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의 대국민 보고서 epub
고상만 (지은이)돌베개2013-12-27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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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페이지수 312쪽, 약 16.6만자, 약 4.2만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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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88971998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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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2074년까지 장준하 관련 자료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정부에 맞서 담당 조사관이 최초로 밝히는 사건의 전말과 진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실족 추락사했다고 알려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간 숱한 의혹과 소문이 무성했지만 한 번도 사건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진 적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37년이 지난 2012년 8월 1일,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세상 빛을 보게 되면서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된 이 사건이 순식간에 언론과 세인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에 이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 조사관 고상만이 지금까지 알려진 장준하 의문사 사건의 모든 것을 국민에게 낱낱이 밝히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과 여전히 오해에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줌으로써 이 사건의 재조사가 시급함을 역설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부분은 물론 최초로 공개하는 자료들,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법정 스님, 9년 3개월이나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등 당대 주요 인물들과 나눈 상세한 대화가 실려 있어 이 사건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목차
추천사 1-고상만 선생, 참으로 고맙소(정연주, 전 KBS 사장)
추천사 2-검은 구름 흩어지면 밝은 달 절로 드러난다(명진, 전 봉은사 주지)
프롤로그-나는 왜 이 글을 쓸 수밖에 없었나
37년 만에 나타난 장준하의 엄숙한 외침
장준하 관련 기록 2074년까지 비공개? 내가 책을 쓴 이유!
1장 독립군 장준하 대 친일파 박정희
장준하를 처음 만나다 / 삼성 사카린 밀수 사건, “박정희는……”
장준하,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 / 연인을 위해 일본군 징집을 선택한 장준하
일본군 탈출 후 임시정부를 향한 6,000리 대장정 / 장준하, 『사상계』를 통해 언론인으로 서다
장준하와 박정희의 격돌은 운명 / 장준하의 두 번째 구속, 정치의 길로 접어들다
돈 없는 장준하의 선거운동, ‘사탕과 손수건’의 비밀 / 편치 않은 정치인의 길
박정희의 영구집권 계획을 폭로한 김대중 / 표를 달라고 하지 않겠다던 박정희, 그가 지킨 약속은……
민주주의와 인권 압살, ‘유신시대’의 개막 / 긴급조치 남발, ‘거대한 감옥’으로 변한 대한민국
장준하를 석방하라, 미국 정부의 압력
2장 장준하 사건 조사관이 되다
김대중 대통령의 인권 관련 업적 세 가지 / ‘교수의 양심’ 최종길 교수가 맞이한 참담한 최후
1973년 10월 19일, 중정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 의문사위원회가 규명한 사건들
1986년 서울대 김성수, 1998년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의문사 첫 번째 담당 사건, ‘남현진 이병 의문사’ / 구타 진술을 은폐한 군 헌병대 수사
헌병대 수사관도 믿지 않는 ‘구타 없는 군대’ / 밝혀진 남현진 이병 의문사의 진실
당신이 맡을 사건은 따로 있소 / 장준하 의문사 사건 조사관이 되다
3장 장준하 사건은 왜 의문사인가
1975년 8월 17일, 장준하를 본 사람들 / 장준하 사건에 얽힌 ‘오해와 진실’
구당 김남수의 장준하 치료설? / 김남수는 왜 장준하를 치료했다고 주장했을까?
