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30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모바일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 칼럼 : 사설.칼럼 : 뉴스 : 한겨레모바일
‘헬조선’에서 민란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
등록 201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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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젊은이들은 아직까지 경제성장과 각자의 노력이 결국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자기 탓’으로 돌린다. 성장이 둔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아직도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모양이다.
과거 중국이나 한국의 전통사회에서는 국가 관료들이 백성 사이에 불리는 노래들을채집하러 다녔다. 민요를 곧 민심의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해서 민심을 읽으려고 했다. 요즘 같으면 가장 정확한 젊은층 민심의 독법은, 아마도 젊은이들이 지어낸 신조어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그러한 신조어들이 이 사회의 특징들을 하도 예리하게 짚어내는 바람에 한번 매체에 소개되면 전국민적 용어가 되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형 “조직 문화”의 아주 부정적인 한 측면을 잘 표현해 이제는 성인들 사이에 서도 보편적으로 쓰이는 ‘왕따’라는 말은 본래 1990년대 중반 중·고등학생들의 은어 아니었던가? 그런 용어들을 잘 봐야 우리 현주소가 그대로 보인다.
그렇다면 요즘 젊은층에서 유행하는 신조어들을 보고 바로 직감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3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젊은이), 5포세대(‘3포’에다가 취업,주택 구입 등을 포기한 젊은이), 7포세대(‘5포’에다가 인간관계 및 희망을 포기한 젊은이), 영포자(영어를 포기한 청소년·청년), 그것보다 조금 더 오래된 이태백(‘이십대 태반은 백수’의 준말)이나 인구론(‘인문계 졸업자는 구십퍼센트가 논다’의 준말)…. 이와 같은 신조어의 뜻을 외국 대학생들에게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이를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실상을 이해하게끔 해주어야 하는 대학교원 입장인 나로서도, 이와 같은 단어들을 듣기만 해도 벌써 절망과 무기력의 무드에 빠질 정도다.
절망 코드야말로 한국 젊은층의 신조어를 관통한다. 이들 신조어 중에서도 압권은 헬조선, 즉 ‘지옥 같은 한국’이다. 영어인 ‘헬’(Hell=지옥)은 이 신조어의 현대성을 부각하지만 ‘한국’도 아닌 ‘조선’은 이미 신분의 대물림이 거의 제도화된 한국 사회의 퇴행성을 암시한다. 150년 전에 조선의 한양 북촌에서 태어난 권문세도가들의 자녀들이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듯, 오늘날 ‘강남족’은 거의 저들만의 세습적 카스트를 이루어 거주지, 통혼권, 학습·유학 루트, 언어(영어 상용 선호), ‘웰빙’ 등 의 차원에서 배타적인 세습신분 계층을 형성한 게 아닌가?
‘헬조선론’이 한국의 2010년대 중반을 대변하는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다. 한 세기이전에 레닌이 제정러시아를 가리켜 “제국주의 세계의 가장 약한 고리”라고 부르지않았던가? “약한 고리”라는 것은, 제정러시아는 비록 ‘열강’ 대열에 속하긴 했지만 ‘열강’치고 민중의 박탈감이 가장 강하고 온갖 모순들이 가장 복잡하게 얽히고설킨사회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열강’의 위치에 있다 해도 실은 가장 내파되기 쉬운 나라라는 점을, 레닌이 간파한 것이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외형상 (명목상의 국내총 생산액으로 치면) 세계 13위 경제대국이며 세계 5위 수출대국, 그리고 세계 7위 군사력 보유국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준)열강이다. 한데 그 서민대중의 실질적 생활상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펼쳐진다.
부자 나라 클럽이라고 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한국이 가입하긴 했지만, 문맹률이 70%이던 제정러시아가 문맹자가 극소수이던 프랑스나 독일과 달랐듯이, 한국의 사회적 지표들도 여타의 오이시디 국가들과 완전히 다르다. 예컨대 한국의 국내총생산 대비 복지 예산 비율은 현재 10.4%로 오이시디 국가 중 최하위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 그래도 2년에 1%씩 오르긴 했지만,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거의 제자리걸음이다. 프랑스(31.9%)나 핀란드(31%)와 비교하는 거야 무리지만, 경제력이 한국보다 훨씬 약한 에스토니아(16.3%)와도 격차가 하도 커서, 대한민국을 ‘복지 없는 경제대국’이라고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국내총생산 대비 세금 부담률(24%)도 프랑스나 핀란드보다 두 배 정도 낮지만, 저과세는 세금낼 소득원 자체가 없는 가난한 젊은이들보다는 현대판 경화벌족 격인 ‘강남특별시’ 시민들에게 훨씬 유리한 것이다. 저과세와 무복지는 결국 세계 최악에 가까운 자살률과 최저에 가까운 출산율로 이어지고, 오이시디 회원국 중 최저의 주관적 행복지수로 이어진다. 행복지수란 꼭 주관적 ‘감성’만이 아니고 각자의 신체적 체감까지 포함하는 지표이기도 한다. 예컨대 한국인의 평균 수면시간(7시간49분)은 프랑스
인보다 무려 한 시간이나 짧아 오이시디에서 최저인데, 잠부터 충분히, 편안히 잘수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지옥에서 산다”고 말할 만하지 않은가?
제정러시아의 막대한 군사력과 그 민중의 처참한 삶이 전혀 다른 차원에 속했듯 ‘경제대국 대한민국’의 휘황찬란함은 그 생산의 피라미드를 뒷받침해주는 다수의 불안노동자와 자영업자, 빈민들의 삶까지 윤기 나게 하지는 않는다. 보통 신자유주의 국가에서는 성인 당사자들만이 서로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계급 재생산이 학벌피라미드를 통해 이루어지는 한국의 경우에는 부모만 경쟁하는 것이 아니고 자녀들까지도 이미 유치원 때부터 ‘대입’을 염두에 둔 피 말리는 교육자본 축적 경쟁에 투신해야 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아이대로 아동기를 빼앗기고, 어른들은 어른대로 초·중·고 학생 1인당 월평균 24만원의 사교육비, 즉 일종의 사설 교육세금을 빚을 져서라도, 병날 각오를 하고 두 직장을 다녀서라도 내는 것이다. 한국의 월평균 사교육비는, 상대적으로 더 부유한 국가인 일본의 월 사교육비(평균 15만원 정도)보다
훨씬 높다. 승자가 태생적으로 이미 거의 정해져 있으며, ‘패자 계층’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사람이 경쟁하면 경쟁할수록 질병과 채무만이 늘어나는 곳은 정말로 지옥이 아닌가?
그러나 제정러시아와 오늘날 대한민국의 유사성은 ‘국력’과 ‘민중 행복지수’의 믿지못할 정도의 불균형으로 끝나고 만다. 제정러시아는 이미 1905년 혁명 이후로는 전세계 혁명 전위의 위치에 올랐지만, 대한민국은 가면 갈수록 더 짙은 보수성을 드러낸다. ‘헬조선’ 지옥도를 그리는 사람들은 이민을 토론하거나 이런 데서 태어난 ‘팔자’를 한탄하지, 현대판 동학농민혁명을 꿈꾸는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 하나의 핵심어로 떠오른 ‘이민’은, 결국 더 부유하고 재분배 제도가 그나마 돌아가는 곳으로 가서 그곳의 시장경쟁-단 한국보다 덜 치열하고 더 공평한 경쟁!-에서 삶의 터를 잡으려는, 사실 극히 보수적인 꿈을 함의한다. 1917년 러시아에서 대공장 고숙련 남성 정규직들이 볼셰비키들을 열렬히 지지했다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는 대공장의 조직화된 숙련공들이 자본주의를 문제 삼기는커녕 비정규직들과의 연대마저도 사양하는 사례들이 수두룩하다. ‘헬조선’에서 죽창의 그림자도 쉽게 보이
지 않는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이 질문에 단순한 답은 없다. 너무나 많은 요인들이 한국 젊은이들을 투쟁이 아닌 절망으로 몰고 갔다. 예컨대 한국에서 자주 ‘좌파’로 오인되는 주류 개혁주의 정당에 대한 실망은 큰 몫을 했을 것이다. 2002년과 2012년 대선에서 노무현과 문재인에 대한 20·30대의 지지는 각각 59%와 64%였는데, 과연 ‘주류’ 야당이 젊은층 지지를 받는 만큼 비정규직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 일이 많은가? ‘88만원 세대’, 즉 불안노동시장으로 내몰린 대규모 젊은층의 출현은 사실 노무현 집권 때의 현상이 아닌가?
