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o Jung Gil
14 m ·
<공(空)론이 된 공(公)론화>
유정길 지혜공유협동조합 이사장
월성 고준위 핵폐기물 저장시설 건설논란
지난 7월 24일 경주 월성핵발전소 내의 맥스터(MACSTOR : 사용후핵연료 대용량 건식조밀저장시설) 건설을 추진 중인 산업부의 재검토위원회는 “경주지역 의견수렴 결과 맥스터 건설에 81.4%가 찬성했다”며 지역공론화 결과를 발표했다.
사용후핵연료란 핵발전 후에 연료를 태우고 남은 고준위폐기물을 말한다. 이 폐기물은 1미터 앞에 17초만 노출되어도 사망하는 고농도의 죽음의 재로, 10만년 이상 생태계로부터 철저히 격리시켜야 할 방사능물질이다. 이 폐기물은 대단히 뜨겁기 때문에 습식저장시설에 보관하여 냉각시킨 뒤에 건식저장시설인 맥스터에 보관하게 된다. 그러나 현재의 저장시설은 2020년 11월 포화 상태가 될 것으로 예상돼 원자력안전위원회는 7기의 맥스터 추가 건설 허가를 신청했다. 이것이 완성되면 향후 30년간 발생되는 사용후핵연료를 보관할 수 있다.
그런데 과거 경주는 중저준위 방사능폐기장
(방폐장)을 유치할 때 고준위핵폐기물은 2016년 반출시키기로 약속을 했음에도 이를 어기고 고준위폐기물을 보관하는 저장시설을 증축하려 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 위험한 고준위 핵폐기물을 지역주민들이 찬성할리가 없다.
44.2%에서 81.4%가 된 공론화 발표
그럼에도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론화를 주도하면서 구성한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는 시민참여단의 145명에게 찬반결과를 묻는 조사에서 81.4%가 건설을 찬성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역주민들은 발칵 뒤집혔다. 발표 직전 월성원전이 있는 양남면 주민조사에서는 반대가 55.8%, 찬성이 44.2%로 나와 과반수가 넘는 반대여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남면 소속 시민참여단 39명중 반대가 불과 1명밖에 안 나온 것이다. 다수를 대상으로 한 주민조사에서는 과반수가 반대로 나왔는데 소수의 시민참여단에서는 대부분 찬성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서 시민참여단의 대표성이 문제되었고 또한 입장이 있는 주민과 시민단체들은 배제된 재검토위원회 구성과정부터 편파성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실제 6월 26일 정정화 재검토위원장은 공론화가 졸속적, 비민주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며 사퇴를 한 일이 발생했다. 그는 “시민참여단 구성을 위한 설문서를 재검토위에서 만들었는데. 이것을 지역실행기구가 근본취지가 완전히 훼손된 내용으로 설문문항을 모두 임의로 바꿔버렸으며, 이렇게 잘못된 설문서를 바탕으로 3000명 중에서 145명을 선발하여 시민참여단이 구성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보니 공정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참여단으로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정 위원장을 뒤이어 4명의 위원도 사퇴했음에도 산업통상자원부는 공론화를 강행하여 결국 대표성이 없는 반쪽자리 공론화위원에서 81.4% 찬성이라는 결론을 서둘러 발표했다. 더욱이 월성 바로 밑에서 남의 일이 될 수 없는 울산북구 주민들 5만 여명의 주민투표결과 95%가 반대하는 투표결과도 전혀 반영하지 않고 무시된 것이다.
지금 주민들과 시민단체들은 이 공론이 조작된 진상을 조사하고, 건설을 반대한 울산북구 주민의 의견을 수용하고, 대통령직속 독립적 기구에서 지역과 이해당사자가 참여한 제대로 된 공론화를 다시 하라고 요구하며 지역에서 그리고 청와대 앞에서 매일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공(空)론이 된 공(公)론화
문재인 정부 초기 2017년 10월 신고리 5·6호기의 건설여부를 두고 공론화위원회가 만들어져 긴 논란을 통해 건설지지 59.5%, 건설중단 40.5%로, 건설 쪽으로 결론이 났다. 당시 이로 인해 시민단체는 2개 그룹으로 분열되었다. 본래 <신고리 5·6호기 공사중단, 월성 1호기 폐쇄>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따라서 공약대로 이행해야하며, 공론화위원회로 결정을 넘기는 것 자체가 공약을 안 지키고 변경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에, 위원회도 그런 결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입장은 이제 막 촛불로 정권을 잡은 대통령이 강력한 원전카르텔과 여론을 한꺼번에 변경하기 부담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국민 여론을 서서히 돌리려는 절차로서 공론화는 의미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그 결론을 받아들이자는 입장이었다. 신고리 5·6호기는 건설하지만 ‘원전의 비율을 줄인다’는 결정이 난 것이 높이 평가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권초기에 기대를 갖고 관용적이었던 단체들이 임기후반인 지금까지 탈핵의지가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는 상황에 실망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무튼 최근 들어 정부의 일방적 결정이 아니라 국민이 참여하는 거버넌스의 일환으로 논쟁적 여러 의제를 공론화위원회로 진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게 그렇듯이 지지하는 입장이 부결되면 결정과정에 불만이 나오기 때문에 공론화는 무엇보다 참여단의 구성부터 철저하게 공개적이어야 하고 편향과 조작 없이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결론의 대표성과 공공성의 신뢰를 받게 된다.
그런데 이번 월성의 맥스터건설을 산업통상자원부가 공론화하는 과정은 처음부터 고준위 폐기물 시설을 건설한다는 확고한 결론을 감추고 밀어붙이는 형국이라 공정성을 신뢰하기 어려워 보인다. 자꾸 이런식이면 공론화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공론화를 위해서는 반드시 결론이 열려있어야 하며 절차의 철저한 공정성이 보장되고, 결론에 정책적인 힘이 지원되어야 한다. 갈등해법의 좋은 모델로 활용되는 숙의민주주의로서의 공론화가 자꾸 오용되고 오염되는 일이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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