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08

알라딘: 강남 좌파 2

알라딘: 강남 좌파 2








강남 좌파 2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
강준만 (지은이) 인물과사상사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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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100자평 6편
리뷰 15편
세일즈포인트 609
188쪽
145*210mm
325g
ISBN 9788959065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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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강남 좌파’는 학력과 소득은 높으면서 정치적.이념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말한다. 서울의 강남은 ‘부와 권력’의 상징적 의미로 쓰인다. 강남 좌파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도 비슷한 현상이 존재한다.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프랑스의 ‘고슈 카비아’,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독일의 ‘살롱 사회주의자’, 캐나다의 ‘구치 사회주의자’, 호주의 ‘샤르도네 사회주의자’ 등에 상응하는 게 바로 한국의 강남 좌파다.

강준만 교수는 2011년에 출간한 『강남 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라는 책을 통해 ‘강남 좌파’라는 용어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논의를 점화시켰다. 이는 강남 좌파 논란을 공론화한 첫 시도였다. 강준만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라며, 강남 좌파를 강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극소수 정치인들에게만 국한해 사용하지 말고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또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 투쟁은 입시 전쟁이라는 점을 들어 “강남 좌파는 학벌 좌파”이며, 강남 우파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강남 좌파 현상은 한국 정치의 핵심을 이해하는 키워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강남 좌파 2』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라는 질문이다. 불평등의 완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일 것 같지만, 어떤 프레임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프레임은 상위 1% 계급에 문제가 있다는 ‘1% 대 99% 사회’ 프레임이지만, 이 책에서는 ‘상위 10%’나 ‘상위 20%’를 문제 삼는 ‘10% 대 90% 사회’ 프레임 또는 ‘20% 대 80% 사회’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파적 대결 구도를 넘어서 강남 좌파를 사회 전체의 불평등 유지 또는 악화와 연결시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해하자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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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 강남 좌파에 대한 오해 ․ 4
제1장 왜 ‘1% 대 99% 사회’ 프레임은 위험한가?: ‘진영 논리’와 ‘진보 코스프레’의 오류
‘불평등’은 언론인·학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주제 ․ 19
불평등을 은폐하는 ‘1% 대 99% 사회’ 프레임 ․ 21
“가만, 내가 성공했다고 욕을 먹어야 한다는 거야?” ․ 25
“한국은 20%가 80%를, 50%가 50%를 착취하는 사회” ․ 27
‘노동귀족’은 ‘수구꼴통’의 용어인가? ․ 30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갖고 자학하는 한국인” ․ 35
“고위 공직자 절반이 상위 5% 부자” ․ 37
1% 비판에 집중하는 ‘진보 코스프레’ ․ 41
‘부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신화’ ․ 44
능력주의 사회는 빈부 격차에 가장 둔감한 사회 ․ 47
정파적 싸움으로 탕진한 ‘조국 사태’ ․ 51
‘진영 논리’가 ‘개혁과 불평등 해소’를 죽인다 ․ 54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거부한 진보 진영 ․ 56
‘승자독식’ 체제하의 ‘밥그릇 전쟁’ ․ 59
‘조국 사태’에서 선악 이분법은 잔인하다 ․ 61
제2장 왜 정치는 중·하층의 민생을 외면하는가?: 개혁과 진보의 ‘의제 설정’ 오류
“검찰 개혁이 지나치게 과잉대표돼 있다” ․ 67
동질적인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위험하다 ․ 70
개혁을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사고방식 ․ 73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가 1,449명인데도 ․ 77
“정규직 안 해도 좋다. 더이상 죽지만 않게 해달라” ․ 80
“아, 그거 『조선일보』가 하는 얘기야. 너 『조선일보』 보냐?” ․ 82
‘『TV조선』’과 조중동은 ‘박근혜 탄핵’의 공로자였다 ․ 85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제압하려 했는가? ․ 88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였다 ․ 91
여권이 정말 검찰 개혁을 원하기는 했던 건가? ․ 95
검찰 개혁과 정치 개혁을 분리할 수 있는가? ․ 97
왜 1960년대 미국 신좌파를 흉내내는가? ․ 100
‘진보적인 척’하는 게 ‘진보’는 아니다 ․ 103
제3장 왜 ‘도덕적 우월감’이 진보를 죽이는가?: ‘민생 개혁’과 ‘민주화 운동’ 동일시 오류
386세대의 고유한 사고방식 ․ 111
적이 선명한 ‘민주화 투쟁’과 민생의 차이 ․ 114
왜 ‘싸가지 없는 진보’는 계속되는가? ․ 119
‘도덕적 면허 효과’로 인한 부도덕 ․ 122
팬덤형 정의파들의 ‘내 멋대로 정의’ ․ 125
‘보수 공격’이 진보라고 우기는 직업적 선동가들 ․ 127
진보와 보수는 도덕의 체계와 기준이 다르다 ․ 130
‘공정’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차이 ․ 132
‘미시적 공정’과 ‘거시적 공정’은 상충하는가? ․ 135
20대에게 구조에 대한 연대 책임을 묻지 마라 ․ 140
‘대의론’과 ‘조직 보위론’은 아직도 건재하다 ․ 143
“우리 모두 위선을 좀 걷어내자” ․ 145
맺는말 : ‘20% 대 80% 사회’ 프레임을 위하여
번지수를 잘못 찾은 한국 정치 ․ 148
“갈등이 깊어질수록 추상의 수준을 높일 수밖에 없다” ․ 150
공짜로 ‘도덕적 우월감’을 누릴 수는 없다 ․ 153
“성인이 아니면 입 닥쳐”를 요구하는 게 아니다 ․ 155
위선에 둔감한 진보의 고질병 ․ 158
‘열정의 비대칭성’과 ‘공공 지식인’의 소멸 ․ 161
‘필터 버블’의 감옥에 갇힌 사람들 ․ 163
진보의 의제 대전환이 필요하다 ․ 166
주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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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P.29~30
더욱 심각한 건 불로소득이다. 국세청의 ‘2017년 귀속 양도소득과 금융소득’ 자료를 보면, 부동산 양도차익과 금융소득 등 대표적인 불로소득이 135조 6,000억 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112조 7,000억 원)보다 20%나 증가한 것이다. 물론 이런 불로소득은 거의 대부분 상위 10%의 몫이다. 개인별 소득을 파악할 수 있는 배당·이자소득(33조 4,000억 원)을 살펴보면, 상위 10%가 차지한 몫은 각각 93.9%와 90.8%에 달했다. 이는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 ‘1 대 99의 사회’가 아니라 ‘10 대 90의 사회’, 더 나아가 ‘20 대 80의 사회’를 기본 프레임으로 삼아 개혁에 임해야 한다는 걸 말해준다. 2019년 8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9년 2분기 가계 동향 조사 소득 부문(가계소득 조사)’에 따르면, 상·하위 20%의 소득 격차는 5.3배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그런 소득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추세니, 아예 ‘50 대 50의 사회’를 문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제1장 왜 ‘1% 대 99% 사회’ 프레임은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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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54
언론에서 바람직한 시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경향신문』의 ‘90년대생 불평등 보고서’ 연재가 좋은 예다. 2019년 9월 26일 1면 머리기사로 등장한 「부를 물려받지 못한 청년, ‘불평등’ 수렁에 빠지다」는 기사를 비롯해 좋은 기사가 많았다. 언론은 이런 방향의 기사에 좀더 많은 공을 들였어야 했다. 대부분이 다 동의할 수 있는 개혁을 제쳐놓고 그걸 향해 가는 과정에서 이견 차이에 집착해야 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기존 정파적 이분법 구도, 즉 정파적 진영의 포로가 되기를 자청하는 ‘진영 논리’를 깨지 않고선 그 어떤 개혁과 불평등 해소도 기대하기 어렵다. 생각해보라. 진보 언론에서 노조의 문제를 비판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보수 언론에서 노조 탄압을 비판하는 기사를 본 적이 있는가? 아마 거의 없을 게다. 진보는 ‘친노조’, 보수는 ‘반노조’라는 이분법은 완강하다. 물론 정치권과 지식인도 마찬가지다. 「제1장 왜 ‘1% 대 99% 사회’ 프레임은 위험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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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77
전관예우는 ‘사회 신뢰 좀먹는 암 덩어리’임에도, 우리는 그 암 덩어리의 발호에 최소한의 분노마저 잃은 지 오래다. 당파 싸움엔 열을 올려도 당파를 초월해 작동하는 법칙에 대해선 별 말이 없다. 아니 정부는 오히려 전관예우의 브로커 역할까지 떠맡고 나선다. ‘공정거래’를 책임진다는 공정거래위원회는 매년 10여 명을 대기업에 재취업시켜주면서 고시·비고시 출신을 나눠 ‘억대 연봉 지침’까지 기업에 정해주었다. ‘행정고시 출신 퇴직자’는 2억 5,000만 원 안팎, ‘비행정고시 출신 퇴직자’는 1억 5,000만 원 안팎이라는 억대 연봉 가이드라인까지 책정해준 것이다.『경향신문』 경제부장 오관철은 “공정위 고위직을 맡으려면 퇴직 후 로펌이나 대기업에 재취업하지 않겠다는 서약서 제출 제도라도 만들어졌으면 속이 시원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고 했지만, 전관예우를 방치하는 데엔 보수나 진보가 한통속이어서 이 문제엔 별관심이 없다. 「제2장 왜 정치는 중·하층의 민생을 외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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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7~88
그 속내가 무엇이었건, 조중동은 자신들의 ‘이념적·정파적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상식’을 택했고, 그래서 일부 보수세력에서 ‘한국 보수의 가장 큰 암적 존재’라는 말까지 들어야 했다. 누군가를 증오하다 보면 상대를 과소평가하는 오류를 저지르기 십상이다. 이는 조중동 반대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다. 조중동은 바보가 아니다. 매우 영악하다! 그들은 시장에서 살아남고 성장하기 위해 보수와 더불어 중도세력의 민심까지 염두에 둔 행보를 보이며, 그 과정에서 옳은 말을 하기도 한다. 어떤 정파적 이슈에 대해 진보 언론보다 조중동이 옳은 말을 한 경우도 많다. 조중동의 ‘옳음’에 대한 과소평가와 조중동의 ‘그름’에 대한 과대평가 모두 지양하는 게 진정한 ‘안티 조중동’임을 굳이 강조할 필요가 있을까? 「제2장 왜 정치는 중·하층의 민생을 외면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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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22
운동권 386에 더욱 치명적인 건 남들은 일신의 영달을 꾀할 때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쳤다고 하는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이다. 이건 존중하거나 예찬해야 할 것이지 비판할 게 전혀 못 된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라는 게 묘한 동물이어서 그 어떤 미덕도 상황이 바뀌면 악덕이 되고 만다. 선명한 적이 있을 때에 온몸에 각인시킨 선악(善惡) 이분법은 민주화 투쟁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무기가 되었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적’과의 타협을 죄악시함으로써 정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게다가 민주화 투쟁 시엔 ‘나 홀로’였지만,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해 가정을 갖게 되면서 학부형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이 지배하는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다. 정관계에 진출한 운동권 386은 대부분 막강한 학벌 자본을 자랑하는 사람들인지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인맥의 혜택을 누리면서 강남 좌파로 변신하게 된다. 「제3장 왜 ‘도덕적 우월감’이 진보를 죽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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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우민(愚民)ngs01
˝검찰 개혁이 지나치게 과잉대표돼 있다˝


