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5

김해경 “부수고 새로 짓기 관행에 ‘한국 근현대 시대성’ 담은 공원들 사라져” - 경향신문

김해경 “부수고 새로 짓기 관행에 ‘한국 근현대 시대성’ 담은 공원들 사라져” - 경향신문

김해경 “부수고 새로 짓기 관행에 ‘한국 근현대 시대성’ 담은 공원들 사라져”

입력 : 2020.01.27 배문규 기자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 펴낸 김해경 건국대 교수




김해경 건국대 교수가 지난 20일 서울 정동길에서 최근 펴낸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을 소개하고 있다. 김정근 선임기자

한국 최초의 공원은 어디일까? 한국 최초로 카페가 들어선 공원은? 한국에 골프장이 처음 들어선 곳은? 정답은 순서대로 1888년 인천 응봉산의 각국공원(Public Garden), 1914년 서울 탑골공원, 1921년 서울 효창공원이다.


아는 게 없다. 주변에 너무 흔하고 익숙한 공원인데 말이다.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은 130여년 전 한국에 ‘이식된’ 공원의 역사를 처음 정리한 책이다. 지난 20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근대공원연구가 김해경 건국대 녹지환경계획학과 교수는 “한국의 공원에는 나이테가 없다”고 말한다. 부수고 새로 짓는 데만 익숙한 한국 근현대의 기록으로도 읽힌다.


“조선 사회에선 저잣거리에서도 계급이 나뉘어 있잖아요. 공원은 열려 있고 차별 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책 읽고 싶으면 읽고,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행위와 신분의 제약이 없는 근대성의 공간이었던 셈이죠.” 근대 이전에도 ‘정원’은 있었지만, 모든 시민이 향유하는 ‘공원(公園)’은 아니었다. 1888년 개항과 함께 인천의 조계지 사이에 들어선 각국공원이 한국 최초의 공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민중의 성금으로 만든 독립공원, 최초의 도심공원 탑골공원이 세워지더니, 1920년대에 이르면 조선의 흔적을 지운 장충단공원, 사직단공원, 효창원공원, 훈련원공원이 들어선다. 조선 왕실의 궁궐은 ‘테마 파크’로 변했고, 각 지역에 늘어가는 신사(神社)도 공원이 됐다. 식민화와 근대화가 착종된 한국 공원의 시작이다.


공원도 시대별 변천이 있다. “독립문을 세우며 공원을 함께 조성한 사실은 대부분 모르죠. 능력에 비해 출신이 나빴던 개화기 지식인들이 특히 공원에 매력을 느낀 게 아닌가 싶어요. 일제강점기는 어찌됐든 근대적 삶을 향유하는 공간입니다. 해방 이후는 정치적 선전이 이뤄지는 이데올로기의 장이 되기도 하죠.”


서울에서 역사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공간 중 하나가 효창공원이다. 조선 왕실의 효창묘가 일제강점기 용산에 일본인 거주가 늘어나면서 공원으로 바뀌게 된다. 해방 이후 이봉창, 윤봉길 등 독립운동가의 유골이 묻히고, 1949년 백범 김구도 안장되면서 순국선열의 공간으로 변모한다. 현재는 생태공원, 원효대사 동상, 반공투사위령탑 등 다양한 공간이 섞여 있다. 최근 성역화 사업을 두고 ‘무엇을 기억할지’에 대한 논란도 있다.


“한국에선 공원에 ‘노후화’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고쳐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새 걸로 바꿔요. 일제강점기, 1970년대 각 시대성을 보여주는 공원이 하나도 없는 이유입니다.” 역사 청산의 문제와도 얽힌다. “무엇을 보존하고 없애야 할지, 단순히 물리적 형태를 없앤다고 청산은 아니잖아요. 그냥 지워버리면 다음 세대는 잘못된 역사도 알 수 없고요. 시간을 가지고 그대로 두면서 ‘역사적 층위’를 두껍게 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다보면 복잡한 규칙을 가진 야구가 근대적 규율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졌다든지, 일제강점기 벚꽃 놀이가 여가 생활의 원조라든지, 공원에서의 각종 행위들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직접 닿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공원의 존재가 당연하다보니 역사가 있다는 생각조차 못하는 것 같아요. 책을 통해 주변 공간을 다른 시선으로 보셨으면 합니다.”

