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関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真実を知ろう(荒川区議・小坂英二氏の投稿)
時宜にかなった投稿をシェアします。単行本では、工藤美代子『関東大震災「朝鮮人虐殺」の真実』(2009年)が真相に迫っています。
◆荒川区議 小坂英二氏の投稿
「関東大震災時に乗じて朝鮮人が井戸に毒を入れようとした」という話が流言飛語の代名詞として使われることすらありますが、「流言」ではなく「事実」であったことを日本人は知らねばなりません。
9月1日の大震災発災から数日間の間に自警団等から朝鮮人が殺傷された事案が有りました。二百数十件が起訴されています。
朝鮮人を巡る「事実でない情報」が広がったのが大きな原因とされています。
当時流された朝鮮人の震災下での凶悪犯罪やテロ活動の話。それは嘘や伝聞での拡張も含まれていましたが、実は真実が多数有りました。
朝鮮人を殺傷する事案が相次いでいたため、政府は9月5日、そうした対応を強く批判し、止めるように国民に呼びかけています。そして朝鮮人の犯罪やテロ活動の話についても、混乱を加速させないようにとのことで報道も禁止し、収束を図ろうとしました。
震災から1週間程度で殺傷事件は収まりました。
そしてその後に殺傷事件について二百数十件が起訴されています。
そうした経緯が有りながらも、いつまでも朝鮮人の犯罪についての報道を禁止するわけにもいかず、震災から50日が経過した10月21日に司法省が事実を整理した上で朝鮮人の犯罪について精査された情報を公開し、翌日、各新聞社が報道をしています。
k その報道の一端がリンク先になります。神戸大学附属図書館の新聞記事デジタルアーカイブです。
大震災発災直後の9月初旬の新聞記事には真偽両方が含まれた朝鮮人の犯罪について書かれたものが有りましたが、この10月20日の発表を受けた新聞記事は政府が報道禁止などの冷却や調査の時間を確保した上で出されたもので精度が違います。
その10月20日発表の記事中に以下、有ります。
「飲料水へ毒 あべこべに飲まされて悶死
九月三日午前九時頃本所菊川町十字路附近自称李王源
毒薬亜秕酸七八匁を懐中し本所区徳右衛門町菊川町方面焼跡残存者が唯一の飲料水供給所たる菊川町の水道消防栓附近を徘徊中群衆に捕われたが、亜秕酸を食塩と強弁し強いて嚥下せしめられて忽ち悶死した」
つまり水源近くで毒を持っていた不審者が、問い詰められて「これは塩だ」と強弁したので、本人に飲ませると毒物であり死亡したとのことです。
繰り返し書きますが、朝鮮人犯罪の真偽織り交ぜた伝聞の記事等を全て禁止してから45日程度経過して、調査や精査をした上で司法省が発表した内容です。
当然、その現場近くにいた人々が口伝えで「朝鮮人が水源近くで毒物を入れようとしていた」ことは広まり、そうした攻撃から地域を守ろうと自警団が目を光らせることになるのは当然の自衛だと思います。
リンク先の記事を見ていただいてわかる通り、他にも強姦、略奪、殺人等が精査された上で発表された内容が多数明記されています。
この事実は踏まえておかねばなりません。
震災の数日前に朝鮮人が爆発物を多量に集め、テロを画策していた件で確保された事案も有ります。
震災直後の9月3日に逮捕された朝鮮人の朴烈は天皇暗殺を企てていました。
また、震災から4か月程度経過した12月27日には共産主義者による摂政東宮殿下(後の昭和天皇)を銃撃する事件も発生しています。
当時の社会状況は共産主義という国体をテロで破壊しようとする勢力の跳梁跋扈、朝鮮人テロリストがそれに連帯して様々な破壊工作や犯罪を震災の有無に関わらず行っていたという状況でした。
国民が強い危機感を持つ状況です。
震災直後、警察や軍も被災し、国民は自らの身を自らで守らねばならない事態が発生していました。
それを踏まえた上で、有ってはならない「真に無実で朝鮮人が殺傷された事件」が発生したという歴史的事実を踏まえねば、先人をいたずらに貶め、朝鮮や中国といった歴史戦での利得を求める勢力の思うつぼになってしまいます。
明後日の9月1日で関東大震災から100年。無念にも命を落とされた全ての方々のご冥福を心からお祈りし、当時の教訓を今に引き継いでいかねばと思います。
See translation
All reactions:
64641 comment
11 shares
Like
Share
1 comment
- Mitsunobu Amazaki終戦後の朝鮮半島での強姦虐殺の真実を
- Like
==
===
자료
関東一帯を騒がした鮮人暴動の正体はこれ : 放火殺人暴行掠奪につぎ橋梁破壊も企てた不逞団 : (記事差止め昨日解除)
日付
1923-10-22
権利
本資料の2次利用には事前の申請が必要です
This collections need you to make an application to reuse images
URL
https://hdl.handle.net/20.500.14094/0100285019
翻刻
九月一日の震災後東京始め関東一帯の人を騒がせた流言蜚語の為めに遂に内鮮人にして殺害されるもの算無く、是が流言の出所に就いては尚お闡明されて居ないが、一部の不逞鮮人が混乱裏に左の如く有ゆる犯行を逞うした事で、司法当局は爾来極力是が犯罪検挙に努めた結果昨二十日一先ず取調べを終り、同時に記事差止めを解除した既に起訴されたもの十数件、此外治安警察法違犯、窃盗、横領等により起訴した鮮人二十三名、放火、毒薬投入、爆弾携帯、掠奪、婦人に対する暴行その他の事件につき、東京横浜に於て捜査中のもの亦少くない
掠奪
九月二日午後六時頃本所区中の郷附近 鄭 塋
住所氏名不詳の罹災者より数回に衣類諸道具類を掠奪し吾嬬町清地方面へ運搬の途中押えられた
放火
九月一日午後八時過日本橋北鞘町にて 氏名不詳鮮人一石橋際大谷倉庫に放火した
婦人に暴行
九月二日午後十一時過ぎ本所柳島元町金孫順
避難中の氏名不詳の一内地婦人に暴行を加えんとして遂げず、衣類高十点を強奪し亀戸署に拘禁されたが、同署類焼に瀕しななめ二日解放され行方不明
三十名の一団 柳島の呉服屋で掠奪
九月一日午後十一時過本所区柳島姜金山外三十名位の一団
柳島元町一六九呉服商中里奥三方に乱入し、店員に暴行を加え各一抱の呉服類を強奪した、犯人中姜金山は亀戸署に拘禁されたが、類焼に瀕して解放され行方不明
掠奪
九月一日午後六時より十一時本所区押上町一六五呉服商牧野弥八方、柳島元町洋品店鹿取孝次郎方同洋食店安田組二方、同一六九村上与三方、氏名不詳鮮人、十六六名金品を掠奪し酒食を貪る日本刀、棍棒等を以て襲撃し内四名取押えられ、一名は東森下町に放火し金某は日島渡辺倉庫に爆発物を以て放火した
放火爆弾
九月一日夜より三日月島二号地、月島渡辺倉庫の号、深川区東森下町附近汁粉屋自称金某外氏名不詳鮮人四名
兇器をたずさえて五名本所区菊川町方面より月島に入込み短銃を発射し或は放火、掠奪、爆弾放擲
強奪
九月二日午後二時過深川区富川町三五高橋勝治方前道路氏名不詳鮮人三名
高橋勝治を兇器を以て負傷せしめ金銭を強奪せんとして果さず逃走
少女を殺す
九月二日夜南葛飾郡木田町四つ木荒川放水路堤上氏名不詳鮮人四名
避難中の十六七歳の少女に暴行を加え後殺害して死体を荒川放水路に放棄した
棍棒
九月二日午後十時頃南葛飾郡小松川町字新町三九六二四軒長屋裏手氏名不詳鮮人一名
榎本豊吉に棍棒を以て負傷せしめ逃走した
拳銃
九月二日午後九時頃、吾嬬町請地京成電車踏切、崔先卜、金実経
警戒中の在郷軍人団に対し拳銃を発射して逃走した
狙撃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吾嬬町伊藤染工場林松致
震災後白磨六連発の短銃及び実弾数十発を携帯して徘徊し群衆中に数発を発射逃走した
中尉を包囲した三十人の不逞団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南葛飾郡小松川橋第一、第二橋中間堤上氏名不詳鮮人三十名位
軍務をおび通行中の陸軍野戦重砲兵第七連隊第一中隊長代理砲兵中尉高橋克巳のオートバイを包囲し、棍棒を以て危害を加えんとしたが中尉はすきを見て脱出した
抜刀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小松川町荒川放水路堤上氏名不詳鮮人一名
抜刀を携え自警団員を装い罹災民の隙を窺う中、取押えられ後逃走す
流言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吾嬬町大字木下一八一道路氏名不詳鮮人一名
海嘯来るを連呼して疾走し、民心を攪乱し取押えられたが逃走したす
暴行
九月二日夜吾嬬町氏名不詳鮮人一名
氏名不詳の内地婦人に暴行を加えた
橋梁破壊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南葛飾郡瑞江村下江戸川橋氏名不詳鮮人
下江戸川橋を破壊せんとして鉄棒を持って同橋橋柱を破壊中、警備中の騎兵に発見されて射殺された
飲料水へ毒 あべこべに飲まされて悶死
九月三日午前九時頃本所菊川町十字路附近自称李王源
