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식민지 근대화론 허구 드러낸 램지어 파동
[중앙일보] 입력 2021.03.22
근본 전제부터 오류인 램지어 논문
그래픽=최종윤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 ‘태평양 전쟁 중 성 계약’을 둘러싼 국제적 논란과 파동이 일반적 학술 논쟁의 범위를 훨씬 넘어 전개되고 있다. 다양한 전공과 분야의 내외 전문가들의 비판과 검증을 통해 해당 글은 학술적 증거 자료 결여와 사실 왜곡, 적용 이론의 중대한 오류로 결론이 나고 있다. 따라서 그 논문을 둘러싼 학술 논쟁은 이미 판정이 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 식민지 근대화론, 일제 때 한국 근대성이 형성·발전됐다고 전제하나
- 일본식 근대성은 산업화·민주화 진전으로 거의 완전히 뿌리 뽑혀
- 한국 발전은 일제 유산이 아니라 그것을 극복·이탈했기 때문에 가능
- 군사주의·침략전쟁·천황체제의 연장인 수령체제 북한이 일제 지속
그의 핵심 주장은 위안부 여성들이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 선택과 동의에 근거한 계약을 통해 높은 임금을 받기 위해 매춘을 하였다는 것이다. 그의 논문은 일본 국가의 개입, 강제 동원, 인신매매, 성노예 규정에 대한 거부는 물론이고, 일본 제국주의 지배에서 위안부 여성들을 근대적인 자발적 경제 행위자이자 계약 주체로 상정하고 있다. 이는 글 전체의 가장 중요한 전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근본 전제를 유념할 때 우리는 내외에 확산된 그러한 역사 인식 자체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전반 일본의 한국(과 동아시아) 강제 점령에 대한 근본 시각을 말한다.
그것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 전제이기도 한, 일본 강점 시기의 근본 성격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다. 요컨대 일본과 한국, 서구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식민지 근대성’, 또는 ‘식민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일본의 한국 강점 시기를 한국의 근대 주체, 근대화, 근대성의 형성·발전·성취와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급속한 발전 이후 퍼지고 있는 이 사관은 객관적으로 허다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일제는 개인·자유 등 근대성 억압
무엇보다 일본 점령 하의 한국은 근대성의 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은 램지어 교수의 논문 전제이기도 한, 일본 강점 시기의 근본 성격에 대한 이해와 직결된다. 요컨대 일본과 한국, 서구의 적지 않은 학자들이 ‘식민지 근대성’, 또는 ‘식민지 근대화’라는 이름 아래 일본의 한국 강점 시기를 한국의 근대 주체, 근대화, 근대성의 형성·발전·성취와 연결해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의 급속한 발전 이후 퍼지고 있는 이 사관은 객관적으로 허다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일제는 개인·자유 등 근대성 억압
무엇보다 일본 점령 하의 한국은 근대성의 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크게 보아 근대성은 두 범주로 구성된다.
1] 하나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련된다. 여기서는 주체(성)·개인·자유·자율·시민·주권·독립·민주·평등(의 지향)이 핵심 요소를 이룬다. 일본 강점기 동안 이 요소들은 철저히 억압·후퇴·탄압·지연됐다.
오히려 일제 종식 이후 회복·발달하기 시작했다. 혹여 그 시기 동안 이 부분이 일부 진전했다면 그것은 일제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일제에 맞선 세계성, 세계 일반의 진보 때문이었다.
2] 근대성의 두 번째 범주는 경제·물질·시장·기술·의료·상업·공업·노동·기업과 관련된다. 식민지 근대성과 식민지 근대화 담론들은 이 차원에서 일부 양적 발전과 성장, 이후 한국 사회에의 기여를 말하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만약 이 부문에서 일부 성장을 인정한다고 해서 근대성·근대화의 진전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회를 물질 발달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3] 비록 법률·제도 정비와 기업 설립, 경제 발전이 일부 있었다고 해도, 그에 수반되는 학살·강제징집·성노예·인권유린을 포함한 가공할 인간적 희생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반인간적 근대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일제 강점 시기 종반 한국에는 세 가지 근대성이 쟁투하고 있었다.
2] 근대성의 두 번째 범주는 경제·물질·시장·기술·의료·상업·공업·노동·기업과 관련된다. 식민지 근대성과 식민지 근대화 담론들은 이 차원에서 일부 양적 발전과 성장, 이후 한국 사회에의 기여를 말하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만약 이 부문에서 일부 성장을 인정한다고 해서 근대성·근대화의 진전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회를 물질 발달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3] 비록 법률·제도 정비와 기업 설립, 경제 발전이 일부 있었다고 해도, 그에 수반되는 학살·강제징집·성노예·인권유린을 포함한 가공할 인간적 희생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반인간적 근대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일제 강점 시기 종반 한국에는 세 가지 근대성이 쟁투하고 있었다.
첫째가 일본의 전체주의 근대성이고,
둘째가 서구와 미국의 자유주의 근대성이며,
셋째가 소련의 사회주의 근대성이었다.
후자의 둘이 연합해 전자를 패퇴시켰을 때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근대성으로 쪼개졌다. 이때 한국에서 일본식 근대성은, 한국 고유의 근대성 요소들과 서구 자유주의 근대성이 융합된 특유의 복합적 근대성이 이끄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거의 완벽하게 뿌리가 뽑혔다.
