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3-10

알라딘: [전자책]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알라딘: [전자책]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eBook]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 정치와 사회에 관한 철학에세이  epub 
김만권 (지은이)개마고원2013-12-03 

종이책 페이지수 344쪽

책소개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철학사에 등장한 정치사회 관련 화두를 열일곱 개의 핵심 질문으로 정리한 책. 현실 사회와 정치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는 데 선구적 단초가 되어준 철학적 질문들을 17개 장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어떻게 진리는 권력과 결합되었을까? 왜 도덕과 정치가 분리되었을까? 어떻게 재산의 사적 소유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가? 인간사회는 왜 불평등해졌을까? 정치공동체의 시민권은 왜 필요한가? 시대에 대해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통해 당대의 미성숙에 책임지는 철학자들이 자기 시대와 직면하여 던져왔을 질문들이다.

이 질문들은 다시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을 사는 또 다른 철학자들에 의해 서로 만나고 공유된다. 이를테면, 최초로 진리를 정치세계의 실질적 권력과 결합시키려 한 플라톤의 정치철학적 기획은 말년의 푸코가 천착했던 권력과 진리의 확대재생산 구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지은이는 이러한 구성 방식을 통해 17개의 각 질문들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나간다. 즉, 고대의 소크라테스와 현대의 정치철학자인 아렌트가 한 무대에 등장하고, 15세기 이탈리아 도시상업국가 간의 분열을 통찰했던 마키아벨리와 20세기 이탈리아 북부와 남부의 분열을 성찰했던 그람시가 만난다.

또한 진리와 권력의 문제에 천착한 고대와 현대의 대표적인 거장 플라톤과 푸코를 맞세운다. 그리하여 이들 철학자들이 앞선 시대의 질문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입장으로 만나기도 하며, 비판적으로 극복하는 상황을 연출하기도 하고, 완전한 반대 입장에서 대립하기도 하면서 그 질문들의 핵심 사상은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저자 서문_ 철학적 질문의 힘
여는 글_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부_ 고대와 중세_ 소크라테스, 철학하는 삶을 시작하다
1장 왜 철학에서 진리가 중요해졌을까?_ 소크라테스, 아렌트
2장 어떻게 진리는 권력과 결합되었을까?_ 플라톤, 푸코
3장 어떻게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 될까?_ 아리스토텔레스, 아감벤, 아렌트
4장 왜 종교는 철학을 필요로 했을까?_ 아우구스티누스, 아렌트

2부_ 근대의 시작_ 마키아벨리, 인간의 시대를 열다
5장 왜 도덕과 정치가 분리되었을까?_ 마키아벨리, 그람시
6장 근대 국가주권은 어떻게 탄생했을까?_ 홉스, 투키디데스
7장 어떻게 재산의 사적 소유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_ 로크, 노직

3부_ 근대의 전개_ 칸트, 이성의 아침을 깨우다
8장 계몽이란 무엇인가?_ 칸트, 푸코
9장 도덕 형이상학이란 무엇인가?_ 칸트, 롤스
10장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인가?_ 헤겔, 테일러

4부_ 근대의 비판_ 세상을 사랑한 그들, 근대성의 비극을 예언하다
11장 인간의 사회는 왜 불평등해졌을까?_ 루소, 세네카, 아우구스티누스
12장 근대의 개인은 진정 주체적인가?_ 니체, 밀
13장 자본주의 합리성은 진정 합리적인가?_ 베버, 마르크스

5부_ 우리 시대의 삶과 철학_ 철학자들, 시민의 도시를 다시 짓다
14장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란 무엇인가?_ 하버마스, 호르크하이머, 아도르노, 마르쿠제
15장 정치 공동체의 시민권은 왜 필요한가?_ 아렌트, 홉스
16장 가치다원주의는 자유주의적인가?_ 롤스, 벌린
17장 해체는 정의로운가?_ 데리다, 벤야민, 하이데거

닫는 글_ 언덕과 동굴 사이, 우리 시대의 철학자들

---

책속에서
극단적 자본주의의 시대, 나의 물질적 이익이 세상의 모든 것이 되어가는 우리 시대의 미성숙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극단적 신자유주의 시대, 타자를 시장 경쟁에서 누르는 일이 개인의 더할 수 없는 미덕이 되어버린 우리 시대의 미성숙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극단적 분단의 시대, 우리 이웃이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적으로 변해버린 우리 ... 더보기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일이 무엇인

지를 기억하고 자세히 숙고하기를 거부하는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은 대

개의 경우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데 실패한다.