우민(愚民)ngs01
(공정으로서의 정의‘ 를 거부한 진보 진영

P.58우민(愚民)ngs01
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김경율은 ˝조국이라는 이름을 지운다면 이런 상황에서 버틸 사람이 있었을까. 그런데도 시민단체, 집권 여당은 제대로 비판 한 줄 내지 않았다˝


P.60우민(愚民)ngs01
김경율은 ‘조국 사퇴‘ 직후 ˝시민사회 일원으로 각종 위원회에 참석했는데 아무 문제의식 없이 입으로만 ‘개혁‘을 외치는 사람이 많았다˝며 ˝이런 무비판적 지식인이 각종 위원회, 고위층에 있으니 무슨 일이 되겠느냐˝고 개탄했다. 5 왜 그럴까? 위원회 참여도 자신의 각종 이해관계와 직결된 일종의 ‘밥그릇‘ 이기때문이다.


우민(愚民)ngs01
검찰 개혁과 정치 개혁을 분리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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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지은이: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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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작 : <인문학과 손잡은 영어 공부 1>,<[큰글자책]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큰글자책] 당신의 영혼에게 물어라> … 총 559종 (모두보기)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강준만은 탁월한 인물 비평과 정교한 한국학 연구로 우리 사회에 의미 있는 반향을 일으켜온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이다. 전공인 커뮤니케이션학을 토대로 정치, 사회, 언론, 역사, 문화 등 분야와 경계를 뛰어넘는 전방위적인 저술 활동을 해왔으며, 사회를 꿰뚫어보는 안목과 통찰을 바탕으로 숱한 의제를 공론화해왔다. 2005년에 제4회 송건호언론상을 수상하고, 2011년에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의 저자 300인’, 2014년에 『경향신문』 ‘올해의 저자’에 선정되었다. 저널룩 『인물과사상』(전33권)이 2007년 『한국일보』 ‘우리 시대의 명저 50권’에 선정되었고, 『미국사 산책』(전17권)이 2012년 한국출판인회의 ‘백책백강(百冊百講)’ 도서에 선정되었다. 2013년에 ‘증오 상업주의’와 ‘갑과 을의 나라’, 2014년에 ‘싸가지 없는 진보’, 2015년에 ‘청년 정치론’, 2016년에 ‘정치를 종교로 만든 진보주의자’와 ‘권력 중독’, 2017년에 ‘손석희 저널리즘’와 ‘약탈 정치’, 2018년에 ‘평온의 기술’과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2019년에 ‘바벨탑 공화국’과 ‘강남 좌파’, 2020년에 ‘싸가지 없는 정치’와 ‘부동산 약탈 국가’, 2021년에 ‘부족주의’, 2022년에 ‘퇴마 정치’와 ‘좀비 정치’, 2023년에 ‘정치 무당’ 김어준과 MBC의 ‘흑역사’ 등 대한민국의 민낯을 비판하면서 한국 사회의 이슈를 예리한 시각으로 분석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당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MBC의 흑역사』, 『무지의 세계가 우주라면』, 『공감의 비극』, 『정치 무당 김어준』, 『퇴마 정치』, 『반지성주의』, 『정치적 올바름』, 『엄마도 페미야?』, 『정치 전쟁』, 『좀비 정치』, 『발칙한 이준석』, 『단독자 김종인의 명암』, 『부족국가 대한민국』, 『싸가지 없는 정치』, 『권력은 사람의 뇌를 바꾼다』, 『부동산 약탈 국가』, 『한류의 역사』, 『쇼핑은 투표보다 중요하다』, 『강남 좌파 2』, 『바벨탑 공화국』, 『오빠가 허락한 페미니즘』, 『평온의 기술』, 『약탈 정치』(공저), 『손석희 현상』, 『박근혜의 권력 중독』, 『힐러리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 『전쟁이 만든 나라, 미국』, 『정치를 종교로 만든 사람들』,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 『개천에서 용 나면 안 된다』, 『싸가지 없는 진보』, 『감정 독재』, 『미국은 세계를 어떻게 훔쳤는가』, 『갑과 을의 나라』, 『증오 상업주의』, 『강남 좌파』, 『한국 현대사 산책』(전23권), 『한국 근대사 산책』(전10권), 『미국사 산책』(전17권) 외 다수가 있다.




