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1

잘못 운영된 ‘인권’ 제도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송경진 교사 아내 강하정) : 네이버 블로그

잘못 운영된 ‘인권’ 제도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송경진 교사 아내 강하정) : 네이버 블로그





잘못 운영된 ‘인권’ 제도는 어떻게 ‘괴물’이 됐나 (송경진 교사 아내 강하정)


카렌자

2018. 8. 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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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 인터뷰] 故 송경진 교사 아내 강하정씨
박가분 -2018-08-01



우리는 관료제가 타성적인 조직논리와 결합할 때 어떻게 쉽게 부패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곤 한다. 실제로 국가와 기업의 잘못된 제도가 사람을 해치는 괴물로 돌변하는 비극을 우리는 여러 번 목격했다. 하지만 이러한 비극이 ‘인권’이라는 미명 아래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상상하지못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일이 지난해 전북의 한 중학교에서 일어났다.

당시 중학교에서 재직 중이던 고 송경진 교사는 학생을 성추행 했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지난 2017년 여름 자살로 세상을 떠났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증언마저 무시한 부실한 끼워 맞추기 조사, 전북 학생교육인권센터의 무리한 실적주의, ‘매뉴얼’을 핑계로 댄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 교육감의 조직보위 논리, 이 모든 것들이 ‘전라북도 학생인권조례’를 내세우며 악용한 ‘가해자’들이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거나, 권한을 가진 누군가 사태에 개입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아도 되었을 비극이다. 이 일이 일어난 원인을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송교사의 아내 강하정씨와의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건 후 1년이 지나며 한동안 떠들썩했던 언론의 관심이 시들해졌지만 강씨에게 사건은 여전히 생생하다. 그녀는 인터뷰 중간중간 매일 지난해의 사건이 반복해서 떠오른다며 몸서리를 쳤다.

송 교사가 최초 무고를 당한 지 1주년 되는 지난 4월 19일, 강씨는 전북교육청에 손수 진정을 냈고 이후 5월 15일 스승의 날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도 여러 단체와 함께 집회를 벌이며 진정서를 접수했다.

송경진 교사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단체들이 5월 15일 서울시 중구 국가위원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 촉구와 국가위원회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다 © 김승한 기자


지난 1년간 멀리서 들려오는 소식만 봐도 강씨의 절박함이 느껴진다. 그녀는 사건 이후 아고라, 국민신문고, 청와대청원, 기자회견 등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언로를 동원해 남편의 사건을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 정세균 (전)국회의장 앞으로 사건에 대한 편지를 손수 보냈지만, 의장실에서는 경찰수사를 예의주시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고,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는 최근 사건 관련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전주지검으로 돌려보내졌다. 현재까지 고인의 억울함을 풀어줄 만한 가시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사건의 상처를 다시 후벼 파는 것은 아닌가, 걱정스러웠지만 사건 이후 1년간 어떤 심경인지 물어보았다.

사건 후 1년, “고립된 섬과 같았다”
인터뷰는 강씨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전북의 한 마을에 도착한 후 강씨의 안내를 받고 들어간 후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각종 의료기기와 책상 위에 즐비한 약통이었다. 작은 체구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강씨에게 그동안 많이 편찮으셨냐고 조심스럽게 묻자 “그동안 약을 달고 다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평소 지병을 앓고 있던 강씨는 사건 이후 병세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특히 지난달 초 ‘매뉴얼대로 사건을 처리했다’는 명목으로 남편의 죽음에 책임 있는 자들이 줄줄이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고 사법정의가 구현될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지면서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고 한다. 그녀는 근황을 말하는 중에 남편에 대해서도 운을 띄웠다.

"사건 전에는 남편이 계속 보살펴왔어요. 집에 있는 환자용 침대도 의료기기도 손수 다 샀고, 청소, 빨래, 취사, 심지어 목욕도 도맡아 했습니다. 지극정성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동안 자신을 헌신적으로 돌본 남편이 자신의 삶에 유일한 버팀목이었다고 말했다. 책장에 놓인 남편과의 다정한 사진으로 강씨와의 살아생전 각별한 관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남편을 회상하는 그녀의 목소리에서 허탈함과 황망함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그렇다면 주변에서는 그녀에게 버팀목이 되어줄까. 그녀는 인터뷰 내내 자신의 처지를 “고립된 섬”에 비유했다.

"제 주위에는 돕는 사람이 없습니다. 고립된 섬 같아요. 마음으로는 돕고 싶다는 사람들은 많이 있는데 나서서 행동으로 옮길 수 없는 자신들을 이해해달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이제 그만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으라고 합니다. 저는 그들에게 도움을 강요할 수가 없습니다. 저도 비겁했으면 죽은 사람은 잊어버리고 남은 우리라도 잘 살자고 다른 생각을 했어야 했겠지요. 그러나 저는 비겁자가 아닙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부당함과 억울함은 계속 외치고 깩- 소리라도 하고 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강씨의 고립감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강씨는 ‘닫힌’ 지역사회 내에 만연한 유착관계를 지목했다. 그녀는 관련자들에 대한 전주지검의 무혐의 처분에 대해 허탈해하면서도 ‘내심 예상했던 바’였다고 토로했다.

<전북도민일보> 송경진 교사 사망 관련 피고소인 10명 무혐의

"(지금도 현직인) 김승환 교육감은 전북대학교 법대 교수였고, 남편의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남편을 가해자였다고 몰고 간 송기춘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 역시 전북대 법대 교수입니다. 또 최근 남편을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을 무혐의 처분한 지방검찰청 관계자 다수가 전북대 법대 출신이거나 교육감과 학연, 지연 등 인맥으로 연결된 사람들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어서 그녀는 처음부터 관련자들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내릴 작정으로 요식행위를 벌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미 1월에 자신을 부른 검사가 ‘고소를 취하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는 것이다. 송교사를 위해 탄원서를 쓴 학생들은 조사조차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는 납득할 수도 없고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고 했지요. 그러면 최종진술서를 쓰라고 용지 3장을 주면서 하고 싶은 말 다 써도 된다고 하더군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으니 집에 가서 작성해서 변호사 편에 제출한다고 했지요. 그 후 A4 용지 13장의 진술서를 작성하고 별첨파일을 라면 한 상자 분량으로 첨부하여 검찰에 제출했습니다. 그 피눈물 나는 자료를 전혀 반영하지 않더군요."