이 ‘혼융적 근대성’이야말로 불꽃처럼 역동적으로 성취된 한국적 근대 실현의 모태였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개인성·주체성·시민성·국가조직·경제질서·사회문화·교육제도·헌정체제·국제관계 측면에서 일본적 속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실 한국은 건국 초기인 이승만 시기부터 일본 제국주의 유산 극복 노력에 관한 한, 일부 하급 친일파에 대한 처벌의 유예를 제외하고는 군국주의 철폐와 민주제도 도입, 토지 개혁과 시장경제 실시, 민족어(한글) 복원과 (임시) 민족정부의 헌법적 계승, 한·일 회담에서의 식민지 시혜론(식민지 근대화론)의 단호한 거부와 반박, 그리고 한·미 동맹을 통한 국제 관계 안정과 주변 국가의 침략 방지 장치 마련 등을 포함해, 매우 과감했고 적극적이었다. 인간은 용서하되 구조는 극복하는 경로였다. 문명을 이끌어온 인류사 보편의 발자취였다.
식민성은 근대성으로 연결될 수 없어
반면 북한(조선)은 반대로 일본 식민체제 지속에 가까웠다. 두 체제의 성격은 거의 동일했다. 전체주의, 군사주의, 침략 전쟁, 극단적 배외주의, 일인 숭배, 천황체제를 이어받은 수령체제…. 거의 모든 속성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일제 폭압 체제의 부활이었다. 강점과 함께 천황의 조칙(한국의 국호를 개정해 조선이라고 칭하는 건)으로 강요된 국명(대한)의 박탈과 치욕적 지방 명칭(조선) 부과를 국호(조선)로 사용하는 것처럼 둘의 상동성을 상징하는 것도 없다. 국명은 물론 당(조선노동당), 군대(조선인민군), 영토(조선반도), 민족(조선민족), 언어(조선어)에서도 모두 일제가 강요한 명명을 사용했다.
실제 역사와 문명에 비추어 식민지 근대화론의 부당함을 살펴보자.
사실 한국은 건국 초기인 이승만 시기부터 일본 제국주의 유산 극복 노력에 관한 한, 일부 하급 친일파에 대한 처벌의 유예를 제외하고는 군국주의 철폐와 민주제도 도입, 토지 개혁과 시장경제 실시, 민족어(한글) 복원과 (임시) 민족정부의 헌법적 계승, 한·일 회담에서의 식민지 시혜론(식민지 근대화론)의 단호한 거부와 반박, 그리고 한·미 동맹을 통한 국제 관계 안정과 주변 국가의 침략 방지 장치 마련 등을 포함해, 매우 과감했고 적극적이었다. 인간은 용서하되 구조는 극복하는 경로였다. 문명을 이끌어온 인류사 보편의 발자취였다.
식민성은 근대성으로 연결될 수 없어
반면 북한(조선)은 반대로 일본 식민체제 지속에 가까웠다. 두 체제의 성격은 거의 동일했다. 전체주의, 군사주의, 침략 전쟁, 극단적 배외주의, 일인 숭배, 천황체제를 이어받은 수령체제…. 거의 모든 속성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일제 폭압 체제의 부활이었다. 강점과 함께 천황의 조칙(한국의 국호를 개정해 조선이라고 칭하는 건)으로 강요된 국명(대한)의 박탈과 치욕적 지방 명칭(조선) 부과를 국호(조선)로 사용하는 것처럼 둘의 상동성을 상징하는 것도 없다. 국명은 물론 당(조선노동당), 군대(조선인민군), 영토(조선반도), 민족(조선민족), 언어(조선어)에서도 모두 일제가 강요한 명명을 사용했다.
실제 역사와 문명에 비추어 식민지 근대화론의 부당함을 살펴보자.
그것은 첫째, 이승만 시기의 빈곤과 저발전을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 일본의 점령 통치로 인해 한국 근대화의 제도적·물질적·법적 교육적 토대가 놓였고, 이후 빠른 근대화를 이룩했다면 한국은 일본 점령 종식 이후에 지속해서 발전해야 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 결과 1960년대 초까지 한국은 발전은커녕 혹독한 빈곤과 저발전에 시달렸다.
둘째,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반대로 한국은 오히려 토지 개혁을 포함해 일제 유산의 극복 이후 미국의 원조, 중심부 자본주의와의 긴밀한 연계, 그리고 수출 주도 산업화 정책의 채택 이후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발전은 일제의 유산 때문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의 이탈 정도에 비례했다.
셋째, 식민지 근대화론이 실제에 부합하려면 한국(남한)보다 조선(북한)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2차 대전 종전 이전 공업화 수준. 에너지 설비, 공장 시설, 자원 배분 면에서 한반도 북부는 남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식민지 근대화론 망령 떨쳐내야
넷째, 동남아·중동·아프리카·카리브해·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해 장기 식민지를 경험한 어떤 나라도 식민 통치의 결과로 인해 근대화와 발전을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긴 식민 통치를 받았던 그들은 왜 식민지 근대화론을 적용할 수 없는가? 한국만, 또는 일본에 의한 동아시아 일부 국가들만 예외인가? 아니다.
주목받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들이 밝혀냈듯 중심부의 근대성이 발전할수록 주변부의 식민성·노예성·종속성은 강화됐다. 근대와 식민, 근대성과 식민성은 시계열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대신 병행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침략과 함께 이식된 것은 근대성이 아니라 식민성이었다. 인륜성·인간성이 아니라 노예성·노예상태였다. 듯 주체성·인권·자유·평등의 폭력적 파괴였다. 인류사는 이를 확고히 증거한다.
둘째,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반대로 한국은 오히려 토지 개혁을 포함해 일제 유산의 극복 이후 미국의 원조, 중심부 자본주의와의 긴밀한 연계, 그리고 수출 주도 산업화 정책의 채택 이후 비로소 발전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발전은 일제의 유산 때문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의 이탈 정도에 비례했다.
셋째, 식민지 근대화론이 실제에 부합하려면 한국(남한)보다 조선(북한)이 더욱 발전해야 한다. 왜냐하면 2차 대전 종전 이전 공업화 수준. 에너지 설비, 공장 시설, 자원 배분 면에서 한반도 북부는 남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이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결과는 정반대였다.