출판사 제공 책소개

‘1% 대 99% 사회’ 프레임은 어떻게 불평등을 은폐하는가?
“능력주의 사회는 빈부 격차에 둔감한 사회다”

‘강남 좌파’는 학력과 소득은 높으면서 정치적․이념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말한다. 서울의 강남은 ‘부(富)와 권력’의 상징적 의미로 쓰인다. 강남 좌파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른 나라들에도 비슷한 현상이 존재한다.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프랑스의 ‘고슈 카비아’,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독일의 ‘살롱 사회주의자’, 캐나다의 ‘구치 사회주의자’, 호주의 ‘샤르도네 사회주의자’ 등에 상응하는 게 바로 한국의 강남 좌파다.
강준만 교수는 2011년에 출간한 『강남 좌파: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라는 책을 통해 ‘강남 좌파’라는 용어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 논의를 점화시켰다. 이는 강남 좌파 논란을 공론화한 첫 시도였다. 강준만 교수는 “모든 정치인은 강남 좌파”라며, 강남 좌파를 강남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극소수 정치인들에게만 국한해 사용하지 말고 더 큰 맥락에서 이해할 것을 제안했다. 또 한국에서 가장 치열한 계급 투쟁은 입시 전쟁이라는 점을 들어 “강남 좌파는 학벌 좌파”이며, 강남 우파도 ‘강남 좌파적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즉, 강남 좌파 현상은 한국 정치의 핵심을 이해하는 키워드라는 점을 강조했다.
최근 ‘강남 좌파’ 문제를 불거지게 만든 장본인인 조국은 법무부 장관 내정 66일, 법무부 장관 취임 35일 만인 10월 14일에 사퇴했지만, 이 이야기는 끝난 것이 아니다. 앞으로 두고두고 계속될 한국 정치의 근본 문제이기도 하다. 강남 좌파 논쟁은 ‘가용성 편향’과 ‘도덕적 면허 효과’라는 2가지 문제의 해결이나 완화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강남 좌파는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진보의 가치를 역설하는 데 능하지만, 서민의 절박한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는 무관심하거나 무능할 가능성이 높다(가용성 편향). 또 민주화 운동 경력이 있는 386세대이면서 강남 좌파에 속하는 사람들의 경제 자본과 학벌 자본은 이런 문제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다(도덕적 면허 효과).
유권자들은 정치를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니라고 본다. 기득권 엘리트가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일 뿐이다. 강남 좌파론은 정치가 출세와 입신양명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해하는 게 옳다. 강남 좌파를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의 용도로만 쓰는 것은 너무 비생산적이며, 강남 좌파론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강남 좌파 2』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라는 질문이다. 불평등의 완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은 하나일 것 같지만, 어떤 프레임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 사회에서 지배적인 프레임은 상위 1% 계급에 문제가 있다는 ‘1% 대 99% 사회’ 프레임이지만, 이 책에서는 ‘상위 10%’나 ‘상위 20%’를 문제 삼는 ‘10% 대 90% 사회’ 프레임 또는 ‘20% 대 80% 사회’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정파적 대결 구도를 넘어서 강남 좌파를 사회 전체의 불평등 유지 또는 악화와 연결시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해하자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다.
정치는 상위 20%가 지배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도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1% 개혁의 주체는 사실상 정책을 만들고 여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고위 관료와 각종 전문직 집단으로 대변되는 19%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만들어내는 1% 개혁안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바로 여기서 ‘강남 좌파’가 문제가 된다. 상위 20%에 속하는 좌파는 강남 좌파로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인과 관료 등 정책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집단의 ‘다양성’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조국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이라고 하면 신자유주의나 자본주의를 원흉으로 지목한다. 그러나 불평등의 해소나 완화를 목표로 삼으면서 생각하면 답은 오히려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보는 게 진실에 가깝다. ‘조국 사태’는 그런 문제의식을 의제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지만, 정치권과 언론과 일반 국민들까지 ‘친조국이냐, 반조국이냐’ 하는 정파적 이전투구로 이 좋은 기회를 탕진하고 말았다. 한국 사회의 최대 문제는 ‘밥그릇 전쟁’으로 인한 ‘분열 구조’에 있는 것이지, 그 어떤 진영이 승리하느냐는 부차적인 문제다. 어느 한 진영이 상대 진영을 완전히 압도해버린다면 ‘분열의 사회적 비용’은 무시해도 좋을 수준이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한 이상 그 어떤 정치와 개혁도 분열 비용을 넘어서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하고 만다.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는 ‘조국 수호’가 곧 ‘검찰 개혁’이고 ‘검찰 개혁’이 곧 ‘조국 수호’라는 논리를 내세웠지만, 검찰 개혁은 개혁 열망이 강하거나 탁월한 능력을 가진 개인이 아니라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우선 당장 패스트트랙에 오른 검찰 개혁 법안만 하더라도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려면 재적 의원 중 과반의 찬성이 필요한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정의당이 가세해도 의석수가 부족하다. 검찰 개혁을 위해 그 어떤 강력한 개인의 리더십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을 성공적으로 성사시키기 위해 여야 간 조정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어야 한다.
문재인은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는데도 의혹만으로 임명하지 않는다면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는 이유로 조국을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런 논리라면 이미 수많은 공직 후보자 중 도덕적 문제나 의혹만으로도 사퇴한 ‘나쁜 선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결국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였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소통하는 대통령’의 원칙에 충실했더라면, 이 사태는 지난 8월에 깔끔하게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문재인이 생각을 바꾸지 않자 지지자들은 ‘조국 사태’를 ‘문재인 사태’로 인식하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 희대의 ‘국론 분열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조국 수호’를 외친 사람들의 상당수가 ‘문재인 수호’를 위해 나선 것이었다.

20대들이 ‘불평등’에 분노하는 이유

20대는 진영을 초월한 공정을 중시한다. 누군가가 공정하지 못한 사회구조에서 ‘절차적 공정’에 집착할 때 그것에 시비를 걸 필요는 없다. 어떤 사회구조에서나 절차적 공정은 중요하며, 절차적 공정에 집착하는 것이 사회구조의 개혁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한 이 문제의 구조는 ‘절차적 공정’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만든 것이 아니며, 진보정치세력을 포함한 기성세대가 만든 것이다. 이것이 바로 20대가 갖고 있는 ‘공정’ 개념의 핵심이다. 이 공정에 대해 구조를 보지 못한 ‘미시적 공정’이라거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능력주의적 공정’이라는 비판이 적잖이 나왔지만, 이거야말로 적반하장이다. 누가 세상의 구조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런 서열 구조를 심화시켜온 386세대에게 큰 책임이 있다.
“잘못된 구조를 만든 사람이 자신의 잘못을 책임져야 한다. 그와 별개로 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들인 노력 앞에 떳떳하다”는 것이 20대들의 사고방식이다. 이들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잘못에 대한 연대 책임에 단호히 반대한다. 이것을 ‘보수화’로 오해하면 곤란하다. 그런데 기성세대, 특히 일부 진보적 정치인은 관성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생각이 20대를 마땅치 않게 보는 진보 정치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이들은 낡은 선악 이분법으로 20대를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20대의 공정 개념에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구조 개혁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밑에서 위로’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를 내포한 개념이다. 20대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수가 되리라는 희망을 키워가는 게 이 지긋지긋한 이분법 세상을 끝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우리가 정녕 새로운 삶과 정치의 패러다임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20대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모든 사람은 다 성공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졌으며 성공은 각자 하기에 달린 것이라는 능력주의 신화는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한다. 능력주의는 가난과 불평등의 문제를 사회적 이동성의 문제로 둔갑시켜버리는 효과를 낸다. 능력주의 시스템에 의해 생산되는 불평등은 계층 이동성을 죽일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능력주의 사회는 부자나 빈자에게 자기 정당화 효과를 발휘하게 되어 있다. 부자는 자신의 능력 때문에 부자가 되었다고 할 것이고, 빈자도 자신의 능력의 한계 때문에 빈자가 되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능력주의 사회는 빈부 격차에 가장 둔감한 사회가 될 수 있다. 능력주의 사회가 민주적일지는 몰라도 공정성에 위배된다. 다른 것은 다 제쳐놓더라도 출발 지점에서부터 계급 간 격차가 존재하는데 어떻게 공정할 수 있겠는가?
한국에서도 능력주의 사회의 허구성에 대한 많은 연구와 비판이 이루어져왔는데, 그런 비판을 압축시켜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20대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유행한 ‘수저론’이다. 하지만 이미 왜곡된 능력주의 사회 구조의 덫에 갇힌 개인으로서는 사회에서 인정되는 더 많은 ‘능력’을 갖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경쟁은 우선적으로 명문대에 진학하기 위한 입시 전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미국에서 통용되는 “명문대에 입학하는 길은 우편번호에 달렸다”는 말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니 우리 국민의 90%가 “특권 대물림 교육이 심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20% 대 80% 사회’ 프레임이 필요하다

