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8-09

西岡力 - Wikipedia

西岡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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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岡 力
にしおか つとむ
生誕1956年4月16日(65歳)
日本の旗 日本東京都
国籍日本の旗 日本
研究分野地域研究現代朝鮮研究)
研究機関麗澤大学
出身校国際基督教大学学士
筑波大学修士
プロジェクト:人物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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西岡 力(にしおか つとむ、1956年4月16日[1] - )は、現代朝鮮研究者。麗澤大学客員教授。公益財団法人モラロジー研究所歴史研究室長・教授。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救う会)会長。東京都生まれ。

学歴・職歴[編集]

1979年、国際基督教大学卒業[2]筑波大学大学院地域研究科修士課程修了後[2]、韓国・延世大学校国際学科に留学。1982年から1984年まで外務省駐ソウル日本大使館専門調査員として勤務。 1984年から1991年まで 現代コリア研究所主任研究員。1991年から東京基督教大学神学部専任講師、1996年に同助教授、2000年に同学部国際キリスト教学科教授。1990年から2002年まで、月刊『現代コリア』編集長。

  • 2008年、同学部国際キリスト教福祉学科(学科名改称)国際キリスト教学専攻教授[3]
  • 2015年、第30回「正論大賞」受賞。
  • 2016年、麗澤大学客員教授
  • 2017年、公益財団法人モラロジー研究所歴史研究室室長・教授
  • 「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救う会)」会長
  • モラロジー研究所室長。

人物・活動[編集]

田中明に師事する[4]。現代コリア研究所の発行誌『現代コリア』の編集長を2002年まで務める。また、1998年4月「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救う会)」の設立に関与。現在「救う会」の会長を務め、その支部の一つである「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東京の会(救う会東京)」の会長も兼任している。

中西輝政八木秀次島田洋一伊藤哲夫と共に安倍晋三首相のブレーン「五人組」の1人と東京新聞に報じられたこともある。西岡は東京新聞からの取材に「北朝鮮に拉致された日本人を救出するための全国協議会(救う会)」の常任副会長として、安倍と共同歩調を取ってきた。ただし、「安倍さんとは救う会の副会長として会うことはあるが、直接ものを聞かれたこともないし、助言をしたこともない。下村博文議員や伊藤さんを介した関係で、決してブレーンではない」と回答している[5]。2012年9月に行われた自由民主党総裁選挙の際は、「安倍晋三総理大臣を求める民間人有志の会」発起人に名を連ねた[6]

朝鮮半島問題・日本人拉致問題に関する言論人・活動家の一人でもある[7][8][9][10]

慰安婦問題[編集]

吉見義明高木健一戸塚悦朗福島瑞穂などの主張する慰安婦強制連行には否定する立場をとる。西岡も2007年2012年草思社から「よくわかる慰安婦問題」など慰安婦問題に関する書籍を2作品発表し、この中で慰安婦強制連行の主張をとる弁護士を「事実を歪曲しても日本を非難すればよいという姿勢」などと批判した[11]

批判された高木健一弁護士は名誉を傷つけられたとして、西岡と出版元の草思社に対して出版の差し止めと1000万円の損害賠償を求めて名誉毀損訴訟東京地裁に起こしたが、1審の東京地裁は2014年2月、「記述の前提事実の重要な部分が真実であるか、または真実と信じたことに相当な理由がある。公益を図る目的で執筆されており、論評の域を逸脱するものではない」として原告の訴えを棄却した。2審の東京高裁も1審を支持した。2015年1月14日、最高裁第二小法定(鬼丸かおる裁判長)は原告側の上告を棄却した。これにより、高木弁護士の敗訴が確定し西岡が勝訴した[11][12]。同裁判の勝訴を受けて西岡は「言論には言論でという原則に反する裁判は何とも後味が悪かった」と述べている[12]

