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4

全斗煥:数字はラッキーセブンだ : 木村 幹: Japanese Books

Amazon.co.jp: 全斗煥:数字はラッキーセブンだ (ミネルヴァ日本評伝選) : 木村 幹: Japanese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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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斗煥:数字はラッキーセブンだ (ミネルヴァ日本評伝選) Tankobon Hardcover – September 9, 2024
by 木村 幹 (著)
4.0 4.0 out of 5 stars 1 rating

戦後世代の日韓関係、歴史認識問題はここから始まった。

全 斗煥(1931年から2021年)第11、12代大韓民国大統領。
韓国現代史上最も悲惨とも言われる光州事件を引き起こすなど、韓国民主化運動の敵役として知られる全斗煥。彼による軍事政権樹立の経緯や光州事件への背景、退任後の晩年を、韓国大統領としての初の公式の来日など、日本との関係にも着目しながら追う。建国から戦争や経済的苦境、政治的混乱を経て、発展した民主主義国である現在に至るまでをたどる「もうひとつの現代韓国史」。

【目次】
序 死者の評価――韓国で最も嫌われた元大統領

 第Ⅰ部 スラム街から高級将校へ

第一章 貧しい少年時代
 1 プロローグとしての植民地期
 2 「朝鮮のモスクワ」

第二章 陸軍との出会い
 1 陸軍士官学校入校
 2 僥倖の到来

第三章 助走期間
 1 特殊戦部隊との出会い
 2 朴正熙との出会い

第四章 フロントランナーへの浮上
 1 軍から見た現代史の現場
 2 ハナ会


 第Ⅱ部 血塗られた権力への階段

第五章 朴正熙暗殺事件
 1 朴正熙政権末期の権力構造
 2 一九七九年一〇月二六日
 3 朴正熙暗殺事件合同捜査本部長

第六章 粛軍クーデタ
 1 クーデタへの道
 2 一九七九年一二月一二日
 3 ソウルの「春」と「冬」

第七章 政権獲得と光州事件
 1 五一七クーデタ
 2 光州事件
 3 維新憲法下での大統領就任


 第Ⅲ部 統治者としての全斗煥

第八章 政権の構造
 1 第五共和国の成立
 2 政権の骨格

第九章 政策的特徴
 1 経済と外交
 2 対日関係

第十章 民主化への道
 1 スポーツと文化政策
 2 民主化運動の再発
 3 政権の不安定化
 4 全斗煥は何故敗れたか

第十一章 転落と最期
 1 盧泰愚との葛藤
 2 法廷闘争
 3 晩 年


終 全斗煥とその時代

参考文献
あとがき
全斗煥略年譜
人名・事項索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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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著者紹介》*本情報は刊行時のものです
木村 幹(きむら・かん)
1966年 大阪府河内市(現・東大阪市)生まれ。
1990年 京都大学法学部卒業。
1992年 京都大学大学院法学研究科修士課程修了。博士(法学)。
    愛媛大学法文学部助手,同講師などを経て,
現 在 神戸大学大学院国際協力研究科教授。
著 書 『朝鮮/韓国ナショナリズムと「小国」意識』ミネルヴァ書房,2000年〈アジア・太平洋賞特別賞受賞〉。
    『韓国における「権威主義的」体制の成立』ミネルヴァ書房,2003年〈サントリー学芸賞受賞〉。
    『高宗・閔妃』ミネルヴァ書房,2007年。
    『民主化の韓国政治』名古屋大学出版会,2008年。
    『日韓歴史認識問題とは何か』ミネルヴァ書房,2014年〈読売・吉野作造賞受賞〉。
    『歴史認識はどう語られてきたか』千倉書房,2020年。
    『韓国愛憎』中公新書,2022年,ほか。


Product Details
Publisher ‏ : ‎ ミネルヴァ書房 (September 9, 2024)
Publication date ‏ : ‎ September 9, 2024
Language ‏ : ‎ Japanese
Tankobon Hardcover ‏ : ‎ 388 pages
ISBN-10 ‏ : ‎ 4623098079
ISBN-13 ‏ : ‎ 978-4623098071
Dimensions ‏ : ‎ 7.64 x 5.2 x 1.1 inchesAmazon Bestseller: #132,124 in Japanese Books (See Top 100 in Japanese Books)#420 in Eastern History
#1,010 in Biograph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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木村 幹



Kan Kimura is Professor at the Graduate School of International Cooperation Studies at Kobe University, and has previously been a visiting scholar at Harvard University, Korea University, the Australia National University, the Sejong Institute, and the University of Washington. He has published more than seventeen books and numerous articles and is an expert on the relationship between Kore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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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sfield76

