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8-16
나의 1960년대 -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야마모토 요시타카
나의 1960년대 -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은이),임경화 (옮긴이)돌베개201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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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00원 (10%, 2,000원 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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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쪽
145*205mm
책소개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전공투’의 상징적 인물로 1960년대 말 도쿄대 투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대학사회를 떠나 줄곧 재야에서 살아온 그가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안보 투쟁을 거쳐 전공투 투쟁에 이르렀던 1960년대의 치열한 일본사회사와 학생운동의 흐름을 술회했다. 한 개인의 역사적 회고담을 넘어 고도경제성장기 일본에서 자본과 국가권력이 대학과 과학기술계를 포섭해 전후 총력전체제를 이루어 나간 실상을 과학사가로서 탁월하게 분석 해설한 인문사회비평서이기도 하다
목차
한국어판 저자 서문 | 머리말
1 대학 입학 직후의 60년 안보투쟁
2 고도성장과 이공계 붐
3 우주개발이라는 정치 쇼
4 62년 대학관리법 반대투쟁
5 지구물리학이라는 학문
6 처분 철회 투쟁과 시계탑 앞 농성
7 물리학회의 미군 자금 문제
8 과학기술의 진보를 둘러싸고
9 도쿄대 베트남반전회의 활동 무렵
10 오지 투쟁의 충격과 도코로 씨의 죽음
11 그리고 도쿄대 투쟁의 시작
12 본부 봉쇄와 강당 해방을 둘러싸고
13 나와 도쿄대 전공투
14 일본 과학기술의 시작
15 군학 협동의 시작에 대해
16 전시하 과학기술에 대해
17 특히 도쿄대 공학부의 경우
18 고도성장의 그림자와 전후 민주주의
19 자연과학과 과학기술 비판
20 원자력발전에 대해서
21 산학 협동과 관학 협동을 둘러싸고
22 가토 근대화 노선이라는 것
23 그 후의 일
24 맺음말
보주 | 한국어판 해제_박노자 | 역자 해설 |
참고문헌 | 도쿄대 투쟁 관련 연표 | 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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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첫문장
나는 1960년대에 도쿄대에 입학했다.
현재 출구가 보이지 않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위험한 배외주의 사상의 침투는, 평화헌법을 지켜 왔다고는 하나 과거의 제국 일본에 대한 진지한 비판과 반성을 결여한 채로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전후 일본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우리 일본인들에게서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제 경제성장과 국제경쟁을 대신할 새로운 길, 저성장 속 민중 국제연대의... 더보기 - 베리심플
당시의 논의를 회고해 보면, 현실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대신에 무엇이든 곧바로 미국에 대한 일본의 종속과 식민지화라는 상투어로 정리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 경향은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그러한 안이함이 그 이후 사태의 진행을 전망하는 것을 방해했다.(...) (23) - 베리심플
그러나 이미 1960년대 단계에서 히로시게 데쓰는 지적했다. ‘이공계 붐‘이라는 이름으로 화학이나 물리뿐만 아니라 수학 같은 순학문적인 학과에 이르기까지 이학부 졸업생들에게 민간기업들이 수많은 유혹의 손길을 뻗치던 이 시기에 ˝이미 이학부는 옛날처럼 학문이 밥보다 좋은 은자가 가는 곳이 아니게 되었˝고, ˝1956년 무렵부터 표면... 더보기 - 베리심플
26 과거 장기간에 걸쳐 식민 지배를 한 한반도 국가에 대한 국교 수립은 무엇보다도 35년간의 식민지 지배 책임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전후 일본에게 중요한 과제인데, 1965년에 일본 정부는 한반도가 분단국가가 된 가운데 당시 반공군사정권 지배하에 있던 남부 대한민국하고만, 분단을 고정시키는 식으로 조약 체결을 도모했다. 그... 더보기 - 베리심플