朝日新聞社の植村隆記者の書いた「(慰安婦が)女子挺身(ていしん)隊の名で連行された」とする記事について2014年2月6日号の週刊文春の記事中で「名乗り出た女性(金学順)は親に身売りされて慰安婦になったと訴状に書き、韓国紙の取材にもそう答えている」「捏造記事と言っても過言ではない」と批判した[13][14][15]

これに対し植村は2015年1月9日、「捏造」と批判され続け、家族や周辺にまで攻撃が及ぶとして、代理人として170人近い弁護士をたて、西岡と出版元の文藝春秋に対して計1650万円の損害賠償などを求める名誉毀損訴訟を東京地裁に起こした[13]。同訴訟に対して西岡は、文藝春秋2015年1月号での植村の西岡への反論に再反論し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再反論に答えることなく、突然、民事訴訟を起こしたことには、大いに失望した。

言論人であるならば、言論で戦って自分の名誉を守るべきだ」と批判している[12]。また、「言論には言論での原則に則って、ぜひ植村氏と論争を続けたかった」述べ、高木弁護士との裁判と同じ苦々しい気持ちを植村との裁判でも感じているとしている。そして、

「過去に慰安婦問題での日本の責任を問うキャンペーンを行った側が、それを批判してきた学者や言論人に対して名誉毀損で訴えるということが他にも続いている。その背景に何があるのかを考えている」としている[12]。この訴訟については、産経新聞言論に対しては言論にて反論するのが筋であり、自らに対する批判記事などが脅迫犯罪を招いたとする訴訟理由には首をひねると報道している[16]

2018年9月5日に行われた上記訴訟の本人尋問で西岡は植村が金学順について書いた記事の「女子挺身隊の名で戦場に連行され」という表現について、「この方は一度も『女子挺身隊の名で』と言っていない。植村氏の記事は誤報で、読者を大きく誤らせるキャンペーンだ」と語ったのに対し植村は「金さん自身、当時の記者会見で『私は挺身隊だった』と述べており、私の記事は誤りではない」と反論した[17]

また、西岡は、証拠として提出された西岡自身の論文の中でハンギョレ新聞の記事を引用した際、金学順について「私は40円で売られて、キーセンの修業を何年かして、その後、日本の軍隊のあるところに行きました」と同紙記事にない表現を西岡自身が付け加えたことについて「間違いです。後で気づいて訂正した」などと誤りがあったことを認めた[17][15]。さらに、「(金が)身売りされ慰安婦になったと訴状に書いた」のは事実かを問われたのに対し、記憶違いだったと答弁、週刊文春記事の間違いを認めた[15]

2019年6月26日に東京地裁は植村の西岡と文藝春秋に対する損害賠償請求を棄却した。判決では、西岡の記事について「指摘は公益目的で、重要部分は真実」と認定し、植村が「金学順が日本軍によって強制連行された」という認識はなかったのにあえて事実と異なる記事を書いたとし、「強制連行したと報道するのとしないのとでは報道の意味が変わり得ることを十分に認識していた。記事は意識的に言葉を選択して記載したもの」として、西岡らの指摘には真実性があるとした[18][19]

2020年02月06日に札幌高裁は、植村の訴えを退けた1審判決を支持して請求を棄却し、控訴審でも植村が敗訴し、西岡が勝訴した[20]

2020年03月03日には東京高裁も一審判決を支持して植村の控訴を棄却し、西岡が勝訴した[21]

著書[編集]

単著[編集]

