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조선을 그린 우끼요에 화가 ‘가와세 하스이(川瀨巴水), 1883-1957’]
우끼요에(浮世繪)는 일본 에도 시대에 성립된 당대의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려낸 풍속화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색으로 찍힌 목판화를 말하기도 하나 붓으로 그린 육필화도 포함된다.
1856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일본의 공예품과 우끼요에가 출품되고,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으로 서양에서 우끼요에의 확산이 열광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색상, 과감한 시점 처리에 매료되었다. 고흐와 모네 등이 우끼요에 양식을 화법으로 수용하여 본인들 작품에 반영시키기도 했다.
우끼요에 작가로는 유명한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안도 히로시게(安藤廣重)가 있었지만, 20세기 초 우끼요에도 어느덧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때 근대 풍경화가 중 가와세 하스이는 우끼요에의 부흥과 새로운 양식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여느 작가처럼 침체기가 오자 조선을 여행하였고, 그때 느낀 감흥을 ‘조선팔경’과 ‘속조선팔경’으로 남겼다.
1939년 조선팔경에 등장하는 장소는 총석정, 금강산, 불국사, 수원 화홍문, 평양 부벽루, 부여 낙화암, 백양사 쌍계루, 경회루이다. 일제는 1939년 조선에 강제징용령을 공포하고 공사장, 군수공장, 전쟁터로 조선인을 내몰고 있는 험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산하만은 처연하게 아름다웠나 보다. 그가 그린 풍경화 속 조선은 서정적이고 고요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처연한 조선 산하 풍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지러운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대동강을 바라보는, 나룻배를 이끄는, 기생과 평양을 여행하는,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는, 쇄락한 사찰을 걷는, 그저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이다. 풍경 속에 한 구성요소일뿐이다.
우끼요에(浮世繪)는 일본 에도 시대에 성립된 당대의 사람들의 일상 생활이나 풍경, 풍물 등을 그려낸 풍속화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다양한 색으로 찍힌 목판화를 말하기도 하나 붓으로 그린 육필화도 포함된다.
1856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일본의 공예품과 우끼요에가 출품되고, 자포니즘(japonism)의 영향으로 서양에서 우끼요에의 확산이 열광적으로 시작되었다. 특히 인상파 화가들은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색상, 과감한 시점 처리에 매료되었다. 고흐와 모네 등이 우끼요에 양식을 화법으로 수용하여 본인들 작품에 반영시키기도 했다.
우끼요에 작가로는 유명한 히시카와 모로노부(菱川師宣),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 안도 히로시게(安藤廣重)가 있었지만, 20세기 초 우끼요에도 어느덧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때 근대 풍경화가 중 가와세 하스이는 우끼요에의 부흥과 새로운 양식을 확립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여느 작가처럼 침체기가 오자 조선을 여행하였고, 그때 느낀 감흥을 ‘조선팔경’과 ‘속조선팔경’으로 남겼다.
1939년 조선팔경에 등장하는 장소는 총석정, 금강산, 불국사, 수원 화홍문, 평양 부벽루, 부여 낙화암, 백양사 쌍계루, 경회루이다. 일제는 1939년 조선에 강제징용령을 공포하고 공사장, 군수공장, 전쟁터로 조선인을 내몰고 있는 험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조선의 산하만은 처연하게 아름다웠나 보다. 그가 그린 풍경화 속 조선은 서정적이고 고요하기만 하다.
더군다나 처연한 조선 산하 풍경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지러운 세상과는 동떨어져 있다. 대동강을 바라보는, 나룻배를 이끄는, 기생과 평양을 여행하는, 정면을 응시하지 못하는, 쇄락한 사찰을 걷는, 그저 냇가에서 빨래하는 모습이다. 풍경 속에 한 구성요소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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