장준하 사건 조사팀이 세운 세 가지 원칙 / 답은 늘 쉬운 곳에 있었다
폐기된 ‘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을 찾아라! / 극적으로 찾아낸 장준하 의문사 관련 기록들
사라진 ‘1시간 7분’ 증언, 녹음테이프를 찾다 / 국가와 민간 전문가를 동원한 음성 복원 싸움
사건 후 3일간 행적이 묘연한 목격자? / 김용환, 그는 왜 사실이 아닌 신원보증을 말하나
김용환, 그는 누구인가 / 직업 없이 무슨 돈으로 살았을까
1971년 이후 사라진 김용환이 다시 장준하에게 나타나다
4장 목격자 김용환, 그에게 묻다
김용환은 정말 목격자인가? / 장준하는 정말 군인 두 명을 만났을까
장준하의 약사봉 산행은 과연 사실일까 / 최초 공개, 1975년 8월 20일 김용환은 뭐라고 말했나
장준하는 나무를 잡은 사실이 없다? 목격자의 ‘반란’ / 사건 직후 사라진 목격자의 미스터리
사라진 그가 다시 사건 현장에 나타났다? / 장준하는 약사봉을 등반하지 않았다
장준하는 정말 벼랑에서 추락했나? / 사라진 보안사령관 직보 문서
유족에게 걸려온 괴전화의 정체를 추적하다 / 중앙정보부 ‘중요 상황 보고’에 적힌 괴전화의 주인공
괴전화를 했다는 김용환의 분노, “모두 조작이다” / 괴전화를 부정한 이유, ‘새로운 늪’
김용환은 중정의 ‘사설 정보원’이다? / 김용환의 ‘특수인물 존안 카드’-
‘박정희’의 9년 3개월 비서실장, 김정렴을 만나다 / “장준하가 누구지?”, 생각지도 못한 김정렴의 반격
뜬금없는 김정렴의 발언, ‘긴급조치 10호’와 김재규의 비밀
김정렴이 들려준 ‘박근혜와 구국선교단’, 그리고 진실 / ‘무소유’ 법정 스님이 말하는 장준하의 거사
장준하의 거사를 알고 있었던 중정 / 1975년 7월 29일 김대중과 장준하는 왜 만났나?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전해준 ‘조언’ / 2004년 3월, 의문사위원회는 왜 시국성명을 발표했나?
감사원으로부터 받은 시국선언 배후 조사 / ‘개구리 소년’ 법의학자, 마지막 희망을 쏘다
에필로그-장준하 사건은 왜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되었나
장준하 사건 재조사를 위해 선택한 ‘진상규명 불능’
7인 위원의 표결, 그 결과는……
장준하 사건 ‘인정’ 의견, 한상범 위원장 ‘소수에 또 소수 의견’
이 세상 또 다른 두 사람 위해 진실 가려야
접기
책속에서
P. 21 내가 작성한 ‘진정 제7호 장준하 사건 종합 보고서’ 말미에 남긴 두 가지 숙제 중 하나였던 장준하의 유골에서 명백한 가격흔이 발견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명백한 타살 의혹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당연히 재조사를 수용할 것이라고 믿었다. 거부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일이 묘하게 틀어지고 있었다. 장준하의 유골이 세상에 알려진 바로 그 직후부터 조금씩 그런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재조사를 반대하는 새누리당이 진실과 다른 말로 사실을 왜곡하고, 나아가 그러한 잘못된 사실을 들어 장준하의 의문사를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 무엇보다 내가 화가 났던 이유는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주장을 근거로 장준하의 의문사 의혹을 배척하려는 모습이었다. “장준하가 추락 실족사하는 것을 본 목격자가 있는데 무슨 의혹이 있느냐?”며 “이미 지난 정부하에서 실족 추락사하는 것을 목격한 사람까지 다 조사하고 이후 ‘진상규명 불능’으로 결정하고도 이를 또 조사하자는 것은 정치적 목적 외에는 없는 것 아니냐”는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 보고서를 내가 봤다”라는 말까지 곁들였다. 그들이 봤다는 문제의 ‘장준하 보고서’를 직접 쓴 나로서는 참담하기 이를 데 없는 말이었다. 접기
P. 38 그러던 어느 날, 2차 세계대전이 말기로 치달을 때였다. 일제는 결혼하지 않은 조선의 여인들을 이른바 ‘정신대’라는 이름으로 징발해 전쟁터로 보냈다. 장준하 역시 소문으로 정신대가 운영되고 있음을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김희숙으로부터 자신 역시 정신대로 징발될지 모른다는 편지를 받게 된다. 그 순간이었다. 장준하는 자신이 김희숙을 사랑하고 있음을 운명적으로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어떡해서든 김희숙이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그는 결심했다. /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김희숙과 결혼하는 것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처녀만 정신대로 끌고 가는 것이니 이보다 더 확실한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1944년 1월 5일. 