  • 『日韓誤解の深淵』(亜紀書房、1992年)ISBN 4750592129
  • 『コリア・タブーを解く』(亜紀書房、1997年)ISBN 4750597031
  • 『闇に挑む!―拉致、飢餓、慰安婦、反日をどう把握するか』(徳間書店、1998年)ISBN 4198909709
  • 『飢餓とミサイル――北朝鮮はこれからどうなるのか』(草思社、1998年)ISBN 479420857X
  • 『暴走する国家・北朝鮮――核ミサイルは防げるのか』(徳間書店、1999年)ISBN 4198911444
  • 『金正日と金大中――南北融和に騙されるな!』(PHP研究所、2000年)ISBN 4569612687
  • 『金正日が仕掛けた「対日大謀略」拉致の真実』(徳間書店、2002年)ISBN 4198615977
  • 『テロ国家・北朝鮮に騙されるな』(PHP研究所、2002年)ISBN 4569624413
  • 『拉致家族との6年戦争――敵は日本にもいた!』(扶桑社、2002年)ISBN 4594038190
  • 『北朝鮮に取り込まれる韓国――いま"隣国"で何が起こっているか』(PHP研究所、2004年)ISBN 4569634680
  • 『日韓「歴史問題」の真実――「朝鮮人強制連行」「慰安婦問題」を捏造したのは誰か』(PHP研究所、2005年)ISBN 4569643167
  • 『韓国分裂――親北左派vs韓米日同盟派の戦い』(扶桑社、2005年)ISBN 4594050166
  • 『北朝鮮の「核」「拉致」は解決できる』(PHP研究所、2006年)ISBN 4569656315
  • 『よくわかる慰安婦問題』(草思社、2007年)ISBN 9784794216014。のち増補新版文庫、2012年 ISBN 4794219423
  • 『朝日新聞「日本人への大罪」 「慰安婦捏造報道」徹底追及』(悟空出版、2014年)ISBN 978-4908117022
  • 『横田めぐみさんたちを取り戻すのは今しかない』(PHP研究所、2015年)ISBN 978-4569824277
  • 『ゆすり、たかりの国家』(ワック、2017年)ISBN 978-4898317631
  • 『歴史を捏造する反日国家・韓国』(ワック、2019年2月)ISBN 978-4-89831-792-1
  • 『でっちあげの徴用工問題』(草思社、2019年3月)ISBN 978-4-7942-2388-3
    のち韓国語版『날조한, 징용공 없는 징용공 문제』李宇衍訳(メディアウォッチ、2020年12月)

共著[編集]

監修[編集]

寄稿[編集]

  • 「雑誌『世界』は朝鮮をどう見たか」(含 資料・『世界』朝鮮関係記事)上・中・下『朝鮮研究』日本朝鮮研究所、1980年1月・3月・7月
  • 「日本の新聞が伝えた光州事件」『朝鮮研究』日本朝鮮研究所、1980年8月  など多数

国際

脚注[編集]

