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가 밝힌 [환단고기] 진서론 - 최명희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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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912 views Dec 18, 2025 #Northeast #Lee #Hw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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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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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우리 역사 바로알기 학술국장 최명희입니다.
오늘은 이제 환단 고기를 한번 알아보려고 그래요.
요즘에 띠 때 아닌 환단고기 그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어 환난고기가 굉장히 허무맹랑 책이다. 이제 이런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많은 거 같아서요 책을 사료로서 어떻게 볼 수 있는지
우리 서울대 국사학과의 어 전 교수님으로 계셨던 한영우
교수님 이제 고인이 되셨습니다. 이분의 책에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을 가지고 이분이 주장하신 어 단군 세기 진서론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당군 세기는 뭐고 또 행촌 이암은 누구냐?
이게 환단고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이런 의문을 가지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제가 하나하나 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어, 오늘 이제 책이 바로이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인데요. 어, 한용우 교수님은 우리나라에서이
한국의 사학사, 역사학의 역사를 아주 집중적으로 공부하셨고 어, 마지막에
이것을 이제 그 네권의 책으로 발표를 하셨는데 그 사학사 연구에 아주 큰
역할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어, 그냥 제화사학자가 아니세요. 이분이
서울대학교 물리대학이 사업과 국사과 다 졸업하시고 한국문화 연구소장 규장각 관장 입문대
학장 또 국사학과 교수 여기 이런 그 정통 코스를 밟으신 분이고요.
2002년도에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을
내신 분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그 인정받는 우리나라의 석학이시죠.
그래서 이분이 쓴 다른 책으로는 굉장히 많은 분들이이 책은 보셨을 거예요. 다시 찾는 우리 역사.
그래서 우리 역사 통사 책인데요. 어, 해외로도이 책은 많이 한국
역사를 공부하시는 외국에서도이 책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본에서도 어, 2003년도에 번역이
됐고 어, 2010년도에는 영어, 러시아판까지도이
가능이 됐다고 하거든요. 그래서 오 국내외에서 아주 대표적인 한국 통사
책을 어 인정을 받고 있는이 책의 저자세요.
근데 이제 제목에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이렇게 쓰셨잖아요. 어떤 역사를
이분이 다시 찾으셨다고 말씀하시는 걸까요? 제가 연표를 보니까 한국 연표가 쭉
고조선부터 나오는게 아니라 홍산문화부터 나와요. 어, 이분이 연구를 통해서 어, 고조선 233년에
이렇게 표시를 하셨고 그 앞에 홍산문화부터
우리 역사를 이렇게 시작을 하고 계신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요 부분을 그 고대사 부분을 굉장히 우리
역사에 그 삽입을 하고 그다음에 연구를 하신 공로도 굉장히 크신 분이
분이십니다. 이런 역사 서술을 많이 연구를 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분의 저작을 어 면밀하게 보고 어 개승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이 이 책을 보면은 어 환난고기의 구성이
이렇게네 가지 책으로 되어 있다라는 것을 어이 책에서도 잘 설명을 해
주고 계세요. 그래서 우리가 한단고기가 한 사람이 쓴 뭐 하나의
저작이 아니라 총 어네 개의 책으로 구성된 어 그리고 약 한 년여년에
걸쳐서 쭉 그 쓰여진 것들을 그 책을 모아서 대일 항쟁기에 그때 하나의
책으로 엮어낸 거예요. 그래서 구성을 한번 살펴보면 첫 번째가 이제 삼성기인데요. 어, 삼성하면 환인,
환웅, 단군이잖아요. 우리 단군 어, 사화에도 보면 환인 한웅 단군인데요
고시대를 나타내 준 책이 삼성기. 그래서이 삼성기는 두 편이 정해
전해져요. 상편과 하편. 그래서 상편의 저자는 신라 말의 승녀
아남로고요. 하편은 이제 원동중이라는 분이신데 어 고려 말에 뭐
원천석이라는 설도 있고 이분이 누군지 모른다 이런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이
두 분의 저작이 동시에 한 책에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로 이제
검토를 할 단군 세기 이게 굉장히 환단고기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이 책은 어 고려 아래 어 관료예요.
행촌 이암 이분이 썼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용은 뭐냐면 단군
왕검이 한 분이 아니잖아요. 1대부터 어 마지막 47대까지 단군이 있는데
그 단군의 이름과 업적 그것을 쭉 편년체로 연도별로 쭉 기록한 그런 어
저작인데이 환단 고기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오늘은요 당군 세
개를 중심으로 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께서도 어
환단 고기를 하면서 왜 행촌 이암을 가지고 왔느냐 이런 의문이 이제
풀리셨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다음이 이제 북부역이이
범장이라는 고려할 학자가 그 해모수가 건국한 북부여의 역사를 다룬 그 책이
있습니다. 또 하나가 태백일사. 태백일사가이 환단 고기에서는 약 한
2분 정도 굉장히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어 그래서 굉장히 또 중요하죠. 네.이이 책을 쓴이 맥이라는 분은
조선 중종때 학자예요. 단군 세기를 쓴 행촌 이암의 오대손 그 집안에서
내려오는 가장의 도서를 보고 또 이분이 옛 전적을 관리하는 그런 일을
그 관직에 나가서 했었거든요. 그때 본 책들을 이렇게 다 종합해서이
태백일사를 쓰셨는데 그 내용이 굉장히 방대합니다. 그러니까 삼신오재본기
신시본기이 배달공 얘기겠죠. 신시본기, 사관경 본기 우리가 말하는
단군 왕검 시대, 그다음에 소도경전 본 시대의 어떤 사상 또 철학을 담은
그런 어 우리 그 천부경 이런 내용이이 책에 나오거든요. 소도경
본. 그다음에 우리 역사의 정통을 이렇게 고구려로 보고 있기 때문에 고구려 본기, 대진국 본기, 고려국
본기까지 고려국 본기를 다 마치지 못하고이 책을이
마치거든요. 이렇게 내 책이 구성된 것이 환단 고기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을 차지하고 태백일사의 지필리에도
굉장히 많은 영향을 준 단군 세기를 우리 한영우 교수님께서 어떻게
문헌적으로 사료적으로 검토하고이 책이 행촌 이암에 의해서 저술된 것이
맞다라고 결론을 내리셨는지 그것을 한번 차근차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 이 환장고기를 감수하신 분은 개몽운동가 해학이기 선생님이신데요.
이분이 누구냐면 그 행촌 이암 선생의 후손이세요.
그 가문에서 역대로 아주 가문에서 비장해 오던 그 책을 다시 꺼내서 어
검토하시고 또 감수하시고 그런 분이죠. 그리고이 어 당군의 역사
우리 고대사를 또 알리기 위해서 단학회를 창립해서 여러 멤버들과
적극적인 어 구국 운동을 하셨던 분이거든요. 그리고 우리가 흔히 개연수가이 책을
지었다 이렇게 알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근데 개연수 운초 개연수
이분은이 책을 지은 것이 아니고 내게 그 책을 묶어서 발관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운초 개연수 선생님은 1911년에 형안도에서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역기, 그다음에 태백일사이네 가지
책을 모아서 우리 독립운동가 오동진, 우리 홍범도 장군 이런 분들의 지원을
받아서이 책을 발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분은 어 해학이기 선생님의
제자세요. 그래서 그 책을 어 엮는 역할을 하셨던 분이고요. 그러면이 책은
누구에 의해서 공개가 됐느냐? 이때는 그 홍봄도의 지원으로 약 50분과
하여튼 아주 소량의 책을 필사에서 전달을 했고 그것은 이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공개하신 분은 어 해학이기 선생의
후손이신 이립 선생님이세요. 그래서 어 개연수의 제자라고도 하고 또 이암
선생의 후손이신 이유 선생님이이 책을 물려받아 그냥 보관하고 있다가
그러니까 1979년에 이렇게 세상에 공개해서이 적극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됐습니다.
그런데 이게 어 편찬과 전승 과정을 보면 다 고성 이씨 행촌 이암의 그
가문인이 고성씨 가문에서이 책이 아주 몇면이 전승이 돼 왔고 또 공개하고
발관하는 역할에도 이분들이 큰 역할을 한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이기 선생께서이 단학회라는 그 조직을 만들고 초대 초대에 그러니까
회장을 하시거든요. 그다음에이기 선생 다음으로는 이분이 1909년에
그 단식 순국을 하시거든요. 그다음에 이것을 전승하신 분, 전승하는데
굉장히 큰 역할을 하신 분이 어 석주 이상용 선생이십니다. 이분이 우리나라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도 하셨고 당군 역사에 대해서도 많이 강조를 하셨는데
어 이분도 고송희 씨 가문으로서이 책 환단고기의 전승에 많은 역할을
하셨습니다. 그다음으로이 역할을 이제 물려받을 분이 하남당 이율립
선생님이시고 이분도 이제 고성희 씨 가문이세요.이 이 가문 내에서 몇면이 이어오다가 어
우리 그 중화 사상이 많이 힘을 잃고 그랬을 때 다시이 책이 세상에 빛을
보게 되고 이런 분들의 노력에 의해서 어 세상 공개가 되는 과정을 좀
알아봤습니다. 그런데요. 왜 환단기가
조선 시대나 이런 데에는 그런 이름이 나오지 않느냐? 뭐 단군 색이나
환단곡이라는 명칭은 운초 개연수가 어 책을 편찬하면서
지은 이름이에요. 책 이름은. 그러니까 이제 조선 시대에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데 단군 세계나 태백
일사나 뭐 복부역기 이런게 왜 나오지 않느냐 이런게 또 궁금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걸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환장고기가 왜 최근에 알려졌을까요?
여러분들도음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조선 시대에
또 성리학 사대주의가 국시이다 보니까 이렇게 자주적인 우리 역사를
기록한 이런 역사 책을 개인이 소장해서도 안 되고 개인이 저수라는
것은 더더욱 안 됐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많은 우리 고대
사서들이 징집이 되고 이게 분서가 됐어요. 우리가 뭐 분석하면은
중국의 진시왕이 분석한 것만 알고 계실 텐데 조선 시대에 굉장히 심한
이런 사상 탄압을 했고 많은 역사서들이 수어내어서 불살라졌다.
그런 비극을 우리가 좀 알아야 됩니다. 그래서 요거는 조선왕조 신록에 다 기록에 있는 거거든요.
