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2

학자의 시간 낭비 - 조동일

학자의 시간 낭비 - 대학지성 In&Out

학자의 시간 낭비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승인 2020.08.09 18:00


[조동일 칼럼]

영어를 제대로 익힌 다음 영문학 공부를 하려고 사전을 외던 학우들을 기억한다. 한문 공부를 철저하게 하고서 학문을 시작하려다가 어느덧 환갑을 넘긴 지각생도 있다. 남들이 영어나 한문을 오역했다고 준엄하게 꾸짖고, 자기는 완벽한 경지를 보여주겠다면서 신중한 자세를 견지하는 자칭 석학도 자주 본다.

영어나 한문뿐만 아니라 국어라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익히는 것은 한평생 노력해도 가능하지 않다. 여러 평생이 보장되어 있다고 해도, 이번에 공부한 것이 다음 생으로 이월되지 않으니 허사이다. 한평생만 산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가능한 작업을 해야 한다. 도구가 훌륭하면 일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완물상지(玩物喪志)를 경계해야 한다.

준비를 너무 오래 하느라고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적절한 시기에 본론에 들어가, 할 수 있는 연구를 해야 학자일 수 있다. 잘되고 못되는 것은 해보아야 안다. 실패를 해야 성공도 있다. 이런 진부한 이야기를 새삼스럽게 하는 것은 학문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시간 낭비의 실수를 안타깝게 여기기 때문이다.

서론을 오래 끌지 말고 나도 본론에 바로 들어가, 이미 고전이 된 본보기를 들어보자. 박종홍 선생은 내가 학생 시절에 존경을 한 몸에 모으고 있던 석학이었다. 성실한 자세로 철저하게 공부를 하는 모범을 보였다. 너무 성실하고 지나치게 철저한 것이 화근이 되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형식논리학>>에서 시작해, <<인식논리학>>, <<변증법적 논리>>, <<역(易)의 논리>>를 거쳐 <<창조의 논리>>에 이르는 논리 탐구의 대장정을 하겠다고 했다. <<형식논리학>>에서 이러한 구상을 제시하고, <창조의 논리를 위한 예비적 고찰>을 권말에 수록해 장차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예고했다. 지금까지 있는 논리를 두루 고찰하고 끝으로 자기의 논리를 제시하는 창조학의 작업을 하겠다고 세상에 널리 알렸다.

높이 평가할 만한 엄청난 계획인데, 예고한 대로 되지 않았다. <<인식논리학>>까지만 내놓고 세상을 떠났으며, <<변증법적 논리>>는 미완의 초고를 남겼다. 1903년에 태어나 1976년까지 73년이나 살았으니, 단명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 아니다. 계획을 잘못 세워 시간을 낭비한 탓에 뜻한 바를 이루지 못했다. 멀리까지 가서 세상을 다 돌아보고 돌아오려고 하다가 중도에서 객사(客死)하고 말았다. 가장 슬기로워야 할 철학자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짓을 했다.

남들의 학문이 어떤지 확인하는 철학알기는 시간을 탕진하면서 할 일이 아니다. 자기의 철학하기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일반논리학>>을 45세 때인 1948년에 내놓았으니 이미 조금 늦었다. <<일반논리학>>에도 시간을 배정하지 않고, 원기가 왕성하고 생각이 발랄할 때 <<창조의 논리>>를 다잡아 썼어야 했다. <창조의 논리를 위한 예비적 고찰>을 마음껏 발전시켰어야 했다. 철학알기가 아닌 철학하기에서 우뚝한 업적을 남겼으면 얼마나 훌륭했겠는가?

박종홍의 실패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는 교훈으로 받아들이면 참으로 소중한 의의가 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을 한 공적이 있다고 높이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도 수입학을 일삼는 사람들은 박종홍처럼 큰 실패는 하지 못하면서 작은 실패는 계속 되풀이해, 박종홍의 객사를 헛되게 한다. 철학하기가 목표라는 말은 버리지 않으면서, 그 중간과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누구나 인정하는 철학알기에 줄곧 매달려 일생을 낭비한다.

외국에 유학해서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손해가 되는 내막이 어느 분야에든지 그대로 해당되지는 않는다고 전제하고, 하고 싶은 말을 한다. 반발을 앞세우지 말고 경청해주기 바란다.

