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8-02

Namgok Lee | Facebook 검색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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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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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원동학혁명 아카데미에서 원광대 박맹수 총장의 “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위상”이라는 주제로 여는 강의를 들었다.
특히 두 가지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하나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하여 중의원과 참의원 국회의원 전원이 출석한 일본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아시아 3대 민주주의 사상으로 유교, 불교와 함께 동학(東學)을 당당히 들어올렸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선의 망국과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넘어설지에 대한 대단히 탁월한 제시라고 본다.
이런 위대한 사상을 현대에 어떻게 살려갈 것인지가 잠재 의식 속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비교열등감 같은 부정적 기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우리 공동체의 생명력을 최대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동학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지만, 내가 근래의 한일 갈등을 보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요시다 쇼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를 검색해서 페북에 올렸던 심정과 통하는 것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동학의 씨앗이 지금부터 앞으로 전개될 세계사 속에서 발화(發花)할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동학혁명의 위대성은 그 저항과 투쟁이 영성(靈性)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결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침략자와 억압자에 대한 투쟁과 저항의 바탕에 ‘생명사상’이 녹아 있다는 것이야말로 동학혁명을 위대한 혁명으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대에 학살된 수많은 혁명전사(戰士)들이 흘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을 귀한 역사의 동력으로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크게 와 닿았다.
즉 단순히 피아(彼我) 간의 쟁투를 넘어서는 것이다.
나와의 투쟁도 포함하는 것이다. 보국안민과 영성의 결합인 것이다.
이것을 놓치면 결국 진영 싸움으로 그치게 되고 만다는 것을 박 총장이 역설(力說)한 것이 인상에 남았다.
요즘 진영 싸움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동력을 동학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찾자는 호소로 다가왔다. 
가까운 곳에서 좋은 강좌를 만나서 기쁘다.
다음 강의(9.17)는 요즘 개벽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조성환 (Sunghwan Jo) 교수가 “동학 사상의 전개와 발전”이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기다려진다.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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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읍에 가서 동학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성했다는 황토현 전승기념탑에서 바라보이는 백산과 그 사이의 넓은 들에 126년 전 펼쳐졌을 광경을 그려보니 깊은 감회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몇 년전에 썼던 글을 발견하고 이 글로 그 감회를 기억하고 싶어졌다.
★저는 60세부터  스스로 ‘인문운동가’로 자기정체성을 세웠습니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간접적이거나 원론적인 인문운동가의 희망을 말하는 선 이상으로 직접적인 언급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미미하더라도 인문운동의 영역에서 인문적 토대를 건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삼고 살아왔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인문운동도 정치운동의 한 부분입니다.
특히 한국 정치가 국내외적인 여러 도전에 대응하고 그 간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방법, 전략이나 전술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 인문적 토대가 중요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 마침 페북에 우리 정치에 대해 글을 올리다보니, 이런 저런 상념들이 떠오릅니다.
지난 번 광주에서 ‘합작과 연정의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광주의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현실정치는 문외한이고 직접적인 관심도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래도 정치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인문운동가의 영역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나이도 이제 70대 중반입니다.
얼마나 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의 우리 정치의 미래에 대해서 인문운동가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좀 피곤한 일입니다.
그래도 다소라도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미래 정치를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오늘 페북에 올린 다소 방만한 글을 소개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참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만, 우리들 지리산 연찬회에 함께하는 분들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 진실한 정치를 하려는 결의나 태도가 확실한 사람이라면 정파에 관계없이 정치인을 초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도 이른바 현실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정치권에 신선한 영향을 다소라도 줄 수 있다면, 그 것이 우리 지리산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요.
오늘 쓴 글을 소개합니다.
<'극단(極端)'은 주변부로 가는 것이 맞다.그러려면 건강한 중심이 서야한다.
극단적 주장들과 세력이 정치의 중심 무대에서 거칠게 다투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그 거친 과정을 거쳐서라도 중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면 국운이 쇠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지 못할까봐 걱정이다.건강한 중심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이 극단에서 저 극단으로 이동하는 실태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도 이동하고, 정권도 이동한다.시간이 너무 늦기 전에 건강한 중심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사구시하는 실력과 증오나 분노에 휘둘리지 않는 덕성이 결합해야 한다.
원한을 덕으로 갚을 수는 없겠지만,  보복으로 보이는 것에서는 벗어나 이직보원(以直報怨)의 전통을 확립해야 한다.
극단적 세력들은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또 그런 주장이나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핵심은 중심에 건강하고 합리적인 정치세력이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반대하거나 배제를 주장하는 것이 주가 아니라, 새로운 철학ㆍ비전ㆍ정책을 제안하고 실천해가는 것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구슬은 점차 많아지고 있다.그런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그것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의 하나가 인문적 토대의 허약함이다. '아집'과 '독선'이 너무 강하다.
권력에 눈먼 부패한 정치세력은 새로운 정치에서는 별로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집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내가 정치운동을 비롯한 경제ㆍ사회운동과 인문운동의 결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그것이 안되면 중심부에 새로운 진정한 중심세력으로 자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정견이 달라서 싸우는 것이 필요할 때는 싸워야한다.비록 거칠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려면, 우선 증오와 분노를 넘어서서 싸울 줄 아는 것이 출발일 것 같다.그럴려면 먼저 변화된 환경에서 진보든 보수든 '정명'을 먼저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왜 싸우는지 우선 자기정합성을 갖춘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그 바탕에서서 대화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합작하면서  큰 정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더 나아간 꿈을 꾸어볼 수도 있다.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말이 있다.선거 때마다 급조되고 사라지는 정당이 아니라, 미래 백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정당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 당 안에서 여러 과제들의 변화된 연관성을 새롭게 정립하면 좋을 것이다.중심교역국가ㆍ협치국가ㆍ새로운 문명국가라는 세 방향(이것은 제 주장에 불과합니다만)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사람ㆍ철학ㆍ비전ㆍ정책을 연결하는 것이다.저는 분야별로 꽤 준비되고 있다고 본다. 최상의 인재들이 ‘아집’을 극복하고 지혜와 힘을 모으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그릇에 담아, 새로운 시대의 용광로로 만들 수 없는 것인가?