‘1% 대 99% 사회’ 프레임에서는 1%에 속하지 않는 강남 좌파는 별 문제가 안 되지만, ‘20% 대 80% 사회’ 프레임에서는 강남 좌파가 매우 중요해진다.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정치를 지배하는 현실에서 그들이 과연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책을 주장할 수 있을까? 20%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외치는 ‘1% 개혁’은 가능한 걸까?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나도 양보했는데, 왜 당신들은 양보하지 않으려는가”라는 당당하고 공평무사한 자세를 가질 때 비로소 ‘1% 개혁’도 가능한 게 아닐까? 1%를 불평등의 주범으로 몰아버리면, 나머지 99% 내부의 격차와 불평등은 비교적 작은 문제로 여겨지고, ‘1% 개혁’을 완수하는 날까지 대동단결해야 할 공동체가 된다. 하지만 20%의 중상류층은 다수 대중과 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 않다.
1% 개혁은 그 프레임 자체가 착각이나 위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도 없다. 오히려 20% 개혁이 1% 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 어떤 계층도 ‘양보’ 없이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19%가 스스로 양보하거나 양보를 강요당하는 변화가 있을 때 비로소 1% 개혁도 가능해진다. 그래야 1% 개혁 정책도 시늉이나 제스처로 그치지 않고 실천 가능성이 높아진다.
진보적 정치인들은 중·하층의 민생을 생각하는 것처럼 전투적인 말은 많이 하지만, 그것에 대해 직접 접촉하거나 생각할 기회가 거의 없다.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계급적 기반과 동질적인 동료 압력이나 교류로 인해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사회적으로도 중요하다는 착각에 빠진다. 여권의 정치적 실세인 운동권 386 출신의 그런 착각은 더욱 심해져 개혁적 정책을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상에서만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정책을 주요 의제로 삼는다. 검찰 개혁에 정권의 명운을 거는 게 그 좋은 예다. 이것이 과연 민생 의제일까? 민생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법조 개혁을 하더라도 ‘유전무죄·무전유죄’부터 깨부수는 게 우선이 아니었을까?
왜 강남 좌파가 ‘1% 대 99%의 사회’를 외치는지 이해할 만하지 않은가. 이들이 외치는 진보는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진보 정책의 주요 ‘의제 설정’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는 진영 논리도 작동한다. 자기 진영 내부에 긴장과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주제보다는 진영 논리에 충실한 ‘모범 답안’만 이야기하려는 안전의 욕구가 1% 비판만 하게 만든다. 자신도 포함되는 19%에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야 한다는 주장은 끼리끼리 어울리는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1% 비판에 집중하는 것이 ‘진보 코스프레’의 정체다. 한국 정치도 그런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닐까? 정작 답은 ‘20% 대 80% 사회’에 있는데, 우리는 단지 편리하고 부담이 없다는 이유로 ‘1% 대 99% 사회’ 프레임에 빠져 존재하지도 않는 답을 찾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오히려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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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eam 201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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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의적절한 책입니다. 친구들이 조국은 강남좌판데 왜 그렇게 돈에 욕심이 많지! 라고 던지길래 그나이땐 다들 운동하지 않았나. 라고 했던 이후로 강남좌파에 대한 용어 정리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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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요 2019-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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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자 마자 다 읽었고 매우 마음에 들었다. 최근의 혼란에 대한 실마리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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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민(愚民)ngs01 2020-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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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 교수의 거침없는? 글들과 사고가
너무속 시원하면서 이런 바른 말을 하는
지식인들이 더 나서야 할 시기라고 본다...

얼마전 고려대 임미리 교수처럼 말이다.

아닌 것은 아니고,
보수 진보를 떠나 잘못은 잘못인 것이다.

내로남불과 특권층의 비리카르텔 집단의
서로서로 봐주기...
정규직 노조의 지 밥 그릇만 챙기기...

강남좌파는 기득권 세력이면서입으로만
진보를 외치는 조국같은 것들이다.

여전히 변할 생각도 없고 오만해지는 더민주당의 행태를 보면서
권력을 갖게 되면 안면 몰수하고 저리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인지...

이번 총선에도 또 누군가 후보로 나와 굽신
굽신 머리를 조아리다가 당선되면 목에 기부스하고 다니는 꼴을 또 보게 될 것인가?

정치후진국 대한민국!!!
가슴이답답하다~~~~~

1% 대 99% 사회 프레임은
어떻게 불평등을 은폐하는가?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 사태 였다는 게 진실에 가깝다. 문재인이 취임사에서 약속한 소통하는 대통령‘의 원칙에 충실했더라면, 이 사태는 깔끔하게 끝낼 수있었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생각을 바꾸지 않자 지지자들은 ‘조국 사태‘를
‘문재인 사태‘로 인식하고, "문재인을 지켜야 한다"는 이 희대의 국론 분열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다시 말해 ‘조국 수호‘를 외친 사람들은 ‘문재인 수호‘를 위해 나선 것이다.

20대 청년들이 불평등에 분노하는 이유

20대는 진영을 초월한 공정을 중시한다. 이들의 공정 개념은 구조 개혁의 강력한 동력이 될 수 있다. 이 공정에 대해 구조를 보지 못한 ‘능력주의적 공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지만, 누가 이 세상의 구조를 그렇게 만들었는가? 그런 서열 구조를 심화시켜온 386세대에게 큰 책임이 있다. 20대가 새로운 패러다임의 기수가 되리라는 희망을 키워가는 게 이 지긋지긋한 이분법 세상을 끝낼 수있다.