변호사 선임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남편의 지인을 형사소송 변호사를 선임하려 했지만, 오히려 그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압력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편 친구가 변호를 맡으려 했습니다. 그런데 이 지역이 좁은 바닥이다 보니 주변의 압력으로 난처해하더군요. 보다 못한 제가 먼저 관두라고 말을 꺼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도 사실은 처지가 너무 곤란하다고 속내를 털어놓더라고요."


언론의 성급한 기사가 화를 부르다
그녀는 인터뷰 중간중간 사건 이후 무관심으로 돌아선 언론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숨기지 않았다. 실은 인터뷰를 요청한 필자도 믿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사정을 들어보니 언론 불신의 근원은 보다 뿌리 깊은 곳에 있었다.

그녀는 이번 사건의 발단은 언론의 성급한 기사였다고 말했다. 송교사를 오해한 학부모 관계자의 한쪽 주장만 받아 적은 <뉴시스>의 기사가 사실상 송 교사를 징계하는 방침을 굳어지게 한 결정적인 계기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시점이 매우 놀라웠다.

"뉴시스의 기자가 기사를 내기 전에 교육청 인지 내용과 조사 여부 등을 취재했다고 합니다. 기사는 사건 당일인 4월 19일 2시 55분에 났습니다. 부안교육지원청에 서면으로 보고된 시각이 3시 24분인데 정식으로 서면보고도 하기 전에 기사가 먼저 난 거예요. 그것도 부안교육지원청이 아닌 전라북도교육청 발 기사로 말이죠. 기자는 부안교육지원청 교육과장과 두 차례 통화를 해서 성추행을 확인했다고 했고 학교에 가서 장학사 O모씨로부터 7명의 학생이 성추행을 당했거나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겁니다. 신고자인 학생부장 교사부터 시작해서 부안교육지원청의 장학사와 교육국장, 기자까지 모두 성추행 사건이라고 이미 결정을 내리고 시작된 일입니다."

사건 당일 난 기사를 통해 학교당국뿐만 아니라 부안교육지원청, 전북교육청 사이에서도 ‘교사에 의한 성폭력 사건’ 프레임이 굳어지고 만 것이다. 기사화된 사건은 성추행을 기정사실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정작 기자는 후일 ‘자신은 증언을 들은 대로 기사화했을 뿐’이라고 발뺌했다.

그렇다면 나중에라도 송경진 교사 사건을 제대로 알린 기사는 없었을까. 관련 기사들을 찾아보았지만 ‘인권조례’나 ‘진보교육감’에 대한 정치적 공격을 의도로 한 기사 외에는 대부분 사건에 대한 단발성 기사로 그쳤을 뿐 사건의 내막과 귀추를 보다 자세히 파헤치는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 강씨는 이와 관련한 속사정을 털어놓았다. 강씨는 자조적인 어조로 “언론에 의해 죽다 살아난다”고 덧붙였다.

"저를 취재했던 오마이뉴스 모 기자가 한번은 저에게 너무 죄송하다는 연락을 해왔습니다. 기사를 어떻게든 내려고 했는데, 데스크와의 상의 끝에 짤막한 두 개의 기사로 분리해서 겨우 냈다고 합니다. 보다 완곡한 논조로 말입니다. 전북교육청 상주기자들의 기사도 상당수 데스크에서 잘렸다고 합니다. 제가 언론을 어떻게 보는지 아시겠습니까. 인터뷰하라고 해서 기다리는데 왜 안 오냐고 하면 캔슬됐다고 그제서야 말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최초의 거짓말과 동료 교사와의 악연
송 교사에게 성추행·성희롱이라는 누명이 씌워진 것은 사소한 계기였다. 야간자율학습에서 빠진 이유를 학부모에게 추궁당한 한 여학생은 순간적으로 치기 어린 거짓말을 했다. “담임선생(송교사)이 짝꿍의 허벅지를 만지고 나에게는 폭언을 해서 야간자율학습을 빠진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집에 돌아왔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의 동기마저도 1학년을 귀가조치한 다른 교사와 송교사를 착각한 데서 비롯된 오해였다. 사소한 해프닝으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이지만 학생의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치달았다.

평소 송 교사와 사이가 좋지 않던 인성인권부장(이하 학생부장) 교사가 학생들의 잡담을 듣고 학교전담경찰관, 부안교육지원청에 성추행 사건으로 신고한 것이다. 이어 전북교육청 그리고 학생인권교육센터에도 전달됐다. 한편 강씨는 학생부장 교사가 평소 송 교사를 미워하고 심지어 폭력성향을 보였다고 주장했다.

"그 교사는 고인과 사범대학교 동기였습니다. 남들 앞에서는 학교 동기라고 친한 척하고 둘만 있는 공간에서는 돌변하여 폭언을 하고, 멱살잡이를 하고, 심지어 2016년 여름방학 직전에는 남편의 뺨까지 때렸답니다. 그 날 그 사람에게 뺨을 맞고 왼쪽 뺨이 벌개진 채 돌아와 남편이 서럽게 울었습니다. 아무도 없을 때 갑작스럽게 폭력과 폭언을 행사하니 증거나 증인이 없어서 고발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난 지난해가 6년차였습니다. 문제의 중학교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해였지요. 1년만 참으면 다른 학교로 전근을 하니 버텨보겠다고 하다가 그런 황망한 일을 당하신 것입니다."