김해경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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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 
김해경 (지은이)정은문고2020-01-14
























Sales Point : 203

9.0 100자평(3)리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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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절 확인일 : 2020-09-07

책소개
경성에 전차가 다니고 처음 전등 불빛이 켜질 때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그야말로 낭만이 흐른다. 멋진 신사모와 신식 양장을 갖춘 모던걸 모던보이가 양산을 쓰고 등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근대라고 말하는 20세기 초는 일제강점기였다. 모던걸 모던보이와 더불어 도시빈민과 룸펜이 뒤섞여 공존하던 곳이 바로 공원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최초 공원은 어디일까. 각국공원? 파고다공원? 한국 공원의 역사가 130년이라고는 하지만 그 흔적은 지금 찾기 힘들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시대는 시간 저편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우리의 공원 역사를 통해 우리가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찾자.


목차


들어가는 글

1부 근대공원 태어나다
1. 외국에서 보고 온 이상 공간, 공원
2. 한국의 최초 공원, 각국공원
3. 민중의 첫 공원, 독립공원
4. 경성의 최초 공원, 파고다공원

2부 근대공원의 성장통
1. 조선의 흔적 지우기
2. 그들의 종교, 근대공원이 되다
3. 궁궐의 개방과 테마파크화
4. 일제가 새롭게 제시하다

3부 도시문화를 느끼다
1. 인공 자연의 대중 향유 장소
2. 공공과 상업, 소외와 집중의 장소
3. 끽다점에서 맥주를 마시다
4. 근대 교양과 아동이 등장하다

4부 공원은 나이테가 없다
1. 사라진 원형, 원형과 복원의 충돌
2. 공공장소의 이념 동상과 기억을 강요하는 기념비
3. 갈 곳 잃은 노년의 공원 이야기

나가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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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2020년 7월부터 시행되는 '도시공원 일몰제' 논의가 활발하다.