그 결과, 한편에서 군은 과학자가 19세기 SF소설에서 묘사되곤 하는 실무에 어두운 공상적 인종이 아니라 실제로는 대단히 유능하고 도움이 되는 인종이라는 것을 알고, 전후에도 과학자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과학자의 포위를 도모했다. 다른 한편에서 윤택한 연구비의 맛을 안 과학자도 전전의 빈곤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고 통 큰 ... 더보기 - 베리심플
전쟁을 선동한 정치가와 전쟁을 지도한 군인이 패배의 책임을 ‘과학‘에 돌린 건 전쟁책임 추궁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것을 교묘히 회피한 것이라 불쾌한 마음이 드는데, 매스컴을 비롯해 그것을 비난하는 논조는 없었던 것 같다. 그뿐인가, 매스컴이나 지식인이나 자신들이 침략전쟁에 가담한 것에 대한 반성도 없이 ‘일본은 과학전에서 패배했다... 더보기 - 베리심플
니시나는 원폭 투하 직후 히로시마의 지옥도를, 그리고 나가이는 원폭 투하 후 나가사키의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그 학적 경력으로 보나 특이한 경험으로나 당시 일본에서는 방사선의 위험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는 입장에 있었지만, 그 두 사람조차도 20세기가 낳은 과학기술인 ‘원자력‘의 장래에 대해 이 정도의 신뢰를 갖고 있었다.... 더보기 - 베리심플
애당초 1966년에 미국 자금 도입을 꾀한 것은 소니연구소 소장 하토야마 미치오...와 도쿄대 물리교실 교수 우에무라 야스타다...였고, 미군과의 사이를 중개한 것은 전 도쿄대 총장 가야 세이지였다. 즉 연구비가 가장 풍부한 위치에 있는 연구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연구비가 부족한 지방 대학 연구자일수록 윤리적으로 결벽했던 것으로 ... 더보기 - 베리심플
결국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라는 건 실은 군정하의 오키나와에 미군기지를 억지로 떠맡겨 일본이 극동에서의 냉전체제 유지에 관련을 맺으며 아시아 각국 민족해방 투쟁의 암살에 가담함으로써 존립할 수 있었다는 말이다. 10.8에 벌어진 야마자키 군의 죽음이 제기한 것은 그것이었다. (97) - 베리심플
돈벌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고도성장은 1954년 말에 시작된 진무경기부터 74년 오일쇼크까지 실로 20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그것은 세계사적으로 보아도 드문 사건인데 그 고도성장의 시작을 뒷받침한 것이 한반도 특수, 그리고 그 후반을 뒷받침한 것이 베트남 특수였다. 66년부터 71년까지 베트남 특수로 일본 기업에는 매년 10억 달러... 더보기 - 베리심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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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신문
- 한겨레 신문 2017년 7월 13일자
저자 및 역자소개
야마모토 요시타카 (山本義降) (지은이)
과학사가, 자연철학자, 교육자, 전 도쿄대 전공투 의장.
1941년 오사카(大阪)에서 태어났다. 안보투쟁이 한창이던 1960년에 도쿄(東京)대학교 이학부 물리학과에 진학하여, 1964년 졸업 후 같은 대학원에 진학하여 입자물리학을 전공했다. 동학들 사이에서 수재로 촉망받던 그는 박사과정 3년 차에 베트남반전회의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도쿄대 전공투(全共鬪) 의장을 맡아 도쿄대 투쟁을 이끌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1969년 야스다 강당 공방전에 앞서 경찰의 지명수배를 받아 지하에 잠복했으나, 같은 해 9월 히비야공원에서 열린 전국 전공투연합결성대회에서 체포되었다.
‘지식인의 자기부정’을 외쳤던 그는 박사과정을 중퇴하고 학자로서 보장된 대학을 떠나 다시 제도권 학계로 돌아가지 않았다. 1970년 초중반에는 도쿄대 지진연구소의 임시직원 투쟁에 참여하거나 후지쓰 우주개발연구단의 2차 하청 업체에서 근무하기도 했는데, 이때 천체역학을 공부하거나 철학서를 번역하며 과학사가, 자연철학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에는 유명 대학입시학원인 순다이(駿台)예비학교에서 물리강사로 재직하며 재야에서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다.