사건 직후 아이들과 격리된 송 교사
더 큰 문제는 성추행 신고와 동시에 송 교사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이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이미 언론에 기사가 난 상황에서 신고는 기정사실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이 모든 것이 오해에서 비롯된 거짓말이었다는 것을 학생이 실토하자 학부모의 탄원이 이어졌지만 교사에 붙은 낙인은 살아생전 떨어지지 않았다.

사건 직후 송 교사에게 내려진 처분은 학생들과 ‘격리’였다. 이는 이후 송교사의 반론권을 두고두고 제약하는 계기가 된다. 흡사 영화 <더 헌트>(미즈 미켈슨 주연)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영화에서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진다. 루카스라는 남자 보육교사를 잘 따르던 상상력이 풍부한 한 어린이집 원생 클라라는 어느 날 루카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꾸짖음을 듣는다. 속상해하던 클라라에게 보육원 원장이 무슨 일인지 묻자 문득 다른 짓궂은 동네 오빠들이 보여준 남성 성기 사진을 떠올리며 원장에게 루카스가 자신에게 성기를 노출했다는 거짓말을 꾸며낸다.

영화 <더 헌트> 포스터


이 일로 루카스는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가 오해를 풀고 해명할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그에게 닥친 첫 번째 조치는 원생뿐만 아니라 다른 보육교사들과의 격리조치였다. 이 일로 그는 지역사회에서도 완전히 고립된 처지가 된다. 이후 그는 살아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은 신세가 된다.

"맨 처음부터 학교에서 사건과 관련한 어떠한 발언도 못하게 했습니다. 4월 19일 사건이 일어난 당일, 남편과 교장 그리고 학생부장 교사와의 3자 대면을 했지만 학생에게 오해를 풀고 싶다는 송 교사의 말은 일언지하에 거부당했습니다."

아직 그 당시만 해도 송 교사는 학생들과 대화하면 오해가 풀릴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

"당황한 남편이 점심시간에 전후사정을 바른대로 말해달라고 학생한테 다가갔더니 아이들이 도망갔습니다. 사태가 돌아가는 걸 몰랐던 철부지 아이들은 처음에는 선생을 피해 술래잡기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합니다. 조금 있다가 학생부장 선생이 나타나서 ‘왜 애들한테 말을 시키냐’고 남편을 제재하고 아이들한테도 ‘수학선생님하고 말하지 말라’고 남편으로부터 격리시켰습니다. 그 이후부터 아이들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기 시작한 거죠."

학생부장 교사는 송 교사를 부안교육지원청 등에 신고한 이후에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고인에게 비아냥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는 왜 사실 확인도 없이 자신을 신고하느냐는 남편의 항의에 ‘검찰 가서 조사받고 죄가 없으면 풀려나면 될 것 아니냐’고 도리어 남편을 비웃었습니다."

첫날 내려진 격리조치는 이후 4개월가량 계속됐다. 아이들과의 격리는 곧 선생들과의 단절로도 이어졌다. 이러한 고립이 송 교사를 더욱 위축시켰음은 물론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학생인권교육센터와 교육청은 사건 첫날부터 남편을 고립시키는 데 개입했습니다. 학교담당 장학사한테 송 교사를 격리시키라고 한 후 곧바로 수업 중에 퇴출되었고, 3일간 출근정지 처분이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출근정지가 끝나자마자 직위해제 조치가 떨어졌습니다. 부안 교육지원청에서 전북교육청 인성건강과 학생인권교육센터가 격리시키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해가 안 되는 일 투성입니다."

송 교사에게 떨어진 직위해제 조치는 공식적으로는 7월 25일 화요일에 해제됐지만 송 교사는 여전히 교육현장으로 돌아올 수 없었다고 한다. 남편에게 비공식적인 제재와 낙인이 계속 이어졌다는 것이다.

"부안교육지원청은 남편으로 하여금 완전히 희망을 잃게 만들었고, 죽게 된 결정적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이미 사건이 경찰에 의해 (4월 21일: 인터뷰어 주) 일찌감치 내사종결이 되었음에도 ‘경찰이 (학생과의) 신체접촉이 있음을 확인했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를 대며 학교에 가지 말고 학생과 교사들과 학부모와 동네주민까지도 만나지 말고 집에 있다가 전보발령을 낸 학교에 가서 징계를 받으라는 어이없는 요구를 했습니다. 40일 휴가서를 강제로 작성하게 했고, 전보발령 동의서에도 역시 강제로 사인을 하게 했습니다."




묵살당한 학부모와 학생들의 탄원
성폭력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할 때 흔히 제기되는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이 있다. 이때에도 피해를 호소하는 당사자의 주장을 경청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원칙조차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인터뷰 상에서 드러났다.

학교장, 학생부장 교사, 부안교육지원청, 전북교육청 학생교육인권센터 모두 송 교사 사건에서 ‘학생’을 시종일관 교사와의 신체접촉(?)에 의한 피해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것은 실은 관료주의와 실적주의에 찌든 ‘어른’들 일방의 규정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실제로 처음에 송 교사를 오해해서 거짓말을 한 여학생은 사건 극초반부터 송 교사에 대한 진술을 철회하고 송 교사에게 카톡으로 정식으로 사과글을 보내왔다. 또한 그의 학부모는 교육감에 탄원서를 쓰는 데 직접 동참하기도 했다. 처음에 여학생의 말만 듣고 송 교사를 오해한 다른 학부모들까지 탄원에 나섰다. 송 교사의 사람됨됨이를 알고 있던 다른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도 구명에 나섰다.

