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혁적 중도주의와
직접민주주의디지털문명정당의 도래!
백낙청선생께서 4년만에 내놓은 새책!
<변혁적 중도주의 때가왔다ㆍ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창비,2025)>
이책에 대한 서평을 정지창선생께서 페이스북에 아주 잘해주셨다ㆍ
그리고 백낙청선생님은 우리시대 최고의 선각자중의 한분이시고 대단한 학자와 사회운동가이시자 초지일관의 재야경륜가이시다ㆍ
그런데
문제접근자체가 다르면
변혁의 내용과 방도가 달라진다ㆍ
그래서
백선생님의 시좌에서 보는 변혁로드맵/플랜과 내가
보는 변혁로드맵/플랜이 겹치면서도 다르다ㆍ
백선생님과 민주당에게는
대의제민본주의(for the people)가 중심이고, 직접민주제 즉 of the people와 by the people는 부재할정도로 부차적이다ㆍ
백선생님과 나의 시좌가 어떻게 다른지 나의 페이스북 글과 정지창선생의 서평글을 동시게재해본다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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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한국정치는 어떻게 변해갈까?
매체수단의변화에 따른 한국정치성공의 흐름을 보자!
*노무현:인터넷기반 정치적대중조직 노사모
*이재명:SNS모바일기반 손가락혁명군(이후 개딸로 진화)
*미래의 주인공???:AI메시지기반 직접민주주의 디지털문명혁명군
이들은
이전에 경험해보지않은 색다른 모습으로 갑작스럽게 출현하는 이군돌기의 모습으로 등장할꺼다ㆍ
그렇다면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광장과 지역부문대중운동과 지역당 그리고 군소좌파정당의 총연합군형태의 스페인 포데모스 정당형태일까?
아니면
AI정책메시지로 창당 일주일만에 60만 온라인당원을 결집시킨 영국의 혁신좌파정당 유어파티(Your Party)모습일까?
앞으로
나타날 이들이 내걸 슬로건은?
"문해율95%
대학진학율80% 인공지능시대에,
문맹율95%시대 생긴 대의민주제에 우리의 운명을 맡기냐? 쪽팔리게,씨바!
정치는 우리가 직접한다ㆍ
지금 인공지능(AI)은 대의제국회의원들 머리 300명이 짜내는 지식을 단 몇분만에 쏟아내놓고있는 시대다ㆍ
이러한 시대의 도래앞에서도 대의제씨스템에 우리의 운명과 주권을 통채로 위임한 채 계속 살라구?
아닐것이다ㆍ
이런시대에 걸맞게 인공지능(AI)을 비서로 쓰고 시민들이 머리맞대고 토론하면서 정치해야할것이다ㆍ그러니 포퓰리즘운운하는 개소리는 지껄이지 말라!
삼천리방방골골 마을과 직장에서 직접정치원탁회의를 설치하자!
국민여론과 공론은 직접정치원탁회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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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백낙청 선생이 4년만에 내놓은 새 책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 나라다운 나라를 어떻게 만들까』(창비 2025)를 읽으며 나는 “시호(時乎) 시호 이내 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때가 왔다, 때가 왔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그 때가 왔다!)”고 칼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수운 최제우 선생을 떠올렸다.
정교하고 치밀한 논리로 분단체제론과 이중과제론을 펼쳐온 선비의 글에서 무인(武人)의 호방함이 넘치는 수운(水雲)의 칼노래와 칼춤을 연상하는 것은 엉뚱한 발상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나는 분명히 이 책의 어조와 행간에서 이제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때가 되었음을 자각한 선각자의 환희심과 자신감이 맥박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수운이 칼노래를 지은 것은 득도한 직후인 1861년쯤으로 추정된다. 우리 나이로 서른여덟 살 때다. 수운은 하늘님으로부터 개벽 세상을 열어갈 때가 왔다는 계시를 받고 칼노래를 부르고 칼춤을 추며 그 기쁨을 표현했다. 반면 백낙청 선생은 그의 나이 여든여덟, 흔히 미수(米壽)라고 부르는 노년에 이르러 혼신의 공력을 모아 “드디어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으니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자”고 외친다. 박정희 군사독재가 표현의 자유를 옥죄던 험난한 시대에 『창작과비펑』을 창간하여 출판문화운동을 시작한지 근 60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글에서는 여전히 청년다운 열정과 패기가 넘친다.
