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1-06

1711 이권희 - 하시마, 통칭 군함도는 지옥섬이 아니었습니다.



이권희 - 하시마, 통칭 군함도는 지옥섬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인, 조선인의 차별도, 임금 격차도 없었습니다. 





이권희
2 November at 16:18 · YouTube ·



하시마, 통칭 군함도는 지옥섬이 아니었습니다. 일본인, 조선인의 차별도, 임금 격차도 없었습니다. 많은 사료와 연구가 이를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생존자들의 증언 또한 이를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누가 무엇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고 날조를 하는지요. 그래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요. 반일, 혐일 감정을 선동하고 조장해야 이익을 얻는 세력이 있나 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조직적 선동과 왜곡이 일어날 리 만무지요. 물론 역사를 직시하고, 옳고 그름을 따지고 잘잘못을 가려 이를 기록하고 다시는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기념하는 것도 좋고 또 그리 해야겠지요. 또 일본이 사실을 부정하고 왜곡하려 들면 이를 규탄하며 따져 물어야겠습니다. 그러나 있지도 않았던 일을 사실 마냥 왜곡, 날조하여 이를 정치적 혹은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몹시도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맹목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반일 활동을 독점하며 있지도 않은, 혹은 사실의 극히 일부분만을, 그것도 앞뒤 다 자르고, 맥락도 무시한 채 7,80년대 운동권 단체의 전술처럼 침소봉대하여 대중을 현혹하고 선동하려드는 세력, 자신들의 활동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자신들의 정체성을 문제삼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괴멸시키려 드는 이익집단은 이제 해체되어야 합니다. 아니 해체시켜야 할 것입니다. 자신들만 정의로운 듯 정의를 독점하려 들고, 거짓과 날조, 왜곡과 선동으로 지탱되는 운동이 오래 갈 수가 없지요. 운동 초기의 순수한 열정과 성과에는 찬사를 보낼만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익집단, 정치세력화해 가는 그네들의 가증스러운 민낯에는 토가 나올 지경입니다. 더 이상 저들의 민족주의 코스프레에 현혹되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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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세상에 오해를 퍼뜨렸는가
지금 세계에 오해가 퍼져있습니다. 세계유산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유산”중의 하나인 하시마 (통칭:군함도)가 지옥섬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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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조금 길지만 두 번에 나누어 시바타 선생님의 글을 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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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시바타강연록(2015)1: 

