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그린 뉴딜'이라고 하지 말지[문재인 정부 사회경제 정책 긴급점검 ③]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으로 한국판 뉴딜 새판 짜자
20.08.13 13:06l최종 업데이트 20.08.13 13:06l
이유진(leeyj)
▲ 8일 오후 폭우로 물에 잠긴 구례군 구례읍 토지면
ⓒ 조태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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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사시는 어르신들이 자기 생애 이런 난리가 없다 하네."
섬진강이 범람했다는 소식에 지인의 안부를 물었더니 이렇게 문자가 왔다. 전북기후위기비상행동은 "이 비의 이름은 장마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라는 메시지를 확산시키고 있다. 2020년 코로나19로 실업자가 늘고 경제가 어려워졌다. 따뜻한 겨울에 이어 대홍수까지. 예상치 못한 일들의 연속이다. 이처럼 불확실성이 커진 세계는 나오미 클라인의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가 실감나게 한다. 그렇다. 기후변화가 모든 것을 바꾼다.
대홍수의 재난은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화석에너지 탓이다. 기후위기는 화석에너지를 태우면 발생하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가 지구 평균기온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발생한다. 우리는 산업화 이전 대비 평균기온이 1도 상승한 지구에서 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11위이고, 에너지 부문이 전체 배출량의 87%를 차지한다. 2019년 기준 2344만 대의 등록 차량, 60기의 석탄발전소, 철강·석유화학·조선·반도체·자동차 등의 산업체에서 오늘 하루도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고 있다. 우리 경제의 근간이 화석에너지에 깊숙이 중독되어 있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는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안정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거의 배출하지 않는 순증 제로(Net Zero)를 달성해야 하고,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5%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속도대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40년경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이 1.5℃에 도달할 수 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그린 뉴딜이다.
▲ 2019년 그린 뉴딜 등장 배경 2018년 IPCC는 1.5도 특별보고서를 통해 1.5도 안정화를 위해서는 2050년까지 순증 제로를 달성할 것을 권고했다. 이후 2019년 기후위기 대응, 불평등 해소, 일자리 창출을 위한 그린 뉴딜이 본격 논의되기 시작했다.
ⓒ 이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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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뉴딜은 탈탄소 사회 대전환 정책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2월 그린 딜을 발표하고 2050년까지 순증 제로를 달성하고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40%에서 50~55%로 상향 조정할 것을 발표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상향 조정에 따른 산업 부문의 부담을 고려해 2021년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탄소국경조정은, EU가 온실가스 배출 규제가 느슨한 국가에서 생산한 상품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 바이든이 2030년 전력생산부문 탄소 배출 제로, 2050년 순증 제로 달성을 공약하고 있다.
서설이 길었다. 문재인 정부의 그린 뉴딜을 평가하려면 기후위기의 양상과 2050년 순증 제로, EU와 미국의 그린 뉴딜과 비교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14일 정부가 한국판 뉴딜의 하나로 그린 뉴딜을 발표했다. 그린 뉴딜로 2025년까지 총 73.4조 원(국고 42.7조 원)을 투자해 65만 9천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2020년 정부가 발표한 그린 뉴딜은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이 추진한 '저탄소 녹색성장'에서 원전과 4대강을 제외한 온실가스 감축 부문에서 한발도 못 나아갔다. 그린 리모델링, 재생 가능 에너지 확대, 전기차·수소차 보급 확대와 같이 프로젝트형 사업의 나열에 그쳤다. 환경부는 그린 뉴딜로 1229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한다고 밝혔는데, 우리나라의 2017년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은 7억1천1백만 톤이다. 2050년 탄소 중립을 목표로 하는 EU와 미국의 그린 뉴딜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의로운 전환'이 빠진 그린 뉴딜
그린 뉴딜이 포괄하지 못하는 기존 정부 정책에서는 온실가스 배출이 늘어난다. 국토부는 7월 6일 총사업비 7800여억 원을 투입해 새만금 신공항 건설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추진 중인 공항 건설 사업은 제주 제2공항, 동남권 공항, 대구·경북 통합 신공항 등 여섯 곳이 넘는다. 삼척·강릉·고성 등 현재 7기의 추가 석탄화력발전소가 건설 중이고 인도네시아 등 해외 석탄발전도 계속 투자한다. 부동산값 급등에 정부는 수도권에 총 13만2천 가구 추가 공급 대책과 함께 태릉골프장을 그린벨트에서 해제하는 계획도 발표했다. 세면대에 물이 흘러넘치는데 수도꼭지 물은 틀어둔 채로 물을 몇 바가지 퍼내는 수준이다.