최초 피해주장 학생 및 학부모의 사과글(강하정 제공)


학생들의 1·2차(2차 탄원서는 그나마 제출도 못했다) 탄원서 면면을 보면 “힘내라고 학생들의 어깨를 두드리고, 어깨를 두드리는 게 싫으면 싫다고 말하라고 했습니다” 등 학생교육인권센터 등이 문제시한 평소 학생과 이루어진 ‘신체접촉’에는 폭력이나 성적인 뉘앙스가 없었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가장 심각한 일이라 해봐야 다리는 떠는 학생의 무릎을 건드리거나, 수학문제를 못 푼 아이들에게 ‘마사지’라며 발바닥을 교편으로 툭툭 치는 것이 전부였다(이 부분은 이하에도 서술될 것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학생들이 폭력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호 약속에 의한 애정 어린 장난으로 인식했다는 진술이 나타난다.

이러한 탄원서는 실제로 반영되지 않았고, 그 중 2차로 모집한 탄원서는 (이후 보겠지만) 아예 접수하지도 못했다. 이 중 2차탄원서는 최초 피해를 주장했던 여학생의 학부모 주도로 모집된 것이었다.

5월 10일 전북교육청 학생교육인권센터에 제출된 탄원서

7월 22일 모집된 학생, 졸업생, 학부모 탄원서


송 교사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전북교육청과 학생교육인권센터는 사건 이후에도 끝까지 학생들을 자신들에 대한 비난의 ‘방패막이’로 삼았다. 송 교사의 사망 직후인 지난해 8월 18일 전북교육청과 학생인권교육센터가 자청한 기자회견 와중에 ‘학생들을 비난하는 여론 때문에 피해가 우려된다’며 자제를 당부하는 발언이 나왔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평소에 교육 수요자와 학생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러한 사태까지 이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끝까지 학생들과 학부모의 탄원을 묵살했던 것일까. 송 교사의 구제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강씨는 교육청 관계자와의 실랑이 끝에 황당한 말을 들었다고 한다.

"제가 탄원서를 들이밀면 교육청에서 뭐라고 하는지 압니까? 그런 탄원서는 ‘어른들에 의해서 오염되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남편을 성추행 교사로 몰고 간 학생부장 선생도 남편에게 전화통화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탄원서를 강요했냐고 비난했습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본다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판단할 근거가 없는데도 그러는 것입니다. 사고방식이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성추행이라고 처음부터 단정을 내려놓고 그렇게 몰고 간 것입니다. 그거야말로 오염된 사고방식 아닙니까?"

이러한 반응에 대해 분통이 터졌던 것은 정작 학생과 학부모 자신이었다.

"처음 송 교사에 대해 오해한 학생 아버지가 그 소리를 듣더니 ‘미친X들! 누가 자기 딸을 성추행한 나쁜 선생을 위해서 탄원서를 쓰고 애들더러 탄원서를 쓰라고 강요하냐’고 반문하더라고요. ‘우리를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성폭력 사건에서는 피해자에게 위력을 행사해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하지만 송 교사의 사건에서 그러한 정황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당사자뿐만 아니라 여러 학생과 학부모들이 동조해서 송 교사를 위해 탄원을 하게 된 경위를 깊이 들여다보았다면 판단을 달리할 계기는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故 송경진 교사의 사건 일지
-3월 22일 염규홍 인권옹호관 부임
-4월 19일 송 교사 최초 무고
-4월 20일 전북학생교육인권센터, 현지 기초 조사(강씨 주장: 학생조사는 하지 않음)
-4월 21일 전북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과 현지조사. 내사종결. 부안교육지원청에 유선통보
-4월 24일 부안교육지원청에서 송 교사 직위해제 결정. 통보
-5월 2일 학생교육인권센터에서 송 교사 1차 조사(주무관, 구제팀장 동석). 이날 경찰(여성청소년과)로부터 내사종결 공문 통보 받음
-5월 10일 전북교육감에 학생들 및 학부모 등의 1차 탄원서 제출. 전북학생교육인권센터 수령
-5월 12일 학생교육인권센터에서 송 교사 2차 조사
-5월 11일 송 교사,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직위해제 처분 취소’ 청구
-7월 3일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회 개최
-7월 18일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회 결정문 수령(부적절 신체접촉으로 인한 인권침해로 판단)
-7월 21일 강씨 주도로 졸업생 탄원서 모집
-7월 22일 최초 피해주장 학생 학부모 주도로 2차 탄원서(학부모, 재학생, 관련 학생) 모집
-7월 25일 송 교사 직위해제 종료(강씨 주장: 40일 휴가, 타교전보조치동의서 강제작성)
-8월 4일 전북교육청 감사담당관 8월 10일로 감사 날짜 통보
-8월 5일 송 교사 사망
출처 : 8월 18일 전라북도교육청 보도자료와 강하정 증언 재구성



비공식적 사법기구로 군림한 이들
강씨의 이야기를 들으면 송 교사를 살릴 수 있는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도가 제대로 작동했더라면, 누군가 한 명이라도 사태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다면, 특히 학부모와 학생들의 발언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사건의 성격과 결론은 인권센터장을 위시한 교육공무원들의 ‘머릿속’에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지역 교육공무원 사회의 독단적이고 편의주의적 행정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는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인권센터와 연계된 ‘전라북도학생인권심의위원회(이하 심의위원회)’에서 사건을 심의한 방식이었다. 이들 심의위원회는 지난해 7월 3일자로 송 교사의 사건을 심의했고 결국 곧바로 송 교사와 학생 그리고 학부모들의 의견을 묵살한 채 일방적으로 사건에 대해 ‘부적절한 신체접촉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라는 규정을 내리고 말았다. 심의위원회의 결정은 이후 고인에게 예정되어 있던 교육청 감사에도 불리한 영향을 미치는 등 송 교사의 낙심과 죽음에 상당한 계기를 제공했다. 강하정씨의 증언이다.

