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 -세밑, 실상사에서의 하룻밤/ 어느새 세밑이다. 세상이 흔들리고 요동 칠지라도 세월은 변함없이 흐른다. 한... | Facebook
이병철
18 December at 13:04 ·
-세밑, 실상사에서의 하룻밤/
어느새 세밑이다. 세상이 흔들리고 요동 칠지라도 세월은 변함없이 흐른다.
한 해가 다 가기 전에 고맙고 그리운 이들을 만난다.
며칠 전에 익산의 남곡형과 연락하여 실상사에서 도법스님과 함께 만나기로 했다. 흔들리는 나라와 세상에 대한 걱정을 함께 나누고 새밑에 한해의 마지막 감사 인사를 서로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상사는 두어 달 만에 들리는 것 같다. 세월의 흐름이 갈수록 더 빨라진다는 것이 실감난다.
실상사 천왕문에서 마주 보는 지리산 천왕봉에는 잔설이 하얗게 쌓여있다. 이곳엔 어느새 겨울이 깊어졌다. 저 눈은 다시 봄이 오고 산자락에 꽃소식이 들릴 때쯤에야 녹으리라.
절에 들어서니 주지스님과 수지행자님이 반갑게 맞으며 스님이 기다리고 있다고 알려준다. 모두 반가운 얼굴들이다.
도법 스님의 거처 극락전 작은 요사채에는 남곡형이 먼저 와 계신다.
2024-12-21
130,000 foreign workers to be allowed in Korea on E-9 visas next year - The Korea Times
130,000 foreign workers to be allowed in Korea on E-9 visas next year - The Korea Times
130,000 foreign workers to be allowed in Korea on E-9 visas next year
Posted : 2024-12-20 17:13
Updated : 2024-12-20 17:36
Foreign workers gather produce at a farm in Busan, Wednesday. Korea will allow as many as 130,000 foreign nationals to work here in 2025 under a permit system that enables Korean employers to hire workers from abroad in certain industries amid labor shortages, officials said on Friday. Yonhap
By Jung Min-ho
Korea will allow up to 130,000 foreign nationals to work in the country in 2025 under a permit system that enables Korean employers to hire workers from abroad in specific industries facing labor shortages.
The Ministry of Employment and Labor announced on Friday that a cap on the number of foreign workers who can be hired under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next year was set at 130,000, a decrease from this year’s 165,000.
The program, in collaboration with 17 partner nations, was created for Korean employers who were struggling to find workers in 2004. Tajikistan is also set to join the list next year.
Under the system, E-9 visa holders can work in manufacturing, construction and other industry sectors, where worker shortages are prevalent.
The figure was determined based on the results of its demand estimates, said the ministry, adding that factors such as a potential economic recession were also considered.
By industry, up to 72,000 workers will be allowed to work in Korea’s manufacturing sectors and a maximum of 10,000 can be employed in agricultural and dairy industries, followed by fishing (8,500), service (3,000), shipbuilding (2,500) and construction (2,000). The remaining 32,000 visas can be issued if there is a request from any of these industries, the ministry said.
The ministry also plans to issue E-8 visas to 75,000 foreigners next year. Under the scheme, migrant workers are given a permit to work during busy periods for up to eight months. The figure increased from 68,000 this year.
130,000 foreign workers to be allowed in Korea on E-9 visas next year
Posted : 2024-12-20 17:13
Updated : 2024-12-20 17:36
Foreign workers gather produce at a farm in Busan, Wednesday. Korea will allow as many as 130,000 foreign nationals to work here in 2025 under a permit system that enables Korean employers to hire workers from abroad in certain industries amid labor shortages, officials said on Friday. Yonhap
By Jung Min-ho
Korea will allow up to 130,000 foreign nationals to work in the country in 2025 under a permit system that enables Korean employers to hire workers from abroad in specific industries facing labor shortages.
The Ministry of Employment and Labor announced on Friday that a cap on the number of foreign workers who can be hired under the Employment Permit System next year was set at 130,000, a decrease from this year’s 165,000.
The program, in collaboration with 17 partner nations, was created for Korean employers who were struggling to find workers in 2004. Tajikistan is also set to join the list next year.
Under the system, E-9 visa holders can work in manufacturing, construction and other industry sectors, where worker shortages are prevalent.
The figure was determined based on the results of its demand estimates, said the ministry, adding that factors such as a potential economic recession were also considered.
By industry, up to 72,000 workers will be allowed to work in Korea’s manufacturing sectors and a maximum of 10,000 can be employed in agricultural and dairy industries, followed by fishing (8,500), service (3,000), shipbuilding (2,500) and construction (2,000). The remaining 32,000 visas can be issued if there is a request from any of these industries, the ministry said.
The ministry also plans to issue E-8 visas to 75,000 foreigners next year. Under the scheme, migrant workers are given a permit to work during busy periods for up to eight months. The figure increased from 68,000 this year.
“나는 중도” 53→38% 급감…우파 40% 좌파 22%로 급증 :: 문화일보 munhwa.com
“나는 중도” 53→38% 급감…우파 40% 좌파 22%로 급증 :: 문화일보 munhwa.com
“나는 중도” 53→38% 급감…우파 40% 좌파 22%로 급증
임정환 기자입력 2024-12-20 06:40댓글폰트공유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정치 이념적 위치를 ‘중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전체의 38%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53%에서 급감한 수치다. 반면
“나는 중도” 53→38% 급감…우파 40% 좌파 22%로 급증
임정환 기자입력 2024-12-20 06:40댓글폰트공유
게티이미지뱅크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정치 이념적 위치를 ‘중도’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전체의 38%에 불과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53%에서 급감한 수치다. 반면
- 스스로를 ‘우파’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39.7%로 지난해에서 10%포인트 이상 급증했으며
- ‘좌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22.0%로 지난해에 비해 4%포인트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은 19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보건복지부와 함께 ‘사회정책 국민 인식조사 연구 포럼’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설문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보사연은 중도가 급감한 결과에 대해 "지난 3년 사이 유의미한 결과가 있었다"면서 "특히 우파는 2024년에 중도보다 많은 비율을 나타내며 가장 많은 비율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밖에 이번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복지국가라는 데 동의하는 비율은 전체의 57.4%로 나타났다. 다만 50대 이하가 평균보다 낮았다. 특히 40~50대 56.3%, 20~30대 55.1%로 동의 비율은 젊을수록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60대 이상에서는 61.8%가 동의했다. 아동이 있는 가구에서도 우리나라가 복지국가라는 데 동의하는 비율이 평균을 밑도는 55.4%였다.
복지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살펴본 결과, 정부의 책임이라고 가장 크게 인식하는 항목은 ‘장애인들의 적절한 삶의 질 유지’였다. 응답자의 84.2%가 동의했다. 이어 ‘보육서비스 제공’(83.1%), ‘노인들의 적절한 삶의 질 유지’(79.3%), ‘의료서비스 제공’(78.0%), ‘부자와 빈자 사이의 소득 격차 감소’(73.4%) 순이었다.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복지를 확대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 중에선 ‘사회서비스 수혜자 대상으로 소득에 따라 이용료 차등 부담’이라고 답한 비율이 63.0%로 가장 높았다. ‘전국민적인 증세’(44.2%), ‘새로운 형태의 세금 도입’(40.3%), ‘사회보험 가입자 대상으로 사회보험료 증액’(39.6%) 등이었다.
2022~2024년 사회정책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국민의 복지 인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공개됐다. 사회정책 중 정부의 책임이라고 인식하는 비율이 가장 많이 감소한 항목은 ‘가난한 가정의 대학생에 대한 학비 등 지원’이었다. 해당 항목을 정부의 책임이라고 보는 응답은 2022년 71.4%였으나 올해는 67.2%로 4.2%포인트 떨어졌다. ‘아픈 사람에 의료서비스 제공’ 항목도 같은 기간 81.4%에서 78.0%로 줄었다.
반면, 정부 책임이라는 인식이 가장 큰 폭으로 증가한 항목은 ‘실업자의 삶의 질 유지’였다. 59.0%에서 63.8%로 4.8%포인트 증가했다. ‘무주택자에 적절한 주택 제공’이 정부 책임이라는 응답은 63.7%에서 67.6%로 3.9%포인트 높아졌다.
한편 이번 조사는 지난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전국 성인 3026명(남성 1531명·여성 1495명)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임정환 기자
잃어버린 표정 되찾자 떠난 태완 또는 타이왕, 그가 남긴 것…
잃어버린 표정 되찾자 떠난 태완 또는 타이왕, 그가 남긴 것…
잃어버린 표정 되찾자 떠난 태완 또는 타이왕, 그가 남긴 것…
후배들 힘돼준 그의 뜻 기리며
‘렛 어스 드림’ 서명운동 시작
이문영기자수정 2024-12-16
15일 경기도 군포시 원광대 산본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모셔진 고 강태완씨의 영정. 이문영 기자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가장 예쁜 얼굴의 태완(몽골명 타이왕·32)이 색색의 꽃들에 둘러싸였다.
태완이 사망 20일 전(10월19일) 했던 인터뷰 영상이 15일 추모제 내내 빈소에서 상영됐다. 6살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을 때, 중학생 시절 한국에서 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고등학교 졸업 뒤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공포로 숨죽여 지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극심한 무력감에 빠졌을 때,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덜덜 떨며 자진출국을 신고했을 때의 기억 등을 떠올리며 태완은 카메라 앞에서 수많은 ‘엔지’(NG)를 냈다. 멋쩍게 웃다가, 혀를 날름 내밀다가, 민망해하면서도, 말하길 포기하진 않았다.
인터뷰를 위해 태완은 전날 머리를 단정하게 잘랐다. 귀엽고 말랑한 곰돌이 같았던 태완이 최근 열심히 운동해서 탄탄해진 몸으로 영상에 담겼다. 11월8일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뒤 영상 속 태완의 그 얼굴은 영정이 됐다.
지난 6월4일 전북 김제시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에서 얼굴을 가리고 촬영한 고 강태완씨.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장례식장 빈소 한쪽 벽엔 태완의 어렸을 때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초중고 시절 받은 상장과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쓴 자기소개서,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 취업 면접을 대비해 쓴 예상 질문·답변서, 하루빨리 제 몫 하는 연구원이 되기 위해 코딩과 영어를 공부했던 노트 등과 함께였다. 사진들은 지난 5일 회사 앞 항의집회 뒤 열린 추모제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태완은 이런 얼굴을 가진 아이였구나.
‘성인 태완’에게서 보지 못했던 표정들이 어린 태완의 얼굴에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물총을 들고 상대를 노려보는 명사수 태완, 앞니 빠진 입을 활짝 연 개구쟁이 태완, 주먹을 불끈 쥐고 기합을 잔뜩 넣은 ‘태권 소년’ 태완이 사진 속에서 반짝였다. 그제야 알게 됐다.
광고
지난 6월4일 전북 김제시 에이치알이앤아이에서 얼굴 마스크를 벗고 촬영한 고 강태완씨.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태완은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아이였구나. 이렇게 장난기 많은 꼬마였구나. 이렇게 친구들이 많은 십대였구나. 2020년 태완을 처음 만난 날 그가 했던 말도 기억났다.
“고등학교(단속과 강제퇴거 유예) 졸업 전까진 엄마의 지친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학교 밖으로 나오니까 엄마가 왜 매일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26년을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면서 태완은 ‘표정을 빼앗긴 청년’으로 자랐다. 태완이 죽고 나서야 만난 그의 옛 얼굴은 낯설지만 처음 본 얼굴은 아니었다. 출입국·외국인청을 찾아가 자진출국을 신고했던 2020년 6월부터 그의 4년을 기사(한겨레 연재 ‘호준과 호이준 사이에서’)로 쓰는 동안 딱 한번 그 얼굴을 본 적 있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난 6월의 어느날이었다.
그날 연재 마지막 기사 취재를 위해 전북 김제로 향했다. 태완과는 퇴근 뒤 회사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난 기사에서 태완의 이름은 모두 ‘호준’(가명)이었다. 그가 한국 사회 속으로 1㎝씩 내딛는 과정을 쓰겠다고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 태완의 회사 취재를 굳이 계획하지 않은 이유도 동일했다.
1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 연화장’에서 고 강태완씨가 누운 관이 운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문영 기자
태완에게 전화해 도착을 알렸을 때부터 그날 일정은 계획과 다르게 전개됐다. 태완은 자신이 기사 속 ‘호준’이란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고 취재 차량 출입까지 회사에 허락을 받아둔 상태였다. 회사도 취재 협조를 꺼리지 않았다. 태완은 회사를 사랑했고 그 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날 취재를 마치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을 때였다. 동행한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태완의 체류자격 취득부터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전 과정을 조력)에게 태완이 명함을 건넸다. 스스로를 숨기느라 바빴던 그가 자신의 이름과 직함이 적힌 종잇조각을 품에서 꺼내며 환하게 웃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행복하다”고 했다. 그 얼굴을 반년 뒤 추모제에 걸린 옛 사진들 속에서 다시 봤다.
4년 전 처음 만난 태완은 주눅 든 청년이었다. 자진출국을 신고하러 갈 때, 퇴직금을 받으러 갈 때, 출국하러 공항에 갈 때, 대학과 회사 면접을 볼 때, 비자 신청하러 갈 때, 그에게서 가장 반복적으로 들은 단어는 ‘불안’과 ‘걱정’이었다. 두 단어를 끊임없이 오가던 그가 겨우 잃어버린 표정을 되찾기 시작하자마자 돌연 소멸했다.
잃어버린 표정 되찾자 떠난 태완 또는 타이왕, 그가 남긴 것…
후배들 힘돼준 그의 뜻 기리며
‘렛 어스 드림’ 서명운동 시작
이문영기자수정 2024-12-16
15일 경기도 군포시 원광대 산본병원 장례식장 빈소에 모셔진 고 강태완씨의 영정. 이문영 기자
(☞한겨레 뉴스레터 H:730 구독하기. 검색창에 ’h:730’을 쳐보세요.)
가장 예쁜 얼굴의 태완(몽골명 타이왕·32)이 색색의 꽃들에 둘러싸였다.
태완이 사망 20일 전(10월19일) 했던 인터뷰 영상이 15일 추모제 내내 빈소에서 상영됐다. 6살에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엄마를 따라 한국에 왔을 때, 중학생 시절 한국에서 살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됐을 때, 고등학교 졸업 뒤 언제든 쫓겨날 수 있다는 공포로 숨죽여 지냈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미래가 없다는 생각으로 극심한 무력감에 빠졌을 때, 체류자격을 얻기 위해 덜덜 떨며 자진출국을 신고했을 때의 기억 등을 떠올리며 태완은 카메라 앞에서 수많은 ‘엔지’(NG)를 냈다. 멋쩍게 웃다가, 혀를 날름 내밀다가, 민망해하면서도, 말하길 포기하진 않았다.
인터뷰를 위해 태완은 전날 머리를 단정하게 잘랐다. 귀엽고 말랑한 곰돌이 같았던 태완이 최근 열심히 운동해서 탄탄해진 몸으로 영상에 담겼다. 11월8일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뒤 영상 속 태완의 그 얼굴은 영정이 됐다.
지난 6월4일 전북 김제시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에서 얼굴을 가리고 촬영한 고 강태완씨.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장례식장 빈소 한쪽 벽엔 태완의 어렸을 때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초중고 시절 받은 상장과 대학 입학을 준비하며 쓴 자기소개서, 에이치알이앤아이(HR E&I) 취업 면접을 대비해 쓴 예상 질문·답변서, 하루빨리 제 몫 하는 연구원이 되기 위해 코딩과 영어를 공부했던 노트 등과 함께였다. 사진들은 지난 5일 회사 앞 항의집회 뒤 열린 추모제에서도 본 적이 있었다.
태완은 이런 얼굴을 가진 아이였구나.
‘성인 태완’에게서 보지 못했던 표정들이 어린 태완의 얼굴에 있었다. 놀이공원에서 물총을 들고 상대를 노려보는 명사수 태완, 앞니 빠진 입을 활짝 연 개구쟁이 태완, 주먹을 불끈 쥐고 기합을 잔뜩 넣은 ‘태권 소년’ 태완이 사진 속에서 반짝였다. 그제야 알게 됐다.
광고
지난 6월4일 전북 김제시 에이치알이앤아이에서 얼굴 마스크를 벗고 촬영한 고 강태완씨.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태완은 이렇게 웃을 줄 아는 아이였구나. 이렇게 장난기 많은 꼬마였구나. 이렇게 친구들이 많은 십대였구나. 2020년 태완을 처음 만난 날 그가 했던 말도 기억났다.
“고등학교(단속과 강제퇴거 유예) 졸업 전까진 엄마의 지친 표정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학교 밖으로 나오니까 엄마가 왜 매일 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한국에서 26년을 미등록 이주아동으로 살면서 태완은 ‘표정을 빼앗긴 청년’으로 자랐다. 태완이 죽고 나서야 만난 그의 옛 얼굴은 낯설지만 처음 본 얼굴은 아니었다. 출입국·외국인청을 찾아가 자진출국을 신고했던 2020년 6월부터 그의 4년을 기사(한겨레 연재 ‘호준과 호이준 사이에서’)로 쓰는 동안 딱 한번 그 얼굴을 본 적 있었다.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지난 6월의 어느날이었다.
그날 연재 마지막 기사 취재를 위해 전북 김제로 향했다. 태완과는 퇴근 뒤 회사 밖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난 기사에서 태완의 이름은 모두 ‘호준’(가명)이었다. 그가 한국 사회 속으로 1㎝씩 내딛는 과정을 쓰겠다고 그를 위험에 빠뜨릴 순 없었다. 태완의 회사 취재를 굳이 계획하지 않은 이유도 동일했다.