P. 15~16 일제강점기 이전에 공원을 계획했다
서구에서 근대공원은 왕실을 비롯한 귀족의 사냥터와 정원을 노동자 계급과 새로운 중산층에게 개방한 것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에 걸친 시민 사회의 성숙과 민주화의 노력이 맺은 결실 또는 근대적인 요구도에 따라서 발명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서구와는 다른 사회적 배경으로 인해 근대공원의 도입, 수용 과정과 전개 과정이 다른 양상을 보인다. 당시 공원은 대중을 위한 공공시설로 전형적인 근대의 산물이거나 근대 산업도시의 문명 시설과 국민의식을 창출하는 데 도움되는 사회 계몽 시설, 식민 기획colonial project에 의한 근대 문명 시설의 이식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전부터 우리는 공원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 공원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 있었다. 공원은 외부로부터의 이식이 아닌 다양한 사회적 스펙트럼과 자발적 태동을 안고 태어났다.... 더보기
P. 48~54 민중의 공원 탄생, 독립공원
독립협회가 본 조선은 청일전쟁 결과 일본의 승리로 청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의 내정간섭을 받아왔다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독립을 기념할 만한 사적을 만들어 세계에 광고하고 후세에 독립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이 공존했다.
독립협회는 「독립신문」 1896년 7월 2일 기사를 통해 모화관 주변을 ‘독립공원지’로 만들고자 하는 계획을 공표했다. 조성 목적은 ‘조선이 독립한 표식’이었다. 조선의 독립은 경사스러운 일이며, 독립공원은 내외 국민의 차별없이 맑은 기운과 운동을 행할 수 있는 공간이자 인민의 위생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여겼다.
독립협회는 독립공원의 역할과 필요성뿐만 아니라 지속적으로 도시 위생 문제와 환경 문제를 비롯한 도시공원과 녹지에 관해 다양한 의견과 활동을 펼쳤다. 「독립신문」 1896년 8월 11일 기사에서는 ‘식목일(종목일)’ 제정을 주장했다. 마을 주변 공지에 나무를 심어 성장 후 판 돈으로 공원 조성, 도로 개수 등에 도움이 되는 장점을 서술했다. 접기
P. 77 경성 최초의 공원 탄생, 파고다공원
탑골공원 조성 기사는 1899년에 집중적으로 등장한다. 「독립신문」 1899년 3월 16일 자에 실린 “탑동 등지를 공원으로 만든다더니 일전에 어느 서양 사람이 그 골에 가서 경계 4표를 점량하였다더라”는 글은 공원 전 부지의 측량 활동을 알 수 있다. 「매일신문」 1899년 3월 21일 자는 “중서 탑동에 있는 탑을 위하여 장차 인가를 헐고 공원을 만든다는데, 그 탑은 고려대 원나라 보탑공주가 부처에게 시주한 탑이라더라”로, 3월 하순에는 공원 면적 확보를 위한 민가 철거 계획이 등장한다. 탑골공원의 조성 시기는 1934년 『경성부사』 제1권의 내용을 근거로 해관 총세무사인 브라운이 1897년 조성한 것으로 적고 있다. 탑골공원 조성 건의만 1897년에 등장하며 1902년 개원 이전까지 공원 부지 확보와 간단한 공원 시설 공사가 진행되었다. 접기
P. 113~114 일제강점기, 지신과 곡물신에게 제를 올리던 사직단의 공원화 사업
1920년대 초 경성부의 주요 사업인 공원 조성 사업의 일환으로 사직단 공원화 사업이 착수되었다. 경성부는 1921년 조선총독부로부터 사직단 부지를 차입하여 사직단을 헐고 운동장을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으나 민심의 반대로 실행되지 못했다. 「동아일보」 1922년 10월 21일 기사는 “사직단은 전부 그대로 보관하여 두고, 운동장은 사직 앞 남편에 설치하고 (중략) 우선 삼림을 정리하며, 그 안에 길을 각 처로 새로 내고, 동편에 정구운동장을 설치한 후에 (중략) 연못과 화단과 분수 등도 설치할 터이라더라”는 내용으로 구체적인 공원 변화를 예시한 후 1922년 10월에 공원으로 개장했다. 1923년에는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대납량대大納凉臺, 휴게 시설인 정자와 벤치, 조경 시설로 화단을 도입했고, 1926년에는 운동 시설인 테니스 코트, 편의 시설인 전등과 공동변소, 휴게 시설인 정자, 수경 요소인 못, 경관 식재로 벚나무와 단풍나무가 함께 정비되었다. 접기
P. 224 의도된 공간에 벚나무를 식재하는 조선총독부
신규 조성된 근대공원과 신사 주변에도 대량 식재하여 벚나무는 경성의 각 공간과 전국으로 빠르게 증가했다. 1910년에는 남산공원의 성격을 부각시키고자 벚나무를 식재했고, 1919년에는 장충단, 1926년에는 사직단에 1백여 주를 심었다.169) 「동아일보」 1931년 12월 2일 기사에 “경성식림묘포京城植林苗圃에서 생산하는 조선 산앵山櫻은 정원용170)으로 매우 적당하여 희망하는 사람은 경성부 권업계勸業係에 신청하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를 보아 벚나무 확산에는 조선총독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접기
P. 226 조선의 진달래와 일제의 벚나무
이는 일본의 무사를 상징하는 벚꽃과 조선의 꽃인 진달래 사이에 정서상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공원에 심어진 벚나무는 기존에 없던 인공 식재된 새로운 경관으로 봄철 일시적 개화는 관앵과 야앵 문화로 이어졌다. 왕벚나무는 일제강점기 이전에도 있었지만, 한시나 민요 중에 이를 소재로 한 작품이 없다. 일제강점기에도 벚꽃을 소재로 한 문학이나 예술작품이 희소했다. 다만 일본 벚꽃의 위상에 버금가는 꽃은 진달래였다. 『별건곤』 1929년 제20호에서는 조선의 명화를 진달래·해당화·복숭아꽃·배꽃·철쭉·살구꽃·벚꽃·할미꽃 순으로 거론했다. 봄을 대표하는 꽃으로 진달래를 거론하면서 “조선 사람의 진달래에 대한 애착심은 결코 일본 사람의 벚꽃에 대한 애착심에 못지 않으며, 여러 가지로 설명하지 않아도 예로부터 모든 사람의 많은 시와 노래를 가지고도 족히 증명할 수 있다”라고 서술하였다. 기사를 쓴 시기가 전국적으로 벚나무 식재가 보편화되고 벚꽃놀이가 대중화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진달래를 조선 제일의 명화로 보았다. 이는 일본의 무사를 상징하는 벚꽃과 조선의 꽃인 진달래 사이에 정서상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공원에 심어진 벚나무는 기존에 없던 인공 식재된 새로운 경관으로 봄철 일시적 개화는 관앵과 야앵 문화로 이어졌다. 접기
P. 258~259 모던보이와 모던걸, 노인과 룸펜이 한 공간에
경성의 모던걸과 모던보이에게 장충단공원은 하이킹 코스와 데이트 장소로 이용되었다. 신작로 개설 전에는 광희문행 전차를 타고 동대문소학교 앞 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접근할 수 있었다. 1922년에는 황금정 6정목(현 을지로 6가)에서 장충단까지 양측에 벚나무를 심은 신작로를 개설했고, 1926년에는 장충단행 전차를 개통했다. 경성 유람 코스에 장충단공원이 포함되었고, 야간 개방까지 이루어져 장충단공원의 이용 계층은 더욱 다양화되었다.
1936년의 『삼천리』 8권 6호를 보면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장충단공원에서 하이킹을 즐기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저녁 무렵 남소문 터를 지나 남쪽의 송림 사이 장충단에 들러 사탕을 사서 먹거나 한강으로 나아가 나룻배 타는 코스를 설명했다. 나이가 지긋한 이용자는 『개벽』 1922년 8월호에 서술한 것처럼 송림 사이의 동선을 따라 산책을 즐기거나 계류에서 탁족濯足을 즐겼다. 「동아일보」 1921년 7월 16일 기사에서 무더운 복날 놀이 중 장충단의 탁족과 악박골의 약수를 거론하며 장충단은 좋은 피서 장소로 다과와 함께 소나무 녹음 사이의 맑은 바람을 쐴 수 있다고 했다. 경성 시내의 아낙들은 계류를 빨래터로 활용하기도 하여 장충단공원은 경성 부민 누구나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접기


