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뒤덮을 시진핑의 ‘후계자 딜레마’
[박민희의 차이나 퍼즐] 19 _후계 구도의 정치적 여파
박민희기자수정 2025-08-12
2022년 10월23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3연임을 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최고지도부와 함께 등장하고 있다. 시 주석 오른쪽이 서열 2위의 리창 총리, 맨 뒤가 시 주석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차이치 중앙판공청 주임이다. 베이징/AFP 연합뉴스2022년 10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확정한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폐막식에서, 전임자 후진타오 전 주석은 전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욕을 당했다. 후진타오는 시진핑이 확정한 새 지도부 명단에서 자신이 키워온 공청단계 정치인들이 모두 밀려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아 항의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다 끌려나갔다.
이 순간 시진핑 주석은 마오쩌둥 이후 가장 강력한 ‘21세기 황제’의 자리에 오른 듯 보였다. 그에게 저항할 세력들은 모두 사라졌다. ‘시진핑 사상’은 당의 헌법에 들어갔다. 최고지도부는 그의 충성파들로만 구성됐다.
역설적으로 시진핑 권력이 정점에 오른 그 순간부터 불만과 반발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해 11월 시진핑이 고수한 ‘제로 코로나’ 봉쇄에 분노한 ‘백지 시위’가 곳곳에서 일어났고 ‘시진핑 물러나라’는 구호까지 등장했다. 3년간의 제로 코로나 봉쇄로 상처받은 민생 경제는 회복되지 못했고, 부동산 침체, 높은 실업률에 대한 불만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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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27년 말 열릴 21차 당대회에서 ‘시진핑 주석이 4연임을 할 것인가’ ‘누가 시 주석의 후계자로 등장할까’가 중국 정치의 가장 민감하고 뜨거운 질문으로 부상했다. 시 주석이 3연임으로 장기집권의 길에 들어선 순간, 개혁개방 시대 30여년에 걸쳐 만들어진 중국공산당의 집단지도체제와 후계자 결정 시스템이 폐기되었다. 국가주석 임기를 2연임으로 제한하고, 차차기 후계자를 지명해 장기간 준비하게 하는 시스템은 마오쩌둥의 절대 권력이 초래한 혼란에 대한 중국공산당 엘리트들의 반성에서 나왔다. 시 주석은 이 시스템을 파기해 자신에게 권력을 극도로 집중시켰지만, 1953년생인 그가 나이 들어 갈수록 건강 이상설과 함께 후계 구도를 둘러싼 권력 투쟁과 정치적 불확실성이 계속 커질 수 밖에 없다.
타일러 조스트 브라운대 교수와 대니얼 매팅리 예일대 교수는 지난 4일 ‘포린어페어스’에 공개한 글 ‘시진핑 이후’(After Xi)에서 “중국은 ‘시진핑 권력 공고화’ 단계에서 ‘후계자 문제’로 정의되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서고 있고 이 새로운 요소가 중국 정치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스트와 매팅리는 ‘시진핑 실각설’은 근거가 없으며, 시 주석이 물러날 때까지는 10년 이상 남았을 수도 있다고 본다. 하지만 시진핑처럼 강력한 지도자의 후계자를 선정하는 문제는 오랫동안 격렬한 권력투쟁을 일으키게 되고, 중국의 국내 정치와 대외 정책에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능하면서도 강력한 후계자’는 현재의 권력에 위협이 되기 때문에 마오쩌둥과 덩샤오핑도 여러 잠재적 후계자를 계속 교체하다가 마지막에 최종 선택했고, 이 과정에서 여러 혼란이 벌어졌다. 마오쩌둥과 류사오치의 갈등은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마오가 공식 후계자로 지정했던 린뱌오는 1971년 9월 ‘마오에 대한 쿠데타를 기도했다가 도주하던 중 몽골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사망했다’는 발표와 함께 사라졌다. 덩샤오핑도 후야오방과 자오쯔양 등 두 총서기를 내치고 마지막에 장쩌민을 선택했다. 후야오방의 죽음은 1989년 톈안먼 시위의 도화선이었다. 조스트와 매팅리는 “시진핑의 건강이 버틸 수 있다면 적어도 한번의 임기(5년)를 더 집권할 것”이고 원로들의 권력도 약화돼 시진핑이 후계자 지명을 주도할 것이라면서도, “후계자 승계 문제가 당을 뒤덮으면서 점점 더 정치적 긴장이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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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이 후계자를 선택해 준비시키려는 움직임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권위주의 체제의 안정성을 유지하려면 후계 구도를 마련해 혼란의 가능성이 없다는 신호를 보내야 하지만, 후계자를 너무 일찍 확정하면 현재의 권력이 위협받고 권력투쟁이 심해지는 ‘딜레마’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전문가와 언론들이 시 주석의 후계 구도와 관련해 주목하는 인물은 차이치와 리창이다. 당 서열 5위인 차이치(1955년생)는 정치국 상무위원인 동시에 시진핑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고 있다. 차이치는 안보 사안을 주도하고 시진핑 1인 권력 강화를 이념적으로 뒷받침하는 데도 앞장섰다. 하지만, 중국 민생 경제난 해결이 시급해지면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당 서열 2위로 경제를 담당하는 리창(1959년생) 총리에게 점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시 주석은 경제 문제에서 점점 더 리창 총리의 자율권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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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차이치와 리창 모두 1950년대생으로 시 주석의 후계자로서는 나이가 많다. 50~60대 초반의 차세대 지도자로는 천지닝 상하이 당서기, 인리 베이징 당서기, 천원칭 정법위 서기 등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시진핑이 2032년 이후까지 장기집권한다면 이보다도 다음 세대인 1970년대생에서 후계자를 선택해야 한다. 2027년 당대회에서 1970년대생 정치인들이 대거 약진한다면 시 주석이 이런 구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0월22일 중국공산당 20차 당대회 폐막식에서 후진타오 전 주석이 3연임을 확정한 시진핑 주석에게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경호원들에게 끌려나가고 있다. 베이징/AFP 연합뉴스2027년 70대 중반인 시진핑 주석이 국가주석과 당 총서기,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등 3개 직을 모두 쥐고 4연임을 하기보다는, 권력 유지에 관건인 군을 통제하는 중앙군사위 주석직은 유지하면서 국가주석과 총서기는 충성파인 리창 총리와 차이치 주임 등에게 맡기고 막후에서 최종 결정권을 가지는 ‘상왕 정치’로 전환할 가능성도 또 하나의 시나리오다.