20% 대 80% 사회‘ 프레임이 필요하다

1% 대 99% 사회‘ 프레임에서는 1%에 속하지 않는 강남 좌파는 별 문제가 안되지만, ‘20% 대 80% 사회‘ 프레임에서는 강남 좌파가 매우 중요해진다. 20%의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외치는 ‘1% 개혁‘은 가능할까? 한국의 정치는 그런 함정에 빠져 있다. 해답은 ‘20% 대 80% 사회에 있는데, 1% 대 99% 사회‘ 프레임에 빠져 에너지를 낭비하면서 오히려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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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9-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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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롤스는 어떤 갈등 상황에서 무엇이 공정한지를 평가할 때 입장을 바꿔 생각하는 게 어렵거나 번거롭다면 아예 그 어떤 입장도 갖지 않는 '원초적 입장 original position'이라는 가상의 세계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제안한다.그런 원초적 입장을 갖는 데에 필요한 건 '무지의 장막'이다. (-57-)


더불어민주당 대표 이해찬은 그간 '200년 집권론'에 이어 '50년 집권론'을 주장하더니, 2019년 2월엔 '100년 집권론'까지 내놓았다.실소를 자아내게 하지만, 그게 어디 그 혼자만의 생각이겠는가. 이런 장기 집권론은 나름의 좋은 뜻이 있어서 역설한 것이겠지만, 현 집권 기간의 실패 가능성에 대한 '면죄부'의 용도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98-)


나는 '조국 사태'의 와중에서 여권의 일부 과격 발언들을 들으면서 운동권 386의 고질적인 아비투스라 할 '대의론' 과 '조직 보위론'을 떠올렸다."아 저 역사적 퇴물이 아직까지도 살아 있구나!"하는 놀라움과 함께 말이다.아는 분은 잘 알겠지만 ,과거 운동권에 성행했던 성폭력 문제가 바로 이 '대의론'과 '조직 보위론'에 의해 묵살되었으니,어찌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있으랴.대의론은 대의를 위해 참으라는 것이다.

(중략)

조직 보위론은 "진보의 대의"를 위해 활동하는 운동 조직을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위'하기 위해 성폭력 사건이 조직 밖으로 알려져선 안 된다"는 논리다. (-143-)


현재 전북대학교 교수로 재임 중인 강준만 교수께서 출간한 강남좌파2 는 2011년 출간된 강남 좌파 후속작이다.8년간의 시간 차를 두고 다시 이 책이 등장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서 조국 사태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을 끌어내기 위해서다. 한 권의 책을 통해 이념적인 기준을 최대한 배재하고, 조국 사태의 문제의 뿌리는 무엇이며,진보가 조국을 옹호하는 현상에 대해서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다. 즉 이 책은 상당히 조국의 과거 , 현재를 들여다 보고 있으며, 진보 정치인이 매번 정권을 잡을 때마다 서민 정치, 서민 복지와 정책을 내세우면서, 실질적인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이유를 따져 보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강남 좌파는 대한민국 사회의 상위 20퍼센트 이내에 있는 소위 부유층 정치인의 위선과 오만함을 짚어 나가고 있다.특히 진보 측, 더불어 민주당이 자신들이 내세우는 정체상과 이념에 만하는 정책과 발언들을 내세우고 있으며, 원내 대표 이해찬의 발언에 대해서 문제삼고 있다. 왜 우리는 조국을 비판해야 하는지 곰곰히 따져 보고 있는데, 그건 우리 사회에서 국회의원 정도의 위치에 있으려면, 우리 사회의 요구와 기준이 강남에 아파트 한 채를 살수 있는 재력을 가지고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걸 지적하고 있다.민주당의 가장 큰 문제는 공약이나 정책이나 내세우는 이념들이, 그들의 권력을 움켜지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실질적으로 민주나 정의에 대해 실천하지 않는 모순점은 어디에서 시작하는지 살펴보고 있다.


보수의 국회의원도 엘리트 지식인이며, 진보층 국회의원도 엘리트 지지층이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동떨어진 이념을 가지고 있지만, 경제적인 문제나 이해관계에 있어서 경제적 권력과 자본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즉 민주당이 선거 연령을 낮추려 하는 이유에 대해서 민주적 가치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실질적인 명분은 다른 곳에 있음을 몇몇 사례들을 통해 지적하고 있다. 지금 문제인 정부 들어서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세월호 유가족과 그들을 도와주려 하는 국회의원의 동질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즉 엘리트 지식인은 서민을 위한 정책을 통과시키는 것보다는 자신의 신분과 겹쳐지는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적극 나서고, 정책이나 법률,제도를 통해 구현하려고 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우리의 문제는 우리 스스로 풀어 나가야 함을 스스로 인식하고 자각해야 할 대목이다.그건 지금 까지 해해지고 있는 촛불 집회의 성격이 조국이나 문재인 정부를 위한 촛불 집회가 아닌 , 나 자신을 위한 촛불집회가 되어야 하며,정치를 이해하고, 정책안에서 정당과 각 정당이 추구하는 이념적 정체성에 대해 ,우리 스스로 무엇을 해 나가야 할지 곰곰히 따져보고 선택과 결정을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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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인01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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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과 소득은 높으면서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강남 좌파라고 한다. 우파가 좌파를 조롱하기 위해 만든 용어인데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외국도 비슷한 현상이 있다고 한다. 사실 저자의 전작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를 읽지 않았다. 그 당시 왠지 모르게 이 단어에 거부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 당시 읽었다면 강남 좌파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졌을까 하는 생각이 지금 문득 생긴다. 그리고 저자도 말했듯이 얼마 전 ‘조국 사태’에서 강남 좌파의 문제점들이 한꺼번에 표출되었다. 우리가 조국 법무장관을 지키기 위해 한 행동 속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이 책은 다루고 있다. 거대한 프레임 중 하나는 1%와 99%의 대결 구도다. 좀 더 나가면 10% 대 90% 정도일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20% 대 80% 사회로 보면서 우리 사회 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한다. 높은 중산층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에서 동의할 수밖에 없다. 강남은 아니지만 강북에 집이 있고 연봉도 1억인 지인이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보고 싶어하지 않는 현실을 보고 과연 누가 중산층일까 하는 의문이 든 적이 있다. 아마 고소득 전문직 정도 되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면 상위 몇 개 대기업 부장급 정도. 이런 상황에서 그들이 실제 부동산 정책에 어떤 결정을 할지는 많은 부분 알 수 있다. 저자가 가장 먼저 불평등을 말하면서 1% 대 99% 사회를 내세운 것은 위와 같은 한국인들의 왜곡되고 과장된 기준도 한몫한다. 노동 귀족에 대해 나 자신이 열심히 주변 사람들에게 변호하고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그들은 이미 기득권 세력화되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 전체로 보면 상위 10%에 포함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 지역에서는 충분히 10%에 포함된다. 이것을 대물림하기 위한 투표를 했다는 사실과 과반 이상이 찬성했다는 부분에서 노동 귀족이란 표현에 동의할 수밖에 없다. 진보가 1% 비판에 집중하면서 노동 내부의 계급화를 놓치고 있는 부분은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 중 하나다. 조국 사태를 단순히 진영 논리로 보는 것은 확대 해석이다. 검찰 개혁이 지나치게 과잉대표돼 있다고 하지만 수많은 사건들에서, 사법농단에서 우린 검찰이 정권의 하수인이 되거나 자신의 조직에만 충성하는 것을 봤다. 조국 수호와 검찰 개혁을 동시에 놓고 본 것은 검찰이 어떻게 조국과 그 집안을 털었는가 봤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초기 검찰이 적폐 청산의 칼이 된 것에도 동의하지만 너무나도 분명한 조직 비리에 그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봤다. “진영 논리에 열광할망정, 평등엔 무관심하다.”란 지적이 아픈 것도 사실이다. 보수 언론에서 청와대 고위직들이 강남 부동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공격한 것도 이런 아픈 부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현재 정치권 실세들은 소위 386세대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또 이들을 빼고 운동권을 말하기는 힘들다. “운동권이 거시적으론 권위주의 정권에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미시적으론 권위주의 사고방식에 찌들어 있다.”란 지적은 맞다. 우린 알게 모르게 나이와 직위의 권위를 내세운다. 시대의 효용이 끝났지만 과거의 영광에 매몰된 그들이 위에 있을 때 진보는 보수화된다. 진보의 위선을 말할 때 나는 순간 뜨끔했다. 나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최소한 위선적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해당되는 것들이 몇 개 보이기 때문이다. 불공정함에 둔감한 것도, 알면서 눈을 깜는 것도 권위주의 사고와 관계있다. 강남 좌파를 존중해야지만 모든 정치인이 강남 좌파화는 곤란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진보의 우선적인 사명을 불평등 해소와 완화, 정치는 불평등 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부분에도 동의한다. 하지만 현실 정치에서 이것을 한꺼번에 실현하기는 불가능하다. 80% 계층 사람들이 정치에 더 많이 나서야 하지만 현재 정치 구조에서 이것은 쉽지 않다. 하나씩 바꿔나가야 한다. 검찰총장과 앞으로 생겨야 할 공수처장의 임명을 대통령이 하는 문제점에 대한 지적도 동의한다. 로스쿨이 또 다른 권력 세습이나 자기 조직 강화 등으로 가는 길에 놓여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진보 학자의 올바른 지적이 비현실적인 부분이 있다고 해도 진보 진영은 이것을 검토하고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86세대와 그 이전 세대가 만들어 놓은 높은 벽은 이제 점점 사다리 걷어차기가 되어가고 있다. 읽으면서 내가 놓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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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oh 20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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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2



이 책은?