  1. ^ 『読売年鑑 2016年版』(読売新聞東京本社、2016年)p.334
  2. a b 攻防・慰安婦 反日像が乱立 米・グレンデール市の市長を直撃!”. Web正論 (2017年10月25日). 2017年11月19日閲覧。
  3. ^ 2016年度をもって退任される先生”. 東京基督教大学 (2017年10月25日). 2017年11月19日閲覧。
  4. ^ 西岡力 ワックマガジンズ 朝日・グレンデール訴訟を支援する会
  5. ^ 竹内洋一、山川剛史 (2006年9月9日). “「安倍氏ブレーン」どんな人? 靖国、拉致、教育問題…”. 東京新聞
  6. ^ 安倍晋三総理大臣を求める民間人有志の会 発起人一覧
  7. ^ “「斬首」恐れる金氏を追い詰めよ 独裁者は命が危ういと判断したときだけ譲歩する モラロジー研究所教授・麗澤大学客員教授・西岡力”産経新聞. (2017年8月31日) 2018年3月17日閲覧。
  8. ^ “拉致被害者を救う会会長の西岡力氏「拉致解決、積極的議論を」”産経新聞. (2017年9月25日) 2018年3月17日閲覧。
  9. ^ “対北「まず圧力」西岡力氏講演 安易な対話に警鐘”産経新聞. (2018年3月12日) 2018年3月17日閲覧。
  10. ^ “検証可能な北の核廃棄が鍵だ モラロジー研究所教授・麗澤大学客員教授・西岡力”産経新聞. (2018年3月15日) 2018年3月17日閲覧。
  11. a b 慰安婦問題めぐる西岡氏の著書への損害賠償請求 最高裁が訴え棄却 産経ニュース 2015.1.15 18:12
  12. a b c d 「なぜ「言論」に背を向けるのか 私を訴えた植村隆元朝日新聞記者へ」正論2015年3月号
  13. a b 元朝日記者、文春などを提訴 「慰安婦報道で名誉毀損」 朝日新聞DIGITAL 2015年1月10日01時34分
  14. ^ 元朝日記者・植村氏の名誉毀損訴訟 文芸春秋と西岡氏が争う姿勢”. 産経新聞 (2015年4月27日). 2018年9月28日閲覧。
  15. a b c 『朝日』元記者・植村隆裁判で西岡力氏が自らの「捏造」認める”. 週刊金曜日 (2018年9月14日). 2018年9月28日閲覧。
  16. ^ 元朝日記者提訴 言論の自由に反している 産経ニュース 2015.1.10 05:04
  17. a b 名誉毀損巡り対立 慰安婦報道訴訟、本人尋問 東京地裁”. asahi.com朝日新聞社 (2018年9月5日). 2018年9月7日閲覧。
  18. ^ “慰安婦報道訴訟、植村氏の請求棄却 東京地裁”産経新聞. (2019年6月26日) 2020年8月16日閲覧。
  19. ^ 慰安婦訴訟「捏造」と書かれた元朝日記者が敗訴 賠償認めず(2019年6月26日掲載)”. 弁護士ドットコム. 2019年6月28日閲覧。
  20. ^ “従軍慰安婦記事巡り元朝日記者の植村隆氏、控訴審も敗訴 札幌高裁”毎日新聞. (2020年2月6日) 2020年8月16日閲覧。
  21. ^ 元朝日記者の慰安婦記事訴訟、東京高裁も控訴棄却 産経新聞、2020年3月3日]






니시오 카 쓰 토무 - Wikipedia

니시오 카 쓰 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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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시오 카 쓰 토무
니시오 카 츠토무
탄생1956 년 4 월 16 일 (65 세) 일본 도쿄도
일본 깃발 
국적일본 깃발 일본
연구 분야지역 연구 ( 현대 조선 연구)
연구 기관레이 타쿠 대학
출신교국제 기독교 대학 ( 학사 )
쓰쿠바 대학 ( 석사 )
프로젝트 : 인물 전
템플릿을 표시

니시오 카 쓰 토무 (西岡츠토무, 1956 년 4 월 16 일 [1]  -)은 현대 조선 연구원. 레이 타쿠 대학 객원 교수 . 공익 재단법인 모라로지 연구소 역사 연구 실장 · 교수. 북한에 납치 된 일본인을 구출하기위한 전국 협의회 (구출 회) 회장. 도쿄도 출생.

학력 · 경력 [ 편집 ]

1979 년 국제 기독교 대학 졸업 [2] . 츠쿠바 대학 대학원 지역 연구과 석사 과정 수료 후 [2] , 한국 · 연세대 학교 국제학과에 유학. 1982 년부터 1984 년까지 외무부 주 서울 일본 대사관전문 조사원 으로 근무. 1984 년부터 1991 년까지  현대 코리아 연구소 주임 연구원. 1991 년부터 도쿄 기독교 대학 신학부 전임 강사 1996 년에 동 조교수, 2000 년 동 대학 국제 기독교학과 교수. 1990 년부터 2002 년까지 월간 「현대 코리아 '편집장.