태종 12년에 보면 신비집 이거 역사책으로 우리가 추정을
할 수 있는데 신비집을 대원 유산율에게 불사르게 했고 또 태종
17년 기록에는이 조요서의 율이라는 대명률에 있는
율입니다. 요서죠. 요서라고 당시에는 말한 거예요. 요사스러운 책. 우리
고대의 역사를 써 놓은 책을 요서라고 해 가지고 어 사람들에게 밀고해서
그것을 바치도록 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은 언제까지 책을 다 아 받쳐라. 어
이렇게 이제 명령을 내리고 정한 기간까지 바치지 않는 자는 여러
사람이 진고하도록 허락하여 조요서의 율에 의해서 시행하고
범인의 가사는 고한 사람에게 상으로 충당하라 이런 윤령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제가 노비라면 우리 집안의 그 상전이 이런 역사책을
가지고 있다. 그럼 제가 그것을 밀고를 하면 저는 산으로 그 상전의
재산을 제가 받게 되는 거고 상전은이 조요서의 율에 따라서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얼마나이 역사책을
그 갖고 있다. 사사를 갖고 있거나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그것이 발각이 되는 것은 대역죄보다도 더 큰 어
벌로 처해졌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 태종 17년에도
서운관에 보관하던 참서 두상자를 불살라 버렸다.이 참서라는 것이
고대 역사책인 거죠. 이런 과정을 통해서이 조선 시대에 우리 고대
역사책들이 다 불살라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고대
역사책은 그 가문에서 아주 비밀리의 그 노비들도 이런 것을 알지 못하도록
아주 비밀리에 꽁꽁 숨겨서 가전할 수밖에 없었다는 상황을 우리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종실록에 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책을 바친
자는 두 품계를 올려주고 두 품계를 높여주고 상을 받기를 원하는 자나
공노비 산비에게는 면포 50피를 주기로 한다. 만약
숨기고 바치지 않는 자는 다른 사람이 고발할 수 있도록 하고 고발한
자에게는 위와 같은 상을 주고 숨기는 자는 참명을 처한다. 그러니까 책
가지고 있다가 이게 차명을 당할 수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왜 이런
단군 세계나 이런 책이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느냐? 아, 그런
것은 이런 것을 통해서 우리가 잘 알 수 있습니다. 행촌 이암이 누구냐? 요거를 조금
알아봐야겠죠. 행촌 이암은 1297년에서
어 1364년까지 이렇게 한 67세 정도 어 이렇게
사셨던 분인데요. 어 고려 말에 굉장히 높은 관직에서
활약했던 관리입니다. 그래서 국민왕대에는 수문화 시중 가장 높은
자리인데 현재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수문화 시중을 어 담당을 했하셨었고
그때 이제 공민왕대 홍건적이 막 그 우리나라 뭐 석경 이런데 침입을 하는
사건이 벌어졌는데 이분이 그때 당시에도 어 서북면 뭐 도병마사 이런
역할로 맡았었는데 그걸 잘 그 석경이 합락돼 버렸어요. 그래서 이제 거기에
대한 책임을지고 딱향을 하신 후에 그다음에이 단군 세계를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그 충의왕의 아주
굉장한 신임을 받고 충의왕이 그 원나라에 이렇게가 있었을 때 그때부터
원에서 수기하면서 충의왕의 신임을 받았고 모든 일처리가 그때 너무나 그
뛰어났기 때문에 계속해서 한 여섯 왕을 거치면서 뭐 재상, 원로 대신,
수문화시중 이런 역할을 하셨던 분인데요. 공민왕 이후에 국민왕의 그
개혁 정책이 조금 안정기에 들면서 관직을 그만두시고
강화도에 강화도에 내려와서 낙향에서 단군 세기를 지었다. 이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 우리가 행촌 이암이라는 분을 어
많이 들어보지를 못했고 잘 몰라요. 그리고 정몽주나 이색 이런 분들은
알지만 그 행촌 이암은 잘 모르는데 오히려 당대사를 보면 행촌 이암의
어떤 어 관리로서의 역할이나 또 서적 이런 면에서는 어 더 많은 역할을
하셨는데 우리가 잘 모른다. 왜 그럴까를 살펴보니까 우리 한용우
선생님이 생 그 분류하신 것에 의하면 고려 말에이 사상계가 두 가지 흐름이
있었다는 거예요. 하나는 아주 친중국적인
순정성리학자 순정 성리학자죠. 성리학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 좀 교조적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흐름이 하나 있었고
또 한 흐름이이 민족 사상과 절충된 그 성리학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랬을 때이 행촌 이암 선생님은 이쪽 편이셨어요. 민족 사상과 절충된
성리학자. 이분이 활동하셨고 나중에 이제 귀양에서도 강화도에
머무르셨잖아요. 그래서 강화도는 그대 몽항쟁기에 뭐 수도의 역할도 했고
거기에 이제 민족 사상이 좀 결집되어 있었는데 어 그쪽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것과 그다음에 여러 가지 언사 그 사서의 기록 이런 것들을 보면 그
고려의 아주 자주적인 정신을 많이 강조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그래서
민족사장과 절충된 성리학자인데 조선시대 대에 들어와서 이런 분들이
많이 이제 잊혀지고 계승되지 않고 그런 이유로 우리가 잘 모르게
되었다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분이 쓰신 책은 지금 우리가 살펴볼
단군 세기. 그다음에 그 태백은음 당군 왕검 시기의 어떤 사상서,
철학서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태백 지운을 어 쓰셨고이 농상지묘는 그
원나라 때 농업서인데 그거를 우리나라에 이제 도입을 해서음
우리나라의 그 농업과 그다음에 잠업 그것들을 어 많이 부흥시키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분은 서해가 아주
명필이었대요. 당시에 원나라에서 유행했던이 조맹부체의 대가라고 하고요
책의 표지에 있는 것도 이분의이 조맹부 체인 것 같습니다. 요런 그
서회를 아주 잘하셨던 당대 명 어 필이라고 하고요. 그다음에 우리가
이제 이분의 교우 관계를 보면 굉장히 폭이 넓고 어 뭐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대유, 대신, 계국신 이런 분들과 굉장히 많은 교류를 했는데 어
대표적인 분이 이제 2세 고려말의 2세 이분은 행촌 이안 묘지명을
쓰셨어요. 그리고 어 제자로서 아주 대표적인 제자이십니다. 그다음에 이제
조선 초에 토지 개혁을 주도했던 조준 선생도 이분의 손녀 사회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많은 분들 뭐 권근 뭐 이런 분들 정몽주 이런 분들과도
굉장히 많은 교류를 했던 분입니다.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행촌 이암과
단군 세계를이 한영우 교수님께서 집중적으로 이제 연구를 하셨어요.
그래서 이제 관료로서의 어떤 행적도 보 보았지만이 단군 세계를 집중적으로
연구를 하셔서 뭐 전파 경위나 내용 그다음에 그 단군 시대를 쓴 책이 어
대표적으로 알려진게 단군기 규사와 단기고사가 있는데 어떤 면이 같고
어떤 면이 다른지 이런 것도 분석을 하셨거든요. 잠깐 뒤에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다음에 당군 세기에
그러면 저자가 진짜 누구냐? 그다음에 원형은 어떤 형태였을 것이냐 이런
것들까지 어 많이 이렇게 검토를 하시고 어이
책을 쓰셔서 저희가 지금 뭐 환단 고기가 이렇게
논란이 되고 있는데 대부분 보지도 않고 아 그거 뭐 너무 허황되다 뭐
이런 식으로 그 치부하는 것 아직 보지도 않고 그러는 것은 굉장히
경계해야 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거를 조금 간략하게 남아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이 머리말에서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야사에서는 행촌이 단군 세계와 태백주년 등의 저설을 남겨 단군
조선의 역사와 종교를 서술한 것으로 되어 있고이 책들이 한 말에 일제
시대의 애국 지사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 과연 행촌이
그러한 저수를 남겼는지는 쉽게하기도 어렵고 그렇다고 간단하게
부인하는 것도 곤란하다. 네. 이거 간단하게 부인할 수 있는 그런 책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또 행촌의 이런 생애와 사상에 그러한 요소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 요소가 있고 그것을 후세인들이 연면이 계승해서 확대 발전시켜 왔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근대 지성사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라고 이제 머린말에 쓰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거는
쉽게 부인하면 안 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 분명히 그러한 요소들이 몇면이 요소들이 있고 그것을 계승 발전시킨
것이 우리 지성사의 흐름이다. 그러니까 반드시 연구를 하고 우리가
알아볼 필요가 있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요. 여기 아사이라고
말씀해 여기서는 하셨는데 행촌 선생 연보 그가 집안에서 고성희 씨
가문에서 이제 행촌 선생 연보를 어 썼는데 그때 어떤 내용이 있냐면
행촌이 60 67세 10월에 단재기를 썼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러니까는 그 뭐 이렇게 야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그 가문에서 내려오는 선생의 연보에 이렇게
정확하게 단재이 단재 세기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단군 세계입니다. 그것을 썼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어 한영욱 유수님이 당군기와 규원사와 단기고사를 또
이렇게 비교를 해 주셨어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더라. 간략하게 살펴보면이
47대 단군 이름이 똑같더라. 새 책이. 그래서 아 새 책이 한 가지 뿌리에서
나왔다라는 이제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음. 근데 차이가 있어요.이 단군의 재위 연이 차이가
나요. 근데 당군 세계와 단기고사는
그니까 47세는 맞는데 2096년이더라.
근데 이제 규원사와는 47세 1195년이더라.이 이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이 귀원사는 이제 전조선,
후조선 이렇게 나누어서 이제 설명을 하는데 그래서 전조선의 47세 단군이
1195년간 어 통치했다. 이런 식으로 나옵니다. 그가 그런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이 단군 세계와 단기 고사도 조금 더 비교를 해 주셨는데 그 한영호 교수의 의견에 따르면이 당군
세기가 내용이 상대적으로 소략하고 현대적 감각이 덜한 단군 세계가
먼저고 이런 현대적 감각이 지나치게 투영되어 있는 단기 고사는이 단군
세기를 토대로 해서 윤색되지 않았나 추측하신다고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단군 세기가 먼저고 단기 고사는 그 뒤에 이것을 근거로 해서
더 윤색되지 않았나 추측한하신다고 이렇게 어 보고 계십니다.
그 또 하나 이제 참고적으로 말씀드리면이 규원 사화는
어 1972년에 국립중앙 도서관에서 이제 귀중본으로 등록도 했고요.
그다음에이 고서심의 위원회에서 어 조선 숙종 때 진본이라는 것이
확인된 그런 이제 역사서거든요. 귀원사와는.
요거요 책은 위소 논란이 이제 거의 없는데 요런 세 가지 책을 이렇게 뭐
공통점과 차이점 이렇게 간략하게 어 분석을 해 주셨습니다. 그걸 이제
살펴봤고요. 그러면 당군 세계의 저자 어떻게 볼 수 있느냐? 그니까 이분의 입장은
그니까 서문이 좀 현대적이다. 그래서 어 행촌의 글이라 보기
어렵다.이 서문에 보면 뭐 고려의 고려의 도가 없어지니 몽고가 침입해
왔다. 뭐 이런 내용이 있는데 당시의 분위기로 뭐 고려나 몽골이라는 단어를
고려 시대에 직접 쓰기는 매우 어렵다. 이런
견해가 있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는 아마도 단군 세기를 교 교 교한 해학
이익이나 개연수가 쓰지 않았을까? 또는 이유립 그
전파하신 분 어 공표하신 분 이유립이 조금의 변용을 쓰지 않았을까 이렇게
어 생각을 하신다. 그러나 설사 이런 지식은 손을 거쳐 윤색
가필되었다는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도이 책을 전적으로 위서로 판정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방군세기도 행촌이 지은 모본을 토대로 후세인들이
중적으로 갚힐 윤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다. 이렇게 어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까 행촌이 암이 단군 세기에 근간이 되는 모본을
썼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보고 계시는 거죠.