식민지 근대화론 망령 떨쳐내야
넷째, 동남아·중동·아프리카·카리브해·라틴아메리카를 포함해 장기 식민지를 경험한 어떤 나라도 식민 통치의 결과로 인해 근대화와 발전을 이룬 사례는 거의 없다. 한국보다 비교할 수 없이 긴 식민 통치를 받았던 그들은 왜 식민지 근대화론을 적용할 수 없는가? 한국만, 또는 일본에 의한 동아시아 일부 국가들만 예외인가? 아니다.
주목받은 세계적 수준의 연구들이 밝혀냈듯 중심부의 근대성이 발전할수록 주변부의 식민성·노예성·종속성은 강화됐다. 근대와 식민, 근대성과 식민성은 시계열적으로 발전하지 않았다. 대신 병행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침략과 함께 이식된 것은 근대성이 아니라 식민성이었다. 인륜성·인간성이 아니라 노예성·노예상태였다. 듯 주체성·인권·자유·평등의 폭력적 파괴였다. 인류사는 이를 확고히 증거한다.
인류 보편사에 비춰 침략과 강점 상태에서 식민성과 근대성, 노예성과 주체성, 폭력성과 자율성은 함께 발전하지 않았다. 식민지 근대성과 식민지 근대화는 성립 불가능한 허구이다. 이번 램지어 교수의 논문 파동을 계기로 우리는 이 허구적 망령을 떨쳐내고, 인간의 자율과 주체성, 자유와 평등의 관점을 확고히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럴 때 과거는 미래의, 고난은 희망의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우린 끝내 인간의 편에 서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출처: 중앙일보]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식민지 근대화론 허구 드러낸 램지어 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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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1tShpoinsoredsg ·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박명림 교수님의 반대론을 저도 공유하지만, 밑의 가설에 대해서는 회의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조선)은 반대로 일본 식민체제 지속에 가까웠다. 두 체제의 성격은 거의 동일했다. 전체주의, 군사주의, 침략 전쟁, 극단적 배외주의, 일인 숭배, 천황체제를 이어받은 수령체제…. 거의 모든 속성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일제 폭압 체제의 부활이었다. 강점과 함께 천황의 조칙(한국의 국호를 개정해 조선이라고 칭하는 건)으로 강요된 국명(대한)의 박탈과 치욕적 지방 명칭(조선) 부과를 국호(조선)로 사용하는 것처럼 둘의 상동성을 상징하는 것도 없다. 국명은 물론 당(조선노동당), 군대(조선인민군), 영토(조선반도), 민족(조선민족), 언어(조선어)에서도 모두 일제가 강요한 명명을 사용했다."
북조선이 단순히 '식민지의 연속'인가요? 물론 일제의 제도적 유산을, 남북 지배자들이 공히 활용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징병제 군대는 대표적이죠. 이외에는 풀뿌리 규율화 차원에서 일제 시대의 애국반을 반상회 (남)나 인민반 (북)으로 개칭하여 계속 통제/동원 단위로 사용한다든가, 이런 제도적 지속을 다소 이야기할 수 있는데...과연 북한의 근대는 그것'뿐'인가요? 그러면 수많은 평민들이 당의 메커니즘을 통해 신분 상승을 이룬 거나, 제3세계 최초의 복지 국가 (무상 의료/교육/도심 주거)를 일찍 1950년대말에 이룬 것은 오로지 '일본식 전체주의'인가요? 아니면 월남 인민들의 항미 투쟁이나 쿠바 혁명, 짐바브웨 혁명까지 지원한 것은 '일제 침략주의'의 연속인가요?
저는 개인적으로 북조선 식 수령주의나 제3세계 혁명적 민족주의 일종인 '주체 사상'은 맑스주의와 무관할뿐만 아니라 맑스주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생각합니다. 맑시스트로서는 당연히 남이든 북이든 그 지배 구조에 대해 비판적일 의무가 있죠. 그런데 이처럼 북조선 역사를 가볍게 '전체주의'라고 다 부정해버리는 데에 대해 찬동하기가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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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k-Hyeon Kim
c23c tSMapfrarhcho ahtctmtnh ls1or0:edd2ia4gr ·
[아직도 일제 식민지 트로마를 극복을 못해서 결백증처럼 부인만 하려고 하는 식자가 있군요]
아래는 근대성의 변증법적 성격을 간과하고 있고 '근대성=좋은 것'이라는 그야말로 근대주의적 이데올로기가 강해요. 근대성은 산업혁명의 원조인 영국에서 노동착취도 원조였다는 점에서 약탈적인 면이 강해요. 토지 인클로저로 토지를 미소유한 농민들이 토지에서 축출되어 도시의 노동자가 되었을 때 그 삶의 조건은 일터나 집안에서나 가혹했구요. 햇빛을 못 쬐어서 병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 것도 역시 도시화의 산물이었어요. 한편으로는 산업발전으로 거대한 부가 만들어지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광범한 가난이 재생산되는 것이었고, 그래서 Marx는 그것을 자본주의적인 생산력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사회주의적인 생산력(생산수단의 사회화)을 대안으로 제시한 거에요. Marx의 대안이 맞는 것이었냐와 별개로 근대성의 변증법적 성격을 잘 간파한 사람은 Marx 였어요. 아래 인물이 "반인간적 근대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을 하는데 그야말로 선비스러운 도덕적 wish에 불과한 것이고 근대화에 반인간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게 오히려 Marx의 통찰이었던 것이죠.
