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26

강남순 [예측 너머의 신비와 경이로움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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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순 is in Tex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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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측 너머의 신비와 경이로움의 삶>

1. 공식적으로 이번 주에 나는 이번 가을학기 강의를 모두 마쳤다. 이번 가을학기를 정리하다 보니 대학교에서 받은 “18년 근무 축하”의 메시지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제 나는 만으로 18년을 이 대학에서 가르쳤고, 19년째를 시작한 것이다. 여러 장소와 나라들에서 거주하면서, 늘 디아스포라로 부유하며 사는 것 같은 내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18년”이라는 숫자를 보니,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2. 이곳 대학에 처음 부임해 왔을 때 1년 동안 아파트에 산 후,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짓고 17년째 살고 있다. ‘집을 짓고’라고 표현하지만, 5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거주 지역 (“Gated Community)에서 여러 유형에서 집 종류를 선택하고, 그에 따라 집을 지어주는 의미다. 나의 삶에서 이렇게 한 곳에서 오래 산 적도 없는 것 같다. 여러 의미에서 ‘첫 경험’을 이곳 텍사스에서 하고 있다.
 
3. 내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니 계획한 대로 된 것보다는 예측-너머의 사건들로 이 삶은 이어지고 있다. 1984년 한국을 떠나서 독일로 갔다가 미국의 대학으로 가서 오랜 유학 생활을 매듭지고, 1993년 미국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 한국을 떠날 일은 다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미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영주권을 한국 귀국 후 바로 포기했던 것은, 이제는 ‘영구적으로’ 한국에 거주할 것이라는 ‘확신’에서였다.
 
4. 그런데 그 이후 나는 다시 미국으로, 한국으로, 영국으로, 한국으로 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2006년 텍사스에 있는 대학에 부교수로 임용되어 오게 되었다. 텍사스는 내가 이전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이 대학에서 일하기 위해서 전문직 비자(H1)로 5년여 일하다가 영주권을 학교에서 신청해 주었다. 영주권이 있어야 전임교수로 계속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마 나처럼 영주권을 두 번째 신청해서 받은 경우는 매우 드물 것이다. 크고 작은 이 모든 것들은 ‘예측 불가의 삶’의 한 장면들을 보여준다.
 
5. 최근 생일을 맞은 나의 동료-친구에게 생일 카드에 이런 구절을 써서 보냈다.
 
“우리의 삶은 신비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당신이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이 삶의 신비를 경험하고, 끌어안고, 창출하기를 바랍니다”
(Life is full of mysteries and wonders.
I wish you experience, embrace, create the mysteries of life in your life’s journey.)

6. 이 메시지는 어쩌면 나의 동료에게만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그리고 나와 함께 하는 모든 동료-인간들에게 나누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계산되고, 숫자로 측정되면서 그 “쓸모”가 결정된다. 그런데 지순한 미소, 우정, 사랑과 같이, 만져지지 않고 (intangible), 보이지 않는 (invisible) 가치를 추구하면서 ‘예측-너머의 세계’를 갈망하는 것은 “쓸모없는 것”이라고 냉소적으로 폄하되곤 한다. 그렇기에 더욱 그러한 예측-너머의 신비와 경이의 세계를 창출하는 용기와 의지가 무엇보다도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아닐까. ‘합리성과 논리의 세계’라는 이 아카데미아에서 몸담고 살고 있는 나와 같은 사람일수록, 더욱더 “예상-너머”의 삶의 신비와 경이의 세계에 대한 가능성의 문을 늘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7. 텍사스의 대학에서 18년동안 일하고 이제 19년째에 접어든 내게 다음 학기에, 또는 다음 해에 무슨 일이 있을 것인가. 내 대답은 하나다: “나는 알지 못한다.”
나의 ‘알지 못함 (non-knowing)’의 선언은 ‘무지(ignorance)’와 다르다. ‘알지 못함’의 선언은 이 삶의 신비와 경이로움의 경험에 나를 활짝 열어놓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과거와 현재의 나’만이 아니라 새롭게 ‘되어갈 나’에 대한 기대의 문을 열어놓겠다는 것이다. ‘알지 못함’의 선언은 나를 그리고 예측-너머의 나의 삶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인 것이다.
 
8. 자크 데리다가 “사랑함이란 알지 못함 (loving is non-knowing)”이라고 한 말의 의미를 내 속에서 경험하고 나의 몸과 마음과 정신세계에서 느끼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을 돌고 돌아온 것 같다. “나-사랑(self-love)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타자를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한 한나 아렌트의 말을 상기하면서 이렇게 “알지 못함”으로 시작하는 나-사랑의 연습을 늘 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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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9월에 입주해서, 그 해 크리스마스에 구입한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사진이다. 별도의 장식이 필요없는 이 트리는 피아노와 함께 나의 공간에서 지난 17여년 함께 하면서, 나의 삶의 여정에서 일어난 다양한 색채의 경험들을 품고 있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내가 미래에 어디에서 거주하게 되든, 내가 함께 가고 싶은 것이 있다면, 세 가지다: 나의 피아노, 책, 그리고 이 크리스마스 트리. 경제적 가치는 전혀 없는 것이겠지만, 나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 또 다른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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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comments


김정규

삶의 신비여!! 축하드려요, 강 교수님! 그 <예상-너머>를 응원합니다^^


Youngjae Kim

나를 사랑해야 겠습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네 '몸'을 사랑 하는 것만큼 네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늘 좋은 글에 영감을 받아갑니다. 감사합니다.



강남순 replied
·
1 reply
1m
about a minute ago


Namsook Han

친구분에게 보내신 그 메시지를 저도 받고 기뻐합니다. 고맙습니다~




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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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a Kim

이번 주 금요일에 있을 어떤 자리에 저를 소개하는 말을 제출하라고 해서 이렇게 적었습니다.
'삶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사람입니다' 라고요.
삶이라는 여정에서 만난 인연의 갖가지 껍질 속에 '신비와 경이'라는 열매가 꼭 담겨 있었습니다.
아침에 만난 좋은 글 감사합니다.




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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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Kwang Lee

와~18년!! 축하드려요!
“예측 너머”
어쩌면 두려움일수도 있는
(한때 저에게 두려움이었던) 그 시공간을
교수님의 시각으로 보니
그저 신비롭고 경이로운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용기와 소망을 봅니다.
감사합니다.




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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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phia Hyon

아직도 냉천골 교수님 연구실에서 "여기 오래 있으려고 했는데 다시 짐을 싸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그 장면이 생생합니다. 그렇게 벌써 18년이 지났네요. (세상에) 모든 것에 감사드립니다. 교수님 아니었으면 지금의 저도 없을 거에요.




50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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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Huan Ahn

그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겠는데, 사랑, 환대, 용서라는 예수님의 길 위에서 늘 경이로운 세계를 맞이하실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 놓고 살아오셨네요.
경의를 표합니다.
18년 근속을 축하드립니다!




38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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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sung Chang

‘알지 못함’의 선언은 나를 그리고 예측-너머의 나의 삶을 사랑하겠다는 의지의 선언인 것이다.
후~~~~ 마음에 훅! 들어오네요. 18년을 축하드리며 감사합니다.




13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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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k Bom Kwon

수고하셨어요. 18년동안.




12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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