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성장 신화’의 지속이 아닌가 싶다. 여태까지의 성장 속에서 어느 정도의 생계안정을 이룩한 부모세대의 지원에 힘입어 실업자가 돼도 굶을 일은 없는 많은 젊은이들은 ‘헬조선 지옥도’를 그리면서도, 아직까지 경제성장과 각자의 노력이 결국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고 은근히 기대하고 자신들의 어려움을 ‘자기탓’으로 쉽게 돌린다. 성장이 둔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아직도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있는 모양이다. 재벌경제가 아무리 수출을 잘해도 다수의 삶이 나빠지기만 한다는 사실을 앞으로 몇 년간 더 확인해야, 이 사회를 연대해서 바꾸지 않는 이상 살길이 없다는 점을 ‘헬조선’의 피해자들이 각오할 것이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
·한국학
2016-09-29
와다 하루키 “지금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의 마음”
와다 하루키 “지금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의 마음”
와다 하루키 “지금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의 마음” 본문듣기 설정
기사입력 2015.12.05 오후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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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일본 리버럴과 ‘제국의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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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프레스센터 9층 회견실에서 일본인 지식인들이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기소한 한국 검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스오 요시노리 <교도통신> 전 서울특파원,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 나카자와 게이 호세이대 교수(작가),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 사진 길윤형 특파원
▶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문제적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가 한·일 양국의 지식인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6일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 검찰의 기소 결정을 맹비판한 데 이어, 2일 한국의 지식인들도 논쟁에 가세했다. 일본 지식인들은 왜 박 교수를 지지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한국의 ‘지나친’ 일본 비판에 질려버려, 위안부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포기해버린 일본 지식인 사회의 뒤틀린 모습을 만나게 된다.
지난달 26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프레스센터 9층.
잔뜩 흐린 날씨 때문인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뚫고,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주필 등이 연단에 올랐다.
이날 기자회견은 최근 일본에선 좀처럼 열린 적이 없는 희귀한 행사였다. 일본 지식인들이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한국의 군사정권을 공개 비판하는 회견을 연 적은 많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뒤 이 같은 행사를 연 적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성명엔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까지 참여해 상당한 무게가 실렸다.
<제국의 위안부>
우에노 명예교수 등이 기자회견을 연 직접적인 계기는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의 ‘문제적 저서’ <제국의 위안부>(2013년)에 대한 한국 검찰의 기소 결정이었다. 이들은 성명에서 “서울동부지검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것에 대해 커다란 놀라움과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운을 뗀 뒤 “검찰청이라는 공권력이 특정 역사관을 기반으로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을 취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박 교수의 저서를 둘러싸고 두 차례 치열한 논쟁이 진행돼왔다. 1차 논쟁은 지난해 6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 책의 일부 표현이 자신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법원에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논쟁의 층위는 실로 복잡다단했지만, 국가가 특정한 학문적 견해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1차 논쟁에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수면에 잠복해 있던 논란은 지난 2월 법원이 할머니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기술 등 34곳을 삭제하도록 결정한 뒤 재발됐고, 지난달 18일 검찰의 기소 결정 이후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논쟁의 제3라운드라 부를 수 있다.
‘제국의 위안부’ 논쟁 제3라운드
검찰의 박유하 교수 기소결정에
일본 지식인들 비판 기자회견
‘아시아 여성기금’ 지지해온
와다 교수는 뜻밖에도 다른 목소리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군 병사와
동지의식 지닌 제국의 위안부였다?
와다 교수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
표현의 자유라는 표면적 논쟁 넘어
위안부 성격 탐구로 논의 확장해야
일본 진보의 균열을 다시 확인하다
3차 논쟁에선 그동안 1·2차 논쟁에서 볼 수 없었던 두 가지 특징이 확인된다. 첫째는 그동안 한국 내 논의를 지켜보고만 있던 일본 지식인 사회가 개입을 시도했다는 점, 둘째는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에서 머무르던 논의가 책의 구체적인 내용으로까지 심화·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게 일본 지식인들의 성명이다. 성명엔 크게 두 개의 내용이 담겨 있다. 첫번째는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 기초해 한국 검찰의 기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검찰 기소가 할머니들의 고소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언정 바람직한 게 아니라는 데엔 한·일 양국 모두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성명이 밝히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다.
성명을 보면 이번 성명을 주도한 지식인들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대단한 ‘호의’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넘어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사태의 복잡성과 배경의 깊이를 포착하고 있다”며 “식민 지배를 통해 그러한 상황(위안부 문제)을 만들어낸 제국 일본의 근원적인 책임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 위안부 문제로부터 등을 돌리고자 하는 논조에 가담하는 책이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의 중심 주장은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을 위해 애국하려는 ‘제국의 위안부’였기에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책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한다”고 유보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박 교수의 위안부 인식에 적극적인 지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번 성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박 교수의 위안부 인식에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명을 주도한 이들은 분명 그에 대한 지지자라 분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명 발표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갈가리 찢겨 있는 일본 진보의 균열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현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일본의 진보진영은 1990년대 중반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둘러싸고 커다란 분열을 겪은 바 있다. 균열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전쟁범죄라고 파악한 이들과 (그런 면도 있지만) 한-일 양국이 서둘러 해결해야 하는 외교적 과제로 본 이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직접적인 분열의 계기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아시아 여성기금’(이후 기금)의 수용 여부였다. 당시 무라야마 정권은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인식 아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법적 책임’이 아닌 ‘도덕적 책임’으로 한정했다. 그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정부 예산이 아닌 기금을 통해 모은 모금으로 할머니 한 명에게 200만엔의 ‘쓰구나이킨’(속죄금)과 일본 총리의 사죄의 편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3분의 2 이상의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기금 수령을 거부한다.
일본에서 전자를 상징하는 인물은 위안부 문제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다. 그는 지난해 6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기금을 만들 때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지급하는 ‘쓰구나이킨’에 정부 예산이 한푼도 쓰이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은 뒤 “‘그렇게 하면 보상이 되는 게 아니죠’라고 반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위안부 문제)이 중대한 인권 침해이고 일본군이 저지른 것이라면 적합한 대응을 해야 한다. ‘군이 인권 침해를 했으니 일본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를 위해 지혜를 모으자’고 얘기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오누마 교수와 와다 교수의 엇갈린 행보
이들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박 교수의 저서에 비판적인 의견을 유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번 성명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이 부류에 속하는 인물들로는 요시미 교수, 우쓰미 아이코 오사카경제법과대학 특임교수,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등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의 시민사회와 연대해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활동 중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다. 그는 1995년 7월 발족한 아시아 여성기금에 이사로 참여해 2007년 4월 종료 때까지 줄곧 기금을 지킨 기금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와다 명예교수는 지난 5월 펴낸 저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에서 당시 기금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그로 인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함께 지원했던 ‘동지’들과 결별하게 된 회한을 비교적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그는 기금에 부정적이었던 야스에 료스케 <세카이>편집장 등 일본의 진보세력들이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 보고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금을 부정한 뒤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더 바람직한 조처를 정부로부터 끌어내는 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점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무라야마 정권은 ‘고노 담화’에서 밝힌 역사 인식을 뒤엎으려는 보수 세력의 반격으로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었다. 와다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로부터 기금보다 더 좋은 안을 끌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또 다른 인물로는 오누마 야스아키 메이지대 특임교수가 있다. 그는 7월 나온 저서 <역사인식은 무엇인가>에서 “모든 위안부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지원단체, 한·일 두 나라, 학자, 나아가 국제사회를 모두 만족시키는 진정한 해결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한·일 정부가 교섭을 거듭하고 서로 양보해 정부 간의 해결에 합의해야 한다. 