탈탄소 사회로의 대전환은 명백한 승자와 패자가 있는 영역이다. 석탄발전소를 포함한 기존 내연기관 차량은 질서 있는 빠른 후퇴를 해야 하는 영역이다. 그래서 EU의 그린 뉴딜을 보면 10년간 투자하는 1조 유로 중에서 1000억 유로는 정의로운 전환 기금으로 석탄 발전 산업과 노동자 대책에 투입한다. 전환의 과정에서 누구도 소외되거나 뒤처지지 않도록 하겠다는 포용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도 '공정 전환'을 표방하고 있으나 내용은 석탄발전 지역에 재생 가능 에너지 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 정도라면 굳이 '뉴딜'이라고 명명하지 말고 녹색 경기부양책 정도로 발표하는 것이 맞았다. 뉴딜이라는 용어를 쓰는 순간 정책에 대한 기대치가 한껏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한국판 뉴딜에 발표한 자료에도 1930년대 미국의 '뉴딜'을 사회적 합의(Deal)에 기반, 구제(Relief), 회복(Recovery), 개혁(Reform)에 중점을 두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어서 "경기 회복뿐 아니라 자유방임주의 종언, 독점자본주의 모순 시정, 미국 복지제도의 토대 형성 등 철학·이념·제도의 대전환에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 맥락으로 이해한다면 그린 뉴딜은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과 기후위기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온실가스 감축을 최우선으로 두고 일자리 창출과 사회불평등 해소를 추구하는 개혁 정책이어야 했다. 농업·생물다양성·폐기물·오염물질 관리 부문이 빠졌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회 전 영역을 아우르는 대책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린 뉴딜을 뉴딜답게 재구성하자
▲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그린 뉴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그린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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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그린 뉴딜을 그린 뉴딜답게 만들어가야 한다. 한국판 뉴딜에서 디지털 뉴딜만 논의되던 것에 그린 뉴딜을 추가한 것도 문재인 대통령의 의지였다. 어찌 보면 한국 사회에서 기후위기 '따위는' 관심조차 없었던 것이 '그린 뉴딜'로 지금이라도 논의 테이블 위에 오른 것이 다행인지도 모른다.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 목표로 설정하고, 한국의 경제·사회·교육·문화 정책 전반을 모두 뜯어고치는 전환을 준비해야 한다.
먼저 그린 뉴딜에서 사회적 합의(Deal)를 만들어내야 한다. 2015년 파리기후협정 합의에 따라 2030년까지의 기후변화 대응 기여방안(NDC)과 2050년까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담은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2020년 12월까지 UN에 제출해야 한다. 정부가 "장차 순증 제로 사회를 지향한다"고 밝혔던 그린 뉴딜의 목표 시점을 2050년으로 설정하는가는 남은 4개월의 논의에 달려있다.
기후위기가 심화함에 따라 시간이 갈수록 국제사회의 온실가스 감축 규제는 강해질 수밖에 없는데, 우리나라의 에너지 다소비 구조의 산업을 하루빨리 전환해야 좌초자산을 줄일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현재 2030년 감축 목표가 2017년 대비 24.4% 감축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를 상향조정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의가 필요하다. (* 좌초자산(stranded asset)이란, 시장이나 사회 환경의 급격한 변화로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자산을 말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탈탄소 경제사회로의 태세 전환은 전방위적인 기후위기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진행되어야 가능하다. 이 정부 남은 임기 동안 전 국민이 파리협정과 순증 제로, 기후위기 대응에 대해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에 집중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탈탄소 사회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정책을 만드는 공무원이 1순위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2050년 순증 제로 목표를 제안하고 이를 국회에서 준비 중인 그린 뉴딜 기본법에 담아야 한다. 그린 뉴딜 기본법에 정부 모든 부처의 정책과 사업에 탄소 예산과 탄소영향평가제를 도입해 감축 목표를 이행·점검·평가하고, 독립적인 위원회를 통해 실행을 강제하는 내용을 담을 필요가 있다.