毒薬亜秕酸七八匁を懐中し本所区徳右衛門町菊川町方面焼跡残存者が唯一の飲料水供給所たる菊川町の水道消防栓附近を徘徊中群衆に捕われたが、亜秕酸を食塩と強弁し強いて嚥下せしめられて忽ち悶死した
爆弾
九月二日午後八時頃荒川放水路本田橋際堤上呉河模
ダイナマイト十一箇雷管十五個導火線五本を所持し本田橋際堤上取押えられた
殺人
九月三日早朝南葛飾郡砂町小学校脇蓮田附近氏名不詳鮮人
挙動不審で内地人に誰何され突如隠し持ったピストルで同人を狙撃して殺害し、続いて同町附近通行中の内地人を狙撃し擦過傷を負わせて逃走した
歩兵に抵抗
九月三日午前六時頃日本橋区両国橋西袂氏名不詳鮮人
一隊陸衛歩兵第軍連に歩兵二等卒浦谷善次の両国附近巡察中に対し、鉄棒を以て抵抗し爆弾を取出し投げつけんとしたので射殺された
いたずら
九月三日午前二時頃吾嬬町請地東武鉄道線路上氏名不詳鮮人一名線路上に眠っている避難者の枕辺に水を注ぎ海嘯海嘯と連呼したため一大混乱を惹起した
[補注:切り抜き帳「災害」第3巻に以下のまえがきあり。なお紙名についても混乱があると思われる。
震災当時関東地方諸新聞は暫く休刊し発刊に際
しても交通機関の故障より或は延着し或は未着
に終るもあり記事の採択に努めしも震災記事、
復興記事、経済界への影響等分類的に貼付し得
ず、記事の日附、順序配列等の上にも遺憾少か
らざれど事情推察の上通覧あらんことを。]
ロゴ
IIIF マニフェスト
https://da.lib.kobe-u.ac.jp/files/manifest/1/20000/0100285019.json
자료
関東一帯を騒がした鮮人暴動の正体はこれ : 放火殺人暴行掠奪につぎ橋梁破壊も企てた不逞団 : (記事差止め昨日解除)
日付
1923-10-22
権利
本資料の2次利用には事前の申請が必要です
This collections need you to make an application to reuse images
URL
https://hdl.handle.net/20.500.14094/0100285019
翻刻
九月一日の震災後東京始め関東一帯の人を騒がせた流言蜚語の為めに遂に内鮮人にして殺害されるもの算無く、是が流言の出所に就いては尚お闡明されて居ないが、一部の不逞鮮人が混乱裏に左の如く有ゆる犯行を逞うした事で、司法当局は爾来極力是が犯罪検挙に努めた結果昨二十日一先ず取調べを終り、同時に記事差止めを解除した既に起訴されたもの十数件、此外治安警察法違犯、窃盗、横領等により起訴した鮮人二十三名、放火、毒薬投入、爆弾携帯、掠奪、婦人に対する暴行その他の事件につき、東京横浜に於て捜査中のもの亦少くない
掠奪
九月二日午後六時頃本所区中の郷附近 鄭 塋
住所氏名不詳の罹災者より数回に衣類諸道具類を掠奪し吾嬬町清地方面へ運搬の途中押えられた
放火
九月一日午後八時過日本橋北鞘町にて 氏名不詳鮮人一石橋際大谷倉庫に放火した
婦人に暴行
九月二日午後十一時過ぎ本所柳島元町金孫順
避難中の氏名不詳の一内地婦人に暴行を加えんとして遂げず、衣類高十点を強奪し亀戸署に拘禁されたが、同署類焼に瀕しななめ二日解放され行方不明
三十名の一団 柳島の呉服屋で掠奪
九月一日午後十一時過本所区柳島姜金山外三十名位の一団
柳島元町一六九呉服商中里奥三方に乱入し、店員に暴行を加え各一抱の呉服類を強奪した、犯人中姜金山は亀戸署に拘禁されたが、類焼に瀕して解放され行方不明
掠奪
九月一日午後六時より十一時本所区押上町一六五呉服商牧野弥八方、柳島元町洋品店鹿取孝次郎方同洋食店安田組二方、同一六九村上与三方、氏名不詳鮮人、十六六名金品を掠奪し酒食を貪る日本刀、棍棒等を以て襲撃し内四名取押えられ、一名は東森下町に放火し金某は日島渡辺倉庫に爆発物を以て放火した
放火爆弾
九月一日夜より三日月島二号地、月島渡辺倉庫の号、深川区東森下町附近汁粉屋自称金某外氏名不詳鮮人四名
兇器をたずさえて五名本所区菊川町方面より月島に入込み短銃を発射し或は放火、掠奪、爆弾放擲
強奪
九月二日午後二時過深川区富川町三五高橋勝治方前道路氏名不詳鮮人三名
高橋勝治を兇器を以て負傷せしめ金銭を強奪せんとして果さず逃走
少女を殺す
九月二日夜南葛飾郡木田町四つ木荒川放水路堤上氏名不詳鮮人四名
避難中の十六七歳の少女に暴行を加え後殺害して死体を荒川放水路に放棄した
棍棒
九月二日午後十時頃南葛飾郡小松川町字新町三九六二四軒長屋裏手氏名不詳鮮人一名
榎本豊吉に棍棒を以て負傷せしめ逃走した
拳銃
九月二日午後九時頃、吾嬬町請地京成電車踏切、崔先卜、金実経
警戒中の在郷軍人団に対し拳銃を発射して逃走した
狙撃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吾嬬町伊藤染工場林松致
震災後白磨六連発の短銃及び実弾数十発を携帯して徘徊し群衆中に数発を発射逃走した
中尉を包囲した三十人の不逞団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南葛飾郡小松川橋第一、第二橋中間堤上氏名不詳鮮人三十名位
軍務をおび通行中の陸軍野戦重砲兵第七連隊第一中隊長代理砲兵中尉高橋克巳のオートバイを包囲し、棍棒を以て危害を加えんとしたが中尉はすきを見て脱出した
抜刀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小松川町荒川放水路堤上氏名不詳鮮人一名
抜刀を携え自警団員を装い罹災民の隙を窺う中、取押えられ後逃走す
流言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吾嬬町大字木下一八一道路氏名不詳鮮人一名
海嘯来るを連呼して疾走し、民心を攪乱し取押えられたが逃走したす
暴行
九月二日夜吾嬬町氏名不詳鮮人一名
氏名不詳の内地婦人に暴行を加えた
橋梁破壊
九月二日午後十一時頃南葛飾郡瑞江村下江戸川橋氏名不詳鮮人
下江戸川橋を破壊せんとして鉄棒を持って同橋橋柱を破壊中、警備中の騎兵に発見されて射殺された
飲料水へ毒 あべこべに飲まされて悶死
九月三日午前九時頃本所菊川町十字路附近自称李王源
毒薬亜秕酸七八匁を懐中し本所区徳右衛門町菊川町方面焼跡残存者が唯一の飲料水供給所たる菊川町の水道消防栓附近を徘徊中群衆に捕われたが、亜秕酸を食塩と強弁し強いて嚥下せしめられて忽ち悶死した
爆弾
九月二日午後八時頃荒川放水路本田橋際堤上呉河模
ダイナマイト十一箇雷管十五個導火線五本を所持し本田橋際堤上取押えられた
殺人
九月三日早朝南葛飾郡砂町小学校脇蓮田附近氏名不詳鮮人
挙動不審で内地人に誰何され突如隠し持ったピストルで同人を狙撃して殺害し、続いて同町附近通行中の内地人を狙撃し擦過傷を負わせて逃走した
歩兵に抵抗
九月三日午前六時頃日本橋区両国橋西袂氏名不詳鮮人
一隊陸衛歩兵第軍連に歩兵二等卒浦谷善次の両国附近巡察中に対し、鉄棒を以て抵抗し爆弾を取出し投げつけんとしたので射殺された
いたずら
九月三日午前二時頃吾嬬町請地東武鉄道線路上氏名不詳鮮人一名線路上に眠っている避難者の枕辺に水を注ぎ海嘯海嘯と連呼したため一大混乱を惹起した
[補注:切り抜き帳「災害」第3巻に以下のまえがきあり。なお紙名についても混乱があると思われる。
震災当時関東地方諸新聞は暫く休刊し発刊に際
しても交通機関の故障より或は延着し或は未着
に終るもあり記事の採択に努めしも震災記事、
復興記事、経済界への影響等分類的に貼付し得
ず、記事の日附、順序配列等の上にも遺憾少か
らざれど事情推察の上通覧あらんことを。]
ロゴ
IIIF マニフェスト
https://da.lib.kobe-u.ac.jp/files/manifest/1/20000/0100285019.json
===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알자(아라카와구 의·코사카 에이지씨의 투고)... - 노부카츠 후지오카 |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알자(아라카와구 의·코사카 에이지씨의 투고)... - 노부카츠 후지오카 |
노부카츠 후지오카
tsSroepdno
·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알자(아라카와구 의·코사카 에이지씨의 투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소식을 공유합니다. 단행본에서는 쿠도 미요코 '칸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2009년)이 진상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
◆아라카와구의 코사카 히데지씨의 투고
「관동 대지진시에 승리해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으려고 했다」라는 이야기가 유언 비어의 대명사로서 사용되는 일조차 있습니다만, 「유언」이 아니라 「사실」이었던 것을 일본인은 알 해야합니다.
9월 1일의 대지진발재로부터 며칠간의 사이에 자경단등으로부터 조선인이 살상된 사안이 있었습니다. 2백 수십 건이 기소되었습니다.