저는 시바타 토시아키라고 합니다. 1951년 나가사키에서 태어났습니다. 양친은 나가사키원폭 피폭자입니다..
저는 약 20년 동안 <나가사키재일 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 사무국장을 맡고 있습니다. 지금부터 21년전에 <재일 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 대표이신 오카마사하루 선생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오카선쟁님이 개척한 조선인 피폭자 문제를 주제로 한 활동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제가 오늘 이야기하는 것은 군함도 세계유산 등록 문제입니다. 군함도라는 것은 나가사키에서 <하시마>라고 부릅니다. <하시마>라고 하는데 우리 나가사키 사람의 습관입니다. 그래서 저는 군함도라고 해야 할 때 무심코 <하시마?라고 했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은 홀란스럽지 않도록 군함도로 통일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군함도는 <Warship Island> 아니면 <Battleship Island> 로 세계적인 호칭이 되어 있습니다.
최근에 제가 체험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10월14일의 일입니다. 저는 한국 TV <JTBC>의 김재훈 프러듀서와 함께 나가사키시 총무국 세계유산 추진실 실장과 이야기했습니다. 세계유산 등록추진의 나가사키시 책임자입니다.
실장인 그는 “군함도에서 세게유산으로 등록된 것은 섬 주위의 호안, 즉 돌담 부분과 내부에 있는 수직갱 터, 몇 군데만 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김 프로듀서가 섬 전체가 아닙니까? 라고 물어봤을 때 “섬 전체는 문화 유산이지만 이번에 <일본 메이지 상업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군함도의 호안 부분만입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더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봤는데 “군함도는 매립된 섬이며 섬 주변은 돌담을 쌓아서 호안 공사를 한 것입니다. 지금의 돌담은 콘크리트로 에워 싸여 있는데 그 콘크리트 벽은 세계유산이 아닙니다. 호안의 콘크리트 밑에 있는 돌담 만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입니다”라고만 했습니다. 실장인 이는 나가사키시 직원입니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것은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견해입니다.
중국해로 이어지고 있는 넓은 바다 한가운데에 콘크리트 빌딩이 꽉차게 줄지어 서있는 작은 섬. 그 섬 모습은 실루엣이 너무 신기한 것으로 지금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섬이 된 것 같습니다.
그 세계의 히어로인 007의 제임스 본드, 사실상 그는 영국 제국주의의 살인 청부업자인데 그 제임스 본드가 군함도에 와서 악당과 싸웠습니다. 실제는 군함도의 풍경만 영화 스토리에 이용한 것이지만 그래도 영화을 보고 미국, 영국, 홍콩 등에서 군함도를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옵니다.
그런 섬 군함도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그리고 세계에서도 유명한 섬이 되었습니다. 세계 각지에서 군함도를 보고 싶다, 군함도에 가고 싶어하는 관광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지난해의 통계상 50만명의 관광객이 군함도에 갔다고 합니다.
군함도에 상륙하는 선박회사는 다섯 개 있습니다. 그 회사 모두 내년까지 에약객이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군함도에 가고 싶은면 취소를 기다리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함도 전체가 세계유산이라고 생각하고 신기한 것을 보고 싶다고 군함도에 오면 군함도의 일부, 호안공사를 한 표면콘크리트가 무너져서 그 안에서 보이는 돌담만 세계유산이라고 합니다. 너무 실망스러운 일 입니다. 이건, 무슨 뜻인가요?
그리스 신화에 <프로그로스테스의 침대>라는 일화가 있습니다. 옛날에 옛날에 그리스에 깊은 산속에 프로그로스테스라는 산적이 있었습니다. 산길을 여행자가오면 프로그로스테스는 “여행으로 너무피곤하죠 제 침대에서 누웠다가 가세요” 라면서 그 사람이 여행자를 은신처로 데리고가서 철로 만든 침대에서 자게했습니다. 그 침대는 신축자재(크기가 늘었다가 줄었다하는)로 침대보다 키가 큰 여행자는 잠자리가 좋지않을까 해서 침대에 맞추기 위해 팔, 다리를 잘랐습니다. 또 키가작은 여행자에게는 침대를 늘여서 배드에 크기에 맟춰서 팔 다리를 끈으로 매고 늘여서 팔과 다리 목 그리고 몸통을 늘려 찢었습니다. 여행자는 죽게 되어 돈, 재물, 옷을 프로그로스테스에게 빼앗겼습니다.
프로그로스테스는 결코 맞을 수 없는 차가운 철제 침대에 ‘친절하게’ 인간을 억지로 맞추어 죽인 것입니다. 프로그로스테스의 일화에서 어떤 기준에 무리하게 따라가게하는 예에서 ‘프로그로스테스답다의 뜻은 `Procurustean’ 이란 영어 단어가 있다고 합니다.
동양에서도 비슷한 비유로서 “교각살우 (작은 결점을 고치려다 도리어 잔체를 망침) 이란 표현이 있는데 서양 쪽의 표현이 좀더 잔혹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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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함도라는 것은 미쯔비시 재벌이 경영한 해저 탄광입니다. 1974년1월에 폐쇄하여 그 해 4월부터 인간이 살지 않는 무인도가 되었습니다.
탄광이 폐산하고 나서 잠시 지나서 군함도는 미쯔비시 마테리얼이란 미쯔비시 계열 회사가 소유하고 있었는데 소유를 계속하고 있으면 관리비용은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미쯔비시는 2001년10월 군함도를 니시서노기군 다카시마 정을 공짜로 양도했습니다. 군함도의 현재 소유자는 나가사키시입니다.
이 때 섬의 이전 주민을 중심으로 하여 “군함도를 세계유산으로 하자”라는 활동이 일어났습니다. 2004년7월 나가사키 시내 에 있는 <야마사해운> 이라는 해운회사가 나가사키 항구에서 군함도로 가는 크루즈선을 취항시켰습니다. 나가사키현과 나가사키시는 군함도 관광사업 육성을 함께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는 <군함도>를 보존하여 나가사키 관광의 중심으로 내세울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시도를 할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2006년 경제산업성이 지방경제활성화 정책으로서 세계유산화에 관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국가가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요란스레 된 것입니다. 도중의 과정을 생략합니다만 경제산업성은 군함도뿐만 아니라 “규슈・야마구치의 근대화 산업 유산군”으로서 세계유산등록추진을 경제 정책으로 한 것입니다.
일본 정부, 경제산업성은 근대화 산업 유산군이 왜 역사적 가치가 있는지 스토리(이야기 거리)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해서 각 지방자치제를 지도(관여)했습니다. 그 스토리가 문제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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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시바타 강연록(2015)2: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근대화는 비서양 지역에서 처음에 지극히 짧은 기간 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성취했다. 그것은 규슈・야마구치 산업유산 시설군이 역사적인 역할을 다했다. 그래서 세계적인 가치가 있다”
이건 ‘아전인수’이며 ‘견강부회(억지로 합리화시킴)입니다.