그예 얼마 남지 않은 생존 위안부를 위해서도 한-일의 우호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7년 저서에선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쪽의 ‘지나친 요구’를 비판한 박 교수의 전작인 <화해를 위하여>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오누마 교수는 이번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당연히 성명파로 분류되는) 와다 명예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성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와다 명예교수는 이유를 묻는 <한겨레>의 질문에 “성명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박 교수의 책에 대해선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의 마음이다. 양쪽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 바란다”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성명 불참의 이유를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추측해볼 만한 대목은 있다. 그의 저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를 다시 보자. 그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견된 위안부와 관련된 공문서들을 간략히 둘러본 뒤 위안소 제도에 대해 “군부대가 스스로의 결정으로 업자에게 여성 모집을 의뢰해 건물을 고르고, 위안소를 신규로 건설해, 업자에게 영업을 위탁한 것이 가장 폭넓게 확인되는 방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후 그가 주목하는 것은 식민지 종주국인 일본과 피식민지인 조선 사이의 차이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전선이 확대되며 일본군 내의 위안부 수요가 급증한다. 그 때문인지 1938년 1월 상하이 파견군의 의뢰를 받은 업자들이 ‘황군위안부 3000명’을 모집하기 위해 일본 각지를 헤집듯 쑤시기 시작한다. 이런 움직임은 즉각 일본 행정당국에 감지됐다. 이 같은 움직임에 소스라치게 놀란 군마현 지사는 정부에 “공공질서 양속에 반하는” 이런 사업이 “황군의 위신을 실추시킨다”며 단속을 요청했다. 그러자 내무성 경보국장이 1938년 2월23일 ‘지나(중국)도항부녀의 취급에 관한 건’이라는 통달을 관계기관에 내려보내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내무성은 (전쟁 수행을 위한 위안부 모집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실정에 맞는 조처를 강구”할 필요를 강조하며 ‘제국의 위신’과 ‘황국의 명예’가 손상되지 않고 ‘출정병사유가족’에게 악영향이 없도록 △일본에서 이미 매매춘에 종사했으며 △21살 이상이고 △친권자가 도항을 승낙하는 이들이 위안부로 도항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이 통달은 일본 국내용으로 식민지 조선엔 전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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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에 대해선 찬성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 <역사비평> 지면을 통해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역사 인식을 비판한 정영환 메이지학원대학 교수가 지난달 28일 도쿄 릿쿄대학에서 일본 시민들을 상대로 ‘뒤틀린 식민지 지배 책임: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비판’ 강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일본인 여성과 식민지 여성의 차이
위안부와 관련한 여러 공문서를 근거로 와다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일본에서 이뤄진 위안부 획득은 대체로 이 같은 형태로 이뤄졌다. 민간 업자가 맘대로 여성들을 모은 것이 아니다. 업자도 국가적 통제의 일부였다. 일본에선 21살 이상의 여성이 모집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사람들에게는 금전적인 약속 외에 ‘나라를 위해’ ‘전쟁에 이기기 위해’라는 이데올로기적 설득이 이뤄졌을 것이다. 이들은 ‘제국의 위안부’(박유하)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략) 조선에선 21살 이하의 여성이 (위안부로) 도항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있다. 일본 정부가 21살 이하의 여성은 매춘을 시켜선 안 된다는 국제조약이 식민지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요시미 교수 등의 연구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선과 대만엔 내무성 통달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조선과 대만에선 ‘기왕에 매춘부였던 사람’이라는 조건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평범한 집의 성매매 경험이 없는)의 딸들이 좋은 일거리가 있다는 얘기에 속아 모집됐다는 게 가장 흔한 케이스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난했기 때문에 먼저 돈을 받은 다음에 (위안부 생활을) 승낙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도 ‘나라를 위해’ ‘전쟁에 이기기 위해’란 이데올로기적인 설득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먼저 조선인 업자였다. 모집된 조선인 여성들에게 그런 의식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군 병사와 동지 의식을 가진 ‘제국의 위안부’들이었을까. 와다 명예교수는 사실상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라는 표면상의 논쟁을 넘어,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제의 침략 전쟁에 협력한 제국의 위안부였는지에 대한 탐구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가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에 머무는 한, 이 논쟁은 한국 사회를 떠도는 음험한 유령으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지 모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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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l****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자가 세종대 교수라는것이다.
2015-12-05 19:09신고
답글1공감/비공감공감56비공감3
kimd****
쪽바리들이 쪽국역사 날조는 눈에 안보이는 모양이네..일본이고 한국이고.. 골빈것들이 지식인 행세하다니 .. 썩어빠진것들이 ㅉㅉ
2015-12-05 20:23신고
답글0공감/비공감공감33비공감3
wwdd****
뭣도 모르는것이 본질을 호도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그것이 자기 논조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일본의 논조에 동조한것이다.이런 학자적 양식도 없는것이 사이비 학문적 내용을 양산한다.뭐?동지적 어쩌구 저쩌구? 야 네가 그렇게 당해 봤냐고요.네가 여자냐고요.댓글을 달다 보니 왕짜증난다.글이라고 쓰는것이 다 글이더냐?
2015-12-06 01:42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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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w****
식민지였다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셨나요? 이 세상 어느 여자도 매일같이 총칼이 위협하는 공간에서 강제로 폭행을 당하는걸 좋다고 할 리도 없고, 허락할 리도 없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끔찍한 일을 조선의 소녀들이 좋다고 따라나섰겠습니까? 온갖 거짓말에 속아 끌려가서 고통속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다가 전쟁이 끝나고는 버려졌습니다. 그야말로 폐기물 버리듯 버려졌단 말입니다. 그 처참함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그렇게 책을 썼습니까? 제정신입니까!!
2015-12-08 14:20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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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ff****
만약 저사람이 힘없고 약한 할머니들이 아니라 제국의 유대인이라고 책을 쓰고 나치와 수용소의 유대인 사이의 동질감에 대해 논했다면 저사람은 벌써 매장됐을듯....
2015-12-12 13:53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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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다 하루키 “지금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의 마음” 본문듣기 설정
기사입력 2015.12.05 오후 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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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일본 리버럴과 ‘제국의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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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6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프레스센터 9층 회견실에서 일본인 지식인들이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기소한 한국 검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왼쪽부터 야스오 요시노리 <교도통신> 전 서울특파원,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 주필, 나카자와 게이 호세이대 교수(작가),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 사진 길윤형 특파원
▶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문제적 저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가 한·일 양국의 지식인 사회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다. 지난달 26일 일본 지식인들이 한국 검찰의 기소 결정을 맹비판한 데 이어, 2일 한국의 지식인들도 논쟁에 가세했다. 일본 지식인들은 왜 박 교수를 지지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다 보면, 한국의 ‘지나친’ 일본 비판에 질려버려, 위안부 제도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성찰을 포기해버린 일본 지식인 사회의 뒤틀린 모습을 만나게 된다.
지난달 26일 도쿄 지요다구 일본 프레스센터 9층.
잔뜩 흐린 날씨 때문인지 무겁게 가라앉은 공기를 뚫고, 우에노 지즈코 도쿄대 명예교수,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교수, 와카미야 요시부미 전 <아사히신문>주필 등이 연단에 올랐다.
이날 기자회견은 최근 일본에선 좀처럼 열린 적이 없는 희귀한 행사였다. 일본 지식인들이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이후 한국의 군사정권을 공개 비판하는 회견을 연 적은 많았지만, 민주화가 이뤄진 뒤 이 같은 행사를 연 적은 사실상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성명엔 고노 요헤이 전 관방장관과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까지 참여해 상당한 무게가 실렸다.
<제국의 위안부>
우에노 명예교수 등이 기자회견을 연 직접적인 계기는 박유하 세종대학교 교수의 ‘문제적 저서’ <제국의 위안부>(2013년)에 대한 한국 검찰의 기소 결정이었다. 이들은 성명에서 “서울동부지검이 박 교수를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것에 대해 커다란 놀라움과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운을 뗀 뒤 “검찰청이라는 공권력이 특정 역사관을 기반으로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행동을 취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한국에서도 박 교수의 저서를 둘러싸고 두 차례 치열한 논쟁이 진행돼왔다. 1차 논쟁은 지난해 6월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이 책의 일부 표현이 자신들의 인격권을 침해했다며 법원에 출판금지 가처분 소송을 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였다. 논쟁의 층위는 실로 복잡다단했지만, 국가가 특정한 학문적 견해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란이었다. 1차 논쟁에서 사회적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수면에 잠복해 있던 논란은 지난 2월 법원이 할머니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동지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기술 등 34곳을 삭제하도록 결정한 뒤 재발됐고, 지난달 18일 검찰의 기소 결정 이후 다시 한번 불이 붙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한국 사회에서 2년 가까이 진행되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논쟁의 제3라운드라 부를 수 있다.
‘제국의 위안부’ 논쟁 제3라운드
검찰의 박유하 교수 기소결정에
일본 지식인들 비판 기자회견
‘아시아 여성기금’ 지지해온
와다 교수는 뜻밖에도 다른 목소리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군 병사와
동지의식 지닌 제국의 위안부였다?