외국 대학에서 공부를 제대로 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오면 40세를 훌쩍 넘기기 쉽다. 대학이 좋고 공부가 힘든 것이면, 그 시기가 훨씬 늦어져 영광이 더 크다고 한다. 정년퇴임을 할 나이에 박사를 하고 아직 공부할 것이 많아 귀국하지 못한다고 하는, 어이가 없을 정도로 성실한 노학도를 외국에서 우연히 만난 적도 있다.

이론을 창조하는 능력은 35세를 지나면 쇠퇴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바둑 프로 기사가 내리막길에 들어서는 시점과 일치한다. 그때까지 돈오(頓悟)한 것이 있어야 평생 점수(漸修)할 일거리가 생긴다. 돈오는 편안한 곳에서 조용한 시간을 얻어 마음을 비워야 가능하고, 생소한 환경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학습에 시달리면서 정신없이 뛰어다니면 불가능하다.

금빛 찬란해 존경받아 마땅하다고 자부하는 공부가 스스로 깨달은 것이라고는 없어 속이 텅텅 비어 있다. 무엇을 놓쳤는지 모르고 자랑스럽게 귀국하면 허망하다. 국내에서 힘들지 않게 공부한 동년배에 이미 자기 학문 세계를 개척해 창조학의 업적을 상당한 정도로 낸 중견 학자도 있는 것이 예사이다. 대단한 영광을 기대하고 학생 노릇을 너무 오래 한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시간 낭비이다.
학생이 하는 공부에 길들여져 학자로 전환하기 어렵고 그럴 뜻도 없어, 한참 동안 헤매고 다니는 철부지를 흔히 본다. 연구가 뒤떨어진 것을 학벌 자랑으로 메우려고 해서 차질을 빚어낸다. 업적과 학벌은 차원이 다르므로, 한 자리에 놓고 비교할 것이 아니다. 업적은 학자일 수 있는 요건이다. 학벌은 학생의 자랑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학생의 영광이 학자에게는 아무 소용도 없다. 학생 시절과 단호하게 결별해야 학자가 될 수 있다.

이런 구분을 뒤집으려고 본말전도의 궤변을 늘어놓는다. 수입학이 창조학보다 소중하고, 철학알기가 철학하기보다 훌륭하다고 떠들고 다닌다. 수입학의 가치가 원산지의 위세로 당당하게 증명된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위대한 철학자를 섬기는 철학알기가 이 땅에서는 최상위의 학문이라고 한다. 뒤떨어진 나라에서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창조학을 한다고 나서는 것은 웃기는 일이라고 폄하하기까지 한다.

길게 개탄하고 있을 것은 아니다. 한마디 말을 치료제로 제공한다. 학자에게는 낭비할 시간이 없다.


조동일 논설고문/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교수를 거쳐 서울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중국 연변대학 명예교수이기도 하다. 

주요 저서로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조동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동일
출생 1939년 8월 9일 (81세)
 대한민국 경상북도 영양군 주실마을
국적  대한민국
학력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
직업 대학교수


조동일(趙東一, 1939년 8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국문학자, 교육자이며 학술원 회원이다. 대표작으로 《한국문학통사》와 세계문학사 관련 저서들이 있다.

생애[편집]
1939년 8월 9일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 출생. 주실마을은 한양 조씨 집성촌으로서 시인 조지훈의 출신지이기도 하다.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문학박사
계명대학교영남대학교한국학중앙연구원서울대학교 교수 역임
계명대학교 석좌교수 역임

저서[편집]

《한국문학통사》(1982~1989)
《한국문학과 세계문학》(1991)
《동아시아문학사비교론》(1993)
《우리 학문의 길》(1993)
《한국의 문학사와 철학사》(1996)
《세계문학사의 허실》(1996)
《인문학문의 사명》(1997)
《카타르시스·라사·신명풀이》(1997)
《공동문어문학과 민족어문학》(1999)

《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2000)
《세계문학사의 전개》(2002)
《세계·지방화시대의 한국학》시리즈 (2005-2009)

《공부의 즐거움》 (공저,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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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교수에 대한 학계의 평가
 권진욱 기자 승인 2002.09.05 00:00 댓글 0

‘이론주의’·‘야심찬 시도’ 평가 팽팽


조동일 교수는 우리 학계의 대표적인 ‘多作家’이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다양한 시대와 장르, 그리고 우리 학문의 현실에 대해서 50여권의 저서와 30여권의 기타단행본을 펴낼 만큼 정력적인 활동을 해왔으며 한국문학통사’는 1982년에 발행된 뒤, 판을 거듭하며 4만여질이나 팔렸다. 그만큼 우리 학계에서 그가 갖는 비중과 영향력은 크다.