장준하는 적지 않은 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연인 김희숙을 위해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했다. 사람들은 장준하에게 지금 귀국한다면 ‘김희숙은 정신대로 끌려가지 않겠지만 대신 당신이 죽을 것’이라며 강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지인들의 걱정이 장준하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 / 장준하를 폄하하려는 이들은 그가 일본군으로 징병되지 않을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입대했다며 그의 명예를 훼손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진정 지켜주고자 하는 연인을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걸었다는 이 아름다운 일화에 대해서는 굳이 외면한다. 도대체 누가 이러한 장준하를 비난할 수 있단 말인가. 접기
P. 75 박정희의 유신이 더 큰 비난을 받아야 할 일은 아무렇지도 않게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결론적으로 유신은 홍사덕의 주장처럼 수출 100억 달러 달성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박정희의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이 밝힌 것처럼 그저 “전 국민에게 구걸하듯 표를 달라고 하기 싫었던” 박정희가 이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귀찮아 유신독재를 공포한 것뿐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영원한 권력을 세우겠다는 ‘더러운 욕심’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 / 특히 박정희와 관련된 선거 관련 야사 역시 그렇다. 박정희가 가장 불만스럽게 생각한 것이 선거에 출마하여 지지를 호소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경쟁자였던 김일성은 이렇게 힘들게 선거운동을 하지 않는데 왜 자신은 이렇게 힘들게 운동을 해야 하는지 내내 불만스럽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것도 김일성의 경우 자신을 비난하는 야당 후보도 없었고 또 힘들게 전국을 돌아다닐 필요도 없이 늘 100퍼센트 지지로 선출되지 않았는가. 그래서 박정희는 종종 “내가 북한의 김일성보다 뭐가 부족하다고 대통령 선거 때마다 이런 고생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고 한다. 결국 그의 불만을 완벽하게 해소하기 위한 조치가 바로 유신독재 선포였던 것이다. 접기
P. 254-259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1974년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탄에 서거한 후 그 뒤를 이어 ‘퍼스트레이디’로 활약하던 박근혜 후보가 자신에게 뭔가를 적은 메모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메모를 살펴보니 기업체 이름이 세 개 적혀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김정렴이 “이것이 뭐냐”고 묻자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체 명단”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기업들이 바라는 민원을 원하는 대로 해결해달라”는 말을 자신에게 했다는 것이다. 구국선교단은 당시 최태민이라는 목사가 운영하는 단체였는데 퍼스트레이디였던 박근혜는 이 단체에서 명예총재를 맡고 있었다. (중략)
김정렴의 말을 듣고 나는 내심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육영수 여사가 서거했던 1974년에 박근혜 후보는 만 22세에 불과했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대신하여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면서 구국선교단에 기부금을 낸 특정 기업에 특혜를 주라는 부정행위를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직접 요구했다는 것이 사실로 믿기지 않았다. 더구나 지난 1998년 정치인으로 입문한 후 지금까지 박근혜 후보는 늘 아킬레스건처럼 구국선교단 최태민 목사의 비리 부정행위에 어떤 관련성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아왔으나 이에 대해 그는 늘 사실이 아니라고 극구 부인해왔다.