16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시 연화장’에서 고 강태완씨가 누운 관이 운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문영 기자
태완에게 전화해 도착을 알렸을 때부터 그날 일정은 계획과 다르게 전개됐다. 태완은 자신이 기사 속 ‘호준’이란 사실을 스스로 공개하고 취재 차량 출입까지 회사에 허락을 받아둔 상태였다. 회사도 취재 협조를 꺼리지 않았다. 태완은 회사를 사랑했고 그 회사의 연구원으로 일하는 자신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날 취재를 마치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저녁밥을 먹을 때였다. 동행한 김사강 이주와인권연구소 연구위원(태완의 체류자격 취득부터 ‘그다음’으로 나아가는 전 과정을 조력)에게 태완이 명함을 건넸다. 스스로를 숨기느라 바빴던 그가 자신의 이름과 직함이 적힌 종잇조각을 품에서 꺼내며 환하게 웃었다.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행복하다”고 했다. 그 얼굴을 반년 뒤 추모제에 걸린 옛 사진들 속에서 다시 봤다.
4년 전 처음 만난 태완은 주눅 든 청년이었다. 자진출국을 신고하러 갈 때, 퇴직금을 받으러 갈 때, 출국하러 공항에 갈 때, 대학과 회사 면접을 볼 때, 비자 신청하러 갈 때, 그에게서 가장 반복적으로 들은 단어는 ‘불안’과 ‘걱정’이었다. 두 단어를 끊임없이 오가던 그가 겨우 잃어버린 표정을 되찾기 시작하자마자 돌연 소멸했다.
16일 오전 수원시 연화장에서 고 강태완씨의 어머니와 누나가 화장 중인 아들과 동생을 지켜보고 있다. 이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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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기사가 돼버렸지만, 마지막 기사를 쓴 건 아니었다. 태완이 다채로운 표정을 얼굴에 되찾고 그의 꿈이었던 ‘평범한 일상’에 한걸음 가까워졌을 때 한번 더 그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호준’ 또는 ‘호이준’이 아니라 ‘태완’ 또는 ‘타이왕’의 이름으로 그의 ‘다음’을 쓰고 싶었다.
마지막 취재 때 사진기자는 태완의 얼굴을 두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 마스크를 한 얼굴과 벗은 얼굴. 기사 마감 직전 태완이 ‘지역특화형 거주비자’를 받고 좀 더 안정적인 신분이 됐지만 끝내 마스크 없는 사진을 고르진 못했다. 태완은 “이제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했지만 정작 쓰는 자는 용기가 없었다. 혐오와 차별 걱정 없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을 때 1㎝씩 기어 수십m를 나아간 그의 분투를 쓰고 싶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그를 드러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15일 저녁 경기 군포시 원광대 산본병원에 마련된 태완의 빈소(사망 37일째)는 앉을 자리 없이 가득 찼다. 추모제에 온 100여명의 사람들이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눈물지었다. 어머니(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62)는 “내일이면 아들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내기 싫지만 한달 넘게 차가운 곳에 두고 너무 힘들었어요. 이제 (회사의) 사과 한마디 들었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어요. 아니, 보내기 싫어요. 그래도 어두운 곳에 두기 싫어요. 어쩌면 좋아요. 내 아들 살릴 수 있다면 내 목숨도 줄 수 있어요.”
이튿날 아침 태완은 수원시 연화장(영통구)으로 이동했다. 그의 친구와 선배, 이주인권단체 활동가 등이 유족을 뒤따랐다. 어머니의 오열 속에 태완은 오전 9시53분 화구 속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주저앉은 어머니가 불속에서 뜨거울 아들을 걱정했다.
“아들아, 엄마 여기 있어. 너무 힘들어하지 마.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해서 행복했어.”
이날 태완의 발인과 동시에 그가 인터뷰로 응원했던 캠페인(‘Let us dream: 지금 여기서 꿈을 키우는 이주아동’)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국내 거주 기간 등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일반연수 체류자격(D-4 비자) 또는 기타 체류자격(G-1 비자)을 부여하는 법무부 구제대책이 내년 3월31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태완은 자신이 겪은 고초를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대책의 연장과 상시 제도화를 촉구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는 태완의 뜻을 기리며 내년 3월 전까지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 국회와 법무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태완씨는 국내에서 미등록으로 살면서 자기처럼 의기소침하고, 말수가 줄고, 집에만 있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려고 캠페인 영상을 촬영했다”며 “구제대책이 끝나면 그전까지 신청하지 못한 아이들은 과거의 태완씨처럼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마지막 취재 때 사진기자는 태완의 얼굴을 두 가지 버전으로 찍었다. 마스크를 한 얼굴과 벗은 얼굴. 기사 마감 직전 태완이 ‘지역특화형 거주비자’를 받고 좀 더 안정적인 신분이 됐지만 끝내 마스크 없는 사진을 고르진 못했다. 태완은 “이제 얼굴을 보여줄 수 있겠다”고 했지만 정작 쓰는 자는 용기가 없었다. 혐오와 차별 걱정 없이 이름과 얼굴을 공개할 수 있을 때 1㎝씩 기어 수십m를 나아간 그의 분투를 쓰고 싶었다.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그를 드러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15일 저녁 경기 군포시 원광대 산본병원에 마련된 태완의 빈소(사망 37일째)는 앉을 자리 없이 가득 찼다. 추모제에 온 100여명의 사람들이 그의 인터뷰 영상을 보며 눈물지었다. 어머니(이은혜·몽골명 엥흐자르갈·62)는 “내일이면 아들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보내기 싫지만 한달 넘게 차가운 곳에 두고 너무 힘들었어요. 이제 (회사의) 사과 한마디 들었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보내고 싶어요. 아니, 보내기 싫어요. 그래도 어두운 곳에 두기 싫어요. 어쩌면 좋아요. 내 아들 살릴 수 있다면 내 목숨도 줄 수 있어요.”
이튿날 아침 태완은 수원시 연화장(영통구)으로 이동했다. 그의 친구와 선배, 이주인권단체 활동가 등이 유족을 뒤따랐다. 어머니의 오열 속에 태완은 오전 9시53분 화구 속으로 들어갔다. 바닥에 주저앉은 어머니가 불속에서 뜨거울 아들을 걱정했다.
“아들아, 엄마 여기 있어. 너무 힘들어하지 마.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함께 해서 행복했어.”
이날 태완의 발인과 동시에 그가 인터뷰로 응원했던 캠페인(‘Let us dream: 지금 여기서 꿈을 키우는 이주아동’)은 서명운동을 시작했다. 국내 거주 기간 등의 요건을 충족할 경우 미등록 이주아동에게 일반연수 체류자격(D-4 비자) 또는 기타 체류자격(G-1 비자)을 부여하는 법무부 구제대책이 내년 3월31일 종료를 앞두고 있다. 태완은 자신이 겪은 고초를 후배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대책의 연장과 상시 제도화를 촉구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이주배경 아동·청소년 기본권 향상을 위한 네트워크’는 태완의 뜻을 기리며 내년 3월 전까지 시민들의 서명을 모아 국회와 법무부에 전달할 계획이다.
김사강 연구위원은 “태완씨는 국내에서 미등록으로 살면서 자기처럼 의기소침하고, 말수가 줄고, 집에만 있는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려고 캠페인 영상을 촬영했다”며 “구제대책이 끝나면 그전까지 신청하지 못한 아이들은 과거의 태완씨처럼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문영 기자
Hyunjoon Shin - 손민석이라는 자가 '우리 좌파들의 수준'을 언급하길래
Hyunjoon Shin - 망상 4: 손민석의 '좌파의 수준' 손민석이라는 자가 '우리 좌파들의 수준'을 언급하길래... | Facebook
Hyunjoon Shin
6h ·
망상 4: 손민석의 '좌파의 수준'
손민석이라는 자가 '우리 좌파들의 수준'을 언급하길래 내가 수준을 올려주기 위해 몇 마디 거들어 본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좌파 이론이나 실천이 망한 이유는 '마르크스'나 '서구지성사'를 제대로 읽은 사람들이 작아서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1920년대부터 차고 넘쳤으니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자국과 이웃나라들의 역사는 모르고 서구, 정확히 말하면 유럽의 역사만 알았다. 유럽이라고 해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딱 네 나라였다.
고대의 slave와 중세의 serf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곳도 그 서구 말고는 없다. 두 단어 모두 어원은 라틴어 slavus고 화용 과정에서 의미가 분리된 것이다. 현대의 일상어인 servant나 service도 어원이 같다. 예를 들어 civil servant는 공무원, servicemen은 현역군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내 말은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등의 개념은 서유럽의 근대인이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류사에 고대에는 노예제가 지배했고, 중세에는 농노제가 지배했다는 것은 사실과도 다르고 논리적으로도 근거 없다. 오래 전 염신규가 지적했듯 임노동은 고대 이집트에도 존재했다.
한 예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위계질서가 있던 조선사회는 노예제인가, 봉건제인가, 제3의 무엇인가? 분명한 건 한마디로 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근대 이전 세계 각지에 존재했던 다종다양한 신분제에 기초한 사회에 대해 얼마나 몰랐으면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드립이 나왔겠는가.
손민석은 현대 사회가 임금노예제에서 임금농노제로 이행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농(農)은 농업의 농(農)인데 별 군데 다 이 글자를 붙인다. ‘경영하는 노동자’가 보편화된 단계가 ‘임금농노제’란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임금자본제'가 오는 건가? 구라를 치려면 혼을 담아야지 '대충 그럴 것 같다'고 성의없이 치면 안 된다.
'이제까지 마르크스를 잘못 읽었고 나는 제대로 읽는다'는 망상이야말로 윤석열의 비상계엄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자기 머리로 사고할 수 없으니 이런 망상을 하는 거다. 이럴 경우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진다.
블로그 이름이 '혁명 읽는 사람'이던데 갑자기 혁명하기 싫어진다. Theory 앞에 "A"도 안 붙이고 Histories라는 복수형도 쓰지 않은 영어 센스도 고루하기만 하다. 앗싸리 The History라고 하지.
염신규
여전히 헤겔뽕의 해악이 너무 많군요..
Joonhan Yoon
뭐부터 이야기를 시작할지 대단히 아스트랄하네요
양승필
뭐 나름 열심히 많이 읽고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기는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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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joon Shin
6h ·
망상 4: 손민석의 '좌파의 수준'
손민석이라는 자가 '우리 좌파들의 수준'을 언급하길래 내가 수준을 올려주기 위해 몇 마디 거들어 본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좌파 이론이나 실천이 망한 이유는 '마르크스'나 '서구지성사'를 제대로 읽은 사람들이 작아서가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1920년대부터 차고 넘쳤으니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자국과 이웃나라들의 역사는 모르고 서구, 정확히 말하면 유럽의 역사만 알았다. 유럽이라고 해도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딱 네 나라였다.
고대의 slave와 중세의 serf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곳도 그 서구 말고는 없다. 두 단어 모두 어원은 라틴어 slavus고 화용 과정에서 의미가 분리된 것이다. 현대의 일상어인 servant나 service도 어원이 같다. 예를 들어 civil servant는 공무원, servicemen은 현역군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내 말은 원시 공산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등의 개념은 서유럽의 근대인이 사후적으로 만들어낸 개념이라는 것이다. 인류사에 고대에는 노예제가 지배했고, 중세에는 농노제가 지배했다는 것은 사실과도 다르고 논리적으로도 근거 없다. 오래 전 염신규가 지적했듯 임노동은 고대 이집트에도 존재했다.
한 예로 양반, 중인, 상민, 천민의 위계질서가 있던 조선사회는 노예제인가, 봉건제인가, 제3의 무엇인가? 분명한 건 한마디로 답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근대 이전 세계 각지에 존재했던 다종다양한 신분제에 기초한 사회에 대해 얼마나 몰랐으면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라는 드립이 나왔겠는가.
손민석은 현대 사회가 임금노예제에서 임금농노제로 이행하고 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친다. 농(農)은 농업의 농(農)인데 별 군데 다 이 글자를 붙인다. ‘경영하는 노동자’가 보편화된 단계가 ‘임금농노제’란다. 그러면 그 다음 단계는 '임금자본제'가 오는 건가? 구라를 치려면 혼을 담아야지 '대충 그럴 것 같다'고 성의없이 치면 안 된다.
'이제까지 마르크스를 잘못 읽었고 나는 제대로 읽는다'는 망상이야말로 윤석열의 비상계엄만큼이나 시대착오적이다. 자기 머리로 사고할 수 없으니 이런 망상을 하는 거다. 이럴 경우 공부를 많이 하면 할수록 미궁에 빠진다.
블로그 이름이 '혁명 읽는 사람'이던데 갑자기 혁명하기 싫어진다. Theory 앞에 "A"도 안 붙이고 Histories라는 복수형도 쓰지 않은 영어 센스도 고루하기만 하다. 앗싸리 The History라고 하지.
염신규
여전히 헤겔뽕의 해악이 너무 많군요..
Joonhan Yoon
뭐부터 이야기를 시작할지 대단히 아스트랄하네요
양승필
뭐 나름 열심히 많이 읽고 많이 공부하는 사람이기는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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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민석
Favourites · 15m ·
옛다, 관심. 윤소영을 하도 비난하길래 그래도 그보다는 수준이 나은가 했는데 본인과 별 차이가 없어서 비난하는 듯하다. 시작도 안했고 듣지도 않은 강의를 평주하니 어쩌니 하길래 그저 웃어넘겼는데 왜 본인이 모르는 것에 대해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까?
"임노동은 고대 이집트에도 존재했다"고 엄숙하게 말하는 부분에서는 웃음이 터질 지경.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뭐라고 하는지 볼까?
"왕이 농업 잉여 생산물의 배타적인 점유자로 등장하는 아시아 사회들에서, 기본적으로 떠도는 야영지에 지나지 않는 모든 도시들은, 왕의 수입이 - 스튜어트가 명명한 바와 같이 - 자유로운 노동자들과 교환됨으로써 형성된다."(카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비판요강 Ⅱ』, 김호균 역, 그린비, 2007, p. 92.)
"기왕이니 말하지만 이미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전체가 맹아로 내포되어 있는 임금노동은 오래 전부터 존재하는 것으로서 개별적이고 우연적인 형태로는 그것이 노예제도와 함께 수백년 동안이나 존재하였다. 그러나 이 맹아는 그에 필요한 역사적 전제조건이 조성된 때에야 비로소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F.엥겔스, 『반뒤링론』, 한철 역, 이성과현실, 1989, p. 348.)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고대부터, 그것도 이집트 등을 포함하는 '아시아 사회들'에서 "자유로운 노동자들"인 임노동과 왕의 수입의 교환을 통해 도시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그정도로 많이 이뤄졌다는거다. 임노동이 이집트에 있는 걸 신현준만 아는줄 알았는데 마르크스와 엥겔스도 모두 알고 있었다. 심지어 화폐는 고대 로마의 군대에서 가장 크게 발전했다고 하기도 한다. 이야, 신현준만 아는줄 알았는데.. 내 강의 들으신 분들은 이분이 얼마나 지적으로 부박한지나 구경하고 가시라.
아, 그리고 영어는 내가 쓴 게 아니라 필로버스에서 붙인거다. 나를 모욕하려다가 괜히 상관도 없는 사람들 모욕하는 그 "고루"한 센스는 늙어서 그렇다고 치자. 유시민 말처럼 사람이 60이 넘으면 뇌가 썩는다더니.. 덜 썩었나? 이런 애들이 왜 나한테 페친 신청을 하고 관심을 보일까? 제발, 무슨 말을 하는지나 보고 이랬으면 소원이 없겠네. 무슨 거의 지나가다가 침뱉는 수준이다.
‘어준석열 유니버스’ 너머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어준석열 유니버스’ 너머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어준석열 유니버스’ 너머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입력2024.12.20.
왼쪽부터 방송인 김어준씨,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대통령실 제공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전 정치인 유시민씨는 얼마 전 어느 토론에 나와 “나는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서 원하는 기사만 찾아보지 기성 언론은 보지 않는다”며 “유튜브 보는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특히 기성 언론 다 무시하고 유튜브에 몰입하는 사람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는 보고 싶은 뉴스만 보다가 현실을 오판하게 되고, 급기야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
내란 수괴 윤석열씨는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 했을 뿐 아니라, 여론조사 꽃(방송인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기관)을 확보·봉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을 겪은 김어준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여러 보도로 알려졌듯 윤석열씨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진실로 믿고 있었고, 그래서 김어준씨의 회사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부정선거 음모론의 대표주자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김어준씨 아니던가.
과거 김씨는 18대 대선 개표 조작설, 이른바 ‘케이(K)값’ 음모론을 제기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황우석 사태, 세월호 참사, 정봉주 성추행 사건 등등에서 수많은 거짓과 음모론을 유포했고,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지간한 언론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과시하며 활동하고 있다(박권일, ‘서사과잉: 김어준씨의 경우’ 참고). 이에 더해, 이번 내란 사태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김어준씨의 ‘북한군 위장 암살조 가동’ 주장을 충분한 검증도 없이 공개해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씨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공론장에 끼친 해악을 모두 열거하자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건 김씨의 잘못이 내란 수괴와 동급이란 주장이 아니며, 윤석열 음모론의 원인이 김어준 음모론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문제는 김어준과 윤석열이 공유하는 세계관, 이른바 ‘어준석열 유니버스’다. 그것은 무엇인가? 표면적 공통점은 음모론이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이란, ‘권력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비밀리에 모종의 사건을 계획·실행했음을 폭로하는 서사’를 가리킨다. 앞서 언급한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 예다.