최봉영 항공대 교수(한국학)는 조동일 교수의 작업에 대해 “처음부터 ‘우리’와 ‘세계’를 주체적으로 설명하는 일에 매진해 인문학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이론체계를 구축해 왔다”라고 높이 평가한다. 조동일 교수의 세계문학사 정리 작업에 대해 강성호 순천대 교수(사학)는 “우리 입장에서 세계문학 전체를 재구성해보려는 야심찬 시도”라고 평가하고, 이수훈 경남대 교수(사회학) 역시 “학문의 탈식민화와 토착화에 대한 기여한 이론”으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유연구실의 고미숙 연구원(국문학)은 ‘문학사’라는 견결한 틀에 회의를 표한다. 고씨는 “문학사 자체가 근대적인 코드”라고 비판한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근대민족국가가 실체화한 문학사는 국가와 민족이라는 단위의 국가주의 코드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문학이야말로 경계를 강화시켜주고 장르는 문학사를 정교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장르가 프리즘이나 창이 돼서 맹목적으로 따르게되는 우려가 있다. 고씨는 ‘열하일기’를 예로 들며 “역사, 종교, 민속학 등 보는 사람에 따라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그는 텍스트가 “문학이나 장르로 국한돼지 않는다”라고 단언한다.


조동일 교수의 세계문학사 다시 쓰기 작업은 내용뿐만이 아니라 학문하기의 이정표를 세우는 탓에 우리 학문의 방법론과 곧바로 연결된다. 홍성민 동아대(정치학)는 조동일 교수의 지식관에 대해서 비판한다. 조 교수는 학문은 진실을 탐구하는 행위이며, 현대 인문과학의 위기를 수입학, 시비학, 자립학, 창조학의 네 가지 단계로 설정, 우리 학문의 독자성은 창조학의 바탕 위에 거대이론을 창조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홍 교수는 이진우 계명대 교수(철학)와 함께 조동일 교수에 대해서 “실체론적 진리관에 입각한 이론중심주의의 함정에 빠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홍 교수는 사회적인 구조와 맥락을 간과하고 마치 학문이 고정불변의 것인 것처럼 간주하는 설정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임재해 안동대 교수(민속학)는 “우리나라 사람이 무엇을 하는 데 대해서 학자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며 조동일 교수의 작업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 임 교수는 우리 지식사회를 ‘꽃장사’에 비유한다. “3∼4년마다 외국에 갖다 와서 신선한 이론을 수입해야 영업이 되는 것 아니냐”며 조동일 교수의 자생적인 노력에 대해 진지한 학계의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조동일 교수는 자신의 작업에 대한 논쟁에 인색함이 없다. 조 교수는 홈페이지를 통한 비전공자들의 시시콜콜한 질문에 직접 답변하고 출간기념모임에서 책을 읽어온 제자들과 문답을 하곤 한다. 그는 학계에 서론만을 이야기하고 본론은 생략한 이론들이 너무 많다며 이를 “장외의 샅바싸움”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조 교수는 학문 내용에 대해서 직접 토론하는 풍토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고 결국 이는 ‘싸움꾼 조동일’이라는 뜻하지 않은 오해를 불러오기도 한다. 이에 대해 최봉영 교수는 오히려 “다른 이들은 논쟁의 풍토가 다져지지 않아 학문의 발전이 늦다고 주장하지만, 애써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 교수는 ‘싸움꾼 조동일’이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을 무릅쓰고 논쟁을 논쟁답게 만들어 왔다.”라며 그의 학자적인 진정성을 높이 평가한다.


권진욱 기자 atom@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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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서 문학하기: 조동일의 “한국문학의 길”
존재는 생명의 강물
2019. 8. 11. 10:02




이웃추가 본
#이땅에서_문학하기 : #조동일 의 #한국문학의_길
#우리학문의_길 을 주창하며 학문의 한국화를 선도한 조동일의 #문학의_한국화 노력의 과정을 살펴보자. 