식민주의적 착취는 민족적 대립구도가 있다보니 더 양상이 복잡하기는 하지만 식민주의가 근대화가 아니라고 하기도 힘들어요. 식민주의적 착취를 위해서라도 거대한 지배체제가 수립되어야 했고 그 지배체제는 식민모국에 친화적인 관료, 식민수탈산업에서 이익을 얻는 사업가, 식민수탈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교통 체제 등의 수립을 필요로 했거든요. 피식민지가 봉건적 체제였다면 그것은 파괴되어져야 마땅했구요. 그래서 Marx도 초기에는 자본주의화가 피식민지를 근대화시킨다고 여기기도 했고 그런 시각은 Marx의 '공산당선언'에 반영되어 있어요. 그런데 Marx는 이후에 식민통치의 무지막지함과 그에 대한 피식민지내 반식민 저항운동을 목도하면서 처음 가졌던 식민주의가 근대화를 가져온다는 사고를 수정했어요.
아래 인물이 근대화를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으로 분리해서 일제의 근대화는 혹시라도 후자쪽이었을지언정 전자는 아니라고 분리하는 것도 본인이 식민지근대화론을 부인하고싶은 wish에 따른 편의상 발상이에요. 식민지 지배를 위해서도 모국의 정치체제는 형식상으로라도 이식되게 되요. 그리고 그러한 정치체제는 근대정치이고 그 저변에는 근대성이 있죠. 피식민지가 전제주의 또는 봉건적 사회라고 할 경우 근대적 정치체제라는 것의 이식 자체도 근대성의 명분으로 이뤄지죠. 일본 역시 서구 정치체제를 받아들이면서 스스로 근대성을 이식하려고 애썼고 조선에 대해 식민지배를 하면서도 그러한 면이 있었거든요.
갑오개혁이 있었다고 해도 왕조 지배체제 내에서 이뤄진 것이고 일제가 허용가능한 범위에서 그 내용은 식민체제에서 보다 확실하게 적용되는 면이 당연히 있었죠. 1910년 경술국치 전까지 조선의 근대주의자들도 '입헌군주제' 정도를 근대 정치체제로 상정했지만 일제에 의해 조선왕조가 사실상 무너진 후에는 '민주공화국'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게 임시정보 헌법으로 나타나거든요. 일제의 식민주의의 파괴성이 조선의 전제군주와 계급사회를 일거에 무너뜨리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기도 하죠. 6.25 이후 한국이 민주공화국으로 자리잡아감에 있어서 조선의 양반들이 완전히 박살난 것은 도움이 되었고, 오히려 서구 국가들에서 귀족들의 잔영이 남아 있는 것은 지금도 문화적으로 방해가 되거든요.
아래 인물이 또 근대성을 일본식, 소련식, 서구식으로 구분하고 서구식이 좋은 것으로 보고 있는 것도 근대성에 대한 서구주의적 사고이자, 서구로부터 식민지를 안 당한 한국에서나 할 수 있는 소리에요. 서구자유주의가 그것을 이름으로 얼마나 무지막지만 '반인권' 적 행위들을 작렬시켰는데요. 서구의 자유주의가 무르익어가는 계몽주의 시대가 노예 무역이 꽃피웠던 시대이기도 한데, 노예들은 자유가 부여되는 인간이 아니라고 본 것이거든요. 서구의 중산층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하위 계층이나 먼 지역의 원주민들은 가혹한 착취와 노예로 팔려가도 당연시여겨진 게 서구 자유주의의 이면인 것이죠. 일본의 식민주의도 가혹했지만 역사가 훨씬 더 긴 서구는 그만큼이나 훨씬 더 가혹한 식민주의 역사를 노정한 것이구요.
아래 인물은 경로의존성이라는 것도 받아들이지 못해서 한국에 원래 내재된 좋은 것과 서구근대주의가 만나서 일본 근대주의를 완전히 박살내서 "일본적 속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뭐가 그래요. 한국 산업화의 모델은 일본을 모방한 것이었고 박정희는 본인이 친숙한 일본을 흉내낸 것인데요. 이미 수십년간 한국에 자리잡은 일본의 법제와 관료제라는 것도 익숙해지기도 했고 또 역시 가혹한 지배체제인 박정희 군사정권입장에서도 편리하기도 했는데요. 그리고 생활문화에서도 일본 것인지도 모른 채 남은 게 많아요. 예컨대, '선배'니 하면서 나이나 기수 한 끗 차이로 위 아래로 나누는 것도 일본의 문화이지 조선의 문화는 아니거든요. 효암학원 이사장 채현국이 그렇게 증언하고 있고 본인은 3-4살 차이랑은 다 야자 했다고 했고 그것을 싫어하는 '선배'랑은 굳이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잘 받아준 '선배'가 이순재라고 했어요.
아래 인물도 한국인들에게 강하게 남은 일제 식민지배 트로마에서 못 벗어나네요. 트로마를 야기한 사건을 외면한다고 해서 벗어나는 게 아니고 그것을 인정해야 해요. 그리고 그러려니 할 때 벗어나죠. 억지로 그것을 잊으려고 하고 부인하려고 하면 결백주의가 되는데 결백주의는 또다른 질환이지 해결은 아니거든요. 아래 인물도 "불꽃처럼 역동적으로 성취된 한국적 근대"에 자부심을 갖는데 그럼 그것으로 행복해하면 되요. 그 근대에는 싫든 좋든 많은 과거의 경험들이 어쩔 수 없이 녹아들어가 있어요.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니 받아들이되, 다만 앞으로 보다 좋은 게 무엇인가를 따져서 좋은 것은 더 발견하고 나쁜 것은 잘 통제하는 게 지혜이죠. 나이 한 끗 차이로 '선배' 하는 사회문화같은 것을 보존할 필요는 없으니 채현국처럼이라도 무시하는 노력을 하면 그게 발전적인 것이구요. 일제로부터 남은 부정적인 게 하나도 없다고 한다면, '선배'도 계속 유지해야 하쟎아요.
