
심리전국 재건과 「자유아카데미」 창설 : 자유중국의 정치사상교육 실태 시찰
건전한 노사관계 형성을 위한 정부 산하 기업의 노동조합 간부교육
김재규 부장과의 갈등 : 「자유아카데미」 폐쇄
중앙정보부를 떠나다 : 한경직 목사님, “주님께서 강 집사에게 피난처를 주신거야…”
「재단법인 극동문제연구소」 창립, 대만 도피 후 귀국
「10・26 사건」 : 평고 동기동창 정인형의 순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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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강인덕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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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적사항
성명 : 강인덕 (康仁德)
출생 : 1932년 평양
2. 학력
1945.04 - 1950.09 평양 제1 고급중학교 졸업
1954.03 - 1958.02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사
1966.03 - 1968.02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석사
1973.03 - 1977.02 경희대학교 대학원 정치학박사
- 논문제목, “통일전선연구: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전선”
3. 주요 경력
1963.07 - 1965.01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 중소과장
1965.01 - 1970.12 동 해외정보국 북한과장
1971.01 - 1975.07 동 해외정보국장, 북한국장 겸 남북대회사무국장, 남북조절위원회 위원
1975.07 - 1977.01 동 심리전국장
1977.01 - 1978.05 동 북한국장
1979.01 - 1998.03 재단법인 극동문제연구소 이사장・소장
1998.03 - 1999.03 통일부장관
1999.06 - 2013.03 일본 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 초빙교수
2013.03 - 현재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석좌교수
4. 주요 포상관계
1970. 03. 13 홍조근정훈장 (대한민국 정부)
1976. 06. 10 보국훈장 천수장 (대한민국 정부)
1988. 02. 11 국민훈장 모란장 (대한민국 정부)
1992. 05. 16 5・16민족상[안보부문] (5・16민족상 재단)
2002. 06. 15 청조근정훈장 (대한민국 정부)
5. 주요 저술
• 2017. 『朝鮮半島 地政學クライシス』. 日本經濟新聞出版社 (編著)
• 2016. 『解剖 北朝鮮リスク』. 日本經濟新聞出版社 (編著)
• 2004. 『남북회담 : 7.4에서 6.15까지』. 극동문제연구소.
• 2004. 『北朝鮮問題をどう解くか-東アジアの平和と民主主義のために』. 聖學院大學出版會. (小田川興 共編)
• 2001. “和解と協力科程入った南北關係: 南北首腦會談の成果と今後の展望,” 『轉換期の東アジア』. 御茶の水書房
• 2000. “金大中大統領の「太陽政策」と韓國の立場,” 『朝鮮半島: 南北統一と日本の選擇』. 日本評論社.
• 1992. 『언어・정치・이데올로기』. 을유문화사.
• 1988. 『개혁과 개방 : 중국주요논문선집』. 극동문제연구소.
• 1988. 『페레스트로이카 : 소련주요논문선집』. 극동문제연구소.
• 1987. 『이념교육 지도전서』. 극동문제연구소.
• 1985. 『원전공산주의 대계 : 상・하』. 극동문제연구소.
• 1984. 『공산주의 비판』. 극동문제연구소.
• 1983. 『공산주의 사전』. 극동문제연구소
• 1981. 『알기쉬운 공산주의』. 극동문제연구소.
• 1978. 『공산주의와 통일전선』. 극동문제연구소.
• 1974. 『북한전서 : 상・중・하』. 극동문제연구소.
• 1972. 『공산권 총람』. 극동문제연구소.
• 1970. 『국민승공사상 대계』. 신현실사.
• 기타 단행본 및 국내외 강연, 세미나 발표, 논문, 칼럼, 기고문 등 다수 접기
최근작 :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2>,<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남북회담 : 7.4에서 6.15까지>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쟁을 억제하는 길은 전쟁을 준비할 때만이 가능하며,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본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회고록이다. 국가 중앙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요원들 사이에는 묵시적 준칙 같은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근무시 인지한 기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 중앙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KCIA)」에서 16년간 근무한 제1세대 정보분석관이였던 필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두 가지 이유를 가지고 이 묵시적 준칙의 일부를 파기하기로 했다. 그 하나는 후대 집권세력들이 앞을 다투듯 주창한 「중앙정보부」와 그 근무자에 대한 비난과 매도에 답하기 위함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적, 프로급 공작원과 정보분석관의 양성과 성장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이들의 역할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기 위함이다.
본서는 시기별로 2권으로 나눠져 있으며, 1권에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의 일들이 담겨있고, 2권에는 1980년대부터 2000년 이후까지 일들이 담겨있다. 끝으로 회고록을 마치며 후대 중앙정보 분석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으며 마무리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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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회고록이다. 본서는 시기별로 2권으로 나눠져 있으며, 1권에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의 일들이 담겨있고, 2권에는 1980년대부터 2000년 이후까지 일들이 담겨있다. 끝으로 회고록을 마치며 후대 중앙정보 분석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으며 마무리했다.