음모의 주체는 주로 강대한 권력집단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겨냥한 ‘집게손가락’ 음모론이다. 광고, 게임 이미지에 등장하는 집게손가락 모양이 페미니스트가 숨겨둔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인데, 사실로 밝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음에도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23년 불거진 게임 업계 집게손가락 소동에서 정치인 이준석씨는 “볼 것도 없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메갈(리아) 손가락이고 의도된 바가 있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이 된 이미지를 40대 남성이 그린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이씨는 아무런 사과도 해명도 하지 않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저런 음모론의 생산과 소비를 끝없이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이다. 여기엔 기성 언론과 정치에 대한 낮은 신뢰, 유튜브 같은 ‘게이트 키핑’ 없는 뉴미디어와 허위 정보의 확산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터이다. 내가 주목하는 건 음모론이 유독 ‘권력 쏠림’이 심한 사회에서 활개 친다는 점이다. ‘큰판’ 한번만 이기면 모든 게 뒤집히는 시스템에서는, 공정성을 확보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승자의 보상이 크면 클수록 편법·반칙의 유인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 비리가 결코 근절되지 않는 것도, 선거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고 패자들은 나락에 떨어져 모욕당하는 시스템에서 경쟁은 곧 전쟁이 되고, 공정성 시비와 음모론이 창궐하며, ‘강자 선망’과 ‘약자 혐오’도 만연한다. 나는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이데아)에서 그런 문화를 ‘힘 숭배’라는 말로 요약한 바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준석열들’에 대한 비판과 책임 묻기는 필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대통령 비상계엄권을 비롯하여 권한과 자원이 과집중되는 승자독식 체제를 해체하지 않으면, ‘어준석열들’은 영원히 다른 얼굴로 회귀할 것이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제도를 바꾸는 일과 함께 우리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수라장 뒤에 다시 만나는 세계는 부디 다르게 만나는 세계이길 바란다.
한겨레 hanidigitalnews@hani.co.kr
‘어준석열 유니버스’ 너머 [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입력2024.12.20.
왼쪽부터 방송인 김어준씨,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대통령실 제공
박권일 | 미디어사회학자
전 정치인 유시민씨는 얼마 전 어느 토론에 나와 “나는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서 원하는 기사만 찾아보지 기성 언론은 보지 않는다”며 “유튜브 보는 사람을 과소평가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맞는 말이다. 특히 기성 언론 다 무시하고 유튜브에 몰입하는 사람을 예의주시해야 한다. 그는 보고 싶은 뉴스만 보다가 현실을 오판하게 되고, 급기야 내란을 일으킬 수 있다.
내란 수괴 윤석열씨는 군대를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장악하려 했을 뿐 아니라, 여론조사 꽃(방송인 김어준씨가 설립한 여론조사기관)을 확보·봉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우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일을 겪은 김어준씨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한다. 여러 보도로 알려졌듯 윤석열씨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진실로 믿고 있었고, 그래서 김어준씨의 회사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지난 10여년간 부정선거 음모론의 대표주자를 딱 하나만 꼽으라면 바로 김어준씨 아니던가.
과거 김씨는 18대 대선 개표 조작설, 이른바 ‘케이(K)값’ 음모론을 제기했다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뿐만 아니다. 그는 황우석 사태, 세월호 참사, 정봉주 성추행 사건 등등에서 수많은 거짓과 음모론을 유포했고, 결국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제대로 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어지간한 언론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과시하며 활동하고 있다(박권일, ‘서사과잉: 김어준씨의 경우’ 참고). 이에 더해, 이번 내란 사태에서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가 김어준씨의 ‘북한군 위장 암살조 가동’ 주장을 충분한 검증도 없이 공개해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비판하기도 했다. 김씨가 지금까지 대한민국 공론장에 끼친 해악을 모두 열거하자면 책 한권으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오해하면 곤란하다. 이건 김씨의 잘못이 내란 수괴와 동급이란 주장이 아니며, 윤석열 음모론의 원인이 김어준 음모론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문제는 김어준과 윤석열이 공유하는 세계관, 이른바 ‘어준석열 유니버스’다. 그것은 무엇인가? 표면적 공통점은 음모론이다. 일반적으로 음모론이란, ‘권력자가 어떤 목적을 위해 비밀리에 모종의 사건을 계획·실행했음을 폭로하는 서사’를 가리킨다. 앞서 언급한 부정선거 음모론이 대표적 예다.
음모의 주체는 주로 강대한 권력집단이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예컨대 여성, 페미니스트들을 겨냥한 ‘집게손가락’ 음모론이다. 광고, 게임 이미지에 등장하는 집게손가락 모양이 페미니스트가 숨겨둔 “남성 혐오 표현”이라는 주장인데, 사실로 밝혀진 적이 단 한번도 없음에도 수년째 반복되고 있다. 2023년 불거진 게임 업계 집게손가락 소동에서 정치인 이준석씨는 “볼 것도 없이 (남성혐오를 상징하는) 메갈(리아) 손가락이고 의도된 바가 있다고 본다”고 발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논란이 된 이미지를 40대 남성이 그린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이씨는 아무런 사과도 해명도 하지 않았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저런 음모론의 생산과 소비를 끝없이 부추기는 사회적 조건이다. 여기엔 기성 언론과 정치에 대한 낮은 신뢰, 유튜브 같은 ‘게이트 키핑’ 없는 뉴미디어와 허위 정보의 확산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있을 터이다. 내가 주목하는 건 음모론이 유독 ‘권력 쏠림’이 심한 사회에서 활개 친다는 점이다. ‘큰판’ 한번만 이기면 모든 게 뒤집히는 시스템에서는, 공정성을 확보하기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승자의 보상이 크면 클수록 편법·반칙의 유인도 그만큼 커지기 때문이다. 한국의 입시 비리가 결코 근절되지 않는 것도, 선거 음모론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도 근본적으로 여기에 있다. 승자가 모든 걸 독차지하고 패자들은 나락에 떨어져 모욕당하는 시스템에서 경쟁은 곧 전쟁이 되고, 공정성 시비와 음모론이 창궐하며, ‘강자 선망’과 ‘약자 혐오’도 만연한다. 나는 ‘한국의 능력주의’(박권일, 이데아)에서 그런 문화를 ‘힘 숭배’라는 말로 요약한 바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준석열들’에 대한 비판과 책임 묻기는 필수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대통령 비상계엄권을 비롯하여 권한과 자원이 과집중되는 승자독식 체제를 해체하지 않으면, ‘어준석열들’은 영원히 다른 얼굴로 회귀할 것이다.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제도를 바꾸는 일과 함께 우리 삶의 방식을 성찰하고 혁신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수라장 뒤에 다시 만나는 세계는 부디 다르게 만나는 세계이길 바란다.
한겨레 hanidigitalnews@hani.co.kr
YouTube populists are driving South Korea’s political instability. It’s a warning for the rest of the world’s democracies
YouTube populists are driving South Korea’s political instability. It’s a warning for the rest of the world’s democracies
Protesters in Seoul demand the dismissal of President Yoon Suk Yeol. Lee Jin-man/AP
YouTube populists are driving South Korea’s political instability. It’s a warning for the rest of the world’s democracies
Published: December 19, 2024 1.49pm AEDT
Authors
Protesters in Seoul demand the dismissal of President Yoon Suk Yeol. Lee Jin-man/AP
YouTube populists are driving South Korea’s political instability. It’s a warning for the rest of the world’s democracies
Published: December 19, 2024 1.49pm AEDT
Authors
Timothy Koskie
Postdoctoral Researche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s, University of Sydney
Christopher James Hall
PhD Researcher, Centre for Media Transition,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Disclosure statement
The authors do not work for, consult, own shares in or receive funding from any company or organisation that would benefit from this article, and have disclosed no relevant affiliations beyond their academic appointment.
Partners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provides funding as a founding partner of The Conversation AU.
University of Sydney provides funding as a member of The Conversation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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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pace of three weeks, South Korea has seen a brief declaration of martial law, its sudden repeal and the impeachment of its president, Yoon Suk Yeol.
One underappreciated driver of the recent drama is the rise of YouTube-based agitators, activists and influencers, who both benefit from and fuel a new brand of populism. The effects in South Korea are stark – but the trend is global.
An extremely online constituency
In South Korea’s 2022 election, Yoon trailed his opponent for much of the campaign. His aggressive populist politics drew some support, but he looked set to fail.
Then he found a new constituency – a group of active and partisan young men focused on abolishing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These agitators used YouTube and other platforms to broadcast their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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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g with traditional conservative voters, this crowd enabled Yoon to achieve a narrow win and control of South Korea’s most powerful political position. He then duly abolished the gender ministry, saying structural sexism was “a thing of the past”.
After gaining power, Yoon issued arrest orders for several of his perceived political opponents. Among these was Kim Eo-Jun, a critical and inflammatory YouTube journalist, and a polarising populist figure tied to liberal politics. Kim’s weekly videos broadcast news, guest interviews and caustic commentary to millions of active followers.
We have grown used to the idea that social media platforms influence democratic processes by spreading news and analysis and directing users’ attention by recommending particular content. However, the increasing political visibility of platform actors such as Kim suggests the influence is becoming more direct.
Platforms for populist news and views
Social media platforms provide access to a wide range of news and media producers, from legacy outlets to independent commentators at the furthest edges of the political spectrum. However, not all of the news gets equal attention.
Research shows, at least in South Korea, false news gets more likes and interactions than verifiable news. “Real news” tends to receive dislikes and derision.
More South Korean research shows citizens may use platforms to seek out conspiracy theories and pour scorn on disliked political groups or decisions. Users also notoriously direct hate towards issues such as women’s rights.
These problems are not limited to South Korea. Polarising and populist news and analysis is a global phenomenon.
Trust in traditional news media is declining, in part due to fears it is aligned with elite and powerful figures. These fears are often confirmed by social media influencers who are seeking to become the new opinion leaders.
Online influencers are great vehicles for populist politics. They have intimate connections with their viewers, tend to suggest simplistic solutions, and usually resist accountability and fact checking.
Platforms are often more likely to recommend polarising and even radicalising content to viewers, crowding out more balanced content.
Platforms for journalism?
However, these polarising figures are not alone in these spaces. Veteran journalists and newcomers are adjusting to platforms while still providing reliable information.
On YouTube, former mainstream journalists, such as Australia’s Michael West and the American Phil Edwards, have amassed followings while blending personal and casual content with more traditional journalism.
Non-journalists, such as Money & Macro and the English Tom Nicholas, have expanded their influence through adopting some core journalistic practices. They produce content that investigates, explores and explains current affairs news and analysis with the support of their many viewers.
These YouTube news influencers show journalistic content can contribute to the new news media ecosystem and attract large audiences without relying on populist and polarising content.
“Newsfluencers” producing journalism on platforms, such as YouTube, tailor their content to the conventions of the platforms.
Newsfluencers and the future
Newsfluencers often film in informal settings rather than traditional sets, and build a casual rapport with their audience. They leverage “authenticity”, going out of their way to “avoid looking like polished corporate media”.
Their multiple revenue streams include ads, sponsors, merchandise and, most importantly, direct audience contributions. These contributions may come via memberships or via third-party platforms such as Patreon and Substack.
Even major news organisations such as Australia’s ABC have begun adopting YouTuber norms. While produced under the aegis of the national broadcaster, the current affairs podcast If You’re Listening, for example, significantly out-performs traditionally formatted content with its casual style and focus on giving the audience what it wants.
In South Korea, YouTube channels such as VoiceOfSeoul make similar moves, combining street coverage with informal talk-show panels and investigative journalism. OhMyTV weaves together YouTuber and breaking news styles, and carries hyperlinks for personal contributions and sponsorships.
At the same time, legacy media such as KBS maintains a strong following through TV and portal sites like Naver. However, KBS’s conventional format struggles to achieve comparable viewership on these increasingly dominant platforms where these unconventional journalists have managed to thrive.
There is a clear space for journalism on YouTube and similar platforms. However, it will need to adapt.
As the South Korean experience shows, the time may be coming when platform journalism is vital for democracy.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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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South Korea
Populism
Influencers
South Korea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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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ha Ketc
Postdoctoral Researcher, School of Media and Communications, University of Sydney
Christopher James Hall
PhD Researcher, Centre for Media Transition,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Disclosure statement
The authors do not work for, consult, own shares in or receive funding from any company or organisation that would benefit from this article, and have disclosed no relevant affiliations beyond their academic appointment.
Partners
University of Technology Sydney provides funding as a founding partner of The Conversation AU.
University of Sydney provides funding as a member of The Conversation 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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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pace of three weeks, South Korea has seen a brief declaration of martial law, its sudden repeal and the impeachment of its president, Yoon Suk Yeol.
One underappreciated driver of the recent drama is the rise of YouTube-based agitators, activists and influencers, who both benefit from and fuel a new brand of populism. The effects in South Korea are stark – but the trend is global.
An extremely online constituency
In South Korea’s 2022 election, Yoon trailed his opponent for much of the campaign. His aggressive populist politics drew some support, but he looked set to fail.
Then he found a new constituency – a group of active and partisan young men focused on abolishing the 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 These agitators used YouTube and other platforms to broadcast their mes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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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ong with traditional conservative voters, this crowd enabled Yoon to achieve a narrow win and control of South Korea’s most powerful political position. He then duly abolished the gender ministry, saying structural sexism was “a thing of the past”.
After gaining power, Yoon issued arrest orders for several of his perceived political opponents. Among these was Kim Eo-Jun, a critical and inflammatory YouTube journalist, and a polarising populist figure tied to liberal politics. Kim’s weekly videos broadcast news, guest interviews and caustic commentary to millions of active followers.
We have grown used to the idea that social media platforms influence democratic processes by spreading news and analysis and directing users’ attention by recommending particular content. However, the increasing political visibility of platform actors such as Kim suggests the influence is becoming more direct.
Platforms for populist news and views
Social media platforms provide access to a wide range of news and media producers, from legacy outlets to independent commentators at the furthest edges of the political spectrum. However, not all of the news gets equal attention.
Research shows, at least in South Korea, false news gets more likes and interactions than verifiable news. “Real news” tends to receive dislikes and derision.
More South Korean research shows citizens may use platforms to seek out conspiracy theories and pour scorn on disliked political groups or decisions. Users also notoriously direct hate towards issues such as women’s rights.
These problems are not limited to South Korea. Polarising and populist news and analysis is a global phenomenon.
Trust in traditional news media is declining, in part due to fears it is aligned with elite and powerful figures. These fears are often confirmed by social media influencers who are seeking to become the new opinion leaders.
Online influencers are great vehicles for populist politics. They have intimate connections with their viewers, tend to suggest simplistic solutions, and usually resist accountability and fact checking.
Platforms are often more likely to recommend polarising and even radicalising content to viewers, crowding out more balanced content.
Platforms for journalism?
However, these polarising figures are not alone in these spaces. Veteran journalists and newcomers are adjusting to platforms while still providing reliable information.
On YouTube, former mainstream journalists, such as Australia’s Michael West and the American Phil Edwards, have amassed followings while blending personal and casual content with more traditional journalism.
Non-journalists, such as Money & Macro and the English Tom Nicholas, have expanded their influence through adopting some core journalistic practices. They produce content that investigates, explores and explains current affairs news and analysis with the support of their many viewers.
These YouTube news influencers show journalistic content can contribute to the new news media ecosystem and attract large audiences without relying on populist and polarising content.
“Newsfluencers” producing journalism on platforms, such as YouTube, tailor their content to the conventions of the platforms.
Newsfluencers and the future
Newsfluencers often film in informal settings rather than traditional sets, and build a casual rapport with their audience. They leverage “authenticity”, going out of their way to “avoid looking like polished corporate media”.
Their multiple revenue streams include ads, sponsors, merchandise and, most importantly, direct audience contributions. These contributions may come via memberships or via third-party platforms such as Patreon and Substack.
Even major news organisations such as Australia’s ABC have begun adopting YouTuber norms. While produced under the aegis of the national broadcaster, the current affairs podcast If You’re Listening, for example, significantly out-performs traditionally formatted content with its casual style and focus on giving the audience what it wants.
In South Korea, YouTube channels such as VoiceOfSeoul make similar moves, combining street coverage with informal talk-show panels and investigative journalism. OhMyTV weaves together YouTuber and breaking news styles, and carries hyperlinks for personal contributions and sponsorships.
At the same time, legacy media such as KBS maintains a strong following through TV and portal sites like Naver. However, KBS’s conventional format struggles to achieve comparable viewership on these increasingly dominant platforms where these unconventional journalists have managed to thrive.
There is a clear space for journalism on YouTube and similar platforms. However, it will need to adapt.
As the South Korean experience shows, the time may be coming when platform journalism is vital for democracy.
Media
Politics
YouTube
South Korea
Populism
Influencers
South Korea 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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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ha Ketc
탄핵 가결에 춤추다 눈물…그 77세 "노인들 미워만 하지말라" | 중앙일보
탄핵 가결에 춤추다 눈물…그 77세 "노인들 미워만 하지말라" | 중앙일보
탄핵 가결에 춤추다 눈물…그 77세 "노인들 미워만 하지말라"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4.12.19
정세희 기자
김창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국회에서 가결되자 환호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눈물을 터뜨린 이승방(77) 할아버지가 영국 BBC 카메라에 포착됐다. BBC뉴스 코리아 캡처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전후 탄핵 집회에서 2030 젊은층의 참여가 두드러졌지만, 1979년 말부터 이듬해 5·18까지 실제 비상계엄을 경험했던 60대 이상 시민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모습에 감동하면서도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을 털어놨다.