외세의 변화에 대응하는 분파적 노력은 결과가 좋지 않다. 결국 외세에 좌우되는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이제 우리 내부의 동력을 우선시하는 대전환을 해 볼 때다.
큰 그림을 그리면 구질구질한 싸움이 하찮게 된다.
크게 협력하고, 나라의 새로운 동력이 세계사의 피동적 존재로부터 능동적 존재로 바꿔가는 그 기풍이 나라를, 정치를, 경제를, 문화를 일변시킬 것이다.
우리의 한 많은 역사가, 피로서 나라를 지킨 선열들이 이것을 원하지 않을까?
간절한 심정으로 묻고 싶다.>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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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나들이.
주요섭 선생 안내로 동학 유적지를 다녀왔다.
1893년 동학 혁명전쟁 한 해 전, 첫 모의가 이루어진 곳에 가서 나도 사발통문에 서명하였다.
졸지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ㅎㅎ
전봉준 장군이 기거하던 집과 최초의 전승지 황토현에 올라 멀리 백산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당시 모여서 목숨을 걸고 결의하던 심정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장산 공원에 들러, 정자에 앉아 바둑을 두었다.
주 선생이 나보다 상수다.
힘을 겨뤄보고 바로 승복했다. ㅎㅎ
좋은 점심과 정읍 명물 쌍화차.
주 선생에게 감사.


Namgok Lee
  · 
오늘은 정읍의 논어 산책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이름난 작가이며 동학운동가인 최은희 선생의 해설을 들으면서 동학 농민혁명 기념공원에서 가을 소풍을 겸한다. 
그리고 안연 편 두어 문장을 함께 생각하면서 봄부터 시작한 논어 산책을 깊어가는 가을에 마무리 할 예정이다.
오늘 살펴보고 싶은 구절이 어쩌면 논어의 백미(白眉)에 해당할지 모른다.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 말하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곧 인(仁)이니, 하루    극기복례하면 온 천하가 다 인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인을 이룸이 자기로 말미암은 것    이니, 어찌 남에게 연유하는 것이겠는가.” 
顔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극기복례’를 내 식으로 간단히 말하면 ‘자기중심성을 넘어(克己) 모든 존재와 사이좋아지는 것(復禮)’이다. 
일일(一日)은 지금이고, 천하(天下)는 여기다. 영어로 말하면 ‘now and here’ 다.
신을 섬기기기에 앞서 먼저 인간을 섬기라는 말이나 죽음을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삶을 생각하라는 공자의 말이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인유기爲仁由己라는 말은 인간으로 태어나  ‘나’의 주체성을 가장 빛나게 실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함께 해준 정읍의 벗님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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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 
나는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통합과 전환’이라고 표현해 왔다.
통합은 ‘사회통합’과 ‘연합정치’를 의미하고, 전환은 ‘정치전환’과 ‘문명전환‘을 의미한다.
둘 다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용어나 태도를 넘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용어나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 그 동력(動力)을 강화하는 것으로 된다.
부정적인 태도는 상호 악순환에 빠져들기 쉽고, 확증편향의 퇴행적 편가름의 늪에서 인류적 위기와 나라의 위기를 헤쳐나갈 동력을 잃기 쉽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자기 주체성을 잃고 휩쓸려 망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가운데 안타까운 현실의 하나다.
내가 동학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감시와 비판’은 동학 정신을 현대에 살리는 ‘최저선(最低線)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인 ’집강소‘를 현대에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무엇 무엇에 반대한다’는 그 내용을 ‘이렇게 이렇게 하자’는 표현 속에 담아내는 운동이 진전해야 한다.
‘사회통합’은 실재하는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을 어물 어물 봉합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성공할 수도 없다.
그 대립과 갈등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인간의 보편적 선의지(善意志)를 바탕으로 해결하는 문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인문운동’과 ‘종교’가 이 역할의 큰 담당자다.
책을 왜 읽고, 종교를 왜 갖는가?
확증편향과 편가름, 증오와 분노를 확대하는 방향이라면 그것은 ‘이슬’을 ‘독(毒)’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연합정치’는 고질적인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지양(止揚)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 즉 계급(계층)문제, 경제문제, 민족문제, 국가 문제 등을 지금까지와 같은 정치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마련한 성과들을 살려 ‘전환’과 ‘도약’의 밑천으로 쓰지 못하고 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일대 분수령에 서 있다.
자체 정화력(淨化力)과 진화력(進化力)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기존의 양 대 정치세력은 남의 칼을 빌려 스스로의 환부를 도려내는 듯한 모습으로 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젠가 양대 정당이 진화해서 연합정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난망(難望)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근래 나는 지역정당과 같은 새로운 정치운동에 주목을 하게 된다.
자치나 분권운동을 적극적인 정치운동으로 하자는 것에 관심이 간다.
그 것은 풀뿌리정치운동의 진화를 통해 ‘저항으로부터 권력으로’라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지방정부(행정부와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권력은 ‘강제(국가 권력)’나 ‘매수(경제권력)’가 아닌‘설득과 공감’에 바탕한 시민(또는 사회)주체권력이다.
 현실과 먼 이상으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어디선가 이런 모델들이 나타나면 꽉 막힌 정치를 뚫어내는 거대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하는 다른 하나는 지금과 같은 기존 정당이나 정치문화로는 어려운 ‘연합정치’를 이런 정당 속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있다.