4.0 out of 5 stars 忘れられた韓国大統領・全斗煥Reviewed in Japan on September 2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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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斗煥の伝記が我が国、それもミネルヴァ日本評伝選で出るとは思いもしなかった。日本人で彼の名を覚えている人はかなり少なくなっ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評者の記憶に残っているのは中曽根康弘首相との日韓初の首脳会談、ラングーンにおける北朝鮮工作員による暗殺未遂事件などである。上の世代なら何といっても1980年の光州事件だろう。韓国においても、日本で平成生まれが社会の若手から中堅を占めつつあるのと同様、朴正煕や全斗煥による軍政時代を経験していない世代が増えている。彼らの全斗煥の対するイメージは、恐らく現役時代よりも没落後に糾弾される姿に由来していると想像される。

さて、このように珍しい全斗煥の生涯を追った本書だが、著者の自著『韓国現代史―歴代大統領の栄光と蹉跌』(中公新書)の空白を埋めるべく、韓国現代史における彼の位置づけに努力が払われており、その評価も比較的中正である。評者の感想も交えれば、全斗煥政権は朴正煕死後の「ソウルの春」に象徴される韓国民主化の大きな時代の流れにもかかわらず、1980年の米ソ新冷戦という国際環境のもとでこそ辛うじて存在し得た、いわば遅れて出てきた束の間の「反共」政権だったということができよう。

ただ本書を通読しても、1979年に朴正煕が暗殺された時点では国軍保安司令官という要職にあったとはいえ一介の陸軍少将に過ぎなかった全斗煥が、上官である鄭昇和陸軍参謀総長を逮捕した粛軍クーデタ、民主化運動を大規模に弾圧した光州事件という2つの政変を強行してまで、なぜ自ら大統領にまでのし上がったのかという動機の部分がいまひとつ分からない。彼は朴正煕のように日頃から世を憂えるいわば「国士」タイプの人物ではなかったし、また朴が五・一六クーデタを起こした1960年代と異なり、彼のもとで70年代に「漢江の奇跡」を成し遂げた後では、軍部が再び国家の近代化に乗り出す大義名分は全くといっていいほど無かったはずである(だからこそ「反共」と「北傀」即ち北朝鮮の脅威を喧伝する必要があった)。著者は韓国のジャーナリスト・趙甲済の分析を引用しつつ、全斗煥が軍内での権力掌握を目指した粛軍クーデタの報復を恐れたこと、また朴正煕の直接的な後継者である崔圭夏大統領らを「維新残党」と非難する野党勢力による急激な民主化運動を極度に警戒したことを指摘している。

表面に現れた政治的事件の流れから言えばその通りなのだろうが、評者は全斗煥が軍内に扶植していた私組織・ハナフェ(一心会)の勢力を朴正煕の死後も維持し続けようとしたのではないか、と憶測する。ハナフェは1964年に全斗煥・盧泰愚ら陸軍士官学校11期生を中心として結成されたもので、以後も朴正煕の黙認のもとで主に嶺南(慶尚道)出身者の陸士卒業生をリクルートしつつ軍内で勢力を拡大していった。全斗煥政権のもとでハナフェは全盛期を迎え、歴代の陸軍参謀総長・国軍保安司令官・首都警備司令官をはじめとする軍の重要ポストをほぼ独占し、大統領府をはじめ内閣閣僚や国家安全企画部長、与党民主正義党の国会議員など文民ポストにも数多く進出した。盧泰愚政権のもとでも全斗煥の側近グループが一部失脚した以外は引き続きその地位を維持し、1993年に金泳三の文民政権が成立してようやく彼らは軍から一斉に追放されることとなった。こうしたハナフェの興隆と没落については、金在洪『極秘韓国軍 知られざる真実―軍事政権の内幕』上・下(光人社)が最も詳しい。

こうした史実から推し測ると、1980年に崔圭夏の約束通り大統領直接選挙などの民主化が達成された場合、全斗煥・盧泰愚をトップとするハナフェの軍人たちはもっと早くに除去されていたであろう。それに対する危機感が、当時国軍保安司令官に加え(朴正煕暗殺事件の)合同捜査本部長・中央情報部長署理という地位を占めた全斗煥をして、一軍人としては極めて突出した行動に走らせたのではないだろうか。その反面、彼としては自己の勢力が保全されれば十分であったわけで、本書でも述べられている通り彼の主導のもとで制定された第五共和国憲法では大統領の任期が1期7年(本書の副題「数字はラッキーセブンだ」は、この任期を指示した全斗煥の発言にちなんでいる)で再選の道も厳しく閉ざされていた。全斗煥には朴正煕のような終身大統領になる意思はなく、自分の次には盧泰愚あたりを後継者として(ただし大統領を退任後も院政を敷く予定は実際にもあったが)ハナフェの勢力を維持し続けるつもりだったのであろう。

しかし全斗煥の真意がいずこにあったにせよ、彼は1987年に民主化宣言を発表し後継大統領となった長年の盟友・盧泰愚によって早々に「裏切られ」、一気に転落する憂き目に遭うこととなる。詳しい経緯は本書に譲るが、晩年に公刊した回想録の中でもかつて敵対した野党勢力より盧泰愚に対する恨みつらみの方が色々と書かれているようである。ただその盧泰愚自身も大統領退任後に不正蓄財の容疑で収監され、さらに1996年には2人ともかつての粛軍クーデタと光州事件の首謀者として裁かれる身となった。そして2021年、2人は奇しくも一月の差をおいて、栄光と恥辱に満ちた長い生涯を閉じ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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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필드76
5점 만점에 4.0점