“28세의 청년 백낙청(白樂晴, 1938〜)은 1966년 계간 『창작과비평』을 발행하면서 20세기 후반의 한국지성사에 커다란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막 대학에 진입한 영문학 교수였지만, 강의실을 벗어나 잡지라는 매체를 통해 일반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는 출판문화운동에 뛰어들었다. 130쪽에 불과한 이 계간지 창간호는 고착된 남북분단과 군사정권 치하에서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빼앗겨 숨쉬기가 힘들었던 청년들의 답답한 가슴에 시원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창간사에 해당하는 평론 「새로운 창작(創作)과 비평(批評)의 자세(姿勢)」를 통해 그는 사르트르를 비롯한 저명한 작가들의 말을 인용하여, 순수문학이 문학의 본령이라는 허위의식에서 벗어나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문학 본연의 자세라는 점을 강조했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언론과 사상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를 위한 싸움에 나서야 하고, 모순된 사회현실과 역사에 저항해야 하며,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통일을 위한 소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공 이데올로기가 강요하는 자기검열로 위축된 당시의 문단이나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이고 패기에 넘치는 발언이었다.”(졸고, 「백낙청의 개벽사상과 원불교 공부」, 2022. 3. 25. ‘생명평화아시아’의 한국 현대 생명평화사상 세미나에서 발표한 발제문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청년 시절에 품었던 초심(初心)이 이제 구순을 바라보는 원로의 가슴속에 여전히 살아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자가 말한, 하나의 이치로써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일이관지(一以貫之)의 보기 드문 사례가 바로 백낙청 선생이다. 백 선생은 박정희의 유신시대에 서울대 교수직에서 파면되고 전두환 군사독재시대에 계간지 『창작과비평』이 폐간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평생 글과 말과 행동을 통해 창간사에서 밝힌 바대로 표현의 자유를 위해 싸우고 모순된 사회현실과 역사를 위해 저항하며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의 활로를 모색하는 일관된 길을 걸어왔다.
그의 남과 다른 특징은 전공인 영문학과 문학평론과는 전혀 다른 분야, 즉 대부분의 정치학자나 정치가들이 외면하는 분단 극복과 통일의 길을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혼신의 공력을 모아 일관되게 탐구해왔다는 점이다. 절대다수의 학자나 지식인들이 이른바 ‘후천적 분단인식 결핍증’에 걸려 분단의 현실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알량한 기득권에 안주할 때, 그는 분단체제가 지속되는 한 자주적이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은 오지 않는다는 우환(憂患) 의식에서 분단 극복과 통일의 길을 화두로 끌어안고 평생을 궁구해온 우리시대의 선비라고 할 수 있다. 맑은 날에도 비 올 때를 대비해 도롱이를 준비한다는 뜻의 청사(晴蓑)라는 호가 그에게 주어진 것은 이 때문이다.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그가 내세우는 명제가 바로 ‘변혁적 중도주의’다. 백 선생에 따르면 변혁은 분단체제의 변혁을 말하며, 중도주의란 급진적•혁명적 노선보다 중간에 가까운 노선을 가리킨다. 이를테면 민족해방(NL)과 민중혁명(PD), 자유주의(BD)를 두루 포용하고 결합한 점진적 노선인 셈이다. 따라서 통일 방안도 흡수통일이나 무력통일이 아니라 점진적•단계적 통일을 지향한다. 