기존 정당 간의 연합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연합정치’를 강령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당연한 가치로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문명전환을 추구하는 녹색정치’ 삼자(三者)를 포용하고 융합하는 정강과 정책을 담을 수 있는 정당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을 갖춘 지역정당이 지방정부를 구성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우리공동체의  오랜 정치사에 큰 변혁의 물꼬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단히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지금의 꽉막힌 정치 현실과  절박한 시대적 요구는 어쩌면 현실로 성큼 다가오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과 확산력이 애매한 기존의 소수 정당들과 자체 정화력과 진화력이 허약한 양대 정치세력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사람들이 헤쳐 모일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지역정당운동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현실정치와는 무관한 인문운동가를 자처하는 노인이지만, 나는 인문운동을 통해서 ‘정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원화되고 일상적인 활동과 삶의 현장들이 ‘정치’로 되는 ‘새로운 질’의 정치와 정당을 그려보는 요즘의 심경을 적어본다.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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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  근대정신의 한 축인 '동학'을 현대에 어떻게 살릴 것인가?
21세기 수운과 해월을 찾아서
neo-cosmos.net
21세기 수운과 해월을 찾아서
21세기 수운과 해월을 찾아서 - 생명평화운동과 충북지역의 동학운동의 미래를 위한 담론     취재·글 / 신채원| 미디어세림 대표·본지 편집위원 사진 / 정찬웅   * 이 글은 개벽신문 5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따뜻한 인터뷰] 21세기 수운과 해월을 찾아서 - 예고편     김양식 (충북발전연구원 수석연구원)·김태종 (목사, 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정리 : 신채원(미디어세림 대표, 개벽신문 편집위원) /…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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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이다.
협소한 민족주의(民族主義)의 굴레를 벗고, 천하대세를 읽을 수 있다면, 객관적 조건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진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세계를 앞장서서 열어나가는 문명을 만들 수 있다.
<요시다 쇼인과 최제우>
같은 시대를 살다 간 두 인물을 검색해 보았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요시다 쇼인과  6년 먼저 태어나고 5년 늦게 사망한 최제우다. 둘 다 각각의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는 전혀 다른 길을 밟았고, 두 사람이 끼친 영향도 두 나라의 운명만큼이나 달랐다.
역사는 돌고 돈다.
미래를 열어갈 큰 설계는 오히려 실패한 것으로 보인 최제우에게서 그 씨앗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큰 설계가 이 땅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그 설계 속에는 한국, 북한, 일본, 중국, 타이완 등이 하나의 연방으로 되는 것이 포함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질서다.
 *요시다 쇼인
1830년 하급 무사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세 때 숙부 아래에서 독립해 군사학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850년  병법을 연구했고, 이듬해에는 서양 학문과 군사학을 배웠다.
 1854년 미군 함선에 승선하여 밀항을 시도했다. 이 시도가 실패하여  국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1858년 다시  체포되어 1859년 처형되었다. 29세의 젊은 나이였다. 
요시다 쇼인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이토 히로부미,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등 그의 문하에서 세 명의 총리와 여섯 명의 장관이 배출되는 등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들이 탄생하여 그의 사상을 실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정미7조약 을 체결한 후 쇼인의 무덤에 이를 고했으며, 2006년 아베 신조 총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쇼인을 꼽을 정도로 근대 이후 일본의 정치계에 그가 끼친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크다. 그의 위패는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신위 제1호로 모셔져 있다.
*최제우
1824년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게 살던 그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여덟 살에 서당에 들어가 한학을 공부했는데 열 살 무렵이 되어서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한탄할 정도로 어른스러웠다고 한다. 열일곱 살에 아버지까지 여의자 그는 3년상을 마친 뒤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활쏘기와 말타기 등을 익히고, 갖가지 장사와 의술(醫術), 복술(卜術) 등의 잡술(雜術)을 배우기도 했다. 비참하고 어려운 백성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많은 백성들이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1860년 4월 깨달음을 얻고,  1년 동안 깨달은 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했다. 
포교를 시작하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인간평등 사상을 내세운 동학은 신분 제도 속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이나 천대받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1864년 ‘사도난정(邪道亂正)’이라는 죄목으로 달성공원에서 효수형에 처해졌다. 40의 나이였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며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주창했다. 신분 계급제인 양반 사회를 부정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 속에 한울님을 모신 존귀한 인격이라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가지고 만민평등의 큰 뜻을 전파했다. 또한 평민들도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주체로 승격할 수 있다는 자주적 평등의 민족 사상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었다.
왕조 사회의 쇠망을 예언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 조선 후기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만민이 평등한 세상이 온다는 의미)의 새 시대가 도래한다는 이상향을 제시하였으며, 당시 서양과 일본의 침략에 대한 ‘척양왜(斥洋倭)’의 자주적 저항 의식을 서민들의 마음속에 불어 넣었다. 민족자주, 인간존중, 만민평등을 바탕으로 한 그의 민본주의 사상은 그가 순교한 후 갖은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나날이 번창해 동학농민혁명에서 3·1운동에 이르는 우리나라 근대 민족사의 정신적 주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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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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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체’ ‘사회교체’ ‘시대교체’를 위해 나는 르네상스 운동이 그 배경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이 21세기 한국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기를 염원한다.
우리는 새롭게 살릴 성인(聖人)들이나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위대한 건국 이념을 가지고 있다.
공자도 그 한 사람이다.
공자는 서(恕)와 충(忠)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사람이다.
서(恕)는 관용이다. 공호이단(攻乎異端) 사해야이(斯害也已)를 ‘이단을 행하면 해로울 뿐’이라는 주자(朱子) 류(流)의 왜곡으로부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라는 공자의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야(르네상스)한다. 과학이 뒷받침한다.
충(忠)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기쁘게 전념하는 상태’다. 신분제사회나 상하관념이나 국가주의나 집단주의에 의해 왜곡되온 상태로부터 21세기적 르네상스를 이루어야 한다.
경쟁과 각자도생의 차가운 사회는 자타(自他)의 생명력을 훼손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일 뿐이다.
석가, 예수, 동학 등이 과학과 손을 잡고 인간애(홍익인간)의 르네상스로 피어나기 바란다.
F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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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을 반 쯤 읽었다.
하룻 밤 새 읽은 페이지(근 200페이지)로는 요즘의 내 독서 속도로 볼 때 대단히 빠른 편이다.