그가 내세우고 있는 “한국문학의 길”을 들여다보자. 그는 그 길의 어려움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국문학연구는 외롭고도 고난에 찬 길을 걸어야만 했다. 민족문화를 말살하려는 책동에 맞서서 우리것의 의의를 입증하는 사명을 맡는 것만 해도 힘에 겨웠으며, 문학이라면 으레 서구문학을 기준으로 삼아야만 한다는 풍조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국문학을 통해서 문학론을 전개하는 작업 또한 쉬운 노릇이 아니었다.”(『한국문학통사 1』, 지식산업사, 1989.)

조동일이 한반도에서의 모든 문학, 즉 #구비문학, #한문학, #고전문학, #현대문학 모두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한국문학통사』를 펴낸 것은 문학계뿐만 아니라 학계에 길이 남을 업적이다. 이를 통해 그는 “학문의 한국화”를 추구하는 학자들이 해야 할 일과 그 방법 그리고 추구해야 할 이념까지도 자신의 학문하기로 본보기를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조동일은 우선 가장 근본적인 물음부터 던지며 길을 연다. 즉 #문학이란_무엇인가? 그리고 그 범위는?” 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국문학이란_무엇인가? 그리고 그 범위는?”하며 물음을 던진다. 이로써 그는 학자들이 흔히 가는 일반적인 길을 가지 않고 새롭게 길을 찾는 셈이다. “한국문학”에 대한 “대상화” 작업에서 문학의 규정과 범위가 정해지지 않은 채 진행될 경우 이미 정해진 규정을 따르는 셈이 된다. 그리고 이 경우 그 규정은 다른 문화권의 학자들이 만든 규정들이다. 그러니 그런 문학 정의에 따라 국문학을 규정한다면 남이 만들어준 옷을 입는 꼴로서,
주체적인 학문행위가 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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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2/2020 이 땅에서 문학하기: 조동일의 “한국문학의 길”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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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의 <세계문학사의 전개>


조동일은 문학을 이와 같이 규정한다.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예술이며, 예술은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라 해도 좋다. …… 문학은 말로 된 문학인 구비문학과 글로 된 문학인 기록문화, 이 두 가지로 존재한다.” 즉 문학은 언어로 이루어진 형상과 인식의 복합체이다. 그 다음 형상과 인식에 대한 설명을 덧붙인다. 무엇을 만들어서 내보이면 형상인데, 문학은 형상으로서 일상생활의 실용적 말과는 구별된다. 형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 또는 현실에서 일단 떠나는 즐거움을 얻게 한다. 인식은 모르고 있던 진실을 알아차리는 행위로서 그것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
또는 현실과 만나, 거기서 무엇을 발견하는 보람을 누린다.

조동일은 문학과 문학 아닌 것의 구별 기준을 형상에서 본다. 말이나 글이 일상생활의 평범함을 벗어나는 긴장된 질서를 갖추고 있어서 관심을 끌 경우, 그것을 형상이라고 할 수 있다. 비유나 상징, 사건의 구성, 인물 대립의 구조 같은 것들이 그러한 질서의 경우들이다. 조동일은 인식이 곧 문학이라는 등식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 철학이나 자연과학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문학은 인식 내용을 제시하면서도 변동 불가능한 사실 이상의 것을 음미하고 상상하게 하며, 진실 발견의 체험이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나게 해준다.” 그래서 개인 생활, 역사, 사상 따위를 다룬 글이라 하더라도 위와 같은 조건을 갖추었으면 형상이면서 인식이니까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고 본다.