탄소 배출 제로를 달성하기 위한 '포괄적 계획', 즉 온실가스 감축을 중심으로 한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단순 수소·전기차 보급 대수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수송 부문 전반의 탈탄소화를 위한 정책과 실행 계획을 만들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정책과 제도, 탈석탄, 탈내연기관 시점 설정과 관련 제도 마련에 대해서도 법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의로운 전환 법제화와 기금마련도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
그린 뉴딜의 기반을 닦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100대 국정과제인 산업용 경부하 요금(심야 요금) 차등 조정(2018년), 단계적 요금 현실화를 위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 로드맵' 마련(2019년)을 완료하는 것이다. 전력생산에서 석탄이 초래하는 환경비용을 전기요금에 반영하고 에너지 전환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논의는 아직도 답보 상태다.
2000년 대비 한국의 전력소비는 2배 가까이 증가했는데 이는 낮은 전기요금과 연결돼 있다. 제조업이 사용하는 에너지원에서 전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4년 33%에서 2016년 49%로 급증했다. 값싼 전기요금으로 전력화가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전력을 열로 사용하는 비효율만 제거해도 온실가스를 상당량 줄일 수 있다. 에너지전환은 에너지 가격체계, 세제, 시장제도의 개편이 같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정부에서도 지지부진하다.
반기문 국가기후환경회의 위원장은 최근 강연에서 "석탄 발전 감축과 에너지 믹스 개선, 전기요금 체계 합리화, 친환경차 전환, 자동차 연료가격 조정" 등 중장기 미세먼지 저감 대책을 정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국가기후환경회의는 9월에 전력요금과 에너지 세금 제도 개편에 대해 국민정책참여단을 통해 공론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가기후환경회의가 도출하는 중장기 대책은 그린 뉴딜과 바로 연결되어 있다.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우려는 지금까지 값싼 전력공급 정책이 초래한 비효율과 문제점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제공과 토론을 통해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EU는 그린 딜을 통해 경제 사회 정책 전반에 탈탄소를 목표로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EU의 관련 규제와 지원정책을 모니터링하고 탄소국경조정을 어떻게 설계하는지를 살펴보면서 국내 산업과 경제에 미칠 영향을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탄소 순 수출국으로 분류되어서 국내 기업들도 온실가스를 줄이는 경영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기후재난이 발생하면 사회적 약자, 농민, 저지대 주민 등 특정 계층에 피해가 집중된다. 화석 에너지에 기반을 둔 우리의 경제 체제를 완전히 전환하지 않는 한 기후위기는 더 강력하게 우리 삶의 토대를 파괴하게 된다. 이 폭우와 홍수의 끝에서 우리 사회는 기후위기에 대응해 경제 사회 시스템을 통째로 바꾸는 대전환을 그린 뉴딜로 시작해야만 한다.
문재인 정부가 탈탄소 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하고, 노동자·농민·청소년·시민사회·지자체는 개입해야 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절체절명의 생존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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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은 비판, 그리고 결국엔 제대로 가도록 만드는 것이 <그린 뉴딜>에 대한 나의 자세이다.
온실가스 배출을 하는 사회로 직진하면서 - 차만 녹색으로 칠하는 거 말고,
탈탄소 사회로 확 유턴을 해서 가도록 만들고 싶다.
그래서 공무원도 만나고, 시민도 만나고, 강의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고 있다.
정말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한다.
쓰면서 많이 괴로웠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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