중국에서 19년간 독립 운동 후 체포되어 3년 간 옥살이를 하고,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활동한 부분까지 읽었다.
형무소 시절 이야기다.
간수; 내가 7년 동안 간수로 많은 정치범을 보았는데 여 선생과 같은 이는 처음 보았다. 모두가 분노와 번뇌와 불평으로 지내는데 선생은 항상 명랑 화평한 기운으로 지내니 퍽 이상스럽게 생각된다.
여 운형; 나의 한 일이 양심적이며 자각적인 것이니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스스로 기쁠 뿐이니 불평이 있을 까닭이 없다.
1929년 7월 8일 상해에서 체포되어 1932년 7월 27일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할 때까지, 몽양은 다섯가지 병을 얻었다. 치질로 네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의 활동과 해방 전후의 일이 더욱 궁금해진다.
아마 오늘 밤이면 다 읽을 것 같다.
다음 한겨레 칼럼으로 ‘시대가 영웅을 기다린다’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영웅’이 갖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제목을 바꾸려고 한다.
‘시대의(또는 시대가) 인물을 기다린다’ 
어제 책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물'이 적어도 한 나라의 리더라면, 종교의 유무나 종류는 관계 없다.
다만 '예수'나 '석가'나 '공자'의 진수와 만나려고 노력하고, 종교가 아니라면 '과학'에 철저하여 성인의 추구함과 목표가 같아지는데까지 나가야 한다.
F

Namgok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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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虛禮)는 마음이 떠나버린 예(禮)를 말한다.
나는 논어를 읽으면서 ‘예(禮)’가 내 나름의 감각으로 들어왔었다.
은연 중에 유교의 폐단으로 지적되어 온 허례(虛禮)허식(虛飾)에 대한 반감도 있었을 것이다.
“예(禮)와 양(讓)으로 사회를 운영하면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와 같은 취지의 공자의 말이 있다.
양(讓)이 내용이라면 예(禮)는 형식으로 이해되었다.
‘극기복례’도 ‘자신의 아집을 넘어서 다른 사람(사회)과 사이좋게 되는 것’으로 읽혀졌다.
즉 예(禮)는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사회질서(형식)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 내용은 양(讓), 충(忠), 서(恕)와 같은 마음의 상태로 본 것이다.
나는 제사(祭祀)나 천제(天祭)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실제로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나면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
그런데 근래 제사나 천제에 진실한 마음이 담기는 경험을 하거나 보면서, 예(禮)에 대한 감각이 좀 달라진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형식(禮) 안에 마음이 담기면서, 그 마음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가족 제도나 관념의 변화로 지금까지의 제사(祭祀) 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성심(誠心)은 어떤 형식(禮)을 통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까?
아침 페북에서 벗님이 제사에 대해 올린 글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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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ok Lee
  · 
요즘 나라가 어지럽다.
새로운 나라ᆞ새로운 사회ᆞ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혼돈으로 보고 싶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인문적 ᆞ철학적 토대가 너무 약하다.
그 기초부터 닦기에는 세상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도 '정계개편'과 '연립정부' 같은 현실적 목표를 시간표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부족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나라의 지성이 구체적 권력에 관여하지 않고 인문적ᆞ철학적  토대로 뒷받침해야 한다.
교황이 나라의 어른 역할을 하고, 피게티가  나라의 정책에 나침판 역할을 하는  것이 안타깝다.
교황이나  피게티를 비판하는 것과는 무관한 말이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말이며,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우치자는 말이다.
이제 비주체적ᆞ사대적 역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조건들은  성숙하고 있는데, 그 가장뒤쳐지는 부분이 인문ᆞ철학적 토대다.
정치가  가장 후진적이라지만, 그렇게 만드는  근원은 인문ᆞ철학적 빈곤과 사대주의다.
우리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 민족(문화공동체)이다.
오래전에 대단히 선구적인 '홍익인간' '재세이화'같은 인문ᆞ철학적 토대를 세울수 있던  주체적이고 선구적인 민족이다.
사리(사적 이익)를 떠나, 크게보자.
그것이  사는 길이다.
자신의 내재된 잠재력을 믿고, 그것을 불러 일으키자.
편가름의 블랙홀에서  벗어나 시대정신ᆞ나라의 정체성을 세워가자.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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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남원동학혁명 아카데미에서 원광대 박맹수 총장의 “동학농민혁명의 세계사적 위상”이라는 주제로 여는 강의를 들었다.
특히 두 가지가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
하나는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일본을 국빈 방문하여 중의원과 참의원 국회의원 전원이 출석한 일본 국회에서 연설하면서, 아시아 3대 민주주의 사상으로 유교, 불교와 함께 동학(東學)을 당당히 들어올렸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조선의 망국과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트라우마’를 어떻게 넘어설지에 대한 대단히 탁월한 제시라고 본다.
이런 위대한 사상을 현대에 어떻게 살려갈 것인지가 잠재 의식 속에서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는 비교열등감 같은 부정적 기제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우리 공동체의 생명력을 최대화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동학을 제대로 공부해 본 적이 없지만, 내가 근래의 한일 갈등을 보면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으로 나아가게 하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요시다 쇼인과 동시대를 살았던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를 검색해서 페북에 올렸던 심정과 통하는 것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실패한 것으로 보이는 동학의 씨앗이 지금부터 앞으로 전개될 세계사 속에서 발화(發花)할 것이라는 믿음이야말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동학혁명의 위대성은 그 저항과 투쟁이 영성(靈性)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의 결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침략자와 억압자에 대한 투쟁과 저항의 바탕에 ‘생명사상’이 녹아 있다는 것이야말로 동학혁명을 위대한 혁명으로,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대에 학살된 수많은 혁명전사(戰士)들이 흘린 피가 결코 헛되지 않을 귀한 역사의 동력으로 된다는 것을 이야기한 것이 크게 와 닿았다.
즉 단순히 피아(彼我) 간의 쟁투를 넘어서는 것이다.
나와의 투쟁도 포함하는 것이다. 보국안민과 영성의 결합인 것이다.