또한 박근혜 후보는 이 모든 보도가 과장된 사실이거나 또는 설령 최태민 목사의 비리가 사실이라 할지라도 이는 최태민 목사의 개인적 비리일 뿐 자신과는 절대 무관한 일이라며 단호하게 선을 그어왔다. 따라서 언론 역시 심증은 가나 이에 대한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의혹만 제기해왔던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김정렴이 나에게 들려준 그 말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는 그동안 알려진 박근혜 후보의 주장이 실은 거짓말이었음이 밝혀지는 최초의 사례가 아닌가. 그렇기에 나로서는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야말로 반신반의, 그 자체였다. (중략)
김정렴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나는 박근혜 후보가 사실인지 아닌지 여부를 밝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정희의 9년 3개월 비서실장 김정렴이 말하는 이 충격적인 증언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후보가 그동안 논란이 되어온 구국선교단의 비리 의혹에 무엇을 얼마만큼 관여한 것인지 직접 그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접기
저자 및 역자소개
고상만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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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경기도 판교에서 태어났다. 1989년 대학에 입학하여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지금까지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왔다. 1992년 ‘유서대필 강기훈 무죄석방 공대위’를 시작으로 ‘전국민족민주 유가족협의회’, ‘전국연합 인권위’, ‘천주교 인권위’ 등에서 활동가로 일해 왔다. 2002년 ‘대통령소속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와 2006년 ‘대통령소속 친일 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에서 조사관으로 일했다. 이후 서울과 경기도교육청에서 시민감사관으로 일하며 교육 비리 근절을 위해 노력했고 2016년에는 ‘대한변협 인권위원회 재심법률지원소위’ 부위원장으로 억울하게 구속된 이들의 권리 구제를 위해 노력했다.
지은 책으로는 2003년 『젊은 인권운동가가 들려주는 인권현장 이야기-니가 뭔데』를 시작으로『그날 공동경비구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중정이 기록한 장준하』,『다시, 사람이다』,『고상만의 수사반장』,『이등병의 아빠』등이 있으며 그 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2014년 국민라디오〈고상만의 수사반장〉을 진행했고 다수의 공중파 방송과 팟캐스트에 출연했다. 또한《오마이뉴스》에서 ‘올해의 뉴스 게릴라상’ 등 다수의 기자상을 받았으며, 2017년 군의문사를 주제로 한 연극〈이등병의 엄마〉를 제작하기도 했다. 2018년 현재는 장준하100년위원회 집행위원, KBS ‘진실과 미래위원회’ 부위원장, 고양시 인권증진위원, 국방부 적폐청산위원회 및 국방개혁 자문위 간사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상지대학교 법대 외래교수로 ‘사회와 인권’ 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접기
최근작 :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이등병의 아빠>,<2018 한국의 논점> … 총 14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2074년까지 장준하 관련 자료를 비공개하기로 결정한 정부에 맞서 담당 조사관이 최초로 밝히는 사건의 전말과 진실!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 약사봉에서 실족 추락사했다고 알려진 장준하 선생의 죽음을 둘러싸고 그간 숱한 의혹과 소문이 무성했지만 한 번도 사건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진 적은 없었다.
그러던 차에 37년이 지난 2012년 8월 1일, 장준하 선생의 유골이 세상 빛을 보게 되면서 ‘진상규명 불능’으로 처리된 이 사건이 순식간에 언론과 세인의 높은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이에 이 사건의 전말을 가장 잘 알고 있는 담당 조사관 고상만이 지금까지 알려진 장준하 의문사 사건의 모든 것을 국민에게 낱낱이 밝히고, 그간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들과 여전히 오해에 가려져 있는 부분들을 하나하나 짚어줌으로써 이 사건의 재조사가 시급함을 역설한다.
소문으로만 떠돌던 부분은 물론 최초로 공개하는 자료들,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을 비롯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법정 스님, 9년 3개월이나 박정희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정렴 등 당대 주요 인물들과 나눈 상세한 대화가 실려 있어 이 사건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유신잔당에게 37년 만에 사자후를 토해내는 장준하 선생의 유골,
“나는 이렇게 타살되었다!”
