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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노동뉴스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9] 공출 바치고, 관솔 바쳤는데 … 그것도 모자라 근로정신대 끌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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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 9] 공출 바치고, 관솔 바쳤는데 … 그것도 모자라 근로정신대 끌려가
기자명편집부 입력 2014.09.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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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3일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가 영면한 지 3주기가 되는 날이다. 1970년 11월13일 서울 청계천 평화시장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분신한 전태일 열사는 어머니에게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소선 여사는 2011년 9월3일 목숨을 다할 때까지 아들의 유언을 지키는 데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매일노동뉴스는 이소선 여사 3주기를 맞아 <이소선 평전-어머니의 길>을 연재한다. 저자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는 1990년 이소선 여사 회갑 즈음에 구술을 받아 평전을 집필했다. 당시 1979년의 삶까지 담았는데, 이번에 그 이후 삶을 보강할 예정이다. 평전은 오마이뉴스와 동시에 연재된다.<편집자>
일본이 태평양전쟁에 한창 미쳐 날뛸 때 젊은 남자들은 모두 징용이나 징병에 끌려가고, 처녀들은 정신대(挺身隊, 데이신따이)로 잡혀가야 했다.
소선의 나이 15살, 어른들은 ‘데이신따이’에 잡혀가니까 빨리 시집을 보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소선은 어른들이 왜 그런지 알지 못했다. 그저 시집을 간다는 것이 싫었다.
‘그까짓 거 잡아가면 잡혀가지.’
소선은 정신대가 뭔지도 모른 채 공연한 억지배짱을 부렸다. 어른들은 정신대에 잡혀가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정신대에 잡혀가면 완전히 딸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소선은 정신대를 군부대에 가서 군인들이 부상을 당하면 간호해 주는 정도로만 알았다.
“그까짓 데이신따이 가면 갔지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한테 시집은 안 갈란다.”
정신대로 잡아가겠다는 명령서 받던 날
시집은 가지 않겠다고 버티던 어느 날 마을 구장이 소선의 집에 와서 ‘이소선’ 이름 위에 빨간 줄을 두 개 그어 놓은 종이를 내밀며, 몇월 며칠에 면사무소로 나오라고 했다. 정신대로 잡아가겠다는 명령서였다. 소선의 어머니는 "시집가라고 할 때 안 간다고 고집 피우더니 이제 데이신따이 잡혀가게 됐다"고 통곡을 했다.
소선은 그때서야 데이신따이가 그저 부상당한 군인들 간호나 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일을 하게 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통보까지 받아 버렸으니 꼼짝없이 끌려가게 될 판이었다.
드디어 빨간 줄이 그어진 종이쪽지에 적힌 날짜가 됐다. 소선의 어머니는 울고불고 난리가 아닌데 마을 구장하고 면사무소 직원, 그리고 칼을 찬 순사가 나와서 처녀들을 인솔해 도라꾸(트럭)에 태워 면사무소로 데려갔다.
소선의 마을에서는 소선을 포함해 여섯 명의 처녀들이 정신대에 잡혀갔다. 저마다 부모들이 면사무소까지 따라왔다. 면사무소에서 잡아온 처녀들을 앉혀 놓더니 이름을 부르고 확인했다. 그리고 따라온 부모와 모두 떨어지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소선의 어머니는 치마 속곳에서 무엇을 꺼내어 딸의 손에 쥐여 줬다. 소선이 펴 보니 개떡이었다.
“종일 이리저리 끌려다니면 배가 고플 테니 이것 먹고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안 그러면 죽는다.”
“어떻게?”
“시남이 뒤만 졸졸 쫓아다녀야 한다.”
시남이는 마을 구장의 친척으로 소선과 함께 잡혀온 동갑내기 처녀였다.
“이놈의 가시나 아무 소리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 시남이 뒤만 쫓아다녀야지 안 그러면 죽는단 말이다.”
