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8-15

植民地의 國語時間 문병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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植民地의 國語時間
문병란

내가 아홉살이었을 때 20리를 걸어서 다니던 소학교 
나는 국어시간에 우리말 아닌 일본말, 
우리 조상이 아닌 천황을 배웠다.
신사참배를 가던 날 신작로 위엔 무슨 바람이 불었던가, 
일본말을 배워야 출세한다고 일본놈에게 붙어야 잘 산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조상도 조국도 몰랐던 우리, 
말도 글도 姓까지도 죄다 빼앗겼던 우리, 
히노마루 앞에서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말 앞에서 
조센징의 새끼는 항상 기타나이가 되었다.
어쩌다 조선말을 쓴 날 호되게 뺨을 맞은 나는 더러운 조센징, 
뺨을 때린 하야시 센세이(선생)는 왜 나더러 일본놈이 되라고 했을까.

다시 찾은 국어 시간, 그날의 억울한 눈물은 마르지 않았는데 다시 나는 영어를 배웠다. 
혀가 꼬부라지고 헛김이 새는 나의 발음.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누가 내 귀에 속삭였던가.

스물다섯 살이었을 때 나는 국어 선생이 되었다. 
세계에서 제일간다는 한글, 배우기 쉽고 쓰기 쉽다는 좋은 글, 
나는 배고픈 언문 선생이 되었다. 
지금은 하야시 센세이도 없고 뺨 맞은 조센징 새끼의 눈물도 없는데 
윤동주를 외우며 이육사를 외우며 나는 또 무엇을 슬퍼해야 하는가.

어릴 적 알아들을 수 없었던 일본말, 
그날의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았는데 다시 내 곁에 앉아 있는 일본어 선생, 
내 곁에 뽐내고 앉아 있는 영어 선생, 어찌하여 나는 좀 부끄러워야 하는가. 
누군가 영어를 배워야 출세한다고 내 귀에 가만히 속삭이는데 
까아만 칠판에 써놓은 윤동주의 서시,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바라는 글자마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오 슬픈 국어 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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