한나 아렌트-97쪽 - 다이조부
계몽이란 스스로 타자에게 이성적 숙고와 판단을 대신 부탁하는 미성숙

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숙'이란 타자의 안내 없이는 자기 자신이

이해한 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말한다. 만약 이런 미성

숙의 원인이 이해의 결핍이 아니라, 타자의 안내 없이는 그것을 사용할
더보기 - 다이조부
저자 및 역자소개
김만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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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권은 철학자다. 땅에 발 딛고 선 철학을 하고파서 정치철학을 한다. 그러고 보니 생각으로 현실에 세상을 짓는 게 직업이다. 한편으로 김만권은 다섯 살 아이를 둔 아빠이기도 하다. 너무 늦은 나이에 본 아이라 그럴까? 이 아이가 안심하고 살 세상을 어떻게 지을 수 있을까 이런저런 고민이 많다. 승자들이 모든 것을 가져가는 세상에서 그 모든 것을 가져가는 아이로 키워야 하나?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100분의 1도 안 되는 승자가 될 확률에 걸기보다는 이 아이가 평범하게 자라도, 아니 조금 모자라게 커도 걱정 없이 맘껏 사랑하고 존중받고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게 훨씬 현명한 길이라는 것. 이 아이에게 안전하고 좋은 세상이라면 세상의 모든 아이에게도 그럴 것이라는 것. 그래서 아빠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짓고 싶다. “걱정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일을 해도 괜찮아!” 이 책이 우리의 삶을 잠식하는 가난과 불안을 다루는 데에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만은 달랐으면 하는 마음 또한 깃들어 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 『호모 저스티스』, 『정치가 떠난 자리』, 『참여의 희망』,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 『불평등의 패러독스』, 『자유주의에 관한 짧은 에세이들』을 썼다. 이에 더하여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 『인민』, 『만민법』(공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지금은 경희대 학술연구교수이자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새로운 가난이 온다>,<열심히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김만권의 정치에 반하다> … 총 19종 (모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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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음(thoughtlessness), 그것이 곧 악(惡)이며 죄(罪)인 것이다” 새창으로 보기
“생각 없음(thoughtlessness), 그것이 곧 악(惡)이며 죄(罪)인 것이다”

 


유대계 독일인으로서 20세기 저명한 정치철학자인 한나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저지른 아우슈비츠 유대인 학살의 실질적 주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아돌프 아이히만이 1960년에 체포되어 예루살렘에서 받았던 재판을 취재하고 쓴『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의 후기에서 아이히만의 ‘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그는 상관을 죽여 그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살인을 범하려 하지도 않았다.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중략) 그는 어리석지도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히 생각 없음'(sheer thoughtlessness)이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김선욱 옮김, 한길사 2006, 391쪽)

 