‘왜 유럽에서 과학이 탄생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분투한 그의 긴 여정은 『과학의 탄생』, 『16세기 문화혁명』,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이라는 근대과학 탄생사 3부작 시리즈의 완결로 결실을 맺었다. 이 작업은 전공투 시절 품었던 ‘일본 사회가 근대화를 경험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는데, 공교롭게도 2011년 본서 집필 중 후쿠시마에서 전대미문의 원전 사고가 발생했다. 저자는 이를 계기로 일본 과학기술사회에 대한 비판이 시급하다고 판단해,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 『일본 과학기술 총력전』 등의 집필과 강연을 이어가 일본 사회에 큰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접기
최근작 : <과학혁명과 세계관의 전환 1>,<일본 과학기술 총력전>,<나의 1960년대> … 총 7종 (모두보기)
임경화 (옮긴이)
중앙대.한국외대 접경인문학 HK+ 연구단 연구교수.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를 졸업했다(문학박사). 전공은 한일비교문학, 일본 마이너리티 연구, 코리안 디아스포라 비교 연구다. 지은 책으로 《두 번째 전후: 1960~1970년대 아시아와 마주친 일본》(공저, 2017), 《1905년 러시아혁명과 동아시아 3국의 반응》(공저, 2017)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나의 1960년대: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2017), 《나는 사회주의자다: 동 아시아 사회주의의 기원, 고토쿠 슈스이 선집》(2011) 등이 있다. 접기
최근작 : <탈분단의 길>,<분단생태계와 통일의 교량자들>,<일본 신민족주의 전환기에 『국체의 본의』를 읽다> … 총 16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1960년대
―장래를 촉망받던 물리학도는 왜 투쟁에 뛰어들었고, 대학사회를 떠나 재야로 향했나
왜 ‘나의 1960년대’인가? 『나의 1960년대』의 저자 야마모토 요시타카에게 그 시간은 안보 투쟁(미일안보조약 개정 반대 투쟁)이 한창인 캠퍼스에 갓 입학했던 1960년부터, 베트남 반전 운동, 전공투 운동 등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끝에 박사과정을 중단하고 학교를 떠난 1969년까지의 십 년이다. 수학과 물리학을 열심히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도쿄대에 입학해, 학생운동 중에도 줄곧 학문에 대한 추구를 게을리하지 않았으면서도 국책 엘리트 대학이라는 시스템 자체와 그 안에서 공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어 마침내는 대학사회와 결별하기까지의 시간이기도 했다.
그는 어쨌든 엄청나게 뛰어난 사람이라서 모두가 우러러봤다. 이대로 쭉 가면 도쿄대 이론물리를 짊어질 인물이라는 데 대해선 우리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런 그가 운동에 뛰어든다는 건 장래를 버린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커다란 쇼크였다. 야마모토가 나왔기 때문에, ‘이건 [섹트 등의] 직업적 혁명가가 지도하는 학생운동이 아니다’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408쪽)
―사이슈 사토루(생물학자, 1968년 당시 도쿄대 교양학부 조수)
야스다강당의 함락과 전공투 운동의 종결 이후로 그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미디어와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뒤로한 채, 입시학원 물리과 강사로 생계를 유지하며 과학사 관련 저술 작업과 전공투 운동 관련 자료집 편찬 등에 몰두해 왔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들의 흔한 행보인 주류화와 현실정치 참여, 각종 사회ㆍ문화 문제들을 둘러싼 대중투쟁이나 의회 안팎의 정당정치를 추구하지도 않았고,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학계의 일원으로 남지도 않았으며, 정치평론 등으로 스컴에 이름을 팔지도 않았다. 본래의 급진성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철저히 음지에 몸을 두었던 그는 왜 거의 반세기 만에 운동을 회고하는 책을 내게 되었을까. 그 이유 속에 세계적 1968의 흐름 속에 있던 일본 전공투가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의 핵심이 담겨 있다. 그들의 뜨거운 1960년대를, 그리고 이제는 노년이 된 저자와 동료들의 삶을 관통해 온 것은 대학에 대한 개혁과 해체의 요구를 넘어 전후 일본이라는 체제 자체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 체제를 떠받치고 있는 자기 자신들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었다.
전공투는 무엇을 문제 삼았나
―자극적 이미지 뒤에 가려져 있던 전공투에 대한 생생한 증언
전공투라 하면, 한국에서는 전공투는 이후 ‘적군파’로 이어지는 과격한 극좌 학생운동의 대명사로, 또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작품들에서 묘사되는 특정 시대의 사회문화적 상징 같은 것으로 연상되곤 한다. 60년대의 일본 대학생들이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이는 과정에서 도쿄대에서는 학생들이 야스다강당 건물을 점거하고 약 7개월에 걸쳐 학교와 대치하며 농성을 벌인 일이 특히 유명하다. 이에 대해 일본 내의 각종 매체는 진압과정 중계나 후대 세력의 폭력성에 초점을 맞춘 선정적인 보도로 일관해 왔고, 당사자들은 지난 세월 극히 말을 아껴 왔다. 그 자극적인 이미지 이면에서 정말로 전공투 운동의 실제가 어떠했는지, 그들이 자기 시대 속에서 문제 삼은 것은 무엇이었고 어떠한 지향점을 꿈꾸었는지를 제대로 알기는 어려웠다.