이것을 놓치면 결국 진영 싸움으로 그치게 되고 만다는 것을 박 총장이 역설(力說)한 것이 인상에 남았다.
요즘 진영 싸움으로 나라를 위기에 빠트리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동력을 동학에서 촛불혁명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찾자는 호소로 다가왔다.
가까운 곳에서 좋은 강좌를 만나서 기쁘다.
다음 강의(9.17)는 요즘 개벽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 조성환 (Sunghwan Jo) 교수가 “동학 사상의 전개와 발전”이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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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정읍에 가서 동학 유적지를 돌아보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성했다는 황토현 전승기념탑에서 바라보이는 백산과 그 사이의 넓은 들에 126년 전 펼쳐졌을 광경을 그려보니 깊은 감회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금할 수 없었다.
집에 돌아와서 이 생각 저 생각하다가 몇 년전에 썼던 글을 발견하고 이 글로 그 감회를 기억하고 싶어졌다.
★저는 60세부터 스스로 ‘인문운동가’로 자기정체성을 세웠습니다.
현실 정치에 대해서는 간접적이거나 원론적인 인문운동가의 희망을 말하는 선 이상으로 직접적인 언급은 가급적 피했습니다.
미미하더라도 인문운동의 영역에서 인문적 토대를 건강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삼고 살아왔습니다.
넓은 의미로는 인문운동도 정치운동의 한 부분입니다.
특히 한국 정치가 국내외적인 여러 도전에 대응하고 그 간의 중층적이고 복합적인 모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술이나 방법, 전략이나 전술보다 더 근본적으로 그 인문적 토대가 중요하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오늘 마침 페북에 우리 정치에 대해 글을 올리다보니, 이런 저런 상념들이 떠오릅니다.
지난 번 광주에서 ‘합작과 연정의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광주의 벗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현실정치는 문외한이고 직접적인 관심도 별로 없는 편입니다.
그래도 정치가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인문운동가의 영역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은 가끔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제 나이도 이제 70대 중반입니다.
얼마나 더 활동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저의 우리 정치의 미래에 대해서 인문운동가로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에게는 좀 피곤한 일입니다.
그래도 다소라도 정치를 하는 분들이나 주권자인 시민들에게 미래 정치를 바라보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오늘 페북에 올린 다소 방만한 글을 소개합니다.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참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만, 우리들 지리산 연찬회에 함께하는 분들이 바라는 새로운 정치, 진실한 정치를 하려는 결의나 태도가 확실한 사람이라면 정파에 관계없이 정치인을 초대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도 이른바 현실 정치에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정치권에 신선한 영향을 다소라도 줄 수 있다면, 그 것이 우리 지리산 모임의 가장 큰 특징이 아닐까요.
오늘 쓴 글을 소개합니다.
<'극단(極端)'은 주변부로 가는 것이 맞다.그러려면 건강한 중심이 서야한다.
극단적 주장들과 세력이 정치의 중심 무대에서 거칠게 다투는 양상이 계속되고 있다.그 거친 과정을 거쳐서라도 중도를 찾아가는 과정이 되면 국운이 쇠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그렇지 못할까봐 걱정이다.건강한 중심이 없어서 결과적으로 이 극단에서 저 극단으로 이동하는 실태들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도 이동하고, 정권도 이동한다.시간이 너무 늦기 전에 건강한 중심이 만들어져야 한다.
실사구시하는 실력과 증오나 분노에 휘둘리지 않는 덕성이 결합해야 한다.
원한을 덕으로 갚을 수는 없겠지만, 보복으로 보이는 것에서는 벗어나 이직보원(以直報怨)의 전통을 확립해야 한다.
극단적 세력들은 결코 저절로 사라지지 않는다. 또 그런 주장이나 사람들을 배제하거나 제거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핵심은 중심에 건강하고 합리적인 정치세력이 자리를 잡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을 반대하거나 배제를 주장하는 것이 주가 아니라, 새로운 철학ㆍ비전ㆍ정책을 제안하고 실천해가는 것으로 큰 흐름을 만들어야 한다.
구슬은 점차 많아지고 있다.그런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다'그것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장애의 하나가 인문적 토대의 허약함이다. '아집'과 '독선'이 너무 강하다.
권력에 눈먼 부패한 정치세력은 새로운 정치에서는 별로 언급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새로운 사람들과 집단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내가 정치운동을 비롯한 경제ㆍ사회운동과 인문운동의 결합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다.그것이 안되면 중심부에 새로운 진정한 중심세력으로 자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정견이 달라서 싸우는 것이 필요할 때는 싸워야한다.비록 거칠더라도 그렇게 해서라도 나라의 미래를 열어가려면, 우선 증오와 분노를 넘어서서 싸울 줄 아는 것이 출발일 것 같다.그럴려면 먼저 변화된 환경에서 진보든 보수든 '정명'을 먼저 해야 한다.
무엇을 위해, 왜 싸우는지 우선 자기정합성을 갖춘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그 바탕에서서 대화하고 때로는 싸우고 때로는 연합하고 때로는 타협하고 때로는 합작하면서 큰 정치를 만들어가야 한다.
더 나아간 꿈을 꾸어볼 수도 있다.
‘새 술은 새 부대’라는 말이 있다.선거 때마다 급조되고 사라지는 정당이 아니라, 미래 백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정당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 당 안에서 여러 과제들의 변화된 연관성을 새롭게 정립하면 좋을 것이다.중심교역국가ㆍ협치국가ㆍ새로운 문명국가라는 세 방향(이것은 제 주장에 불과합니다만)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는 사람ㆍ철학ㆍ비전ㆍ정책을 연결하는 것이다.저는 분야별로 꽤 준비되고 있다고 본다. 최상의 인재들이 ‘아집’을 극복하고 지혜와 힘을 모으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큰 그릇에 담아, 새로운 시대의 용광로로 만들 수 없는 것인가?
외세의 변화에 대응하는 분파적 노력은 결과가 좋지 않다. 결국 외세에 좌우되는 역사를 반복하게 된다. 이제 우리 내부의 동력을 우선시하는 대전환을 해 볼 때다.