와다 교수는 “그렇지 않다”는 입장
표현의 자유라는 표면적 논쟁 넘어
위안부 성격 탐구로 논의 확장해야
일본 진보의 균열을 다시 확인하다
3차 논쟁에선 그동안 1·2차 논쟁에서 볼 수 없었던 두 가지 특징이 확인된다. 첫째는 그동안 한국 내 논의를 지켜보고만 있던 일본 지식인 사회가 개입을 시도했다는 점, 둘째는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에서 머무르던 논의가 책의 구체적인 내용으로까지 심화·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를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게 일본 지식인들의 성명이다. 성명엔 크게 두 개의 내용이 담겨 있다. 첫번째는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 기초해 한국 검찰의 기소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검찰 기소가 할머니들의 고소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지언정 바람직한 게 아니라는 데엔 한·일 양국 모두에서 별다른 이견이 없다.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성명이 밝히고 있는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인식이다.
성명을 보면 이번 성명을 주도한 지식인들이 <제국의 위안부>에 대해 대단한 ‘호의’를 갖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성명에서 “(<제국의 위안부>는) 종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면적인 인식을 넘어 다양성을 제시함으로써 사태의 복잡성과 배경의 깊이를 포착하고 있다”며 “식민 지배를 통해 그러한 상황(위안부 문제)을 만들어낸 제국 일본의 근원적인 책임을 날카롭게 지적했을 뿐 위안부 문제로부터 등을 돌리고자 하는 논조에 가담하는 책이 아니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의 중심 주장은 위안부들이 일본군과 “기본적으로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을 위해 애국하려는 ‘제국의 위안부’였기에 일본 정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 책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견이 존재한다”고 유보적인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결론적으로는 박 교수의 위안부 인식에 적극적인 지지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번 성명에 참여한 모든 이들이 박 교수의 위안부 인식에 동의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성명을 주도한 이들은 분명 그에 대한 지지자라 분류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성명 발표는 위안부 문제를 둘러싸고 갈가리 찢겨 있는 일본 진보의 균열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현상으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일본의 진보진영은 1990년대 중반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을 둘러싸고 커다란 분열을 겪은 바 있다. 균열은 위안부 문제를 일본이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전쟁범죄라고 파악한 이들과 (그런 면도 있지만) 한-일 양국이 서둘러 해결해야 하는 외교적 과제로 본 이들 사이에서 발생했다.
직접적인 분열의 계기는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의 해결책으로 내놓은 ‘아시아 여성기금’(이후 기금)의 수용 여부였다. 당시 무라야마 정권은 한-일 간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두 해결됐다는 인식 아래 일본 정부의 책임을 ‘법적 책임’이 아닌 ‘도덕적 책임’으로 한정했다. 그에 따라 일본 정부는 정부 예산이 아닌 기금을 통해 모은 모금으로 할머니 한 명에게 200만엔의 ‘쓰구나이킨’(속죄금)과 일본 총리의 사죄의 편지를 전달한다. 그러나 한국에선 3분의 2 이상의 할머니들이 일본 정부가 법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며 기금 수령을 거부한다.
일본에서 전자를 상징하는 인물은 위안부 문제 연구의 1인자로 꼽히는 요시미 요시아키 주오대 교수다. 그는 지난해 6월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기금을 만들 때 위안부 피해 여성들에게 지급하는 ‘쓰구나이킨’에 정부 예산이 한푼도 쓰이지 않는다는 설명을 들은 뒤 “‘그렇게 하면 보상이 되는 게 아니죠’라고 반발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이것(위안부 문제)이 중대한 인권 침해이고 일본군이 저지른 것이라면 적합한 대응을 해야 한다. ‘군이 인권 침해를 했으니 일본 정부가 보상해야 한다’고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를 위해 지혜를 모으자’고 얘기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오누마 교수와 와다 교수의 엇갈린 행보
이들은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박 교수의 저서에 비판적인 의견을 유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번 성명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이 부류에 속하는 인물들로는 요시미 교수, 우쓰미 아이코 오사카경제법과대학 특임교수,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등이 있다. 이들은 지금도 한국의 시민사회와 연대해 위안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 활동 중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인물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다. 그는 1995년 7월 발족한 아시아 여성기금에 이사로 참여해 2007년 4월 종료 때까지 줄곧 기금을 지킨 기금의 ‘산증인’으로 꼽힌다.
와다 명예교수는 지난 5월 펴낸 저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에서 당시 기금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그로 인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함께 지원했던 ‘동지’들과 결별하게 된 회한을 비교적 담담히 기술하고 있다. 그는 기금에 부정적이었던 야스에 료스케 <세카이>편집장 등 일본의 진보세력들이 “(법적 책임을 부인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 보고 화가 나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기금을 부정한 뒤 지금부터 최선을 다해 노력해서 더 바람직한 조처를 정부로부터 끌어내는 게 가능할 것인가라는 점은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무라야마 정권은 ‘고노 담화’에서 밝힌 역사 인식을 뒤엎으려는 보수 세력의 반격으로 풍전등화 같은 상황이었다. 와다 교수는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일본 정부로부터 기금보다 더 좋은 안을 끌어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와 비슷한 입장을 가진 또 다른 인물로는 오누마 야스아키 메이지대 특임교수가 있다. 그는 7월 나온 저서 <역사인식은 무엇인가>에서 “모든 위안부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지원단체, 한·일 두 나라, 학자, 나아가 국제사회를 모두 만족시키는 진정한 해결 따위는 있을 수 없다. 한·일 정부가 교섭을 거듭하고 서로 양보해 정부 간의 해결에 합의해야 한다. 그예 얼마 남지 않은 생존 위안부를 위해서도 한-일의 우호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2007년 저서에선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쪽의 ‘지나친 요구’를 비판한 박 교수의 전작인 <화해를 위하여>를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오누마 교수는 이번 성명에 이름을 올렸다.
흥미로운 것은 (당연히 성명파로 분류되는) 와다 명예교수의 판단이다. 그는 성명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와다 명예교수는 이유를 묻는 <한겨레>의 질문에 “성명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거절했다. 박 교수의 책에 대해선 검토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할머니들의 마음이다. 양쪽이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기 바란다”고 말했다.
와다 교수는 성명 불참의 이유를 명확히 밝히진 않았지만 추측해볼 만한 대목은 있다. 그의 저서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위해>를 다시 보자. 그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 일본에서 발견된 위안부와 관련된 공문서들을 간략히 둘러본 뒤 위안소 제도에 대해 “군부대가 스스로의 결정으로 업자에게 여성 모집을 의뢰해 건물을 고르고, 위안소를 신규로 건설해, 업자에게 영업을 위탁한 것이 가장 폭넓게 확인되는 방식”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이후 그가 주목하는 것은 식민지 종주국인 일본과 피식민지인 조선 사이의 차이였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전선이 확대되며 일본군 내의 위안부 수요가 급증한다. 그 때문인지 1938년 1월 상하이 파견군의 의뢰를 받은 업자들이 ‘황군위안부 3000명’을 모집하기 위해 일본 각지를 헤집듯 쑤시기 시작한다. 이런 움직임은 즉각 일본 행정당국에 감지됐다. 이 같은 움직임에 소스라치게 놀란 군마현 지사는 정부에 “공공질서 양속에 반하는” 이런 사업이 “황군의 위신을 실추시킨다”며 단속을 요청했다. 그러자 내무성 경보국장이 1938년 2월23일 ‘지나(중국)도항부녀의 취급에 관한 건’이라는 통달을 관계기관에 내려보내 교통정리를 시도한다. 내무성은 (전쟁 수행을 위한 위안부 모집이라는) “특수한 사정을 고려해 실정에 맞는 조처를 강구”할 필요를 강조하며 ‘제국의 위신’과 ‘황국의 명예’가 손상되지 않고 ‘출정병사유가족’에게 악영향이 없도록 △일본에서 이미 매매춘에 종사했으며 △21살 이상이고 △친권자가 도항을 승낙하는 이들이 위안부로 도항할 수 있도록 협조할 것을 지시한다. 그러나 이 통달은 일본 국내용으로 식민지 조선엔 전달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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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에 대해선 찬성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여름 <역사비평> 지면을 통해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역사 인식을 비판한 정영환 메이지학원대학 교수가 지난달 28일 도쿄 릿쿄대학에서 일본 시민들을 상대로 ‘뒤틀린 식민지 지배 책임: 박유하 <제국의 위안부> 비판’ 강연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길윤형 특파원
일본인 여성과 식민지 여성의 차이
위안부와 관련한 여러 공문서를 근거로 와다 명예교수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일본에서 이뤄진 위안부 획득은 대체로 이 같은 형태로 이뤄졌다. 민간 업자가 맘대로 여성들을 모은 것이 아니다. 업자도 국가적 통제의 일부였다. 일본에선 21살 이상의 여성이 모집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이 사람들에게는 금전적인 약속 외에 ‘나라를 위해’ ‘전쟁에 이기기 위해’라는 이데올로기적 설득이 이뤄졌을 것이다. 이들은 ‘제국의 위안부’(박유하)라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략) 조선에선 21살 이하의 여성이 (위안부로) 도항했다는 사실이 확인돼 있다. 일본 정부가 21살 이하의 여성은 매춘을 시켜선 안 된다는 국제조약이 식민지엔 적용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는 것은 (요시미 교수 등의 연구로)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조선과 대만엔 내무성 통달이 적용되지 않았다고 생각된다. 조선과 대만에선 ‘기왕에 매춘부였던 사람’이라는 조건이 적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통(평범한 집의 성매매 경험이 없는)의 딸들이 좋은 일거리가 있다는 얘기에 속아 모집됐다는 게 가장 흔한 케이스였던 것으로 보인다. 가난했기 때문에 먼저 돈을 받은 다음에 (위안부 생활을) 승낙한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도 ‘나라를 위해’ ‘전쟁에 이기기 위해’란 이데올로기적인 설득이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한 것은 먼저 조선인 업자였다. 모집된 조선인 여성들에게 그런 의식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인 위안부들은 일본군 병사와 동지 의식을 가진 ‘제국의 위안부’들이었을까. 와다 명예교수는 사실상 ‘그렇지 않다’고 답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표현의 자유라는 표면상의 논쟁을 넘어,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제의 침략 전쟁에 협력한 제국의 위안부였는지에 대한 탐구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의가 ‘학문의 자유’를 둘러싼 공방에 머무는 한, 이 논쟁은 한국 사회를 떠도는 음험한 유령으로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을지 모른다.