"남편에 대한 전북 교육청 감사 날짜가 8월 10일로 정해졌다는 연락을 8월 4일 날 받았는데 심의결정을 한 이때 교육감이 이 심의위원회 결정문을 보고 사실상 징계를 하라는 방침을 굳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때 심의위원들이 이 사안을 심의할 자격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이들은 송 교사와 학생 간의 관계를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한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송 교사를 죄인으로 취급하는 등 사실상의 사법적인 판단을 제공했다. 그런데 심의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전북 학생인권조례에 의해 “전라북도교육청의 정책 수립과 평가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즉 정책을 심의하는 기구이지 개인에 대한 상벌이나 평가를 논하는 것이 주된 목적은 아닌 것이다. 조례에 따르면 구체적인 심의사항에 대해서는 아래와 같이 규정되어 있다.



⑤ 심의위원회는 다음 각 호의 사항에 관하여 심의한다.
1. 학생인권실천계획의 수립
2. 학생의 인권에 관한 제도개선
3. 인권옹호관의 직무와 관련하여 제도 개선 권고 등 중요한 사항
4. 기타 학생의 인권 신장을 위하여 교육감 또는 인권옹호관이 제안한 사항
⑥ 심의위원회의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소위원회를 둘 수 있으며, 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제5항 각 호의 기능 중 일부를 소위원회에 위임할 수 있다.



비록 ‘기타 인권옹호관이 제안한 사항’과 같은 어느 정도 재량을 허용하고 있으나 학생인권을 보장하는 ‘제도에 대한 개선’이 주된 심의대상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심의위원회는 공식적인 사법기구인 경찰의 내사종결 처분은 물론이고 당사자의 탄원마저 무시한 채 교사의 머리 위에서 사법기관처럼 군림했던 것이다.

실제로 경찰이 지난해 4월 21일 학생들을 조사한 끝에 ‘송 교사와 학생 간 가벼운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성추행과 폭력행위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며 내사종결 처분을 내렸지만 일선 교육기관에서 이러한 사정은 전혀 참작되지 않았다.

나아가 강씨는 이때의 결정 또한 인권옹호관의 독단적 의중으로 결정되고 심의위원은 이에 대한 사실상의 거수기 역할에 지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애초에 사건을 처리할 의지와 식견이 의심되는 인적구성이었다는 것이다.

"심의위원이라 해봐야 평소 농사짓는 사람, 학생, 주민, 도의원, 법대 교수, 교사 등이었는데 정작 송 교사 사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권옹호관의 일방적인 보고만 보고 사실상의 거수기 역할만 했던 것입니다."

정작 제대로 된 사법기구라면 이들처럼 사건을 부실하게 파악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육청은 기자회견 보도자료를 통해 사건 초기인 지난해 4월 20일 전북교육청과 학생교육인권센터 등에서 나름대로 “현지 기초조사”를 했다고 발표했지만 강씨는 당시 실제로는 학생 대상의 조사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소리를 높였다.

"처음에는 교육장이 직접 학교에 나가 조사를 하였다고 해명했으나 장례식장에 조문을 온 부안교육지원청 교육장과 교육지원과장 및 장학사들에게 남편의 형님이 직접 학교에 나가 조사했냐고 추궁하자 교육장이 학교에 가보지 않고 서류에 전결만 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심지어 학생인권센터에서 사건 초기부터 학부모를 회유하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한 학부모 어머니가 학생교육인권센터의 인권옹호관과 주무관 둘이서 학부모들을 찾아와 송 교사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하라고 종용을 했다고 저에게 전해왔습니다. ‘학부모들에게 학생이 인권침해를 당했는데 그냥 넘어가겠느냐, 송경진 교사를 벌해야 하지 않겠느냐, 애들이 불쌍하다’는 등의 소리를 했답니다. 학부모들은 오해해서 벌어진 사소한 일이고 벌써 오해가 다 풀리고 서로 사과하고 화해를 했는데 왜 일을 크게 만드냐면서 조사하지 말라고 항의했다고 하구요."

결국 문제의 본질은 학생교육인권센터가 ‘학생 인권의 파수꾼’ 역할을 넘어 아무도 요청하지도 맡기지도 않은 학생들의 ‘후견인 역할’은 물론이고 ‘판검사의 역할’까지 자임하려 했다는 데 있다.


고쳐지지 않은 제도의 허점과 반복된 비극
송 교사와 같은 억울한 케이스에 대한 선례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제도의 허점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없었던 것도 송 교사의 죽음에 일조했다. 당시 전북 교육청 학생교육인권센터장(이하 인권옹호관)인 염규홍은 잘 알려진 ‘서울시향 박현정 무고논란’에 연루된 당사자(서울시 인권보호관)였다.

당시 서울시 시민인권보호관들은 2014년 말 서울시향 대표였던 박현정이 직원에게 폭언과 성희롱을 일삼았다는 폭로가 터져 나오자, 이를 기정사실화하며 박 대표를 징계할 것을 서울시장에게 권고했다. 하지만 경찰조사 결과 이는 박 대표에 대한 직원들의 조직적인 음해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와 관련해 박 대표는 “아무도 내게 묻지 않고 내 얘기는 아무도 듣지 않았다”며 시민인권옹호관의 조사 과정이 편파적이었다는 문제를 제기했다. 당시 문제가 됐던 시민인권옹호관 중 한 명이었던 염규홍씨는 공교롭게도 송 교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사건의 장본인이 된 것이다.