큰 그림을 그리면 구질구질한 싸움이 하찮게 된다.
크게 협력하고, 나라의 새로운 동력이 세계사의 피동적 존재로부터 능동적 존재로 바꿔가는 그 기풍이 나라를, 정치를, 경제를, 문화를 일변시킬 것이다.
우리의 한 많은 역사가, 피로서 나라를 지킨 선열들이 이것을 원하지 않을까?
간절한 심정으로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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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나들이.
주요섭 선생 안내로 동학 유적지를 다녀왔다.
1893년 동학 혁명전쟁 한 해 전, 첫 모의가 이루어진 곳에 가서 나도 사발통문에 서명하였다.
졸지에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 ㅎㅎ
전봉준 장군이 기거하던 집과 최초의 전승지 황토현에 올라 멀리 백산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당시 모여서 목숨을 걸고 결의하던 심정들을 생각해 보았다.
내장산 공원에 들러, 정자에 앉아 바둑을 두었다.
주 선생이 나보다 상수다.
힘을 겨뤄보고 바로 승복했다. ㅎㅎ
좋은 점심과 정읍 명물 쌍화차.
주 선생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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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미, Paul Ma and 11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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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읍의 논어 산책을 마무리하는 날이다.
이름난 작가이며 동학운동가인 최은희 선생의 해설을 들으면서 동학 농민혁명 기념공원에서 가을 소풍을 겸한다.
그리고 안연 편 두어 문장을 함께 생각하면서 봄부터 시작한 논어 산책을 깊어가는 가을에 마무리 할 예정이다.
오늘 살펴보고 싶은 구절이 어쩌면 논어의 백미(白眉)에 해당할지 모른다.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 말하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곧 인(仁)이니, 하루 극기복례하면 온 천하가 다 인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인을 이룸이 자기로 말미암은 것 이니, 어찌 남에게 연유하는 것이겠는가.”
顔淵 問仁 子曰, 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극기복례’를 내 식으로 간단히 말하면 ‘자기중심성을 넘어(克己) 모든 존재와 사이좋아지는 것(復禮)’이다.
일일(一日)은 지금이고, 천하(天下)는 여기다. 영어로 말하면 ‘now and here’ 다.
신을 섬기기기에 앞서 먼저 인간을 섬기라는 말이나 죽음을 생각하기에 앞서 먼저 삶을 생각하라는 공자의 말이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인유기爲仁由己라는 말은 인간으로 태어나 ‘나’의 주체성을 가장 빛나게 실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 동안 함께 해준 정읍의 벗님들에게 깊이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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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숙, 강길모 and 4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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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우리의 시대정신을 ‘통합과 전환’이라고 표현해 왔다.
통합은 ‘사회통합’과 ‘연합정치’를 의미하고, 전환은 ‘정치전환’과 ‘문명전환‘을 의미한다.
둘 다 부정적이거나 회의적인 용어나 태도를 넘어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용어나 태도로 나아가는 것이 그 동력(動力)을 강화하는 것으로 된다.
부정적인 태도는 상호 악순환에 빠져들기 쉽고, 확증편향의 퇴행적 편가름의 늪에서 인류적 위기와 나라의 위기를 헤쳐나갈 동력을 잃기 쉽다.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자기 주체성을 잃고 휩쓸려 망할 수 있다.
지금 우리의 모습 가운데 안타까운 현실의 하나다.
내가 동학시민운동을 하는 분들에게 ‘감시와 비판’은 동학 정신을 현대에 살리는 ‘최저선(最低線)이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학농민혁명이 남긴 가장 큰 유산인 ’집강소‘를 현대에 살리는 것이라고 말씀드리는 것도 이런 생각에서다.
‘무엇 무엇에 반대한다’는 그 내용을 ‘이렇게 이렇게 하자’는 표현 속에 담아내는 운동이 진전해야 한다.
‘사회통합’은 실재하는 진영 간의 갈등과 대립을 어물 어물 봉합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지만, 성공할 수도 없다.
그 대립과 갈등을 평화적이고 민주적으로 인간의 보편적 선의지(善意志)를 바탕으로 해결하는 문화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인문운동’과 ‘종교’가 이 역할의 큰 담당자다.
책을 왜 읽고, 종교를 왜 갖는가?
확증편향과 편가름, 증오와 분노를 확대하는 방향이라면 그것은 ‘이슬’을 ‘독(毒)’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연합정치’는 고질적인 분열과 대립의 정치를 지양(止揚)하자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과제들 즉 계급(계층)문제, 경제문제, 민족문제, 국가 문제 등을 지금까지와 같은 정치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 때문이다.
그리고 그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마련한 성과들을 살려 ‘전환’과 ‘도약’의 밑천으로 쓰지 못하고 버리는 안타까움이 있다.
지금 우리 정치는 일대 분수령에 서 있다.
자체 정화력(淨化力)과 진화력(進化力)을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기존의 양 대 정치세력은 남의 칼을 빌려 스스로의 환부를 도려내는 듯한 모습으로 틈을 만들어 내고 있다.
언젠가 양대 정당이 진화해서 연합정치를 이룰 수 있기를 바라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난망(難望)이다. 그리고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 근래 나는 지역정당과 같은 새로운 정치운동에 주목을 하게 된다.
자치나 분권운동을 적극적인 정치운동으로 하자는 것에 관심이 간다.
그 것은 풀뿌리정치운동의 진화를 통해 ‘저항으로부터 권력으로’라는 적극적인 활동으로 지방정부(행정부와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물론 이 권력은 ‘강제(국가 권력)’나 ‘매수(경제권력)’가 아닌‘설득과 공감’에 바탕한 시민(또는 사회)주체권력이다.
현실과 먼 이상으로 들리기도 하겠지만, 어디선가 이런 모델들이 나타나면 꽉 막힌 정치를 뚫어내는 거대한 마중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주목하는 다른 하나는 지금과 같은 기존 정당이나 정치문화로는 어려운 ‘연합정치’를 이런 정당 속에 담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희망이 있다.