전공투 운동의 상징적 존재이자 도쿄대 농성투쟁의 주도자였던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당시의 경험을 ‘지금 여기’의 시점에서 회고하며 자신들이 품었던 근본적인 이상과 그 현재적 의미를 다각도에서 서술하고 있다.
도쿄대 투쟁은 지금 회고하면 전술적인 문제가 여러 가지 있기는 했지만 (…)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 하나는 바리케이드 안에 해방공간을 형성하여 일시적이나마 학생 간의 새로운 공동성을 창출하고 보잘것없으나마 자기 권력으로 한 걸음을 내디딘 점, 그리고 또 하나는 과학 혹은 과학기술에 대해, 그리고 그 진보에 대해 그것이 절대적인 선이라는 메이지 이래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하고 대일본제국이 패배에도 상처 없이 계승된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을 대중적인 수준에서 시작한 점에 있다. (128쪽)
요컨대 60년대 전공투 운동이란 고도경제성장과 대중소비 시대의 일본에서 전후 민주주의 교육을 받고 자란 젊은 세대가 그 ‘전후 민주주의’의 모순적 현장이었던 대학의 개혁과 해체를 내걸었던 투쟁, 동시에 ‘절차적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벌어지는 여전한 ‘총력전 체제’적 국가에 대한 본질적 의문을 제기하고 타파해 나가려 한 투쟁이었다. ‘대동아전쟁 승리’의 자리에 ‘경제성장’이 들어왔을 뿐 국가는 여전히 국민을, 특히 젊은이들을 동원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리하여 대학은 취업 교육과 산학 협동 추구의 장으로 바뀌어 갔고 패전 이전부터 이어진 권위주의 체제는 계속 유지되는 한편으로 학생들은 교육을 거쳐 체제의 소모품으로 전락했다. 학생들은 그러한 기성 대학제도에 반기를 들어 분노했고,. 전국학생공동투쟁회의(전공투)는 바로 그 흐름 속에서 결성되어 ‘대학 해체’ 또는 ‘자기부정’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투쟁을 이끌었다.
그 변혁의 신념과 의지는 나아가 1960년대에 세계 각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기성의 시스템을 혁파하고자 발생한 다양한 혁명(프랑스 5월혁명, 미국에서부터 시작된 베트남 반전 운동 등)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비록 역사적으로 패배하고 단절된 것처럼 보였어도, 그 움직임은 분명히 기성의 가치관을 뒤흔들었고 오늘날의 시점에 대단히 큰 영향과 과제를 남겨 두었다. 이 책은 1968세대가 제기했던 중요한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공유하기 위한 최적의 길잡이인 동시에, 우리가 가진 전공투 운동에 대한 고정관념에 상당한 수정을 촉구할 것이다.
전쟁 뒤로도 이어진 ‘총력전 체제’, 그 연장이었던 이공계 붐
―전후 일본의 폭발적 고도성장과 과학기술 발전의 실상
60년대 도쿄대학 전공투를 이끌었던 야먀모토 요시타카는 운동가 이전에 물리학을 공부하고 싶어했던 과학도였다. 그가 열정적으로 참여했던 베트남전 반대 운동과 학내민주화 투쟁은 전쟁에 동원되는 과학에 대한 치열한 반대 운동이기도 했다. 이 책은 요시타카의 눈을 통해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과학과 고도성장의 민낯을 보여준다. 일본은 강력한 국가 주도로 오로지 군사정치적 목적으로 서구 과학을 받아들였고, 전쟁 과정에는 기라성 같은 과학자들이 나서서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고 군학(軍學) 협동을 외쳤다. 패전 후에도 일본의 과학은 반성하지 않았고, 전범(戰犯)학과였던 도쿄대 제2공학부는 오히려 전후 일본산업 발전을 이끈 원동력으로 칭송되었다. 저자는 자신들의 세대가 3.11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막지 못한 통한을 토로하며, 그 원인을 과학기술의 자기성찰 부족에서 찾는다. 이 책에서 일관되게 비판되는 국가주도의 발전주의와 산업 자본에 포섭된 과학의 문제점은 우리의 과학에도 같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다.