조동일은 #문학의_범위 가 시대에 따라 달라져왔음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구비문학과 한문학을 문학의 범위에
넣을 수 있는지 논의한다. “구비문학”은 언어예술의 측면에서 볼 때 문학이다. 그런데 “한문학”의 경우 문학이긴
하지만 국문학은 아니지 않는가. 동아시아 공동의 문학으로 보아야 하지 않는가. 동아시아에서는 똑같이 쓰인 한
문을 나라마다 다르게 읽는다. 우리는 우리 음으로 읽으며, 구결을 만들어냈고, 토를 달았다. 이렇게 읽는 한문이
라면 우리말 문어체의 하나라고 해도 된다. 조동일은 문학을 문학활동으로 이해한다면, 한문학은 구비문학이나
국문문학과 함께 우리 사회에서 창조되고 수용되어 문학으로서 구실을 해왔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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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문학을 정리하면서 국문학의 범위도 드러나게 된다. #국문학 에는 세 가지 문학이 있다. 말로 된 문학인 #
구비문학, 문어체 글로 된 #한문학, 그리고 구어체 글로 된 #국문문학 이 그것이다. 따라서 국문학사의 전체적인
전개는 이 세 가지 문학의 관계가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가에 따라서 이해될 수 있다.
조동일은 지금까지의 국문학사가 거의 국문문학중심의 문학사였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그러한 국문학사가 나오
기 전에는 문학하면 으레 한문학 중심으로 이해되었고, 국문문학을 평가하자는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 맞서서 민족문학으로서의 국문학을 인식하고 평가하는 단계에 이르러서 한문학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국문으로 된 것만 국문학이라는 극단론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조동일은 #민족문학 을 이해하는 관점의 변화 또한 깊이 의식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동안 국문학
을 보는 관점이 일본을 통해 이식했거나 바로 들여왔거나를 막론하고 서구문학의 전례에 깊은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제는 국문학 자체가 지닌 폭과 깊이를 두루 드러내서 그것대로 이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그리고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동양 전래의 문학관에 대해 재평가를 하면서 한문학
을 재인식하고 구비문학도 재평가하기에 이르렀다.
#제삼세계_민족문학 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우리 “구비문학”도 무언가 모자라는 문학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자랑스러운 원천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국문학은 구비문학, 한문학, 국문문학으로, 또는 구
비문학, 한문학, 고전문학, 현대문학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범위가 정해지게 된다. 한국문학은 문화적 축적
과 변모의 결과로서 한국의 국문학자가 계승하고 발전시켜야 할 전통의 폭이 여느 다른 문학보다 훨씬 넓다는 것
을 보여준다. 조동일은 여기서 한국문학사가 제일세계 문학, 제이세계 문학과 대비되는 제삼세계 문학사 서술의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우리는 조동일의 #문학하기 가 학문의 주체연관, 대상연관, 실천[생활]연관, 방
법연관을 고루 살펴 탐구한 제대로 된 #학문하기 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학문하기에서 발견한 논
리를 발전시켜 #제삼세계_문학사 서술의 전범을 마련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게 해서 #서양중심의_세계
문학사 가 드러내고 있는 결점을 보완하려 한다.
이미지: 조동일, 철학사와 문학사
(2018.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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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일 평론선집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한국평론선집 epub 
조동일 (지은이),하상일 (해설)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2015-07-06 


조동일 평론선집
 
전자책정가
16,000원

종이책 페이지수 224쪽,

책소개

조동일은 '청맥'을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평론가였다. 그의 비평은 '청맥'에 발표된 문학비평 가운데 가장 많은 지면과 분량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 주체적 인식과 한국적 리얼리즘의 형성 과정 등을 문학사적 연속성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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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순수문학의 한계와 참여
전통의 퇴화와 계승의 방향
민요와 현대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한국문학과 동아시아문학
<아리랑>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세계에 공헌하는 한류 학문

해설
조동일은
해설자 하상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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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세계문학사는 인류가 하나임을 입증하는 의의를 가진다. 세계문학사라는 개념을 설정하고, 세계 도처의 문학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고, 세계문학사를 실제로 쓰는 작업을 유럽에서 한 세기 반도 더 되는 기간 동안에 열심히 해 온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일이다. 그 결과 이루어진 수많은 저술은 근대 학문의 빛나는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른 문명권에서는 그럴 수 없었던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전례를 뒤따르는 것을 능사로 삼지 말고,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기존의 세계문학사는 유럽 밖의 많은 민족을 침략하고 지배해 온 제국주의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 그 이유가 자료가 부족하고 사실 인식이 미흡한 데 있지 않다. 유럽 문명권이 우월하다고 강변하려는 의도에서 유럽 문명권 중심주의 사고방식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자기네 문학이 가장 우월하다고 강대국끼리 다투는 장소로 세계문학사를 이용해 왔다. 그런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한 여러 가지 시도와 노력이 있었으나 만족스러운 결과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개인적으로 사심 없는 순수한 영혼의 소유자로서의 인간성 때문에, 공적으로는 ≪삼천리≫라는 막강한 잡지사 여기자로서, 그리고 파인 김동환의 총애를 받는 여인이라는 여러 요인을 두루 갖췄기 때문에 당대의 거의 모든 문인들과 스스럼없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당연히 그녀는 당대 문인들의 소식과 동정의 정보통이었고, 전화가 드물었던 터라(최정희가 첫 출근 했을 땐 삼천리사에도 전화가 없었다) 편지는 원고 청탁이나 만나기 위한 약속의 선결 요건이었다.
최정희에게 편지를 보낸 문인들은 그 숫자에 못지않게 문학적 유파를 초월한 점으로 미뤄 볼 때 실로 놀라운 일이다. 우선 함경·평안 등 파인이나 최정희의 고향인 북쪽 지역 문사들이 삼천리사를 사교장처럼 드나들었던 사실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은 상경하면 일차적으로 이 사무실엘 들락거리며 다른 동향 문우들을 찾곤 했음이 드러난다. 그다음으로 편지들은 각종 업무가 반드시 편지나 직접 만나서 이뤄졌던 시대였음을 보여 준다. 편지들은 우편에 못지않게 직접 전달하는 형식의 서간이 많았던 점도 특이하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조동일 (지은이) 