기존 정당 간의 연합정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연합정치’를 강령으로 하는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다.
‘공동체의 가치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당연한 가치로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문명전환을 추구하는 녹색정치’ 삼자(三者)를 포용하고 융합하는 정강과 정책을 담을 수 있는 정당이 그것이다.
이런 내용을 갖춘 지역정당이 지방정부를 구성하는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우리공동체의 오랜 정치사에 큰 변혁의 물꼬를 열 수도 있을 것이다.
대단히 이상적인 이야기로 들리지만, 지금의 꽉막힌 정치 현실과 절박한 시대적 요구는 어쩌면 현실로 성큼 다가오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체성과 확산력이 애매한 기존의 소수 정당들과 자체 정화력과 진화력이 허약한 양대 정치세력 가운데에서도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사람들이 헤쳐 모일 수 있다면 더 바람직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촉진하기 위해서도 지역정당운동이 촉매제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현실정치와는 무관한 인문운동가를 자처하는 노인이지만, 나는 인문운동을 통해서 ‘정치운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원화되고 일상적인 활동과 삶의 현장들이 ‘정치’로 되는 ‘새로운 질’의 정치와 정당을 그려보는 요즘의 심경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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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썼던 글이다.
협소한 민족주의(民族主義)의 굴레를 벗고, 천하대세를 읽을 수 있다면, 객관적 조건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아진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세계를 앞장서서 열어나가는 문명을 만들 수 있다.
<요시다 쇼인과 최제우>
같은 시대를 살다 간 두 인물을 검색해 보았다.
요즘 많이 거론되는 요시다 쇼인과 6년 먼저 태어나고 5년 늦게 사망한 최제우다. 둘 다 각각의 정부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나라는 전혀 다른 길을 밟았고, 두 사람이 끼친 영향도 두 나라의 운명만큼이나 달랐다.
역사는 돌고 돈다.
미래를 열어갈 큰 설계는 오히려 실패한 것으로 보인 최제우에게서 그 씨앗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큰 설계가 이 땅에서 나오기를 바란다.
그 설계 속에는 한국, 북한, 일본, 중국, 타이완 등이 하나의 연방으로 되는 것이 포함된다.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문명과 새로운 질서다.
*요시다 쇼인
1830년 하급 무사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18세 때 숙부 아래에서 독립해 군사학자로 활동하기 시작했으며, 1850년 병법을 연구했고, 이듬해에는 서양 학문과 군사학을 배웠다.
1854년 미군 함선에 승선하여 밀항을 시도했다. 이 시도가 실패하여 국법을 어긴 죄로 감옥에 수감되었다. 1858년 다시 체포되어 1859년 처형되었다. 29세의 젊은 나이였다.
요시다 쇼인은 짧은 생을 살았지만 이토 히로부미, 다카스기 신사쿠, 구사카 겐즈이 등 그의 문하에서 세 명의 총리와 여섯 명의 장관이 배출되는 등 메이지 유신의 지도자들이 탄생하여 그의 사상을 실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는 1907년 정미7조약 을 체결한 후 쇼인의 무덤에 이를 고했으며, 2006년 아베 신조 총리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쇼인을 꼽을 정도로 근대 이후 일본의 정치계에 그가 끼친 영향력은 그 누구보다 크다. 그의 위패는 현재 야스쿠니 신사에 신위 제1호로 모셔져 있다.
*최제우
1824년 몰락한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다. 가난하게 살던 그는 여섯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여덟 살에 서당에 들어가 한학을 공부했는데 열 살 무렵이 되어서는 세상의 어지러움을 한탄할 정도로 어른스러웠다고 한다. 열일곱 살에 아버지까지 여의자 그는 3년상을 마친 뒤 전국을 떠돌아다니면서 활쏘기와 말타기 등을 익히고, 갖가지 장사와 의술(醫術), 복술(卜術) 등의 잡술(雜術)을 배우기도 했다. 비참하고 어려운 백성들의 생활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는 어떻게 하면 많은 백성들이 고통받지 않고 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1860년 4월 깨달음을 얻고, 1년 동안 깨달은 것을 정리하고 체계화하여 동학(東學)을 창시했다.
포교를 시작하자 놀라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따랐다. 인간평등 사상을 내세운 동학은 신분 제도 속에서 희망을 잃은 사람이나 천대받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1864년 ‘사도난정(邪道亂正)’이라는 죄목으로 달성공원에서 효수형에 처해졌다. 40의 나이였다.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는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며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주창했다. 신분 계급제인 양반 사회를 부정하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 속에 한울님을 모신 존귀한 인격이라는 시천주(侍天主) 사상을 가지고 만민평등의 큰 뜻을 전파했다. 또한 평민들도 ‘보국안민(輔國安民)’의 주체로 승격할 수 있다는 자주적 평등의 민족 사상을 국민들의 마음속에 심어 주었다.
왕조 사회의 쇠망을 예언하고 후천개벽(後天開闢, 조선 후기의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만민이 평등한 세상이 온다는 의미)의 새 시대가 도래한다는 이상향을 제시하였으며, 당시 서양과 일본의 침략에 대한 ‘척양왜(斥洋倭)’의 자주적 저항 의식을 서민들의 마음속에 불어 넣었다. 민족자주, 인간존중, 만민평등을 바탕으로 한 그의 민본주의 사상은 그가 순교한 후 갖은 탄압과 박해 속에서도 나날이 번창해 동학농민혁명에서 3·1운동에 이르는 우리나라 근대 민족사의 정신적 주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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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교체’ ‘사회교체’ ‘시대교체’를 위해 나는 르네상스 운동이 그 배경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런 의미에서 촛불이 21세기 한국의 르네상스로 이어지기를 염원한다.
우리는 새롭게 살릴 성인(聖人)들이나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위대한 건국 이념을 가지고 있다.
공자도 그 한 사람이다.