----인용
무엇보다 일본 점령 하의 한국은 근대성의 진전과는 거리가 멀었다. 크게 보아 근대성은 두 범주로 구성된다. 하나는 인간 존재의 본질과 관련된다. 여기서는 주체(성)·개인·자유·자율·시민·주권·독립·민주·평등(의 지향)이 핵심 요소를 이룬다. 일본 강점기 동안 이 요소들은 철저히 억압·후퇴·탄압·지연됐다. 오히려 일제 종식 이후 회복·발달하기 시작했다. 혹여 그 시기 동안 이 부분이 일부 진전했다면 그것은 일제 때문이 아니라, 반대로 일제에 맞선 세계성, 세계 일반의 진보 때문이었다.
근대성의 두 번째 범주는 경제·물질·시장·기술·의료·상업·공업·노동·기업과 관련된다. 식민지 근대성과 식민지 근대화 담론들은 이 차원에서 일부 양적 발전과 성장, 이후 한국 사회에의 기여를 말하고 싶었을 게다. 그러나 만약 이 부문에서 일부 성장을 인정한다고 해서 근대성·근대화의 진전으로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인간과 인간 사회를 물질 발달의 측면에서만 접근하는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비록 법률·제도 정비와 기업 설립, 경제 발전이 일부 있었다고 해도, 그에 수반되는 학살·강제징집·성노예·인권유린을 포함한 가공할 인간적 희생을 고려한다면, 그러한 반인간적 근대화는 정당화될 수 없다.
일제 강점 시기 종반 한국에는 세 가지 근대성이 쟁투하고 있었다. 첫째가 일본의 전체주의 근대성이고, 둘째가 서구와 미국의 자유주의 근대성이며, 셋째가 소련의 사회주의 근대성이었다. 후자의 둘이 연합해 전자를 패퇴시켰을 때 한반도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근대성으로 쪼개졌다. 이때 한국에서 일본식 근대성은, 한국 고유의 근대성 요소들과 서구 자유주의 근대성이 융합된 특유의 복합적 근대성이 이끄는 산업화와 민주화의 진전과 함께 거의 완벽하게 뿌리가 뽑혔다. 이 ‘혼융적 근대성’이야말로 불꽃처럼 역동적으로 성취된 한국적 근대 실현의 모태였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개인성·주체성·시민성·국가조직·경제질서·사회문화·교육제도·헌정체제·국제관계 측면에서 일본적 속성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출처: 중앙일보] [박명림의 퍼스펙티브] 식민지 근대화론 허구 드러낸 램지어 파동
https://news.joins.com/article/240168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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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jin Pak
근대화에 대한 "선비스러운 도덕적" 이해. 제국일본은 제국영국보다 자국착취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모르는 이해입니다. 제국일본의 농촌에 가난한 딸들이 팔려가 해외에서 매춘업에 종사하게 되는 것이 카라유키상이라는 것인데, 거기에 위안부들의 원형이 있었다고도 하지요. <산다칸 8호 사창가>의 이야기가 그 중에 하나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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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japanese.joins.com/JArticle/276793?fbclid=IwAR20cIodg66C-QPoGf3l35uE-4WyoT9GdZOXm-IwgMeohyosYd7bZnzclnk
【コラム】植民地近代化論の虚構が現れたラムザイヤー騒動(1)
総コメント数 45件記事本文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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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91397019**** 2021-03-22 15:05:34공감2
このコラムは不可思議で分裂主義的な自己満足である。
韓国は解放後に近代化が行われたと強弁し、産業の近代化論は偏重であり、人間の近代化だけが正当だと言っている。 また、北朝鮮を持ち出す時、解放後の韓国が日本の産業と密接だったことを完全に無視する。
このコラムは、見たいものだけを見て他を無視する、全く矛盾だらけの自己満足的近代化論である。
aHCm74o2Nau**** 2021-03-22 14:54:21공감6
反日朝鮮愚民の領域から脱して広義的に判断出来ない駄文。そんなに嫌いな日本国に何故に近付く。国交断絶を叫べば良いだろ。嘘、捏造が得意な朝鮮愚民。
10000247269**** 2021-03-22 14:49:56공감6
長々と駄文を書いているが、虚しくならないか?
駄文だという事は書いている本人が一番承知しているはずだ。
正直にならない限り、日本に追いつくことは不可能だ。
そんな国民性では、真理の究明に対する褒章であるノーベル賞は無理だ。
bumbleb9868**** 2021-03-22 14:45:25공감7
如何なる歴史の半島?
売春が白昼至る所で行われる 269頁
風紀の腐敗は想像を絶し「 人々の過半数は自分たちの真の両親を知らない」
と大胆に断言さえできるのである268頁
19C後半 フランス人宣教師 シャルル・ダレ著 「朝鮮事情」 抜粋
3eeHYylYhuY**** 2021-03-22 14:33:15공감9
学術発表や議論を許さない言論弾圧こそが、学問の自由を奪う全体主義だ。
bamboo**** 2021-03-22 14:32:10공감10
「日帝が個人・自由・自立・市民・主権・独立・民主・平等の要素を徹底的に弾圧した」? 冗談でしょう。日帝が併合する前、李氏朝鮮には両班、中人、常人、賤人という厳しい身分制度があり、中人以下の被支配階層は支配階級の両班によって搾取され、自由、自立、独立、民主、平等などなかったのです。その身分制度を廃止したのが日帝なのですよ。
38162952932**** 2021-03-22 14:23:52공감4
韓国は今でも植民地だろう。サムスン等の企業を見れば分かるだろう。稼いだ利益は外国人投資家が根こそぎ持って行くのだよ。韓国人労働者を雇用し利益は国外。まさしく植民地ではないのか。
quu**** 2021-03-22 14:12:01공감7
なんで、「近代化」のウソ説明が、ラムザイヤー論文の反論になるの?ずれとるで!
quu**** 2021-03-22 14:09:29공감11
だから、「強制」の証拠を出してみな!