소선의 어머니는 시남이가 구장의 친척이기 때문에 시남이를 따라다니면 근로정신대로 빠지는 것으로 믿고 있었다.
소선은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시남이와 함께 움직였다. 처녀들은 도라꾸 속에서 소선의 어머니가 준 개떡을 먹었다. 쌀이나 보리 같은 것은 일본사람들이 다 빼앗아 가서 구경조차 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곡식이 없어 기름을 다 짜낸 콩깻묵을 며칠 동안 물에 담가서 썩은 물이 우러난 다음에 그것을 짜서 먹는 판에 어머니가 준 개떡은 귀한 음식이었다. 개떡은 공출을 바쳐야 할 밀을 몰래 감춰 뒀다가 남들이 잠든 밤중에 몰래 빻아서 만들었을 것이다.
해가 다 지자 헌병차가 왔다. 배치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처녀들한테 헌병들은 일본말로 위협하면서 호명한다. 이름이 불린 처녀들은 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났다. 그런데 모두 다 이름을 불렀는데 이소선과 그의 친구 시남이만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다.
다른 처녀들이 불려갈 때 불안에 떨었다. 소선은 끝까지 자신을 부르지 않은 것이 오히려 약간 안심이 되기는 했지만, 남들 다 부르는데 자신과 시남이만 남았으니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병들은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둘을 창고에 집어넣었다.
창고에서 얼마나 있었을까. 한밤중인데 창고문이 열리면서 먼저 이소선의 이름이 불렸다. 그리고 시남이를 부르더니 트럭에 타라는 것이다. 트럭을 타고 한참을 덜컹거리면서 어디론가 갔다. 그들은 어떤 마당이 넓은 곳에 내려졌다. 그곳은 방직공장이었다.
처녀들은 어디론가 실려가고, 남은 둘만 방직공장으로
방직공장은 ‘대마 베’를 짜서 일본군의 군복을 만드는 군수공장이었다.
첫날부터 일본군가를 가르치면서 아침마다 군가를 부르게 하고 체조를 시킨다. 콩깻묵밥을 먹고 일을 시작해야 했다. 소선과 시남이를 비롯해 함께 근로정신대로 끌려온 처녀들한테 주어진 일은 작업장 밖에서 청소하는 일과 실을 매는 일이었다. 일본인들이 일을 시키는데 마치 죄수를 잡아다 놓고 일을 시키는 것처럼 욕설과 매로 노동을 시켰다.
기술자들은 공장 안에서 베 짜는 일을 했다. 소선은 얼마동안 실매는 일과 잡일을 하다 보니 은근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방직공장에 왔으면 베 짜는 일을 시켜야지, 베 짜는 일은 안 시키고 잡일을 시키고 기껏 해 봐야 실매는 일만 시키는 것이다. 공장 안에서 베 짜는 기술자들이 부러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저 안에서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궁리해 봤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관리자한테 얘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벼르고 별러 왔던 얘기를 할 기회가 왔다. 소선은 체조시간에 용기를 내어 손을 번쩍 들었다. 체조시키는 관리자가 뭐냐고 물었다.
“나는 밖에서 이런 잡일 안 하고 저 안에 들어가서 베 짜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 안에서 일하게 해 주세요.”
“뭐라꼬? 쪼끄마한 것이 어디서 지 맘대로 탕탕 말을 하는 거야! 너는 기술도 없잖아.”
“기술 없는 것이야 배우면 되는 것이고, 어차피 내가 여기에 일을 하러 왔는데 마음에 드는 일을 해야지 하기 싫은 일을 하니까 능률도 오르지 않고 일도 힘들지 않습니까?”
이렇게 주고받는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높은 사람이 참견을 한다.
“너 몇 살 먹었냐?”
“열여섯 살이요.”