이 책 『강남 좌파 2』는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우리 시대의 불평등에 대하여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저자는 강준만, 저자는 2011년 『강남 좌파』라는 책을 통해 ‘강남 좌파’라는 용어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낸 바 있다.





이 책의 내용은?



능력주의



자 이런 말 한번 들어보자.

부자 : “내 능력으로 내가 돈 벌어서 부자가 되었는데, 무슨 문제 있나요?”

가난한 자 : “내 능력의 한계 때문에 가난한 것이니, 누구 탓을 할 수 있겠어요?”



언뜻 들으면 하나도 그른 데가 없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본인의 능력이 부족해서 가난하게 된 것을 누구 탓을 할 수 있겠으며, 능력이 좋아 돈을 벌었으니 거기에 딴지를 걸 수 없다는 것, 맞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이런 생각 해보자.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 그건 고성장 시대에는 통하는 신화였다. 가난한 집 아이들도 명문대학에 들어가 신분상승이 가능했었다. 그런데 저성장 시대가 되자 , 상황은 달라졌다.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45쪽)



원래 능력주의는 출신과 배경에 의해 부와 사회적 지위가 부여되는 귀족주의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나타난 것이었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사실상 귀족주의나 다름없는 것이 드러났다.

개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요인들이 능력에 포함된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누가 말한 것처럼 '부모를 잘 만난 것도 능력'이라 하지 않았는가.

능력을 대치하는, 그러한 요인들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차별적 교육 기회, 불평등한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특권의 상속과 부의 세습, 자영업자의 자수성가를 방해하는 대기업, 이러한 요인들이 능력보다 더 작동하는 시대에 어떻게 능력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저자는 이러한 문제들을 제시하면서, 우리사회가 불평등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중에 대표적인 게 바로 '강남 좌파'라는 용어다.



강남 좌파란?



서울 한강 이남의 지역을 강남이라 부른다. 강남에 사는 부유한 사람, 그중에서 학력과 소득은 높으면서 정치적, 이념적으로는 좌파 성향을 띤 사람을 강남 좌파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면, 강남에 사는 부유한 사람으로 좌파 성향을 띄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런 용어가 우리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닌 모양이다.

저자가 밝히고 있는 바에 따르면, 미국의 ‘리무진 진보주의자’, 프랑스의 ‘고슈 카비아’, 영국의 ‘샴페인 사회주의자’, 독일의 ‘살롱 사회주의자’, 캐나다의 ‘구치 사회주의자’, 호주의 ‘샤르도네 사회주의자’ 등도 우리의 강남 좌파에 상응하는 용어들이다. (7쪽)



저자는 강남좌파라는 말을 조금 더 넓게 사용한다. 이런 말 들어보자

<운동권 386에 더욱 치명적인 건 남들은 일신의 영달을 꾀할 때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쳤다고 하는 자부심과 도덕적 우월감이다. (……) 그런데 우리 인간이라는 게 묘한 동물이어서 그 어떤 미덕도 상황이 바뀌면 악덕이 되고 만다. 선명한 적이 있을 때에 온몸에 각인시킨 선악(善惡) 이분법은 민주화 투쟁엔 더할 나위 없이 강력한 무기가 되었지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체제하에선 ‘적’과의 타협을 죄악시함으로써 정치의 정상적인 작동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게다가 민주화 투쟁 시엔 ‘나 홀로’였지만, 세월이 흘러 결혼을 해 가정을 갖게 되면서 학부형이 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상이 지배하는 삶 속으로 빠져들게 되어 있다. 정관계에 진출한 운동권 386은 대부분 막강한 학벌 자본을 자랑하는 사람들인지라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인맥의 혜택을 누리면서 강남 좌파로 변신하게 된다.> (122쪽)



그렇게 운동권으로 활동하던 학생들이 이제 정치계에 들어서면서, 강남 좌파가 되어버리는 구조를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조국에게만 강남 좌파 딱지를 부정적 의미로 붙이는 것은 부당하거니와 어리석다. 상위 20%에 속하는 좌파는 다 강남좌파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37쪽)

.

다시, 이 책은?



강남 좌파라는 용어는 한국 사회를 이해하는데 핵심적인 키워드임에 분명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강남 좌파라는 용어를 우리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방편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그래서 강남 좌파라는 용어를 정파적 싸움의 도구로 사용하지 말고, 우리 사회를 냉철하게 바라보는 하나의 계기로 삼자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 책에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다시한번 성찰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제시하고 있다. 검찰 개혁, 민생 개혁, 그리고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각종 프레임에 이르기까지 굵직굵직한 의제들을 다루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우리 시대를 제대로 바라보도록 우리의 시력을 점검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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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cs624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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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 99% 사회'는 불평등 문제를 제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핵심 용어이자 개념이 되었다.

이 프레임은 '1% 개혁'마저 어렵게 만드는 함정이며, 이게 바로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한국은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이미 세계 최소 수준이고, 상위 1% 기준보다 상위 10% 기준의 불평등이 심각하다.

따라서, 한국은 그 어떤 나라보다 '1대99의 사회'가 아니라 '20대80의 사회'를 기본 프레임으로 삼아 개혁에 임해야 한다.




하지만, 진보적인 언론, 지식인, 정치인들이 불평등 문제에 대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모두 다 재벌만 문제 삼는다.

1% 개혁론에만 집중하면 나머지 99% 내부의 격차와 불평등은 비교적 작은 문제로 여겨진다.

하지만, 1% 개혁은 그 프레임 자체가 착각이나 위선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다.

오히려 20% 개혁이 1%개혁의 동력이 될 수 있다.

그 어떤 계층도 양보 없이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지만 불평등 완화를 위해 상위 20%에 대해 무엇을 요구한다는 건 엄청난 저항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는 상위 20%가 지배하고 있다.

1% 개혁의 주체는 사실상 정책을 만들고 여론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19%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이 자신의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만들어내는 1% 개혁안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교육 문제'도 그렇다. 정책 결정 엘리트의 대부분이 학벌주의의 수혜자이기 때문에 이들은 이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결여되어 있거나 내심 '이대로가 좋은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라는 생각을 한다.

진보 정권이 들어서면 문제가 좀 나아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학벌은 돈 많은 보수 엘리트보다는 돈이 비교적 적은 진보 엘리트에게 더 필요하기 때문에 진보 정권이 심한 학벌주의 경향을 보인다.

좋은 대학을 나온 건 칭찬할 일이지만 문제는 그런 집중으로 인한 '특혜'의 집중이다.




'1대 99의 사회'를 외치는 강남 좌파의 진보는 자신들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진보 정책의 주요 의제 설정이 경제적 불평등 해소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왜 진보 정권이 집권을 해도 불평등이 악화되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

최대한 중립적인 관점에서 읽었는데 개인적으로는 공감 가는 부분이 많았다.