「おしん」だって、家族の為の丁稚奉公ですよ。親の合意の元です。
ラムザイヤー教授は、その研究の一環の研究発表をされたんです。
余計な事を言うと、韓国のウソで首が絞まりますよ。
quu**** 2021-03-22 13:54:37공감19
お気の毒なくらい間違ってます。
ラムザイヤー論文が、日本の併合期を「強占期」と呼んでる韓国のねつ造歴史まで揺るがしているのか?
もう、恐くて恐くて仕方がないという感じですね。
韓国人の契約書がない・・・ってあの時代、あんたら日本人ですから。
【コラム】植民地近代化論の虚構が現れたラムザイヤー騒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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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91397019**** 2021-03-22 15:05:34공감2
このコラムは不可思議で分裂主義的な自己満足である。
韓国は解放後に近代化が行われたと強弁し、産業の近代化論は偏重であり、人間の近代化だけが正当だと言っている。 また、北朝鮮を持ち出す時、解放後の韓国が日本の産業と密接だったことを完全に無視する。
このコラムは、見たいものだけを見て他を無視する、全く矛盾だらけの自己満足的近代化論である。
aHCm74o2Nau**** 2021-03-22 14:54:21공감6
反日朝鮮愚民の領域から脱して広義的に判断出来ない駄文。そんなに嫌いな日本国に何故に近付く。国交断絶を叫べば良いだろ。嘘、捏造が得意な朝鮮愚民。
10000247269**** 2021-03-22 14:49:56공감6
長々と駄文を書いているが、虚しくならないか?
駄文だという事は書いている本人が一番承知しているはずだ。
正直にならない限り、日本に追いつくことは不可能だ。
そんな国民性では、真理の究明に対する褒章であるノーベル賞は無理だ。
bumbleb9868**** 2021-03-22 14:45:25공감7
如何なる歴史の半島?
売春が白昼至る所で行われる 269頁
風紀の腐敗は想像を絶し「 人々の過半数は自分たちの真の両親を知らない」
と大胆に断言さえできるのである268頁
19C後半 フランス人宣教師 シャルル・ダレ著 「朝鮮事情」 抜粋
3eeHYylYhuY**** 2021-03-22 14:33:15공감9
学術発表や議論を許さない言論弾圧こそが、学問の自由を奪う全体主義だ。
bamboo**** 2021-03-22 14:32:10공감10
「日帝が個人・自由・自立・市民・主権・独立・民主・平等の要素を徹底的に弾圧した」? 冗談でしょう。日帝が併合する前、李氏朝鮮には両班、中人、常人、賤人という厳しい身分制度があり、中人以下の被支配階層は支配階級の両班によって搾取され、自由、自立、独立、民主、平等などなかったのです。その身分制度を廃止したのが日帝なのですよ。
38162952932**** 2021-03-22 14:23:52공감4
韓国は今でも植民地だろう。サムスン等の企業を見れば分かるだろう。稼いだ利益は外国人投資家が根こそぎ持って行くのだよ。韓国人労働者を雇用し利益は国外。まさしく植民地ではないのか。
quu**** 2021-03-22 14:12:01공감7
なんで、「近代化」のウソ説明が、ラムザイヤー論文の反論になるの?ずれとるで!
quu**** 2021-03-22 14:09:29공감11
だから、「強制」の証拠を出してみな!
「おしん」だって、家族の為の丁稚奉公ですよ。親の合意の元です。
ラムザイヤー教授は、その研究の一環の研究発表をされたんです。
余計な事を言うと、韓国のウソで首が絞まりますよ。
quu**** 2021-03-22 13:54:37공감19
お気の毒なくらい間違ってます。
ラムザイヤー論文が、日本の併合期を「強占期」と呼んでる韓国のねつ造歴史まで揺るがしているのか?
もう、恐くて恐くて仕方がないという感じですね。
韓国人の契約書がない・・・ってあの時代、あんたら日本人ですから。
quu**** 2021-03-22 14:09:29공감17
だから、「強制」の証拠を出してみな!
「おしん」だって、家族の為の丁稚奉公ですよ。親の合意の元です。
ラムザイヤー教授は、その研究の一環の研究発表をされたんです。
余計な事を言うと、韓国のウソで首が絞まりますよ。
quu**** 2021-03-22 13:54:37공감26
お気の毒なくらい間違ってます。
ラムザイヤー論文が、日本の併合期を「強占期」と呼んでる韓国のねつ造歴史まで揺るがしているのか?