도쿄/길윤형 특파원 charism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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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ll****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자가 세종대 교수라는것이다.
2015-12-05 19:09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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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d****
쪽바리들이 쪽국역사 날조는 눈에 안보이는 모양이네..일본이고 한국이고.. 골빈것들이 지식인 행세하다니 .. 썩어빠진것들이 ㅉㅉ
2015-12-05 20:23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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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wdd****
뭣도 모르는것이 본질을 호도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그것이 자기 논조에 정당성을 부여하여 일본의 논조에 동조한것이다.이런 학자적 양식도 없는것이 사이비 학문적 내용을 양산한다.뭐?동지적 어쩌구 저쩌구? 야 네가 그렇게 당해 봤냐고요.네가 여자냐고요.댓글을 달다 보니 왕짜증난다.글이라고 쓰는것이 다 글이더냐?
2015-12-06 01:42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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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hw****
식민지였다는 특수 상황을 고려하셨나요? 이 세상 어느 여자도 매일같이 총칼이 위협하는 공간에서 강제로 폭행을 당하는걸 좋다고 할 리도 없고, 허락할 리도 없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끔찍한 일을 조선의 소녀들이 좋다고 따라나섰겠습니까? 온갖 거짓말에 속아 끌려가서 고통속에서 죽지도 못하고 살다가 전쟁이 끝나고는 버려졌습니다. 그야말로 폐기물 버리듯 버려졌단 말입니다. 그 처참함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그렇게 책을 썼습니까? 제정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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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저사람이 힘없고 약한 할머니들이 아니라 제국의 유대인이라고 책을 쓰고 나치와 수용소의 유대인 사이의 동질감에 대해 논했다면 저사람은 벌써 매장됐을듯....
2015-12-12 13:53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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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물리학과에서 철학적 고민을 한 사람. 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는 소리를 대학시절 줄곧 들어야 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그는 지금 세계적인 과학철학자가 되었다. 장하석(49)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석좌교수. 쓸데없다는 판단을 너무 일찍 내리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쓸데없음의 쓸데있음’을 이야기했다. 『장자』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묻자 “내가 살아온 삶에서 느낀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올해 추석을 서울에서 보냈다. 고교 1학년이던 1983년 미국 유학을 떠난 이래 처음이다. 인생의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낸 그는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을 실감하며 감회가 깊다고 했다.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스탠퍼드대에서 물리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5년 28세 때 영국 런던대 교수로 부임했고 2010년 40대 초반에 이미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그가 세계 학계의 저명인사로 등극한 계기는 2004년 『온도계의 철학』이란 희한한 제목의 책을 펴내면서다. 대표작이 된 그 책으로 과학철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러커토시상을 2006년 수상했다.
한국 대중과의 첫 만남은 2013년 EBS 특강을 통해서다.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한국의 대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가 제2회 서울인문포럼의 기조강연자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물이 H2O인지 어떻게 알아냈나 궁금
8년 공부해 『Is Water H2O?』 펴내
‘물은 H2O인가’. 누구나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문제에 장하석은 의문을 던졌다. 물이 H2O라는 것을 과학자들이 어떻게 알아내었는가를 8년간 탐구한 끝에 2012년 『Is Water H2O?』라는 책을 펴냈다. 이에 앞서 10년간 연구해 2004년에 펴낸 『온도계의 철학』도 ‘온도계도 없는 상태에서 물이 (같은 기압 하에서) 항상 같은 온도에서 끓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고 그것을 100도로 정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그에게 쓸데없는 질문이란 없다.
영미 대학에서 석좌교수는 일반 교수보다 지위가 높다고 한다. 프레스티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석좌교수는 대개 기금교수인데 영미에서는 그게 아니다. 권위있는 자리라고 보면 된다. 대개 젊어서는 되기 힘든데 나이로 따지는 것은 아니다. 케임브리지대 과학사ㆍ과학철학과에는 교수 15명에 석좌교수 1명이 있다. 그 석좌교수 자리가 3년간 비어 있었는데 장하석 교수가 그 자리를 들어갔다.
과학은 진리 아닌 사실 밝히는 것
지식 100% 확실하다 믿는 건 오류
진리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
어떻게 그 집착 벗을까 책 쓸 것
세계 과학철학계의 스타를 한국 대중에게 처음 알린 계기를 마련한 이는 서울인문포럼 배양숙 이사장이다. 2011년 가을 케임브리지대에서 장 교수가 ‘H2O는 물인가’를 주제로 주최한 포럼에 배 이사장이 참석했다. 그의 강연을 들은 감동을 EBS측에 전달함으로써 12회의 특강이 국내에 선을 보이게 됐다. 배 이사장은 "EBS 특강 이후 강연 요청이 많았는데 연구에 집중하겠다고 모두 사양하면서 ‘꼭 강연을 해야 한다면 서울인문포럼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그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중앙일보] 입력 2016.09.28 01:52 수정 2016.09.28 15:07 | 종합 16면 지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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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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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석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물리학과에서 철학적 고민을 한 사람. 무슨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느냐는 소리를 대학시절 줄곧 들어야 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 그는 지금 세계적인 과학철학자가 되었다. 장하석(49) 영국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 석좌교수. 쓸데없다는 판단을 너무 일찍 내리지 말라고 조언하면서 ‘쓸데없음의 쓸데있음’을 이야기했다. 『장자』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이냐고 묻자 “내가 살아온 삶에서 느낀 것”이라고 했다.
한국 대중과의 첫 만남은 2013년 EBS 특강을 통해서다. 과학과 철학의 관계를 알기 쉽게 설명해 한국의 대중들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던 그가 제2회 서울인문포럼의 기조강연자로 다시 한국을 찾았다. 그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경제학 교수의 친동생이기도 하다.
- 질의 :1983년 이후 줄곧 해외생활을 했는데 한국 오면 어떤 점을 느끼나.
- 응답 :“80년대 중반과 지금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안 바뀌는 점도 있다. 들어올 때마다 놀랜다. 사회적으로 보면 올해는 저출산 문제를 많이 얘기하는 것 같다. 저는 한국어가 모국어지만 고교 때부터 외국생활을 해서 한국 학계의 전문용어를 잘 모르기 때문에 과학이나 철학을 일상어로 설명하게 되는 데 그런 것이 오히려 저의 ‘이상한 장점’이 되는 것 같다. 한국에서의 강연을 준비하며 한국어 번역서를 봤는데 너무 어려워 이해를 못하겠더라. 학자들의 언어가 대중과 괴리가 큰 것 같다.”
- 질의 :한국사회에서 안 바뀌는 부분은 뭔가.