조선인을 둘러싼 '사실이 아닌 정보'가 퍼진 것이 큰 원인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당시 흘렀던 조선인의 지진 재해에서의 흉악 범죄나 테러 활동의 이야기. 거짓말이나 전문에서의 확장도 포함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진실이 다수 있었습니다.
조선인을 살상하는 사안이 잇따라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9월 5일, 그러한 대응을 강하게 비판해, 멈추도록(듯이) 국민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인의 범죄나 테러활동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혼란을 가속시키지 않게 하는 것으로 보도도 금지하고 수렴을 도모하려고 했습니다.
지진 재해로부터 1주일 정도로 살상 사건은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살상 사건에 대해 2백 수십 건이 기소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경위가 있으면서도, 언제까지나 조선인의 범죄에 대한 보도를 금지하는 것에도 불구하고, 지진 재해로부터 50일이 경과한 10월 21일에 사법성이 사실을 정리한 후에 조선인의 범죄에 대해서 정밀한 정보를 공개하고 다음날 각 신문사가 보도를 하고 있습니다.
k 그 보도의 일단이 링크처가 됩니다. 고베 대학 부속 도서관의 신문 기사 디지털 아카이브입니다.
대지진 발재 직후인 9월 초순 신문 기사에는 진위 양쪽이 포함된 조선인의 범죄에 대해 쓰여진 것이 있었습니다만, 이 10월 20일의 발표를 받은 신문 기사는 정부가 보도 금지 등의 냉각이나 조사의 시간을 확보한 후에 내놓은 것으로 정밀도가 다릅니다.
그 10월 20일 발표의 기사 중에 이하, 있습니다.
"음료수에 독
9월 3일 오전 9시경 본소 기쿠가와초 십자로 부근 자칭 이왕원
독약 아키마산 시치하치안을 회중해 본소구 도쿠에몬초 기쿠가와초 방면 소적 잔존자가 유일한 음료수 공급소인 키쿠가와초의 수도 소방전 부근을 배회중 군중에 잡혔지만, 아마산 를 식염과 강변하고 강하고 삼키게 해서 흠뻑 기사했다”
즉 수원 가까이에서 독을 가지고 있던 수상한 사람이, 물어 '이것은 소금이다'라고 강변했기 때문에, 본인에게 마시게 하면 독물이며 사망했다는 것입니다.
반복해서 씁니다만, 조선인 범죄의 진위 직조한 전문의 기사등을 모두 금지하고 나서 45일 정도 경과해, 조사나 정사를 한 다음에 사법성이 발표한 내용입니다.
당연히 그 현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구두로 "조선인이 수원 가까이에서 독물을 넣으려고했다"는 것은 퍼지고, 그러한 공격으로부터 지역을 지키려고 자경단이 눈을 빛내게 되는 것은 당연한 자위 라고 생각합니다.
링크처의 기사를 봐 주시고 아시는 바와 같이, 그 밖에도 강간, 약탈, 살인등이 정사된 후에 발표된 내용이 다수 명기되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근거를 두어야합니다.
지진 재해 며칠 전에 조선인이 폭발물을 다량으로 모아 테러를 획책하고 있던 건으로 확보된 사안도 있습니다.
지진 재해 직후인 9월 3일에 체포된 조선인의 박열은 천황암살을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또, 지진 재해로부터 4개월 정도 경과한 12월 27일에는 공산주의자에 의한 섭정 동궁 전하(후의 쇼와 천황)를 총격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상황은 공산주의라는 국체를 테러로 파괴하려는 세력의 도양 철도, 조선인 테러리스트가 거기에 연대해 다양한 파괴 공작이나 범죄를 지진 재해의 유무에 관계없이 가고 있었다는 상황이었습니다 .
국민이 강한 위기감을 가진 상황입니다.
지진 재해 직후, 경찰이나 군도 피해해, 국민은 스스로의 몸을 스스로 지켜야 하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근거로 한 후에, 있어서는 안 되는 '참으로 무고하고 조선인이 살상당한 사건'이 발생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하면, 선인을 장난스럽게 포기하고 조선이나 중국과 같은 역사전에서 의 이득을 요구하는 세력이 생각하는 화병이 되어 버립니다.
명후일의 9월 1일에 관동 대지진으로부터 100년. 불행히도 목숨을 잃은 모든 분들의 명복을 진심으로 기원하고 당시의 교훈을 지금에 계승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신문 기사 문고
DA.LIB.KOBE-U.AC.JP
신문 기사 문고
1 comment
미츠노부 아마사키
종전 후 한반도에서 강간 학살의 진실을
==
===
자료 관동 일대 를 시끄럽게 한 선인 폭동 의 정체
메타데이터 ID
0100285019
제목
관동 일대를 떠들썩한 선인폭동의 정체는 이 :
신문명
도쿄 시사 신보
시사신보
절발장
22. 사회
13. 재해 및 재해 예방
권
제4권
기사 번호
300
출판일
1923-10-22
는 이것 에는 사전 신청이 필요합니다.This collections need you to make an application to reuse images URL 소란을 일으킨 유언 蜚語을 위해 마침내 내선인으로 하여 살해되는 것 산 없고, 꼭 유언의 출처에 가서는 상후명되어 있지 않지만, 일부의 불명선인이 혼란에 왼쪽 유유한 범행을 거듭한 것으로 사법당국은 후래극력시가 범죄검거에 노력한 결과 지난 20일 먼저 조사를 마치고 동시에 기사 금지를 해제한 이미 기소된 것 10여 건, 외외치안 경찰법 위범, 도둑질, 횡령 등에 의해 기소한 선인 23명, 방화, 독약 투입, 폭탄 휴대폰, 탈탈, 부인에 대한 폭행 그 외의 사건에 대해서, 도쿄 요코하마에 있어서 수사중의 것 덜 적은 탈탈 9 월 2일 오후 6시경 본소구 중의 향부근 정정 몇번에 의류제도구류를 빼앗아 고교마치 청지방면으로 운반의 도중 밀린 방화 9월 1일 오후 야치시과 니혼바시 기타초초에서 이름 불상선인 이시이시바시 때 오타니 창고에 방화한 부인에게 폭행 9월 2일 오후 11시 지나 본소
피난 중인 이름 불상한 일내지부인에게 폭행을 가하지 않고 이루지 못하고, 의류 고십점을 강탈해 카메이도서에 구금되었지만, 동서류구이에 흠뻑 빠져 이틀 해방되어 행방불명 30명의
일단 야나기시마의
오후쿠야에서 구탈 9월 1일 오후 11시 과본소구 야나기시마 강 가나야마 외 30명위의 일단 야나기시마 모토마치 169오옷 상 나카사토 오쿠 삼방에 난입해,
점원에게 폭행을 가해 각 일포 의 오복류를 강탈 한, 범인 중강 가네야마는 카메이도서에 구금되었지만, 류야키에 처해 해방되어 행방 불명
낙탈
쇼마키 노야 하치카타, 야나기시마 모토마치 양품점 가토리 토리 고지로 쪽 동양식점 야스다조 2방, 동일 69촌 상여 3방, 이름 불상선인, 166명 금품을 빼앗아 주식을 탐하는 일본도, 곤봉 등을 습격 시내 4명을 잡을 수 있어 한 명은 히가시모리시타마치에 방화해 김모는 히지마 와타나베 창고에 폭발물로 방화한 방화
폭탄
시모마치 부근즙 가루야 자칭 김모 외 성명 불상선인 4명 터를
묻어 오명 본소구 기쿠가와마치 방면에서 쓰키시마에 들어가 단총을 발사 혹은 방화, 구탈, 폭탄 방척 강탈 9월 2일 오후
2
시 과심천구 부천초 미오타카하시 가쓰지방 앞 도로 이름 불상선인 삼명 다카하시 가쓰지를 토기로 부상을 입히고 금전을 강탈하지 못하고 도주
소녀를 죽이는
9
월 2일 밤 남 카츠시카군 기다마치 요츠키 아라카와 방수로 제방 이름 불상선인 4명
피난 중의 167세의 소녀에 폭행을 가한 후 살해해 시체를 아라카와 방수로에 포기한 棍棒 9월 2일 오후 10시경 미나미카츠시카군 고마쓰카와초 아자
마치
3962 4채 나가야 뒷편 이름 불상선인 한 명
에노모토 토요요시에 동봉을 갚아서 부상을 당해 도주했다
권총
9월 2일 오후 9시경, 고교마치 청지 게이세이 전철 건널목, 최선전, 김실경 경계중인 재향
군 인단에 권총을 발사해 도주한 저격
9
월 2일 오후 11시 무렵 아가미마치 이토 염공장 하야시
마츠치 지진 재해 후 하쿠마 6연발의 단총 및 실탄 수십발을 휴대해 배회해 군중중에 수발을 발사 도주한 중위를 포위한 30명의 불세단
9
월 2일 오후 11시경, 미나미카츠시카군 고마쓰카와바시 제1, 제2교 중간 제방 상 이름 불상선인 30명위 군무를 건너 통행중의 육군 야전 중포병 제7연대 제1중대장 대리 포병 중위
다카하시 카츠미의 오토바이를 포위해, 봉봉으로 해를 끼치려고 했지만 중위는 스키를 보고 탈출한 발도 9월 2일 오후 11시경 고마쓰카와마치 아라카와 방수로 제방 상명 불상선인 한 명 발도를
들고
자경단
원 의상을 입은 이재민의 틈을 엿보는 가운데, 잡히고 나서
도주
하는
유언 혼란스럽게 잡혔지만 도주한
폭행
9월 2일 밤 고교마치 성명 불상한 사람 일명 성명
미상한 내지부인에 폭행을 가한
교량 파괴
9월 2일 오후 11시쯤 남 카츠시카군 미즈에무라 시모에도가와 다리 이름 불분명한 사람
시모에도가와 다리를 파괴하지 않고 철봉을 가지고 동교교를 파괴중, 경비중의 기병에 발견되어 사살된 식수에 독 아베코베에 마셔져 기사 9월 3일
오전
9 때때로 본소 기쿠가와초 십자로 부근 자칭 이왕원
독약 아마산 칠칠암을 회중해 본소구 도쿠에몬초 기쿠가와초 방면 소적 잔존자가 유일한 음료수 공급소인 키쿠가와초의 수도 소방전 부근을 배회중 군중에 잡혔지만, 아마산 을 식염과 강변해 강하고 삼키게 해 굳어져 기사한
폭탄
9월 2일 오후 8시경 아라카와 방수로 혼다 다리 때 제방 가미 오가모 다이너마이트
11개 뇌관 15개 도화선 5개를 소지해 혼다 하시 츠츠미 가미 잡은
살인
9 월 3 일 이른 아침 미나미 카츠 시카 군 모래 마치 초등학교 와키 렌타 타츠키 씨 이름 불상한 사람 거동 의심으로 내지인에게 누구 무엇이 되어 갑자기 숨겨둔 권총으로 동인을 저격해 살해해, 이어서 동정
부근 통행중의 내지인을 저격해 찰과상을 입혀 도주한
보병
에
저항 다음 양국 부근 순찰중에 대해, 철봉을 해서 저항해 폭탄을 꺼내 던져 버렸기 때문에 사살당한 장난 9월 3일 오전 2시경 아가미마치 청지 도부 철도 선로상 이름 불상선인 일명 선로상에
잠
들었다 하고 있는 피난자의 베개변에 물을 쏟아 해해 해라고 연호했기 때문에 일대 혼란을 야기했다[보주:자르기 책 “재해” 제3권에 이하의 서두 있어
. 덧붙여 종이명에 대해서도 혼란이 있다고 생각된다.