추천글

이 책을 추천한 다른 분들 :
동아일보
- 동아일보 2020년 1월 18일자 '새로 나왔어요'
경향신문
- 경향신문 2020년 1월 27일자
한겨레

- 한겨레 신문 2020년 1월 31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김해경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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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대학교에서 ‘사회적 구성으로 본 서울의 역사문화경관 해석’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간에 구현되는 실제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조경기사, 건축기사 그리고 문화재수리기술자(조경)를 취득했다. (사)한국전통조경학회 사무국장, 서울시 문화재전문위원,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를 거쳐 현재는 건국대학교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면서 경기도 문화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통 조경을 전공으로 하였으나 전통 사상과 공간의 상관관계보다 당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실증적인 도상 자료에 관심이 많았다. 조경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실제적인 공간 변화를 근대공원과 근대도시문화 관련 논문으로 발표했다.
공저로 『오늘, 옛 경관을 다시 읽다』, 『1930~40년대 경성의 도시체험과 도시문제』가 있고, 번역서로 『조경 설계 키워드 52: 조경가를 꿈꾸는 이들을 위한』이 있다. 접기

최근작 :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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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소개
한국 최초의 공원을 찾아서
공원의 역사는 130여 년에 이르나,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경성에 전차가 다니고 처음 전등 불빛이 켜질 때 환호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면 그야말로 낭만이 흐른다. 멋진 신사모와 신식 양장을 갖춘 모던걸 모던보이가 양산을 쓰고 등장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리가 근대라고 말하는 20세기 초는 일제강점기였다. 모던걸 모던보이와 더불어 도시빈민과 룸펜이 뒤섞여 공존하던 곳이 바로 공원이었다. 그런데 우리의 최초 공원은 어디일까. 각국공원? 파고다공원? 한국 공원의 역사가 130년이라고는 하지만 그 흔적은 지금 찾기 힘들다.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 시대는 시간 저편으로 흘러간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올해 7월부터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된다. ‘도시공원 일몰제’란 공원이 도시계획 시설로 지정된 후 일정 기간이 지나도록 사업이 진행되지 않으면 자동으로 지정이 해제되는 제도를 말한다. 환경운동연합에서는 ‘2020년 사라지는 우리동네 공원찾기’ 운동을 전개하면서 도시공원을 지키고자 노력하고 있으나 코앞으로 다가온 기한과 예산 부족으로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못 하는 실정이다. 도시에서 공원은 국민 삶의 질 지표이기도 하다. 하지만 계획된 부지가 공원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 공원을 잃어버리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우리의 공원 역사를 통해 우리가 놓치거나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찾자.