그래서이 부분이 그 원로 사학자시잖아요. 그다음에 역사학의
역사를 공부하신 분이기 때문에 우리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럼 당군 세계의 원형은 어떻게 되느냐? 모본을음
행촌 이암이 썼다고 그 생각하시는 중요한 이유 중에 하나는
고려 시대에는이 고려 초에 편찬된 구삼국 그러니까 김부식이 편찬한
삼국사기 말고 김부식도 참고로한 그 구삼국사가
고려 시대 행촌 이암의 시대까지 있었고 그 책에는 단군 본기가 있었다고 고
합니다. 또 뭐 삼성기 이런 고서가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고서들을 행촌이 참고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행촌이 지은 단군 세기도 그
이연이나 이승유 등의 선배들이 쓴 단군 관계 기록과 어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행초는 1연이나 이승유보다 후대 인물이므로 삼국유사나
재왕운기의 단군 기록보다는 한 단계 더 자세한 내용을 담았을 것이며 그래서 이렇게
1세 단군에 머물지 않고 47세 단군의 왕계표를 작성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이렇게 보고 계십니다. 이것이 행촌 이암이 쓴 단군 세계의
원형일 것이다. 이렇게 보고 계신 거죠. 음. 그래서 우리가 지금 우리
고대사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특히 뭐 책이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나 그런 때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현대에 편찬된 창작된
책이라든가 이런 식의 섣부름 판단은 매우 위험할 것이고요. 이런 어떤
석학들의 이런 책도 우리가 어 참고를 해서 어 환단기를
뭐 소설이나 허황된 책 그런 걸로 치부하지 말고
좀 검토하고 우리 역사에서 공부해 볼 것은 공부하고 검토하고 또 우리
나름에 우리 주관을 가진 그런 역사를
연구하는데 참고를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니까 역사는 관점이 되게 중요하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조선 시대에 그 유교학자들은 굉장히 중화주의 사관이 강했기 때문에 그들에
보는 관점이 있을 것이고 또 일제 시대의 식민 사학자들은 우리나라를
그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논리가 있을 것이고 지금 우리가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어 우리
스스로의 그 자주적인 어 사관을 세우기 위해서는 우리 나름의 견해가
있을 것인데 그 관점을 잘 찾아서
관점을 세우고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키우는데 어 요런 책도 굉장히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오늘 같이 소개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어 최근에 일고 있는이 고대사 또 환단고기 논쟁에
여러분의 여러분들에게 좀 작은 아마 참고가 되길 바라면서 오늘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상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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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국사학과 한영우 교수가 밝힌 [환단고기] 진서론 - 최명희 박사
서울대 한영우 교수가 밝힌 단군세기 진서론
by 광명인 2025. 12. 19.
요즘 '환단고기'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한쪽에서는 "허무맹랑한 위서"라며 일축하고, 다른 쪽에서는 "우리 고대사의 진실"이라며 옹호합 니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흥미로운 것은, 우리나라 역사학계의 대표적 석학이 이 책에 대해 매우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를 역임 하신 고(故) 한영우 교수님입니다. (이 내용은 아래 최명희 박사의 유튜 브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영우 교수, 그는 누구인가?
한영우 교수는 단순한 역사학자가 아닙니다. 서울대 문리과 대학 사범대 국사과를 모두 졸업하시고, 한국문화연구소장, 규장각 관장, 인문대 학 장을 거친 정통 사학자이십니다. 특히 한국의 사학사(역사학의 역사)를 평생 연구하신 분으로, 이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권위자였습니다.
그의 대표작 『다시 찾는 우리 역사』는 국내외에서 한국사의 표준 교과 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일본어, 영어, 러시아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 로 읽히는 책이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다시 찾아야 할 우리 역 사"가 있다고 믿었던 학자입니다.
실제로 그의 연표를 보면 한국사가 고조선부터가 아니라 홍산문화부터 시작됩니다. 고조선 건국을 기원전 2333년으로 명시하고, 그 이전 시대 부터 우리 역사로 인정하는 자주적 역사관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환단고기는 한 사람이 쓴 책이 아닙니다. 약 1000여년에 걸쳐 다섯 분에 의해 쓰여진 네 권의 책을 모은 편찬서입니다.
첫 번째, 삼성기(三聖記) 환인-환웅-단군, 이 세 분의 성인 시대를 다룬 책입니다. 신라 말 승려 안 함로가 쓴 상편과, 고려 말 원동중이 쓴 하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두 번째, 단군세기(檀君世紀) - 오늘의 핵심 고려 말 고위 관료였던 행촌 이암이 저술한 책입니다. 단군이 한 분이 아 니라 47대에 걸쳐 계승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각 단군의 이름과 업 적을 연도별로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환단고기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죠.
세 번째, 북부여기(北扶餘記) 고려 말 범장이라는 학자가 해모수가 건국한 북부여의 역사를 정리한 책 입니다.
네 번째, 태백일사(太⽩逸史) 조선 중종 때 이맥이 저술했습니다. 이분은 행촌 이암의 5대손으로, 가 문에 전해오던 장서와 자신이 관직에서 본 옛 전적들을 종합해 방대한
역사서를 남겼습니다. 환단고기 전체의 절반 정도를 차지할 만큼 분량이
많습니다.
이 네 권의 책은 1911년, 독립운동가 계연수 선생이 만주에서 하나로 엮어 발간했습니다. 홍범도 장군과 오동진 장군 등 독립운동가들의 지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수만 필사되어 널리 알려지지 않았 고, 1979년 이유립 선생이 공개하면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왜 이제야 알려졌을까? - 조선시대의 역사 탄압
"그렇게 중요한 책이면 왜 조선왕조실록이나 다른 기록에 나오지 않나요?"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 답은 조선시대의 참혹한 역 사 탄압에 있습니다. 조선은 성리학과 사대주의를 국시로 삼았습니다. 자주적인 우리 역사를 기록한 책들은 철저히 탄압받았죠. 조선왕조실록 에는 이런 기록들이 가득합니다. 태종 12년: 『신비집(神祕集)』이라는 역사책을 강제로 불태웠습니다.
태종 17년: "요서(妖書, 요사스러운 책)"라는 이름으로 고대 역사책을 규 정하고, 이를 소장한 사람을 ‘고하도록 장려했습니다. ‘고한 사람에게 는 그 집안의 재산을 상으로 주었고, 숨긴 사람은 참형에 처했습니다.
예종실록: 역사책을 바친 사람에게는 2품계를 올려주고, 노비에게는 면 포 50필을 주었습니다. 반대로 숨기는 사람은 참형, 즉 목을 베는 형벌을 받았습니다.
상상해보세요. 내가 노비라면, 주인이 금지된 역사책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고하면 그 집안의 재산을 받고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반대로 주인은 목숨을 잃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고대 역사책을 보관 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행촌 이암의 후손인 고성 이씨 가문에서는 이 책들을 수백 년 동안 극비리에 은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문의 노 비조차 모르게, 대대로 물려가며 목숨을 걸고 지켜온 것입니다.
행촌 이암, 그는 누구인가?
단군세기를 쓴 행촌 이암(1297-1364)은 고려 말의 대표적 정치가입니다. 현재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수문하시중까지 오른 최고위 관료였죠. 6명의 왕을 거치며 재상과 원로대신 역할을 했고, 충의왕 때부터 신임받 아 원나라에서도 활약했습니다.
그의 학문적 업적도 대단합니다. 『단군세기』 외에도 『태백진훈』(단 군 시대의 사상서), 『농상집요』(농업서) 등을 저술했습니다. 또한 조 맹부체의 대가로 알려진 당대의 명필이었습니다. 교우 관계도 화려합니다. 이색(묘지명을 써준 제자), 조준(손녀사위, 조선 초 토지개혁 주도), 정몽주, 권근 등 고려 말 조선 초의 쟁쟁한 인물들과 깊은 교류를 했습니다.
한영우 교수는 고려 말 사상계를 두 갈래로 분류합니다.
1. 순정 성리학자 - 친중국적이고 교조적 2. 민족사상과 절충된 성리학자 - 자주적이고 개방적 행촌 이암은 두 번째 부류였습니다. 강화도에서 활동하며 고려의 자주정 신을 강조했던 인물이죠. 그런데 조선시대가 들어서면서 이런 계파의 학 자들은 역사에서 점점 잊혀졌습니다. 우리가 정몽주나 이색은 잘 알지만 행촌 이암을 잘 모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영우 저: 현재 절판된 책
한영우 교수의 검증 - 그는 무엇을 발견했는가?
한영우 교수는 2002년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책을 출간하 며, 단군세기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첫 번째 증거: 가문의 공식 기록
고성 이씨 가문에 전해오는 『행촌 선생 연보』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67세 10월에 단제세기(檀帝世紀)를 썼다"
단재기는 단군세기의 다른 이름입니다. 이것은 야사가 아닌 가문의 공식 기록입니다. 후손들이 선조의 업적을 정리하며 남긴 신뢰도 높은 자료인 것이죠.
두 번째 증거: 세 문헌의 비교 분석
한영우 교수는 단군 관련 세 가지 문헌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단군세기 단기고사 규원사화
단군 수 47세 47세 47세
재위 기 간 2,096년 2,096년 1,195년
특징 소략함, 현대적 감각 적음 윤색됨, 현대적 표현 많음 전조선/후조선 구 분
놀라운 점은 세 책 모두 47대 단군의 이름이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세 책이 공통된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한영우 교수의 결론 은 명확합니다. 단군세기가 가장 원형에 가깝고, 단기고사는 단군세기를 토대로 후대에 윤색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입니다.
참고로 규원사화는 1972년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귀중본으로 등록되었 고, 고서심의위원회에서 조선 숙종 때의 진본으로 확인된 책입니다. 위 서 논란이 거의 없는 책이죠.
세 번째: 서문 문제와 균형잡힌 결론
한영우 교수는 학자로서 정직하게 문제점도 지적합니다. 현재 전해지는 단군세기의 서문에는 "고려의 도가 없어지니 몽골이 침입했다"는 등 현 대적 표현이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려 관료가 "고려"나 "몽골"이라는 단어를 직접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지적입니다.
그래서 그는 서문은 후대의 이기(해학), 계연수, 이유립 등이 일부 윤색 했을 가능성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의 최종 결론은 이렇습니다.
"설사 후세인들의 손을 거쳐 윤색, 가필되었다는 혐의가 있다고 하더라 도, 이 책을 전적으로 위서로 판정하는 것은 삼가해야 할 것이다. 단군세 기도 행촌이 지은 모본을 토대로 후세인들이 중첩적으로 가필, 윤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 해석이다."
즉, 행촌 이암이 단군세기의 모본(⺟本)을 지었다는 것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행촌 이암이 단군세기를 쓸 수 있었나?