이승방(77) 씨는 탄핵 가결일인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20만명 이상이 모인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가 영국 BBC뉴스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그가 가수 소녀시대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가결 소식에 왈칵 눈물짓는 모습이 담겼다. 현장에서 이씨를 인터뷰한 BBC 기자가 X(옛 트위터)에 “1947년생 이승방 선생님을 아시는 분 있습니까”라며 “급하게 이동하느라 깊은 이야기를 못 들었다. 그를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해달라”고 글을 올리면서 온라인에서 뉴스 영상이 더 퍼졌다.
서울 강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승방(77) 할아버지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는 모습. 정세희기자
17일 서울 강동구에서 만난 이씨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 중 한 명으로 촛불을 들었는데 마침 카메라가 있어 담겼을 뿐”이라며 “누구라도 탄핵안 통과 당시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25 전쟁 이후의 참화, 4·19 혁명, 80년대 민주화운동 등 직접 겪었던 굴곡진 현대사가 흑백 영화처럼 떠올랐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4·19 혁명 당시 고등학교 선배들을 따라 시위에 나섰다는 그는 “경무대(현 효자동 구 청와대) 인근에서 들렸던 총소리도, 시민들이 트럭에 올라타 독재 타도를 외쳤던 절규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65학번인 그는 신입생 때 ‘한일청구권 협정 반대 운동(65~65년)’에도 참여했다. 그는 “과거에도 계엄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 등 축제 같았던 이번 집회에 대해 이씨는 “소녀시대 노래는 잘 몰라도 한국은 흥의 민족이니 자연스럽게 덩실거리게 됐다”며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대견하고 대한민국이 어떠한 위기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또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기성세대가 정치 선택을 잘해야 했는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노인들을 미워만 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영훈씨가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여의도 탄햅 집회에 참여한 모습. 본인 제공
김상우씨가 14일 여의도 탄햅 집회에서 지인들과 응원봉을 들고있는 모습. 본인 제공
이씨처럼 1980년 계엄을 경험했던 이들의 심경은 다소 복잡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정영훈(64)씨는 지난 3일 밤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택시를 타고 국회로 달려왔다고 했다. 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남 목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며 “겁은 났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뭐든 역할을 해야겠다 싶어 비상식량까지 싸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상우(63)씨는 “80년 계엄 땐 대학교 1학년이라 직접 행동하지 못해 친구, 선후배들에게 늘 빚진 마음이었다”며 “청년 때 계엄군이 시민들을 총으로 쏜 장면이 떠올랐는데 ‘이젠 나이가 60이 넘었으니까 총을 맞아도 미련이 없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했다. 광화문에서 만난 박모(76)씨는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계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벌벌 떨 수밖에 없다”며 “국민이 8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층과 생각을 공유한 것이 의미있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라는 편견도 사라졌다. 촛불이 아닌 오색 응원봉을 들고, 민중가요 대신 대중가요가 나오는 집회가 낯설지만 건강하고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김순자(68)씨는 “유튜브에서 나오는 노래는 들었는데, 너무 빨라서 따라 하진 못하고 박수만 많이 쳤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남녀노소가 참여한 이번 집회가 세대 간의 편견을 줄이는 화합의 기능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탄핵 찬성 집회자 중 노인층은 일부였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 것을 몸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중장년세대가 자신들의 경험을 전달하고 나아갈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만 광화문에 남은 노인들도 여전히 있기 때문에 갈라진 사회가 가져올 상처 등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1146
탄핵 가결에 춤추다 눈물…그 77세 "노인들 미워만 하지말라"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4.12.19
정세희 기자
김창용 기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탄핵소추안이 지난 14일 국회에서 가결되자 환호하는 시민들 사이에서 눈물을 터뜨린 이승방(77) 할아버지가 영국 BBC 카메라에 포착됐다. BBC뉴스 코리아 캡처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전후 탄핵 집회에서 2030 젊은층의 참여가 두드러졌지만, 1979년 말부터 이듬해 5·18까지 실제 비상계엄을 경험했던 60대 이상 시민의 참여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젊은 세대가 민주주의를 외치는 모습에 감동하면서도 기성세대로서 미안한 마음을 털어놨다.
이승방(77) 씨는 탄핵 가결일인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 20만명 이상이 모인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가 영국 BBC뉴스 카메라에 포착돼 화제가 됐다. 그가 가수 소녀시대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다가 가결 소식에 왈칵 눈물짓는 모습이 담겼다. 현장에서 이씨를 인터뷰한 BBC 기자가 X(옛 트위터)에 “1947년생 이승방 선생님을 아시는 분 있습니까”라며 “급하게 이동하느라 깊은 이야기를 못 들었다. 그를 아는 사람 있으면 제보해달라”고 글을 올리면서 온라인에서 뉴스 영상이 더 퍼졌다.
서울 강동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승방(77) 할아버지가 중앙일보와 인터뷰 하는 모습. 정세희기자
17일 서울 강동구에서 만난 이씨는 “집회에 참여한 시민 중 한 명으로 촛불을 들었는데 마침 카메라가 있어 담겼을 뿐”이라며 “누구라도 탄핵안 통과 당시엔 그런 표정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25 전쟁 이후의 참화, 4·19 혁명, 80년대 민주화운동 등 직접 겪었던 굴곡진 현대사가 흑백 영화처럼 떠올랐다고 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4·19 혁명 당시 고등학교 선배들을 따라 시위에 나섰다는 그는 “경무대(현 효자동 구 청와대) 인근에서 들렸던 총소리도, 시민들이 트럭에 올라타 독재 타도를 외쳤던 절규도 또렷이 기억난다”고 말했다. 연세대학교 65학번인 그는 신입생 때 ‘한일청구권 협정 반대 운동(65~65년)’에도 참여했다. 그는 “과거에도 계엄을 경험했지만 이번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고 했다.
아이돌 노래를 부르는 등 축제 같았던 이번 집회에 대해 이씨는 “소녀시대 노래는 잘 몰라도 한국은 흥의 민족이니 자연스럽게 덩실거리게 됐다”며 “젊은 친구들을 보면서 대견하고 대한민국이 어떠한 위기도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또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기성세대가 정치 선택을 잘해야 했는데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노인들을 미워만 하지 말고 대한민국의 저력을 믿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영훈씨가 지난 14일 윤석열 대통령 여의도 탄햅 집회에 참여한 모습. 본인 제공
김상우씨가 14일 여의도 탄햅 집회에서 지인들과 응원봉을 들고있는 모습. 본인 제공
이씨처럼 1980년 계엄을 경험했던 이들의 심경은 다소 복잡했다. 경기도 안양에 사는 정영훈(64)씨는 지난 3일 밤 계엄 소식을 듣자마자 택시를 타고 국회로 달려왔다고 했다. 정씨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전남 목포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겪은 이후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줄 알았다”며 “겁은 났지만 민주주의를 위해 뭐든 역할을 해야겠다 싶어 비상식량까지 싸 들고 나왔다”고 말했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김상우(63)씨는 “80년 계엄 땐 대학교 1학년이라 직접 행동하지 못해 친구, 선후배들에게 늘 빚진 마음이었다”며 “청년 때 계엄군이 시민들을 총으로 쏜 장면이 떠올랐는데 ‘이젠 나이가 60이 넘었으니까 총을 맞아도 미련이 없다’는 생각에 나왔다”고 했다. 광화문에서 만난 박모(76)씨는 “그 시절을 살아보지 않으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계엄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벌벌 떨 수밖에 없다”며 “국민이 80년간 쌓아온 모든 것이 무너질까 걱정했다”고 말했다.
세대를 뛰어넘어 젊은층과 생각을 공유한 것이 의미있었다고 이들은 입을 모았다. 특히 젊은이들이 정치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라는 편견도 사라졌다. 촛불이 아닌 오색 응원봉을 들고, 민중가요 대신 대중가요가 나오는 집회가 낯설지만 건강하고 바람직하다는 취지다. 서울 강남구에서 온 김순자(68)씨는 “유튜브에서 나오는 노래는 들었는데, 너무 빨라서 따라 하진 못하고 박수만 많이 쳤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남녀노소가 참여한 이번 집회가 세대 간의 편견을 줄이는 화합의 기능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병훈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탄핵 찬성 집회자 중 노인층은 일부였지만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은 세대를 가리지 않는 것을 몸소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집회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됨에 따라 중장년세대가 자신들의 경험을 전달하고 나아갈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다만 광화문에 남은 노인들도 여전히 있기 때문에 갈라진 사회가 가져올 상처 등에 대해 더 고민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출처:중앙일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301146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 이병훈 | 창비 - 교보ebook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 이병훈 | 창비 - 교보ebook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국내도서13,500원
eBook9,450원
이병훈 , 이주환 , 강은애 , 홍석범 , 김종진 지음 | 박진희 사진
창비출판사SHOP 바로가기
2015년 02월 06일 출간
국내도서 : 2013년 1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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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된 감성태그가
없습니다eBook 상품 정보파일 정보ePUB (11.62MB)ISBN9788936403324지원기기교보eBook App, PC e서재, 리더기, 웹뷰어교보eBook App듣기(TTS)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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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소개
책소개목차책 속으로출판사 서평
이 상품이 속한 분야eBook > 정치/사회 > 사회문제/사회복지
수상내역/미디어추천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3년 11월 1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서울신문 > 2013년 11월 1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13년 11월 2주 선정
‘을 중의 을’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르포르타주
특수고용노동자 이야기『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이 책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증언하는 특수한 노동의 면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들은 11명의 특고노동자들이 구술한 녹취기록을 꼼꼼히 기록하고 현재 노동 현실과 일터에서의 문제점, 생애, 미래의 소망을 직접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제언과 경고를 던지고 있다.
이 책은 대표특수고용노동자로 학습지 교사, 간병인, 수도검침원, 텔레마케터, 헤어숍 디자이너, 방송국 구성작가, 애니메이션 작가, 영화 스태프 등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11명의 특고노동자들의 삶을 사진과 녹취로 기록하고 있다. 1부의 도입부에선 연구진이 특고 노동자들에게 받은 인상과 노동생애를 요약하며 해당 직종의 관련 정보를 간략하게 수록했다. 2부에선 녹취록을 검토하여 다섯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차례로 분석적 코딩과 해석적 논의를 시도하며 특고노동자들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운동적 숙제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병훈OFF
상세정보
대학/대학원 교수 사회학자
저자 이병훈李秉勳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노사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양극화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1, 2), International and Comparative Employment Relations(이상 공저) 등이 있다.
===
저자(글) 이주환
저자 이주환 李周桓은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사회학과에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프레임 분쟁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노동조합 간부 생활세계 연구』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 전략조직화사업 진단과 과제』(이상 공저) 등의 집필에 참여했다.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국내도서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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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훈 , 이주환 , 강은애 , 홍석범 , 김종진 지음 | 박진희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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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도서 : 2013년 11월 05일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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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경향신문 > 2013년 11월 1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서울신문 > 2013년 11월 1주 선정
미디어 추천도서 > 주요일간지소개도서 > 한겨레신문 > 2013년 11월 2주 선정
‘을 중의 을’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르포르타주
특수고용노동자 이야기『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이 책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삶과 노동 현실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증언하는 특수한 노동의 면면을 세상 사람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들은 11명의 특고노동자들이 구술한 녹취기록을 꼼꼼히 기록하고 현재 노동 현실과 일터에서의 문제점, 생애, 미래의 소망을 직접 이야기 하는 방식으로 구성하고 있다. 그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 사회의 노동시장 변화에 대한 제언과 경고를 던지고 있다.
이 책은 대표특수고용노동자로 학습지 교사, 간병인, 수도검침원, 텔레마케터, 헤어숍 디자이너, 방송국 구성작가, 애니메이션 작가, 영화 스태프 등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 11명의 특고노동자들의 삶을 사진과 녹취로 기록하고 있다. 1부의 도입부에선 연구진이 특고 노동자들에게 받은 인상과 노동생애를 요약하며 해당 직종의 관련 정보를 간략하게 수록했다. 2부에선 녹취록을 검토하여 다섯 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차례로 분석적 코딩과 해석적 논의를 시도하며 특고노동자들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운동적 숙제를 제시하고 있다.
작가정보
저자(글) 이병훈OFF
상세정보
대학/대학원 교수 사회학자
저자 이병훈李秉勳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노사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양극화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1, 2), International and Comparative Employment Relations(이상 공저) 등이 있다.
===
저자(글) 이주환
저자 이주환 李周桓은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사회학과에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프레임 분쟁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노동조합 간부 생활세계 연구』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 전략조직화사업 진단과 과제』(이상 공저) 등의 집필에 참여했다.
책소개
비정규직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로 언급되는 ‘을 중의 을’,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출간되었다. 이병훈 교수를 비롯한 4명의 연구자와 박진희 노동전문사진가가 대표적 특수고용직인 화물트레일러 기사나 학습지 교사부터 다소 낯선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와 채권추심원까지, 11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밀착해서 인터뷰하고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직접 발로 뛴 연구자들의 땀이 배어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을뿐더러 앞으로의 한국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제언과 경고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는 왜 노동자가 아닌가요?”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도급계약을 맺고 월급 대신 실적제 수당을 받는 노동자를 말한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사업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커녕 4대 보험이나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법의 보호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문서상에서는 사업자 대 사업자로 대등하게 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용자가 일방적인 ‘갑’일뿐더러 제도적 보호에서도 제외되어 중간착취,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을 중의 을’이다.
이러한 사회현실에 대해 단순히 이론적 논의로만 가득한 사회비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특고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이 책에서 묘사된 현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특히 ‘고용 없는 성장’으로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과 고학력층의 유입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지금은 100명 중 14명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지금 이 책에 주목해야 할 함의다. 특수고용 문제가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이 연구자와 노동자들의 하나같은 목소리다.
책의 일부 내용을 미리 읽어보실 수 있습니다. 미리보기
===
목차
|책머리에| 특수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엮기
1부 특수하지 않은 사람들
무수히 반복되는 이 만남들이 의미를 갖기 위하여
: 학습지 교사 정난숙씨 이야기
‘가망고지’를 개척하는 삶
: 보험설계사 이정희씨 이야기
평생을 수수료 받는 일만 해왔어요
: 요구르트 판매원 성정미씨 이야기
사회라는 무대의 주인공이고 싶다
: 채권추심원 김영수씨 이야기
노동자를 잘 대우해주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겠지요
: 간병인 김수란씨 이야기
가장에서 투사로 걸어온 캐디 인생
: 골프장 경기보조원 김경숙씨 이야기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만드는 사람
: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 배지은씨 이야기
안정된 삶보단 끊임없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 방송사 구성작가 김현주씨 이야기
‘물류의 모세혈관’이란 자부심을 지키기 위하여
: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이야기
차별에 저항하라! 와꾸를 깨뜨려라!
: 트레일러 기사 윤정구씨 이야기
매일 밤 거리의 기다림과 추위보다
업체들의 강압적인 태도가 더 힘들어요
: 대리운전 기사 이상훈씨 이야기
2부 특별한 이야기
‘특수한’ 노동자들의 워킹 라이프 김종진
울타리 밖의 노동자들 홍석범
이름 없는 노동자, 나는 누구인가 강은애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착취하게 되었나 이주환
|맺음말| 특수한 노동자들의 희망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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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이병훈 (李秉勳)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노사관계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양극화시대의 일하는 사람들』 『일의 가격은 어떻게 결정되는가』(1, 2), International and Comparative Employment Relations(이상 공저) 등이 있다.
저자 : 이주환 (李周桓)
고려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중앙대 사회학과에서 「민주노조운동 내부의 프레임 분쟁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노동조합 간부 생활세계 연구』 『민주노총 미조직 비정규 전략조직화사업 진단과 과제』(이상 공저) 등의 집필에 참여했다.
저자 : 강은애 (康恩愛)
중앙대 사회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대학에서 페미니즘 관련 과목을 가르친다. 논문으로 「돌봄 노동의 상품화 과정에 관한 연구」, 저서로 『양극화시대의 일하는 사람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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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우리는 특고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물류운송체계에 의지해 생활하며, 특고노동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만화영화를 즐기고, 특고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의 사교육을 맡긴다.--- 「그들은 어떻게 스스로를 착취하게 되었나」
우리는 학생들 만나는 순서 빼고는 일과를 다 회사에 통제당해요. 무슨 요일에는 나가서 홍보 뛰고 어떤 요일에는 무슨 서류를 내야 하고…… 사무실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죠. 모든 작업은 다 사무실에서 일정하게 정해준 대로 진행되는 거죠. 그리고 회사에서 수수료 갖고 장난질을 해서 월급이 자꾸 내려가요. 40퍼센트였던 게 38퍼센트, 35퍼센트까지 내려갔어요.--- 「학습지 교사 정난숙씨」
왜 우리 앞에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되느냐.
보통 직장인들이나 샐러리맨들하고 다르게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르잖아요.