- 응답 :“표현하기 어려운 데, 얘기해 보라면 아무래도 위계질서, 직장이나 가정에서 많이 없어졌다 해도 아직 있는 것 같고요, 역시 일류학교 따지고 인기 직종에 편중되는 것.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은 악착같이 경쟁해서 쳐내야 한다는 것이 더 심해진 것 같다. 다른 나라에선 나라가 잘 살게 되면 대개 개인도 행복해지는데 우리는 안 그런 것 같다. 예전에 ‘헬조선’이란 말 없었다. 왜 더 힘들어지는지 모르겠다. 안타깝습니다. 잘나가는 젊은이들도 못살겠다고 한다. 제가 대책을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 질의 :물리학과 철학 분야에서 두 개의 박사학위가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 응답 :“그렇지 않다. 이참에 바로잡고 싶다. 제가 물리학 공부를 하러 캘텍(캘리포니아 이공대학교)에 갔는데, 결국은 ‘Independent Studies Program’라는 전공으로 졸업했다. 이것은 학생 자신이 전공을 디자인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도 서울대 등에 생긴 자유전공과 비슷하다. 그 공부 내용은 역시 물리학이 많았지만, 그 물리학의 문맥을 이해하기 위하여 철학을 비롯한 많은 인문사회과학 과목을 들었다.”
- 질의 :이과 학사를 하고 문과 박사를 하는 경우가 해외에 많은가.
- 응답 :“많지는 않은데 과학철학 분야에는 꽤 있다.”
- 질의 :물리학과에 들어갔다가 철학을 공부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 응답 :“물리학을 사랑하고 공부하겠다고 대학에 갔는데 학교에서 받은 물리학의 이미지는 달랐다. 물리학 시간에 알고 싶은 게 있어 질문하면 그건 철학적 문제인데 그런 생각을 안 해도 되고 문제만 풀라고 얘기한다. 미국의 최고 학교인데도 그랬다. 4년 동안 그런 얘기 듣다가 화가 났다. 내가 관심 있는 게 철학이라면 철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했다. 토머스 쿤이 얘기한 정상과학(normal science)에 따르면, 과학을 연구하는 일은 일정한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깊은 질문은 하지 않고 퍼즐을 푸는 것과 같다고 했는데 저는 그런 게 싫었던 것이다.”
- 질의 :미국의 우수한 대학 강의도 그렇군요.
- 응답 :“어떻게 보면 강훈련을 시키는 학교이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칼텍은 과학의 신병훈련소라고 불리는 학교다.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정통적인 공부를 하라는 것이다.”
물이 H2O인지 어떻게 알아냈나 궁금
8년 공부해 『Is Water H2O?』 펴내
- 질의 :철학은 쓸데없는 것을 공부하는 것인가.
- 응답 :“철학은 쓸데없는 것을 하기 때문에 쓸데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래서 한국에서 철학이 필요하다고 본다. 우리나라 사람들 너무 쫓기고 경쟁에 시달리며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눈앞에 닥치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사회에서 누군가는 그런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이라면 다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데.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쓸데없는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철학자조차 없다면 사회가 붕괴될 것이다. 쓸데 있음과 없음은 요즘 화제인 지진 문제로도 얘기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지진 안 난다고 했기 때문에 그동안 잘 살았죠. 그런데 쓸데없는 지진 전문가를 키워놓았으니까 이제 필요한 세상이 되었잖아요.”
- 질의 :장하석 교수를 과학자로 여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 본인은 과학자인가 철학자인가.
- 응답 :“둘 다다. 외국에서 엄격히 구분하면 철학자죠. 박사학위도 철학이고 학과도 그렇죠. 그러나 과학적인 내용을 대상으로 하기에 학부 전공도 있고 해서 과학자라고 해도 된다. 그래서 『온도계 철학』을 쓰면서 내가 하는 학문의 성질을 표현하기 위해 지어낸 말이 ‘상보 과학’이란 말이다.”
- 질의 :‘상보 과학’이 무슨 뜻인가.
- 응답 :“과학적인 문제인데 현재 과학자들이 다루고 있지 않은 문제라는 뜻이다. 전문 과학자들한테 ‘온도계를 어떻게 만들어서 쓰게 되었는지 아세요?’ 하고 물어보면 알지 못한다. 알 필요가 없이 그냥 사용하면 되니까, 첨단 연구할 시간도 부족하니까 그렇다. 과학적 질문임에도 현재 과학자들의 관심 밖에 있는 것을 ‘상보 과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런데 과학사를 보면 옛날 과학자들이 했던 질문들이다. 과학은 대답할 수 있는 종류의 질문에만 답한다. 과학의 강점은 이렇게 하면 잘 풀리겠다는 문제를 고르는 것이다. 그러나 껄끄러운 문제를 배제하죠. 그러나 대답을 하기 힘들다고 질문을 해선 안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 철학이다. 철학은 답이 없는 질문에도 도전을 한다. 철학은 모든 질문에 도전을 해야 한다.”
- 질의 :옛날 과학자들은 어떤 질문을 던졌었나.
- 응답 :“처음 뉴턴의 중력 이론이 나왔을 때를 보자. 두 가지 물체가 있을 때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했는데 반응이 컸다. 공식만 써놓고 무슨 과학이냐, 지구와 태양 사이에 진공밖에 없는데 어떻게 끌어 당기냐 이런 설명을 안 해주면 제대로 된 과학이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이 많았다. 뉴턴 자신도 고민했다. 그런데 그 다음 세대에서는 그런 문제는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정리됐다. 그러나 제 생각에는 지금도 뉴턴 초기에 나왔던 문제도 생각해보면 좋겠는데 안 한다. 그래서 과학 연구에 빠진 것을 보충해준다는 의미로 상보적이라고 한 것이다. 음양사상하고도 통한다. 양만 보고 좋다고 하지만 음이 받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 질의 :과학은 대개 대학을 가기 위해 공부하는 골치 아픈 과목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미국이나 영국의 중고교 교육 과정에서는 어떤가.
- 응답 :“비슷한데 한국이 좀 심하다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미국 영국에서 창의력 기르는 교육 한다고 해도 생각같이 쉽게 되지는 않는다. 외국에서도 과학 교육 지겨워하는 학생 많다. 왜냐면 선생이 아무리 훌륭하고 재미있게 가르친다고 해도 물리학 같으면 공식 배워서 숫자 대입해 문제 푸는 것이 기본이죠. 생물학과 화학에서 외울 것은 외워야 하고.”
- 질의 :올해 우리 사회에 ‘인공지능’(AI) 바람이 불었다. 인공지능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 응답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영국에서도 대단한 사건으로 관심을 끌었다. 그거는 제가 딱히 인공지능 전문가는 아니지만 생각을 해보면,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과학자도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까, 실험하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데 과연 진정한 창의력을 인공지능이 발휘할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저는 그것도 미지수라고 본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인공지능이 발달해서 인간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할 때 그 기계를 인간이라고 봐야하는지, 인권을 부여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다. 진화과정에 호모사피엔스와 비슷한 종족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종족들이 지금 살았다면 다른 종류의 지능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볼 수 있다. 인공지능이 발달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지 인간성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보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진리 아닌 사실 밝히는 것
지식 100% 확실하다 믿는 건 오류
- 질의 :EBS 특강을 풀어쓴 『과학, 철학을 만나다』 에서 “과학의 성공은 진리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진상을 밝히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 응답 :“과학에서 진리를 밝힌다는 생각이 이번 서울인문포럼에서도 말씀드릴 문제인데 그런 문제는 종교에서 나왔다. 서양 과학의 뿌리는 종교와 같다. 이것은 동양과 다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이 유럽에서 현대과학을 만들었다. 그 사람들이 자연신학의 틀에서 생각을 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은 첫째 성경을 읽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자연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17세기 과학혁명기에 서양 과학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했다. 과학이 밝혀낼 것은 절대적 진리라는 생각이 거기에 들어가 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기본 생각을 아직도 많이 가지고 있다. 진리와 진상은 영어에서는 다 ‘truth’로 구분이 안 된다. 영미권에서 법정 증언할 때 ‘truth’를 얘기하겠다고 하는 것은 거짓을 말하지 않겠다는 뜻인데, 그것이 진리를 얘기하겠다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과학도 진리를 밝히는 것은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진리를 밝히려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한양대 이상욱 교수는 ‘진상도 진리와 유사해서 장하석 교수의 뜻이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해 주셨고, 그것을 고려하면 '진상'보다 '사실'이 더 적합할 듯하다.”
- 질의 :사실과 진리의 차이는.
- 응답 :“법정에서 밝히는 것은 사실을 밝히는 일이다. 검찰이 진리를 밝히겠다고 하면 안 되잖은가.”
- 질의 :‘truth’를 진리라고 번역한 것이 잘못인가.
- 응답 :“지나쳤다고 본다. 영어에서도 ‘truth’는 문맥에 따라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알아들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냥 다 진리라고 번역했다.”
- 질의 :영어에서 ‘truth’ 용례를 하나 들면.