아시아에서 일본이 조선보다 중국보다 인도보다 먼저, 맨 처음에 서양에 가까워졌다. 게다가 서양에서 100년에서 150년 걸린 근대화를 일본은 불과 50년 정도로 성취했다.
그래서 일본의 명치(1868년 – 1912년) 시대는 역사적으로 좋았던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는 위대한 인물이었다. 노기 마래스게는 훌륭한 군인이었다. 도고 해하치로는 장한 제독이었다. 일본육군은 강했다. 일본해군은 강했다. 중국에 이겼다. 러시아에 승리했다라고…
역사학자인 나카즈카 아기라 씨는 이런 생각, 역사 관점을 “명치 영광론” 이라고 부르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나카즈카 씨는 명치 영광론 배경에서는 일본 사람의 조선민족에 대한 멸시가 뿌리 깊게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명치 산업유산군 중에서 조선인 중국인을 강제로 데리고와서 강제노동을 시킨 장소가 7 군데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로서 일본 사회에서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한국인, 중국인, 한국 정부, 중국정부에게서 일본 정부가 세계유산으로 등록하면 강제연행・강제노동의 사실을 밝혀 세계 전체에 알려지지 않으면 안된다 라는 요구가 일어났습니다.
그건 정말 맞는 말이며 당연한 일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세계의 역사적 재산으로의 가치가 높아질 겁니다.
유네스코 세계 유산 등록은 반대하는 나라가 있다고 등록되지 않습니다.
의견이 끝까지 대립했을 때는 투표에서 다수결로 결정되는 구조입니다.
일본 정부는 투표가 되면 일본을 지지하는 나라는 소수로, 낙선한다고 할 전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일본 정부는 외무성, 경제산업성, 내각부을 중심으로 하여 이렇게 되기를 우려하여 지난해에는 “규슈・야마구치 근대화 산업유산군”이라고 한 것을 “명치 일본 산업 혁명유산 제철・철강・조선・ 석탄산업” 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대상도 규슈 5개 현과 야마구치・이와테・시즈오카현 전부를 합해서 8개현에 산재하는 23개 자산(시설)으로 구성되는 근대 일본의 산업유산군으로 했습니다. 그리고 명치 일본을 1850년부터 1910년까지의 기간으로 한 것입니다.
요컨데 1910년 이후의 산업시설은 관계가 없다고. 조선인・중국인 강제연행, 강제노동의 역사는 포함되지 않다고 한 것입니다.
1910년이며 한국 합병의 해입니다. 너무나 과식적이며 비겁한 방법이 아닐까요? 유네스코에서도 세계에서도 통용될 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프로그르스테스의 침대’ 입니다. 군함도의 역사, 시설을 1910년 이전에서 잘라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910년까지 군함도에서 만들었던 시설은 돌로 쌓은 호안(돌로 쌓은 벽)과 몇 군데의 갱도 입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때까지 군함도에서 가장 역사적이며 중요한 건물이라고 생각되는 30호 아파트,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콘크리트 집합주택은 1916년에 완성한 것이니 이것도 잘라내었습니다. 다른 아파트 그리고 근대산업유산으로 가장 알맞은 일본에서 최신, 최고 기술의 집적이었던 해저탄광 시설도 잘라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어 세계유산으로서의 군함도, 관광자원으로서의 군함도 전체가 프로그로스테스의 침대에 누운 여행자처럼 죽이게 된 겁니다.
뭔가 서글퍼서 멀리 해외에서 군함도의 돌담 그리고 몇 미터 밖에 노출되지 않는 돌담 호안을 보기 위해 일부러 와야 하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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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시바타 강연록 3:

한국 TV <JTBC> 프로두서인 김재훈 씨가 세계유산추진실 실장에게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관광객에게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것이 이 호안의 기초부분만이라고 설명할 겁니까? 또 관광업자의 안내원에게 올바르게 설명할 것을 지도하고 있습니까?”
그러면 실장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특별히 잘못했다고 판단할 때는 재외합니다만 관광업자가 어떻게 설명하는가에 대해서는 지도(말)할 수 없습니다. 군함도 저체로서 세계유산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라면서 애매모호하게 답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일본 정부는 2017년12월까지 유내스코, ICOMOS (국제기념물 유적회의)에 세계유산등록 시설에 대하여 어떤 교육 등의 조치를 해나가느냐 라는 방침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때 정부의 견해에 따라서 세계유산등록이 취소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가사키시는 나라의 방침, 결정에 따라서 군함도 등의 시설을 어떻게 할까 결정할 것입니다”라고.
国際記念物遺跡会議(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の略称
“군함도에서 강제동원의 역사가 있었다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질문했는데 “징용이란 것은 일본 사람에도 있었서 그때 조선인도 일본 사람이었다. 모두가 강제동원되었다고 하면 일본 사람도 그렇다. 강제노동이란 말 자체가 적절한지 어떤지? 군함에 오시는 분이 관광하러 온 것인데 조선인의 어두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답했습니다.

군함도에 관광하러 오니까 “암담(어두운)한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하니 군함도 관광 가이드는 한국인 강제연행의 역사에 대해서 관광객이 물어봐도 대답하지 않도록 철저히 (..교육..)되어 있습니다. 나가사키시 관광과 (세계유산 추진과)가 말하는데로 군함도에 오는 관광객은 즐거운 이야기만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진상, 역사적 사실을 알고 싶다는 요구가 있고 그것은 군함도 관광만에 한정하는 것이 아니지요.
자, 일본정부, 그리고 나가사키시의 세계유산추진실 실장이 ‘프로그르스테스의 침대’에서 잘라낸 것이 뭣일까?

그것은 군함도의 1910년 이후의 역사, 한국합병에서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때 한국 사람을 군함도에서 강제적으로 노예노동을 시킨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관광객들이 가장 보고 싶다는 콘크리트 아파트의 건물군, 일본 최고의 콘크리트 건축물인 30호 아파트 그리고 귀중한 해저탄광의 이야기 등을 잘라 버린 것입니다.
어찌나(얼마나) 어리석은 짓이 아닌가요? 역사의 진실은 얼마나 감추려고 해도 언젠가는 밝히게 될 것입니다. 감추려고 하면 할수록 사람들이 진상을 알려고 하고 그리고 그 진상은 밝혀지게 될 것입니다.
2015년7월6일 독일 본에서 개최된 UN 교육과학기관(뉴내스코)의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명치 일본 산업혁명유산’ 등록이 결정되었습니다. 일본과 한국의 외무대신이 절충하여 일본 쪽은 징용에 대해서 “의사에 반대하여 대려와서 일을 시켰다”(한국사람들이 징용에 반대했지만 데려와서 일을 시키게 되었다)” 등의 발언을 한국 쪽이 평가하여 결말을 지었다고 합니다.

한국 정부는 전쟁 때 산업혁명유산 23개 시설 안에서 7개 시설에 조선반도 출신자 약 5만8천명이 끌고 가서 노동에 시달렸다고 주장하여 시설에 관한 설명으로 징용에 언급한는 것을 요구했습니다. 한편 일본은 “1910년까지가 유상의 대상 년대이니까 시대가 다르다” 라고 반대하여 조선인 강제노동의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세계유산 위원회의 민간자문 기관인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COMOS)은, 일본정부에 「역사의 전모를 공표해라」라고 권고하고 있었습니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채결할 날짜가 다가오고 있던 7월5일이었습니다. 일본 한국 함께 “forced to work”라는 표현을 양해하여 만장일치로 등록을 결의했습니다.
결정 직후 사토 구니 유내스코 일본 대표부 대사는 “일본은 1940년대 여러 시설에서 그 의사에 반해서 데려오고 험한 환경 아래 일을 시키게 된 수많은 조선반도 출신자가 있었다는 것, 제2차 대전 중 일본정부로서 징용 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을 이해하도록 조치를 강구한다”라고 발언했습니다. 정보 센터의 설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도 표명했습니다. 힌국 측은 “일본이 모두 조치를 이행하기를 기대한다”라고 하여, 일본을 지지한다고 표명했습니다.
한국 정부는 그것으로 결정되었다고 생각하는데 불구하고 또다시 일본 정부의 수가라는 관방장관이‘forced to work’은 강제노동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말을 꺼냈습니다.
일본은 조선인 강제노동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는다고 전세계에 함부로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 통용할 수 있을까요?
군함도 등 명치 근대산업유산 세계유산등록 문제는 아직 이어질 것입니다. 한국 강제동원피해자들이 일본 정부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근대라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의 사회라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반드시, 그리고 국제법상 지켜야하는 것은 인간의 노예노동 금지입니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인간 노예노동을 인정하면 자본주의 사회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강제노동, 노동을 강요하는 것,‘forced to work’ 의사에 반하는 노동, 표현하는 말이 어떤 것이라도 절대로 노예노동은 금지되어야 합니다.
일본 정부의 수가 관방장관은 징용 노동이었으니까 허가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전쟁 중에서도 징용 당하는 노동은 노예 노동입니다. 일본인도 정부에 대해서 징용노동의 배상을 추구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전쟁 중이었다고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단념하여 배상추구를 하지 않을 뿐입니다.
나는 다시 말하지만 노예노동, 강제된 인간노동을 인정하면 근대사회 자본주의제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국제법상에서도 금지되어 있습니다. 국제법이 있는한 시효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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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시바타 강연록 4:

여기서 좀 책 소개를 하겠습니다. 우리들이 ‘나가사키재일조선인을 지키는 모임’ 이 발행한 책입니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출판된 너무 소중한 책입니다.
<원폭과 조선인 제 4집>입니다. 하시마의 신음소리(발굴된 ‘하시마자료’가 묻는 것)이란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1986년에 군함도에서 <화장인허증하부신청서>등 1296장의 공적 문소를 입수했습니다. 군함도에서 돌아가신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이 사망했을 때 행정부 사무소에 신고한 공식 문서의 한 묶음입니다. 조선인이 언제, 어떻게 돌아가신지를 기입한 문서이고 이렇게 대량으로 발견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 문서를 연구하여 돌아가신 조선인의 이름, 사망원인 본적지를 공표한 것이 이 책입니다.

이 책은 군함도로 간 조선인 강제연행, 강제노동, 학대, 학살의 역사적 증거입니다. 일본도 미쯔비시 재벌도 발뺌할 수 없습니다.
군함도에 끌려온 조선인 강제연행에 관한 조사나 서적은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 서적에 원 자료가 된 것이 이 책입니다. 이 책으로 군함도의 역사, 미쯔비시의 역사, 조선인 강제노동의 실태 등을 밝혔습니다.

또 하나 “군함도에 귀를 기울이면” 이란 책입니다. 2011년7월 발행했습니다. 이 책은 한국에서 아직 살아남고 있는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자에게서 직접 청취조사를 중심으로 한 조선인, 중국인의 강제동원, 강제노동의 실태를 전면적으로 해명한 단행본입니다.
2010년 군함도 유내스코 근대화산업유산군 등록을 지향하는 관민이 협력하는 움직임에 대한 우리들의 카운터펀치로서 발행했습니다.

우리들은 군함도가 세계유산에 등록되는 것을 직접 반대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군함도에 대하여 사람들이 관심이 높아지는 것을 기대하며 그것으로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을 세계에 널리 알려주는 좋은 기회로 이용하기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더 하나 새로운 책인데 “나가사키의 세계유산 타카시마, 하시마와 조선인, 중국인의 기록 -- 군함도, 살아가기도 죽기도 싫다” 라는 책자입니다.
이 책자는 일본 정부의 “명치산업유산 세계유산등록”이라는 의도의 본질을 폭로하여 조선인, 중국인의 생생한 증언을 대치하는 것으로 군함도 역사의 진상을 비추어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군함도의 조선인 강제동원 역사, 진실을데 대하여 새각하는 여러분, 꼭 읽어주시고 이용해주시기를 바라는 책을 소개하겠습니다.