한영우 교수는 행촌 이암이 단군세기를 저술할 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을 설명합니다.
고려 시대에는 김부식이 참고했던 구삼국사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이 책 에는 단군본기가 포함되어 있었고, 행촌 이암의 시대까지 전승되었습니
다. 또한 삼성기 같은 고서들도 존재했습니다.
행촌 이암은 이런 고서들을 참고할 수 있는 최고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국무총리급 관료로서 각종 사료에 접근할 수 있었고, 이연, 이승유 같은 선배 학자들의 단군 기록도 볼 수 있었죠. 한영우 교수는 이렇게 추론합니다.
"행촌 이암의 단군세기 원형은 일연, 이승유의 기록과 크게 다르지 않았 을 것이다. 다만 행촌은 후대 인물이므로 『삼국유사』나 『제왕운기』 의 단군 기록보다 한 단계 더 자세한 내용을 담았을 것이며, 그래서 1세 단군에 머물지 않고 47세 단군의 왕계표를 작성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한영우 교수의 연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첫째,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라
조선이나 고려시대 기록에 책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위서 로 단정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조선시대의 혹독한 역사 탄압을 고려하 면, 오히려 기록에 남지 않은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둘째, 학술적 검증을 존중하라
환단고기를 무조건 신봉하거나, 무조건 부정하는 양극단은 모두 문제입 니다. 한영우 교수 같은 석학의 신중하고 균형잡힌 연구를 참고해야 합 니다.
셋째, 관점의 중요성을 인식하라
역사는 관점의 학문입니다.
조선의 유교학자들은 중화주의 사관으로 역사를 봤습니다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려 했습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자주적 사관이 필요합니다
한영우 교수는 말합니다.
"야사에서는 행촌이 단군세기와 태백진훈 등의 저술을 남긴 것으로 되어 있고, 이 책들이 일제시대 애국지사들의 손을 거쳐 세상에 알려지고 있
다. 과연 행촌이 그러한 저술을 남겼는지는 쉽게 단정하기도 어렵고, 그 렇다고 간단하게 부인하는 것도 곤란하다. 중요한 것은 행촌의 생애와 사상에 그러한 요소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후세인들이 연면히 계승 해서 확대 발전시켜 왔다고 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근대 지 성사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마치며
환단고기는 단순히 한 권의 책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이 수백 년 동안 목 숨을 걸고 지켜온 역사적 기억입니다. 조선시대의 가혹한 탄압 속에서 도,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기에도, 누군가는 이 책을 지키고 전했습니다.
물론 현재 전해지는 환단고기에 후대의 가필이나 윤색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학문적으로 옳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영우 교수의 연구가 보여주듯이, 그 핵심에는 행촌 이암이라는 고려 말의 고위 관료이자 학자가 남긴 확실한 역사적 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을 무조건 "허무맹랑한 위서"로 치부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역 사를 부정하는 일입니다.
보지도 않고 판단하지 말고, 읽어보지도 않고 비판하지 맙시다. 대신 열 린 마음으로 검토하고,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우리 나름의 자주적 역사 관을 세워갑시다. 환단고기 논쟁은 단순한 책 한 권에 대한 논쟁이 아닙 니다. 우리가 우리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입니다.
한영우 교수의 연구는 그 질문에 답하는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참고문헌
한영우, 『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 2002
한영우, 『다시 찾는 우리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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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는 우리역사 - 제2전면개정판
한영우 (지은이)경세원2014-02-11초판출간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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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쪽
책소개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한국통사로 1997년 초판 이래 2004년 전면개정판을 발행, 2013년까지 통합 51쇄를 찍었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 개정판에서 좀더 내용을 다듬었다.
목차
총설-한국사란 무엇인가
1. 국토와 자연환경
2. 한국문화의 특성
3. 한국인의 생존능력
4. 왕조교체의 의미
5. 사관의 여러 유형과 문제점
1편 고대 연맹국가_고조선과 열국
제1장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기원
1. 구석기인
2. 신석기인
3. 청동기인
제2장 고조선과 열국
1. 고조선
2. 열국의 병립
2편 고대 귀족국가_삼국과 남북국
제1장 사국의 성립과 발전
1. 사국의 성립과 발전
2. 백제의 건국과 발전
3. 신라의 건국과 발전
4. 가야의 흥망
5. 고구려의 수·당과의 전쟁
6. 백제의 멸망
7. 고구려의 멸망
8. 신라의 반당전쟁과 삼국통일의 의의
제2장 삼국의 사회와 문화
1. 삼국의 통치조직
2. 삼국의 신분계급구조
3. 삼국의 문화
4. 삼국인의 일본 이주와 삼국문화의 일본 전파
제3장 발해와 그 문화
1. 발해 건국과 남북국시대
2. 발해의 정치와 경제
3. 발해의 문화
제4장 통일신라의 사회와 문화
1. 중앙집권체제 강화
2. 통일신라 귀족과 서민의 생활
3. 농업, 수공업, 국제무역
4. 통일신라의 문화
3편 중세귀족-관료국가_고려
제1장 후삼국과 고려의 건국
1. 신라 말 귀족세력의 반란
2. 6두품과 호족세력의 성장
3. 후삼국의 성립
4. 왕건의 후삼국 통일
제2장 고려 전기의 정치와 사회
1. 중앙집권적 양반체제 정비과정
2. 통치체제의 정비
3. 경제구조와 신분제도
4. 신분계급 구조
제3장 거란과의 전쟁과 송과의 문화교류
1. 거란과의 전쟁
2. 송과의 교류와 국위선양
제4장 고려 전기의 문화
1. 유교정치와 유교문화
2. 불교문화
3. 풍수지리, 제사, 민간신앙
4. 고려 전기의 예술
5. 고려 전기의 역사편찬
제5장 문벌의 등장과 고려사회의 동요
1. 여진족의 성장과 윤관의 9성 설치
2.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3. 무신의 난과 최씨정권
4. 무신집권기 지방사회의 동요
5. 무신집권시대의 문화
제6장 몽골과의 전쟁과 사대부의 성장
1. 몽골과의 전쟁
2. 원의 간섭과 고려정치의 굴절
3. 공민왕의 개혁
4. 사대부=성리학자의 성장과 그 문화
4편 근세 관료국가_조선
제1장 조선왕조의 성립
1. 이성계 일파의 역성혁명
2. 새 국호, 새 수도
3. 국가체제의 완성
4. 영토확장과 대외관계
제2장 조선 통치체제의 재편성
1. 관료기구의 재정비
2. 부역체제
3. 신분개편과 계층구조
4. 교육과 선거제도
5. 병역제도와 군대조직
제3장 조선 초기의 경제발전
1. 농업의 발전
2. 수공업의 발전
3. 상업의 발전
제4장 조선 초기의 문화
1. 성리학의 발달
2. 역사, 지리, 예서의 편찬
3. 훈민정음의 창제
4. 과학기술의 발전
5. 문학과 예술
제5장 16세기 사림의 성장과 그 문화
1. 부의 집중과 공납, 군역의 과중
2. 임꺽정 일당의 폭동과 정여립 반란
3. 사림의 등장과 사화, 당쟁
4. 16새가 사림문화
제6장 왜란과 호란
1. 임진왜란
2. 광해군의 전후복구사업과 중립외교
3. 인조반정과 호란
제7장 17~18세기의 왕조중흥
1. 효종~현종 대의 붕당연합과 북벌운동
2. 숙종 대 환국과 왕권강화
3. 영조의 탕평정책과 왕조중흥
4. 정조의 탕평책과 민국을 위한 개혁
5. 부세제도의 개선
6. 산업발전과 신분제의 변화
제8장 조선 후기의 문화와 중흥
1. 17~18세기 전반 실학의 대두와 발전
2. 18세기 후반 북학의 등장
3. 철학·종교의 새 경향
4. 국학 및 과학의 발달
5.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제9장 19세기 전반 서울과 지방의 갈등
1. 순조시대 세도정치와 홍경래의 난
2. 헌종~철종 대의 세도정치와 삼남민란
3. 19세기 전반기의 문화
5편 근대 산업국가_꿈과 좌절
제1장 문호개방과 개혁운동
1. 대원군의 개혁과 병인양요·신미양요
2. 고종의 개화정책과 세력균형정책
제2장 동학농민전쟁과 갑오개혁
1. 동도개화정책의 확산(1884~1984)
2. 외교의 다변화와 자립경제 수호정책
3. 동학교도의 종교투쟁
4. 갑오동학농민전쟁
5. 변법개화파의 갑오개혁
제3장 근대국가-대한제국의 성립과 몰락
1.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와 을미의병
2. 대한제국 성립과 광무개혁
3. 독립협회의 민권운동
4. 일본의 주권탈취
5. 일제의 경제침략
제4장 항일의병전쟁과 구국계몽운동
1. 항일의병전쟁
2. 구국계몽운동
제5장 일제강점기(1)-1910년대의 민족해방운동
1. 일제의 무단통치와 경제적 약탈
2. 1910년대 국외·국내의 민족운동과 3·1 운동
제6장 일제강점기(2)-1920년대 실력양성운동과 민족협동운동
1. 일제의 기만적 문화통치와 경제수탈
2.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3. 만주지역의 무장투쟁
4.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사회주의운동
5. 국내외 민족협동운동의 진전
제7장 일제강점기(3)-1930~1940년대 초의 민족통일전선운동
1. 일제의 중국침략과 한국의 병참기지화
2.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3. 민족문화 수호운동
4. 민족연합전선과 항일무장투쟁의 강화
5. 공산당 재건운동과 노동자·농민운동
6편 현대 민주국가_분단과 대한민국의 발전
제1장 광복과 대한민국의 탄생(1945~1948)
1. 8 ·15 광복과 통일정부 수립운동
2.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의 수립(1948)
3. 일제잔재 청산의 진통
4. 사회·교육·문화 운동의 갈등
제2장 6 ·25 전쟁과 전후복구(1950~1959)
1. 6 ·25 전쟁 (1950~1959)
2. 6 ·25 전쟁 직후 정치적 혼란과 전후복구사업
3. 1950년대 북한의 독재강화와 사회주의정책
제3장 4·19 혁명과 남북한의 변화
1. 4·19 혁명(1960)
2. 민주당 정부(1950. 8~1961. 5)
3. 5·16 군사정변과 군정(1961. 5~1963. 12)
4. 박정희 정부-제3공화국(1963. 12~1972. 10)
5. 유신체제(1972. 10~1979. 10)
6. 1960~1970년대의 경제와 문화
7. 1960~1970년대의 북한의 변화
제4장 전두환, 노태우 정부와 북한의 변화
1. 신군부의 군사정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1979~1980)
2. 전두환 정부(1981. 3~1988. 2)
3. 민주화운동의 진전과 노태우 정부(1988. 3~1993. 2)
4. 1980~1990년대 북한의 변화
제5장 김영삼의 ‘문민정부’
1. 신군부시대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
2. 금융실명제 실시, 세계화정책, 금융위기
3. 남북관계의 교착과 정계개편
4. 외환위기와 사회불안
제6장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1. ‘국민의 정부’의 경제개혁
2. 정부조직 및 교육개혁
3.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정상의 만남
4. 스포츠와 문화
5. 여야의 정치적 갈등과 시민단체의 등장
제7장 노무현의 ‘참여정부’
1. 정치권의 세대교체와 이라크 참전
2. 대통령 탄핵, 개혁과 반발
3. 참여정부 시절의 남북관계
4. 참여정부 시대의 정제, 문화, 스포츠
5. 참여정부 말기 정치와 제17대 대통령 선거
제8장 이명박 정부
1. 쇠고기 수입 파동과 금융위기
2.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타계
3. 4대강 사업
4. 남북관계의 냉각
5. 스포츠와 문화
6. 제18대 대통령 선거
제9장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최근의 북한경제
1. 박근혜 정부의 출범
2. 최근 북한의 경제사정
결론-새 천년을 열면서
부록
한국의 유네스코 유산
왕실세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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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영우 (지은이)
193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사학과 교수, 하버드대 객원교수, 문광부 사적 분과위원장, 한국사연구회장, 서울대 규장각 초대 관장과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사의 지평을 넓힌 연구자로 평가받으며 수십 종의 저서를 펴냈다. 주요 저서로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다시찾는 우리역사》,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역사학의 역사》, 《정조대왕 화성행행 반차도》 등이 있다. 2023년 별세했다.