- 응답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나는 ’truth‘만 얘기하겠다’고 하는데 그것은 사실은 무시하되 자기 생각과 느낌을 숨기지 않고 얘기하겠다는 의미다. 영어에서도 ‘truth’ 자체가 혼동스러운 용어다.”
- 질의 :EBS 특강 교재였던 책 제목이 『과학, 철학을 만나다』였다. 『철학, 과학을 만나다』라고 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응답 :“그거는 EBS에서 지어준 제목이다. 제가 그 제목이 괜찮다고 본 것은 보통 과학철학 하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융합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암묵적으로 얘기한 것 같아서 좋다고 했다.”
- 질의 :지난 세기 서양 자연과학의 우월성은 동양을 압도했다. 우리는 그걸 따라잡기에 바빴다. 그런데 환경파괴, 인간소외와 양극화, 테러와 폭력 등은 서구문명의 뿌리를 위협하고 있다. 인류는 과학의 발전을 기반으로 무한히 진보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
- 응답 :“진보의 의미부터 새기고 들어가야 할 것 같다. 무엇이 진보인가. 그래서 이번 서울인문포럼에서 말씀드리려는 것이 인본주의와 과학 문제다. 인간이 진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인간적 가치는 무엇인가, 그 대답만 할 수 있으면 진보의 정의는 풀린다. 그런 가치를 살리는 것이 진보다."
- 질의 :인간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가.
- 응답 :"가치관을 생각하다 보면 사회 내부에 상충되는 점도 드러나고 서로 논의가 안 되는 것도 드러나고,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제가 말하는 다원주의 생각이 필요하다는 대답이 나오게 된다. 과학 제일주의를 따라가는 사람들은 옛날에는 종교가 모든 대답을 주었듯이 이제는 과학이 모든 대답을 줄 것이다, 그래서 과학만 모두 보고 있는 거죠. 저는 그렇게 안보는 거죠. 미지의 것,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과학인데 사람들은 과학에 정답만을 요구한다. 사회 내에서 정치적으로 서로 의견이 다르고 싸울 일이 있더라고 정말 점잖게 해결하는 법을 배운 것이 민주주의다. 과학도 그런 겁니다."
진리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
어떻게 그 집착 벗을까 책 쓸 것
- 질의 :과학과 민주주의가 연결되나.
- 응답 :"과학을 잘못 아는 사람들은 과학자들이 100% 동의하지 않으면 진리를 모르는 게 아니냐고 생각하는데, 그게 문제다. 지구온난화를 예를 들면 과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 정치에서 타협점을 찾고 공동체를 파괴하지 않듯이 과학자도 그런 과정을 거친다. 이런 혼동이 오는 것은 과학자의 자업자득이기도 한데, 과학이 진리를 찾는 작업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 질의 :진리란 무엇인가.
- 응답 :"진리는 영원히 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칸트 철학의 기본이다. 이성으로서 궁극적 해답을 얻으려고 하지 말라. 인간의 이성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의 기본 메시지다. 주제넘은 짓을 하지 말라는 것. 그러나 칸트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기 때문에 이성으로 알 수 없는 것을 신앙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저같은 사람은 알 수 없는 것을 그냥 받아들이고 살자는 것이다. 진리는 모르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인생이거든요."
- 질의 :종교의 문제와 연결되는 것 같은데.
- 응답 :"종교의 폐단도 그거다. 서로 진리라고 공격하고 전쟁하는 것. 중동의 문제도 그렇고. 그런 절대주의적 사고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과학인데 과학을 그렇게 절대주의적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그러다 보니 과학과 종교가 또 싸우게 되고 그런 것이다.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 사실을 밝히는 학문이고, 그런 과학적 사실이 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훌륭한 삶을 살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이 윤리학이고 종교라고 본다. 다른 한편에서 종교가 사실을 가지고 얘기하려는 것도 문제다. 미국에서는 교회에서 진화론을 학교 교육 과정에 가르치지 말라는 간섭을 많이 하거든요."
- 질의 :아까 지진 말씀하셨는데, 한반도는 지진 안전지대인 것으로 알려졌었는데 그게 아닌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 응답 :"과학이 최선을 다해서 사실을 규명하지만 실수할 수도 있다.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고, 생각이 짧을 수도 있으며, 측정을 잘못했을 수도 있다. 칼 포퍼가 얘기했듯이 지금 알고 있는 과학지식이 100% 확실하다고 믿는 것은 오류다. 그런 확실한 지식을 찾는 것이 병폐라고 봤다. 인류가 성숙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인류가 성숙하다면 불확실성을 알고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 질의 :포퍼는 흔히 보수 철학자로 알려져 있는데.
- 응답 :"포퍼는 열린사회를 주장했다. 그게 도리어 억압적이었던 반공주의와 연결되면서 불분명해졌다. 본래 포퍼는 모든 것을 개방적으로 하자고 했다. 과학도 항상 모든 이론은 끝까지 가설이라고 주장했다. 그것을 계속 검증해서 틀리면 다시 가설을 세우고. 아무리 과학을 해도 확실한 것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 절대적으로 보수적이라고 할 수 없죠. 과학자는 항상 혁명적으로 살아야한다고 했다."
- 질의 :포퍼와 경쟁했던 토마스 쿤은 어떤가.
- 응답 :"포퍼에 반해 쿤은 사람은 혁명적으로 살 수 없다고 했다. 틀 안에서 살아야 일을 하고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혁명을 하는 것인데 너무 자주하면 안 된다고 했다."
- 질의 :포퍼와 쿤, 두 사람이 논쟁한 이유는.
- 응답 :"포퍼는 과학자는 안주해선 안 된다고 했다. 이론은 가설이기 때문에 항상 자기 비판을 해야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 과학의 임무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쿤은 기본적인 것을 토대로 하지 않으면 과학연구를 할 수도 없다는 거죠."
- 질의 :그렇게 보면 쿤이 보수적인 것 같은데 종종 진보로 여겨진다.
- 응답 :"그게 오해인데요. ‘과학혁명’을 얘기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기에만 집중해서 그렇다. 과학혁명을 함부로 해선 안 된다고 했고 또 과학이 노멀(normal)하게 갈 때는 상당히 보수적인 활동이고, 그 틀을 받아들인 후에 지엽적인 것을 연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비유하자면 쿤의 입장은 구조개편 계속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일단 안정적으로 진행해야 일이 되지 계속 구조개편 하면 아무 일도 안 된다는 거죠. 그게 맞는 말이고. 이게 제가 말한 상보적 과학과도 연결된다. 안정적 구조가 있어야 하고, 거기에서 무시되는 측면이 있는 데 그걸 누군가는 짚어서 생각해줘야 한다. 말하자면 일부에 편중성은 필요악이라고 나는 보는 거죠. 쿤도 그렇게 봤고, 나는 거기에 덧붙여 누군가 고려할 가치는 있다고 상보적 가치를 부여한 것이다."
- 질의 :포퍼는 왜 반공적 자세를 취했나.
- 응답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됐다. 쿤은 미국에서 편하게 자랐고. 포퍼는 오스트리아에서 유태계로 자라나 피난민 생활을 했다. 반나치 운동을 하다 2차대전 이후 전체주의는 공산주의든 나치든 다 통한다고 본거죠. 포퍼는 과학이 문명사회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봤고, 쿤은 과학은 그냥 과학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과학은 사실을 밝히는 작업일 뿐이라고 보는 점에서 나는 쿤 생각에 동의한다."
- 질의 :포퍼와 쿤을 융합시키는 게 장 교수 작업이군요.
- 응답 :"쿤에 동의하는 것은 일단 과학은 기본틀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간의 지적 활동이 거기서 멈춰선 안 된다는 점에서 포퍼에도 동의하는 것이다. 사회적 제도와 관습에 맞춰서 살아가야 사회가 유지되지만 그런 틀에 맞지 않는 사고를 하는 철학자나 소설가, 예술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회적 차원의 분업이라고 본다. 너도나도 다 그런 자유분방한 작업을 할 수는 없죠. 예술가는 좀 우리 생각을 흔들어주듯이 인문학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 질의 :쿤과 포퍼의 논쟁 사례를 이념 갈등이 심한 우리 사회와 비교해본다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을까.
- 응답 :"제가 느끼는 것은, 도식화된 좌우 이념 그런 것을 생각하지 말고 근본적인 인간의 가치관부터 토론해야하지 않을까. 그런 가치관을 세우는 방법을 놓고 현실적인 토론을 하고, 싸움도 현실적인 싸움을 해줬으면 한다. 좌우를 나누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진보와 보수, 좌와 우, 이렇게들 얘기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꼭 좌익이라고 할 수 없다. 더 잘하자는 게 진보라면 좌익이 꼭 진보여야 하나. 쿤의 생각을 보면 진보는 보수가 있어야 가능하다. 그런 시각 자체를 다시 정비해주었으면 좋겠다."