근대와 함께 탄생한 공원
한국에서 공원은 ‘근대’와 함께 유입되었다. 첫 등장은 1888년 ‘public garden’이란 표기로 시작한다. 인천의 각국조계지 내 각 영사관이 공유한 공공 정원 개념이었다. 1897년에는 남산 아래 일본인 거류지 부근에 일본 신사를 조성하고 주변을 왜성대공원이라 불렀다. 종로 한복판 원각사지십층석탑이 있는 공간에는 민가를 헐고 담장을 둘러서 경성 최초의 공원인 파고다공원을 조성했다. 서대문 밖에는 독립협회가 독립문과 독립공원을 구축했으나 이때만 해도 우리가 생각하는 공원으로서의 기능을 실제로 경험한 이들은 드물었다. 하지만 근대공원의 확장은 당대의 도시문화를 만들었다. 공원은 인공 자연을 향유하는 대중 장소였으며, 공공과 상업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가 다양한 문화 체험을 하는 데이트 장소였으며, 룸펜과 노인이 머무는 소외의 공간이기도 했다. 성인은 끽다점에서 맥주를 마셨지만 한편에는 아동을 위한 공간이 들어섰다. 당시 사람들은 단어로만 존재하던 ‘공원’을 어떤 모습으로 맞이했고, 또 향유했을까?

조선의 흔적 지우기, 근대공원의 성장에는 아픔이 있다
근대공원의 조성 배경에는 권력 집단의 이해가 반영되어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이라 불리는 각국공원은 각국의 공동 요구로 공동조계지 사이에 위치했다. 그러나 조계지의 특성상 조선인의 이용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독립협회의 독립에 대한 시각적 구현체로 조성된 독립공원 또한 존치 기간이 매우 짧아서 공원의 효용 가치를 찾기 쉽지 않다. 조선 왕실에 의해 구축된 파고다공원(탑골공원) 또한 조성 초기에는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이후 일제강점기 근대공원 조성과 유지에는 조선총독부와 경성부가 있었다. 조선시대 관공서와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던 지역에 조선의 흔적을 지우고 장충단공원, 사직단공원, 효창원공원, 훈련원공원이 조성됐다. 특히 대한제국 군인의 추모 공간이었던 장충단공원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박문사가 들어섰고, 파고다공원에는 재정고문 메가타 다네타로 동상이 세워졌다. 남산에는 일본인의 종교와 맞닿은 신사공원이 들어섰고, 각 지역에 신사가 늘어가는 만큼 그 신사는 공원으로 변모했다.

위락 공간으로 변모한 궁궐
조선 왕실이 살던 궁궐 또한 제대로 존재할 수 없었다. 개방이라는 미명하에 식물원과 동물원, 볼거리가 가득한 테마파크로 변했다. 당시 신문의 만문만화漫文漫畵를 보면 위락 공간으로 변모한 창경궁(창경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창경원에 밤벚꽃놀이가 본격화되면서 경성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창경원을 찾았다. 벚꽃 사이에 켜진 일루미네이션 아래에 짧은 치마를 입고 양산을 든 모던걸, 모던보이, 도포를 입은 노인이 동시에 보이며, 다른 만문만화에서도 어린아이, 아버지, 룸펜까지 밤벚꽃놀이를 위해 창경원으로 모여들었다. 벚꽃 터널을 빠르게 휘돌아 나온 조선인 구경꾼들은 춘당지 앞 잔디에 설치된 공연장 바닥에 앉아서 ‘값싼 레뷰’를 하는 ‘레뷰걸’의 종아리 곡선에 황홀해하고 ‘흔한 요술, 기술’에 우레 같은 박수를 쳤다. 전통 무용·가부키 같은 일본의 전통 연행, 서양 음악과 춤, 마술·곡예 등 서로 이질적인 내용의 연행이 이어지는 방식인 레뷰는 근대를 설명하는 수사의 하나이다. 관중은 무작위로 이어지는 쇼들을 보기 위해 일시적으로 머무르다 빠져나갔으며, 관람 행태는 진중한 몰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양상을 보였다. 장충단공원은 창경원에 비해 식재된 벚나무는 소규모이지만, 남산 자락의 일본인 거주지와 가깝고 일본 전통악기인 사미센 연주와 음주가무가 허용되어 주변 일본인들이 즐겨 찾았다.