  • 2008 년 동 대학 국제 기독교 복지학과 (학과 이름 개칭) 국제 그리스도 교학 전공 교수 [3]
  • 2015 년 제 30 회 「정론 대상 '수상.
  • 2016 년 레이 타쿠 대학 객원 교수
  • 2017 년 공익 재단법인 모라로지 연구소 역사 연구소 실장 · 교수
  • "북한에 납치 된 일본인을 구출하기위한 전국 협의회 (구출 회) '회장
  • 모라로지 연구소 실장.

인물 · 활동 [ 편집 ]

다나카 아키라 에게 사사한다 [4] . 현대 코리아 연구소 발행지 「현대 코리아 '의 편집장을 2002 년까지 맡는다. 또한 1998 년 4 월 "북한에 납치 된 일본인을 구출하기위한 전국 협의회 (구출 회) '의 설립에 참여. 현재 "구원 모임 '의 회장을 맡고 그 지부 중 하나 인'북한에 납치 된 일본인을 구출하는 도쿄의 모임 (구원 회 도쿄) '의 회장을 겸임하고있다.

나카니시輝政, 야기 히데 쓰구 , 시마다 요이치 , 이토 테츠오 와 함께 아베 신조 총리의 브레인 '오 인방'중 하나와 도쿄 신문 에 보도 된 적도있다. 니시오 카는 도쿄 신문의 취재에 "북한에 납치 된 일본인을 구출하기위한 전국 협의회 (구출 회) '의 상임 부회장으로 아베과 공동 보조를 취해왔다. 그러나 「아베 씨와는 저장 모임의 부회장으로 만날 수는 있지만 직접 물건을 듣지 된 적도없고, 통보를 한 적도 없다. 시모무라 하쿠 의원과 이토를 통한 관계에서 결코 브레인 이 아니다 "고 답변하고있다 [5] . 2012 년 9 월에 열린 자민당 총재 선거시에는 "아베 신조 총리를 요구 민간인 자발적인 모임 '발기인에 이름을 올렸다 [6] .

한반도 문제 · 일본인 납치 문제 에 대한 언론인 · 활동가의 한사람이기도하다 [7] [8] [9] [10] .

위안부 문제 [ 편집 ]

요시미 요시아키 , 타카 기 켄이치 , 토 츠카悦朗, 후쿠시마 미즈호 등의 주장 위안부강제 연행 은 부정하는 입장을 취한다. 니시오도 2007 년2012 년잔디思社에서 "잘 아는 위안부 문제 '등 위안부 문제에 관한 서적을 2 작품 발표,이 중 위안부 강제 연행의 주장을 취하는 변호사 를"사실을 왜곡해서 일본을 비난하면된다는 자세 "라고 비판했다 [11] . 비판 된 다카기 겐이치 변호사는 명예를 손상 한으로 니시오과 출판사의 잔디思社대해 출판 금지와 1000 만엔의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명예 훼손 소송도쿄 지방 법원 에 제기했으나 1 심 도쿄 지방 법원은 2014 년 2 월 "기술의 전제 사실의 중요 부분이 진실이거나 진실이라고 믿은 데에 상당한 이유가있다. 공익을 도모 할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논평 영역 를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며 원고의 소송을 기각했다. 2 심 도쿄 고등 법원도 1 심을지지했다. 2015 년 1 월 14 일 대법원 제 작은 법정 ( 오니 마루 카오루 재판장)는 원고 측의 상고를 기각했다. 그러면 다카기 변호사의 패소가 확정 니시오가 승소했다 [11] [12] . 이 재판의 승소를 받고 니시오 카는 "언론은 언론의 원칙에 반하는 재판은 왠지 뒷맛이 나빴다"고 말했다 [12] .