한국의 국무총리 산하 직속 기관인 <대일항쟁기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을 지원위원회>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위원회가 발행한 “사망기록에서 보는 하시마탄광의 강제동원 조선인 사망자 피해 기초조사”라는 책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들이1986년에 입수한 군함도의 ‘화장인허증하부신청서’를 자세히 분석하고 군함도 강제동원피해자에게서도 청취 조사를 하여 그리고 한국정부가 갖고 있는 호적이나 제적 등본 등을 보고 뒷받침할 수 있고 그리고 과학적이기도 한 정확한 보고서입니다.
지금 일본정부, 나가사키시, 미쯔비시는 군함도 등의 조선인 강제동원, 강제노동 등에 다한 사실이 없었다, 사실관계는 증명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푸로그로스테스의 침대” 라고 생각하며 역사를 알맞게 잘라 줄여서라도 군함도에서 조선인 노예노동의 사실을 감추고 싶은 것입니다. 일본정부, 나가사키시, 미즈비시는 세계 사람들을 상대로 하여 이런 거짓말을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정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우리들은, 한국 여러분, 게다가 세계 사람들은 일본정부나 나가사키시 미쯔비시를 상태로 어찌하면 좋을까요?
저는 70년전에 군함도에 끌러간 한국인 할아버지들, 군함도에서 노예처럼 참혹한 대우를 받은 한국인 할아버지들, 군함도에서 학대 당하여 죽이게 된 한국 젊은이 그리고 그 유가족 여러분, 그런 군함도에서 피해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역사적 사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군함도 강제동원 피해자인 할아버지들의 호소, 요구, 소원이 우리들에게도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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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시바타 강연록 5:

저는 일본 중학생, 일본의 젊은이, 재일 한국인을 군함도에 안내하여 이야기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제가 이용하는 것이 여기에 있는 군함도의 지도와 박준구라는 할아버지의 문장입니다. 최근 박준구 씨의 이야기를 하면서 군함도 강제동원의 역사를 설명합니다.
아까 이야기했는데 나가사키시의 세계유산추진실 실장은 군함도에 조선인 강제연행에이 있었느냐고 물어봤을 때 “강제연행이란 것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도 박준구 씨는 말합니다. “나가사키에 도착하고 서너 개 조를 짜게 하여 총을 들고 있는 경찰을 붙여서 부두까지 행진시겼다. 도저히 도망할 수 없었다” 그리고 “벌써 3년 이상 거기에 있던 조선인 동포도 있어서 <여기에 한번 들어오면 절대로 나갈 수 없다. 자네도 고생할 것이다>라면서, 섬에서 나오기는 허가되지 않았다”라고…
이건 강제연행이지요?

그리고 박준구씨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노동은 갱도 입구에서 승강기로 지하 1000미터까지 똑바로 내려간다. 갱도에는 물이 사방에서 뚝뚝 떨어져서 갱내에서 가스 냄새가 물씬 나고 숨막혔다. 뜨거운 염수가 떨어져서 화상을 입었다. 피부가 퉁퉁 벗겨졌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웠다. 다리가 없어지면 일도 못하고 고향에 보내줄까 그런 생각도 했다. 그래서 석탄을 나르는 트럭거라는 광차와 선로 사이에 다리를 끼워서 잘려 버릴까도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강제노동이예요?

미쯔비시의 타가시마 탄광, 군함도 탄광 등 세계적으로 드문 해저탄광 입니 다. 야마구치현에 있는 장생탄광도 해저 탄광이지만 지하 속에 깊이가 다릅니다. 나가사키의 다카시마, 군함도, 사키도 탄광은 해저 600미터에서 900미터 지하에서 석탄을 캔 것입니다.
미쯔비시는 다카시마와 군함도 탄광에 세계에서도 가장 최신 기술과 기계를 투입했습니다. 자금을 얼마나 투입해도 품질 좋은 석탄만 파내면 미쯔비시는 벌이가 되었다, 그것이 군함도의 탄광이었습니다.

일본 원자력연구개발기구가 기후현 미즈나미시와 북개도 호로노배 정 2 군데에서 초심 지증연구라는 것을 행하고 있습니다. 지하 500미터에서 2000미터의 지층을 파내면서 지하 상태를 조사하는 연구입니다. 현재까지 500미터 정도 판 상황입니다. 300미터 정도 판다면 지하의 온도가 40도를 넘어서 습도는 100%, 연분을 지닌 지하수가 끊임없이 분출합니다. 지상에서 차가운 공기를 계속 보내지 않으면 인간이 숨을 쉴 수 없다고 합니다.
원자력개발기구는 왜 이렇게 지하를 깨는 연구를 하고 있는가 하면 일본은 화산열도이며 지증이 너무 복잡하여 끊임없이 지각 변동, 낙반, 가스 분출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하 깊히 구멍을 뚫고 거기에 원자력 발전소에서 넘칠 정도 괴어 있는 고선량의 핵폐기물질을 묻는 계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일각도 빨리 핵 폐기물을 지하에 매몰처분을 하지 않으면 전국 원전에는 보관할 수 없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후구시마 제일 원전 사고 때 4호기가 그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사고 당시 4호기는 가동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원자로 위해 사용후 핵연료 풀이 있는데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만일 사용 후 핵 연료가 물 위로 노출되어 반응 열로 녹기 시작하면 더 비참한 방사능 방출이 일어나는 위험이 있었습니다. 일본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에는 상용 후 핵연료가 보관할 수 없는 만큼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일본에서 지하 400미터까지 파는 것이 한계라는 결과입니다. 그런데 나가사키현의 군함도에서는 70년 이전 지하 900미터까지 뚫어가서 조선인에게 일을 시키고 있었습니다.
군함도의 탄광 기술은 세계적으로 가장 진보한 것이며 거기서 조선인과 중국인은 가장 깊은 데 일을 했습니다. --- 세계산업유산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일본정부, 세계유상추진실은 1910년 이후의 일은 세계유산이 아니라고 해서 잘라낸 겁니다. 웃기는 말입니다.