지진 재해 당시 관동 지방 제 신문은 잠시 휴간하고 발간
시 교통기관의 고장보다 혹은
연착 혹은 미착에 끝나기도 하고 기사의 채택에 노력해도 지진 재해 기사,
부흥 기사, 경제계 에의 영향등 분류적으로 붙일
수 없고 , 기사의 날 부, 순서 배열등 위에도
유감소로부터 굳이 사정 추찰의 상통람 아님을. ]
로고
IIIF 매니페스트
https://da.lib.kobe-u.ac.jp/files/manifest/1/20000/0100285019.json
====
===
4점모든 이미지 보기
저자를 팔로우
쿠도 미요코
팔로우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 단행본 – 2009/12/2
쿠도 미요코 (지은이)
3.3 5성급 중 3.3 54개의 평가
모든 형식과 버전 보기
단행본
¥3,629 부터
¥3,672 보다 5 중고품¥3,629 보다 2 컬렉터 상품
잡지 「SAPIO」에 1년에 걸쳐 연재된 주목작 화제작
·문제작을 차례차례로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 쿠도 미요코가, 철저한 역사 고증을 통해, 「그 정설」에 정면으로 도전해, 새로운 한일 관계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장대한 역사 논픽션.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파헤친다.
내용(「BOOK」데이터베이스에서)
저것은 정말로 '학살'이었는가? 그들의 노리는 황태자였다!
저자 약력 ( "BOOK 저자 소개 정보"에서)
쿠도 / 미요코
논픽션 작가. 1950년 도쿄 출생.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카렐 대학에 유학 후, 캐나다의 콜롬비아 칼리지를 졸업. 93년 귀국. 「쿠도 사진관의 쇼와」에서 코단샤 논픽션상 수상(본 데이터는 이 서적이 간행된 당시에 게재되고 있던 것입니다)
등록정보
출판사 : 산케이신문 출판 (2009/12/2)
발매일 2009/12/2
언어 : 일본어
단행본 311 페이지
ISBN-10 : 4819110837
ISBN-13 : 978-4819110839Amazon 판매자 순위: - 98,864 위 책- 99위 메이지·다이쇼 시대
- 1,954위 일본사 일반 책
- 17,960위 논픽션 (책)고객 리뷰:
3.3 5성급 중 3.3 54개의 평가
저자 정보
저자를 팔로우하여 신작 업데이트 및 개선된 추천을 받으세요.
팔로우
쿠도 미요코
저자의 책을 더 발견하고, 비슷한 저자를 찾고, 저자의 블로그를 읽으십시오.
걱정되는 주제에 대한 리뷰를 읽으십시오.
북한 사람들이 고문하고 죽인다. 독립운동 사회주의 고토 신페이 수정주의 톤데모 요시노 작조 역사 수정 신문 기사 임시정부 한국의 독립 북한 폭동 많은 일본인 테러 행위 당시 신문 선행 연구 신문보도 재판 기록 학살인원 쿠도 미요코
최고 리뷰
상위 리뷰, 대상국가 : 일본
어린이들
5성급 중 3.0 수수께끼.....2023년 8월 13일에 확인됨
본서는 발매 직후에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진 재해 당시의 정보를 알 수 없는 입장이며, 어떻게 판단해도 좋은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때의 한국 정권은 과민하게 반일적이며 무언가에 붙여 사과를 내밀었는데, 본서의 충격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알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일본에는 내무성이 있어 정보는 취하고 있던 것은 당연하고, 문제로 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와의 인상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가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두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파티
5성급 중 3.0 의심 많은2012년 5월 30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先に吉村昭氏の『関東大震災』を読みました。
この中で「全くのデマ」「事実無根」と語られる朝鮮人虐殺について、
あまりにも繰り返し全否定されるのが逆に引っかかってこの本にたどり着きました。
工藤美代子氏は以前から信頼していた方なので、新たな視点を期待して読み進みましたが、
今回は残念ながら検証に「結論ありき」な強引さを感じずにいられませんでした。
この本には吉村氏の本からの引用もあります。
ですから当然吉村氏が考察している朝鮮人暴動説の発端・・・
横浜で発生した、日本人による組織的略奪行為がやがて朝鮮人の集団ではないか、
という憶測から事実であるかのように広がった、という説も読まれているはず。
しかし、実際に逮捕されたこの日本人については一切触れていない。
どちらの書籍にも、憶測と思い込みが見られ、歴史家が持つ冷静な、冷徹な視点が
不足しているように感じました。
朝鮮人虐殺の死者数については明らかに白髪三千丈的誇張があるようですから、
この点をもっと検証した書籍の登場を待ちたいと思います。
もっと少なく読む
105人のお客様がこれが役に立ったと考えています
役に立ったレポート
匿名
5つ星のうち2.0 日本人を守るだけ2023年7月13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日本人を守るためには行動に移らなければならない。黙って殺されるわけにはいかない。
2人のお客様がこれが役に立ったと考えています
役に立ったレポート
日之本太郎
5つ星のうち5.0 歴史を鑑とするには、先ず、正確な事実から2015年11月19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Amazonで購入
☆ 최근 영국의 정보 기관 SIS가 1923년 8월(관동 대지진 직전)에 작성한 정보 보고서가, 한국의 국가 기관으로부터 개시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비밀결사 '의열단' 멤버가 약 2천명, 한 달 전에 청도에서 폭탄 160개를 독일인으로부터 조달했다. 멤버 중 50여명이 도쿄에서 잠복활동 중이었다고 한다. 「의열단」이라고 하면, 한국에 있어서는 조국의 해방 운동을 위한 「자유의 전사」이지만, 당시의 일본에 있어서는, 확실히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조선독립' 때문에 현금강탈에 의한 자금만들기, 밀항한 폭탄운송, 홍콩, 상하이, 도쿄, 오사카 등 각지에서 테러를 계획하고 실시하고 있던 집단이다. 그 멤버가 테러 목적으로 도쿄에 50명이나 잠복하고 있다면, 그들이 대지진에 조우해 실시하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즉, 조선인 동포를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면서 스스로도 테러를 감행하는 것이다. 이 천재 한 모퉁이의 기회를 무위로 보내는 것 같으면, 「자유의 전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상식에 따라 활동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국의 국민이 자경단을 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쿠도씨의 저작의 의도와 의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욕심을 말하면, 당시의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나 「의열단」에 의한 대일 테러 공작의 전모를 먼저 기재해, 또, 관동 대지진시의 조선인에 의한 폭동이나 테러 행위에 대해서, 전문 기록과 직접 목격 기록을 준별해 기재해 주시면, 보다 설득력이 늘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33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콘스탄틴
5성급 중 1.0 저자의 시점에는 의문이 있다.2023년 5월 6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사서 후회하고 있다.
9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케메코 11
5성급 중 5.0 귀중한 책입니다!2014년 8월 5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관동대지진의 생증인이 없는 가운데, 섬세하게 퍼지고 있는 조선인 학살의 이야기.
난징대학살이나 종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사람의 장점과 어른함 때문에 터무니없는 젖은 옷을 입고 있다면 꼭 진실을 많은 일본인이 알아야 합니다
.
모든 일본인에게 읽어 주셨으면합니다.