―김동광(과학사회학자,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소장)
전공투는 단순히 대학이라는 공간을 사회로부터 떼어내서 변혁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예컨대 도쿄대 전공투 운동은 애초에는 학생 처분에 반발하여 전개된 반권위주의 운동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도쿄대라는 특권적인 위치에서 연구하고 교육하는 자의 권리요구 운동을 넘어 일본의 과학기술 자체와 그 과정을 중심적으로 담당해 온 도쿄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제국주의 시대부터 엘리트 지식인을 배출해 온 ‘전 제국대학’이자 국책대학인 도쿄대, 그중에서도 저자가 몸담고 있었던 도쿄대 이공계 대학은 그 체제에서 핵심적 위상을 점하고 있었다. 국가체제와의 긴밀한 관련하에 그곳은 ‘과학입국’을 위한 인재를 공급하는 시스템이었고 갈수록 노골화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독점자본의 요구 앞에 ‘학문의 자유’, ‘대학 자치’ 같은 관념은 빈말을 넘어 무비판적 체제 복무를 변호하는 슬로건으로까지 영락하고 말았다. 그 실상은 도쿄대에서 저자가 직접 경험하고 절감한 것이기도 했다.
전공투, 그리고 젊은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도쿄대 공동체를 뒷받침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부정하고 그를 통해 국가와 자본의 과학정책 부속품으로 기능하는 주체의 자기소외를 극복하고자 했다. 전공투 운동은 체제의 바닥을 직시하고자 하는 치열한 의지를 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전공투 과학도들은 ‘과학의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닌 ‘과학은 진보한다는 이데올로기’ 자체를 비판했다. 이러한 정신은 마침내 저자로 하여금 대학사회를 떠나 평생 독립적인 비판 지식인으로서의 길을 걷게 만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여전히 재야 물리학 연구자이자 과학사가인 자신의 특기를 한껏 발휘해, 근대화와 제국주의의 싹이 트던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일본 사회가 어떻게 과학기술사를 체제를 위해 이용해 왔고 그로 인해 자유, 자연, 인간 등 수많은 것을 희생시켜 왔는지를 분석적으로 폭로해 낸다.
총력전으로서의 근대화와 경제성장, 그리고 탈핵의 시대로
―한국 사회에 띄우는 메시지
저자가 이 책을 쓰고자 결심하는 계기가 된 것은 무엇보다도 2011년에 발생했던 후쿠시마 원전 사고였다. 세계 각국에서 그랬듯이 일본에서도 원전은 2차대전이 끝난 뒤 이룬 고도경제성장과 첨단 과학기술의 상징이었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패전 직후 일본 사회는 아시아 각국에 대한 침략과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대신 ‘미국의 군사력과 경제력에 패배했으니 이제는 노력해서 과학전에서 승리하자’는 인식과 분위기로 나아갔다. 원자력 또한 그러한 맥락에서, 일본의 근대화를 뒷받침하고 대일본제국의 전쟁 패배에도 상처 없이 계승된, 과학기술의 진보를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는 이데올로기가 낳은 산물이었다. 도쿄대 내부에서 이러한 흐름은 60년대에는 발빠른 ‘원자력공학과’의 신설로도 나타났던 것이다.
그러나 첨단 과학기술에 의한 대규모 공업화는 그 수혜를 입은 수익자들의 공간 외부에 그 폐해를 떠맡으며 생존을 위협당하는 소수자들을 낳았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인구과소지에 원전을 밀집시켜 오염과 위험을 떠맡기고 혜택은 도시가 독점하는 구조는 그 대표적 사례였다.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일본의 ‘첨단 과학기술’이 보증하는 예컨대 원자력발전 등이 얼마나 역설적으로 취약하고 위험한 것인지를 대단히 쉽게, 그러나 과학자다운 엄정한 기준과 태도로 지적하고 있다.
일본의 1960년대는 이러한 구조 속에서 희생을 강요당한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체제에 저항을 시작한 시대이기도 했다. 바리케이드 안에 해방공간을 확보하고 새로운 공동성을 창출하여 자기권력으로 나아가려 했던 도쿄대 투쟁 또한 그 연장선에 있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전투성 때문에 좌익적인 급진성이나 극단적인 과격함 등의 특이성이 더 주목받곤 하지만, 그것은 기존의 투쟁 방식이나 사상에서 이탈해 유토피아의 계기를 내포한 새로운 사회운동 형태로 진화해 간 과정이라고도 할 만한 것이었다.