もう、恐くて恐くて仕方がないという感じですね。
韓国人の契約書がない・・・ってあの時代、あんたら日本人ですから。
fabyon**** 2021-03-22 13:49:47공감25
のっけから、ラ論文は学界から否定された如き口ぶりだが、何処の誰がどんな論文で反証したのか?この新聞の報道の限りでは、政治的偏見に基づくラ教授への人格攻撃か、論文への的外れ・些細な指摘があったに過ぎないはず。彼の論文を反証する証拠、韓国側主張を裏付ける新たな証拠が示された訳でもない。ったく、韓国の学者なんてかくの如く悉くエセだ。
help**** 2021-03-22 13:34:44공감22
「むしろ日帝終息以後、回復・発達し始めた。あるいはその時期の間に、この部分が一部進展したとすれば、それは日帝のためではなく、反対に日帝に対抗した世界性、世界一般の進歩のためだった。」←これはさすがにナンセンス。「日本の統治で韓国は近代化した。しかし‥‥」という話ならわかるが。
Lionmaru**** 2021-03-22 13:17:52공감37
分断国家になって70年近くになります。その主役である中国に何の憎しみもないのですか。植民地になった国は、世界に多数ありますが、現在も分断されているのは朝鮮半島だけです。こちらの方が、韓国にとって重要な問題であることは、文の政策をみれば明らかです。中国の属国だから諦めですか。
418097279530**** 2021-03-22 12:49:32공감42
どうしても日本の遺産を否定したいんでしょうが、この教授の論旨で言うと、今の韓国人は日本人よりもアメリカ人に近い考え方で生きているということになります。全世界でこれを認める人は誰もいないでしょう。
fabyon**** 2021-03-22 12:47:58공감40
そんなにも「韓国の近代化は日本のお陰ではない!」と言うのなら、近代化されたらしい現在の韓国が、それがないと夜も日も明けない状態にまで、日本を意識するのは何故?納得いくように説明して欲しい。
IWnlYGxMR9f**** 2021-03-22 12:47:20공감52
ここで結論が出てしまいましたね。 そうなんです今反日とか騒いでいる因子は全て「日本に利権を奪われた勢力」という事。 李氏朝鮮時代に最後まで併合に反対していた勢力による思想教育の賜物なんです。
多くの民衆は日本の併合に肯定的、賛成だったんです。
jelly**** 2021-03-22 12:39:23공감48
まず「植民地近代化論は認められない」「慰安婦は性奴隷」という結論から出立してる時点で、もう読む価値ない。自分の名前すら書けなかった人たちに文字を教えたのは日本人だよ。算数を教えたのも「自由」という価値観を教えたのも。みんなみんな日本人。
t_no**** 2021-03-22 12:24:13공감55
アメリカに移住したって、現役で売春続けてる韓国人が何故日本の併合時代も同じことをしてないという仮説が出るのか誰か説明してくれ。そして、どんなビザで潜り込んでるんだよ。
BKK_S**** 2021-03-22 12:20:34공감53
韓国人は証言じゃなく証拠を出せ!
IWnlYGxMR9f**** 2021-03-22 12:17:27공감67
「契約書」について捕捉しますが、「日本人の物は有るが朝鮮入の物が無い出してみろ」という主張に対してラムザイヤ―教授は誰もそれを探す事は出来ない。なぜならば「当時は皆日本人だったから」という落ちです。 韓国人のいつもの論点外しに騙されてはいけません。
t_no**** 2021-03-22 12:15:34공감42
後、2015年の合意ひっくり返したんだから制裁対象です。
t_no**** 2021-03-22 12:14:32공감50
いえいえ、違いますよ。おまえ等はベトナムから訴えられた時に証言は証拠にならない。時効だって言ったからしっぺ返し食らったんですよ。
GgcMzG0ZTwd**** 2021-03-22 12:06:20공감45
ラムザイヤー論文を批判する側の論旨は「契約関係というなら契約書が残っているだろ、見せろ」という1点。 一般的には年季奉公が明けたときに雇用主が目の前で契約書を破いて契約の終了を宣言した。 破かないまでも、数十年も保管することは極稀だし、秘匿すべきプライバシーだろ。
8JwVKlVDf2B**** 2021-03-22 12:02:45공감70
口減らしや借金のために売られた慰安婦がいたのも事実。Koreanブローカーの存在も事実だろ。そういった事実を隠して全部日本のせいにしている韓国の考え方に疑問を投げかけただけだろ。必死に言論抹殺しようとする姿が笑える。文在寅と同じで中央日報も平等、公平、正当な考え方ができないメディアだな。
noricha**** 2021-03-22 11:55:34공감55
「植民地近代化論」を虚構と決めつけ何ら検証をしようとしない馬鹿?
329306732745**** 2021-03-22 11:53:11공감53
知らなければ、「世の中 そんなもの。」と思っていたのに、事もあろうか日帝は そんな民衆に自由民権を教え、自主独立を促したのです。
ところが派閥争いや部族争いに明け暮れる朝鮮では民族として纏まらず、日本に併合して近代文化を教えたのです。
知らなければ良かったのに、民衆に自由民権を教えた日本が悪いのです。
motoa**** 2021-03-22 11:51:01공감76
ラムザイヤ教授の学術論文は最早慰安婦の強制性の否定と職業としての正当性の主張に端を発した議論から韓国政府と韓国社会の政策矛盾と歴史の恥部を次々と曝け出す呼び水となっている。そしてこのようなコラムを連発する韓国メディアは自らの置かれた国際社会における存在矛盾を自覚していない。
IWnlYGxMR9f**** 2021-03-22 11:49:40공감63
結局は論文の非難であり、証拠がないというのは個人的な見解に過ぎないのだよね。 そして論文の価値が無いという個人的な推論を、韓国に与する誰もがしている状況。 いつもの論点のすり替え等の韓国が主張をするときの常套手段に過ぎない。 これを言ったからといってラムザイヤー教授の論文が覆ることは無い。 さもしい韓国人が誠に哀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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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732949037**** 2021-03-22 11:47:40공감101