98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은둔하다
VINE 회원
5성급 중 3.0 일본인이 처음 직면한 제국의 '뒷면'2010년 1월 23일에 확인함
아마존에서 구매
이것도 같은 구도였는가 하는 납득감을 어느 정도 주는 작품입니다. '진실'은 아마 실증 불가능할 것이다. 벌써 90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는 지진이라는 천재입니다. 어디까지가 전문에서 사실인지, 한정적인 평가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곳이겠지요. 저자에 의한 당시의 사회 상황의 재구축은 정중한 작업입니다. 무엇보다 상해에 있어서의 임시 정부의 실력에의 과대 평가, 섭정궁살 계획의 현실성의 평가 등, 당시의 일본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의 실태 등 몇몇도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단지 저자의 몇 가지 결론은 부정하기 어렵다. 조선인에 의한 몇몇 '테러리스트 마가이'의 행동이 산발적으로 지진 재해 직후에 일어나고 있었다. 제한적인 수가 될 것인가?
상상했던 대로였습니다. 몇 가지 요인의 불행한 조합의 원형 싹이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항복 후부터 독립 회복까지의 전후의 구도와 공통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 문맥(대정기)에서 조선인에 대해 일본인이 거기 어딘지 모르게 안고 있던 불안감, 지진이라고 하는 위기 상황에 기인한 국지적인 권력의 진공 상황(정통한 폭력 장치의 소멸)에의 공포, 거기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일부 조선인의 삶의 폭력에 대한 신봉, 이들이 맞물려 놓은 것이 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학자와 평론가의 작업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선입관에 의해 물들여지고 있던 것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입니다. 모든 자료가 사후적인 정치적인 도식에 의해 정리되어 가는 것입니다. massacre of koreans in japan은 다나카 요시이치의 상주문서와 같은, 일본판 「시온의 현인」이라고 하는 곳입니까. 결국, 반도와 관련된 본질적인 위험은 항상 보편적입니다. 이 보편적인 진리에, 일반의 이치의 일본인도 도망칠 수 없는 본토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음 빠진 것이 이 지진 재해였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전쟁입니다. 거기서 「전사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もっと少なく読む
82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Amazon 고객
5성급 중 3.0 상황 증거로부터의 추론과 반·자학 사관과2022년 11월 30일에 확인됨
타이틀에는 「진실」이라고 있지만, 뭐 「가설」로, 증거로 여겨지는 것도 독립 운동가등의 「상황 증거」라고 애매한 전문 정도. 이토 히로부미 암살 정도부터 당시의 세상을 말해(2장), 즉 독립 운동가들(의열단이라든지)이 실은 폭동을 일으켰다고 하기 때문에, 「원래를 질하면 사회주의자와 항일
민족 주의자가 공투하고, 상층부로부터의 지령을 받고, 천재에 승리 생각을 이루려고 한 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피해자는 일본 국민과 대부분의 무관한 조선인 생활자 그랬던 것이다.”(3장)
같은 곳에서 얼마든지 “무관한 조선인 생활자”에 대해서는 동정적이기도 한다.
1,2장은 야마모토 슈고로라든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타니자키 준이치로, 나가이 짐바람의 일기 등 등을 인용해 좀처럼 읽게 되는데, 「자위를 위해서」라고 하는 논리가 서서히 전개되고 있어 3 장 정도부터는 수상한 느낌으로. 사치다 후미나 이부시 고지의 인용도.
「실제로는 조선인에 의한 폭학 행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한 자위의 각오를 가지고 자경단은 일어났다. 거기에, 다소의 오인이나 과잉 방위가 없었다고는 좋다 끊어지지 않는다」(4장)
*
흥미로운 것은 6장의 인원 주위일까. 「독립 신문」의 6409명설, 동포 위문반 조사원의 2607명(요시노 작조설), 등을 근거나 계산이 좋은 가감이라고 비판.
재경하마 지구 조선인 9800명과 추계, 나라시노 수용, 도쿄 시내 경찰서의 보호가 6797명으로, 나머지 3003명. 그 중 살해 인정 233명(사법성 보고), 지진에서의 사망자 1960명, 나머지 800명이 「테러리스트로서 살해된 대략 인원수」라는 추계라고 한다.
여기에서 런던 내셔널 아카이브스 소장의 「조선 독립 운동의 조선인」작성의 자료로 「2만 3059명」이 학살되었다고 하는 「선전전」의 자료를 낸 후,
“여기까지 봐 온 것처럼 “조선인 학살”이라고 하는 것은 초라한 것이 거의 실증되었다고 생각한다.
(중략)
이 2천7백여명 가운데 테러행위를 맡은 조선독립운동가와 그들에게 선동되어 부화뢰동했기 때문에 살해되었다고 생각되는 인원수, 800명 전후가 포함되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것을 「학살」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국민 생활의 안녕을 위기에 노출시키는 테러 행위, 게릴라 부대와 인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즉, 이른바 「학살」은 없었던 것이다」(6장)
와 본서의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
「다소의 오인이나 과잉 방위가 없었다고는 좋다 끊어지지 않는다」 「나마로시인 것이 거의 실증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는 말회에 다소의 괴로움이 나오고 있을까. 800인설이 지진 재해에서의 사망자 수의 견적이 힘들다는 것은 다른 검토자와 비판책의 'TRICK 트릭 '조선인 학살'을 없었다고 하고 싶은 사람들'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곳. 어쩌면 천을 자르는 숫자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233명으로 1033명이지만.
지금의 연구라고 「수천명(≒추계 불가)」이 정설로, 요코바미초 공원 내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의 「6000명」이라고 하는 기재도 미묘한 곳(코이케 유리코 관련으로 여기는 비비다 있을 때). 중앙 방재 회의의 1천~수천명이라는 추계가 타당한가.
*
개인적인 감상으로서 2개.
「학살」의 정의는 어떠하든, 「수백~수천명」의 살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도쿄 근처에 1만명 조선인이 있었다면 수용소에서 보호된 인원수 등 생각하면 2~3000명 정도? 다만 ‘밀항자’가 다수 있었다든가 이 근처는 전제가 바뀌면 숫자는 바뀐다. 원래 관동대지진의 사망자도 10~14만으로 폭이 있다(지금은 10.5만이 정설).
그래서, 「폭동이 있었다」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그래서 정당 방위설도 괴롭다. 원래 상대가 누구라도 자경단의 사형은 법치국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데마에 춤추어진 정의한의 폭주라는 느낌.
2번째의 감상으로서는, 영어판 위키피디아라고 6000-10000명의 추계가 되고 있거나 하지만, 2만 3000명설 등, 「정보전」이라고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곳. 뭐 좌파는 피해자수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역사 수정주의」 「왜소화」라고 비판하지만, 2000명과 6000명, 1000명과 1만명이라고 인상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베트남 반전운동을 하고 있던 오다실이, 실은 KGB로부터 자금원조를 받고 있던 사실이 소련의 문장으로부터 밝혀진 예가 있지만, 코민테른 똥은 1923년의 시점에서는 아직 힘들게 해도, 조선독립 운동가가 일본의 잔학을 강조한다는 목적으로 숫자를 담고 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도덕적 우위성」이라고도 관계하는가.
그래서, 거기에 동조하는 좌파도 「살해」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하는 문언을 고집하는 등(요코하마 시립 중학 부독본), 아무래도 일본인의 「가해」를 강조하려고 강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반대로 우파가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흐름이 90년대 정도부터라고.
무엇이 말하고 싶은가 하면, 정보전이라고 하는 면은 있어, 거기서 반·자학 사관으로서 나온 것이 이 책일까라는 느낌.
뭐 1,2장은 좀처럼 읽었지만, 이미 반자학 사관이 되어 역사 수정주의(넷우요)의 피크는 떠난 감도 있으므로 (완만한 혐한은 남지만), 앞으로 그런 읽히지는 않는다 책일지도.
もっと少なく読む
7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모든 리뷰 보기
===
4점모든 이미지 보기
저자를 팔로우
쿠도 미요코
팔로우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의 진실 단행본 – 2009/12/2
쿠도 미요코 (지은이)
3.3 5성급 중 3.3 54개의 평가
모든 형식과 버전 보기
단행본
¥3,629 부터
¥3,672 보다 5 중고품¥3,629 보다 2 컬렉터 상품
잡지 「SAPIO」에 1년에 걸쳐 연재된 주목작 화제작
·문제작을 차례차례로 세상에 내보내고 있는 쿠도 미요코가, 철저한 역사 고증을 통해, 「그 정설」에 정면으로 도전해, 새로운 한일 관계의 구축을 목표로 하는 장대한 역사 논픽션. 관동대지진에서 '조선인 학살'의 진실을 파헤친다.
내용(「BOOK」데이터베이스에서)
저것은 정말로 '학살'이었는가? 그들의 노리는 황태자였다!
저자 약력 ( "BOOK 저자 소개 정보"에서)
쿠도 / 미요코
논픽션 작가. 1950년 도쿄 출생. 구 체코슬로바키아의 카렐 대학에 유학 후, 캐나다의 콜롬비아 칼리지를 졸업. 93년 귀국. 「쿠도 사진관의 쇼와」에서 코단샤 논픽션상 수상(본 데이터는 이 서적이 간행된 당시에 게재되고 있던 것입니다)
등록정보
출판사 : 산케이신문 출판 (2009/12/2)
발매일 2009/12/2
언어 : 일본어
단행본 311 페이지
ISBN-10 : 4819110837
ISBN-13 : 978-4819110839Amazon 판매자 순위: - 98,864 위 책- 99위 메이지·다이쇼 시대
- 1,954위 일본사 일반 책
- 17,960위 논픽션 (책)고객 리뷰:
3.3 5성급 중 3.3 54개의 평가
저자 정보
저자를 팔로우하여 신작 업데이트 및 개선된 추천을 받으세요.
