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1-31

재조명 받고있는 박원순의 예능프로그램 출연회차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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修 < ‘내 편’ 안에서만 작동하는 ‘사랑’은 사회악이 될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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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편’ 안에서만 작동하는 ‘사랑’은 사회악이 될 수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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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종교를 믿더라도 신앙을 통한 구원이라는 것이 중심인 사람은 ‘옳고 그름’ 따위 어차피 안중에 없으니 그저 기복적인 삶을 살면서 타인에게 돌아가는 직간접 피해에도 아랑곳 없이 그 소집단 안에서 끼리끼리만 ‘사랑’하며 지내는 일에 몰두할 테고 (이게 극단으로 가면 '절대복종'과 '내부총질 금지'가 최고의 미덕인 조폭에 점점 가까워질 수밖에 없고 바로 그렇기에 사이비 종교집단에선 온갖 기괴한 사건/사고들이 일어나는 것), 선행이나 수행이 중심인 사람은 옳고 그름에 대한 감각을 놓지 않고서 타인에게 끼칠 직간접 민폐/부담의 최소화를 최우선의 가치로 하는 삶을 살 테고.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각각의 개별 종교집단 및 개인의 문제. 누가, 어떤 집단이 어떤 유형에 속하는지를, 그리고 국가의 케어를 제대로 받지 못 하는 취약층의 인지적 정서적 건강이 어떤 수준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 코로나의 뜻밖의 사회적 공헌(?)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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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개선이 요원해 보이는 이유는, (1) 저신뢰 사회일수록 소집단/진영의 이익을 대집단의 이익보다 우선시하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2) 사회를 운영해 가는 정치에서조차 조폭 수준의 진영논리만 남았으며, (3) 문화적 토양 자체도 옳고 그름을 가리는 행위를 오히려 ‘인격적으로 하자있는 인간들이 잘난 척하려는 데에 목적을 둔 교만한 행위’(*)로 간주하는 위선과 억압이 워낙 뿌리깊은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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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조차 시비지심을 인간의 근본인 四端의 하나로 꼽았건만, '神 앞의 겸손'을 가르치는 종교의 성직자만 해당 종교집단 안에서만 할 수 있는 *같은 '논리'를 무려 서울대 명예교수가 일간지 칼럼으로 싣고 또 이런 '논리'가 '지성'으로 환호 받는 것이 한국의 현실. (이게 블랙코미디인 이유는, 남들의 '판단' 행위를 인격적 하자의 증거로 '판단'하는 저자 자신의 '판단' 행위는 데스크도, 독자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는다는 것. 내로남불에 대한 사회 전체의 무감각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점잖은 척만 하면 모든 비논리를 무조건 심오하다 여겨 주는 반지성주의와 허위의식이 얼마나 병적인지를 보여 준 대표적 사례라고 나는 생각. 온갖 사이비 종교들이 한국에 이렇게까지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 현직 대통령 트럼프가 "이번 대선은 조작"이라고 기자회견 하는 것을 폭스뉴스조차 "근거 없다"면서 생중계를 가차없이 끊어 버리는 미국과 매우 대조적. 미국도 "썩었"지만 다른 나라들보다는 그래도 훨씬 덜 썩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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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편 안에서만 작동하는 情이 옳고 그름을 대체할 때 생기는 일. 마을 학부형들이 여교사 ('외지인')를 성폭행했는데 주민들은 “젊은 사람들끼리 좋아 지낼 수도 있지!”라고만 반응했던 사건이 생각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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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로 남은 귀촌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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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울 줄만 알았던 시골 생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귀촌 | 귀촌하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 '시골 텃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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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울 줄만 알았던 시골 생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귀촌 | 귀촌하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 '시골 텃세'
아름다울 줄만 알았던 시골 생활,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은 귀촌 | 귀촌하는 이주민과 원주민의 갈등 '시골 텃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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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Documentary (EBS 다큐)2.03M subscribers※ 이 영상은 2019년 09월 12일에 방송된 《다큐 시선 - 보이지 않는 울타리 시골 텃세》의 일부입니다.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농촌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런데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역귀농자들이 늘고 있다.
귀농 갈등의 요인으로 꼽히는 건 바로 원주민들의 텃세.
귀농인과 원주민 간의 갈등으로 극단적인 사건까지 발생하고 있다. 환상만으로는 안착할 수 없는 시골 생활.원주민과 이주민 간의 갈등은 무엇 때문에 일어날까?
✔ 프로그램명: 다큐 시선 - 보이지 않는 울타리 시골 텃세
✔ 방송 일자: 2019.09.12
 이 영상은 《다큐 시선 - 보이지 않는 울타리 시골 텃세》의 일부입니다.제2의 인생을 꿈꾸며 농촌으로 향하는 사람들. 그런데 다시 도시로 돌아가는 역귀농자들이 늘고 있다.귀농 갈등의 요인으로 꼽히는 건 바로 원주민들.....
Sungsoo Hong, 이인자 and 4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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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사랑이 이타적인 건 아님을 인정하는 정직이야말로 이타심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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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모든 사랑이 이타적인 건 아님을 인정하는 정직이야말로 이타심의 시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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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 에로스 vs. 아가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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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echer 부부는 "Beyond Success and Failure"에서, 가족 간이든 친구 간이든 personal하고 감정적인 사랑은 불건강하고 미성숙한 '에로스'로, impersonal한 사랑은 '아가페'로 분류했는데, 공사구분 희박하고 소집단내 친목이 대집단의 이익보다도 우선시되는 한국 같은 유교사회에 특히 시사점이 크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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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공사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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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가 죄를 지었을 때 내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부모를 숨겨 주어야 한다는 게 공자의 견해이고, 부모를 등에 업고 함께 도망가야 한다는 게 맹자의 견해이며, 한비자는 내 부모라도 고발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 '지도층'이 저지르는 불법/부정/부패도 결국, 대집단의 규범보다 소집단/개인의 친목/이익을 우선시하는 저런 유교식 정서가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지. 