아렌트에 따르자면,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나치 체제를 돌리는 톱니바퀴 중 하나의 ‘톱니’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아이히만은 다른 일반적인 독일 국민들과 다를 바 없이 그저 자신의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한 말 그대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의 그런 평범함이 그의 진정한 ‘죄명’이다. 즉 나치즘의 이데올로기로부터 벗어나 이성을 가진 인간답게 자신의 언어로써 현실을 말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또 자신의 판단력에 기초해 현실을 판단하지 못하는 ‘생각 없음의 평범함’이 그의 ‘죄악’이었던 것이다. 홀로코스트를 넘어 근대성 혹은 서구적 근대문명에 대한 근원적 통찰로 일컬어지는 아렌트의 그 유명한 테제 곧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은 이러한 맥락에서 제시되었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책,『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 정치와 사회에 관한 철학에세이』 역시 아렌트의 저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다. ‘삶의 방식으로서 철학하기(생각하기)’라는 주제를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서양철학사 전반에 적용하여 현실 사회와 정치에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는 데 선구적 단초가 되어 준 철학적 화두 17개를 분석하고 있다. 아이히만과 같이 생각 없는 평범한 이들로 살기를 거부하고 자신이 살아가는 현재와 사회 세계에 대해 항상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시민의 태도를 유지했던 고대와 중세 그리고 근현대의 다양한 철학자들이 품었던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화두를 다시 살펴보는 작업을 통해, 독자들이 ‘나는 누구인가’와 ‘나는 타자와 어떤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가’라는 두 개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볼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좀 살펴보자. 제1부에서는 고대와 중세에 철학하는 삶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물음들이라 할 수 있었던 것들, 예컨대 철학하기의 본위로서 진리라는 문제설정, 그 연장선상에서 제기된 진리와 권력의 결합 문제,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 종교와 철학의 상관관계 등의 주제와 관련해서 소크라테스와 아렌트, 플라톤과 푸코, 아리스토와 아감벤 그리고 아렌트, 아우구스티누스와 아렌트가 호출되고 있다. 제2부에서는 신들이 퇴장하고 인간이 역사의 주체로 등장하는 근대의 여명기를 다루면서, 마키아벨리와 그람시, 홉스와 투키디데스, 로크와 노직을 통해 도덕과 정치가 분리되는 역사적 기원에서부터 근대 국민국가의 탄생 과정과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정당화하는 담론의 역사를 살펴본다. 제3부에서는 근대성 탐구의 본격적인 기초를 놓은 대표적 철학자들인 칸트와 헤겔을 중심으로 계몽과 도덕 형이상학 그리고 이성적인 것의 현실성 등을 깊이 탐구하고 있다. 제4부에서는 근대성에 내재한 위기와 비극을 예언했던 루소와 니체 그리고 맑스와 베버의 사상을 살펴봄으로써 인간 사회의 불평등과 자본주의적 합리성으로 인해 발생하는 계급 적대 및 인간 소외, 물화(物化) 등의 근대적 '실재'(實在, the Real)와의 대면을 주선하고 있다. 마지막 5부에서는 20세기 이후, 이성의 극단적 비이성화라는 근대성의 자화상과 이런 시대에 맞선 철학자들의 상이한 문제 해결 방식을 소개한다. 근대성은 끝나지 않은 계몽의 기획이라 외치며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구축을 통해 체계의 생활세계 식민화에 저항하고자 하는 하버마스, 인간은 정치에 참여함으로써만 비로소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고 주장했던 아렌트, 기본적 자유의 동등한 보장을 통해 정치적 평등을 실현코자 했던 롤즈, 해체를 통해 한 사회가 새로운 개념ㆍ방법ㆍ사유 등과 조우하면서 새로운 사회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주장한 데리다가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이 책은 대학에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기본적인 철학적 지식을 맛보면서 모든 학문하기의 출발점인 철학적 사유의 방법을 익히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다. 또한 서양의 정치사상사에 대한 일목요연한 개념 정리가 다시 한 번 필요한 재학생들도 정독하면 새로운 시각에서 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성숙한 시각으로 세상을 다르게 보기 원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한다. “기억하라, 생각한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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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찾아서 2007-05-22 공감(2)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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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정치와 사회에 대한 철학에세이) 새창으로 보기
 
정치는 무엇이고? 사회란 무엇인가?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한다. “인간은 정치적(사회적) 동물이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사회라는 구조 안에서 평생을 머물게 된다. 먼저 가족이라는 작은 혈연지간의 사회, 다음에 학교와 지역사회, 그 다음으로 넘어가면 군대와 직장, 국가까지 연계된다. 사회라는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인간은 자신만의 의견과 생각으로만 살 수 없다.