사라진 원형, 근대공원 복원의 오류
해방 이후 공원에 대한 이해 부족은 전통을 빙자한 이질적인 콘셉트로 근대공원을 복원하는 오류를 범했다. 원형과 복원이 충돌하면서 공원의 구성 요소는 기억의 매개체로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걷어내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독립공원 내 복원한 독립관은 원위치가 아니며, 규모와 현판 또한 원형과 다르다. 장충단공원의 리모델링은 근대라는 역사성이 콘셉트였지만 전통을 띈 건물로 형상화되었고, 훈련원공원의 명칭은 지속성을 지녔지만 제자리에 위치하지 못했다. 또한 특정 권력이나 이해관계가 속한 집단의 요구로 과거 기억을 되살리는 작업이 아닌 기억을 제거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념 동상이 공원의 상징성과 상관없이 들어오고 뜬금없는 기념비는 기억을 강요했다. 탑골공원의 경우에만 3·1운동의 상징성을 부각시킨 기념비가 있었고, 다른 공원에는 맥락상 관련 없는 동상과 기념비들이 도입되었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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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도 이처럼 우리나라 근대공원 관련 사진, 지도들을 다채롭게 보여 주지는 못할 겁니다. 저자의 학문적 열정과 실증적 고증에 경의를 표합니다!
최윤종 2020-01-20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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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통해 보는 우리 ‘근대‘의 자화상, 공간을 통해 근대의 내력과 일상을 살피는 모범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최성환 2020-01-21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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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이되어 근대공원을 산책해보고 싶다
빠따띠나 2020-02-05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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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실증적 접근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산책'은
200점이 넘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지도, 사진자료와 문헌들을
하나 하나 분석하며 우리나라 근대공원에 관한 얘기를
써내려간 글입니다

근대공간연구가인 김해경 교수의 이번 글은
소설이나 수필처럼 가볍게 읽히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연구자로서 지도, 사진, 문헌자료들에 근거하여
논리와 합리적 추론의 방법으로 글을 썼으니까요

요즘은 인문학이란 미명 하에
사실이나 자료에 근거한 검증없이
주관적이고 추상적이며 자기생각 기술적인
책들이 넘쳐나는 듯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은
도상자료와 문헌의 철저한 고증을 통해
실증적 인문학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합니다!
- 접기
최윤종 2020-01-20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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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을 통해 우리 근대의 자화상을 읽다



요즘들어 근대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공원'도 근대문화유산의 개념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은 근대 공원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김해경 교수가 그동안의 성과를 바탕으로, 공원 탄생, 성장통, 도시문화, 근대공원의 현재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총 4부 구성으로 풀어놓은 것이다.



1부 근대공원 태어나다

'공원'은 근대에 잘 어울리는 단어이다. 근대공원의 탄생과정을 추적하여, 우리 역사에서 '공원'이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를 살피고, 최초의 공원인 각국공원, 독립공원, 파고다 공원의 탄생 내력을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한국최초, 민중최초, 경성최초의 의미를 부여했다.



2부 근대공원의 성장통

식민지 시대의 '근대'는 늘 이중성이 담겨 있다. 근대공원에도 식민정책의 의도가 담겨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 민족의 정신사까지 지배하려 했던 종교정책과 공원조성이 결합되었고, 전통성을 지우려는 작업과도 연계되었음을 알게한다. 조선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 일본 신사와 공원의 결합, 궁궐의 개방에 담긴 의미 등을 시대의 아픔과 함께 근대공원의 성장통을 다루었다.



3부 도시문화를 느끼다

공원에서 펼쳐치는 일상과 도시문화를 향유하는 근대 사회상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인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에 가장 부합되는 부분이다. 공원에 맥주가 등장하는 장면에 주목하는 해석도 흥미롭고, 당대 광고와 사진 등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자료들이 같이 제시되어 이해하기 쉽게 되어있다.