지식과 학문의 권력 종속, 경제성장 제일주의 속에서 형식화된 민주주의, 출구전략 없는 원자력에너지 확대 계획, 과학기술이 가져올 리스크들에 대한 무방비함 등 이 책에 담겨 있는 문제의식들은 고스란히 한국 상황에도 적용된다. 제국주의 일본의 피식민 국가이자 체제경쟁의 쇼윈도 국가였던 한국이 일본과 유사성이 많은 일그러진 근대화 과정을 밟아 왔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일각에서 ‘과학대통령’으로 추앙받기도 하는 박정희 시대부터 가열차게 이루어진 ‘전 국민의 과학화’ 운동이나 과학기술대 및 과학기술처의 설립, 과학입국 담론은 일본에서 이루어진 국가 주도 과학기술 발전 모델의 복사판과 같다. 이는 과학기술이라는 학문-산업의 체제 복무를 상징하는 존재인 원전의 적극적 설치로도 이어졌다. 그로 인한 수많은 착오와 희생을 거쳐 새 대통령이 탈핵 시대를 선언하고 그 첫 단추로서 고리원전 1호기의 영구정지가 실현되기 시작한 오늘날의 한국에서, 평생을 통해 전후 일본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관철시켜온 저자의 정수가 담긴 『나의 1960년대』은 커다란 울림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
8.0
이렇게 감동적인 책에 별 점이 한 개라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지요. 이 책은 감상적인 학생운동 회고록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의식의 각성을 촉구하는 현재적인 책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엘리트 과학자로서의 일체의 특권을 거부한 채 지식을 권위적인 대학만의 것이 아닌 시민 사회의 공동 재산으로 돌리고자 헌신한 저자의 올곧은 삶 자체입니다.
초록비 2018-07-05 공감 (9) 댓글 (0)
읽어본 일본인의 반성 중 가장 철저한 것 중 하나. 파시즘과 민주에 동시 복무하는 ‘가치중립적‘ 과학이라는 최면이 3.11까지 이어진 것과 그런 과학의 온실인 도쿄대 이학부의 해체까지 생각했던 전공투를 보여줌. 그 난폭한 세월의 본질을 평이한 언어로 무척 담담하게 서술하는데 밀려드는 감동.
베리심플 2018-08-19 공감 (4) 댓글 (0)
요로 다케시가 언급해서 읽었는데,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 그것을 공유하지 않는 타인에 폭력을 가하던 과거에 대한 반성조차 없다. 일본만 그러했던가. 지금도 금뱃지 달고 으스대는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지...
madwife 2018-01-13 공감 (2) 댓글 (0)
나의 1960년대
<동아시아 반일 무장전선>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들의 전쟁에 대한 자기반성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이 받아온 교육, 자신이 누려온 것들, 자신의 삶 자체가 전쟁을 승인하는 사회 속에서 가능했음을 뼈저리게 반성하며 자기 부정을 통해 자기반성을 하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나의 1960년대>는 전쟁을 승인하고 전쟁을 위해 과학 연구를 하고 국가를 위해 학도병을 보냈던 동경대에 대한 동경대 대학생들의 자기부정과 비판이 잘 기록되어 있는 책이었다. 이 자기부정과 비판을 했던 동경대 전공투 운동가들은 동경대 폐지를 주장했고 대학에 남아 연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학원 강사가 되었다고 들었다.
읽다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한국에 있었던 경성제국대학 학생들은 이렇게 뼈아픈 반성을 한 적이 있나, 식민을 승인하고, 전쟁을 옹호하며 해방후 친일정권을 승인했던 경성제국대학생과 대학은 한 번이라도 이런 반성을 한 적이 있었던가....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대 폐지라는 것이 학벌주의 폐지와 관련해서도 생각해볼 일이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한국의 대학들이 무엇을 승인해왔는지, 무엇을 위해 연구해 왔는지, 반성적 성찰을 하는 주체로서 존재해 왔는지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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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는게없다 2020-03-23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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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요시타카-잭 웨더포드-필리프 아리에스
'이주의 저자'는 오랜만에 국외 저자 3인이다. 3인의 역사학자인데, 전문분야는 각각 과학사, 몽골사, 그리고 심성사다. 먼저 일본의 과학사가이면서 그 이전에 도쿄대 전공투 대표였던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회고록 <나의 1960년대>(돌베개, 2017)가 나왔다.