새전북신문, “전북인권옹호관 알고보니 서울서 ‘가해자-피해자 뒤바꿔 조사’”

당시에도 시민인권옹호관과 관련해 가해지목인에 대한 부실한 조사, 방어권을 보장하지 않은 채 성급하게 내린 결론, 실적을 위한 희생양 만들기 등으로 비판에 직면해야 했다. 이와 관련해 강씨는 당시 전북 소재 학교에서 있었던 성폭력 폭로사건과 맞물려 남편 또한 인권센터의 무리한 실적 만들기의 희생양이 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부안여고 체육교사의 학생 성추행사건이 2017년 6월 즈음 터졌는데 경찰이 별 혐의가 없다고 하자 옹호관이 그 사건을 다루면서 성추행 등 죄명으로 형사고발을 해서 사건을 다루게 되었고 졸업생까지 성추행 폭로에 동참하며 큰 사건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인권옹호관은 여기저기 인터뷰를 하면서 의기양양했지요. 그러면서 5월에 이미 조사를 마치고 아무런 조치도 없이 방치했던 남편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이 지경을 만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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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화 성공에 고무된 인권옹호관이 부안여고 사건을 처리하면서 적용한 사건처리 도식을 그대로 송 교사에게 뒤집어 씌웠다는 것이다. 부안여고 성추행 사건은 당시 지방의 사립학교라는 ‘닫힌 사회’ 내에서 일어난 전형적인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건과 송 교사의 사건 사이에는 둘 다 같은 남성 교사라는 유사성 외에는 별 다른 접점이 없었다.

그럼에도 송 교사는 일종의 ‘끼워 팔기’ 마케팅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것이다. 학생인권과 관련한 정책 및 제도 개선에 관해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인권옹호관이 자신의 이슈 파이팅(사회운동) 수단으로 제도적 권한을 남용하며 특히 그 과정에서 송 교사를 희생양으로 삼지 않았는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

실제로 강씨는 지속적으로 학생교육인권센터의 권한남용 의혹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학생교육인권센터가 송 교사에 대한 직위해제에 압력을 넣는 등 일선 교육공무원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상당했다는 것이다. 송 교사의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후일담이다.

"장례식장에 왔던 부안교육지원청 교육장과 교육과장이 전북교육청 학생교육인권센터와 교육청에서 시킨대로 (직위해제 등의 조치를)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옹호관의 구제신청에 의한 조사와 구제는 교육청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학생인권조례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들(인권옹호관)은 조례를 무시하면서까지 사건 첫날부터 개입하여 학교와 교육지원청과 교육청 위에 군림하면서 남편을 죄인으로 만들려고 한 겁니다."

실제로 당시 이뤄진 여러 무리한 결정들에도 불구하고 동료 교사나 공무원 중에서 아무도 송 교사의 처우에 의문을 제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에 대한 인권센터의 조사과정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물론 인권센터장이자 인권옹호관이 교육청과 독립적으로 인권침해 의심사례에 대한 직권조사와 시정요구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조례에 명시되어 있긴 하다(전북 학생인권조례 제45조).

하지만 피해 주장 학생이 진술을 번복하고 당사자 학생의 학부모까지 구명에 나선 시점에서도 송 교사에 대한 제재를 추진한 것은 무리한 권한남용으로 보인다. 게다가 인권센터에서 송 교사를 조사한 시점은 지난해 5월 2일, 5월 12일인데 관련 공문을 보면 송 교사에 대한 직권조사 사건 접수일은 한참 후인 6월 12일로 나타난다. 조사의 절차적 정당성마저도 사후에 끼워 맞춘 것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송 교사에 대한 직권조사 공문 결재내역


애초 ‘무고’나 ‘억울함’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상정하지 않은 현장의 매뉴얼도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송 교사 사건의 가해자들은 시종일관 ‘매뉴얼’을 강조하며 책임을 면피했다. 이러한 일관된 발뺌 전략은 최근의 검찰의 무혐의 처분에 상당부분 유리하게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매뉴얼대로 했다’는 전형적인 관료주의적 책임 떠넘기기도 문제지만 매뉴얼의 현장적용 방식은 물론이고 매뉴얼 자체의 허점도 있었다. 강씨는 이번 사건에 대해 적용해야 할 매뉴얼에 대한 숙지가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건 초기 강씨에게 한 교육청 공무원이 건네준 건 완전히 엉뚱한 매뉴얼이었다.

"(사건 초기) 교육청 등에서 자꾸 ‘매뉴얼대로 했다’고 해서 매뉴얼이 뭐냐고 하니까 처음에 준 게 ‘학생 간 성폭력 발생 시 사안 처리 절차’였습니다···."

나중에 강씨가 실제로 적용되었다고 전해들은 것은 교육청의 이른바 ‘아동성폭력 대응절차(여기서의 아동은 19세 미만 미성년자까지 포괄하는 법률용어)’였다. 그런데 해당 매뉴얼은 ‘아동성폭력 의심 사례’와 ‘아동성폭력 피해 사건’ 이 두 가지 정황을 구분하도록 되어 있었다.

‘아동성폭력 의심 사례’의 경우에는 우선 문의·상담을 거친 다음에 피해사실이 확정되면 ‘아동성폭력 피해 사건’의 절차(신고·지도감독→대응창구 일원화→지역연대)를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강씨의 주장은 ‘의심 사례’에 불과한 송 교사에 대해서는 적절한 ‘문의·상담’ 절차를 따랐어야 했는데 이를 건너뛴 채 송 교사의 사건을 ‘아동성폭력 피해 사건’으로 성급하게 확정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매뉴얼을 들여다본 결과 애초에 무엇이 의심 사례이고 무엇이 피해 사례인지를 구분하는 기준 자체가 모호했다.

그리고 애초에 ‘의심 사례’에서 따라 해야 할 ‘문의·상담’ 절차가 무엇인지 모호한 것도 근본적인 문제였다. 당사자의 반론권이 일절 보장되지 않는 절차적 문제는 말할 것도 없다. 얼마든지 일선의 책임자가 누구냐에 따라 매뉴얼을 자의적으로 남용할 소지가 충분했다.

아동성폭력 대응절차(교육청)


처음부터 정해진 결론과 조사 도중의 괴롭힘
송 교사의 사망 이후 언론에서 고인의 죽음 이면에 강압조사가 있었는지가 쟁점이 됐다. 교육청과 인권센터는 이러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하지만 진짜 핵심은 과거처럼 물고문을 하거나 잠을 안 재우는 등의 강압수사 관행이 있었느냐 식의 여부가 아니다.