4부 공원은 나이테가 없다

뭔가 의미심장한 제목이다. 공원의 역사에 담긴 근대의 의미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없이 공원의 원형이 상실되어 가는 현실을 지적하면서, 현 시대에 공원의 모습과 생활상을 함께 다루었다.



우리에게 '근대'란 무엇인가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대의 공간에 담긴 내력과 변화과정을 잘 살피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공원을 통해 본 우리 근대의 자화상 같은 느낌이다.

공원에 담긴 새로움, 도시문화의 일상을 느끼면서, 식민지의 한계도 확인할 수 있다.

교양서적으로도 흥미롭지만, 근대사를 공간 중심으로 살피는 연구자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는 책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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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환 2020-01-21 공감(3)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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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지만 불성실한 책

근대공원. 우리 주변에서 자주 접하여 낯익지만, 지금까지 그 역사에 대해 거의 탐구되지 않았던 대상. 일단 이 새로운 대상의 역사에 대해 글쓰기를 하였다는 개척자적이고 선구자적인 도전정신에 한 표를 던진다. 그리고 두번째는 당시 공식역사자료는 물론 신문기사와 지도와 설계도, 사적 기록, 사진 등을 모조리 뒤지는 그 엄격한 실증적 탐구정신에 다시 한 표를 던진다.

이 책을 읽고 가장 놀란 사실은 독립협회 규칙 제2조에 협회의 설립목적과 사업으로 독립문과 함께 독립공원의 건설이 명기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니 독립신문의 발간이 명기되어 있을 줄 알았는데, 공원의 조성을 신문의 발간보다도 더 중요하게 여겼단 말인가? 

독립신문에 의하면, 독립공원은 '조선이 독립한 표식'으로서, 내외 국민의 차별없이 맑은 기운과 운동을 행할 수 있는 공간이자 인민의 위생에 도움이 되는 공간으로 여겨지고 있다. 독립공원을 건설하려고 한 당대 개화파 지식인들이 공원에 투영하고자 한 시대정신과 엄청난 기대를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신문의 기록만으로는 그들이 왜 이렇게 독립공원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하였을까 하는 의문은 책장을 덮으면서도 여전히 남는다.

한편, 앞서 본 이 책의 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시종일관 몰입을 방해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글쓰기의 기본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주어와 술어가 일치하지 않는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또한 술어는 있는데 주어가 불분명하다든지, 문장이 뭘 의미하는지 불확실하다든지, 일본식 한자를 번역없이 그대로 쓴다든지, 사진이나 도표의 잘못된 혹은 뒤바뀐 설명 등등. 저자가 잘못 썼다고 하더라도 출판사의 편집과 교정 과정에서 쉽게 걸러졌을 수 있을 듯한 오류들인데,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 또한 놀랍다.

결국 내용적으로는 경의를 표할 정도로 대단히 성실하게 공들여 쓴 저작이면서도, 글쓰기라는 형식에서는 인문학 책중에서 그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기본을 지키지 않은 불성실한 책인 듯하다. 혹시 개정판을 낸다면 이러한 오류들을 수정하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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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알 2021-01-1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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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연휴 인사드립니다.^^

이웃님들*^^*내일부터 바빠서 서재에 들어 올 시간이 없을 것 같습니다.그래서 다가오는 설연휴 미리 인사드립니다.^^벌써 설연휴가 다가오다니 시간이 정말 잘 가는 것 같습니다. 이웃님들*^^*온가족 모이는 설 연휴 즐겁고 행복하게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그리고 귀성길 조심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술 먹고 전화해도 되는데 한국에세이 궁금한 책~ ... + 더보기
후애(厚愛) 2020-01-21 공감 (4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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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