- 질의 :『과학, 철학을 말하다』에서 ”진리는 과학적으로 탐지할 수 없다“고 했는데 그럼 진리는 어떻게 알 수 있는가.
- 응답 :"제 생각은 진리를 찾지 말하는 것이다. 진리를 초월해야 한다."
- 질의 :장 교수 생각에 동의하는 사람이 많이 있나.
- 응답 :"뜻이 맞는 사람이 모여 ‘truth’의 번역어를 새롭게 찾아보고 영어 자체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진리라고 할 때는 영어의 'T'를 대문자로 크게 쓰는 방법도 있다. 소문자 't'이면 사실을 뜻하고."
- 질의 :과학철학 학문이 등장한 배경은 어떤 것인가.
- 응답 :"뉴튼 시대에 과학이란 말은 안 쓰고 자연철학이라고 했다. 사이언스란 말은 옛날부터 있었는데 애매모호한 말이었다. 라틴어에서 지식일반을 사이언스라고 했다. 유클리드 기하학처럼 확실한 지식을 사이언스라고 썼던 것. 현대적 과학 의미로 사이언스라고 쓴 것은 200년 되었다. 직업적 과학자의 개념이 나뉘고 나서 사이언티스트가 나왔다. 그 전에는 과학철학이라는 게 있을 필요가 없었다. 철학자가 과학을 다 얘기했다."
- 질의 :200년 전 최초의 과학철학자는.
- 응답 :"케임브리지대학의 휴얼. 과학을 하다 1830년대에 『과학사』라는 책을 쓰고 과학철학 용어를 사용했다. 프랑스의 콩트도 동시대에 과학철학적 연구를 시작했다. 19세기 초반이다. 과학이 전문화되고 직업화되는 데 대한 것이다."
- 질의 :과학철학이 일반적인 철학과 다른 점과 같은 점은.
- 응답 :"공통점은 철학은 그냥 조용히 깊이 생각하는 것, 뭐가 되었든 간에. 과학철학은 깊게 생각하되 과학에 대해 하는 것."
- 질의 :서양철학 하면 대개 플라톤, 칸트가 떠오르는데 과학철학의 입장에서 플라톤이나 칸트의 철학은 어떻게 보는가.
- 응답 :"제 개인적 입장에서 칸트 철학이 중요한 것은 인간의 한계를 얘기했기 때문이다. 인간 지식의 한계도. 저는 플라톤은 좋아하지 않는다. 절대적 진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절대적 진리를 어떻게 우리가 알 수 있는가를 대답하기 위해 기가 막힌 얘기를 만들어냈다 플라톤이. 저는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런 기막힌 얘기 만들어 내기 보다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어떻게 더 잘 알고 잘 살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본다."
- 질의 :『온도계의 철학』을 준비하는 데 10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그 10년 동안 온전히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었나. 한국에 있었다면 그런 책 쓸 수 있었을까.
- 응답 :"저는 특히 일이 많은 학교에 있었다. 런던대학교. 저희 학과가 특수 상황이어서 행정적인 일이 많고 강의 부담도 많았고 그런 상황이라 10년이 걸렸다. 빨리 연구해서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돌이켜보면 생각이 성숙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급히 냈다면 미숙한 책이 되었을 것이다."
- 질의 :2004년 『온도계의 철학』을 펴낸 후 2012년엔 『Is Water H2O?』라는 책을 펴냈다. 최근엔 ‘전지(電池)’를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과 전지는 어떤 계기로 탐구하게 됐나.
- 응답 :‘전지(電池)’를 탐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과 전지는 어떤 계기로 탐구하게 됐나.
”배터리가 세 번째 연구주제인데 최근의 현상과 맞물려 주목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몇 년 더 걸려 2019년 정도에 나올 듯하다. 제가 온도계 연구하며 맛을 들인 게, 과학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쉬운 내용을 파헤치고 그런 기본 지식을 얻는 것이 사실 얼마나 힘든 작업인가를 밝혀내는 일이다. 우리가 배터리 없이 생활 못하게 됐는데 배터리가 어떻게 해서 작동하는지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사실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배터리의 작동원리에 대해서 19세기 내내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내역을 자세히 규명하고 싶다. 물을 연구하다 전기로 흘렀다. 물의 정체에서 중요한 게 물의 전기분해다. 그렇게 연결된다."
- 질의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일은.
- 응답 :"어떻게 진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날까를 주제로 책을 쓰고 죽고 싶다."
DA 300
세계 과학철학계의 스타를 한국 대중에게 처음 알린 계기를 마련한 이는 서울인문포럼 배양숙 이사장이다. 2011년 가을 케임브리지대에서 장 교수가 ‘H2O는 물인가’를 주제로 주최한 포럼에 배 이사장이 참석했다. 그의 강연을 들은 감동을 EBS측에 전달함으로써 12회의 특강이 국내에 선을 보이게 됐다. 배 이사장은 "EBS 특강 이후 강연 요청이 많았는데 연구에 집중하겠다고 모두 사양하면서 ‘꼭 강연을 해야 한다면 서울인문포럼일 것’이라고 했는데 이번에 그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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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hjsyd 2016-09-28 09:50:40 신고하기
- 이분 말을 들으니 도올은 너무 천박하다는 느낌이 든다!답글달기
- maru6062 2016-09-28 05:33:58 신고하기
- 다들 너무너무 대견합니다 !!답글달기
- maru6062 2016-09-28 05:27:49 신고하기
- 호킹박사님께서 왜 역행하는일이 중요하다고말씀하셨는지는 ,흡사 우리가 고전을 왜 읽는것이 중요한가? 라는물음과 맥락이 같다고봅니다. 고전을 왜 읽는것이 중요한가?라는물음에 많은분들이 이야기해주셨죠. 사회보장기본법률에도 '역행조치에 관한 금지법'이라는것이 있는데 사람들은 위반을 스스럼없이 하곤하죠..답글달기
- maru6062 2016-09-28 04:47:26 신고하기
- 다들 많이 보고싶습니다.답글달기
- maru6062 2016-09-28 04:45:09 신고하기
- 다들 사랑해요 !! 호킹박사님의 Disorder적 근위약과 루게릭적 병세는 꼭 최선을 다해 다같이 그때 박사님처럼 꼭 만들어봅시다. 시간이 아쥬 오래걸릴예정이에요... 왜냐하면 sublaxation 되어간(ad)시간이 길었기에 resilent 될 시간도 길예정이죠. 호킹박사님뿐만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건강을 찾을수있게되길 늘 공부하겠습니다.답글달기
- maru6062 2016-09-28 04:39:18 신고하기
- 영국인친구 한명하고 같이 축구한적있는데 이 인간이 저의 연습상대가 못되요 ;;ㅋㅋㅋㅋㅋㅋ꽤 괜찮은 녀석이였어요.. 그친구데려다가 영어선생한테 붙여봤더니 영어선생이 약간당황시러 하더군요. ㅎㅎㅎㅎ 그 친구꽤 멋진녀석이였죠. 제가 모르긴몰라도 카이스트지방대라고 놀려서 카이스트가 피켓시위(광고성)엄청하다가 김상욱교수행님 땅큐 !! 라고 하니까 다음날 카이스트 경영대학원에서 신문1면에 '카이스트가 너를 따른다 !!' 라고 하더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신문보고 웃겨서 사진찰칵해놨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답글달기
- maru6062 2016-09-28 04:34:00 신고하기
- 많은말씀에 동질성을 느끼게 해주시는 문답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고싶은 공부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에요.. 어떤분이 저에게 ㅎㅎㅎㅎ "공부 중독이 만병의 근원 ㅋㅋㅋㅋ"이라고 말씀하셨어여. 끌끌끌.... 기가 찰노릇..ㅋㅋㅋㅋ 제가 몆일전에 저의 경험담을 소재로 꽤 괜찮은 물리문제 하나 내면서 법학을 연결짓는 문제하나 냈더니 부산대학교 물리학과 교수행님이 나오셔서 추가로 더 많은이야기해주셨어요.. 그 '자유의지'에 관한건데 굉장히 솔깃했죠. (사실 자유의지라는단어를 1년전에 쓴것이에요..누구의 가르침도없이.)답글달기
[출처: 중앙일보] [배영대의 지성과 산책] “쓸데없다는 판단 너무 일찍 하지 마라, 누군가엔 쓸 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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