“책을 다 읽고 나니 장준하 선생의 억울한 죽음의 실체가 분명하게 다가왔다. 올 가을 유신 40주년을 맞고 보니, 독재자 박정희와 그의 삶, 그 시대에 대한 평가가 더욱 엄중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그런 뜻에서 독재자 박정희와 거의 모든 점에서 대척점에 있었던 장준하 선생의 삶과 죽음은 새삼 우리에게 절박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런 상황이니, 고상만 선생이 지금 뜨겁게 외치는 진실의 목소리가 너무나 귀하게 들린다.” (정연주, 전 KBS 사장)
“한 사람의 억울한 사람도 만들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국가는. 그러자면 불행했던 시대의 문제들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질 것은 책임진 후 미래로 가자고 해야지, 미래를 위해 과거사를 역사에 맡기자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역사는 그런 문제들을 맡아주는 전당포가 아니다. 검은 구름 흩어지면 달이 저절로 드러나듯 진실을 드러내면 그것이 바로 정의가 되고, 올바름이 되고, 이 세상의 희망이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시작을 이 책이 해주리라 믿는다.” (명진, 단지불회 회주, 전 봉은사 주지)
“선생의 두개골이 신경외과 전문의인 내게 외치고 있는 듯하다. 타살이라고!”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
“(장준하 선생 유골을 볼 때) 숨이 딱 막혔습니다. 법의학자들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떨어졌다고 공통된 의견을 냈습니다. 추락하기 이전에 목숨을 잃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더 이상 억측이 없기 위해 (수사권을 가진)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홍구, 역사학자)
“영국에 셜록 홈스가 있다면 한국엔 고상만이 있다.” (김어준, <나는 꼼수다> 진행자)
▶ 장준하, 그는 누구인가
1918년 평북 의주에서 태어난 장준하 선생은 1944년 1월 일본군 학도병으로 징집되어 평양 제42부대를 거쳐 중국 서주 쓰카다 부대로 전속되었으나 7월에 부대를 탈출한 뒤 무려 6,000리를 걸어 광복군에 합류한 대표적인 민족주의자 중 한 분이다. 이후 OSS(미국 전략첩보대) 1기 훈련을 마치고 이범석 장군 휘하에서 국내 진입 훈련을 하던 중, 단 5일 차이로 해방을 맞아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45년 11월에 임정요인들과 귀국하여 김구 주석의 비서, 비상국민회의 서기 등을 역임했다.
1953년 4월 한국 지성사에 한 획을 그은 『사상계』를 창간하여 대학생을 비롯한 지식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자유당 정권, 박정희 정권을 줄기차게 비판하면서 시대의 양심과 등불의 역할을 자처했다. 이 과정에서 스물일곱 번 연행되고 아홉 번 구속되는 등 수많은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사상계』의 가치와 의의가 높은 평가를 받아 1962년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다.
1967년 국가원수 모독죄로 구속된 상태에서 제7대 총선에 서울 동대문(을)구 신민당 후보로 옥중 출마하여 1만 8,000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공화당의 강상욱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었다. 이후 국방위원회에 지원하여 수구 우익 세력들마저 감동시키는 가장 모범적인 국회의원직을 수행했으나 제8대 총선에서는 여당의 부정선거로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엄혹한 유신독재 시절이었던 1973년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이라는 어이없는 선고를 받았으나 이듬해 병보석으로 출감했다. 1975년 ‘제2차 민주회복을 위한 백만인 서명운동’을 준비하던 중 거사 발표 3일 전인 그해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약사봉에서 안타까운 생을 마감했다.
당시 검·경은 장준하 선생의 사망원인이 ‘실족 추락사’라고 밝혔으나 75도 경사진 곳에서 15미터나 굴러 떨어졌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깨끗한 시신의 상태,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매번 엇갈리는 진술, 배낭 속에 들어 있던 보온병의 유리가 전혀 깨지지 않은 점 등 숱한 의문을 해소하지 못해 대표적인 의문사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2011년 8월 많은 비가 내려 묘소 뒤편 석축이 붕괴되는 재난을 당했고 2,000만 원이 넘는 공사비로 망연자실해 있던 유족에게 파주시에서 추모 공원을 조성하자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 덕에 1년 뒤 묘소 이장을 하는 과정에서 37년 만에 선생의 유골이 세상 빛을 보게 되었고, 누가 봐도 선명한 지름 6센티미터 크기의 가격흔(加擊痕)이 만천하에 드러남으로써 결국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독재세력에 의해 타살되었으리라는 그간의 의혹이 진실에 더욱 가까워지게 되었다. 당연히 재조사가 이루어져야 함에도 2003년 제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내린 최종 결정이 ‘진상규명 불능’이었다는 점을 들어 재조사를 반대하는 정부와 여당의 작태는 거대한 민심의 흐름에 역행할 뿐 아니라 명백한 역사적 진실을 외면하는 인면수심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 ‘나꼼수’에서 밝힌 이야기는 30퍼센트에 불과하다
2003년 7월부터 1년간 제2기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담당했던 고상만 조사관은 처음에 이 책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지난 8월 준엄한 역사적 심판을 재촉이라도 하듯 장준하 선생의 두개골이 세상에 드러난 이후 여기저기에 글을 쓰고 방송 출연을 해오면서도 사건의 전말을 궁금해 하는 많은 기자들에게 고 조사관은 자신이 작성하여 국가기록원에 이관시킨 최종 보고서를 참고하라고만 말해왔다. 그러다 MBC 모 기자로부터 국가기록원에서 장준하 사건 관련 자료를 향후 70년간 비공개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하든 사건의 진실을 덮으려는 정부의 비열한 ‘꼼수’에 맞서 이 사건의 전말을 세상에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두 달여 동안 불철주야 집필에 매달렸다.