최근작 :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한국사학사연구>,<허균평전> … 총 8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한국통사로 1997년 초판 이래 2004년 전면개정판을 발행, 2013년까지 통합 51쇄를 찍었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 개정판에서 좀더 내용을 다듬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추가하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출범까지 포함하여 2014년 제2전면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외국어로는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판이 간행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전국 유명서점에서 역사서 부문 베스트셀러 도서로 선정되어 많은 독자를 만나왔다. 또한 전국종합대학에서 교양과목과 사학과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개설서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부 독자뿐만 아니라 온국민이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정에 한국통사 1권 갖기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
두 번째 개정판을 내면서
1997년에 발행된 <다시찾는 우리역사>가 2004년에 전면적인 개정판이 나오고 또다시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도합 51쇄가 간행되었고, 외국어본으로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본이 간행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커진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더없는 광영이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무겁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대중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중심국가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나 대외관계는 10년 전과 다르다. 이웃 중국이 G2에서 G1을 향해 급성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시대착오적인 100년 전의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정치와 경제가 낙후된 북한이 핵에 매달려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통일을 주도하면서 동아시아 평화를 지켜야 할 우리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나라도 적이 될 수 없으나, 현실은 어떤 나라도 진실한 친구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할수록 국력을 더 키우면서 이웃과 평화공존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균형외교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은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의 과제를 외면하기 어렵다. 객관적 진실을 찾으면서 그 진실이 현재와 미래를 밝게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객관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이 필요한 것이다.지금 한국사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은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다르지만, 객관성과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다같이 균형감각을 잃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서구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다. 이보다 더 높은 평화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찾아서 한국인이 수천 년간 살아왔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그 가치는 바로 선비정신이고, 선비정신의 핵심은 공동체사상이다. 우주와 사람이 하나의 생명공동체이고, 사람과 사람이 홍인인간으로 또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 공동체 속에 자유도 있고, 민주도 있고, 평화도 있고, 계급도 녹아 있다. 다만, 그 가치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진화하고 발전해 왔으며, 미래에는 더욱 다듬어져서 세계인이 공유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역사의 큰 흐름은 동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명의 가치를 창조할 때라고 본다. 여기에서 서양문명이 창조한 개체존중의 가치와 동양문명이 창조한 공동체존중의 가치가 높은 차원에서 융합된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한층 더 따뜻해지고, 국제적 갈등은 한층 더 완화될지도 모른다.
한국사는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의 역사가 아니다. 영토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사는 매우 왜소하지만, 문화가치로 본다면 한국사는 크나큰 세계사와 맞닿아 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사를 국제적 시야에서 보아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지만, 국제적 시야라는 것을 단순히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한국사는 수천 년간 군사강대국 역사의 종속적 존재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지켜온 문화가치와 주체성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한 번도 경제나 군사강국으로 세계사를 주도한 일이 없다. 주변 강대국의압박과 영향을 크게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세계 문화강국의 하나로 살아왔다. 한국인의 조상인 ‘아사달족’의 문화가 중국문화의 뿌리가 되었고, 아사달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명을 꽃피웠다. 공자가 고조선을 ‘군자국’이라 칭하면서 건너오고 싶다고 했고, 그 뒤에도’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문화를 다시 수용하여 문화를 살찌웠지만, ‘군자국’과 ‘동방예의지국’의 이미지만은 한국이 더높았다. 그래서 동아시아문명의 중심에 한국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만든 것도 한국이고, 교육과 관련되는 금속활자와 인쇄술에서 세계 최첨단을 걸어온 것도 한국이며, 교육입국으로 나라를 키워온 것도 한국이다. 검소하고 겸손한 왕실문화를 바탕으로 백성을 끌어안고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꽃피운 것도 한국이다. 물론, 기나긴 역사의 행로에 어두운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한국사의 본질이었다면 어떻게 500년이나 1,000년의 사직을 이어갈 수 있었겠는가?
문화의 힘은 경제나 군사력보다도 큰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나 석가나 공자는 맨손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인물은 없었지만, 이들의 가르침을 누가 모범적으로 실천했느냐를 따진다면 한국인은 아마도 우등생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사의 진실한 모습이고, 바로 그것이 세계사 속에서 바라보는 한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인이 ‘군자국’과 ‘동바예의지국’의 모범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아니 그 모습을 너무나 많이 잃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 역사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역사의 거울로 우리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이런 시각에서 집필되었지만, 이번 개정판을 통하여 그 모습을 좀 더 새롭게 다듬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많이 추가되었지만, 그것이 두 번째 개정판을 내는 근본적인 목표는 아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 담고자 하는 필자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려 주시고 읽어 주기를 당부한다. 책의 부족한 부분을 깨우쳐 주신다면 더 없는 바람이다.
2014년 1월 관악산 호산재에서
한 영 우 씀 접기
평점분포

7.4
한권으로 잘 다듬어진 통사입니다. 시험준비용이라면 부교재로 두고 들춰보는 게 좋을것 같습니다.

보노보노 2015-03-1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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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래요

헤이 2020-06-1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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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임용기본서이지만,
앞의 선사~고려는 한국사통론을 베이스로 보시고, 이 책은 조선부터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선사~고려의 완성도는 통론만큼 하지는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2020-04-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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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같은 역사책.

각 시대별로 상세히 나와있어 참 좋았습니다.한번에 다 읽기 보다는관심 갈 때 그때그때 펼쳐보기에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설민석 강사님 추천으로 샀는데.스테디 셀러인 이유를 알겠네요~
dainy0226 2016-05-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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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정말 왜곡된 교과서로 우리 역사를 배운다고?!
“우리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어요. 어서 빨리 교과서가 개정되어야 해요.”
어제 약국에 갔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새누리당 지지자의 발언이었다. 이 사람이 여당 의원인지 학자인지 논평자 인지는 모르겠지만(중간에 들어서), 확실한 건 이 사람의 주장은 현재 검정 교과서들이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거였다.
또 부아가 치밀었다. 똑같은 상황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제는 합정역 사거리에서 이상한(?) 현수막을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기가 찬다. 저번 주 100분 토론에서 권희영을 비롯한 국사교과서 국정 지지자 패널들의 발언에 심한 빡침을 받은 이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새누리당이 물량 공세를 펴고 있는 듯.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국정화의 논거가 참으로 새누리당 다웠다. “우리아이들이 학교에서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어요!” 이게 새누리당과 정부의 국정화를 위한 모토다.
동국대 홍윤기 철학과 교수가 하도 어처구니 없어서, 100분 토론 와중에 7종 교과서(8종 중 교학사 제외)를 열어 확인까지 시켜줬다. 7종 교과서 중 3종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싣고 있었다.
김일성 전집에 나온 주체사상의 핵심 내용을 자료로 제시하면서 교과서들은 비판적 논조로 설명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상화 작업이라고.
그런데 국정화 지지자들은 이걸 왜 싣느냐는 거다. 성인들은 상관없지만 자라나는 어린 학생에게는 주체사상을 싣고 있는 자체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다는 거다. 교사에 따라서 가르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이들의 주장은 그냥 아전인수요, 견강부회로밖에는 안 들린다. 그리고 똑같은 패턴으로 이를 반복하거나(자신들의 주장이 논파됐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주장의 중요치 않은 부분을 집중 공격하여 논지를 흐리게 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다른 방송 토론을 보아도 비슷한 방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방식이 일반 대중에게 먹히고 있다는 거다. 심히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우리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어요!” “현재 한국사 교과서들은 모두 좌편향이에요~!”라는 말도 안돼는 주장들로 인해 대중은 정말 교과서가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문 조사를 봐도 그렇고 막연히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기성세대들도 그렇다. 특히나 역사를 잘 모르는 50대~80대에게는 ‘전교조=빨갱이’라는 도식이 더 강화되고 있다.
아마도 새누리당 쪽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거다. 이 말도 안돼는 억지 주장이 먹히고 있으니. 내 부모님만 해도 교과서가 ‘좌편향’돼서 큰일이라고 걱정하시니 말이다.
새누리당 쪽이 말하는 ‘좌편형’이라는 잣대는 한마디로 침소봉대다. 이들의 논리는 보천보 전투(김일성의 대일 항쟁)를 과대포장 했다는 거고, 싣지 말아야 할 김일성 전집의 내용을 다루었다는 거다. 그리고 ‘건국’을 문제삼으면서 검정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리고 6.25 전쟁을 검정교과서들이 북침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어느 교과서에서 기술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7종 중 하나의 교과서에서 ‘북침’이라는 용어를 쓴 모양인데, 이걸 갖고 검정교과서들은 모조리 좌편향 되었다는 주장을 편다.
심지어는 현대사 단원 첫 사진을 문제 삼기도 한다. 허고 많은 사진 중에 민주화 투쟁의 사진을 싣는 것은 어떤 역사적 의도가 내재돼 있단다. 경제발전을 다룬 사진을 메인에 걸어야지 왜 굳이 데모하는 걸 현대사 메인 사진으로 쓰느냐는 거다.
이들의 논의를 살펴보면 그냥 쓰레기같은 것들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슈화시켜서 현 검정 교과서체제가 ‘좌편향 됐다’라는 걸 계속 반복하여 대중의 뇌리에 심으려는 의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개정을 빌미로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국정화하겠다는 심보로 보인다. 국정을 비판하는 쪽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갖고 비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국정교과서 시험판(예비판)에서 이미 그 기조를 들어내 보여주고 있다.
실험본 교과서(국정 교과서를 발행하기 이전에 시험적으로 가르쳐보는 교과서)에는 '독재'라는 표현이 완전히 빠져있다. 일제시대의 내용은 일본 우익을 대변해 주는 듯한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일본 우익이 계속해서 우려먹어온 내용이다. 일본에 의해 건설된 철도 도로는 해방이후 국가 발전의 근간이 됐다는 거. 토지조사사업이나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한 쌀 ‘수탈’을 ‘수출’로 명명한 건 애교다.
