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말하지만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개인과 근대국가 '사이'를 매개하는 고리가 너무 약하다는 점이다. 개인적인 문제들이 곧바로 사회 공동체 전체의 문제로 확장되어버린다. 내가 길가다가 돌에 걸려 넘어지는 것도 노무현 탓이라는 게 그걸 잘 보여주는 표현이다. 너무 쉽게 그렇게 사적인 것이 공적인 것으로 튀어버리는 게 문제다. 사적인 건 사적인 것으로 남겨두는 것도 필요한 법이다. 정치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건 이 공사의 구별을 반복해서, 제대로 한다는 걸 의미하지 다른 게 아니다. 마르크스가 아시아적 사회에서는 공사구별이 되지 않는다고 했을 때, 예전에 나는 그게 아시아에 대한 인종주의적인 발언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19세기 유럽 지식인들이 우리 자신보다 더 정확하게 볼 수도 있는 법이다. 사적인 문제를 사적인 문제로 남겨두고 그래야 되는데, 거기서 해결이 안되니 자꾸 개인들이 폭로하고 공론화하고.. 그런 것만 반복하는거다. 칼 슈미트나 하이데거나 비판이론이나 이런 독일 이론 배운 사람들이 계속해서 자본주의가 인간을 경제적 동물로 만들고, 정치적인 것의 의미를 박탈하고 이런 얘기를 하는데 제발 좀 경제적 동물이 되었으면 한다. 정치에 관심 갖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내 삶속에서 그냥 그런게 자연스럽게 획득되는 게 중요한거지,
내가 구태여 맨날 유튜브 보고 하루종일 정치 얘기만 하고 정치인 욕만 하고
페미니즘이 어떻고 여자애들이 저떻고..
그건 정상적인 삶이 아니다.
나야 직업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지만 좋은 게 아니다.
손민석
Favourites · ospndtroeSu1u8058m5h56m68g1m79i2595216fagtligmct40fit7h886g1 ·
몇번 상대해줬더니 계속 이러고 있길래 직접 인용으로 답해준다. 이런 소리하는 양반들 때문에 짜증난다는 말이다. 여대의 공학 전환에 무슨 대중을 설득씩이나 할 '거창한' 대의가 있는가? 여기에 사회가 왜 개입해야 하는가? 개입할 이유가 있는가? 없다.
반대로 공학 전환에 반대하는데도 이유가 있는가? 거기에도 없다. 이유가 없는 문제라는 걸 인정하고 가야 된다.
사회의 민주화나 이런 문제처럼 거시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여대로의 전환에 반대하는 건 내부 구성원들의 '정체성'의 문제고 그건 사회를 향해 '설득'하고 말 문제가 아니다. 당사자들끼리 해결할 문제다. 학생들을 대학의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다. 거기에 외부 구성원들이 왜 말을 얹는가? 얹지 말라고 했더니 이딴 소리나 하고 있다.
여기서 유일하게 설득력을 지닌 논변은 학교측이 학교를 운영하는데 있어서 학생들의 의견을 무시한다, 정도밖에 없다. 학내 민주주의를 존중하지 않았고 절차상의 하자가 있기 때문에 학생들의 저항이 정당하다, 정도가 유일하게 내놓을 수 있는 정당화 기제다. 학교 운영을 이사장 좆대로만 하나? 학생이 무슨 돈만 내는 ATM 기계인가? 이러니까 노동자도 개무시하고 다 개무시하면서 경영하는거다. 한국 재벌들의 가족경영 방식의 후진성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걸 문제삼지 않으면 뭘 문제 삼을 수 있다는 말인가?
물론 여대의 공학 전환은 대학 측의 입장에서도 할 얘기가 있는 문제다. 저출산의 상황에서 신입생이 들어오지를 않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학교 입장에서는 미리미리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공학전환은 그런 차원에서 시도해볼 수 있는 정책이다. 여대 고수를 내세우는 측도 이에 대해 답을 내놔야 한다. 단순히 지금 학교가 돈이 많은데 왜 공학으로 전환하려고 하냐? 혹은 차라리 소멸해라, 같은 말을 하는 건 운동이 격해지며 나올 수 있는 발언으로 치부해야지,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얘기다. 정당이나 시민사회가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면서 개입할 수 있다면, 이 지점에서 해야 된다. 사회의 개입이 정당화되는 건 딱 이 지점정도밖에 없다. 대학제도의 존속여부야말로 사회 전체가 논의해야 할 얘기 아니겠나.