<과학의 탄생>(동아시아, 2005)과 <16세기 문화혁명>(동아시아, 2010)이라는 걸출한 저작이 국내에 소개돼 있는데, 몇 페이지만 읽어보더라도 대단한 책들이란 걸 알 수 있다(고로 '요시타카의 모든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책의 부제는 '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일본 현대사를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해줄 듯싶은 책이다.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전공투’의 상징적 인물로 1960년대 말 도쿄대 투쟁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대학사회를 떠나 줄곧 재야에서 살아온 그가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안보 투쟁을 거쳐 전공투 투쟁에 이르렀던 1960년대의 치열한 일본사회사와 학생운동의 흐름을 술회했다. 한 개인의 역사적 회고담을 넘어 고도경제성장기 일본에서 자본과 국가권력이 대학과 과학기술계를 포섭해 전후 총력전체제를 이루어 나간 실상을 과학사가로서 탁월하게 분석 해설한 인문사회비평서이기도 하다."
1960년대 운동권 세대의 회고록이란 점에서는 '68혁명 세대'인 타리크 알리의 <1960년대 자서전>(책과함께, 2008)에 견줄 만하고, 전공투에 대한 기록이란 면에서는 <미시마 유키오 對 동경대 전공투 1969-2000>(새물결, 2008)과 짝을 지을 만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요시타카가 펴낸 <후쿠시마, 일본 핵발전의 진실>(동아시아, 2011)은 탈원전 시대를 준비하는 우리가 필독해볼 책이다(어디에 두었는지 찾아봐야겠다. 제 때 안 읽으면 이럴 때 애를 먹는다).
소속으로는 인류학자지만 잭 웨더포드란 이름은 '칭기스칸'을 곧바로 떠올리게 한다. 칭키스칸과 몽골 제국 연구에 20년 이상을 바친 학자여서다. 2004년에 펴낸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사계절, 2005)가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책이고, 2010년작 <칭기스 칸의 딸들, 제국을 경영하다>(책과함께, 2012)이 그에 이어진 책이었다. 이번에 나온 <칭기스 칸, 신앞에 평등한 제국을 꿈꾸다>(책과함께, 2017)는 "가장 방대하면서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칭기스 칸의 일대기"다. '어떻게 위대한 정복자가 우리에게 종교적 자유를 주었는가'가 부제.
"세계사의 위대한 정복자들 중에서도 칭기스 칸만큼 큰 성공을 거둔 인물은 없다. 그는 10만이 채 안 되는 병력으로 어떻게 수백만 명을 상대로 승리하고 수억 명을 통치할 수 있었을까?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칭기스 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의 저자 잭 웨더포드는 그 비결을 간절한 진리의 탐구, 가장 높은 질서의 법률을 드높이려는 끈질긴 노력에서 찾는다. 대제국의 비밀을 추적한 20년의 결과물이자 가장 방대하면서도 객관적이고 균형 잡힌 칭기스 칸의 일대기인 이 책은, 종교와 사상의 극단주의로 혼란을 겪는 오늘의 세계에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아동의 탄생>과 <죽음 앞의 인간> 같은 대작, 그리고 <사생활의 역사>의 공동 편집자라 유명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필리프 아리에스(1914-1984)의 자서전도 이번에 나왔다. <일요일의 역사가>(이마, 2017).
"제도권 학계 밖에서 역사를 연구한 ‘일요일의 역사가’로 20세기 역사학을 뒤바꾼 아날 학파 3세대, 심성사의 대표 학자인 필리프 아리에스의 자서전이다. 전쟁과 이념 투쟁을 거치며 이분법적 대립이 극명했던 20세기, 보수주의자이자 전통주의자이면서도 정치적 격변과 기술 진보에 유연한 태도를 취한 독특한 지식인의 증언이기도 하다. 저자가 스스로를 규정한, 제도권 학계 바깥에서 활동하며 평일에는 본업에 종사하고 휴일에 홀로 역사를 연구한 ‘일요일의 역사가’로서 개인적, 학문적 이력이 담겨 있다. 역사학자 미셸 비노크와 나눈 인터뷰를 통해 그의 소회 역시 살펴볼 수 있다."
독특한 이력과 함께 독자적인 학문세계를 구축한 역사학 거장의 내면과 그가 살았던 시대를 동시에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다시 찾으니 <죽음의 역사>는 재간되었는데, 읽을 만한 번역인지 모르겠다. 한편 <20세기 프랑스 역사가들>(삼천리, 2016)도 당연히 한 장을 아리에스에게 할애하고 있다. 자서전과 비교해가
며 읽어도 좋겠다...
17. 07.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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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강당’으로의 초대
신문B4면 TOP 기사입력 2017.07.13.