그가 작심하고 밝히는 사건의 전말과 세세한 조사과정은 그야말로 한 편의 다큐멘터리와도 같다. 특히 ‘없는 자료도 실제로 없음을 확인한다’는 원칙하에 1975년 문익환, 계훈제 등이 장준하 발인 전날 찾아온 김용환(그는 모두가 증언하는 20일이 아니라 18일에 상가를 찾아갔다고 홀로 주장한다)과 사고 경위에 대해 1시간 7분 동안 나눈 문답이 담긴 녹음테이프와 1988년 경찰 재조사 기록을 찾아내고 복원하는 과정을 보면 그가 이 사건을 얼마나 철저히 조사했는지가 잘 드러난다. 더욱이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의 오락가락하는 신빙성 없는 진술, 『월간조선』과 가진 사실과 다른 인터뷰 내용 등을 하나하나 엮어서 읽다 보면 당시 중앙정보부와 기무사령부가 끝내 협조해주지 않은 존안 자료가 하루 빨리 공개되어야 이 사건이 완벽하게 종지부를 찍을 수 있으리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 최초 공개 자료, 어떤 것들이 있나
이 책에는 고 조사관이 최초로 밝히는 여러 자료들이 들어 있다.
우선 문익환 목사의 혜안으로 남게 된 1975년 1시간 7분짜리 녹음테이프의 내용을 비롯해 박정희 독재정권에 의한 타살을 확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터뷰, 9년 3개월간이나 박정희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정렴이 들려준 김재규와 긴급조치 10호 및 박근혜 후보·최태민 목사 관련 이야기, 법정 스님으로부터 확인한 장준하 ‘거사’의 실체,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과가 도출되기까지의 상세한 과정, ‘진상규명 인정’ 의견을 밝힌 한상범·홍춘의·이기욱 위원의 ‘소수 의견서’와 당시 위문사위 위원장이었던 한상범 교수의 ‘인정 의견에 대한 보충의견서’ 전문 등이다.
국가기록원이 장준하 관련 자료를 70년간이나 비공개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이 자료들은 간간히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거나 일부만 발췌 소개되거나 끝내 알려지지 않은 채 묻혀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을 가장 상세히, 또 정확히 알고 있는 고 조사관이 들려주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통해 그동안 숱한 자료 협조 요청에 번번이 ‘존안 자료 없음’이라는 여섯 글자의 뻔뻔한 답을 되풀이해온 국가정보기관과 재조사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외면하는 정부·여당에 이제는 국민들이 나서서 역사적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해야 할 때다. ‘사필귀정’(事必歸正), 진실은 힘이 센 법이므로.