 잊혀진 한국 대통령·전두환
2024년 9월 21일 일본에서 검토됨
검증된 구매


전두환의 전기가 우리나라, 그것도 미네르바 일본 평전선으로 나온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나카소입니다. 네야스히로 총리와의 한일 첫 정상회담, 랑군의 북한 공작원에 의한 암살 미수 사건 등이다. 하지만 사회의 젊은이로부터 중견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박정희나 전두환에 의한 군정시대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늘고 있다. 하다 그런 모습에 유래하고 있다고 상상된다.

그런데, 이렇게 드문 전두환의 생애를 쫓은 본서이지만, 저자의 자저 『한국 현대사-역대 대통령의 영광과 赉跌』(중공신서)의 공백 를 채우기 위해 한국 현대사에 놓는 그의 자리매김에 노력이 쏟아지고 있어 그 평가도 비교적 중정이다. 큰 시대의 흐름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1980년 미국 서신냉전이라는 국제환경 아래서야말로 겨우 존재할 수 있었던, 이른바 늦게 나온 무리 사이의 '반공' 정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심지어 1979 해에 박정희가 암살된 시점에서는 국군보안사령관이라는 요직에 있었다고는 해도 일개 육군소장에 불과했던 전두환이 상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한 숙군 쿠데타, 민주화 운동을 크게 규모에 탄압한 광주사건이라는 두 가지 정변을 강행해까지 왜 스스로 대통령에까지 올라갔는가 하는 동기부분이 지금 하나 모르겠다. 

그는 박정희처럼 평소부터 세상을 우울하게 말한다. "사"타입의 인물이 아니었고, 또 박이 5·16 쿠데타를 일으킨 1960년대와 달리, 그의 밑에서 70년대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후에는 군부가 다시 국가의 현대화에 나서기 대의명분은 전혀 좋을 만큼 없었을 것이다(그러므로 '반공'과 '북퉁' 즉 북한의 위협을 싸워야 했다) 저자는 한국의 저널리스트·조갑제의 분석을 인용하면서, 두환이 군내에서의 권력 장악을 목표로 한 숙군 쿠데타의 보복을 두려워한 것, 또 박정희의 직접적인 후계자인 최규 여름 대통령들을 '유신잔당'이라고 비난하는 야당세력에 의한 급격한 민주화운동 극단적으로 경보 계명한 것을 지적하고 있다 표면에 나타난

정치적 사건의 흐름으로부터 말하면 그대로인 것이지만, 평자는 전두환이 군내에 부식하고 있던 사조·하나페(일심회)의 세력 박정희의 사후에도 계속 유지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닌가, 라고 추측한다. 

하나페는 1964년에 전두환·노태우 등 육군사관학교 11기생을 중심으로 결성된 것으로, 이후에도 박정희의 묵인하에 주로 영남 (경상도) 출신자 육사 졸업생을 모집하면서 군내에서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군대의 중요한 포스 를 거의 독점해 청와대를 비롯해 내각각료와 국가안전기획부장, 여당민주정당의 국회의원 등 문민포스트에도 많이 진출했다. 그 이후 밖은 계속 그 지위를 유지해, 1993년에 김영삼의 문민 정권이 성립해 마침내 그들은 군으로부터 일제히 추방되게 되었다. 한국군 알려지지 않은 진실-군사 정권의 내막'상·하(광인사)가 가장 자세하다

. 두환·노태우를 톱 하나페의 군인들은 좀더 빨리 제거되었을 것이다. 차지한 전두환을 하고, 일군인으로서는 지극히 돌출한 행동에 달리게 한 것이 아닐까. 하에 제정된 제5공화국 헌법에서는 대통령의 임기가 1기 7년(본서의 부제 「숫자는 럭키 세븐이다」는, 이 임기를 지시한 전두환의 발언에 연관되어 있다)로 재선의 길도 엄격히 닫혀 있었다 전두환에는 박정희와 같은 종신 대통령이 될 의사는 없고, 자신의 다음에는 노태우당을 후계자로 하고(다만 대통령을 퇴임 후에도 원정을 깔 예정은 실제로도 있었지만) 하나페의 세력을 계속 유지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 두환의 진의가 이즈코에 있었더라도, 그는 1987년에 민주화 선언을 발표해 후계 대통령이 된 오랜 동맹·노태우에 의해 일찌감치 「배신당해」, 단번에 전락하는 우울해진다 된다 상세한 경위는 본서 에 양보하지만, 만년에 공간한 회상록 중에서도 한때 적대한 야당 세력보다 노태우에 대한 원한 괴로움이 여러가지 쓰여져 있는 것 같다. 되고, 게다가 1996년에는 두 사람 모두 한때의 숙군 쿠데타와 광주 사건의 수모자로 심판되는 몸이 되었다. 을 닫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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