강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송 교사가 느낀 모멸감은 보다 심층적인 데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조사 과정 중에 고인을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강씨는 망설임 없이 ‘학생과의 모든 일상적인 관계를 성적인 것으로 몰고 가는 인권옹호관의 조사방식’이었다고 답했다.

강씨는 제자들과의 일상인 관계를 성적이거나 폭력적인 맥락으로 해석하며 집요하게 추궁하는 과정이 지속된 것이야말로 (송 교사에 대한 객관적 조사를 가장한) 개인에 대한 괴롭힘이자 압박수단이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사건 내내 가장 심하게 성적 모멸감을 느낀 것은 송 교사 자신이었다.

"학생의 신체를 닿기만 해도 성희롱이라는 것입니다. 학생이 손가락 반지사이즈 재어 달라고 해서 손을 잡은 것도 성적인 행동으로 해석이 됩니다. 학생이 무릎 떤다고 해서 무릎을 건드리는 것도 성희롱이고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했다는 것입니다. 조사할 때마다 성···성···성··· 학생과 일상 속의 모든 접촉이 성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실제로 당시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결정문을 보면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사소한 신체적 접촉마저 “교사의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여학생에게 성적인 수치심을 주는 육체적 성희롱”으로 둔갑해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 학생이 송 교사의 복직을 요구하며 탄원을 하는 마당에 일상의 관계를 그렇게 해석한 것은 정작 인권옹호관 자신뿐이었다. 송 교사를 향한 ‘불온한’ 시선은 그의 사후에도 이어졌다.

송기춘 학생인권심의위원은 지난해 8월 18일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조사과정에 문제가 없다고 강변했다. 그러나 도대체 ‘부적절한 신체접촉’이 무엇인지, 그것이 ‘60일 이내에 사건 처리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면서 한 교사를 3~4개월 간 제자들과 동료로부터 고립시킬만한 일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해명하지 않았다.

특히 지역사회에서 격리되다시피 한 처지 속에서 방어권 보장을 위한 모든 사소한 행동마저도 ‘2차 가해’라는 둥 ‘감옥에 갈 수 있다는 둥’ 등의 반협박을 끊임없이 들어야만 했던 것도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킨 요인이었다. 강씨는 유폐상태에서 오는 심리적 압박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직위해제기간 동안에는 특별연수 명목으로 독방에 책상 하나에 컴퓨터 하나 달랑 있는 방을 배정받고 출퇴근했습니다. 출근 후 남편은 그 방에 혼자 있는 것 외에는 할 게 없었습니다. 남편은 교도소 독방 체험이 따로 없다며 자조적으로 말하곤 했습니다. 그 때문인지 나중에 교육지원청 과장이라는 사람이 남편에게 ‘(2차가해를 해서) 감옥 가면 죽기 전에 나오면 다행이다’고 위협을 하자 남편은 식은땀을 흘리며 저에게 ‘감옥을 가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고 말했습니다. 7월 24일 이전까지 10kg, 8월 4일까지 3kg, 도합 13kg씩 체중이 줄 정도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습니다."

이처럼 ‘2차 피해’를 운운하며 송 교사의 발언권을 극도로 제약한 억압적 상황도 송 교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계기 중 하나였다. 강씨는 송 교사가 세상을 떠나기 전날을 회상했다. 지난해 8월 10일 전북교육청 감사를 앞두고 있던 송 교사는 비록 황망한 와중이긴 했지만 사망하기 전날까지만 해도 ‘교원소청’ 심의에 출석해 할 말을 연습하거나 감사 대비 자료를 준비하는 등 사건해결에 나름 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삶에 대한 의지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당시 걸려온 한 통의 전화 대화를 바로 옆에서 들은(상대의 육성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강씨는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전북 교육청 산하 부안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학생들 만났냐고 추궁하더군요. 그러면서 대뜸 ‘학생들의 탄원서를 받는 게 2차 피해다’, ‘누군가 고발하면 감옥에 갈 수 있다’고 위협하더군요. 남편은 황당해 하면서 ‘그것도 받으면 안 됩니까’고 되물으니까 ‘학생들 만나면 절대로 안 된다’고 하더군요. 놀란 남편이 교장한테 연락을 해봤지만 교장은 학생부장 선생한테 전화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더라고요. 결국 어렵게 전화를 건 남편이 ‘교장이 전화하라고 해서 전화했다’고 부장선생에게 사정을 설명하자, 선생은 ‘(전북 교육청) 감사과에서 월요일, 화요일에 학교로 감사를 나온대. 먼지까지 탈탈 털겠다는 거지. 그런데 학생들은 조사 안 한다네? 그렇게 알고 있어.’라며 학생의 탄원서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식으로 전달하더군요. 그 전화를 끊고 난 남편은 ‘나는 이제 끝났다’고 중얼거렸습니다. 폰을 툭 바닥에 떨어뜨리며 흡사 혼이 빠진 표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지난해 7월 22일경 모집한 최초 피해주장 여학생의 부모를 포함한 학부모와 학생 그리고 졸업생들의 탄원서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던 송 교사에게 있어서 마치 모든 것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강씨는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나중에 교육청 감사과는 ‘학생을 조사할 계획이 없다’는 학생 부장교사의 발언을 부인하더라고요. 결국 둘 중 하나가 거짓말을 한 셈이지요."


아이들을 폭행한 빗자루로 둔갑한 지휘봉, “남편은 먹잇감이었다”
강씨는 학생인권교육센터의 집요한 괴롭힘, 행정편의적인 사건처리, 관료주의적인 책임 떠넘기기, ‘2차 피해’ 운운하는 윽박지르기가 점철된 지옥과 같은 4개월을 다음과 같은 한 문장으로 요약했다.