▶ 문제의 인물 김용환을 어떻게 볼 것인가
고상만 조사관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유일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김용환을 최소한 열여덟 번 이상 만났다. 아버지 연배의 평범한 시골 아저씨 같은 김용환에게 고 조사관은 인간적인 연민을 여러 차례 느끼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안타깝게 만든 것은 상황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김용환의 진술이었고 급기야는 “다 필요 없어”라고 소리치며 조사를 거부하고 나가버린 후 다시는 만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항간에 떠도는 김용환 관련 의혹들에 대해 저자는 객관적으로 검증된 사실, 조사 결과 진실로 밝혀진 사실을 토대로 해서만 자신의 입장을 밝힌다. 일례로 김용환이 중정의 ‘사설 정보원’이었다는 ‘설’이 일부에서 마치 검증된 사실인 양 회자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의혹’일 뿐이라며 선을 긋는다. 이외에도 김용환은 정말 유일한 목격자가 맞는지, 중정의 ‘중요 상황 보고’ 문서에 사고 당일 유족에게 ‘괴전화’를 건 인물이 김용환으로 명기되어 있는데도 왜 그는 한사코 그 문서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인지, 김용환은 왜 장 선생의 상가에 간 날짜를 20일이 아닌 18일이라고 혼자만 우기는지 등등 아직도 풀리지 않은 의혹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사건의 중심에 서서 오랫동안 시달려온 김용환 자신을 위해서라도 이 사건은 하루 빨리 재조사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는 한편 이 책을 김용환을 비난하는 근거로 삼지 말아달라는 조사관으로서의 간곡한 당부도 잊지 않는다. 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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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봐도 의문사.. 노무현대통령도 의문사다. 왜 의로운 사람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의문사를 당해야 하는가. 구매
은하철도의밤 2014-01-15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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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님의 의문사를 제대로 조사했던 사람이 제대로 쓴 장준하 의문사 조사책입니다.. 꼭 국가기록물보존관에 있는거 봐야 한다.. 그런데미국측에 혹시 장준하선생 의문사 기록이나 보고서가 있지 않을까?? 구매
itisforme81 2012-12-29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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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혹을 풀기 위해서는 말이 아니라 구체적 자료와 치밀한 조사가 필요하다. 의문사라는 말에 숨겨진 의혹을 실증을 통해 해결하는 과정의 기록. 구매
나무그늘 2013-12-28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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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하게 읽어야 할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어버렸다. 한순간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한다.. 구매
우상 2012-12-2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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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환, 당신이 알고 있는 진실은 대체 무엇인가 구매
감기군만쉐 2014-06-2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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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장준하, 묻지 못한 진실 새창으로 보기 구매
스스로 정통성이 부족하고 그릇된 길을 걸은 박정희 정권은 비판자들을 두려워했고, 두려워했기에 그들을 없애려고 했다.(p.12) -명진스님 추천사 중
우리 사회는 껄끄러운 과거사 문제만 나오면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역사는 그런 문제들을 맡아주는 전당포가 아니다.(p.13) - 명진스님
우리가 원하는 진실은 쉽게 얻어지지 않지만 그것을 얻은 사회는 역사 앞에 언제나 떳떳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p.35) -문성근
˝전 국민에게 구걸하듯 표를 달라고 하기 싫었던˝ 박정희가 이 형식적인 민주주의조차 귀찮아 유신독재를 공포한 것뿐이었다. 이를 통해 자신의 영원한 권력을 세우겠다는 ‘더러원 욕심‘외에 아무것도 아니었다.(p.75)
1. 일 하시는 대통령
2. 이 나라의 지도자
3. 삼일정신 받들어
4. 사랑하는 겨레 위해
5. 오일육 일으키니
6. 육대주에 빛나고
7. 칠십 년대 번영은
8. 팔도강산 뻗쳤네
9. 구구한 새 역사는
10. 시월 유신정신으로 꽃피웠네!
(p.77)
- 캬 취한다! 박뽕에 취한다! ㅋㅋㅋㅋㅋ
장준하는 8.17. 08:30 호림산악회(서울운동장 앞 소재) 운악산으로 출발 등반 도중, 동일 14:40분경 동 운악산 약사봉 계곡에서 실족으로 추락, 뇌진탕으로 사망하였음. 시체는 검사 지휘를 받기 위해 사고 현장에 보존 중이며 현지 경찰 3명이 현장을 경비 중에 있는데, 동 일행인 김용환(동대문구 이문동 거주)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장준하 부인 및 가족 등이 20:30분경 현장에 도착하였음.(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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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언어 2019-10-16 공감(15)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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