욕 나오려고 하네…… 왜 우리가 특수하죠?---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보험 새로 가입하면 프라이팬 주고 뭐 주고 그러지요? 그런데 그런 거 절대 회사에서 나오는 거 아니에요. 선물도 제가 알아서 다 사서 드리는 거예요. 보험회사 로고 찍혀 나오는 판촉물을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우리 돈 주고 사요. 약관하고 보험설명서 같은 것만 회사 것이고 케이스 같은 것들은 2000원, 2500원 주고 다 사는 거예요. 회사는 조금이라도 손해 보는 게 없지요.--- 「보험설계사 이정희씨」
지금 최저시급이 4천 얼마인가 그렇죠? 그런데 저희는 뭐예요? 24시간 일하고 6만 5천원 받아요. 경증환자인 경우는 5만 5천원이고요. 꽁꽁 언 밥 데워 먹으면서요. 무슨 일을 해도 밥은 줘야 하고 하루는 쉬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이런 게 어디 있어요?--- 「간병인 김수란씨」
누구보다 열심히 노동하는 그들에게 ‘특수한’ 신분을 강요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들에게 어엿한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를 찾아주어야 할 때이다. 이것은 수많은 약자와 을(乙)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대한민국의 큰 숙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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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야쿠르트 아줌마부터 대리운전 기사까지
‘을 중의 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눈물!
비정규직과 더불어 대표적인 사회적 약자로 언급되는 ‘을 중의 을’, 특수고용노동자들에 대한 르포르타주가 출간되었다. 이병훈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를 비롯한 4명의 연구자와 박진희 노동전문사진가가 대표적 특수고용직인 화물트레일러 기사나 학습지 교사부터 다소 낯선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와 채권추심원까지, 11명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밀착해서 인터뷰하고 글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다양한 특수고용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직접 실려 있어 한국사회 노동의 실태에 대한 값진 기록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직접 발로 뛴 연구자들의 땀이 배어 있어 더욱 의미가 깊을뿐더러 앞으로의 한국 노동시장의 변화에 대한 제언과 경고로도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 참여한 노동자들과 연구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는 왜 노동자가 아닌가요?”
왜 우리 앞에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되느냐.
보통 직장인들이나 샐러리맨들하고 다르게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자라고 부르잖아요.
욕 나오려고 하네…… 왜 우리가 특수하죠?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사장님, 사장님 하지 마세요. 우린 노동자입니다!
우리는 노동자예요. 물건을 픽업하러 가면 콜한 데서 기사를 ‘사장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는데, 사무실에 앉아서 직원들 지시·감독하는 게 사장이지 무슨 사장이 박스 나르고 그럽니까. 저한테 사장님 소리를 하면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해요. (퀵서비스 기사 양용민씨)
특수고용노동자는 근로계약이 아닌 위임·도급계약을 맺고 월급 대신 실적제 수당을 받는 노동자를 말한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개인사업자로 간주되기 때문에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은커녕 4대 보험이나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련법의 보호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다. 하지만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명확히 종속되어 있고 사용자의 직접적인 지시와 통제에 따라 일해야 한다. 문서상에서는 사업자 대 사업자로 대등하게 계약을 맺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사용자가 일방적인 ‘갑’일뿐더러 제도적 보호에서도 제외되어 중간착취,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을 중의 을’이다.
우리는 학생들 만나는 순서 빼고는 일과를 다 회사에 통제당해요. 무슨 요일에는 나가서 홍보 뛰고 어 떤 요일에는 무슨 서류를 내야 하고…… 사무실에서 시키는 대로 해야 하죠. 모든 작업은 다 사무실에서 일정하게 정해준 대로 진행되는 거죠. 그리고 회사에서 수수료 갖고 장난질을 해서 월급이 자꾸 내려가요. 40퍼센트였던 게 38퍼센트, 35퍼센트까지 내려갔어요. (학습지 교사 정난숙씨)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로 알려진 학습지 교사나 지입차주뿐만 아니라 간병인, 수도검침원, 자동차 판매원, 텔레마케터, 학원 강사, A/S 기사, 정수기 코디네이터,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 방송국 구성작가, 애니매이션 작가, 영화 스태프, 프로야구선수 등 특고노동은 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리는 특고노동자들에게 크게 의존하는 물류운송체계에 의지해 생활하며, 특고노동자들의 손끝에서 만들어진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만화영화를 즐기고, 특고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의 사교육을 맡긴다. 정부에서는 공식적으로 특고노동자의 수를 55만여명(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2013.3))에서 115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으나 국민권익위원회는 39개 업종을 기준으로 25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노동자 100명 중 14명이 특고노동자인 꼴이다.
특수하지 않은 노동자들의 특별한 이야기
부릴 때는 직원처럼 부리면서 불리하면 ‘사장’이랍니다
보험설계사, 요구르트 판매원, 학습지 교사, 이들은 모두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고 매일 실적 보고를 해야 한다. 영업점에서는 목표매출을 맞추라고 닦달을 한다. 그러면서도 보험을 판촉할 때 주는 프라이팬 같은 사은품이나 심지어는 회사 마크가 찍힌 파일홀더마저 개인이 구입해야 한다. 요구르트 판매원은 시음용 음료를, 학습지 교사는 아이들에게 선물하는 학용품을 사비로 구입해야 한다. 지입차주들은 차량은 운수업체 명의로 등록되어 있으면서도 차량 유지보수비나 유류비는 몽땅 자신이 부담해야 하지만 콜센터나 중개업체의 말 한마디에도 실업자가 될 수 있는 신세다.
밥 먹을 곳도 잠시 쉴 곳도 없어요
일주일, 하루 24시간 내내 간이침대에서 환자의 곁을 지켜야 하는 간병인은 식사를 할 곳도, 옷을 갈아입을 공간도 없다. 밤거리의 추위를 은행 24시간 코너에서 견디는 대리운전 기사나 대낮의 공원에서 배회하는 퀵서비스 기사도 휴게 공간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프랜차이즈 헤어숍 디자이너들은 기본 10시간을 서서 일해야 하고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한다. 방송국 구성작가들은 새벽 서너시까지 일을 하거나 방송국에서 밤을 새우기 일쑤지만 방송국에는 다리 펼 곳도 모자란다. 기본적인 식사 문제나 휴게공간의 부족은 대부분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겪는 문제다.
다쳐도 모두 저희 책임이에요
골프장 경기보조원들은 전화번호부도 뚫을 만큼 빠른 골프공이 날아다니는 필드에서 위험을 무릅쓰고 이용객을 보조한다. 팀 간 간격을 넉넉하게 유지해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지만 회사에서는 가능한 한 이용객을 빨리 회전시키기 위해 경기 속도가 느리면 보조원을 징계한다. 그러다 골프공에 맞아도 회사에서는 아무것도 보상해주지 않는다. 화물트레일러·대리운전·퀵서비스 기사 역시 사고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하루에 열두시간 이상 차를 몰다가 운전석에서 잠깐 눈을 붙인 사이 과로로 사망하는 트레일러 기사도 있고, 취객의 폭행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대리운전 기사도 있다. 환자와 24시간 일하는 간병인은 병이 옮아도 산재 처리는커녕 치료까지 모두 본인 책임이다. 병원에서는 예방주사 한대 놔주지 않는다. 실제로 2011년 한 대학병원에서는 에이즈 환자의 링거에 찔린 간병인에게 병원이 초기 응급조치를 거부한 사례가 있다.
벌이는 계속 줄어드니 더 오래 일할 수밖에 없어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서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으로 부족한 수입을 벌충하고 고용불안을 해소하려고 한다. 주말에도 PDA 단말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투잡, 스리잡을 하며 자신을 혹사하는 것은 흔한 풍경이다.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삭감당하거나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항상 시달리기 때문이다. 저임금과 고용불안이 특고노동자들의 자기착취를 심화시킨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특고노동자의 노동자성은 계속해서 법적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법원에서는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화물노동자,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을 근로자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바 있으나 재판부와 사업장에 따라 서로 엇갈린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잦기 때문에 여전히 개개인이 노동자로 인정을 받으려면 개별적으로 소송을 하는 수밖에 없다. 지난 10월 17일 서울고법에서 한원골프장 골프장 경기보조원(캐디)의 해고무효소송에서 근로자성과 노조원 지위도 인정해 해고를 무효로 판결한 것이 가장 최근의 판례이다.
2007년과 2012년의 법 개정을 통해 특고노동자 6개 직종(레미콘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보험설계사, 퀵서비스 기사, 택배 기사)은 산재보험에 가입할 수 있게 되었지만 2013년 국감에서는 가입율이 9.6%에 그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특고노동자의 수를 아주 보수적으로 추산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산재보험 가입율은 2%에도 못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의무가입이 아닐뿐더러 노동자와 회사가 보험료를 반씩 부담하게 되어 있어 사업장에서 가입을 막기 때문이다. 유명무실한 제도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이다.
특수고용 문제는 한국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고용유연화를 앞세워 간접고용·특수고용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06년 이를 ‘위장된 고용관계’(disguised employment relations)라고 칭하며 각국의 정부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ILO의 권고에 따라 독일·프랑스·영국·오스트리아 등의 유럽국가에서는 특고노동자들을 유사근로자로 규정하여 별도의 노동법으로 보호하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비교적 수준이 낮은 노사 간의 협상을 통한 단체협약으로 이들을 보호하고 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해 미국과 일본은 법원의 개별적인 판결에 의존하여 보호 여부를 결정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지금 가장 뜨거운 문제, 특수고용노동!
기업들은 노동비용을 절감하고 사업 위험을 절감하기 위해 고용유연화라는 명목으로 매년 특수고용 종사자의 규모를 늘리고 있다. 이들은 66%가 여성, 57%는 기혼여성으로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취약계층이 대부분이다. 2011년 생활고에 시달리다 숨진 최고은 작가의 사망으로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문화예술인 복지 문제 역시 이들 다수가 특수고용형태로 고용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특수고용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의 2076일에 걸친 오랜 투쟁이나 화물연대 등의 파업을 통해 특수고용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지는 어느덧 10여년이 넘었다. 하지만 관련 법안이나 정책은 미미한 수준의 개선에 그쳤을 뿐이다.
2013년 1월 국민권익위원회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권익보호 등에 관한 법률’의 제정을 다시금 권고했지만 국회 차원의 개선 방안 논의는 요원해 보인다. 이 책에 등장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우리는 왜 노동자가 아니냐’며 울분을 토한다. 필자들은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노동조합법과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이것이 당장 어렵다면 독일 등의 유사노동자 보호법을 본보기로 특별법을 우선적으로 추진하는 것도 해결책 중의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노동하는 그들에게 ‘특수한’ 신분을 강요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제도와 관행을 고쳐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는 ‘특수’라는 수식어가 붙은 그들에게 어엿한 노동자의 지위와 권리를 찾아주어야 할 때다.
이 책은 이론적 논의로만 가득한 사회비평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 특고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담았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특히 이 책에서 묘사된 현실은 남의 이야기가 아니며 특히 ‘고용 없는 성장’으로 극심한 취업난에 시달리는 젊은 층과 고학력층의 유입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지금은 100명 중 14명이지만 앞으로는 이런 형태가 일반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가 지금 이 책에 주목해야 할 함의다. 특수고용 문제가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에서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라는 것이 연구자와 노동자들의 하나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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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리뷰 (3건)
리뷰 총점7.4/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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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평점8점 | g******1 | 2014-04-10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7650335
문제는 항상 누군가의 희생위에 다른 누군가의 아늑한 삶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개발도상국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살던 시절, 수많은 공장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되었던 것처럼, 지금 우리 이 저속 성장의 늪에서 구조적으로 보호받아야할 장치에서 소외된 채 사회 구석구석에서 경제를 움직이는 밑불이 되는 을 중의 을이 있다. 이들은 저성장과 사회안전망의 해체라는 덫에서 위태롭게 흔들거리는 우리 사회를 그나마 멈추지 않고 덜그럭거리며 굴러가게 하는 데 일조하는, 사장님도 아닌, 노동자도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라는 계층이다. 이 책은 노동문제 전문 연구원들과 노동전문사진기자가 그들의 삶을 밀착 취재하여 직접 그 목소리를 담은 책이다. 네 명의 공저자가 각자 분석한 논문을 함께 실었다. 그들 개인의 목소리는 담담하고 차분하다.
2012년 12월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노동자 중 특수고용노동자의 비율은 14%다. 성비는 여성 66%. 기혼여성 57%로 기혼 여성이 압도적이다. 책 제목처럼 특수고용노동자는 자영업자와는 달리 자기 점포나 작업장을 가진 사장님도 아니고, 회사 시스템 내에서 노동의 일부를 담당하며 월 단위의 보장된 급여와 노동법의 보호 내에 있는 노동자도 아니다. 이들은 기업과 노무공급계약을 맡고 일하는 개인 사업자다. 그들은 회사에 출근을 하여 출근 도장을 찍고 성과에 따라 줄을 서거나 동일 시장 내에서 파이 조각의 크기를 가지고 경쟁한다. 실제 노동 과정은 종속노동 관계의 굴레에 묶여 있지만 시스템 내의 구성원으로서 가질 수 있는 보호막은 없다.
이들의 활약은 우리의 삶 구석 구석에서 눈부시다. 우선 이 책에는 소개되어 있지 않지만, 빠르고 저렴한 택배 시스템은 오픈마켓과 온라인백화점, 방송홈쇼핑 등의 온라인 시장의 동력이다. 상품이 제아무리 값싸고 좋아도, 빠르고 저렴한 배송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오늘날과 같은 온라인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저렴한 대리운전은 자가운전자들의 음주 운전을 방지하고, 술집과 유흥업소 매출을 돕는다. 학습지 교사들은 고비용의 과외가 허용되지 않는 아이들의 기초 학력 향상에 기여한다. 오바마가 그리도 부러워하는 한국인의 빠른 셈과 기초과학능력은 아마도 집집마다 하루 10분씩 이 분들의 방문으로 점검되는 보이지 않는 방문의 힘이 컸을 것이다. 요구르트 판매원은 매일 마트에 가지 않고도 가족의 정기적인 유제품 섭취를 돕는다. 합법적인 채권추심원은 도덕성이 결여된 우리 사회 금융질서를 유지시킨다. 간병인은 간호사와 보호자가 하지 못하는 24시간 환자 돌보미 일을 도맡아 한다. 골프장 경기보조원은 골퍼들의 허세만 채워주는 게 아니라 골프장 순환을 빠르게 유지시킨다. 프랜차이즈 미용실 디자이너, 방송구성작가들은 특정 회사 직원처럼 회사의 시스템 내 구성원으로서 주요 역할을 하지만 단지 시스템의 통제만 받을 뿐 법적으로는 개인과 시스템 사이 계약 관계에 있는 전문인들이다. 위태로운 곡예운전 퀵서비스 기사들은 우리나라 물류의 모세혈관이고 주요 도시의 고속도로를 오가는 트레일러 기사들은 물류의 핵심 축을 이룬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을 노동자라고 생각하지만 관련 업체들은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 중 대다수는 엄연히 업주들의 체계적인 관리 내에, 업주의 고용 질서 내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이지만, 실제로 노동자 집단의 경계 바깥쪽에 있다. 이들 중 일부는 개인사업자지에 가깝지만 중계업자의 통제 하에 가격과 수수료율에서 자유업자로서의 권리를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때때로 이들은 고소득이라는 닿기 어려운 희망을 쫓아 자신과 연결된 모든 인간 관계를 동원하여 업체의 상품을 팔지만, 단물만 빨아간 회사에서 쓴물이 나올 때 버틸만한 여건이 안된다. 출퇴근 도장을 찍으면서도 그 회사 직원이 아닌 위치. 개별 임금 협상을 금지시킨 채 고정된 연봉제 체계 내에서 거의 24시간을 구속되어 일하면서도 방송국 직원이 아닌 프리랜서인 신세. 그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은 극단적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며 좀 더 노력하면 손에 넣을 것 같은 희망을 품는다. 보험설계사 이정희씨의 16명의 동기들 중 현재 남은 이는 4명 뿐이다.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극소수다. 특수 고용직 노동시장은 능력과 운에 따라 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단물 빨리고 경계 밖으로 내쫓기는 구조다. 낮은 진입장벽 덕에 빈자리는 금세 채워진다. 268
방송구성작가는 최소한의 자유도 없이 하루 종일 방송국에 매어 있고 작가들끼리 연차별로 끊어서 지급되는 고정 임금을 받고 있으면서도, 계약 조건을 조정할 수 없는 기형적이고 차별적 형태의 프리랜서로 고용되어 있다. 이들 구성 작가로서의 대망의 꿈을 안고 몇 해동안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다가 일을 그만두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이상한 프리랜서는 캐디도 마찬가지이다. '프리랜서' 라는 직업적 명칭이 갖는 자유는 커녕 일반 노동자들이 갖는 만큼의 자유도 없는 게 현실이다. 자유로이 근무시간을 정하는 것은 물론 쉬는 날도 없다. 진정 프리랜서라면 내장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캐디피를 흥정할 수 있는 자유도 있어야 하겠지만, 순번에 따라 내장객을 배정받고, 캐디피도 정해진 만큼만 받을 수 있다.