>重大な誤りという結論が出ている
>学術論争は既に判決が出たも同然だ
誤りとの結論が出たという事実はないし、学術論争の結論も出たという事実はないよ。そういう願望が韓国または韓国系社会から出てはいるけど、わめいているだけ。
329306732745**** 2021-03-22 11:47:20공감69
日帝は、奴婢随母法を廃止して奴隷的搾取を受けていた両班支配から女性を解放し、自由民権を教え、経済の近代化を図るという大罪を侵したのです。
両班支配の復活を夢見た李承晩は、それ故 自由民権を知った500万人とも言われる文化人を虐殺しなければならなかった。
済州島だけでも約5000人が粛正されたのです。
democracydi**** 2021-03-22 11:46:42공감89
1.日本の朝鮮半島併合は米英が認めた合法。2.日本により、朝鮮半島にはインフラなるものが歴史上はじめて登場して経済、平均寿命が飛躍的に伸びた。3.1965年の日韓請求権条約で日本から受けた5億ドルによって経済が急発展したのは世界が知っている。ラムザイヤー教授の論文は、経済と法に基づく学術論文。反論できないので個人攻撃しかできない韓国。
motoa**** 2021-03-22 11:45:38공감77
補償問題についても65年当時日本が拠出した8億ドルにも及ぶ実質補償金が何故当時の被害者達に一切届かず、今なお個人補償問題などが存在しているのか、それが欧米メディアにより大きくフォーカスせれ、議論は当時の朴正煕政権の思惑に迄及んでいる。恐らく韓国が外国から一番覗かれたく無い恥部が海外メディアの手で白日の下に晒される日もそう遠くはない。
gtr_ta**** 2021-03-22 11:44:56공감71
この人は歴史書である「朝鮮紀行」を読んでいない。貧困と奴隷が渦巻く朝鮮の様子がしっかり書かれ、日本が改善していったのに中国やロシアと密約をしていく朝鮮王朝の様子が書かれている。いかにも日本のせいで貧困になったなどと息を吐くように嘘を言うものではない。
motoa**** 2021-03-22 11:40:21공감41
今慰安婦問題は人権問題からも補償問題からも見放される寸前、人権問題は韓国系団体が世界に設置した自称平和の像が日本糾弾のツールとして政治利用されてる事が英語報道に暴かれ、欧州では真に女性の人権向上を願う平和の像とするならよりメッセージの強い且つ祈りの込められた像に交換すべきと主張が相次ぎ現地団体は慰安婦像が平和に資するからと必死に説明。
329306732745**** 2021-03-22 11:39:45공감40
海の東の大和の地は神々しい 我らが祖先の古くからの夢の場所!
日本に対する願望は歌にも読まれているのです。
日東壮遊歌にも、日本を手に入れたいと書かれていたね。
10164609507**** 2021-03-22 11:36:45공감96
これ程ひどい論文を今まで見たことがない。朝鮮半島が日韓併合前は個人・自由・自立・市民・主権・・これらを日本が抑圧・弾圧・後退ってこのセンセイ本当に頭大丈夫ですか?これが韓国の学者の意見なら日本は韓国など永遠に無視しておけばよい。歴史と真摯に向きあえない民族は早晩滅びる。
torrance**** 2021-03-22 11:35:16공감61
韓国政府、団体、中央日報は、「『良心的日本人』と作った虚構が真実だからそれを否定するのは全て誤り」しか言っていない。それ以外の反論は一切ない。つまり折角捏造、歴史歪曲を世界に拡散し利益を得ていたのに、文政権があまりに貪欲で露骨だったので、その虚構が世界に知れ渡ってしまった。というのが現状認識でしょう。
xrm2aryg5Qk**** 2021-03-22 11:33:48공감105
ラムザイヤー教授の論文は査読が通った学術的な論文。反論があるなら反証の論文を出せばよい。いいかげん学問の弾圧をやめろ。そして、この記事は韓国人の劣等感を体現したような記事だな。こじつけて現実の歴史を見ずに、理由をつけて歴史を修正するっていう。
xrm2aryg5Qk**** 2021-03-22 11:33:48공감105
ラムザイヤー教授の論文は査読が通った学術的な論文。反論があるなら反証の論文を出せばよい。いいかげん学問の弾圧をやめろ。そして、この記事は韓国人の劣等感を体現したような記事だな。こじつけて現実の歴史を見ずに、理由をつけて歴史を修正するっていう。
130904581261**** 2021-03-22 11:22:49공감71
アタマ悪いな。コイツ。
147696590593**** 2021-03-22 11:22:44공감123
誰も反論のための論文を提出できてないのに、結論がでてる???きめつけで、日本人を悲しませたり失望させたりするのが目的の記事に騙される日本人はいないよ。論文一つだせない無能な人間が慰安婦の強制連行だのなんだの言ってるって、ばれてるよ?中央プロパガンダ日報
ahe2**** 2021-03-22 11:22:09공감25
ラムザイヤー教授の論文って併合前の朝鮮には「契約」という考えがなかったといっているのか。それが事実なら、慰安婦の契約書があれば日本人の行為と言うことが出来るかも知れないが、契約という考えがなく従事させられたのなら併合前の習いであるということか。何か見えるものがある。
Exxx**** 2021-03-22 11:21:12공감77
白丁がどういう生き方をしていたか調べてみるのが早い。韓国人は不勉強だな。
Zn2942**** 2021-03-22 11:10:37공감91
Publish, or perish. こんなコラムを書いている暇があったら,反論の論文でも書いて,査読に回したら?
kentousi**** 2021-03-22 11:10:07공감50
追加>植民地近代化論の対比よして「資本主義萌芽論」があるけどできたと思う?資本主義に必要なのはまずは資本。
で、当時の朝鮮は、鉱山の採掘権等々富を生み出す権利を他国に切り売りしていた。
この状態では、半島の人々は、労働者として働くしかない。もしかしたら、他国からもっと安い労総者の流入し、半島にお金が一無いかもしれなかった。
kentousi**** 2021-03-22 11:05:24공감105
朝鮮時代に有ったのか?>「主体(性)・個人・自由・自律・市民・主権・独立・民主・平等(の志向)が核心要素」だとな。
自由民主主義ではそうだが、李朝時代に有ったののか?ぜひ資料を記事にしてほし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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