아사히 신문 사의 우에무라 다카시 기자가 쓴 "(위안부가) 여자 헌신하지 않는 (헌신하지 않는) 대 이름으로 연행됐다"고 기사에 대한 2014 년 2 월 6 일주간 문춘 기사 중에서 "나선 여성 (김학순)은 부모에게 양도되어 위안부가되었다고 소장에 쓰고 한국 신문의 취재에 그렇게 대답하고있다"며 "날조 기사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비판했다 [13] [14] [15] . 이에 대해 우에는 2015 년 1 월 9 일 "날조"라고 비판 받고 가족과 주변까지 공격을 미칠로서 대리인으로 170 여명의 변호사를 세우고 니시오과 출판사의 문예 춘추 에 대해 밖으로 총 1650 만엔의 손해 배상 등을 요구하는 명예 훼손 소송을 도쿄 지방 법원에 제기했다 [13] . 이 소송에 대해 니시오 카는 문예 춘추 2015 년 1 월호에서 우에의 니시오 카의 반박에 재 반박에도 불구하고 "재 반론에 대답하지 않고 갑자기 민사 소송을 제기 한 것 은 매우 실망했다. 언론인이라면 언론에서 싸우고 자신의 명예를 지켜야한다 "고 비판하고있다 [12] . 또한 "언론은 언론의 원칙에 따라 꼭 우에 무라 씨와 논쟁을 계속 싶었다"며 다카기 변호사의 재판과 같은 씁쓸한 기분을 우에 무라와의 재판에서도 느끼고 있다고하고있다. 그는 "과거에 위안부 문제에서 일본의 책임을 묻는 캠페인을 실시한 쪽이 그것을 비판 해 온 학자와 언론인에 대해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는 것이 그 밖에도 계속되고있다. 그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를 생각하고있다 "고하고있다 [12] . 이 소송은 산케이 신문언론 에 대해서는 언론에서 반박하는 근육이며, 스스로에 대한 비판 기사 등이 협박 범죄 를 초래했다고 소송 이유는 고개를 갸우뚱 고 보도하고있다 [ 16] .

2018 년 9 월 5 일에 실시 된 상기 소송의 본인 심문에서 니시오 카는 우에 무라가 김학순 대해 쓴 기사에서 "조선 여자 근로 정신대의 이름으로 전쟁터에 끌려 '라는 표현에 대해"이 분은 한번도 "여자 헌신하지 않는 군단의 이름으로 "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 우에 무라 씨의 기사는 오보로 독자를 크게 오도 캠페인"이라고 말했다 반면 우에는 "김씨 자신 당시 기자 회견에서"나는 정신대였다 "고 말하고있어, 나의 기사는 잘못이 없다"고 반박했다 [17] .

또한 니시오 카는 증거로 제출 된 니시오 자신의 논문에서 한겨레 신문 기사를 인용했을 때, 김학순 대해 "나는 40 엔에 판매하고, 기생 의 수업을 몇 년하고 그 후 일본의 군대가있는 곳으로 갔다 "고 신문 기사에없는 표현을 니시오 자신이 덧붙였다 것에 대해"실수입니다. 나중에 눈치 정정했다 "라고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17] [ 15] . 또한 "(돈이) 양도 된 위안부가되었다고 소장에 쓴"사실 여부를 불문 한 반면, 기억 차이 였다고 답변, 주간 문춘 기사의 실수를 인정했다 [15] .

2019 년 6 월 26 일 도쿄 지방 법원은 우에 무라의 니시오과 문예 춘추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판결에서는 니시오 카의 기사에 대해 "지적은 공익 목적에서 중요한 부분은 진실"고 인정하고 우에 무라가 "김학순가 일본군에 의해 강제 연행 된 '라는 인식은 없었는데 굳이 사실과 다른 기사를 쓰고 며, "강제 연행했다고 보도하는 것과하지 않는 것과에서는 보도의 의미가 달라 얻는 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 기사는 의식적으로 말을 선택하여 기재 한 것"으로 니시오 카들의 지적에는 진실성이 있다고했다 [18] [19] .

2020 년 02 월 06 일 삿포로 고등 법원은 우에 무라의 소송을 기각 한 1 심 판결을지지하고 청구를 기각 항소심에서도 우에 무라가 패소하고 니시오가 승소했다 [20] .