1974년 군함도 탄광이 폐산했을 해, 일본 전체에서 원자력발전소 건설이 한창 때였습니다.
군함도에 마지막 연행당한 조선인은 지금 러시아인 사할린에서 데려왔습니다. 전환 징용, 이중 징용이라고 불립니다.
일본은 전쟁말기 사할린의 탄광에서 파낸 석탄을 일본 본토에 나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해상 수송 도중 미군 잠수함에 의해 배가 잇달아 침몰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할린에서 일을 시킨 조선인들을 규슈의 탄광에 옮긴 것입니다. 군함도에도 200명 가까이 끌러왔습니다.
사할린에서 온 조선인 안에서 학문을 잘 한 사람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군함도에는 200여명의 중국 사람도 있었습니다. 중국인과 조선인을 접촉하게 못하게 했습니다. 중국인 안에서 홍군,발로군 병사가 포로로서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중국인은 일본에는 적국인이었습니다. 그들이 조선인과 합치면 군함도에서 1000명 가까운 세력이 되어 반항이 시작하면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미쯔비시나 경찰, 군인들이 두려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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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경 시바타 강연록 6:

중국인도 조선인도 지하 깊이 위험한 곳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입구는 따로따로 이었지만 가장 깊은 데에서는 함께 됩니다. 거기는 위험한 장소이니가 일본인은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중국인과 조선인은 말이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로 한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조선인이 있던 것입니다.
어두운 갱도 바닥에 한문을 써서 정보교환을 했습니다. 중국인 중에 미군의 정보도 아는 사람이 있어서 잠시 기다리면 미군이 일본에 상륙해서 온다, 잠시 참고 견디면, 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그 말대로 해방될 때가 왔다고 합니다.

10월16일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박근혜 대동령이 회담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과 한국 사이에 깊은 관계에 염려를 보여서 일본과 한국 사이에 관계 개선을 재촉했습니다.
미국은 중국와 북조선에 대하여 군사 상의 문제가 있습니다. 중국 북조선에서 발사될 대륙간 탄도탄을 어떻게 막을까 그것은 가장 중요한 가제입니다. 미국은 한국에서 THIRD 배치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THIRD 배치와 일본 X밴드 레이더, 일본 자위대와 한국군을 연계하고 싶은 것입니다.
중국인과 조선인은 서로 군함도에 연행된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 일본보다 중국을 신뢰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봐도 오른 것이라고 저에게 보입니다. 판단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국인 자신입니다. 그런데 저도 일본인인데도 불구하고 일본이란 국가를 신뢰하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열흘 전에 저는 군함도에 갔습니다. 거기서 군함도를 안내한 자원 봉사자의 설명을 잠자코 들었습니다. 군함도에서 세계유산으로 인정된 것은 이 돌담 부분이라고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것이 어떨 거야? 라고 심술굿은 질문을 하고 싶어했습니다. 참았습니다. 군함도 시설의 훌륭한 부분인 30호 아파트의 가치 등 설명이 이전처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군함도 안내하는 자원 봉사자는 저마다 “군함도의 사람들이 다들이 한 가족처럼 사이 좋게 살았습니다” 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옆 섬인 다카시마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15살 사춘기에 미쯔비시회사가 항상 이야기하고 있는 “가족처럼 사이 좋게 살자”라는 것이 틀렸다고 깨달아습니다. 자아에 눈뜨고 한 사람으로서 자립하고 싶은 욕구는 따뜻한 가족의 유대가 저를 묶는 쇠사슬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군함도의 환경, 아파트 주거, 주민관계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이가 파괴됩니다. 가족처럼이라는 것이 가족처럼 항상 감시하는 것입니다.

