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6

[미국이 패권 국가가 아닌 '보통 열강'이 될 수 있겠는가? ] Vladimir Tikhono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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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ladimir Tikhon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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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패권 국가가 아닌 '보통 열강'이 될 수 있겠는가? ]

우리에게 "미국 제국주의"라는 말은 귀에 익지만, 사실 구한말의 조선 지식인들이 - 유럽 열강에 비해 - 미국을 대개 더 좋게 봤던 이유 중의 하나는, 미국이 19세기 말의 필리핀 정복 이전에 식민지를 가진 '제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미-서 전쟁과 미국에 의한 필리핀의 식민화는 조선 지식인 상당수에게 큰 실망을 안겼지만, 일단 동아시아에서 홍콩이나 베트남 등의 정식 식민지를 가진 유럽 국가와 달리 미국을 "영토적 야심이 그다지 없는 대국"으로 보는 것은 보편적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이 그 탄생의 시점부터 대외 정책에 소극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있었습니다. 원주민들에 대한 극도로 폭력적인 "제거 작전"을 해가면서 자국 영토에 편입해야 할 동서안 사이의 광활한 영토를 가지고, 또 남부에서 멕시코의 영토의 상당 부분을 전쟁해서 할양을 받은 영토 대국 미국으로서는, 굳이 해외 정책에 적극적일 필요까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1823년에 선포한 먼로주의 차원에서는 미 대륙 전체가 미국의 "영향권"으로 선정됐지만, 굳이 이외의 세계에 대해 제국주의 정책을 펼만한 분명한 이유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그 건국 과정에서 비록 프랑스로부터 결정적인 지원을 받았지만, 1792년에 영-불 전쟁이 발발한 뒤에 그 전쟁에 중립을 선포하고, 예컨대 1863년 러시아군의 잔혹한 폴란드 독립 투쟁의 진압에 대한 항의를 표망하자는 프랑스의 제안마저도 거절했습니다. 스페인 제국의 약화를 틈탄 미-서 전쟁 (1898년)과 필리핀의 식민화 등은 미국의 "제국화"가 시작됐다는 것을 과시했지만, 미국 사회 내에서의 반발은 엄청났습니다.  미국내 반제동맹 (Anti-Imperialist League)이 결성돼 마크 트웨인처럼 그 당시의 가장 유명한 문호나 앤드류 카네기 같은 주요 재벌들까지도 그 핵심 멤버가 된 것입니다. 즉, 미국의 지식인의 상당수뿐만 아니라 미국 자본가 상당수의 입장에서도 그 영토 바깥에서의 미국의 "세력 확장"은 "불필요한 짓거리"이었던 것이죠.  
그러면 미국이 도대체 어째다가 우리에게 익숙한 "미제"가 된 것입니까? 결국 발단은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미국 자본을 위한 "황금의 기회"였습니다. 참전국, 그 중에서는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의 수출 등으로 1914-7년 사이에 미국의 산업 생산은 32%나 증가됐습니다. J.P.모건 등 은행 자본은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의 융자 제공을 통해 미국을 전쟁에 빠진 세계의 채권국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채무 상환"의 차원에서라도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 등 연합국들의 승리를 보장 받으려 했는데, 1917년2월 러시아의 1차 혁명 이후에 동부 전선이 교란돼 그 승리는 불확실해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헨리 포드 등 상당수 재벌가들의 반대까지 무시하면서 미국은 같은 해 4월에 참전하게 된 것이죠. 즉, 제국으로의 전환의 발단은 일단 전쟁이 제공한 "비즈니스 기회"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은 미국의 산업 발달에 매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제1차 대전 이후의 미국은 패권적인 열망보다 고립주의적 지향을 더 강력하게 보였습니다. 즉 전쟁을 통해 "벌이"를 하되 "국제적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태도로 일관한 것입니다. 히램 존슨 (칼리포니아) 등 공화당계 국회 상원 의원들의 절대적 반대로 미국이 1차 대전 이후의 국제동맹에도 가입하지 않았는데, 가입을 반대한 이유는 바로 가입의 경우 국외 전쟁에 휘말려 "참전" 강요를 받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화당에서는 1940-41년까지 고립주의는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래도 루즈벨트가 결국에 가서는 미국의 지배층을 결속시켜 제2차 대전 참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격과 같은 반대쪽 도발 이외에는 독일과 일본이 영국과 프랑스 대신에 패권을 행사하는 세계에서는 미국 기업의 활동이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상이 크게 작용한 것입니다. 즉, 기존의 패권 국가인 영국의 "패권 약화"의 국면에서는, 미국이 그 자본의 대외 기업 활동을 보장 받기 위해서는 불가불 영국의 파트너이자 그 패권의 "상속국"으로 나서게 된 것입니다.  