우궈광 스탠퍼드대 선임연구원은 지난 3일 중국 관련 전문 팟캐스트 ‘부밍바이보커’에 출연해 시진핑 주석이 2선으로 물러나 막후에서 최고 권력을 유지하되 1선의 실무 통치는 부하들에게 맡기는 ‘2선 체제’를 준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우궈광은 “마오쩌둥이 2선으로 물러나 류샤오치,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등에게 실무를 맡긴 전례나 덩샤오핑이 2선에서 최고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후야오방, 자오쯔양이 1선에서 실무를 했던 것처럼, 21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이 2선에서 실권을 유지하고, 리창, 차이치가 일상적 실무를 담당하는 구도가 등장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왕 정치’가 또 다른 혼란을 몰고 올 가능성도 예고했다. “마오쩌둥 시대에 결국 1선과 2선 권력의 충돌이 문화대혁명으로 치달았다. 덩샤오핑도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을 제거했다. 중국의 역사에서 태상황과 황제 사이에서는 반드시 충돌이 벌어졌다.”
우궈광 선임연구원은 최근 시진핑의 ‘측근’으로 평가되는 군 장성과 고위관리들이 잇따라 숙청된 것은 시진핑의 권력 약화가 아니라, 권력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권력을 집중한 지도자는 독단적으로 결정을 내리게 돼 ‘제로 코로나’ 정책 같은 실수로 이어지지만, 이런 통치 재앙이 벌어져도 숙청과 세뇌를 반복하면서 권력은 더 공고해진다. 스탈린의 광범위한 숙청, 마오의 문화대혁명이 그런 것이었고, 시진핑의 방식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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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주석의 권력은 마오쩌둥과 비견될 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그 권력을 안심하고 물려주거나 ‘상왕 정치’를 하려면 ‘권위’를 강화할 업적이 반드시 필요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대만 통일’의 문제가 중국의 대외 전략뿐 아니라 국내 정치와 후계 구도 문제에서 핵심 ‘질문’으로 떠오른다. 이종혁 성균중국연구소 부소장은 “장쩌민도 후진타오와 시진핑을 내세우고 ‘상왕 정치’를 하려했지만 결국은 시진핑에게 뒤집혔다. 이런 후계자 딜레마를 잘 알고 있는 시진핑이 안심하고 물러나거나 ‘상왕 정치’를 하려면 업적과 카리스마가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 때문에 시진핑에게는 ‘대만 통일’이라는 업적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강조한다. 이 부소장은 “시진핑이 마오쩌둥도 이루지 못한 ‘대만 통일’을 달성하면 후계 문제도 해결되고 미국을 대신해 ‘중국식 질서’도 만들 수 있고 개방도 확대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지금은 시진핑이 권력과 자원을 공유할 수 없고, 민영 기업과 사회까지 강하게 통제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명한 중국 연구자이기도 한 케빈 러드 전 호주 총리도 저서 ‘시진핑에 대하여’(On Xi Jinping)에서 시 주석이 ‘마르크스주의 민족주의’ 이념에 따라 중국을 변화시켜 왔으며 ‘대만 통일’이라는 업적을 통해 자신의 이념적 유산을 지키고 ‘팍스 시니카’(중국 중심 세계 질서)를 만들려 한다고 본다. 하지만, 그는 중국공산당이 대만 통일을 시도했다 실패할 경우의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시진핑 시대’를 전쟁 없이 무사히 넘길 가능성이 있고, 그 이후 중국은 새로운 개혁개방 시대로 나아가고 양안 관계에도 외교적 해법이 열릴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한다.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시진핑의 강력한 권력 집중이 만들어낸 ‘후계자 딜레마’는 중국 정치를 넘어 국제 질서의 미래에도 깊은 파문을 일으킬 것이다. ‘시진핑 시대’라는 현실과 어떻게 현명하게 공존하면서 그 이후 중국을 상상할지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박민희 |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공부했다. 2007~2008년 중국 인민대학교에서 국제관계를 공부한 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한겨레 베이징 특파원으로 중국 곳곳을 다니며 취재했다. 통일외교팀장, 국제부장, 논설위원을 거쳐 세계와 외교에 대해 취재하고 쓰고 있다. ‘중국 딜레마’ ‘중국을 인터뷰하다’(공저)를 썼고, ‘보이지 않는 중국’ ‘롱게임’ 등의 책을 번역했다.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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