팔로우
쿠도 미요코
저자의 책을 더 발견하고, 비슷한 저자를 찾고, 저자의 블로그를 읽으십시오.
걱정되는 주제에 대한 리뷰를 읽으십시오.
북한 사람들이 고문하고 죽인다. 독립운동 사회주의 고토 신페이 수정주의 톤데모 요시노 작조 역사 수정 신문 기사 임시정부 한국의 독립 북한 폭동 많은 일본인 테러 행위 당시 신문 선행 연구 신문보도 재판 기록 학살인원 쿠도 미요코
최고 리뷰
상위 리뷰, 대상국가 : 일본
어린이들
5성급 중 3.0 수수께끼.....2023년 8월 13일에 확인됨
본서는 발매 직후에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지진 재해 당시의 정보를 알 수 없는 입장이며, 어떻게 판단해도 좋은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때의 한국 정권은 과민하게 반일적이며 무언가에 붙여 사과를 내밀었는데, 본서의 충격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알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일본에는 내무성이 있어 정보는 취하고 있던 것은 당연하고, 문제로 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와의 인상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가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두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파티
5성급 중 3.0 의심 많은2012년 5월 30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先に吉村昭氏の『関東大震災』を読みました。
この中で「全くのデマ」「事実無根」と語られる朝鮮人虐殺について、
あまりにも繰り返し全否定されるのが逆に引っかかってこの本にたどり着きました。
工藤美代子氏は以前から信頼していた方なので、新たな視点を期待して読み進みましたが、
今回は残念ながら検証に「結論ありき」な強引さを感じずにいられませんでした。
この本には吉村氏の本からの引用もあります。
ですから当然吉村氏が考察している朝鮮人暴動説の発端・・・
横浜で発生した、日本人による組織的略奪行為がやがて朝鮮人の集団ではないか、
という憶測から事実であるかのように広がった、という説も読まれているはず。
しかし、実際に逮捕されたこの日本人については一切触れていない。
どちらの書籍にも、憶測と思い込みが見られ、歴史家が持つ冷静な、冷徹な視点が
不足しているように感じました。
朝鮮人虐殺の死者数については明らかに白髪三千丈的誇張があるようですから、
この点をもっと検証した書籍の登場を待ちたいと思います。
もっと少なく読む
105人のお客様がこれが役に立ったと考えています
役に立ったレポート
匿名
5つ星のうち2.0 日本人を守るだけ2023年7月13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日本人を守るためには行動に移らなければならない。黙って殺されるわけにはいかない。
2人のお客様がこれが役に立ったと考えています
役に立ったレポート
日之本太郎
5つ星のうち5.0 歴史を鑑とするには、先ず、正確な事実から2015年11月19日に日本でレビュー済み
Amazonで購入
☆ 최근 영국의 정보 기관 SIS가 1923년 8월(관동 대지진 직전)에 작성한 정보 보고서가, 한국의 국가 기관으로부터 개시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비밀결사 '의열단' 멤버가 약 2천명, 한 달 전에 청도에서 폭탄 160개를 독일인으로부터 조달했다. 멤버 중 50여명이 도쿄에서 잠복활동 중이었다고 한다. 「의열단」이라고 하면, 한국에 있어서는 조국의 해방 운동을 위한 「자유의 전사」이지만, 당시의 일본에 있어서는, 확실히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조선독립' 때문에 현금강탈에 의한 자금만들기, 밀항한 폭탄운송, 홍콩, 상하이, 도쿄, 오사카 등 각지에서 테러를 계획하고 실시하고 있던 집단이다. 그 멤버가 테러 목적으로 도쿄에 50명이나 잠복하고 있다면, 그들이 대지진에 조우해 실시하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즉, 조선인 동포를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면서 스스로도 테러를 감행하는 것이다. 이 천재 한 모퉁이의 기회를 무위로 보내는 것 같으면, 「자유의 전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상식에 따라 활동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국의 국민이 자경단을 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쿠도씨의 저작의 의도와 의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욕심을 말하면, 당시의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나 「의열단」에 의한 대일 테러 공작의 전모를 먼저 기재해, 또, 관동 대지진시의 조선인에 의한 폭동이나 테러 행위에 대해서, 전문 기록과 직접 목격 기록을 준별해 기재해 주시면, 보다 설득력이 늘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33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콘스탄틴
5성급 중 1.0 저자의 시점에는 의문이 있다.2023년 5월 6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사서 후회하고 있다.
9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케메코 11
5성급 중 5.0 귀중한 책입니다!2014년 8월 5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관동대지진의 생증인이 없는 가운데, 섬세하게 퍼지고 있는 조선인 학살의 이야기.
난징대학살이나 종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사람의 장점과 어른함 때문에 터무니없는 젖은 옷을 입고 있다면 꼭 진실을 많은 일본인이 알아야 합니다
.
모든 일본인에게 읽어 주셨으면합니다.
98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은둔하다
VINE 회원
5성급 중 3.0 일본인이 처음 직면한 제국의 '뒷면'2010년 1월 23일에 확인함
아마존에서 구매
이것도 같은 구도였는가 하는 납득감을 어느 정도 주는 작품입니다. '진실'은 아마 실증 불가능할 것이다. 벌써 90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는 지진이라는 천재입니다. 어디까지가 전문에서 사실인지, 한정적인 평가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곳이겠지요. 저자에 의한 당시의 사회 상황의 재구축은 정중한 작업입니다. 무엇보다 상해에 있어서의 임시 정부의 실력에의 과대 평가, 섭정궁살 계획의 현실성의 평가 등, 당시의 일본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의 실태 등 몇몇도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단지 저자의 몇 가지 결론은 부정하기 어렵다. 조선인에 의한 몇몇 '테러리스트 마가이'의 행동이 산발적으로 지진 재해 직후에 일어나고 있었다. 제한적인 수가 될 것인가?
상상했던 대로였습니다. 몇 가지 요인의 불행한 조합의 원형 싹이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항복 후부터 독립 회복까지의 전후의 구도와 공통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 문맥(대정기)에서 조선인에 대해 일본인이 거기 어딘지 모르게 안고 있던 불안감, 지진이라고 하는 위기 상황에 기인한 국지적인 권력의 진공 상황(정통한 폭력 장치의 소멸)에의 공포, 거기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일부 조선인의 삶의 폭력에 대한 신봉, 이들이 맞물려 놓은 것이 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학자와 평론가의 작업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선입관에 의해 물들여지고 있던 것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입니다. 모든 자료가 사후적인 정치적인 도식에 의해 정리되어 가는 것입니다. massacre of koreans in japan은 다나카 요시이치의 상주문서와 같은, 일본판 「시온의 현인」이라고 하는 곳입니까. 결국, 반도와 관련된 본질적인 위험은 항상 보편적입니다. 이 보편적인 진리에, 일반의 이치의 일본인도 도망칠 수 없는 본토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음 빠진 것이 이 지진 재해였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전쟁입니다. 거기서 「전사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もっと少なく読む
82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Amazon 고객
5성급 중 3.0 상황 증거로부터의 추론과 반·자학 사관과2022년 11월 30일에 확인됨
타이틀에는 「진실」이라고 있지만, 뭐 「가설」로, 증거로 여겨지는 것도 독립 운동가등의 「상황 증거」라고 애매한 전문 정도. 이토 히로부미 암살 정도부터 당시의 세상을 말해(2장), 즉 독립 운동가들(의열단이라든지)이 실은 폭동을 일으켰다고 하기 때문에, 「원래를 질하면 사회주의자와 항일
민족 주의자가 공투하고, 상층부로부터의 지령을 받고, 천재에 승리 생각을 이루려고 한 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피해자는 일본 국민과 대부분의 무관한 조선인 생활자 그랬던 것이다.”(3장)
같은 곳에서 얼마든지 “무관한 조선인 생활자”에 대해서는 동정적이기도 한다.
1,2장은 야마모토 슈고로라든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타니자키 준이치로, 나가이 짐바람의 일기 등 등을 인용해 좀처럼 읽게 되는데, 「자위를 위해서」라고 하는 논리가 서서히 전개되고 있어 3 장 정도부터는 수상한 느낌으로. 사치다 후미나 이부시 고지의 인용도.
「실제로는 조선인에 의한 폭학 행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한 자위의 각오를 가지고 자경단은 일어났다. 거기에, 다소의 오인이나 과잉 방위가 없었다고는 좋다 끊어지지 않는다」(4장)
*
흥미로운 것은 6장의 인원 주위일까. 「독립 신문」의 6409명설, 동포 위문반 조사원의 2607명(요시노 작조설), 등을 근거나 계산이 좋은 가감이라고 비판.
재경하마 지구 조선인 9800명과 추계, 나라시노 수용, 도쿄 시내 경찰서의 보호가 6797명으로, 나머지 3003명. 그 중 살해 인정 233명(사법성 보고), 지진에서의 사망자 1960명, 나머지 800명이 「테러리스트로서 살해된 대략 인원수」라는 추계라고 한다.
여기에서 런던 내셔널 아카이브스 소장의 「조선 독립 운동의 조선인」작성의 자료로 「2만 3059명」이 학살되었다고 하는 「선전전」의 자료를 낸 후,
“여기까지 봐 온 것처럼 “조선인 학살”이라고 하는 것은 초라한 것이 거의 실증되었다고 생각한다.