"남편은 그냥 저들에게 먹잇감에 불과했던 거예요."

특히 그녀는 문제의 학생인권심의위원회에서 남편에 대한 아이들의 진술마저 완전히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학생인권교육센터에서 5월경에 남학생들을 찾아와 체벌 조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사건이 접수된 건 ‘성추행’ 건이었고 체벌은 해당사항이 없었는데 송 교사에 대한 사실상의 ‘먼지털이’ 조사를 한 거였어요. 남편이 체벌이나 가혹행위를 했는지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예’라는 질문이 나올 때까지 계속 캐물었다고 합니다. 그 와중에 학생들이 진술한 몇 가지 사건을 확대해석해서 징계의 근거로 삼으려 했고요···."

강씨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책장을 뒤적거리고 무언가를 꺼내왔다. 성인남성 팔뚝 길이보다 조금 긴 얇은 지휘봉이었다.

"이게 남편이 생전에 사용하던 교편입니다. 학생인권교육센터 측의 추궁 끝에 학생이 ‘숙제를 안 했을 때만 1년에 한두 번 정도 이 교편으로 발바닥을 툭툭 쳤다’고 말했습니다. 학생들은 심지어 하나도 아프지 않았고 간지러웠다고 저에게 전했습니다. 그 정황도 선생과 학생 간의 약속에 의한 짓궂은 장난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학생인권심의위원회 결정문을 보면 제 남편이 빗자루(대나무)로 남학생들의 발바닥을 때렸다고 나와 있었습니다."

실제로 당시 결정문을 보면 고인이 “학생들을 빗자루(대나무)로 발바닥을 때렸다”고 나와 있었으며, ‘2·3학년 남학생들의 주장’이라며 옹호관과 주무관이 질문하고 학생들이 단답을 한 내용을 자신들이 작성하여 이를 마치 체벌을 뒷받침하는 남학생들의 진술서인 것처럼 제시한 뒤 “학생들이 (송 교사를) 음해할 만한 사유가 없는 등”의 이유를 붙여 송 교사의 가해행위를 기정사실화했다.

하지만 강씨의 설명에 따르면 학생들의 진술은 전혀 달랐으며 오히려 학생들이 조사관들의 먼지털이식 유도질문에 당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불공정한 조사과정으로 인해 학생들의 진술을 완전히 왜곡했다는 것. 사전에 약속이 있었다는 진술도 고의로 누락했다고 한다.

이처럼 심의위원회 결정문상에서 고인의 ‘교편’은 어느새 아이들을 폭행한 ‘대나무 빗자루’로 둔갑해 있었고 이러한 결정은 후일 교육청의 징계절차에 불리한 영향을 미친 것은 물론, 송 교사의 사후에도 송기춘 전북학생인권심의위원이 드러낸 바 있는 ‘적반하장식’ 태도의 배경이 된다.

“아이들을 때린 빗자루”로 둔갑한 고 송경진 교사의 교편


그리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송 교사의 사망 이후 가해자들의 태도는 ‘뻔뻔함’ 그 자체였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당시 김승환 교육감이 보여준 ‘조직보위 논리’와 거기서 파생된 고인과 유족에 대한 ‘2차 가해’였다. 교육청의 최고 책임자가 그 동안의 잘못된 과정을 감싼 결과, 사람이 죽은 사건에 대해서 어떠한 책임을 지는 사람도, 누군가의 반성도, 제도적인 개선도 없었다. 한 추리소설 제목을 비틀자면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가 된 것이다.

실제로 그는 송 교사 사망사건이 쟁점화된 2017년 국회 교문위 국정감사자리에서도 당시 인권옹호관과 심의위원회의 책임을 부인하는 데만 급급했다. 그는 당시 경찰의 내사종결을 참작하지 않은 무리한 조사 과정을 질타하는 국감의원 앞에서 “책임이 있다면 져야죠. (하지만) 경찰이 내사종결 했다고 해서 그게 혐의 없다는 것은 아니다”고 대답했다가 구설수에 올랐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정면으로 무시한 발언일 뿐만 아니라 부실한 조사과정에 대한 반성 없이 고인이 살아생전 겪어야 했던 낙인을 지속한 셈이다.

또한 학생들의 탄원서를 왜 무시했느냐는 질의에 대해 “학생들 탄원서는 자발적으로 작성돼야 하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하며 아무런 근거나 조사 없이 ‘학생들의 탄원서는 오염되었다’는 말만 반복한 교육청 공무원과 동일한 대답을 내놓았다. 그 두목에 그 부하들인 셈이다. 학생들의 탄원서가 강요에 의해 작성되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다”는 유체이탈 화법을 구사했다.

김승환 교육감


김승환 교육감은 2018년 전북 교육감 선거에서 재선됐다. 송 교사를 죽음에 몰아넣은 학생부장 교사도 여전히 현직으로 일선 학교현장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교장으로 재직하던 자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갔고 그 당시 징계에 관여했던 공무원들도 당시 사건을 애써 머릿속에서 지우고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가해자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또 다른 기제는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자기최면’이었다. 송 교사의 죽음에 일조한 가해자들은 하나 같이 자신들은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다고 말한다.

2018년 교육감 선거 토론회 자리에서 한 참가자가 김승환 교육감에게 송 교사 사건에 대한 ‘도의적 사과’를 요구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양심의 자유’를 운운했다. “사과강제는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헌법재판소 판례라는 것을 말씀드리고요.” 자칭 양심은 있지만 고인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는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고인이 사망한지 1년 가까이 됐지만 고 송경진 교사 사건은 당사자들에게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강씨는 지금도 제도적으로 남편의 억울함을 풀어주길 원하고 있다. “최소한 남편을 순직처리를 해서 아이들을 누구보다 예뻐하고 아꼈던 남편의 명예를 회복시켰으면 좋겠어요.” 누군가 강씨의 호소에 응답을 할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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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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