그런데 지금 그것에 대해 말할 상황인가? 아무도 그런 얘기 안한다. 이준석, 한동훈, 장혜영, 이기인 등의 정치인들은 그런 얘기 안 한다. 누가 하는가? 정치의 무능이자 방기고 개입 안 하느니만 못하다. 그래서 다들 입다무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거다. 나도 이 얘기에 관심 갖고 싶지 않다. 무슨 시위의 폭력성 운운하고 대의가 어쩌고 하는 건 그냥 여자애들이 저러는 게 꼴보기 싫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저걸 왜 저렇게 보기 싫어할까, 에 대한 반성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딴 소리나 하고 있으면 곤란하다.
이미 사태는 '여대'라는 상징성을 놓고 벌어지는 광범위한 인정투쟁의 장이 되어버렸다. 여기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여대생들을 비난하거나 학교측을 비난하기보다는, 당사자들끼리 해결하고 정리할 문제를 사회적 갈등으로 확장되는 상황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 된다. 학교 측이 학내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경영 과정에서 학교의 구성원인 학생들의 의사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족벌경영 못지 않은 사학재단들의 전횡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진보 진영의 오랜 논제 아니었던가? 그런 얘기를 해야 성숙하고 생산적인 사회가 된다. 무슨 여대 출신들 거르겠다느니, 락카칠이 너무 폭력적이라느니, 폭동이라느니, 여대 출신은 며느리로 맞지 않겠다느니.. 그게 20대 애들 두고 어른들이 할 소리인가? 입 다무는 게 낫다.
이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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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모든 투쟁은 폭력적 성격을 띈다.
그걸 부정하면 우리가 긍정하고 기릴 수 있는 민중항쟁은 몇 안 남는다. 폭력의 구체적인 내용을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폭력 그 자체를 해선 안되는 일로 취급하고 사법적 기준으로만 행위를 판단하면 저항권의 개념이 무색해진다.
그러나 투쟁의 이름 하에 이루어지는 모든 폭력을 긍정할 수는 없다. 결국은 우리는 대의가 지켜짐으로써 안정과 번영을 구가하는 사회를 누리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각자가 각자의 기치 아래 질서를 끝없이 파괴하기만 하는 사회를 원할 이는 아무도 없다. 결국 명분이 중요한 것이다.
물론 모두가 동의할 명분 같은 건 없을지도 모른다. 대중을 설득할 자신이 없으면 폭력을 쓰지 말라는 요구는 사실상 투쟁을 포기하라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내세우는 명분이 진정 대의로서 모두에게 옳은 것이라면, 단지 현실적인 이유로 모두에게 닿지 못하는 것 뿐이라면, 최소한 당신이 그것을 당당하게 세상에 외칠 수는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의 혁명론은 부르주아에게 닿을 리가 없는 대의지만, 그는 그것이 부르주아한테는 대의가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사라짐으로써, 부르주아 간 경쟁에서 밀려 언제 프롤레탈리아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공포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신의 폭력을 질타하는 세상에게 "남의 일에 참견 마라" 는 말 밖에 못한다면, 애초에 그건 정당화할 수 없는 폭력인 것이다.
도쿄대에는 69학번이 없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다. 68년부터 이어진 학생들의 폭력 투쟁 때문이었다. 이 투쟁에서 학생들이 사용하던 문구가 그 유명한 "연대를 구하여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다. 당시 도쿄대 학생뿐 아니라 수많은 운동권에게 영향을 준 문구지만, 이후 운동권은 점차 저 문구에서 "연대" 는 잊고 고립을 두려워 않는 자신들을 낭만화해갔으며 그 결말이 아사마 산장이다. 도쿄대의 불탄 야스다 강당과 아사마 산장 사이에는 분명 큰 간극이 있다. 그런데 시작부터 아사마 산장이라면 과연 그 결말은 어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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