공자는 서(恕)와 충(忠)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한 사람이다.
서(恕)는 관용이다. 공호이단(攻乎異端) 사해야이(斯害也已)를 ‘이단을 행하면 해로울 뿐’이라는 주자(朱子) 류(流)의 왜곡으로부터 ‘자신과 다른 생각을 공격하는 것은 해로울 뿐’이라는 공자의 생각으로 다시 돌아가야(르네상스)한다. 과학이 뒷받침한다.
충(忠)은 ‘자기가 좋아하는 일에 자발적으로 기쁘게 전념하는 상태’다. 신분제사회나 상하관념이나 국가주의나 집단주의에 의해 왜곡되온 상태로부터 21세기적 르네상스를 이루어야 한다.
경쟁과 각자도생의 차가운 사회는 자타(自他)의 생명력을 훼손하는 것이다.
하나의 예일 뿐이다.
석가, 예수, 동학 등이 과학과 손을 잡고 인간애(홍익인간)의 르네상스로 피어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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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양 여운형’을 반 쯤 읽었다.
하룻 밤 새 읽은 페이지(근 200페이지)로는 요즘의 내 독서 속도로 볼 때 대단히 빠른 편이다.
중국에서 19년간 독립 운동 후 체포되어 3년 간 옥살이를 하고,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으로 있으면서 활동한 부분까지 읽었다.
형무소 시절 이야기다.
간수; 내가 7년 동안 간수로 많은 정치범을 보았는데 여 선생과 같은 이는 처음 보았다. 모두가 분노와 번뇌와 불평으로 지내는데 선생은 항상 명랑 화평한 기운으로 지내니 퍽 이상스럽게 생각된다.
여 운형; 나의 한 일이 양심적이며 자각적인 것이니 남을 원망하지 않고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스스로 기쁠 뿐이니 불평이 있을 까닭이 없다.
1929년 7월 8일 상해에서 체포되어 1932년 7월 27일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할 때까지, 몽양은 다섯가지 병을 얻었다. 치질로 네 번이나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앞으로의 활동과 해방 전후의 일이 더욱 궁금해진다.
아마 오늘 밤이면 다 읽을 것 같다.
다음 한겨레 칼럼으로 ‘시대가 영웅을 기다린다’는 주제로 글을 쓰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영웅’이 갖는 이미지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제목을 바꾸려고 한다.
‘시대의(또는 시대가) 인물을 기다린다’
어제 책을 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인물'이 적어도 한 나라의 리더라면, 종교의 유무나 종류는 관계 없다.
다만 '예수'나 '석가'나 '공자'의 진수와 만나려고 노력하고, 종교가 아니라면 '과학'에 철저하여 성인의 추구함과 목표가 같아지는데까지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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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례(虛禮)는 마음이 떠나버린 예(禮)를 말한다.
나는 논어를 읽으면서 ‘예(禮)’가 내 나름의 감각으로 들어왔었다.
은연 중에 유교의 폐단으로 지적되어 온 허례(虛禮)허식(虛飾)에 대한 반감도 있었을 것이다.
“예(禮)와 양(讓)으로 사회를 운영하면 걱정할 것이 무엇인가?”와 같은 취지의 공자의 말이 있다.
양(讓)이 내용이라면 예(禮)는 형식으로 이해되었다.
‘극기복례’도 ‘자신의 아집을 넘어서 다른 사람(사회)과 사이좋게 되는 것’으로 읽혀졌다.
즉 예(禮)는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운 사회질서(형식)를 나타내는 것이고, 그 내용은 양(讓), 충(忠), 서(恕)와 같은 마음의 상태로 본 것이다.
나는 제사(祭祀)나 천제(天祭)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실제로 돌아가신지 3년이 지나면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
그런데 근래 제사나 천제에 진실한 마음이 담기는 경험을 하거나 보면서, 예(禮)에 대한 감각이 좀 달라진다.
내용이 형식을 규정하기도 하지만, 형식이 내용을 풍부하게 하기도 한다.
형식(禮) 안에 마음이 담기면서, 그 마음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까?
가족 제도나 관념의 변화로 지금까지의 제사(祭祀) 문화는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하나로 이어지는 세계에 대한 사람들의 성심(誠心)은 어떤 형식(禮)을 통해 더욱 풍성해질 수 있을까?
아침 페북에서 벗님이 제사에 대해 올린 글을 보고 들었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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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라가 어지럽다.
새로운 나라ᆞ새로운 사회ᆞ새로운 문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혼돈으로 보고 싶고, 또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인문적 ᆞ철학적 토대가 너무 약하다.
기초부터 닦기에는 세상이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해도 '정계개편'과 '연립정부' 같은 현실적 목표를 시간표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비록 부족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나라의 지성이 구체적 권력에 관여하지 않고 인문적ᆞ철학적 토대로 뒷받침해야 한다.
교황이 나라의 어른 역할을 하고, 피게티가 나라의 정책에 나침판 역할을 하는 것이 안타깝다.
교황이나 피게티를 비판하는 것과는 무관한 말이다.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는 말이며, 우리에게 무엇이 부족한지를 깨우치자는 말이다.
이제 비주체적ᆞ사대적 역사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조건들은 성숙하고 있는데, 그 가장뒤쳐지는 부분이 인문ᆞ철학적 토대다.
정치가 가장 후진적이라지만, 그렇게 만드는 근원은 인문ᆞ철학적 빈곤과 사대주의다.
우리는 충분히 능력이 있는 민족(문화공동체)이다.
오래전에 대단히 선구적인 '홍익인간' '재세이화'같은 인문ᆞ철학적 토대를 세울수 있던 주체적이고 선구적인 민족이다.
사리(사적 이익)를 떠나, 크게보자.
그것이 사는 길이다.
자신의 내재된 잠재력을 믿고, 그것을 불러 일으키자.
편가름의 블랙홀에서 벗어나 시대정신ᆞ나라의 정체성을 세워가자.
스스로 권위를 만들어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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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ong-Woo Lee, Cho-nyon Kim and 69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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