​1945년 이후에 미국이 - 한국에 대한 1970년대 초반까지의 원조 등을 포함해서 - 그 세계 제국을 운영한 "동기"란 무엇이었을까요? 미국 기업들의 해외 자원/시장 확보는 분명 중요한 이유였겠지만, 그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을 겁니다. 미국이 한국 전쟁에 개입함으로서 남한이라는 이름의 아시아 대륙에서의 "교두보"를 끝까지 사수할 의지를 보였던 1950년여름 그 당시, 미국 국민총생산에서의 무역의 비율은 불과 9%이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 한국과 달리 - 미국은 상당히 자기 완결적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의 해외에서의 이해도 작동되었겠지만, 그것보다는 미국 제국 운영에 있어서는 두 개의 다른 요인들이 더 크게 작용됐습니다. 첫째, 무기 생산이라는 이름의 산업 경제 부양책이 미국 경제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데, 이 무기들의 주요 구매자는 바로 미국의 제국적 대외 정책의 주된 행위자인 국방부, 즉 펜타곤입니다. 둘째, 소비에트식의 - 자본가 계급을 당관료로 대체시킨 - 체제는 (그게 "진짜" 사회주의이었느냐는 논쟁과 별도로) 정통 (즉, 개인의 사유재산제도에 기반한) 자본주의의 실천이 가능한 유력한 대안으로 부상돼 특히 1949년 중국 대륙의 공산화 이후에 세계에 확산하게 된 것은 미국 지배 계급 전체로서는 "도전"이 된 겁니다. 즉, "세계적 반공 전선" 총지휘의 차원에서는, 다소의 지출을 감수하면서 패권적 역할을 자임한 셈입니다.  
대안으로서의 소비에트식 체제는 이미 흔적 없이 갔습니다. 중국은 비록 당국가지만, 그 체제는 광의의 (관료) 자본주의에 해당됩니다. 소련 몰락 이후에는 미국은 힘의 공백을 틈타 이라크 유전과 중앙아시아의 요충지 (아프간) 등의 물리적 점령을 시도했지만, 약 9조달러라는 천문학적 전비를 낭비하면서 낭패를 봤습니다. 즉, 지금 트럼프 지지자나 그 측근을 위시한 상당수 미국인들의 입장에서는, 세계 패권이란 그 효능, 즉 그로 인해 발생되는 소득에 비해 그 낭비성이 지나치게 심해 경제성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생각은, 제1차 대전에서으 참전을 반대한 헨리 포드의 생각이나 1920-30년대 고립주의자들의 생각, 국제동맹 가입을 반대한 논리 등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무기를 팔아 돈벌이하는 것까진 좋은데, 타국에 대한 보호, 즉 필요시 전쟁 개입의 "책임"을 - 적어도 여태까지처럼 너무 "싼 대가"를 받아서 - 되도록 축소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하위 동반 국가들까지 챙겨야 하는 "패권 국가"보다 그냥 자국의 이해만 챙겨도 되는 "보통 열강"으로서의 미국을 원하는 이 논리는, 위에서 서술한 것처럼 미국 건국 직후부터 미국의 장기간 "국시"에 가까웠던 것입니다. 즉, 트럼프가 상징하는 고립주의에의 회귀는, 어쩌면 상당 기간 미국 대외 정책의 기조로 작동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으로서 가장 현명한 처세는 무엇일까요? 남북한 대화를 재개하고, 중국 등 역내 국가들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미국의 "후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역내 안보 질서를 구축해보는 것이 아마도 장기적으로 가장 좋은 대응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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