[한겨레] 도쿄대 전공투 상징적 인물
야마모토 요시타카의 60년대
‘연구 자유, 공격적 지성’ 질문
나의 1960년대-도쿄대 전공투 운동의 나날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의 민낯
야마모토 요시타카 지음, 임경화 옮김/돌베개·2만원
어떻게 보면 이 책은 회고록이 아니다. 물론 회고록이라는 체재를 취하고는 있다. 하지만 평범한 회고록인 줄 알고 읽기 시작한 이들은 중간 부분에서 당황하게 될 것이다. 1960년에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 시작되는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1968년 해방된 야스다강당에 이른 독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스펙터클한 투쟁 장면이나 강당에서 펼쳐지는 인간군상 같은 것이 아니라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이기 때문이다. 흥미진진한 옛날이야기를 즐기는 관객이라고 생각했던 독자는 갑자기 자신도 무대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68혁명’인 전공투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것이 아니라 전공투를 경험한다.
전공투 운동 당시 야마모토 요시타카(오른쪽). 와타나베 히토미 촬영전공투 운동의 대명사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자기부정’이다. 그런데 이것은 막연하게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서 있는 자리가 어떤 곳인지 철저하게 검증하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도쿄대 전공투 대표였던 야마모토 요시타카는 이 책에서 본문의 거의 3분의 1 분량을 할애해서 자신도 속해 있던 도쿄대 이과의 역사를 중심으로 근대 일본 과학기술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친다. 바리케이드로 봉쇄된 대학 안에서도 많이 오갔을 그런 이야기를 우리 앞에서 다시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이 책은 도쿄대 전공투에 대한 회고록이자 근대 일본 과학기술사이기도 한, 분류하기 힘든 특이한 책이 되었다. 하지만 전공투가 끈질기게 고발한 앎의 형태가 다양하게 얽힌 구체적인 사회관계들에서 초연한 척하는 대학교수들의 모습이었던 점을 떠올려본다면, 개인사와 과학사를 교차시키는 이런 구성 자체가 전공투의 정신을 구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요즘 학계에서 연구윤리라는 말이 유난히 강조되지만, 연구자가 갖춰야 할 윤리란 어떤 것인지 아주 치열하게 고민하고 토론했던 운동이 전공투였다.
우리는 ‘전공투’ 하면 점거를 비롯한 과격한 행동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책은 도쿄대 전공투를 이끌었던 존재가 사실은 대학원생이었으며, 제도적으로 뒷받침된 연구자라는 존재 자체를 묻는 대안적 앎에 관한 운동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대학 본부 건물인 야스다강당 점거를 단순히 대학 본부에 대한 타격으로 끝내지 않고 누구나 들어와서 논의할 수 있는 해방공간을 만드는 방향으로 이끈 존재 역시 저자를 비롯한 대학원생들이었으며, 그 해방공간에서 그들은 적극적으로 ‘소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했다. 이 책에서도 야스다강당에서 열린 한 자주세미나 삐라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영화 <김의 전쟁>으로 한국에서도 유명한 김희로를 통해 재일조선인과 일본 국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려는 것이었다. 또 나리타공항 건설에 반대했던 농민들이 와서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이런 시도들은 일부 사람들만 누릴 수 있는 ‘연구의 자유’란 무엇인지 실천적으로 묻는 작업이었다.
이런 새로운 앎의 모색이 가능했던 것은 저자도 말하듯이 야스다강당이라는 구체적인 공간을 확보해 다양한 이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런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잡무가 필요하다. 그것을 누가 맡았을까? 이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 가운데 하나는 그 잡무들을 ‘대표’인 야마모토 요시타카가 직접 맡아서 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박사과정생이던 그는 이미 20대 후반이었고 ‘대표’라는 직함까지 달았는데도 영화 상영을 위해 혼자 구청에서 영사기를 빌려온다든지 마이크를 설치한다는 식의 ‘허드렛일’을 했다. 권위주의적인 한국의 운동권 문화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힘든 이런 실천이 대학의 권위주의 구조를 해체하는 작업을 뒷받침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자그마한 해방강당을 경험할 수 있다. 그 해방강당에서 저자가 주로 이야기하는 것은 과학기술에 관한 이야기지만, 그것은 단지 저자가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그가 말하는 ‘공격적 지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앎이라는 것이 어떤 제도 속에 있는지, 그리고 나는 누구와 어떤 관계를 통해 그것을 생산하며 소비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해방강당에서 출발하는 그 길은 괴로운 것일 순 있어도 결코 외로운 것은 아닐 것이다.
후지이 다케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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