미쯔비시는, 기업은 ,종업원, 노동자를 가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회사에 순종하는 한 “가족처럼 보살핀다” 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작업, 임금에 불만을 품고 이의를 제기하면 좁은 섬 안에서 가족을 파괴하는 자로서 밟아서 뭉개는 것입니다. 군함도의 가족의식이란 가족이 아닌 사이비 가족으로서 억압하는 시스템인 것입니다. 이것은 미쓰비시의 노무 관리 제도가 만들어 낸 환상입니다.

군함도의 가족처럼 사이 좋게라는 것은 조선인들을 <이단자>로 압사하는 사회라는 것입니다.
1944년에서 1945년, 전쟁도 막바지에 다가오는 시절에 매일같이 조선인들이 바다에 뛰어들어가서 탈출하려고 했습니다. 도중에서 잡혀서 다시 끌고와서 노무계나 경찰관에 의해 폭력을 당했습니다. 또다시 도망가지 않도록 막대기나 고무호스 그리고 가오리 꼬리로 전신을 구타당했습니다. 울고 외치면 하면 할 수록 더 심하게 맞았습니다.
본보기로 폭행 하는데는 군함도 9층건물 16호동과 17동호의 앞 마당이었 습니다. 16호동 지하는 조선인이 수용되어있던 숙소입니다.
일본인들이 16호동 17호동 각층에 복도 손잡이 넘어 앞마당으로 내려다 보고 울고 외치는 한국인들을 구경하고 있었습니다. 어린이도 아이도 재미있게 그냥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광경은 군함도의 일본인과 조선인의 일상적 풍경이었습니다. 나는 가끔식 일본인이라는 것이 괴롭습니다.,.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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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 Reply · 2 · 4 November at 18:18Manage

정혜경 이렇게 긴줄 알았으면 제 타임라인에 올릴 걸 그랬습니다. 미안합니다.



Like · Reply · 1 · 4 November at 18:18Manage

이권희 천천히 읽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 선생님.^^



Like · Reply · 4 November at 18:21Manage

이우연 정혜경선생님 긴 글을 올리시는 데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소개하신
시바타 강연록 전체를 읽고 난 지금, 그속에 담긴 새로운 이야기는 일본이 하시마 등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는 "의도"에 대한 설명을 제외하면 새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그 '일본의 음모'조차 수 십년간 한국인들이 받은 교육을 감안하면, 중고생 정도만 되도 쉽게 이해하고, 또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외, 강제노동, 강제연행, 노예사냥, 노예노동 등에 대한 시바타 선생의 강연 내용은 1960년대 이후 한국 역사학계와 일본의 일부 "양심적 지식인" 몇몇이 발표해온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영화 군함도를 포함하여 시바타 선생의 강연조차 이제는 실증에 의해 증명해야 할 논점, 즉 "강제연행, 강제동원, 노예사냥, 노예노동"이 자명한 역사적 실체로 "전제"가 되어 다른 논의의 가능성을 제거하고, 입체적인 역사상의 구축을 심각하게 방해하고있습니다. 

우선 그 실태규명이 한일 학자들의 일차적 과제이며, 또한 양국간 지극히 비생산적인 감정적 대치 상황을 이성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바타 선생의 강연 원문을 게시해주시는 것도 도움이 되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제 의견은 선생님께서 아시다시피 크게 다릅니다. 하지만 조만간 공개적으로 토론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Like · Reply · 4 · 4 November at 20:26 · EditedManage

이권희 이쪽 분야 전문가들께서 한자리에 모여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빨리 오길 바랍니다.



Like · Reply · 3 · 4 November at 20:46Manage

정혜경 이 분야 전문가가 누가 있을지요. 전문가라고 나서는 분들. 참. 그렇습니다. 물론 저도 아닙니다.



Like · Reply · 1 · Yesterday at 00:23

Sejin Pak 정혜경 선생님, 시바타 강연록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세계유산 등록 과정에 대한 설명이 잘 되어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일본인 조선인 중국인의 대우 차별에 대하여는 사바타 씨의 의도는 이해 하겠지만, 저로서는 충분이 납득이 되지 않는 면이 남습니다. 이 시대에는 일본인들 사이에서도 낮은 계층의 사람들은 강제동원되고, "노예"처럼 대우를 받았다면 조선인과의 차이가 분명하지 않아집니다. 이제는 연구자들이 모여 이런 레벨의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본의 온정적이며 압제적인 가족적 경영 이야기는 우선은 일본인 고용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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