나이 외에 몇 마디 더 묻더니 "쪼끄마한 것이 제 주장을 말하는 걸 보니까 뭘 시켜 놓으면 잘하겠는데…"라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저 베 짜는 데로 가겠다고 했냐?”
그 사람은 공장 쪽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예, 그렇습니다.”
“왜 그랬냐?”
“우리가 남자도 아닌데 돌을 나르는 일, 청소하는 일,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일, 실 매는 일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짐승처럼 몰고 다니면서 일을 시키는데 기왕에 여기 와서 일을 할 수밖에 없다면 기술을 똑바로 배워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나는 방직 기술을 배워서 베 짜는 것이 소원이니 저 안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소선은 공장 안에서 베를 척척 짜는 모습이 어찌나 좋아 보이던지 자신도 저렇게 베를 척척 짜는 기술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선이 이렇게 말대꾸를 하니까 그 높은 사람은 매를 가지고 와서 소선을 때렸다.
“어린것이 뭔 말이 많아.”
“내가 언제 일을 안 하겠다고 했어요? 저기 안에 들어가서 일을 더 잘하겠다고 했는데 왜 나를 때리는 거요?”
소선은 매를 맞으면서도 악착같이 자신의 주장을 얘기했다.
“소선아, 그렇게 해 봤자 소용없으니까 매 맞지 말고 시키는 대로 해라.”
소선이 공연히 매를 맞는 것을 보고 시남이는 울면서 호소했다. 한참을 두드려 맞고 나서 기숙사 방으로 왔다. 소선은 기숙사 방으로 와서 생각해 보니 억울했다.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출 바치라, 관솔 따다 바치라 하면서 그것도 모자라 남자들은 징용으로 끌어가고 여자들은 데이신따이로 잡아가고, 이제 여기까지 와서도 내가 일을 안 한다는 것도 아니고 기술 배워서 일하겠다는데 매를 때리다니….’
소선은 방에 누워서 생각했다. 개떡을 쥐어 주던 엄마가 보고 싶다. 집에도 가고 싶다. 그러나 집에 갈 수도 없고, 엄마도 볼 수도 없다. 서러운 눈물이 한정 없이 흐른다.
“이소선, 너 이리 나와 봐!”
“왜 그러세요? 나는 저기 공장 안에서 일을 하려고 해도 안 시켜 줘서 속상해서 일을 못하겠으니 집에 갈라요.”
“이것 봐라, 여기가 어딘데. 니 맘대로 집에 갈 수 있는 덴지 아나!”
“왜 집에 못 가는 거요? 못 가게 하면 도망이라도 가란 말이요?”
“이 건방진 것.”
이런 일이 있고 난 뒤 다른 사람이 소선을 데리러 왔다. 공장 안에서 일을 하면서 베 짜는 일을 배우도록 조치를 한 것이다. 그들이 왜 이런 조치를 취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작업장이 바뀌었으니 소선은 숙소도 따라서 옮기게 됐다. 이전 숙소에서는 한 동네에서 정신대에 함께 잡혀와 일하는 곳도 같았던 시남이가 있어 서로 의지하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이제는 시남이와 떨어지게 됐다.
시남이는 일을 마치고 저녁에 방으로 와서 소선이 없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징징 울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시남이가 징징 울면서 일을 안 나가니까 일본인 간수장이 시남이를 두들겨 팼다. 마침 아침 체조하러 가면서 소선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 소선은 시남이를 때리는 일본인 간수장한테 일본말로 항의했다.
“네 친구냐?”
감독이 물었다.
“우리 동네 옆집에서 같이 온 동무예요.”
그 간수장은 소선을 째려보더니 때리는 것을 멈췄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찌 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시남이는 소선과 같은 공장 안에서 일을 하게 됐고 잠도 같은 방에서 잤다.