결국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빈부 격차'나 '사회적 불평등'은 해소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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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종스님 2019-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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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의 사태 때문인지 몰라도 소위 좌파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의이중적인 행태들이 연일 보도되고 화재가 되고있다. 그리고 국민들의분노를 사고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의말과 행동이 달라서일게다. 사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털어놓자면 20대의나는 지금보다는 더욱더 진보적인 생각을 가졌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과 교류를 했고 결과는 실망이었다. 말과 행동이 달랐기 때문이다. 분배와공정을 중시하면서 현실은 매우 자본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을 많이만났기에 일종의 편견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시금 강남좌파에 대한 이야기가 쏟아지는 것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그래서 이 책이 나왔고 이 책에는 강남좌퐈에 대한 분명한 정의를저자는 밝히고 있다.
우선 이 책의 장점은 저자에게 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강준만님은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책을 쓰신다. 그래서 주석과 해설이 많아 읽기에는불편한 단점이 있지만 그만큼 팩트가 많이 담겨있기에 신빙성이 높다.이 책 역시 그랬다. 다양한 논거와 자료를 제시하며 저자는 좌파의 진정한모습과 나아갈 미래를 이 책에서 털어놓고 있다.
미국에서 통용되는 "명문대에 입학하는 길은 우편번호에 달렸다"는말은 한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P50
정치는 상위 20%가 지배하고 있다. 전문가 집단도 상위20%에 속하는사람들이다. P37
가난한 이들을 대변한다고 외치는 좌파들은 왜 불평등을 해소하지 못할까?이 물음에 대한 답에 저자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우선 시작점부터가진자와 다르다는 가슴아픈 전제조건을 말하며 우리를 현실에 인지하고 그것을헤쳐나가는 방법에 대해 저자는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이런 망국적인 선악 이분법에 비교적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바로 20대다. 고성장 시대의 세대들은'민주화'만 고민해도 무방했지만, 고성장 시대의 종언과 함께 닥친'일자리 전쟁'은 공정의 문제를 부각시키면서 그걸 개인의 영역으로 끌어내렸다. 그래서 20대는 진영을 초월한공정을 중시한다. P62
또한 이 책에서 가장 와닿았던 것은 20대의 등장과 그들의 역활론에 대한저자의 이야기였다. 어쩌면 가장 정치에 관심없는 이들인 20대들에게 정치란더욱 소중한 이유를 알려주면서 말이다. 사실 나 역시 20대에는 정치에 관심이없었는데 지금의 20대들은 다르다고 생각한다. 내 세대보다는 현실적이고저자가 말하듯 공정을 중시하는 세대이니 말이다.
아무쪼록 이 책을 읽으며 강남좌파라는 단어에 숨은 의미들에 대해잘 알 수 있어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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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똥배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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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좌파라는 용어가 언제부터 나왔을까?

정확히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 머릿속에 자리잡은 일상용어가 되어버린 것 같다.

예전의 빨갱이, 종북좌파에 이어 비슷한 의미로 쓰여지기 시작한 것 같다.

우리의 현대사에서 강남이라는 단어는 극히 가진자, 보수의 이미지가 강하다.

거기에 정반대의 의미인 좌파라는 단어가 붙어서 만들어진 용어이기에 누가 들어도 앞단어보다는 뒷단어가 강조됨을 쉽게 이해될 것이라 본다.

21세기 대한민국 강남좌파의 가장 앞에 서 있었던 인물이 조국 전장관이 아니었나 싶다.

많은 것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진보적인 말과 행동들을 많이 했던 그였기에, 보수층들은 싦어했을 것이고 진보층에서는 기대가 컸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청문회 전후를 통해, 검찰의 엄청난 조르기를 통해 강남좌파의 대표인물이었던 조국 전장관과 그의 가족들은 수개월이 지난 아직까지도 검찰조사와 재판을 받고 있다.

그가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현재 진행되는 상황들은 검찰의 자신의 특권을 없애거나 줄이려고 하는 조국 전장관 죽이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라고 본다.

국민들의 역린이라고도 말하는 교육문제에 대해 수십명의 검사와 조사관들을 통해서도 그가 죄가 있음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자 이제는 다른 방향에서 어떻게든 그를 엮어서 죽이기 위해 노력하는 검찰의 모습은 왜 검찰개혁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정파적 대결 구도를 넘어서 강남 좌파를 사회 전체의 불평등 유지 또는 악화와 연결시켜 ‘우리 모두의 문제’로 이해하자는 나의 제안이 여전히 큰 호응을 얻지 못한다 하더라도, 강남 좌파에 대한 기존 오해만큼은 불실되길 기대한다. 나 역시 지방에 살고 있을망정 넓은 의미의 ‘강남 좌파’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엄정한 자기비판에 임한다는 자세로 이 책을 썼다는 걸 밝혀두고 싶다.” - P. 13.



<강남좌파 2- 왜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킬까?>는 또 한명의 유명한 진보 논객인 강준만교수의 강남좌파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으로, 저자는 강남좌파라는 단어에서 느껴지는 정치적인 우파와 좌파라는 정치적인 개념보다는 좌파우파를 떠나 사회전체의 계급과 불평등의 시각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저자는 흔히 이야기하는 1% 가진 자들과 99%의 일반대중의 개념으로 더 이상 세상을 보아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20% 대 80%의 관점에서 사회를 보아야만 제대로 된 사회구조의 문제점, 불평등과 계급의 고착화 등을 파악하고 개혁할 수 있음을 말하고 있으며, 그러한 프레임으로 볼 때 20% 안에 거의 모두 포함되어 있는 자타칭 사회지도층들, 특히 국회의원들과 고위관료들이 누리고 있는 특권을 무너뜨릴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많은 유권자가 보기에 정치는 좌우의 싸움도 아니고, 진보-보수의 싸움도 아니다. 기득권 엘리트가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그들만의 싸움일 뿐이다. 강남 좌파론은 정치가 출세와 입신양명의 도구로 기능하는 사회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해하는 게 옳다. 강남 좌파를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의 용도로만 쓰는 건 너무 비생산적이며, 강남 좌파론에 대한 심각한 오해다.” - P. 10~11.



“‘1 대 99의 사회’라는 프레임은 ‘1% 개혁’마저 어렵게 만드는 함정이며, 이게 바로 오늘날 한국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연구 결과, 한국은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아미 10년 넘게 세계 최고 수준이었고, 상위 1% 기준보다 상위 10% 기준의 불평등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 P. 27.



“진보에 필요한 건 현실주의적 진보, 또는 진보적 현실주의다. 도덕적 우월감에 사로잡힌 진보주의자들은 ‘타협’을 보수화 또는 우경화로 보거나 추악하게 생각하는 고질병을 앓기 십상이다.... 평등을 추구하면서 중, 하층의 삶을 가장 염려하는 진보주의자에게도 타협은 아름다운 단어이며 단어여야만 한다.” - P. 129~130.



개인적으로 우리나라에 좌파는 없다고 본다. 그냥 오른쪽에서 조금 더 중앙에 가깝느냐 아니면 조금 더 오른쪽으로 갔느냐의 차이만 있을뿐이라 생각한다.

특히나 정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좌냐 우냐라는 프레임으로 서로를 받쳐주고 서로서로 이득을 나누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이제는 좌나 우가 아니라, 상식적이냐 비상식적이냐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진보든 보수든 상식적인 주장과 행동을 한다면 지지하고, 비상식적인 말과 행동을 한다면 거부해야 한다는 말이다.