모던걸 모던보이의 근대공원 산책-김해경 지음, 정은문고특별했던 공원에 대한 기억이 여전하다. 사직단이 있어 이름 또한 사직공원으로 한때 동물원이 있던 곳이다. 구비구비 이어진 길가로 큰키의 참나무들이 즐비했다. 봄 초록으로부터 시작된 공원산책은 가을 도토리 떨어지는 소리에 머뭇거렸고 눈쌓인 길을 놀이터 삼은 아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도시를 떠난 이제는 마을 뒷산이 그를 대신한다.'공원은 나이테가 없다'는 문장에 솔깃하며 근대공원, '해찰선생' 건국대학교 김해경 교수의 눈으로 본 공원으로 들어간다.
무진無盡 2020-01-20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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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40년대 경성의 도시체험과 도시문제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총서 16
김제정 , 김해경 , 염복규 , 오태영 , 이양숙 , 장성규 저자(글) · 서울시립대학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엮음
라움 · 2014년 05월 26일
10.0
(1개의 리뷰)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930-40년대 경성이 도시로서 가졌던 문제와 갈등, 저항을 다각도로 분석한 여러 논문을 모은 것이다. 이곳의 논문들은, 국사학, 국문학, 조경학 등 각기 학문 분야가 다르고 관점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식민지배의 모순을 전제로 경성에서서 근대적 도시문제, 계급, 도시경관의 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천착하거나, 이들 문제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김제정
인물정보
대학/대학원 교수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교수 HK교수

저자(글) 김해경
인물정보
대학/대학원 교수


우리경관연구실 이락재 소장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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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ㆍ 엮은이의 말 · 9

제1부 식민지 도시 경성의 위상과 이미지 · 15
근대 경성의 용례와 그 의미의 변화 ? 김제정 · 17
식민지 시기 ‘경성’의 문화지정학적 위상에 관한 연구 ? 오태영 · 55
신체제기 소설의 ‘경성’ 형상화와 ‘주변부’ 인식 ? 장성규 · 103

제2부 경성의 도시문제와 저항 · 133
식민지 시기 도시문제를 둘러싼 갈등과 ‘민족적 대립의 정치’ - 염복규 · 135
에스니시티와 민족의 거리 ? 이양숙 · 163
1930년대 초반 경성지역 전기사업 부영화 운동 ? 김제정 · 201
일제강점기 장충단공원 변화에 관한 연구 ? 김해경 · 259
채만식 소설에 나타난 1941년의 경성과 지식인 ? 이양숙 · 305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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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그동안 반일/친일의 프리즘을 벗어나, 풍속을 통해 경성의 모더니티를 주장한 연구나 미시사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변화를 서술한 연구는 많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보다 한 단계 진전된 연구의 성과로서, 1930-40년대에 경성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에서 식민지배의 모순이 근대를 통해 어떻게 관철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준다.

출판사 서평


◎ 책소개

이 책은 제목 그대로 1930-40년대 경성이 도시로서 가졌던 문제와 갈등, 저항을 다각도로 분석한 여러 논문을 모은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도시’라는 용어는 결코 중립적인 사회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경성은 식민지의 중앙이지만 제국일본의 지방이라는 이중적인 규정을 받고 있었으며 식민지배의 억압과 차별이 오히려 다른 곳보다 뚜렷하게 표출되는 장소였다. 경성이 근대적 도시로서 변모해가는 과정은 오히려 식민지배의 모순이 첨예해지고 민족 간의 차별과 갈등이 내재화되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 책에 실린 논문들이 그저 식민지배의 억압성을 강조하는 일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이곳의 논문들은, 국사학, 국문학, 조경학 등 각기 학문 분야가 다르고 관점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나, 식민지배의 모순을 전제로 경성에서서 근대적 도시문제, 계급, 도시경관의 변화 등을 구체적으로 천착하거나, 이들 문제가 어떻게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 출판사 제공 책소개

그동안 반일/친일의 프리즘을 벗어나, 풍속을 통해 경성의 모더니티를 주장한 연구나 미시사적으로 식민지 시대의 변화를 서술한 연구는 많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보다 한 단계 진전된 연구의 성과로서, 1930-40년대에 경성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공간에서 식민지배의 모순이 근대를 통해 어떻게 관철되는가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준다. 이는 지식인의 정신세계에 근본적 자기모순으로 내면화되기도 하고, 특정한 도시경관이 의도적으로 변용되는 과정으로 이루어지기도 하며, 한정된 지방자치의 공간에서 자본의 이익이 타협의 과정을 겪으면서도 목적을 달성하는, 다양한 면모를 지닌다. 엮은이로서도 이 책을 준비하며 많은 공부가 되었기에, 식민지시대 경성(京城) 연구의 최신 성과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되지 않을까하며 감히 추천하고자 하는 바이다.

발행(출시)일자 2014년 05월 26일
쪽수 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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