원불교의 창시자인 소태산 대종사의 가르침에 따라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큰 것을 이루는 이른바 이소성대(以小成大)의 실천방안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2025년 현재의 시점에서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고 보는가. 간단히 말해 변혁적 중도주의를 현실정치에서 선거의제(구호)로 채택한 최초의 정치인 이재명이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촛불항쟁(2016〜2017)으로 이명박 박근혜의 반동적 연성 쿠데타를 제압하고 ‘빛의 혁명(2024〜2025)’으로 윤석열의 군사반란을 진압한 지금이야말로 변혁적 중도노선으로 분단체제를 허물고 통일의 길을 헤쳐나갈 절호의 기회,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개벽의 전환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백 선생의 신뢰는 막연한 호감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는 나름의 치밀한 실증적 조사와 검증을 거쳐 이재명이 “살림은 잘하겠다는 확신”(289쪽)을 가지게 됐다면서 김대중 이후 가장 걸출한 이재명이라는 지도자가 “아래로부터 올라오는 힘을 받아서 정책에 연결하”(262쪽)여 한반도의 분단체제가 변혁되는 대전환을 이룰 것이라는 기대를 숨기지 않는다. 2025년 4월 27일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 언급한 “개벽 같은 변화”를 성취하려면 보수중도적인 실용정책이 필요하다는 이재명의 주장은 내가 보기에도 백 선생의 ‘변혁적 중도주의’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다.
백 선생은 이와 동시에 하늘이 내려준 운수와 인간의 극진한 공력이 합치하여 한반도의 분단체제를 허물고 통일을 향한 새길을 열어나가기 위해서는 시민사회가 힘을 보태야 한다고 역설한다. 정치 지도자나 이른바 통일문제전문가 중심의 통일 논의를 시민 주도의 통일 논의로 전환해야 새로운 차원의 통일 방안이 추진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고도의 전문성을 가진 남북관계 전문가들이 필요한 건 물론이지만, 분단체제 극복운동에는 전문가가 따로 없다. 이 운동에서는 모두가 주인이며, 그 다양한 전선에서 각기 요청되는 전문성을 가진 인사들이 소요될 뿐이다.”(232쪽) 2024년 5월 9일 노무현 시민센터에서 열린 한평아카데미 강연에 대한 백낙청의 사후논평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나는 2022년 대선 직전에 김천의 동학도인인 김성순 선생님(당시 94세)으로부터 “돌아가는 꼴을 보니 윤석열이 될지도 모르는데, 만약 된다 해도 오래는 가지 못할 것 같으니, 너무 실망하지 말고 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도 막상 윤석열 정권의 등장이라는 변칙적인 사태와 헌법을 무시한 ‘도적정치(kleptocracy)’의 참상을 지켜보면서 일종의 우울증을 겪으며 한동안 실망과 냉소,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었는데, 백 선생 같은 원로가 조기 정권퇴진론을 제기하는 것을 보니 뭔가 막힌 가슴이 뚫리는 듯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백 선생의 이 발언은 재야 시민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잠자던 시민의 저항의식에 불을 붙여 12•3 내란사태 이후에 거국적인 시민저항운동의 도도한 흐름을 만들어낸 여러 가닥의 물줄기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고 나는 믿는다. 물론 무모한 계엄 선포로 제 무덤을 판 윤석열의 역행보살적인 살신성인과 2,30대 여성들의 창의적이고 눈부신 투쟁이 ‘빛의 혁명’을 이끈 중요한 동력이었다는 사실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역사의 간지(奸智)라고 후세의 역사학자들은 기록할지도 모른다.