우익 학자들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을 근대적인 소유권 제도의 확립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이완용을 기술한 부분이나 을미사변을 기술한 부분은 매우 온건하거나 분량이 지극히 짧다.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살해된 사건은 단 한 줄에 불과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지금부터 우익 인사들의 역사의식이 투영된 미리보는 국정교과서인 기술을 봐 보자. 교학사 교과서가 학교 채택률 0를 보이자 대안 교과서라고 해서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를 미는 모양새다. 현재까지 교과서포럼에서 낸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기파랑, 2010)는 10쇄 이상을 찍었다.
우익의 역사인식이 어떤지 위 책에서 몇 가지만 발췌해서 보고자 한다. (조금 분량이 되지만 국정화 지지자들이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지 극명히 드러나는 부분이기에 그대로 옮겨 본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맨 먼저 산미증식계획을 서술한 86~87페이지 부분이다.

문화정치로 전환한 총독부는 농업개발에 착수하여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였다. 이 계획이 수립된 데에는 1918년 일본에서 쌀이 부족해져 주요 도시에서 ‘쌀소동’이라는 소요가 발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 계획의 주요 내용은 저수지, 보, 양수장과 같은 수리시설을 확충하고자 각지에서 수리조합이 활발하게 결성되었다. 수리조합은 식산은행의 대출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했고, 총독부의 토지개량과는 공사의 설계와 기술을 지원하였다.
산미증식계획의 결과 수리시설을 갖춘 논이 증가하였다. 종자 개량도 추진이 되어 일본계 우량 품종이 대부분 농촌에 보급되었다. 1929년 흥남에 질소비료공장이 완공된 후에는 화학비료의 투입량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쌀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증산된 쌀의 상당부분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1910년대 후반에 비해 연평균 쌀 생산량은 700만 석가량 증가했는데, 그 가운데 570만 석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쌀의 생산이 늘어난 데에는 쌀값이 다른 물가보다 더 많이 올랐다는 시장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농민과 지주는 다른 농사보다 수익성이 좋은 쌀농사에 주력하였다. 농민들은 산미증식계획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도 자발적으로 수리시설을 개량하였다. 그런 토지가 수리조합에 속한 토지보다 훨씬 많았다.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pp86~87
여기에는 일본의 산미증신계획 의도가 잘 드러나 있지 않고, 그 결과로 우리민족의 근황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다. 우량 품종이 농촌에 보급되었다는 이후 내용들은 모두 산미증식계획에 대한 우호적 기술들이다. 일본의 이 계획으로 일본에 많은 수출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좋아졌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부정적인 기술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똑같은 산미증식계획을 <우리역사>에서는 어떻게 기술했는지 보자. 참고로 한영우 교수의 이 책은 우리 역사의 객관적 기술과 탁월한 평이성을 인정받아 외국에 우리 역사를 알리는 가장 대표적인 역사서다. 러시아판, 영어판이 모두 번역되었다. 그리고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이자 문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이기도 하다. 주요 인터넷 서점 추천도서임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역사>(경세원, 2007)에는 산미증신계획 내용이 534페이지에 나와 있는데, 그 바로 앞 페이지에 소제목이 ‘경제수탈의 강화’이다.

일본은 1910년대 이후 자본주의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농민들이 도시에 몰려 식량 조달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산미증식계획이 세워졌다. 이 계획은 토지개량과 농사개량에 의해 식량생산을 대폭 늘림으로써 일본으로 더 많은 쌀을 가져가고 우리나라 농민생활도 안정시킨다는 목표 하에 추진되었다. 그러나 제1차(1920~1925), 제2차(1926~1934)계획이 계속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36년 현재 쌀 생산량은 1920년보다 약 30%가 증가한 데 불과하였으나, 일본으로의 수출량은 약8배로 증가하였다. 1932~1936년의 평균 쌀 생산량은 1700만석인데, 일본으로 가져간 것은 그 절반이 넘는 876만석이었다. 그 결과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20년의 약 7두에서 4두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일본인은 1년에 1인당 1석 2두를 소비하였다. 한국인들은 부족한 식량을 만주에서 들여오는 잡곡[조,수수,콩] 등으로 메꾸어 갔다.
우리나라 농민들은 식량사정만 나빠진 것이 아니라, 과도한 수리조합비로 자작농이 소작농으로 몰락하는 사례가 많았고, 농업구조와 유통구조까지 쌀 중심으로 개편되어 경제구조의 파행성이 심화되었다. 결국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대 이후 소작쟁의가 격화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우리역사> p534
위의 대안교과서 내용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비슷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역사>에는 이 계획의 원인과 진행 결과를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수탈정책으로 우리 민족은 매우 고통 받았다는 정황을 그대로 알 수 있다. ‘수탈’이지 ‘수출’이 아닌 것이다.
이번엔 을미사변을 기술한 부분을 비교해 보자. 대안교과서에는 을미사변 내용이 정말 짧게 기술되어 있다. 55페이지에 [3국간섭과 을마사변]이라는 소제목하에 15줄로 기술되어 있는데, 을미사변은 단 1줄로 처리했다. 나머지는 모두 3국 간섭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3국간섭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던 책동이 좌절되고, 나아가 친러파가 정권을 잡는 사태가 벌어지자 1895년 10월 민황후를 시해하였다(을미사변). 이후 김홍집과 유길준 등의 내각이 조직되어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시행했는데, 특히 단발령은 극심한 반발을 일으켰다.
2007년 국정교과서 <국사>에 서술된 내용과 흡사하다. 거기서도 1줄로 처리했는데, 근현대사 책이 따로 발간됐기에 별로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근현대사 검정 교과서들은 보다 자세히 이를 소개했다. 일부 검정교과서는 자료 박스로 제시하기 까지 했으니까.
<우리역사>에 기술된 내용을 보자. 487~488페이지에 걸쳐 소개돼 있는데, 절의 명칭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와 을미의병(1895~1896)]이다.
친일세력의 실각에 불안을 느낀 일본은 또다시 폭력으로 정국을 뒤집어 놓기 위하여 먼저 당시 친러외교를 주도하던 명성황후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이노우에 가오루 대신 육군 중장 출신의 과격한 인물인 미우라 고로를 우리나라 주재 공사로 보내 일본인 수비대와 경찰 그리고 신문기자 등으로 하여금 1895년 음력 8월 20일 새벽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홍계훈을 비롯한 훈련대군인들이 저항했으나 흉도들을 막지 못했다. 45세의 황후는 시해된 뒤 시체가 불살라졌다. 이 사건은 우리 국민의 분노는 물론 국제적 비난을 크게 불러 일으켰는데, 일본은 미우라 고로 일당을 소환하여 히로시마 형무소에 가두고 재판하는 체하다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을 을미사변이라고 부른다.
근현대사 검정교과서들의 내용은 <우리역사>의 내용과 비슷하다. 단지 분량 차이(약 절반 정도만 기술)만 있을 뿐이다. 교과서포럼이 쓴 근현대사만 한 줄로 기술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기술 부분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독재’에 대한 기술 여부이다. 교과서포럼의 현대사 부분 중 박정희 정권을 기술한 60~70년대 내용을 샅샅이 살펴봤다. 놀랍게도 ‘독재’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2007년 국정교과서 <국사>에서 박정희 정권을 평가한 부분을 살펴봤다. 126페이지에 유신체제 대한 평가가 기술되어 있다.
1967년 선거에서 재선된 박정희는 3선 개헌을 강행하였고, 1972년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하였으며,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10월 유신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민주적 헌정체제를 부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면서 장기적인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이었다. 2007년판 국정교과서 <국사> p126
교과서포럼의 <근현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할애한 부분이 180페이지부터216페이지까지 무려 37페이지나 된다. <우리역사>는 10페이지 분량이고, 대부분의 검정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20여 페이지 정도 된다. 요즘 잘나가는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휴머니스트, 2007)의 경우는 28페이지 정도 된다. 근데 여기에는 5장 5절의 제목이 [되살아난 군사독재]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 교과서 개정 논란의 핵심은 박근혜 정부의 역사의식을 교조화하고자 하는 은밀한 시도라 추정할 수 있다. 그 정황적 증거가 교학사 교과서와 교과서포럼이 펴낸 <근현대사>이다.
여기에는 친일에 대한 단죄가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기술되어 있고(이완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라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일제 36년의 만행들이 완화 및 미화되어있다. 이는 산미증식계획을 기술한 부분을 보면 대번 알 수 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을 기술한 부분에서 현 정권의 역사의식의 방점을 찍는다. 그 많은 분량을 할애했지만 정작 중요한 ‘독재’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배우고 있는 국정교과서 실험본도 교과서포럼이 쓴 근현대사 책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이건 100분 토론에서 밝혀진 바 있다.
현 시점에서 국사교과서의 국정은 어불성설이다. 세계 제대로 된 나라에서 아이들을 단일화된 교과서로 자국의 역사를 가르친다는 건 일종의 코미디다. 만일 우익 인사들의 지적처럼 행여나 잘못된 곳이 있다면 현재 검정 교과서 내에서 타협점을 찾아 고치면 된다.
아주 편한 길을 놔두고 산을 옮기려는 행위는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납득하기 힘든 사안이다. 교조적 선전을 가려내는 국민들의 혜안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덧]
개인적으로 하도 언론에서 좌편향 교과서 운운해서 해당 부분을 찾아 한영우 교수의 <우리역사>와 대조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현재 검정교과서들은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내가 본 건 두산, 대한교과서, 지학사) 진짜 문제가 심각한 건 우익이 만든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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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10-30 공감 (35)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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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찾는 우리역사 - 제2전면개정판
한영우 (지은이)경세원2014-02-11초판출간 199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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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쪽
책소개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한국통사로 1997년 초판 이래 2004년 전면개정판을 발행, 2013년까지 통합 51쇄를 찍었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 개정판에서 좀더 내용을 다듬었다.