 

인간과 인간이란 사이를 이어주는 사회구조 속에서 인간은 모든 것을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의 여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 무엇이 필요 한가 라고 상기시켜보면 정치라는 큰 조율적인 단계를 거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많은 문제가 있다. 인간은 언제나 사회라는 틀에 머물기 때문에 인간 본인이 사회적 존재가 아닌 동물적 내지 무의식 또는 식욕, 수면욕, 성욕까지도 사회적 영역에 벗어날 수 없다.

 

밥을 먹는 시간과 공간마저도 사회 안에서 이루어질 문제고, 잠을 자는 공간 역시 자기의 집인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집인지 또는 집단 무리인지, 성욕도 부부의 합법적인 행위로 이어지는지 혹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지 미성년자들끼리의 동의로서 오묘한 상황에 이르기까지 난감한 상황이 계속 벌어진다. 인간이 가진 기본 무의식 욕구마저도 사회적 조건과 정치적 상황에 계속 변화가 온다.

 

인간이 동물적인 요소로 살아가는 것마저도 사회와 밀접한 관계에 있고, 정치적인 영역 아래 영향을 받는다. 실제 저런 기본 욕구마저도 인간이 만든 이성과 그 이성의 결과물로 만들어진 법과 제도로서 통제를 받는다. 지나친 무의식의 표출은 사회에 큰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하여 인간은 자기의 무의식적 세계의 표출과 또는 욕망, 이성적으로 추구하는 이익을 포기할 수 없는 존재다.

 

어떻게든 자신에게 좋은 것을 찾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여 행동하기에 정치적인 중재나 판단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많은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사회에서 대부분 인간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상과 그리고 자신 주변 또는 그 너머에 있는 세상에 대해 쉽게 말하는 경향이 있다. 즉 사회현상에 대해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 누구라도 쉽게 이야기하고 옳다고 주장한다.

 

인간은 자기가 말하고 있는 것에 다른 누군가가 부정하게 될 경우 상당히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이 상한다. 타인의 이야기보다는 자신의 가치가 월등하게 높은 것이 인간 본인들의 운명이다. 물론 그런 것들에 대해 나 역시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점들로 얼룩진다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로지 이익에 대한 인간의 집착과 그 집착을 받쳐주는 권력이나 힘의 대결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 많은 역사적 기록이나 사건을 참고하더라도 인간의 역사란 결코 아름다운 문화 창조만이 아니라 투쟁과 전쟁, 갈등과 고뇌의 연속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 많은 문제들이 문화 창조로 이어진 경우가 많았다. 즉 파괴를 위해 창조가 일어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을 위한 기술 중에서 대중교통과 의료기술이 전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빠른 병력이동과 빠른 적군의 타격은 자동차, 선박, 항공기로 이어지고, 많은 사람들을 죽이기 위해 화학전, 생물학전, 방사능전의 공격이 약학과 의학, 그리고 엑스레이 등과 같은 영상진단장치 기술을 발달시켰다.

 

인간의 갈등이 인간을 파괴하면서 이룩해온 인류의 문명과 역사 속에서 정치라는 것은 단순히 우리가 그 현재의 순간만으로 판단해야할 것인가? 아니면 그 이전과 저기 너머, 앞으로 다가올 미래 그리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인간들, 정치라는 것은 언제나 이런 문제에 난봉을 겪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치와 사회에 대해 쉽게 말할지언정 그 정치와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원인과 문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방법이나 가치들은 정말 찾아가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와 사회를 일상 속에서 말하고 살지만, 정치학과 사회학에 대하여 대부분 기피하는 경향을 보이며, 정치학과 사회학의 원류가 될 수 있는 철학을 더더욱 멀리한다.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마키아 밸리의 군주론으로 통해 철학이 정치에서 분리된 최초라고 하여도 정치에 철학이 따라붙지 않을 수가 없다. 정치는 인간을 상대로 목적의식을 가져야 하는 윤리적인 영역이지 결코 공학적으로 보는 수단적인 영역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의 역사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많은 인간들이 희생되고 고통 받고 억울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나지 않은가? 이번에 읽은 김만권 박사의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들”이란 도서는 정치와 사회에 관한 철학에세이로서 현실사회를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해 담론하는 도서다. 이미 김만권 박사의 서적은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으로 통해 미리 접촉한 바가 있다.