조금 더 자유롭게 일하는 퀵서비스나 대리기사, 트레일러 기사들의 경우 사업주의 권력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설계된 약탈적 구조의 시스템 속에서 일한다. 콜센터, 중개업체, 프로그램사, 단말기 업체, 통신사, 보험료 등 이들의 순수한 노동력에 기생하는 숱한 비용을 제하고 나면, 바로 탐욕스런 중계회사의 수수료율의 농간, 존재하지 않는 오더에 응하는 실수를 이용해 패널티 수수료를 착취하는 뻥오더, 갑과을의 종속 관계 속에서 파생되는 갖가지 구조적이고 악의적인 문제들에 직면해있다. 중계회사의 업체에 대한 통제 권력에 복속되어 있지만 다수의 특수고용직 종사자들은 동료들과 서로 고립되어 있다. 동료들이 같은 밥그릇을 앞에 두고 서로 차지하려는 경쟁자이기 때문에 연대를 형성하기 어렵고, 함께하는 직업적 정체성을 확인하기 어렵다. 이런 구조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저 열심히 날마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할 뿐이다.한편, 심각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조건은 사회적으로 의미있는 일을 하면서 정직하게 수입을 얻고 있다는 자부심을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법은 이들을 외면하고, 사회는 이들을 이용하고, 먹고 살 방법을 찾아 표류하는 개인은 낮은 장벽의 특수고용노동종사자가되어 조직 내에서 소외된 채, 파이 조각의 크기를 가지고 동료들과 경쟁하느라 아주 작은 권리를 찾기 위한 연대조차도 어렵다. 이것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이다. 언제쯤, 사회는 대략 공평해질까.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우리의 아이들이 이 구조에 타협하고 안착하는 지점은 어디쯤 될까.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 것일까
6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공감6 댓글 9접어보기
종이책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평점8점 | t**********3 | 2017-10-01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9888972
사장님도 아니야 노동자도 아니야
이 책에 관해 간단히 소개하면 1부에서는 특수고용노동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각각 자신의 직업에 대한 불만이 다양하게 나오고 작가의 생각이 2부에서 나온다. 또한 이 책에 나오는 직업은 우리들이 흔히 접하기 쉬운 요구르트 아줌마, 학습지 교사부터 접하기 어려운 채권추심원, 골프장 경기보조원까지 아주 다양하다.
이 중에서도 접하기 쉬운 학습지 교사와 접하기 어려운 골프 경기 보조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먼저, 학습지 교사는 어렸을 때 경험해보았고 대부준의 아이들도 어렸을 때 다양한 학습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학습지 교사는 돈도 많이 벌고 안정적인 직업인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습지 교사들의 임금은 150~170만원 정도였다. 하지만 예전에는 200만원 이었단다. 그러나 점점 수수료가 낮아져서 월급이 줄어드는 추세이다. 또 학생들의 생일이거나 뇌물성 선물 등등 영업에 관한 아이들 선물은 원래는 회사에서 지급되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끊기기 시작했고 이젠 선생님들이 직접 사비로 구입해서 주게 되었다. 그러니 결국 받는 월급은 더 적어지는 것이다.
초반에는 학습지 열풍이 불어 너도나도 신청해서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돌아다녔다. 그때는 몸은 힘들었지만 그만큼 들어오는 돈이 있어 괜찮았다. 하지만 요즘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 요즘은 몸은 덜 힘들게 되었지만 행복하지는 않다.
학습지 교사는 작업환경도 열악하고 어려운데 먼저 신청한 학생들의 학습지를 큰 가방에 가득 담고 많으면 2개씩보통은 1개씩 들고 차로 이동하는 선생님들은 그나마 나은 실정이지만 대중 교통을 이용하는 선생님들은 어깨, 허리에 무리가 가서 다치기 쉽다. 이렇게 힘들더라도 선생님 대접을 제대로 받는다면 괜찮겠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학습지 교사는 선생님으로 여기지 않는 점이 더욱 힘들게 한다.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개선하고자 노조가 있지만 아직 개선된 점은 없고 회비를 모아 모임하는게 다이다. 그러나 앞으로 더욱 열심히 활동해 개선해 나갈 것이라고 한다.
다음은 접하기 어려운 골프 경기 보조원이다. 이 직업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필드에서 있을때는 공을 주우러 다니거나 손님들이 불편해하시는 것을 전반적으로 해결을 해주는 직업이다.
골프 경기 보조원 중에서도 제일 말단인 캐디의 차별 대우는 매우 심하다. 한 캐디는 경기보조원 일을 하던 중 날아노는 골프공을 막으려다 손이 부러진 적도 있다. 캐디를 다치게 한 손님은 치료비로 20만원을 던져주고 갔지만 치료비는 40만원이 나왔다. 하지만 힘 없는 직업이다 보니 말도 못하고 그냥 넘어갔다.
한번은 정년을 핑계로 갑작스럽게 12명을 자른적도 있다. 그 이유는 손님들이 젊은 여성 캐디 즉, 경기보조원을 원해서 어쩔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대우를 받으면서 받는 경기보조원의 임금은 1일 18홀에 3천원이다. 즉 계산해보면 월급은 최소 9만원에서 최대 18만원, 보통 13~15만원이다.
이 얼마안되는 돈을 받기위해 부당한 대우,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 캐디들은 결국 일어났고 노조를 설립했다. 이런 노조를 설립하기 전에는 노조를 만든 경험도 노조를 만들려는 분위기도 없어서 노조를 만들려 할 때 회사측의 압박과 눈치가 있었지만, 점점 불만들이 많아지고 바라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자연스럽게 노조가 형성되었다.
이렇게 생긴 노조는 회사측에 의사를 전달하게 되고 회사측은 노조의 말을 수용하며 환경이 점점 바껴가고 있는 추세이다.
이 책에 나오는 사건들처럼 열악한 환경, 부당한 대우, 점점 들어드는 임금 등에 대해 정부가 조치를 취해줬으면 좋겠고 지금도 열심히 더 나은 환경과 더욱 정당한 임금을 받기 위해 싸우는 노조분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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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책 엿같은 노동 현실
평점6점 | YES마니아 : 로얄 l*****1 | 2013-11-14 | 신고
원문주소 : https://sarak.yes24.com/review/7475270
회사에서 일을 하지만 회사의 직원이 아닌 사람들이 있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다.
기존 한국사회가 고도성장사회일 때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수입은 그럭저럭했다.
하지만 지금 사회안전망이 무너지고 사회의 경제 성장이 침체된 요즘
회사로부터 어떠한 보장도 받지 못하는 이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책의 대부분의 내용은 인터뷰한 것으로 채워져있다.
학습지 교사나 트레일러 기사, 대리기사, 헤어숍 디자이너 등이다.
충분히 알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일한 만큼 번다고 그것이 정당한 것일까?
분명 회사는 이들 특수고용노동자를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카드로 이용하고 있다.
자본주의의 비용절감 앞에서 인간은 수단이 된다. 고용유연성은 회사에게나 좋은 일이다. 사회안전망이 없는 이 사회에서는 누구나 살얼음 상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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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s KHNP says its consortium wins $2 billion Romania nuclear project | Reuters
South Korea's KHNP says its consortium wins $2 billion Romania nuclear project | Reuters
South Korea's KHNP says its consortium wins $2 billion Romania nuclear project
By ReutersDecember 19, 20247:22 PM GMT+10:30Updated 2 days ago
Companies
Doosan Enerbility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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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undai Engineering & Construction Co L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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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C&T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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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Dec 19 (Reuters) - South Korea's nuclear power plant operator Korea Hydro & Nuclear Power (KHNP) said on Thursday its consortium had won a project worth about 1.9 billion euros ($2 billion) to refurbish a nuclear power plant in Romania.
KHNP said in a statement it had signed the contract to refurbish Cernavoda Nuclear Power Plant's Unit 1, which aims to ensure the operation of the unit for another lifecycle.
The consortium which will start work in February 2025, consists of the original supplier of the unit's reactor technology, Candu Energy, Ansaldo Nucleare S.p.A, as well as KHNP, which will oversee the execution including replacement of major components and construction of infrastructure such as a radioactive waste storage facility.
KHNP's share of the project will be about 840 million euros.
It will work with South Korean firms such as Doosan Enerbility (034020.KS), opens new tab, Hyundai E&C (000720.KS), opens new tab, and Samsung C&T (028260.KS), opens new tab to carry out the contract, KHNP said.
($1 = 0.9617 euros)
South Korea's KHNP says its consortium wins $2 billion Romania nuclear project
By ReutersDecember 19, 20247:22 PM GMT+10:30Updated 2 day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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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ung C&T Co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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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OUL, Dec 19 (Reuters) - South Korea's nuclear power plant operator Korea Hydro & Nuclear Power (KHNP) said on Thursday its consortium had won a project worth about 1.9 billion euros ($2 billion) to refurbish a nuclear power plant in Romania.
KHNP said in a statement it had signed the contract to refurbish Cernavoda Nuclear Power Plant's Unit 1, which aims to ensure the operation of the unit for another lifecycle.
The consortium which will start work in February 2025, consists of the original supplier of the unit's reactor technology, Candu Energy, Ansaldo Nucleare S.p.A, as well as KHNP, which will oversee the execution including replacement of major components and construction of infrastructure such as a radioactive waste storage facility.
KHNP's share of the project will be about 840 million euros.
It will work with South Korean firms such as Doosan Enerbility (034020.KS), opens new tab, Hyundai E&C (000720.KS), opens new tab, and Samsung C&T (028260.KS), opens new tab to carry out the contract, KHNP said.
($1 = 0.9617 euros)
국제 인권단체 “이스라엘, 가자에 고의로 물 끊어 집단학살”
국제 인권단체 “이스라엘, 가자에 고의로 물 끊어 집단학살”
국제 인권단체 “이스라엘, 가자에 고의로 물 끊어 집단학살”
입력2024.12.20.
박병수 기자
19일(현지시각)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가자 중부 도시 데이르알발라의 저잣거리에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려는 주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국제 인권단체인 인권감시기구(HRW)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일부러 물 공급을 끊어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인권감시기구는 19일(현지시각) 179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어 “2023년 10월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 당국이 의도적으로 가자 주민이 생존에 필요한 양의 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정수 처리장의 태양광 패널과 저수지 등을 포함한 인프라 시설을 고의로 파괴했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이 전기 공급을 끊고 수리공을 공격하고 수리를 위한 부품 등 물자가 가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고 밝혔다.
인권감시기구 티라나 하산은 비비시(BBC) 방송에 “이것은 단순한 태만이나 실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몇천명을 물 부족으로 죽게 만드는 계산된 정책의 결과이며, 절멸을 노린 인류에 반한 죄이며 대량학살 행위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인권감시기구는 이번 보고서를 위해 가자 주민 66명, 수도 관련 종사자 4명, 보건 및 의료 전문가 31명, 유엔 등 국제기구 인원 15명을 인터뷰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9월까지 위성 영상과 기타 자료를 분석했다.
인권감시기구는 그 결과 가자에 공급되는 물이 2021년 하루 한 사람당 83ℓ에서 최근 2∼9ℓ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최소 필요량 50ℓ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인권감시기구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물 공급 차단이 의도적인 행위라고 밝혔다. 의도성은 국제법상 제노사이드를 구성하는 요건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외교부 대변인 오렌 마르모르스테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은 물과 인도적 지원이 가자에 계속 들어가도록 했다”며 “보고서가 거짓으로 가득하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자 전쟁에서 제노사이드를 저지른 혐의로 이미 남아공에 의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된 상태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에서 출범한 1948년 제노사이드 협약은 제노사이드를 “의도적으로 어떤 민족이나 인종, 종교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하려 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반유대주의에서 비롯한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국제 인권단체 “이스라엘, 가자에 고의로 물 끊어 집단학살”
입력2024.12.20.
박병수 기자
19일(현지시각) 전쟁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가자 중부 도시 데이르알발라의 저잣거리에 필요한 생필품을 구하려는 주민들이 모여들고 있다. 신화 연합뉴스
국제 인권단체인 인권감시기구(HRW)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일부러 물 공급을 끊어 제노사이드(집단학살) 행위를 저질렀다”고 비판했다.
인권감시기구는 19일(현지시각) 179쪽 분량의 보고서를 내어 “2023년 10월 (가자 전쟁) 이후 이스라엘 당국이 의도적으로 가자 주민이 생존에 필요한 양의 물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스라엘이 정수 처리장의 태양광 패널과 저수지 등을 포함한 인프라 시설을 고의로 파괴했다”고 밝혔다. 또 이스라엘이 전기 공급을 끊고 수리공을 공격하고 수리를 위한 부품 등 물자가 가자에 들어가는 것을 막았다고 밝혔다.
인권감시기구 티라나 하산은 비비시(BBC) 방송에 “이것은 단순한 태만이나 실수가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는 몇천명을 물 부족으로 죽게 만드는 계산된 정책의 결과이며, 절멸을 노린 인류에 반한 죄이며 대량학살 행위에 다름 아니다”고 말했다.
인권감시기구는 이번 보고서를 위해 가자 주민 66명, 수도 관련 종사자 4명, 보건 및 의료 전문가 31명, 유엔 등 국제기구 인원 15명을 인터뷰하고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9월까지 위성 영상과 기타 자료를 분석했다.
인권감시기구는 그 결과 가자에 공급되는 물이 2021년 하루 한 사람당 83ℓ에서 최근 2∼9ℓ로 떨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가 권고하는 최소 필요량 50ℓ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다.
인권감시기구는 보고서에서 이스라엘의 물 공급 차단이 의도적인 행위라고 밝혔다. 의도성은 국제법상 제노사이드를 구성하는 요건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외교부 대변인 오렌 마르모르스테인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스라엘은 물과 인도적 지원이 가자에 계속 들어가도록 했다”며 “보고서가 거짓으로 가득하다”고 반박했다.
이스라엘은 이미 가자 전쟁에서 제노사이드를 저지른 혐의로 이미 남아공에 의해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된 상태이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에서 출범한 1948년 제노사이드 협약은 제노사이드를 “의도적으로 어떤 민족이나 인종, 종교 집단을 전부 또는 일부 파괴하려 한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에 대해 “반유대주의에서 비롯한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2024-12-20
Nuclear Silk Road: Koreanization of Nuclear Power Technology : Byung-Koo, Kim: Amazon.com.au: Books
Nuclear Silk Road: Koreanization of Nuclear Power Technology : Byung-Koo, Kim: Amazon.com.au: Books
Kindle
$10.42
Paperback
$37.42
Other New from $37.42
Nuclear Silk Road: Koreanization of Nuclear Power Technology Paperback – 5 August 2011
by Kim Byung-Koo (Author)
4.5 4.5 out of 5 stars (4)
The news out of Abu Dhabi on Dec. 27, 2009 was the direct motivation to write this book. South Korean consortium has just won the largest single nuclear power plant construction project in recent years to deliver four state-of-the-art Generation III pressurized water reactors to the United Arab Emirates. This book will bring to life the agonizing process of pursuing peaceful nuclear energy in South Korea during the last half-century for the "Atoms for Peace" dream from a poor developing country. Particular focus is placed on the localization process of nuclear power technology since 1980 from an insider's view. This case study on the Korean nuclear power technology could shed some light for other nations as they enter the brave new world of nuclear renaissance. Once on the Silk Road countries like China, India, UAE and Turkey show the most active nuclear power programs together with Japan and Korea today. After all, history repeats itself as new technologies transfer through
Next set of slides
Product description
About the Author
Kim Byung-koo ("BK") studied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Michigan before receiving his doctorate in applied mechanics from th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Upon graduation, Dr. Kim worked as a test engineer at Jet Propulsion Laboratory in Pasadena, California until he returned to Korea when the country was embarking on its first nuclear power project. He served as the project manager of the nation's first nuclear power reactor system design project at the Kore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 in the 1980s. He then served as a Director of Technical Cooperation at the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n Vienna, assisting many developing countries to promote their peaceful uses of nuclear energy. After retirement, he currently lives in Daejeon, Korea. Nuclear Silk Road is his first book.
Product details
Publisher :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5 August 2011)
Language : English
Paperback : 306 pages
ISBN-10 : 1456422588
ISBN-13 : 978-1456422585
Dimensions : 15.24 x 1.93 x 22.86 cmCustomer Reviews:
4.5 4.5 out of 5 stars (4)
Top reviews from other countries
Bongani Motsa
4.0 out of 5 stars A book for developing countries aiming for first world status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18 May 2015
Verified Purchase
This book lays out the difference between countries that are perpetually stuck in the developmental stage and those that pull themselves out of poverty. Having selfless leaders; education; collaborating with other countries; setting up institutions; thorough record keeping; and ensuring knowledge and technological transfer, are among some of the ingredients.
Report
Robert S Margolis
5.0 out of 5 stars An Inside View of South Korea's Nuclear Power Development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5 September 2011
Verified Purchase
First, a disclaimer, I worked as a startup test engineer on the Yonggwang 3/4 project that is described in the book. That said, I found this book a good historical narrative on South Korea's nuclear power program and a firsthand account of the first technology transfer projects which built the infrastructure that Korea would use to both build its nuclear industry and to win the UAE nuclear power contract. Many of those involved in those first projects such as Yonggwang 3/4 remain in the leadership of the nuclear profession and provide their expertise to countries such as China and the UAE.