목차
총설-한국사란 무엇인가
1. 국토와 자연환경
2. 한국문화의 특성
3. 한국인의 생존능력
4. 왕조교체의 의미
5. 사관의 여러 유형과 문제점
1편 고대 연맹국가_고조선과 열국
제1장 한국인과 한국문화의 기원
1. 구석기인
2. 신석기인
3. 청동기인
제2장 고조선과 열국
1. 고조선
2. 열국의 병립
2편 고대 귀족국가_삼국과 남북국
제1장 사국의 성립과 발전
1. 사국의 성립과 발전
2. 백제의 건국과 발전
3. 신라의 건국과 발전
4. 가야의 흥망
5. 고구려의 수·당과의 전쟁
6. 백제의 멸망
7. 고구려의 멸망
8. 신라의 반당전쟁과 삼국통일의 의의
제2장 삼국의 사회와 문화
1. 삼국의 통치조직
2. 삼국의 신분계급구조
3. 삼국의 문화
4. 삼국인의 일본 이주와 삼국문화의 일본 전파
제3장 발해와 그 문화
1. 발해 건국과 남북국시대
2. 발해의 정치와 경제
3. 발해의 문화
제4장 통일신라의 사회와 문화
1. 중앙집권체제 강화
2. 통일신라 귀족과 서민의 생활
3. 농업, 수공업, 국제무역
4. 통일신라의 문화
3편 중세귀족-관료국가_고려
제1장 후삼국과 고려의 건국
1. 신라 말 귀족세력의 반란
2. 6두품과 호족세력의 성장
3. 후삼국의 성립
4. 왕건의 후삼국 통일
제2장 고려 전기의 정치와 사회
1. 중앙집권적 양반체제 정비과정
2. 통치체제의 정비
3. 경제구조와 신분제도
4. 신분계급 구조
제3장 거란과의 전쟁과 송과의 문화교류
1. 거란과의 전쟁
2. 송과의 교류와 국위선양
제4장 고려 전기의 문화
1. 유교정치와 유교문화
2. 불교문화
3. 풍수지리, 제사, 민간신앙
4. 고려 전기의 예술
5. 고려 전기의 역사편찬
제5장 문벌의 등장과 고려사회의 동요
1. 여진족의 성장과 윤관의 9성 설치
2.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난
3. 무신의 난과 최씨정권
4. 무신집권기 지방사회의 동요
5. 무신집권시대의 문화
제6장 몽골과의 전쟁과 사대부의 성장
1. 몽골과의 전쟁
2. 원의 간섭과 고려정치의 굴절
3. 공민왕의 개혁
4. 사대부=성리학자의 성장과 그 문화
4편 근세 관료국가_조선
제1장 조선왕조의 성립
1. 이성계 일파의 역성혁명
2. 새 국호, 새 수도
3. 국가체제의 완성
4. 영토확장과 대외관계
제2장 조선 통치체제의 재편성
1. 관료기구의 재정비
2. 부역체제
3. 신분개편과 계층구조
4. 교육과 선거제도
5. 병역제도와 군대조직
제3장 조선 초기의 경제발전
1. 농업의 발전
2. 수공업의 발전
3. 상업의 발전
제4장 조선 초기의 문화
1. 성리학의 발달
2. 역사, 지리, 예서의 편찬
3. 훈민정음의 창제
4. 과학기술의 발전
5. 문학과 예술
제5장 16세기 사림의 성장과 그 문화
1. 부의 집중과 공납, 군역의 과중
2. 임꺽정 일당의 폭동과 정여립 반란
3. 사림의 등장과 사화, 당쟁
4. 16새가 사림문화
제6장 왜란과 호란
1. 임진왜란
2. 광해군의 전후복구사업과 중립외교
3. 인조반정과 호란
제7장 17~18세기의 왕조중흥
1. 효종~현종 대의 붕당연합과 북벌운동
2. 숙종 대 환국과 왕권강화
3. 영조의 탕평정책과 왕조중흥
4. 정조의 탕평책과 민국을 위한 개혁
5. 부세제도의 개선
6. 산업발전과 신분제의 변화
제8장 조선 후기의 문화와 중흥
1. 17~18세기 전반 실학의 대두와 발전
2. 18세기 후반 북학의 등장
3. 철학·종교의 새 경향
4. 국학 및 과학의 발달
5.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제9장 19세기 전반 서울과 지방의 갈등
1. 순조시대 세도정치와 홍경래의 난
2. 헌종~철종 대의 세도정치와 삼남민란
3. 19세기 전반기의 문화
5편 근대 산업국가_꿈과 좌절
제1장 문호개방과 개혁운동
1. 대원군의 개혁과 병인양요·신미양요
2. 고종의 개화정책과 세력균형정책
제2장 동학농민전쟁과 갑오개혁
1. 동도개화정책의 확산(1884~1984)
2. 외교의 다변화와 자립경제 수호정책
3. 동학교도의 종교투쟁
4. 갑오동학농민전쟁
5. 변법개화파의 갑오개혁
제3장 근대국가-대한제국의 성립과 몰락
1.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와 을미의병
2. 대한제국 성립과 광무개혁
3. 독립협회의 민권운동
4. 일본의 주권탈취
5. 일제의 경제침략
제4장 항일의병전쟁과 구국계몽운동
1. 항일의병전쟁
2. 구국계몽운동
제5장 일제강점기(1)-1910년대의 민족해방운동
1. 일제의 무단통치와 경제적 약탈
2. 1910년대 국외·국내의 민족운동과 3·1 운동
제6장 일제강점기(2)-1920년대 실력양성운동과 민족협동운동
1. 일제의 기만적 문화통치와 경제수탈
2.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3. 만주지역의 무장투쟁
4. 민족문화 수호운동과 사회주의운동
5. 국내외 민족협동운동의 진전
제7장 일제강점기(3)-1930~1940년대 초의 민족통일전선운동
1. 일제의 중국침략과 한국의 병참기지화
2. 일제의 민족말살정책
3. 민족문화 수호운동
4. 민족연합전선과 항일무장투쟁의 강화
5. 공산당 재건운동과 노동자·농민운동
6편 현대 민주국가_분단과 대한민국의 발전
제1장 광복과 대한민국의 탄생(1945~1948)
1. 8 ·15 광복과 통일정부 수립운동
2. 대한민국과 북한 정권의 수립(1948)
3. 일제잔재 청산의 진통
4. 사회·교육·문화 운동의 갈등
제2장 6 ·25 전쟁과 전후복구(1950~1959)
1. 6 ·25 전쟁 (1950~1959)
2. 6 ·25 전쟁 직후 정치적 혼란과 전후복구사업
3. 1950년대 북한의 독재강화와 사회주의정책
제3장 4·19 혁명과 남북한의 변화
1. 4·19 혁명(1960)
2. 민주당 정부(1950. 8~1961. 5)
3. 5·16 군사정변과 군정(1961. 5~1963. 12)
4. 박정희 정부-제3공화국(1963. 12~1972. 10)
5. 유신체제(1972. 10~1979. 10)
6. 1960~1970년대의 경제와 문화
7. 1960~1970년대의 북한의 변화
제4장 전두환, 노태우 정부와 북한의 변화
1. 신군부의 군사정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1979~1980)
2. 전두환 정부(1981. 3~1988. 2)
3. 민주화운동의 진전과 노태우 정부(1988. 3~1993. 2)
4. 1980~1990년대 북한의 변화
제5장 김영삼의 ‘문민정부’
1. 신군부시대 청산과 민족정기 회복
2. 금융실명제 실시, 세계화정책, 금융위기
3. 남북관계의 교착과 정계개편
4. 외환위기와 사회불안
제6장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1. ‘국민의 정부’의 경제개혁
2. 정부조직 및 교육개혁
3. 대북 포용정책과 남북정상의 만남
4. 스포츠와 문화
5. 여야의 정치적 갈등과 시민단체의 등장
제7장 노무현의 ‘참여정부’
1. 정치권의 세대교체와 이라크 참전
2. 대통령 탄핵, 개혁과 반발
3. 참여정부 시절의 남북관계
4. 참여정부 시대의 정제, 문화, 스포츠
5. 참여정부 말기 정치와 제17대 대통령 선거
제8장 이명박 정부
1. 쇠고기 수입 파동과 금융위기
2.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의 타계
3. 4대강 사업
4. 남북관계의 냉각
5. 스포츠와 문화
6. 제18대 대통령 선거
제9장 박근혜 정부의 출범과 최근의 북한경제
1. 박근혜 정부의 출범
2. 최근 북한의 경제사정
결론-새 천년을 열면서
부록
한국의 유네스코 유산
왕실세계도
참고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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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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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한영우 (지은이)
1938년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를 받았다. 서울대 사학과 교수, 하버드대 객원교수, 문광부 사적 분과위원장, 한국사연구회장, 서울대 규장각 초대 관장과 인문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사의 지평을 넓힌 연구자로 평가받으며 수십 종의 저서를 펴냈다. 주요 저서로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 《다시찾는 우리역사》,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 《역사학의 역사》, 《정조대왕 화성행행 반차도》 등이 있다. 2023년 별세했다.
최근작 : <<반차도>로 따라가는 정조의 화성행차>,<한국사학사연구>,<허균평전> … 총 8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가 저술한 한국통사로 1997년 초판 이래 2004년 전면개정판을 발행, 2013년까지 통합 51쇄를 찍었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이번 개정판에서 좀더 내용을 다듬었다. 새로운 사실을 많이 추가하고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 출범까지 포함하여 2014년 제2전면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다. 외국어로는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판이 간행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다시찾는 우리역사>는 전국 유명서점에서 역사서 부문 베스트셀러 도서로 선정되어 많은 독자를 만나왔다. 또한 전국종합대학에서 교양과목과 사학과 교재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 개설서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일부 독자뿐만 아니라 온국민이 읽어야 할 필독서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 가정에 한국통사 1권 갖기 운동이 펼쳐져야 한다.
두 번째 개정판을 내면서
1997년에 발행된 <다시찾는 우리역사>가 2004년에 전면적인 개정판이 나오고 또다시 10년이 흘렀다. 그동안 독자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도합 51쇄가 간행되었고, 외국어본으로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본이 간행되어 국내와 해외에서 대표적인 한국통사로 자리를 잡고 있다. 이렇게 독자들의 사랑과 관심이 커진다는 것은 필자로서는 더없는 광영이지만, 그만큼 책임감도 무겁다. 51쇄까지 간행하는 과정에서도 매판마다 부분적인 수정과 보완이 있었지만 그것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다. 지난 10년간 국사학계의 새로운 연구업적이 늘어나고, 국내외 상황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정치, 경제, 대중문화, 스포츠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 중심국가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으나 대외관계는 10년 전과 다르다. 이웃 중국이 G2에서 G1을 향해 급성장하고 있으며, 일본은 시대착오적인 100년 전의 군국주의로 치닫고 있다. 여기에 정치와 경제가 낙후된 북한이 핵에 매달려 평화를 위협하고 있다. 통일을 주도하면서 동아시아 평화를 지켜야 할 우리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나라도 적이 될 수 없으나, 현실은 어떤 나라도 진실한 친구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할수록 국력을 더 키우면서 이웃과 평화공존의 가치를 공유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균형외교의 길을 걸어야 할 것이다.
역사의식은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고 있지만, 현실의 과제를 외면하기 어렵다. 객관적 진실을 찾으면서 그 진실이 현재와 미래를 밝게 풀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접점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래서 객관적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역사의식이 필요한 것이다.지금 한국사를 바라보는 역사의식은 이른바 보수와 진보의 시각이 다르지만, 객관성과 미래지향적인 측면에서 모두 한계가 있다. 보수와 진보는 다같이 균형감각을 잃고 있을 뿐 아니라 지나치게 서구적 가치에 기울어져 있다. 이보다 더 높은 평화의 가치가 있고, 그 가치를 찾아서 한국인이 수천 년간 살아왔다는 것을 잘 모르고 있다.