2020 년 03 월 03 일에는 도쿄 고등 법원도 재판 판결을지지 우에 무라의 항소를 기각하고 니시오가 승소했다 [21] .

저서 [ 편집 ]

저서 [ 편집 ]

  • "한일 오해의 심연」( 아키 서점 , 1992 년) ISBN 4750592129
  • '코리아 금기를 풀 "(아키 서점, 1997 년) ISBN 4750597031
  • "어둠에 도전! - 납치, 기아, 위안부, 반일을 어떻게 파악 하느냐 '( 토 쿠마 서점 1998 년) ISBN 4198909709
  • "기아와 미사일 -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잔디思社1998 년) ISBN 479420857X
  • "폭주하는 국가 북한 - 핵 미사일은 막을 것인가」(토 쿠마 서점 1999 년) ISBN 4198911444
  • "김정일과 김대중 - 남북 화해에 속지 마라! "( PHP 연구소 , 2000 년) ISBN 4569612687
  • "김정일이 건"대 일대 모략 "납치의 진실 '(토 쿠마 서점, 2002 년) ISBN 4198615977
  • "테러 국가 북한에 속지 말라"(PHP 연구소 2002 년) ISBN 4569624413
  • '납치 가족과의 6 년 전쟁 - 적은 일본도 있었다! "( 후소샤 2002 년) ISBN 4594038190
  • "북한에 포함 된 한국 - 지금"이웃 나라 "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PHP 연구소 2004 년) ISBN 4569634680
  • '한일'역사 문제 '의 진실 - "조선인 강제 연행' '위안부 문제'를 날조 한 것은 누구인가」(PHP 연구소 2005 년) ISBN 4569643167
  • "한국 분열 - 친북 좌파 vs 한미일 동맹 파 전투 '(후소샤 2005 년) ISBN 4594050166
  • "북한의 '핵' '납치'는 해결할 수"(PHP 연구소 2006 년) ISBN 4569656315
  • "잘 아는 위안부 문제 '(잔디思社2007 년) ISBN 9784794216014 . 훗날 증보 신판 문고, 2012 년  ISBN 4794219423 .
  • "아사히 신문"일본에 대죄 ""위안부 날조 보도 "철저히 추구"(오공 출판, 2014 년) ISBN 978-4908117022
  • "요코타 메구미들을 되는 지금 밖에 없다"(PHP 연구소 2015 년) ISBN 978-4569824277
  • "공갈 협박,たかり의 국가"(왝 2017 년) ISBN 978-4898317631
  • "역사를 날조하는 반일 국가 한국」(왝 2019 년 2 월) ISBN 978-4-89831-792-1
  • "날조 징용 공 문제"(잔디思社2019 년 3 월) ISBN 978-4-7942-2388-3 .
    훗날 한국어 버전 "날조 한, 징용 공없는 징용 공 문제" 리宇衍역 (미디어 워치 2020 년 12 월)

공동 [ 편집 ]

감수 [ 편집 ]

기고 [ 편집 ]

  • "잡지" 세계 "는 조선을 어떻게 보았는가?"(포함 자료 「세계」조선 관계 기사) 상 · 중 · 하 "조선 연구 '일본 조선 연구소, 1980 년 1 월 · 3 월 · 7 월
  • "일본 신문이 전했다 광주 사건」 「조선 연구 '일본 조선 연구소, 1980 년 8 월 등 다수

국제

각주 [ 편집 ]