21세기에 비록 남과 북이 대치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좌파니 빨갱이니 하는 말에 흔들릴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극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진보의 의제 대전환이 필요하다. 강남 좌파는 존중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모든 정치인의 강남 좌파화는 곤란하다. 기존의 위선 둔감증에서 탈출해야만 진보가 가장 우선시해야 할 의제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떠오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보의 우선적인 사명은 불평등 해소나 완화이며, 정치는 불평등을 악화시키라고 존재하는 게 아니다.” - P. 16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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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맘 2019-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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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라고 생각하시는가요? 아님 진보라고 생각하시나요? 굳이 정치적 성향이 아니더라도 평소 가치관이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보수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분야에서는 진보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제 주위를 둘러봐도 완전하게 보수고 완전하게 진보인 사람은 잘 없는 것 같습니다. 보수적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이 한 번씩 틀을 깨는 행동을 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보면 말이죠. 늘 앞서고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결정적인 순간에 멈칫하면서 기존 방식 그대로 예전에 했던 것 그대로 하는 걸 보면 그런 것 같습니다.

이 책 강남좌파 2는 우리나라 현재의 제일 화두인 불평등에 대한 것을 콕콕 집어주고 있습니다. 상위 1%만 누리고 자신들만 공유하고 자기 자식들에게 대물림하고 있는 혜택들과 기회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한 공평한 기회조차제공받지 못하는 99%가 느끼는 상실감과 허탈감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99%에 해당하는지라 이번에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를 보고 정말 분노를 느꼈습니다. 저는 이제껏 비교적 균등한 기회를 제공받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네요. 상위 1%가 어떤 혜택을 받는지 자신들이 그런 혜택을 받기 위해 정치를 어떻게 이용했는지 전혀 몰랐으니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비참하고 등신같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리고 더 속상한 건 우리 아이들 역시 그런 건 꿈도 못 꾼다는 사실이 절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수들이 하는 품앗이 인턴이나 각종 경시대회 참여 등등을 해서 자기들은 다 소위 말하는 출세가 보장된 일류 대학을 가고 있었습니다.그런 인턴제도가 있는지 경시대회가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우리가 어떻게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까요. 대학입시도 불평등하니 살면 살수록 그 불평등의 격차가 더 심해지는 것 같습니다. 책을 읽어보니 너무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얘기해줘서 불편하기도 하고 구구절절 맞는 말이라 속상하기도 하더군요.

정말 1%와 99%가 아니라 20%와 80%의 사회가 된다면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불평등이 덜 해질 것 같습니다. 그런 사회가 되도록 우리 어른들이 노력해야 될 것 같습니다. 무얼 해야 되는지는 한번 생각해봐야 될 것 같네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불평등에 대한 책이고 정치에 관한 책이지만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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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oes 2019-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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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불평등함 속에서 살아가는 거 같습니다. 최근에 떠들썩했던 '조국 장관 사퇴'사건을 단편적으로 보면, 권력 인맥과 재력을 가진 자라면은 법을 초월해서 뭐든지 가질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했습니다. 일반인은 꿈도 못꾸는 여러가지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서, 혹은 암암리에 불법을 행해서 여러가지 혜택을 얻는 것을 보면은 참으로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정치라는 것이 결국에는 우리 국민들을 위한 것일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정치를 통해서 우리나라는 국민들의 불평등과 갈등은 더 심해지고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이 책은 국내, 해외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 과거 언론 기사, 여러 연구자들의 견해들을 인용하여 이러한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문제들을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본인의 견해를 쓰느 책입니다.







저는 그동안 크게 생각지 않은 부분이지만 '소득 1%가 나머지 99%의 부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그런 프레임이 매우 위험하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는 상위 20%가 하위 80%를, 혹은 상위 50%가 하위 50%를 착취하는 구조에 가까운 사회라는 것을 설명하면서, 바로 이것이 우리나라의 정치의 함정 중 하나라는 것을 설명하는데 저는 그것이 조금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부분을 보기 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던 현 정권의 흐름이 이해되기 시작하는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뒤로 이어지는 '왜 정치는 중, 하층 민생을 외면하는지'에 대한 내용까지 이어지게 됩니다.

90년대 생으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민생보다 더 중요시 여겨지고 있는 '검찰개혁', 아직까지 보상이 제대로 되고 있지 않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문제', '더 이상 죽지 않게 해달라'는 호소마저 무시당하고 있는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이야기까지.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 권력을 잡고 있는 386세대. 즉, 저희 부모님 세대의 사고 속 '도덕적 우월감. 즉,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태'로 말미암아 적나라하게 드러난 '도덕적 면허 효과'로 인한 부도덕함이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그들의 과거를 통해서 분석해 본 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분석글을 보면서 저는 섬뜩함마저 느꼈습니다.(물론,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386세대는 '정치 권력'을 잡고 있는 일부 사람에 한한 비판입니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타락한 몇몇 사례, 개인적인 인품은 훌륭하다고 느꼈는데 막상 정치 권력을 잡고 난 이후에 보니 '내가 알았던 그 사람이 변했다'라고 느끼게 한 사례 등이 이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러한 현상들이 우리나라만 있는게 아니라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캐나다 등 우리보다 잘 사는 선진국의 진보 정치인들에게도 이러한 함정에 빠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단순히 '좌파', '보수'를 이분법으로 나눈 책이 아닙니다. '진보정권의 문제'를 비난하려고 쓴 글 또한 아닙니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에서 '좌파와 보수'라는 이분법으로 선과 악 나누듯이 싸우는 정치는 이제 그만두고, 앞으로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심정을 담아서 쓴 글에 가깝습니다.




우리 정치가 진정으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현재 정치인들도 꼭 읽었으면 좋겠지만 특히나 정치에 대해서 관심을 잃고 실망한 젊은 세대에게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러나 저러나 앞으로 우리나라 사회의 다음 바통을 이어가야 되는 사명을 지닌 세대들이 현재 20대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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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나 2019-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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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좌파 2>를 읽기전엔 '강남좌파'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강남'이라는 지명과 '좌파'라는 정치관이 합쳐진 단어로 '강남 좌파'는 한국 사회의 신계층의 하나로, 몸은 '상류층에 고소득, 고지식'을 가지고 있지만 의식은 '프롤레타리아'적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강남 좌파 2>에서는 평소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잘 모르고 있던 단어들이 나왔다. '수구꼴통', '종북좌빨', '진보 코스프레', '도덕적 면허 효과' 등 인터넷에서만 떠돌던 단어인줄 알았다.







사회문제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단어 중에 하나가 아마 '불평등'일 것이다. 이 '불평등'으로 인해 사회 대부분의 문제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 대 99% 사회'라는 말로 대변되는 현대 사회의 불평등 문제는 더 많은 저항을 받고 또다른 불평불만을 낳는다고 본다. 그래서 사회는 더욱 1%와 99%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 대 99의 사회'라는 프레임은 1% 개혁도 어렵게 만드는 함정이며 한국이 처해 있는 현실이라고 한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평등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 학벌은 점점 부익부빈익빈의 형태로 변하고 있다. 부자들이 SKY대학, 의대, 로스쿨에 자신의 자식들을 보내고 그들이 다시 대한민국의 1%에 속하게 되면서 부를 대물림하고 있다. 이러니 '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없어진 것이다. 그렇다보니 강남 좌파가 '1 대 99의 사회'를 왜 외치는지 알 수 있다. 진보는 자신의 경제적 기득권 유지를 전제로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불평등 해소와는 거리가 먼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개인의 능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사회적 위치가 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많이 다른 시대라 능력주의가 아니라 세습주의라고 해도 무방할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불평등을 타도하고 공정과 정의를 외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들어 국민들에게 이슈가 된 '조국 사태'를 보면 불평등으로 인한 국민들의 잔인함을 볼 수 있다. 국정 농단 촛불 혁명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이번엔 반대쪽은 적폐로 보고 자신들은 혁명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적 아니면 아군이라는 생각만 있는 선악 이분법적인 생각이다. 이런 사태를 만든 세대들에게서 답을 얻을 수 없다. 이젠 20대가 이런 문제의 답을 줄 것이다. 20대도 정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앞으로 잘못된 불평등을 해결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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