2024년 12월 3일부터 근 6개월에 걸친 불면의 밤을 견디면서 나는 동학에서 비롯된 개벽이라는 용어가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구체적인 현실성을 가진 생명체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경험했다. 사실 그 이전에 백 선생은 일찌감치 개벽의 징후를 알아채고 이에 주목한 바 있다. 백 선생은 2020년 『서양의 개벽사상가 D. H. 로런스』를 출간한 직후 동학 연구자인 김용옥과 박맹수를 초청하여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는 제목의 특별좌담을 갖고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을 심도있게 논의하여 동학의 현재적 의미를 부각시켰다. 이 좌담을 비롯하여 개벽사상을 주제로 한 후속 좌담의 내용을 정리하여 『개벽사상과 종교공부』(2024)와 『세계적 K사상을 위하여』(2024)로 잇달아 엮어냈다. 이번에 나온 『변혁적 중도의 때가 왔다』에서도 개벽사상에 관한 관심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저자가 ‘책머리에’에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은 개벽사상의 현재적 의미와 실천방안을 쉽게 풀어쓴 “변혁적 중도주의 독본”이라 할 만하다.
특히 이 책의 3부 첫머리에 실린 「촛불혁명과 개벽세상의 주인노릇을 위해」는 동학의 개벽사상에 관한 도올과의 토론 직후에 쓴 글로서 백낙청의 개벽사상을 알기 쉽게 요약, 정리한 글이다. 내가 이 글에 주목하는 이유는 촛불혁명이 진행중인 2020년대에 개벽을 화두로 삼아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뿐만 아니라 앞으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어가기 위해 필요한 과제들을 열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제들은 개혁보다 근원적이고 발본적인 변혁, 즉 개벽을 위한 과제들이고, 이 과제들은 2025년에 등장한 이재명 정부의 당면 과제들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청사는 “1860년대 수운의 동학에서 비롯된 한반도후천개벽운동”(168쪽)이 3•1운동을 거쳐 4•19, 5•18, 6월항쟁, 2002년, 2004년, 2008년의 촛불항쟁과 2016〜17년의 촛불항쟁까지 면면히 이어진, 역사적 뿌리를 가진 물줄기임을 상기시키면서 촛불혁명이 지닌 개벽운동으로서의 정당성과 자부심을 일깨운다. 그러면서 분단체제를 비롯한 적폐를 청산하고 새 세상을 열어갈 개벽을 이루기 위해서는 뿌리깊고 완강한 수구세력들의 저항을 염두에 둔, 장기적인 안목의 실천노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도올이 갈파한 것처럼 수구 보수세력들은 “오만년의 관성을 등에 업고 설치는 것”(특별좌담 <다시 동학을 찾아 오늘의 길을 묻다>에서 한 말)이므로 하루아침에 이런 적폐를 청산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소성대의 마음가짐으로 조금씩 실천하여 작은 것부터 하나씩 성취해 나가는 것이 바로 변혁적 중도주의의 실용노선이 라는 뜻으로 나는 되새겼다.
이와 더불어 시야를 한반도에서 전지구적 차원으로 확장하여 개벽운동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청사의 안목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근대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말기국면에 접어들어 패권국 미국의 기득권세력과 그에 종속된 한국 기득권세력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물질개벽에 상응하는 정신개벽’이라는 한반도 고유의 사상”, 즉 후천개벽사상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는 진단에도 나는 이의가 없다. 특히 전세계적인 기후위기와 인공지능(AI)이 몰고오는 4차산업혁명의 물질개벽, 트럼프의 조폭식 관세 갈취와 장사꾼식 한반도 정책, 그리고 김정은의 현실주의적 남북한 2국가론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21세기형 개벽사상의 실천노선인 ‘변혁적 중도주의’에 대한 관심과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절감했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이 주인 노릇하고 일본이 상머슴 노릇하고 한국이 속된 말로 시다바리 노릇하는 3자구도가 이번 ‘빛의 혁명’으로 깨”(282쪽)졌다는 백 선생의 선언이 현실로 증명되기를 기도하였다.
사진에서 보듯이 두 손을 모아 이 책을 읽어줄 것을 청하는 저자의 간절한 호소에 아직 마음이 젊은 독자들이 호응할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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