  1. ^  "요미우리 연감 2016 년판"(요미우리 신문 도쿄 본사 2016 년) p.334
  2. a  b  " 공방 · 위안부 반일 상이 난립 미국 글렌 데일시의 시장을 직격! "Web 정론 (2017 년 10 월 25 일)  2017 년 11 월 19 일 에 확인.
  3. ^  " 2016 년도로서 퇴임하는 선생님 "도쿄 기독교 대학 (2017 년 10 월 25 일)  2017 년 11 월 19 일 에 확인.
  4. ^  니시오 카 쓰 토무 왝 매거진  아사히 글렌 데일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5. ^  타케우치 요이치 산천 타케시 (2006 년 9 월 9 일). ""아베 브레인 "어떤 사람? 야스쿠니 납치 교육 문제 ..."  도쿄 신문
  6. ^  아베 신조 총리를 요구 민간인 자발적인 모임 발기인 목록
  7. ^  ""참수 "두려워 김씨를追い詰めよ독재자는 생명이 위태로운 판단했을 때만 양보하는 모라로지 연구소 교수 · 레이 타쿠 대학 객원 교수 · 니시오 카 쓰 토무"산케이 신문 (2017 년 8 월 31 일)  2018 년 3 월 17 일 에 확인.
  8. ^  "납치 피해자를 구출 회 회장 니시오 카 쓰 토무 씨"납치 해결 적극적으로 논의를 ""산케이 신문 (2017 년 9 월 25 일)  2018 년 3 월 17 일 에 확인.
  9. ^  "대북"우선 압력 "니시오 카 쓰 토무 씨 강연 안이 한 대화에 경종"산케이 신문 (2018 년 3 월 12 일)  2018 년 3 월 17 일 에 확인.
  10. ^  "검증 가능한 북핵 폐기가 관건이다 모라로지 연구소 교수 · 레이 타쿠 대학 객원 교수 · 니시오 카 쓰 토무"산케이 신문 (2018 년 3 월 15 일)  2018 년 3 월 17 일 에 확인.
  11. a  b  위안부 문제 둘러싼 니시오 카 씨의 저서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대법원이 소송 기각  산케이 뉴스 2015.1.15 18:12
  12. a  b  c  d  '왜'언론 '을 외면하는지 저를 호소했다 우에隆元아사히 신문 기자에' 정론 2015 년 3 월호
  13. a  b  원나라 기자, 문춘 등을 제소 "위안부 보도로 명예 훼손"  아사히 신문 DIGITAL 2015 년 1 월 10 일 01시 34 분
  14. ^  " 원나라 기자 · 우에 무라 씨의 명예 훼손 소송 문예 춘추와 니시오 카 씨가 싸우는 자세산케이 신문  (2015 년 4 월 27 일)  2018 년 9 월 28 일 에 확인.
  15. a  b  c  " "아사히 "원래 기자 · 우에 무라 다카시 재판에서 니시오 카 쓰 토무 씨가 스스로의"날조 "인정주간 금요일  (2018 년 9 월 14 일)  2018 년 9 월 28 일 에 확인.
  16. ^  원나라 기자 제소 언론의 자유에 위배되는  산케이 뉴스 2015.1.10 05:04
  17. a  b  " 명예 훼손 순회 투쟁 위안부 보도 소송 본인 심문 도쿄 지방 법원asahi.com아사히 신문  (2018 년 9 월 5 일).  2018 년 9 월 7 일 에 확인.
  18. ^  "위안부 보도 소송, 우에 무라 씨의 청구 기각 도쿄 지방 법원"산케이 신문 (2019 년 6 월 26 일)  2020 년 8 월 16 일 에 확인.
  19. ^  " 위안부 소송 '날조'라고 적힌 원나라 기자가 패소 배상 인정하지 않고 (2019 년 6 월 26 일 게재) "변호사 닷컴.  2019 년 6 월 28 일 에 확인.
  20. ^  "종군 위안부 기사 순회 원나라 기자의 우에 무라 다카시 씨 항소심도 패소 삿포로 고등 법원"마이니치 신문 (2020 년 2 월 6 일)  2020 년 8 월 16 일 에 확인.
  21. ^  원나라 기자의 위안부 기사 소송 도쿄 고등 법원 항소 기각  산케이 신문 2020 년 3 월 3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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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링크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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