(중략)
이 2천7백여명 가운데 테러행위를 맡은 조선독립운동가와 그들에게 선동되어 부화뢰동했기 때문에 살해되었다고 생각되는 인원수, 800명 전후가 포함되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것을 「학살」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국민 생활의 안녕을 위기에 노출시키는 테러 행위, 게릴라 부대와 인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즉, 이른바 「학살」은 없었던 것이다」(6장)
와 본서의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
「다소의 오인이나 과잉 방위가 없었다고는 좋다 끊어지지 않는다」 「나마로시인 것이 거의 실증되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하는 말회에 다소의 괴로움이 나오고 있을까. 800인설이 지진 재해에서의 사망자 수의 견적이 힘들다는 것은 다른 검토자와 비판책의 'TRICK 트릭 '조선인 학살'을 없었다고 하고 싶은 사람들'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곳. 어쩌면 천을 자르는 숫자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233명으로 1033명이지만.
지금의 연구라고 「수천명(≒추계 불가)」이 정설로, 요코바미초 공원 내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의 「6000명」이라고 하는 기재도 미묘한 곳(코이케 유리코 관련으로 여기는 비비다 있을 때). 중앙 방재 회의의 1천~수천명이라는 추계가 타당한가.
*
개인적인 감상으로서 2개.
「학살」의 정의는 어떠하든, 「수백~수천명」의 살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도쿄 근처에 1만명 조선인이 있었다면 수용소에서 보호된 인원수 등 생각하면 2~3000명 정도? 다만 ‘밀항자’가 다수 있었다든가 이 근처는 전제가 바뀌면 숫자는 바뀐다. 원래 관동대지진의 사망자도 10~14만으로 폭이 있다(지금은 10.5만이 정설).
그래서, 「폭동이 있었다」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그래서 정당 방위설도 괴롭다. 원래 상대가 누구라도 자경단의 사형은 법치국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데마에 춤추어진 정의한의 폭주라는 느낌.
2번째의 감상으로서는, 영어판 위키피디아라고 6000-10000명의 추계가 되고 있거나 하지만, 2만 3000명설 등, 「정보전」이라고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곳. 뭐 좌파는 피해자수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역사 수정주의」 「왜소화」라고 비판하지만, 2000명과 6000명, 1000명과 1만명이라고 인상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베트남 반전운동을 하고 있던 오다실이, 실은 KGB로부터 자금원조를 받고 있던 사실이 소련의 문장으로부터 밝혀진 예가 있지만, 코민테른 똥은 1923년의 시점에서는 아직 힘들게 해도, 조선독립 운동가가 일본의 잔학을 강조한다는 목적으로 숫자를 담고 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도덕적 우위성」이라고도 관계하는가.
그래서, 거기에 동조하는 좌파도 「살해」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하는 문언을 고집하는 등(요코하마 시립 중학 부독본), 아무래도 일본인의 「가해」를 강조하려고 강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반대로 우파가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흐름이 90년대 정도부터라고.
무엇이 말하고 싶은가 하면, 정보전이라고 하는 면은 있어, 거기서 반·자학 사관으로서 나온 것이 이 책일까라는 느낌.
뭐 1,2장은 좀처럼 읽었지만, 이미 반자학 사관이 되어 역사 수정주의(넷우요)의 피크는 떠난 감도 있으므로 (완만한 혐한은 남지만), 앞으로 그런 읽히지는 않는다 책일지도.
もっと少なく読む
7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보고서
모든 리뷰 보기
===
===
일본에서
베르니
5성급 중 3.0 수수께끼.....
2023년 8월 13일에 확인됨
본서는 발매 직후에 읽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지진 재해 당시의 정보를 알 수 없는 입장이며, 어떻게 판단해도 좋은지 몰랐다. 그러나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때의 한국 정권은 과민하게 반일적이며 무언가에 붙여 사과를 내밀었는데, 본서의 충격적 내용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는 지금부터 알 수밖에 없었는데, 당시 일본에는 내무성이 있어 정보는 취하고 있던 것은 당연하고, 문제로 하고 싶지 않은 무언가가 있었던 것은? 와의 인상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평가가 어려운 작품입니다.
두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빈겐
5성급 중 3.0 의심 많은
2012년 5월 30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먼저 요시무라 아키라씨의 「관동 대지진」을 읽었습니다.
이 가운데 '전혀 속임수' '사실 무근'이라고 말하는 조선인 학살에 대해서 너무 반복 전부정되는 것이 반대로 걸려 이 책에 도착했습니다
.
쿠도 미요코 씨는 이전부터 신뢰하고 있던 분이므로, 새로운 시점을 기대해 읽어 진행했습니다만, 이번은 유감스럽지만 검증에 「결론 있어」인 강인함을 느끼지 않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
이 책에는 요시무라씨의 책으로부터의 인용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요시무라씨가 고찰하고 있는 조선인 폭동설의 발단・・・요코하마에서 발생한, 일본인에 의한 조직적 약탈 행위가 곧 조선인의 집단이 아닌가, 라고 하는 추측으로부터 사실
인
것처럼 퍼졌다는 설도 읽혀져 있을 것.
그러나 실제로 체포된 이 일본인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두 책 모두 추측과 추측을 볼 수 있었고 역사가가 가진 냉정하고 냉철한 관점이 부족한 것처럼 느꼈습니다
.
조선인 학살의 죽은 자수에 대해서는 분명히 백발 3천장적 과장이 있는 것 같으니까,
이 점을 보다 검증한 서적의 등장을 기다리고 싶습니다.
105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익명
5성급 중 2.0 일본인을 지키는 것만
2023년 7월 13일에 확인됨
일본인을 지키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묵묵히 죽일 수는 없다.
두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히노모토 타로
5성급 중 5.0 역사를 감안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확한 사실에서
2015년 11월 19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 최근 영국의 정보 기관 SIS가 1923년 8월(관동 대지진 직전)에 작성한 정보 보고서가, 한국의 국가 기관으로부터 개시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당시 비밀결사 '의열단' 멤버가 약 2천명, 한 달 전에 청도에서 폭탄 160개를 독일인으로부터 조달했다. 멤버 중 50여명이 도쿄에서 잠복활동 중이었다고 한다. 「의열단」이라고 하면, 한국에 있어서는 조국의 해방 운동을 위한 「자유의 전사」이지만, 당시의 일본에 있어서는, 확실히 테러리스트 집단이다. '조선독립' 때문에 현금강탈에 의한 자금만들기, 밀항한 폭탄운송, 홍콩, 상하이, 도쿄, 오사카 등 각지에서 테러를 계획하고 실시하고 있던 집단이다. 그 멤버가 테러 목적으로 도쿄에 50명이나 잠복하고 있다면, 그들이 대지진에 조우해 실시하는 것은 정해져 있습니다. 즉, 조선인 동포를 선동하여 폭동을 일으키면서 스스로도 테러를 감행하는 것이다. 이 천재 한 모퉁이의 기회를 무위로 보내는 것 같으면, 「자유의 전사」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상식에 따라 활동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국의 국민이 자경단을 대항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쿠도씨의 저작의 의도와 의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욕심을 말하면, 당시의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 정부」나 「의열단」에 의한 대일 테러 공작의 전모를 먼저 기재해, 또, 관동 대지진시의 조선인에 의한 폭동이나 테러 행위에 대해서, 전문 기록과 직접 목격 기록을 준별해 기재해 주시면, 보다 설득력이 늘어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33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콘스탄틴
5성급 중 1.0 저자의 시점에는 의문이 있다.
2023년 5월 6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사서 후회하고 있다.
9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케메코 11
5성급 중 5.0 귀중한 책입니다!
2014년 8월 5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관동대지진의 생증인이 없는 가운데, 섬세하게 퍼지고 있는 조선인 학살의 이야기.
난징대학살이나 종군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사람의 장점과 어른함 때문에 터무니없는 젖은 옷을 입고 있다면 꼭 진실을 많은 일본인이 알아야 합니다
.
모든 일본인에게 읽어 주셨으면합니다.
98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recluse
VINE 회원
5성급 중 3.0 일본인이 처음 직면한 제국의 '뒷면'
2010년 1월 23일에 확인함
아마존에서 구매
이것도 같은 구도였는가 하는 납득감을 어느 정도 주는 작품입니다. '진실'은 아마 실증 불가능할 것이다. 벌써 90년 가까운 시간이 경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는 지진이라는 천재입니다. 어디까지가 전문에서 사실인지, 한정적인 평가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솔직한 곳이겠지요. 저자에 의한 당시의 사회 상황의 재구축은 정중한 작업입니다. 무엇보다 상해에 있어서의 임시 정부의 실력에의 과대 평가, 섭정궁살 계획의 현실성의 평가 등, 당시의 일본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의 실태 등 몇몇도 의문은 남아 있습니다. 단지 저자의 몇 가지 결론은 부정하기 어렵다. 조선인에 의한 몇몇 '테러리스트 마가이'의 행동이 산발적으로 지진 재해 직후에 일어나고 있었다. 제한적인 수가 될 것인가?