 

앞에도 읽어본 이 책 역시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맞으나 그 이야기 뒤에는 사상과 사상가가 있었다. 사상가는 결국 사회학과 철학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2가지 책에서 그림으로 이해하는 정치사상을 쉽게 개념을 설명하는 책이라면,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은 좀 더 내용이 깊이를 추가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기본적으로 두 책에서 마키아 밸리의 등장과 더불어 기본적으로 다루어야할 근대 내지 현대철학자들이 속속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에서 철학적인 영역에서 가장 중요시 다루는 사건은 세계 제1차 내지 2차 대전이다. 20세기에 들어온 인간들이 합리적인 사고를 가졌는지 아니면 광기에 빠졌는지 당시 구분하지 못할 병폐가 세계 도처에 만연했다. 히틀러라는 독재자와 히틀러만큼의 난폭한 스탈린의 등장은 전체주의적인 사회와 국가의 권력이 민주주의사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시와 통제로 이어지는 여파로 이어졌다.

 

인간이란 자기의 주관과 가치를 명확히 이해하고 살아가기 보다는 그저 파블로프의 개처럼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개인이 자각과 판단 의지를 모두 살해당한 채 말이다. 인간의 광기가 폭발하던 시기에 인권이 무엇인지? 또 그런 인간들이 무참히 살아가야했던 지난 세월에서 우리는 무엇을 보고 생각하는지 이 책에서 하나의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에 대해 많은 철학자들의 논리와 주장으로 풀어나간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많은 공감과 이해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인간이란 단순히 한 가지로 잴 수 있는 존재도 아니고, 그런다고 하여 인간 모두에게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인정하고 살아가야할 권리도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그 가치적인 영역에서 많은 고민이 든다. 루소가 인간은 불평등할 수밖에 없다고 하고, 니체는 인간을 평등하다는 것이 오히려 불평등하다는 점, 인간의 자유적인 가치가 평등한 인권이 아니라 개인적인 재산권에 따라 달라지는 사회 등등에서 어떻게 우리는 제대로 판단하고 살아야할지 또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어야 말로 한나 아렌트가 말한 대중(mass), 선동가(mobs), 시민(people, 책에서는 인민)에서 진정한 시민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결국 대중들이 선동가들에게 휘말리지 않고 시민으로서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런 구도를 지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인듯 하다. 인간이 합리주의 사상이 나오기 전에 신을 믿는 신화적 세계에서 그것을 제거하는 계몽 자체가 다시 억압이라는 신화로 탄생했다. 오히려 더 합리적인 가치라고 하여 하나의 헤게모니로서 억압과 비이성이란 형태로 나오지 않았던가?

 

아니면 인간은 너무 이성적인가? 혹은 아직 이성이 결여되어서 그런가? 내가 볼 때는 인간은 분명 이성이 결여되어 있지만, 자기 자신은 너무 이성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인간의 이성이란 모든 경험적인 조건을 배제하여 순수하게 형이상학적 관념으로서 판단하려고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처럼 이성의 영역은 모든 인간에게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이성 자체에 대한 의심과 비판 없이는 나갈 수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나는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대다수이기에 어느 큰 비이성적인 대규모가 하나의 합리적 이성으로 변모하여 마녀재판을 열어 인간을 사냥하듯이 말이다.

 

그런다고 하여 인간의 이성으로만 바라볼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인간에게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만 남겨 놓는다면 그것은 육체라는 껍질만 지닌 인공지능 로봇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런 존재가 바로 전체주의적인 국가이며, 그곳에는 오로지 국가권력 합리화를 위해 약자를 계속 희생시켜야만 한다. 누군가 정의롭게 보이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정의롭지 못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그 사회의 정치적 도덕이라고 한다면 정말 정치적이라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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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애니비평 2012-04-11 공감(1)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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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부 2010-01-2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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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세상을 보는 열일곱 개의 시선 새창으로 보기
도서관에서 봤던 굉장히 좋은책인데 품절이네요 ㅠㅠ
Gatz 2018-09-28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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