서울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해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계명대학교, 영남대학교, 한국학대학원, 서울대학교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이다. 『한국문학통사』 『하나이면서 여럿인 동아시아 문학』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 『탈춤의 원리 신명풀이』 『의식 각성의 현장』 『동아시아문명론』 『한국학의 진로』 『해외여행 비교문화』 『서정시 동서고금 모두 하나』 『시조의 넓이와 깊이』를 비롯해 다방면의 저서가 있다.
최근작 : <충남문화 찾아가기>,<대등한 화합>,<국문학의 역사 (워크북 포함)> … 총 98종 (모두보기)

하상일 (해설)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오늘의 문예비평>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평론집으로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2002), <주변인의 삶과 시>(2005), <전망과 성찰>(2005),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2008), <생산과 소통의 시대를 위하여>(2009), <리얼리즘‘들’의 혼란을 넘어서>(2011)가 있고, 연구서로 <19... 더보기
최근작 : <신채호 수필선집>,<한국 근대문학과 동아시아적 시각>,<문학비평의 이론과 실제> … 총 2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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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조동일은 ≪청맥≫을 중심으로 활동한 가장 대표적인 평론가였다. 그의 비평은 ≪청맥≫에 발표된 문학비평 가운데 가장 많은 지면과 분량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전통의 주체적 인식과 한국적 리얼리즘의 형성 과정 등을 문학사적 연속성의 관점에서 살펴보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국평론선집’은 지식을만드는지식과 한국문학평론가협회가 공동 기획했습니다. 한국문학평론가협회는 한국 근현대 평론을 대표하는 주요 평론가 50명을 엄선하고 권위를 인정받은 평론가를 엮은이와 해설자로 추천했습니다.
작고 작가의 선집은 초판본의 표기를 살렸습니다.

1960년대 조동일의 문학비평은 크게 세 가지 방향에서 논의할 수 있다. 

  1. 첫째는 주체적 전통론에 입각한 문학사의 연속성에 관한 인식이고, 
  2. 둘째는 민중 의식의 성장이라는 계급의식의 변화를 토대로 한국적 리얼리즘의 형성 과정을 살펴본 것이며, 
  3. 셋째는 1960년대 모더니즘 문학과 순수문학론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바탕으로 문학의 현실 참여를 강력하게 제기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비평 의식은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의 일반적인 문제 틀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무엇보다도 한국 근대문학의 흐름을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연속성 위에서 일관되게 분석했다는 점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그동안 고전문학 분야를 중심으로 문학사, 문학 사상 등의 연구에 탁월한 성과를 보여 주었다고 평가된 조동일이, 1960년대에는 당대의 역사와 현실에 직접 맞서는 비평적 실천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1960년대 한국 문학비평사의 외연을 확장하는 문제적 지점임이 틀림없다. 따라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 연구에서 조동일의 비평가적 위상과 의미를 발견하려는 시도는 한국 문학비평사의 재정립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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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한국문학이란 무엇인가, 한국문학을 하는 문학가는 어떤 생각과 자세를 지녀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었다. 

목차를 보면` 전통의 퇴화와 계승의 방향`, `민요와 현대시`, `한국문학과 세계문학`등인데 조동일 평론가의 `한국문학` 에 대한 애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panpolove 2015-07-27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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