상상했던 대로였습니다. 몇 가지 요인의 불행한 조합의 원형 싹이 여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무조건 항복 후부터 독립 회복까지의 전후의 구도와 공통되고 있습니다. 당시의 사회 문맥(대정기)에서 조선인에 대해 일본인이 거기 어딘지 모르게 안고 있던 불안감, 지진이라고 하는 위기 상황에 기인한 국지적인 권력의 진공 상황(정통한 폭력 장치의 소멸)에의 공포, 거기서 생생하게 보여지는 일부 조선인의 삶의 폭력에 대한 신봉, 이들이 맞물려 놓은 것이 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학자와 평론가의 작업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와 선입관에 의해 물들여지고 있던 것은 저자가 지적한 대로입니다. 모든 자료가 사후적인 정치적인 도식에 의해 정리되어 가는 것입니다. massacre of koreans in japan은 다나카 요시이치의 상주문서와 같은, 일본판 「시온의 현인」이라고 하는 곳입니까. 결국, 반도와 관련된 본질적인 위험은 항상 보편적입니다. 이 보편적인 진리에, 일반의 이치의 일본인도 도망칠 수 없는 본토에서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음 빠진 것이 이 지진 재해였습니다. 이것은 더 이상 전쟁입니다. 거기서 「전사자」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82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Amazon 고객
5성급 중 3.0 상황 증거로부터의 추론과 반·자학 사관과
2022년 11월 30일에 확인됨
타이틀에는 「진실」이라고 있지만, 뭐 「가설」로, 증거로 여겨지는 것도 독립 운동가등의 「상황 증거」라고 애매한 전문 정도. 이토 히로부미 암살 정도부터 당시의 세상을 말해(2장), 즉 독립 운동가들(의열단이라든지)이 실은 폭동을 일으켰다고 하기 때문에, 「원래를 질하면 사회주의자와 항일
민족 주의자가 공투하고, 상층부로부터의 지령을 받고, 천재에 승리 생각을 이루려고 한 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피해자는 일본 국민과 대부분의 무관한 조선인 생활자 그랬던 것이다.”(3장)
같은 곳에서 얼마든지 “무관한 조선인 생활자”에 대해서는 동정적이기도 한다.
1,2장은 야마모토 슈고로라든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타니자키 준이치로, 나가이 짐바람의 일기 등 등을 인용해 좀처럼 읽게 되는데, 「자위를 위해서」라고 하는 논리가 서서히 전개되고 있어 3 장 정도부터는 수상한 느낌으로. 사치다 후미나 이부시 고지의 인용도.
「실제로는 조선인에 의한 폭학 행위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핍박한 자위의 각오를 가지고 자경단은 일어났다. 거기에, 다소의 오인이나 과잉 방위가 없었다고는 좋다 끊어지지 않는다」(4장)
*
흥미로운 것은 6장의 인원 주위일까. 「독립 신문」의 6409명설, 동포 위문반 조사원의 2607명(요시노 작조설), 등을 근거나 계산이 좋은 가감이라고 비판.
재경하마 지구 조선인 9800명과 추계, 나라시노 수용, 도쿄 시내 경찰서의 보호가 6797명으로, 나머지 3003명. 그 중 살해 인정 233명(사법성 보고), 지진에서의 사망자 1960명, 나머지 800명이 「테러리스트로서 살해된 대략 인원수」라는 추계라고 한다.
여기에서 런던 내셔널 아카이브스 소장의 「조선 독립 운동의 조선인」작성의 자료로 「2만 3059명」이 학살되었다고 하는 「선전전」의 자료를 낸 후,
“여기까지 봐 온 것처럼 “조선인 학살”이라고 하는 것은 초라한 것이 거의 실증되었다고 생각한다.
(중략)
이 2천7백여명 가운데 테러행위를 맡은 조선독립운동가와 그들에게 선동되어 부화뢰동했기 때문에 살해되었다고 생각되는 인원수, 800명 전후가 포함되는 것은 이미 말했다.
그것을 「학살」이라고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국민 생활의 안녕을 위기에 노출시키는 테러 행위, 게릴라 부대와 인정하는 것이 상식이다. 즉, 이른바 「학살」은 없었던 것이다」(6장)
와 본서의 하이라이트일 것이다.
**
「다소의 오인이나 과잉 방위가 없었다고는 좋다 끊어지지 않는다」 「나마로시인 것이 거의 실증되었다고 생각한다」라는 말에 다소의 괴로움이 나오고 있을까. 800인설이 지진 재해에서의 사망자 수의 견적이 힘들다는 것은 다른 리뷰어나 비판책의 'TRICK 트릭 '조선인 학살'을 없었다고 하고 싶은 사람들'에서도 지적되고 있는 곳. 어쩌면 천을 자르는 숫자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233명으로 1033명이지만.
지금의 연구라고 「수천명(≒추계 불가)」이 정설로, 요코바미초 공원 내에 있는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의 「6000명」이라고 하는 기재도 미묘한 곳(코이케 유리코 관련으로 여기는 비비다 있을 때). 중앙 방재 회의의 1천~수천명이라는 추계가 타당한가.
*
개인적인 감상으로서 2개.
「학살」의 정의는 어떠하든, 「수백~수천명」의 살해가 있었던 것은 사실일 것이다. 도쿄 근처에 1만명 조선인이 있었다면 수용소에서 보호된 인원수 등 생각하면 2~3000명 정도? 다만 ‘밀항자’가 다수 있었다든가 이 근처는 전제가 바뀌면 숫자는 바뀐다. 원래 관동대지진의 사망자도 10~14만으로 폭이 있다(지금은 10.5만이 정설).
그래서, 「폭동이 있었다」설에 대해서는 그다지 설득력이 없고, 그래서 정당 방위설도 괴롭다. 원래 상대가 누구라도 자경단의 사형은 법치국가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데마에 춤추어진 정의한의 폭주라는 느낌.
2번째의 감상으로서는, 영어판 위키피디아라고 6000-10000명의 추계가 되고 있거나 하지만, 2만 3000명설 등, 「정보전」이라고 하는 부분도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 곳. 뭐 좌파는 피해자수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역사 수정주의」 「왜소화」라고 비판하지만, 2000명과 6000명, 1000명과 1만명이라고 인상은 상당히 다를 것이다.
베트남 반전운동을 하고 있던 오다실이, 실은 KGB로부터 자금원조를 받고 있던 사실이 소련의 문장으로부터 밝혀진 예가 있지만, 코민테른 똥은 1923년의 시점에서는 아직 힘들게 해도, 조선독립 운동가가 일본의 잔학을 강조한다는 목적으로 숫자를 담고 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도덕적 우위성」이라고도 관계하는가.
그래서, 거기에 동조하는 좌파도 「살해」가 아니라 「학살」이라고 하는 문언을 고집하는 등(요코하마 시립 중학 부독본), 아무래도 일본인의 「가해」를 강조하려고 강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다. 반대로 우파가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흐름이 90년대 정도부터라고.
무엇이 말하고 싶은가 하면, 정보전이라고 하는 면은 있어, 거기서 반·자학 사관으로서 나온 것이 이 책일까라는 느낌.
뭐 1,2장은 좀처럼 읽었지만, 이미 반자학 사관이 되어 역사 수정주의(넷우요)의 피크는 떠난 감도 있으므로 (완만한 혐한은 남지만), 앞으로 그런 읽히지는 않는다 책일지도.
7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pap
5성급 중 5.0 진실의 역사
2011년 8월 7일에 확인됨
아마존에서 구매
본서는, 일본에 있어서의 근·현대의, 숨겨져 계속해 온 진실의 역사를 밝히려고 하는 책의 하나입니다.
관동대지진시에 일어난 것으로 여겨지는 조선인 학살은, 정말로 있었는지 어떤지를 검증하고 있습니다.
학살이 있었다고 하는 주장의 의문점은 많이 있습니다만, 알기 쉬운 것이, 이하의 의문점입니다.
1 학살당한 인원수가 당시 도쿄 부근에 거주했던 조선인보다 많다. 또는, 사망한 인원수는, 모두가 학살에 의한 것으로, 지진 재해로 사망한 자가 1명도 없는 것.
2 대지진 직후, 누구나가 생명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상황에서, 남녀의 구별도 곤란한 시체를, 어떻게, 일본인과 조선인과 구별해 카운트했는지 불명한 것.
3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진 재해의 시체의 사진을, 학살의 증거라고 하는 것.
4 지진 재해 당일의 단계에서, 내무성이나 경찰이, 있을지도 모르는 조선인 습격을 나눌 필요성 등, 있는 것은 없지만, 이 시점의 경찰 발표, 및 다음날의 신문 기사의 모두를 허위라고 결정한다 것.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현재의 일본에서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의, 질서였던 일본인의 태도 자세를 보면, 관동 대지진의 당시의 일본인이, 소문만으로, 야수와 같이 조선인을 습격 라고 살해했다는 주장에 의문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만, 이것을 읽으면, 「아, 역시 그랬던 것인가.」라고 납득할 수 있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175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도모이
5성급 중 1.0 역사를 비틀어 굽은 데마 책으로서 어떤 의미 역사에 남는 책
2023년 8월 31일에 확인됨
조선인 학살 부정본으로서 역사 수정주의의 극우론자에게 편리한 책. 중요한 부정론의 근거가 자신의 아버지로부터의 전문만이라는 신뢰도의 매우 낮은 책이다. 하지만 내용의 신효성 등 더 이상 상관없는 것이다. 망설이겠지만 무엇이든 이 책에 쓰여진 내용을 이용하여 정약을 속이는 것이 목적의 인간들에게는.
한때 백년 전 시위에 의해 학살된 피해자들, 그것이 지금도 시위에 의해 그 명예를 침해되고 있다는 현실이 이 나라에는 있다.
3명의 고객이 이것이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유용한
보고서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