The major strength of this book is that it is written for the layperson rather than being an academic treatise or policy exposition. It is quite readable and easy to follow. I fully agree with Dr. Kim in that the successes of the Korean nuclear power prgram were the result less of genius than of simple "elbow grease". This book provides a useful and straightforward introduction to nuclear development in South Korea and is valuable to anyone studying how developing countries can develop their nuclear power industries.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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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clear Silk Road: Koreanization of Nuclear Power Technology Paperback – 5 August 2011
by Kim Byung-Koo (Author)
4.5 4.5 out of 5 stars (4)
The news out of Abu Dhabi on Dec. 27, 2009 was the direct motivation to write this book. South Korean consortium has just won the largest single nuclear power plant construction project in recent years to deliver four state-of-the-art Generation III pressurized water reactors to the United Arab Emirates. This book will bring to life the agonizing process of pursuing peaceful nuclear energy in South Korea during the last half-century for the "Atoms for Peace" dream from a poor developing country. Particular focus is placed on the localization process of nuclear power technology since 1980 from an insider's view. This case study on the Korean nuclear power technology could shed some light for other nations as they enter the brave new world of nuclear renaissance. Once on the Silk Road countries like China, India, UAE and Turkey show the most active nuclear power programs together with Japan and Korea today. After all, history repeats itself as new technologies transfer thr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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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 the Author
Kim Byung-koo ("BK") studied at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the University of Michigan before receiving his doctorate in applied mechanics from the California Institute of Technology. Upon graduation, Dr. Kim worked as a test engineer at Jet Propulsion Laboratory in Pasadena, California until he returned to Korea when the country was embarking on its first nuclear power project. He served as the project manager of the nation's first nuclear power reactor system design project at the Korea Atomic Energy Research Institute in the 1980s. He then served as a Director of Technical Cooperation at the International Atomic Energy Agency in Vienna, assisting many developing countries to promote their peaceful uses of nuclear energy. After retirement, he currently lives in Daejeon, Korea. Nuclear Silk Road is his first book.
Product details
Publisher : Createspace Independent Publishing Platform (5 August 2011)
Language : English
Paperback : 306 pages
ISBN-10 : 1456422588
ISBN-13 : 978-1456422585
Dimensions : 15.24 x 1.93 x 22.86 cmCustomer Reviews:
4.5 4.5 out of 5 stars (4)
Top reviews from other countries
Bongani Motsa
4.0 out of 5 stars A book for developing countries aiming for first world statusReviewed in the United Kingdom on 18 May 2015
Verified Purchase
This book lays out the difference between countries that are perpetually stuck in the developmental stage and those that pull themselves out of poverty. Having selfless leaders; education; collaborating with other countries; setting up institutions; thorough record keeping; and ensuring knowledge and technological transfer, are among some of the ingredients.
Report
Robert S Margolis
5.0 out of 5 stars An Inside View of South Korea's Nuclear Power DevelopmentReviewed in the United States on 15 September 2011
Verified Purchase
First, a disclaimer, I worked as a startup test engineer on the Yonggwang 3/4 project that is described in the book. That said, I found this book a good historical narrative on South Korea's nuclear power program and a firsthand account of the first technology transfer projects which built the infrastructure that Korea would use to both build its nuclear industry and to win the UAE nuclear power contract. Many of those involved in those first projects such as Yonggwang 3/4 remain in the leadership of the nuclear profession and provide their expertise to countries such as China and the UAE.
The major strength of this book is that it is written for the layperson rather than being an academic treatise or policy exposition. It is quite readable and easy to follow. I fully agree with Dr. Kim in that the successes of the Korean nuclear power prgram were the result less of genius than of simple "elbow grease". This book provides a useful and straightforward introduction to nuclear development in South Korea and is valuable to anyone studying how developing countries can develop their nuclear power industries.
Report
===
https://dev.ans.org/news/article-830/a-study-in-nuclear-success-a-review-of-nuclear-silk-road-the-koreanization-of-nuclear-power-technology-by-dr-kim-byung-koo/
===
A Study in Nuclear Success, A Review of “Nuclear Silk Road: The ‘Koreanization’ of Nuclear Power Technology”
Thu, Oct 13, 2011, 9:30PM
https://dev.ans.org/news/article-830/a-study-in-nuclear-success-a-review-of-nuclear-silk-road-the-koreanization-of-nuclear-power-technology-by-dr-kim-byung-koo/
===
A Study in Nuclear Success, A Review of “Nuclear Silk Road: The ‘Koreanization’ of Nuclear Power Technology”
Thu, Oct 13, 2011, 9:30PM
Robert Margolis
As part of the team that supported the startup of Yonggwang-3 and -4 (South Korea's first nuclear units, built in a technology transfer program with Combustion Engineering), I thought it long overdue to see a book that chronicled South Korea's journey from an impoverished nation to one of the world's leading players in the nuclear industry (e.g., South Korea has 21 operating reactors versus Germany's 17).
The book, "Nuclear Silk Road," is an effective historical narrative on South Korea's nuclear power program that combines official reports, pertinent interviews, and personal recollections with a focus on the country's technology transfer program with Combustion Engineering (now a part of Westinghouse).
The author, Dr. B. K. Kim, a former project manager for the Yonggwang-3 and -4 system design, invokes the metaphor of the Silk Road, which brought commerce across Asia, the Middle East, and Europe, as the majority of nuclear new build is geographically situated along this same historic pathway.
Kim
Kim's book is divided in two parts. Part 1 describes the political challenges in establishing the policies and organizations required to construct and operate nuclear energy facilities. This description includes the decisions of South Korea's first presidents and the country's key nuclear pioneers. Nuclear industry veterans will enjoy Kim's depiction of a semi-surreptitious nightshift measurement of new fuel assemblies at Wolsong in 1981 (often, the interesting events occur on nightshift).
Part 2 chronicles how these organizations evolved from being a receiver and operator of foreign turnkey reactor projects to that of a national industry that could independently design, construct, and operate nuclear power plants. The country's domestic industry then went global with the recent sale of four nuclear plants to the UAE (Braka Units 1 through 4) and the sale of a research reactor to Jordan. Kim details how South Korea was able to capitalize on the Chernobyl accident to negotiate a comprehensive technology transfer arrangement for the Yonggwang-3 and -4 plants. He discusses many of the primary Korean nuclear experts involved, and even provided interesting anecdotes such as how the first group of Koreans sent to Combustion Engineering in Windsor, Conn., were given one-way plane tickets.
A major strength of this book is that it is written as a basic narrative rather than an academic treatise or policy exposition. It is readable and easy to follow. My own experience on the Yonggwang-3 and -4 project matched Kim's contention that the successes of the South Korean nuclear power program were the result less of genius than of simple "elbow grease." Several places in the book describe the long hours worked and the dedication of the engineers, policymakers, operators, and craftsmen who navigated through the crucial points where the South Korean nuclear program might have foundered. The nuclear industry is well-known for its continual thirst for operating experience (OE) on events that have challenged equipment and personnel resulting in unexpected issues.
Kim's book also provides important OE. In this case, it is the experience of how dedication, hard work, and ability to see otherwise hidden opportunity can be leveraged to develop a successful nuclear power program. These lessons continue to be valuable as the nuclear profession charts a way forward across the globe in this new century.
_____________
Robert Margolis, PE is a nuclear engineer with more than 24 years of experience as a reactor engineer, startup test engineer, project engineer, and safety analyst. Margolis supported the Yonggwang-3 and -4 startup from 1993 through 1996.
===
As part of the team that supported the startup of Yonggwang-3 and -4 (South Korea's first nuclear units, built in a technology transfer program with Combustion Engineering), I thought it long overdue to see a book that chronicled South Korea's journey from an impoverished nation to one of the world's leading players in the nuclear industry (e.g., South Korea has 21 operating reactors versus Germany's 17).
The book, "Nuclear Silk Road," is an effective historical narrative on South Korea's nuclear power program that combines official reports, pertinent interviews, and personal recollections with a focus on the country's technology transfer program with Combustion Engineering (now a part of Westinghouse).
The author, Dr. B. K. Kim, a former project manager for the Yonggwang-3 and -4 system design, invokes the metaphor of the Silk Road, which brought commerce across Asia, the Middle East, and Europe, as the majority of nuclear new build is geographically situated along this same historic pathway.
Kim
Kim's book is divided in two parts. Part 1 describes the political challenges in establishing the policies and organizations required to construct and operate nuclear energy facilities. This description includes the decisions of South Korea's first presidents and the country's key nuclear pioneers. Nuclear industry veterans will enjoy Kim's depiction of a semi-surreptitious nightshift measurement of new fuel assemblies at Wolsong in 1981 (often, the interesting events occur on nightshift).
Part 2 chronicles how these organizations evolved from being a receiver and operator of foreign turnkey reactor projects to that of a national industry that could independently design, construct, and operate nuclear power plants. The country's domestic industry then went global with the recent sale of four nuclear plants to the UAE (Braka Units 1 through 4) and the sale of a research reactor to Jordan. Kim details how South Korea was able to capitalize on the Chernobyl accident to negotiate a comprehensive technology transfer arrangement for the Yonggwang-3 and -4 plants. He discusses many of the primary Korean nuclear experts involved, and even provided interesting anecdotes such as how the first group of Koreans sent to Combustion Engineering in Windsor, Conn., were given one-way plane tickets.
A major strength of this book is that it is written as a basic narrative rather than an academic treatise or policy exposition. It is readable and easy to follow. My own experience on the Yonggwang-3 and -4 project matched Kim's contention that the successes of the South Korean nuclear power program were the result less of genius than of simple "elbow grease." Several places in the book describe the long hours worked and the dedication of the engineers, policymakers, operators, and craftsmen who navigated through the crucial points where the South Korean nuclear program might have foundered. The nuclear industry is well-known for its continual thirst for operating experience (OE) on events that have challenged equipment and personnel resulting in unexpected issues.
Kim's book also provides important OE. In this case, it is the experience of how dedication, hard work, and ability to see otherwise hidden opportunity can be leveraged to develop a successful nuclear power program. These lessons continue to be valuable as the nuclear profession charts a way forward across the globe in this new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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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Margolis, PE is a nuclear engineer with more than 24 years of experience as a reactor engineer, startup test engineer, project engineer, and safety analyst. Margolis supported the Yonggwang-3 and -4 startup from 1993 through 1996.
===
https://www.forewordreviews.com/reviews/nuclear-silk-road/
Nuclear Silk Road
Koreanization of Nuclear Power Technology
Kim Byung-koo
CreateSpace
978-1-4564-2258-5
Clarion Rating: 3 out of 5
It takes an odd sort of courage to state that the tragic Chernobyl accident of 1986 “turned out to be a blessing for Korea.” But that is what nuclear engineer and author Dr. Kim Byung-koo does in this book about his country’s rise to prominence in the controversial nuclear power industry.
Byung-koo knows what he is writing about because he was present for much of the history he is relating. When “BK,” as the author likes to be called, mentions a dizzying myriad of names, he is not simply giving readers a litany of the players who created and continue to advance Korea’s nuclear power industry, he is also sharing the contents of his address book. These politicians, scientists, bureaucrats, professors, and corporate executives are more than names—they are BK’s bosses, benefactors, mentors, colleagues, and in many cases, friends.
Much of Nuclear Silk Road reads like congratulatory homage from a mutual-admiration society, yet to dismiss it as such would be unfair. BK is immensely proud of what he and his comrades have accomplished, and, as he explains in great detail, they have every right to be.
The Republic of Korea is one of the premier designers, builders, and exporters of nuclear power plants. The path it took to get there, writes the author, is a “shining example of how an inexperienced but well motivated and educated” people overcame great hardship. BK says he hopes to not only “demystify” what some call “a miracle story,” but also to offer hope and provide a blueprint for “other developing countries with nuclear power ambitions” that he believes “could benefit from the Korean lessons.”
Parts of this book are good, solid, by-the-numbers, history. The who, what, why, where, when, and how of Korea’s progress from war-ravaged backwater to economic powerhouse is clearly presented. There are heroes and villains aplenty, and these sections are organized and explained in a simple and concise manner. However, there are chapters that are decipherable only to readers already thoroughly versed in the topic and familiar with the mind-boggling acronyms of the organizations involved.
Fortunately for the lay reader, the author can also write for a more general audience when he chooses to do so, and it is in these sections the book truly shines. When BK explains how Korea took advantage of the “nuclear dark age” that arose in reaction to the Chernobyl accident, he does so with honesty and candor. He admits it is “ironic that the Korean nuclear power technology owes a lot to the Chernobyl accident,” yet also notes quite jauntily that this is “a classical example of turning crisis into opportunity.”
Overall, the book’s positive attributes outweigh its weak points. Dr. Kim Byung-koo has done his colleagues, his country, and the world a service in providing a candid insider’s view of the rise of the Korean nuclear power industry.
Reviewed by Mark G. McLaughlin
October 11, 2011
Disclosure: This article is not an endorsement, but a review. The publisher of this book provided free copies of the book and paid a small fee to have their book reviewed by a professional reviewer. Foreword Reviews and Clarion Reviews make no guarantee that the publisher will receive a positive review. Foreword Magazine, Inc. is disclosing this in accordance with the Federal Trade Commission’s 16 CFR, Part 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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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16대 대통령 노무현
[전문]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16대 대통령 노무현
[전문]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16대 대통령 노무현
조선닷컴
입력 2008.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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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
기록 사본은 돌려드리겠습니다. 사리를 가지고 다투어 보고 싶었습니다. 법리를 가지고 다투어 볼 여지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열람권을 보장 받기 위하여 협상이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버티었습니다. 모두 나의 지시로 비롯된 일이니 설사 법적 절차에 들어가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퇴직한 비서관, 행정관 7-8명을 고발하겠다고 하는 마당이니 내가 어떻게 더 버티겠습니까? 내 지시를 따랐던, 힘없는 사람들이 어떤 고초를 당할지 알 수 없는 마당이니 더 버틸 수가 없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모두 내가 지시해서 생겨난 일입니다. 나에게 책임을 묻되, 힘없는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은 없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 기록은 국가기록원에 돌려 드리겠습니다.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문화 하나만큼은 전통을 확실히 세우겠다. 이명박 대통령 스스로 먼저 꺼낸 말입니다. 내가 무슨 말을 한 끝에 답으로 한 말이 아닙니다. 한 번도 아니고 만날 때마다, 전화할 때마다 거듭 다짐으로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자존심이 좀 상하기도 했으나 진심으로 받아들이면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저번에 전화를 드렸습니다. 보도를 보고 비로소 알았다고 했습니다. 이때도 전직 대통령 문화를 말했습니다. 그리고 부속실장을 통해 연락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선처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한참을 기다려도 연락이 없어서 다시 전화를 드렸습니다. 이번에는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를 미루고 미루고 하더니 결국 '담당 수석이 설명 드릴 것이다'라는 부속실장의 전갈만 받았습니다. 우리 쪽 수석비서관을 했던 사람이 담당 수석과 여러 차례 통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 통화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내가 처한 상황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전직 대통령은 내가 잘 모시겠다. 이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 만큼, 지금의 궁색한 내 처지가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내가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을 오해해도 크게 오해한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가다듬고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기록은 돌려 드리겠습니다. 가지러 오겠다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보내 달라고 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통령기록관장과 상의할 일이나 그 사람이 무슨 힘이 있습니까? 국가기록원장은 스스로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결정을 못하는 수준이 아니라, 본 것도 보았다고 말하지 못하고, 해 놓은 말도 뒤집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상의 드리는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기록을 보고 싶을 때마다 전직 대통령이 천리길을 달려 국가기록원으로 가야 합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정보화 시대에 맞는 열람의 방법입니까? 그렇게 하는 것이 전직 대통령 문화에 맞는 방법입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앞으로 그렇게 하실 것입니까? 적절한 서비스가 될 때까지 기록 사본을 내가 가지고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나는 것 맞습니까? 지금 대통령 기록관에는 서비스 준비가 잘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까?
언제 쯤 서비스가 될 것인지 한 번 확인해 보셨습니까? 내가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나의 국정 기록을 내가 보는 것이 왜 그렇게 못마땅한 것입니까? 공작에는 밝으나 정치를 모르는 참모들이 쓴 정치 소설은 전혀 근거 없는 공상소설입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기록에 달려 있는 것은 더욱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님,
우리 경제가 진짜 위기라는 글들은 읽고 계신지요? 참여정부 시절의 경제를 '파탄'이라고 하던 사람들이 지금 이 위기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지금은 대통령의 참모들이 전직 대통령과 정치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으로 이 싸움에서 물러섭니다.
하느님께서 큰 지혜를 내리시기를 기원합니다.
2008년 7월 16일
16대 대통령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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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님!
뒤늦게나마 가져가신 서류를 돌려 주기기로 결심하신 것은 참 잘하셨습니다. 그러나 너무 궁색하게 토를 다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님!
한 국가를 운영했던 큰 지도자께서 재직 때 기록이 뭐가 그리 아쉽습니까? 재임시절 기록 중에 혹시나 부담스러운 내용이 있는가요, 아니면 그 기록이 쫓기듯 퇴임한 노전대통령님의 정치적 재기를 위한 발판이 된단 말입니까? 그래서 법을 위반해가며 슬쩍하셨나요? 전직 대통령 예우, 해드려야지요. 그렇다고 국가기록을 슬쩍하신 범법행위까지 없던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지요. 장물을 돌려달라고 하는 행위를 정치게임으로 몰아붙이는 것도 참 궁색합니다. 경제위기 맞습니다. 이 위기의 씨앗이 언제 품어졌나 따져봅시다. 노 전대통령께서는 세계 경제가 호황일 때 오늘의 위기상황을 제대로 준비하셨나요? 그렇지 않으셨다는 것 본인께서 더욱 잘 아실겁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국가기록물이나 가져가지 마시고 경제위기 극복에 힘을 보태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무더위에 항상 건강에 유념하시기를 바랍니다.
2008. 7. 16
한나라당 대변인 차명진
김파란 박일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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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3>
오늘은 가장 논란이 되고 많은 이들에게 분노의 감정을 갖게 만들었던 ‘동지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어떤 사안, 어떤 경우가 되었건 한두 마디 말로 딱 잘라서 설명할 수 있는 일이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감히 어떻게 그런 말을 쓸 수 있어! 그건 할머니들에 대한 최악의 모독이야.” 이렇게 정리하면 참 쉽고 간단해집니다. 박유하 교수 한 명만 민족의 반역자로 만들면 우리 모두의 마음은 후련하고 편해질 테니까요. 그렇다면 박유하 교수는 왜 하필 그런 표현을 썼을까요? 속된 말로 ‘미친 년’이 아닌 다음에야요. 이해하기 힘들지만 그래도 일단은 분노를 가라앉히고 박유하 교수의 생각을 따라가 봅시다. 책에 나온 증거, 즉 ‘동지적 관계’라는 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니, 잠시 숨을 돌린다고 해서 당장 큰일이 나지는 않겠지요.