근로정신대들은 온종일 죽어라고 일을 하고 나서 먹는 것이라고는 강냉이를 커다란 물통에 우려서 삶은 강냉이밥뿐이었다. 그까짓 것을 먹고는 힘을 쓸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배가 고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특히 밤에는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올 정도다.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오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본다. 그럴 때는 마당에서 자라고 있는 토마토가 어찌나 먹고 싶은지 견딜 수가 없다. 그러나 저 토마토를 따다 먹다가 들키는 날이면 맞아 죽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함부로 따 먹을 수가 없다.
“안 죽으려고 토마토를 따 먹었소”
토마토가 점점 더 먹음직스럽게 익어 가던 어느 날 밤, 배가 심하게 고프기도 하고 집 생각도 간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소선은 ‘저것을 따 먹다가 들켜서 매 맞아 죽을 때 죽더라도 따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달빛 아래 탐스러운 토마토가 정신을 잃게 유혹했다.
“시남아, 우리 배고파 죽겠으니 저 토마토 좀 따다 먹자.”
“저걸 따 먹다 잡히면 매 맞아 죽을 텐데.”
“그러니까 몰래 따 먹어야지. 내가 따 올 테니까 니가 망 좀 보거라.”
소선은 살금살금 기어서 밖으로 나왔다. 간수가 통로에서 지키고 있는데 살며시 엿보니까 졸고 있다. 이때다 싶어 창문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그 탐스러운 토마토를 따서 방으로 가지고 왔다. 소선은 따온 토마토를 어두운 방에 누워 시남이와 다른 동무들한테 나눠 주고 맛있게 먹었다. 토마토를 다 먹고 난 꼬투리를 버릴 데가 마땅치 않아 그것을 모아 치마에 몰래 싸서 가지고 잤다. 아침에 체조하러 나가면서 슬쩍 버렸다.
이런 수법으로 일하고 나서 저녁마다 토마토를 따 먹었다. 처음 며칠간은 일본인들이 눈치를 못 챘는데 점점 눈에 띄게 토마토가 없어지는 것을 보고 누가 몰래 따 간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루는 여느 날과 다름없이 창문을 뛰어넘어 토마토를 막 따려고 하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간수가 나타나서 소선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아이고! 이제 나는 죽었구나.’
간수는 소선을 끌고 가서 꼬챙이로 온몸을 여기저기 쑤시면서 높은 사람한테 말해서 혼을 내겠다고 한다. 그리고 곧바로 높은 사람 앞으로 끌려갔다.
“이 도둑년, 왜 토마토를 따 먹었어!”
“배가 하도 고파서 도저히 못 살겠어서 따 먹었소. 안 죽으려고 토마토를 따 먹었소. 콩깻묵이나 강냉이 우려낸 것 먹고는 도저히 살 수가 없소.”
소선은 무서운 것도 잊은 채 말대꾸를 했다.
“이 맹랑한 것 봐라, 너 몇 번이나 따 먹었어?”
“여러 날 따 먹어서 몇 번 따 먹었는지 알 수가 없소.”
“너 토마토를 몰래 따 먹으면 도둑질인지 모르나?”
“내가 토마토를 따 먹은 것이 도둑질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우리들은 농사지은 것 다 공출로 바쳐야 하고 그뿐 아니라 여기까지 와서 뼈 빠지게 일을 하고서도 콩깻묵이나 강냉이밥밖에 못 먹으니 배가 고파서 일도 못하고 죽을 것 같아서 안 죽으려고 토마토를 따 먹었소.”
소선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꼬박꼬박 말대꾸를 했다. 간수는 이런 소선이 더 미워서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그리고 창고에다 소선을 가둬 버렸다. 소선은 창고 안에 갇혀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중 감독자 중에서 조선사람이 있었는지 그 사람이 와서 문을 열어 주면서 이른다. 말대답을 하지 말고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고 타일렀다. 소선은 어찌 됐든 매는 맞았어도 그 배고픔을 토마토로 달랠 수 있었던 것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민종덕 전 전태일기념사업회 상임이사
<계속 이어짐>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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