대학원생이 지도교수네 김장 때, 혹은 부하직원 부인이 상사네 김장 때 그 집에 가서 김치 담그는 것을 무슨 '인간미'나 '미덕'인 듯 여기고, 명절 때는 온갖 간섭으로 서로를 피곤하게 하는 등의 현상도 모두, 공사 구분 안 되고 개인 간의 경계에 대한 존중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 아니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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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아들러 심리학과 초기불교에 따르면, 내 감정 (종류 무관)에 집착하는 것이 바로 '자기중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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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와 염소가 친구인데 사자가 맨날 고기를 사냥해 와 염소에게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염소가 자기 채식동물이라고 말하는데도 불구하고 사자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염소가 살아야 한다고 사자가 염소에게 고집하느라, 사자의 이 '염소 사랑'에 염소는 스트레스와 부담만 느끼고 사자는 '상처 받는'다. 이런 흔한 예가 바로 자식을 '위한'답시고 자식을 자신의 장난감처럼 통제하려고 하는 부모들이고, 또 특정 연예인을 너무 '사랑'해서 그 연예인을 스토킹하고 결국은 자기 손으로 죽이기도 하는 팬들. 이 정도로 심하지 않을 뿐 누군가를 '좋아하는' 우리의 행동도 대부분 이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못 하고. 다시 말해, 상대방을 위하는 내 마음의 진실함과 상대방에 대해 내가 느끼는 감정의 강렬함/절절함은 무관하며, 이 사실은 열렬한 매력으로 시작했다가 강력한 증오나 환멸로 끝나는 많은 관계들에 의해 증명된다. 이렇듯, 상대를 '사랑하는' 감정도 결국은 '자기중심적'이기에, 그래서 Beecher 부부가 personal하고 감정적인 사랑은 불건강하고 미성숙한 에로스로, impersonal한 사랑은 아가페로 분류한 것. 그리고 완벽히 동일한 이유에서 부처님도 personal하고 감정적인 사랑인 pema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셨고 (AN 4:200, AN 5:30) impersonal한 사랑인 mettā (강도에게 팔다리를 잘리고 있는 와중에도 강도가 선업의 지혜를 통해 행복을 짓기를 기원하는 태도)를 강조하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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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의 관점에선 온갖 기대 (사실은 욕심), 서운함 (욕심이 채워지지 않은 것에 대한 화), 애증, 恨 등이 모두 집착이요 惡業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에로스와 특히 정신적 불건강의 극치인 애증이 '진정한 인간미'라도 되는 양 한국의 연속극이나 영화 등에선 그려지고, '자신의 감정에 책임진다'는 개념 자체도 희박하다. 그래서 에로스에 덜 집착하는 사람 (초기불교와 Beecher 부부에 따르자면 덜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에로스에 더 집착하기에 쉽게 서운함을 느끼는 사람 (초기불교와 Beecher 부부에 따르자면 실은 더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의 기분/비위를 맞춰 주도록 요구하는 '억압'이, 유교사회에서는 오히려 '윤리'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모두가 감정노동으로 피곤한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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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각자의 마음 안에 있는 '아이'의 베이비시터가 되는 것은 각자의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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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2번 문단에서 언급된 사자, 부모, 팬들의 경우에서 보았듯이, 내가 A라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나는 이타적임'을 보장하지 못 하며 나를 A의 채권자로 만들지도 않는다. 또 소집단 안의 가까운 관계들에서 온갖 감정노동으로 에너지가 소진될수록 소집단 밖의 사람들을 존중, 배려, 연대할 여력은 줄어들 것이기에, Beecher 부부의 에로스-아가페 구분이나 초기불교의 'not self,' 'no conceit' 가르침(매사를 to take impersonally 하라는 가르침)에, 사적인 감정/친목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유교사회는 특히 경청할 필요가 있을 듯. 타인이 내 '감정' (설사 그 감정이 ‘사랑’이라 하더라도)에 호응해 주지 않으면 상대가 '이기적인' 것이라 믿는 건 실은, 내 자신의 기분이나 정서적 필요를 위해 상대방을 '소비'하려는, 매우 이기적인 욕망일 뿐. 그러므로 그 경우 정작 '이기적인' 사람은 나 자신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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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eyond Success and Failure" by Marguerite and Willar Beecher.
    '불교에 대한 오해 #7. '남 집착'이 'Not Self,' 'No Conce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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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age may contain: 1 person, text that says "Selfishness is not living as one wishes to live; it is asking others to live as one wishes to live. And unselfishness is letting other people's lives alone, not interfering with them. Selfishness always aims at uniformity of type. Unselfishness recognizes infinite variety of type as a delightful thing, accepts it, acquiesces it, enjoys it. Oscar Wilde AZQUOTES"
    Sungsoo Hong, 이인자 and 3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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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들 사랑을 받고 싶대요..ㅎㅎ 아귀다툼처럼 느껴지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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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希修 repli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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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希修

      모든 관계들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기대들을 충족시킬 것을 종용받고, 그에 실패할 경우 과도한 책임감과 죄책감마저 느끼는 경향이 강한 동양 문화권 사람들이, 주체성과 독립성을 갖고서 무수한 인간관계 사이를 항해해 나가는 법에 대한 책. Beecher 부부의 책은 심리/이론 중심, 이 책은 테크닉/실천 중심. (여기서 '버림'의 대상은 때로는 기대, 때로는 관계 자체.)







      希修

      배려와 책임은 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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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希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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