일단 책에 나오는 대목을 살펴보겠습니다.
“물론 이런 기억들은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기억일 수밖에 없다. 설사 보살핌을 받고 사랑하고 마음을 허한 존재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부들에게 위안소란 벗어나고 싶은 곳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이런 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인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인 관계였기 때문이다.” (67쪽)
혹독한 체험을 한 이들에게도 ‘즐거웠던’ 순간은 없지 않았고, 군인에게 신세타령을 하면서 정신적 교감을 나누는 ‘위안부’도 없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에 의해 고향을 떠나 머나먼 타지로 이동해야 했던 ‘개미’ 같은 처지임을 서로 감지한 고독한 남녀이기도 했다.
물론 거듭 말하지만, 사랑과 평화와 동지가 있었다고 해도 ‘위안소’가 지옥 같은 체험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명예와 칭송이 따른다 해도 전쟁이 지옥일 수밖에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렇다면 더더욱, 그런 지옥을 살아내는 힘이 되었을 연민과 공감, 그리고 분노보다 운명으로 돌리는 자세 역시 기억되어야 한다.(76쪽)
일단, 위 글들을 보면 조선인 위안부의 처지는 일본 군인들에게 억압과 성적 착취를 당하는 존재인 한편, 때로는 그들과 함께 어울리기도 하고 나아가 그들의 전쟁을 돕는 역할을 하기도 한, 복합적인 존재로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정확히 해독하자면 전자가 주된 처지이고, 거기에 후자가 부차적으로 결합된 처지로 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후자를 ‘동지적 관계’로 표현했는데, 박유하 교수가 그러한 관계로 파악하게 만든 지점들이 여러 가지라 일일이 인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작년 6월 경 처음 이 책이 논란이 되었을 무렵, 제가 책을 읽고 페북에 올린 글에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적어놓았더군요.
박교수는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 책에서 밝힌 내용들을 간추리면 몇 가지 층위가 있다. 위안부와 마찬가지로 일본인 병사들도 제국의 강요에 의해 끌려왔으며 그런 점에서 서로 동병상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일본인 병사들이 전투에 나갈 때 환송회를 열어주기도 했으며 살아서 돌아오라고 당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경우에 따라 간호원처럼 일본인 부상병들을 치료해 주는 역할을 부여받았으며 군사훈련을 받기도 했다, 일본에게 침략을 당한 아시아의 제3국이 보았을 때 조선인 위안부는 일본군 병사들의 사기를 진작시켜 주는 역할을 하는 존재였으며 일본인과 조선인을 구분하지 않았다, 자신의 희생이 국가(일본)를 위한 것이라는 의식을 스스로에게 주입시키는 것이 그나마 비참한 처지를 버틸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기도 했을 것이다, 와 같은 근거들을 제시한다. 물론 이러한 근거들은 강요된 동지적 관계임에 분명하고, 친일파들처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박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식민지의 내적 모순에 기인한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기술하고 있으며, 그러한 점을 똑바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동지적 관계라는 말 대신에 협력적 관계와 같은 말을 썼으면 오해를 피해갈 수 있었을까? 어감의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비난은 똑같이 쏟아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표현은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서술한 것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비난하고 멸시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며, 그로 인해 일본의 죄악상이 감춰지는 것도 아니다.
제가 썼던 위 글에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서술한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군요. 학자들이 역사서술이나 해석, 그리고 용어 사용에 있어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 아마도 ‘객관성’ 혹은 ‘엄정성’일 것입니다. 아마도 박유하 교수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을 규정함에 있어 ‘동지적 관계’라는 표현이 그러한 ‘객관성’ 혹은 ‘엄정성’이라는 기준에 맞는다고 보았을 듯합니다. 모든 감정과 선입견을 다 버리고 아주 건조하게만 바라본다면 ‘동지적 관계’라는 말이 현상을 서술함에 있어 적합해 보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동지’라는 낱말이 그런 학술적인(건조하고 냉철한) 의미로만 대중에게 다가가지는 않는다는 점이겠지요. 더구나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들에게는 더욱 그러할 겁니다. 그러한 것이 박유하 교수가 지닌 학자라는 신분과 거기서 파생된 의식이 지닌 한계라면 한계일 수도 있겠습니다.
이쯤에서 제 견해를 밝혀야 할 듯합니다. 저는 박유하 교수의 책을 읽으며 제 인식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고 생각한 부분이,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와 관련한 대목들이었습니다. 인간이 얼마나 복잡한 존재이며 다양한 모순을 지니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처한 조건과 상황에 따라 어떻게 자기 의식을 가져가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을 파악함에 있어 그 인간이 처해 있는 조건과 상황을 배제한 채 규정할 수 있을까요?
제가 만일 당시의 위안부였다면 어땠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일본군에게 짓밟히면서 속으로 ‘반드시 이 원수를 갚아주고야 말겠다’며 이를 갈기만 했을까요? 그건 ‘지금’의 우리가 요구하는 의식이 반영된, 주관적인 감정의 투영일 수도 있을 겁니다. 당시의 위안부들 다수가 당연히 그런 분노를 지니고 있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그러한 비참한 상황을 견뎌내기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찌됐든 하루하루를 견뎌내야 했고, 그러자면 자신을 달래줄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아마도 자신의 처지를 합리화해줄 무언가를 찾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쳐서 죽거나 혀를 깨물어야 했을 겁니다.(적당한 표현을 찾지 못하겠는데, ‘이중의식’ 같은 말로 설명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런 지점에 생각이 미치면서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었던 할머니들의 슬픔이 더욱 크게 다가옵니다. 자기의식을 배반할 수밖에 없었던, 그래야 생존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처지! 이보다 더 큰 비극과 슬픔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위안부들을 그런 처지로까지 내몬 일본에 대해 분노하고, 마땅히 일본은 자신들의 범죄행위에 대해 사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박유하 교수 역시 기존의 사죄보다 진전된 형태의 사죄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박유하 교수가 일본에게 사죄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거두어주시기 바랍니다. 박유하 교수가 줄곧 화해를 주장하지만 무조건의 화해가 아니라 사죄가 선행된 화해를 말하고 있다고 저는 읽었습니다.)
이건 저만의 독법입니다. 다른 분들은 또 얼마든지 다른 독법으로 읽을 수 있으며, 그것이 당연하기도 합니다. 제가 문학을 하기 때문인지 몰라도, 어떤 인간이든지 악인과 선인으로 간단히 나눠지지는 않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재단하는 것이 오히려 인간에 대한 이해를 가로막는 방해물이 될 수 있으며, 의식의 다양한 심층을 탐구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지금 일본 정부에 맞서 싸우는 위안부 할머니들 역시 투사 이전에 평범하고 나약한 존재이며, 한일 간에 그리고 이 문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모든 단체와 사람들 간에 머리를 맞대고 하루빨리(이 말을 원칙 없이 무조건이라고 해석하지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그 분들이 남은 생이라도 편안히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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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파란
물론 이런 기억들은 부수적인 기억일 수 밖에 없다. 설사 보살핌을 받고 사랑하고 마음이 허한 존재가,위안부들에게 위안소란 벗어나고 싶은 곳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곳에 이런식의 사랑과 평화가 가능했던 것은 사실이고 그것은 조선부 위안부와 일본군의 관계가 기본적으로는 동지적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어떻게 사실이란 말인가?
이것을 장황한 이론적 근거를 설명하고 있다.
제기랄 난 왜 글을 읽고 쓰려 했는가? 왜 배우려고 이렇게 살았나?
두 눈을 파서 개에게 줘 버려도 사죄가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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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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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5>
며칠 간 이 문제에 매달리느라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내 일은 손을 못 대고 있군요. 그래도 멈추지 못한 것은 하필이면(?)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고, 내가 독해한 내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지점에 오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나름대로 성실한 학자이자 위안부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는(저에게는 그렇게 보입니다) 사람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모르는 척 입 다물고 있으면 그건 비겁한 태도이며,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이나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읽은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한 학자의 책에 대해 어쭙잖은 내용이지만 몇 번의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페북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너무 오래 이어지는 것도 서로에게 피로감을 안겨주는 일이고 해서, 긴 글은 이번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상황에 따라 짧게 끼어드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본격적인 논의는 학계에서 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박유하 교수가 조선인 위안부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기본 시각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은 ‘위안’을 매춘으로만 생각했고 우리는 ‘강간’으로만 이해했지만, ‘위안’이란 기본적으로는 그 두 요소를 다 포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위안’은 가혹한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이들은 적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
이 20년 동안, 우리는 초기에 만들어진 ‘상식’에만 고집하고 그에 반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우익의 망동’이거나 ‘친일적 발언’으로 간주하고 배척해 왔다. 그 결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것은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배양’된 ‘위안부 이야기’뿐이다. (120~121쪽)>
박유하교수가 말하는 ‘순수배양된 위안부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왔을까요? 이 또한 단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않았겠지만, 책에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보았던 이 증언은 근년에 가장 활발히 활동해온 이의 증언이다. 그런데, 20년 전인 1993년에 나온 증언집에서 그는, 이 일은 “만 열여섯 살” 때의 일이었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새벽” 친구 “분순이”가 불러 “따라나갔”는데 “강가에서 보았던 일본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보여주는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 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같은 책, 124쪽)고 말한다.
그런데 2004년에 교토 대학교에서 열린 모임에서는, 자신이 끌려간 정황을 “열다섯 살”이었고 “일본군의 칼에 위협을 받은 여성이 자신을 불러 감싸안아 끌어갔”다고 말한다. 또 최근 한국의 신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대구에 있는 집 마당에까지 일본군이 들어와서 끌고 갔다”(영남일보, 2012.9.14.)고 말하기도 한다. 끌려갔을 당시의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일본군에 의한 강압적인 정황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132쪽)>
박유하 교수가 소개한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증언 내용을 바꿔가며 들려준 위안부 할머니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박유하 교수의 책과 인품에 대해 신뢰를 보이는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 다음과 같은 서술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언의 신뢰성 문제만 잡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걸 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과 상황을 살펴가며, 개인의 한계까지 끌어안고 가려는 자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이 ‘위안부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안부의 그런 ‘변화’는 의식적인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듣는 이들의 기대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크다. 증언을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은, 미리 인지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지식이 보완되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랐을 테니까. 한국인이라면, 그 피해가 더 가혹할수록, 더 끔찍할수록, 일본에 대한 분노를 키우고 당당해질 수 있게 되니까, 증언의 장이 어떤 이야기를 요구하는지는 위안부들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안부의 증언에 차이가 난다고 해서 위안부들만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그런 증언을 듣고 싶어했던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이라고 해야 한다.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그것은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이 과거에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되었다는 체험이 기본적으로 피해체험인 것은 분명하다. 그 정치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그 체험이 정신적 노예일 수밖에 없었던 한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고문과 성적 노동을 포함한 신체적 강제에 더해 생명까지도 ‘일본’이라는 국가에 맡겨진 상태였으니 식민지 체험이 피해체험인 것은 분명하다.(133쪽)>
박유하 교수를 뉴라이트 계열로 파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은 억측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 글에 나오는 대목 중 ‘그 정치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라는 부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이며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박유하 교수는 식민지 체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더라도 피해체험인 것이 분명하다고 밝힘으로써 뉴라이트 역사관을 반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이러한 이야기를 논하는 챕터의 마지막 문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국’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애국을 해야 한다면 박유하 교수가 말하는 애국심 쪽에 한 표를 던지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지 않은가. 애국심이 그렇게 발휘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134쪽)>
<제국의 위안부에 대한 나의 이해 5>
며칠 간 이 문제에 매달리느라 정작 내가 하고 싶었던 내 일은 손을 못 대고 있군요. 그래도 멈추지 못한 것은 하필이면(?) 내가 이 책을 읽었다는 것이고, 내가 독해한 내용에 비추어 보았을 때,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는 지점에 오해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나름대로 성실한 학자이자 위안부들의 아픔에 공감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는(저에게는 그렇게 보입니다) 사람이 곤경에 처한 상황을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모르는 척 입 다물고 있으면 그건 비겁한 태도이며, 나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책을 읽는 이유는 지식이나 교양을 쌓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읽은 내용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면식도 없는 한 학자의 책에 대해 어쭙잖은 내용이지만 몇 번의 글을 쓰게 됐습니다.
그럼에도 페북에서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너무 오래 이어지는 것도 서로에게 피로감을 안겨주는 일이고 해서, 긴 글은 이번을 끝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상황에 따라 짧게 끼어드는 일은 있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본격적인 논의는 학계에서 해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먼저 박유하 교수가 조선인 위안부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기본 시각을 다시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은 ‘위안’을 매춘으로만 생각했고 우리는 ‘강간’으로만 이해했지만, ‘위안’이란 기본적으로는 그 두 요소를 다 포함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위안’은 가혹한 먹이사슬 구조 속에서 실제로 돈을 버는 이들은 적었지만 기본적으로는 수입이 예상되는 노동이었고, 그런 의미에서는 ‘강간적 매춘’이었다. 혹은 ‘매춘적 강간’이었다.
이 20년 동안, 우리는 초기에 만들어진 ‘상식’에만 고집하고 그에 반하는 이야기는 무조건 ‘우익의 망동’이거나 ‘친일적 발언’으로 간주하고 배척해 왔다. 그 결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것은 모든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수배양’된 ‘위안부 이야기’뿐이다. (120~121쪽)>
박유하교수가 말하는 ‘순수배양된 위안부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져 왔을까요? 이 또한 단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않았겠지만, 책에는 이와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보았던 이 증언은 근년에 가장 활발히 활동해온 이의 증언이다. 그런데, 20년 전인 1993년에 나온 증언집에서 그는, 이 일은 “만 열여섯 살” 때의 일이었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새벽” 친구 “분순이”가 불러 “따라나갔”는데 “강가에서 보았던 일본 남자”를 만나게 되고 그가 보여주는 “빨간 원피스와 가죽구두가 어린 마음에 얼마나 좋았는지”, “그래서 그만 다른 생각도 못 하고 선뜻 따라나서게 되었다”(같은 책, 124쪽)고 말한다.
그런데 2004년에 교토 대학교에서 열린 모임에서는, 자신이 끌려간 정황을 “열다섯 살”이었고 “일본군의 칼에 위협을 받은 여성이 자신을 불러 감싸안아 끌어갔”다고 말한다. 또 최근 한국의 신문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는 “대구에 있는 집 마당에까지 일본군이 들어와서 끌고 갔다”(영남일보, 2012.9.14.)고 말하기도 한다. 끌려갔을 당시의 나이가 점점 더 어려지고 일본군에 의한 강압적인 정황이 점점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132쪽)>
박유하 교수가 소개한 위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증언 내용을 바꿔가며 들려준 위안부 할머니에게 문제가 있다고 보입니다. 하지만 제가 박유하 교수의 책과 인품에 대해 신뢰를 보이는 것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바로 다음과 같은 서술로 이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언의 신뢰성 문제만 잡고 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걸 한 개인의 문제로 보지 않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조건과 상황을 살펴가며, 개인의 한계까지 끌어안고 가려는 자세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이들이 ‘위안부의 증언은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이런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안부의 그런 ‘변화’는 의식적인 거짓말이라기보다는 듣는 이들의 기대가 그렇게 만든 측면이 크다. 증언을 듣기 위해 모인 이들은, 미리 인지된 지식을 바탕으로 그 지식이 보완되기를 무의식적으로 바랐을 테니까. 한국인이라면, 그 피해가 더 가혹할수록, 더 끔찍할수록, 일본에 대한 분노를 키우고 당당해질 수 있게 되니까, 증언의 장이 어떤 이야기를 요구하는지는 위안부들 역시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위안부의 증언에 차이가 난다고 해서 위안부들만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들의 그런 증언을 듣고 싶어했던 것은 오히려 우리 자신이라고 해야 한다.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 그것은 자신의 주장의 정당성을 확보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이 과거에 일본에 의해 식민지화되었다는 체험이 기본적으로 피해체험인 것은 분명하다. 그 정치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 그 체험이 정신적 노예일 수밖에 없었던 한 그건 두말할 필요도 없는 이야기이다. 더구나 고문과 성적 노동을 포함한 신체적 강제에 더해 생명까지도 ‘일본’이라는 국가에 맡겨진 상태였으니 식민지 체험이 피해체험인 것은 분명하다.(133쪽)>
박유하 교수를 뉴라이트 계열로 파악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지적은 억측일 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위 글에 나오는 대목 중 ‘그 정치가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하더라도’라는 부분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식민지근대화론’이며 뉴라이트 역사관의 핵심 중의 하나입니다. 박유하 교수는 식민지 체험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더라도 피해체험인 것이 분명하다고 밝힘으로써 뉴라이트 역사관을 반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이러한 이야기를 논하는 챕터의 마지막 문장을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저는 ‘애국’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그래도 애국을 해야 한다면 박유하 교수가 말하는 애국심 쪽에 한 표를 던지고자 합니다.
<이제,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싶지 않은가. 애국심이 그렇게 발휘될 수 있다면, 그 또한 아름다울 수 있다.(1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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