목차
제5부 1980~1990년대 정세평론가로 전직한 정보분석관
안개처럼 사라진 「서울의 봄」 : 기대는 무너지다
뜻하지 않았던 남아메리카 여행 : 「종속이론」, 「해방신학」, 「민중영합주의」의 실제 경험
북한이 자행한 랭군(양곤) 아웅산 묘소 폭탄테러 사건 : 깊은 신뢰를 베풀어주신 이범석 선배님의 순직
동토(凍土) 북한을 향한 나의 절규 : KBS 사회교육방송 「노동당 고급 당간부들에게」
북한 「연방제 통일방안」 비판 : 실상으로서의 혁명과 허상으로서의 통일
경계해야 할 북한의 언어교란 전술 : 「민중론・민중주의」 비판
친북좌파 지식인의 탈냉전 인식과 북한의 「우리민족끼리」의 함정
김영삼 정부의 통일정책과 그 비판
「흡수통일론」과 「햇볕론」 비판
양호민(梁好民) 선생과의 대화 : 우리 사회의 이념 혼란 문제
제6부 통일부 장관 시절 분석・보고 작성자가 아닌 사용자의 위치에 서다
김대중 정부의 통일부 장관 입각
국가안보회의(NSC)
대통령께 통일부 업무 보고
남북당국 간의 대화 재개
금강산 관광사업의 준비와 실현 : 대북 「관여정책」의 개시
북핵 문제와 경수로 건설 문제
김대중 대통령의 통일론과 나의 통일론 간의 간격을 어떻게 메울 것인가?
통일정책에 대한 국민적 이해를 고양하기 위한 노력
북한을 ‘적(敵)’이라 불러 대북 강경론자로 비판받은 내 강연
북한 매체의 나에 대한 원색적 비난
제7부 2000년 이후 지금도 여전히 그 때 그 모습을 간직한 나
MD 참여와 국가안보 : 21세기 국가생존을 위한 ‘대전략’의 이해
세이가쿠인(聖學院)대학 객원교수 13년
일본의 국사(國士) 스에츠쿠(末次一郞) 선생
국내 좌경 기독교 지도자에 대한 비판
「민족중심 대북관」 비판
압록강, 두만강 국경선과 북・중 간 교류
제8부 회고록을 마치며 후대 중앙정보 분석관에게 남기고 싶은 말
나의 대북방송을 통해 본 대북 심리전의 전과 : 「방송」과 「전단」은 우리의 강력한 비대칭 전략자산이다
후기 : 중앙정보 분석관들이 지녀야 할 자질
계속해야 할 핵폐기를 위한 대북 제재 : 힘의 우위 원칙 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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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덕 (지은이)
저자파일
신간알림 신청
1. 인적사항
성명 : 강인덕 (康仁德)
출생 : 1932년 평양
2. 학력
1945.04 - 1950.09 평양 제1 고급중학교 졸업
1954.03 - 1958.02 한국외국어대학교 학사
1966.03 - 1968.02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정치학석사
1973.03 - 1977.02 경희대학교 대학원 정치학박사
- 논문제목, “통일전선연구: 북한의 대남전략과 통일전선”
3. 주요 경력
1963.07 - 1965.01 중앙정보부 해외정보국 중소과장
1965.01 - 1970.12 동... 더보기
최근작 : <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2>,<한 중앙정보 분석관의 삶 1>,<남북회담 : 7.4에서 6.15까지> … 총 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전쟁을 억제하는 길은 전쟁을 준비할 때만이 가능하며,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해야 한다
본서는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최고의 북한 전문가,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 회고록이다. 국가 중앙정보기관에 근무했던 요원들 사이에는 묵시적 준칙 같은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근무시 인지한 기밀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 중앙정보기관인 「중앙정보부(KCIA)」에서 16년간 근무한 제1세대 정보분석관이였던 필자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두 가지 이유를 가지고 이 묵시적 준칙의 일부를 파기하기로 했다. 그 하나는 후대 집권세력들이 앞을 다투듯 주창한 「중앙정보부」와 그 근무자에 대한 비난과 매도에 답하기 위함이며, 또 다른 하나는 필자의 경험을 통해 직업적, 프로급 공작원과 정보분석관의 양성과 성장에 도움을 주고, 나아가 이들의 역할이 국가안보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리기 위함이다.
본서는 시기별로 2권으로 나눠져 있으며, 1권에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의 일들이 담겨있고, 2권에는 1980년대부터 2000년 이후까지 일들이 담겨있다. 끝으로 회고록을 마치며 후대 중앙정보 분석관에게 남기고 싶은 말을 적으며 마무리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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