그 가치는 바로 선비정신이고, 선비정신의 핵심은 공동체사상이다. 우주와 사람이 하나의 생명공동체이고, 사람과 사람이 홍인인간으로 또 하나의 생명공동체를 이루며 살아왔다. 그 공동체 속에 자유도 있고, 민주도 있고, 평화도 있고, 계급도 녹아 있다. 다만, 그 가치가 시대의 흐름 속에서 진화하고 발전해 왔으며, 미래에는 더욱 다듬어져서 세계인이 공유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 역사의 큰 흐름은 동서양이 만나 새로운 문명의 가치를 창조할 때라고 본다. 여기에서 서양문명이 창조한 개체존중의 가치와 동양문명이 창조한 공동체존중의 가치가 높은 차원에서 융합된다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한층 더 따뜻해지고, 국제적 갈등은 한층 더 완화될지도 모른다.
한국사는 한국이라는 좁은 공간의 역사가 아니다. 영토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사는 매우 왜소하지만, 문화가치로 본다면 한국사는 크나큰 세계사와 맞닿아 있다. 세계화 시대에 한국사를 국제적 시야에서 보아야 한다는 논의가 무성하지만, 국제적 시야라는 것을 단순히 국제정치의 맥락에서 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한국사는 수천 년간 군사강대국 역사의 종속적 존재로만 그치고 말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이 지켜온 문화가치와 주체성을 스스로 지워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역사상 한 번도 경제나 군사강국으로 세계사를 주도한 일이 없다. 주변 강대국의압박과 영향을 크게 받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적으로는 세계 문화강국의 하나로 살아왔다. 한국인의 조상인 ‘아사달족’의 문화가 중국문화의 뿌리가 되었고, 아사달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되어 일본 고대문명을 꽃피웠다. 공자가 고조선을 ‘군자국’이라 칭하면서 건너오고 싶다고 했고, 그 뒤에도’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이라 불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적으로 중국문화를 다시 수용하여 문화를 살찌웠지만, ‘군자국’과 ‘동방예의지국’의 이미지만은 한국이 더높았다. 그래서 동아시아문명의 중심에 한국이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를 만든 것도 한국이고, 교육과 관련되는 금속활자와 인쇄술에서 세계 최첨단을 걸어온 것도 한국이며, 교육입국으로 나라를 키워온 것도 한국이다. 검소하고 겸손한 왕실문화를 바탕으로 백성을 끌어안고 철인정치哲人政治를 꽃피운 것도 한국이다. 물론, 기나긴 역사의 행로에 어두운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그것이 한국사의 본질이었다면 어떻게 500년이나 1,000년의 사직을 이어갈 수 있었겠는가?
문화의 힘은 경제나 군사력보다도 큰 것이다. 그러기에 예수나 석가나 공자는 맨손으로 세계를 지배한 것이다. 한국에는 이런 인물은 없었지만, 이들의 가르침을 누가 모범적으로 실천했느냐를 따진다면 한국인은 아마도 우등생으로 꼽아야 할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한국사의 진실한 모습이고, 바로 그것이 세계사 속에서 바라보는 한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인이 ‘군자국’과 ‘동바예의지국’의 모범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는 매우 의심스럽다. 아니 그 모습을 너무나 많이 잃었다. 그러기에 더욱 우리 역사를 소중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다. 역사의 거울로 우리 몸에 묻은 때를 벗겨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처음부터 이런 시각에서 집필되었지만, 이번 개정판을 통하여 그 모습을 좀 더 새롭게 다듬었다. 그에 따라 새로운 사실이 많이 추가되었지만, 그것이 두 번째 개정판을 내는 근본적인 목표는 아니다. 독자들은 이 책에 담고자 하는 필자의 마음이 무엇인지를 먼저 헤아려 주시고 읽어 주기를 당부한다. 책의 부족한 부분을 깨우쳐 주신다면 더 없는 바람이다.
2014년 1월 관악산 호산재에서
한 영 우 씀 접기
평점분포
7.4
한권으로 잘 다듬어진 통사입니다. 시험준비용이라면 부교재로 두고 들춰보는 게 좋을것 같습니다.
보노보노 2015-03-13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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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래요
헤이 2020-06-19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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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임용기본서이지만,
앞의 선사~고려는 한국사통론을 베이스로 보시고, 이 책은 조선부터 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선사~고려의 완성도는 통론만큼 하지는 않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2020-04-05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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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리뷰
사전같은 역사책.
각 시대별로 상세히 나와있어 참 좋았습니다.한번에 다 읽기 보다는관심 갈 때 그때그때 펼쳐보기에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설민석 강사님 추천으로 샀는데.스테디 셀러인 이유를 알겠네요~
dainy0226 2016-05-02 공감(0) 댓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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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정말 왜곡된 교과서로 우리 역사를 배운다고?!
“우리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어요. 어서 빨리 교과서가 개정되어야 해요.”
어제 약국에 갔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새누리당 지지자의 발언이었다. 이 사람이 여당 의원인지 학자인지 논평자 인지는 모르겠지만(중간에 들어서), 확실한 건 이 사람의 주장은 현재 검정 교과서들이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는 거였다.
또 부아가 치밀었다. 똑같은 상황이 연일 계속되고 있는 듯하다. 그제는 합정역 사거리에서 이상한(?) 현수막을 보았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우리 아이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역사를 배우고 있습니다.”
정말 기가 찬다. 저번 주 100분 토론에서 권희영을 비롯한 국사교과서 국정 지지자 패널들의 발언에 심한 빡침을 받은 이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는 현상이다. 새누리당이 물량 공세를 펴고 있는 듯.
정부는 한 술 더 떠서 국정화의 논거가 참으로 새누리당 다웠다. “우리아이들이 학교에서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어요!” 이게 새누리당과 정부의 국정화를 위한 모토다.
동국대 홍윤기 철학과 교수가 하도 어처구니 없어서, 100분 토론 와중에 7종 교과서(8종 중 교학사 제외)를 열어 확인까지 시켜줬다. 7종 교과서 중 3종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싣고 있었다.
김일성 전집에 나온 주체사상의 핵심 내용을 자료로 제시하면서 교과서들은 비판적 논조로 설명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유일한 우상화 작업이라고.
그런데 국정화 지지자들은 이걸 왜 싣느냐는 거다. 성인들은 상관없지만 자라나는 어린 학생에게는 주체사상을 싣고 있는 자체가 어떤 의도를 담고 있다는 거다. 교사에 따라서 가르치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는 것.
이들의 주장은 그냥 아전인수요, 견강부회로밖에는 안 들린다. 그리고 똑같은 패턴으로 이를 반복하거나(자신들의 주장이 논파됐음에도 불구하고) 상대 주장의 중요치 않은 부분을 집중 공격하여 논지를 흐리게 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다른 방송 토론을 보아도 비슷한 방식을 보여준다.
그런데, 이 방식이 일반 대중에게 먹히고 있다는 거다. 심히 분통터지는 일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우리 아이들이 왜곡된 역사를 배우고 있어요!” “현재 한국사 교과서들은 모두 좌편향이에요~!”라는 말도 안돼는 주장들로 인해 대중은 정말 교과서가 개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설문 조사를 봐도 그렇고 막연히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기성세대들도 그렇다. 특히나 역사를 잘 모르는 50대~80대에게는 ‘전교조=빨갱이’라는 도식이 더 강화되고 있다.
아마도 새누리당 쪽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 거다. 이 말도 안돼는 억지 주장이 먹히고 있으니. 내 부모님만 해도 교과서가 ‘좌편향’돼서 큰일이라고 걱정하시니 말이다.
새누리당 쪽이 말하는 ‘좌편형’이라는 잣대는 한마디로 침소봉대다. 이들의 논리는 보천보 전투(김일성의 대일 항쟁)를 과대포장 했다는 거고, 싣지 말아야 할 김일성 전집의 내용을 다루었다는 거다. 그리고 ‘건국’을 문제삼으면서 검정교과서들이 대한민국을 부정한다는 논리를 편다.
그리고 6.25 전쟁을 검정교과서들이 북침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어느 교과서에서 기술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7종 중 하나의 교과서에서 ‘북침’이라는 용어를 쓴 모양인데, 이걸 갖고 검정교과서들은 모조리 좌편향 되었다는 주장을 편다.
심지어는 현대사 단원 첫 사진을 문제 삼기도 한다. 허고 많은 사진 중에 민주화 투쟁의 사진을 싣는 것은 어떤 역사적 의도가 내재돼 있단다. 경제발전을 다룬 사진을 메인에 걸어야지 왜 굳이 데모하는 걸 현대사 메인 사진으로 쓰느냐는 거다.
이들의 논의를 살펴보면 그냥 쓰레기같은 것들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슈화시켜서 현 검정 교과서체제가 ‘좌편향 됐다’라는 걸 계속 반복하여 대중의 뇌리에 심으려는 의도로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는 개정을 빌미로 교학사 교과서의 내용을 그대로 국정화하겠다는 심보로 보인다. 국정을 비판하는 쪽에서 이 얘기를 꺼내면 아직 나오지도 않은 교과서를 갖고 비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는 국정교과서 시험판(예비판)에서 이미 그 기조를 들어내 보여주고 있다.
실험본 교과서(국정 교과서를 발행하기 이전에 시험적으로 가르쳐보는 교과서)에는 '독재'라는 표현이 완전히 빠져있다. 일제시대의 내용은 일본 우익을 대변해 주는 듯한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일본 우익이 계속해서 우려먹어온 내용이다. 일본에 의해 건설된 철도 도로는 해방이후 국가 발전의 근간이 됐다는 거. 토지조사사업이나 산미증식계획으로 인한 쌀 ‘수탈’을 ‘수출’로 명명한 건 애교다.
우익 학자들은 일제의 토지조사사업과 산미증식계획을 근대적인 소유권 제도의 확립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또한 이완용을 기술한 부분이나 을미사변을 기술한 부분은 매우 온건하거나 분량이 지극히 짧다.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살해된 사건은 단 한 줄에 불과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지금부터 우익 인사들의 역사의식이 투영된 미리보는 국정교과서인 기술을 봐 보자. 교학사 교과서가 학교 채택률 0를 보이자 대안 교과서라고 해서 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를 미는 모양새다. 현재까지 교과서포럼에서 낸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기파랑, 2010)는 10쇄 이상을 찍었다.
우익의 역사인식이 어떤지 위 책에서 몇 가지만 발췌해서 보고자 한다. (조금 분량이 되지만 국정화 지지자들이 어떤 역사의식을 갖고 있는 지 극명히 드러나는 부분이기에 그대로 옮겨 본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보셨으면 한다.) 맨 먼저 산미증식계획을 서술한 86~87페이지 부분이다.
문화정치로 전환한 총독부는 농업개발에 착수하여 산미증식계획을 추진하였다. 이 계획이 수립된 데에는 1918년 일본에서 쌀이 부족해져 주요 도시에서 ‘쌀소동’이라는 소요가 발생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 계획의 주요 내용은 저수지, 보, 양수장과 같은 수리시설을 확충하고자 각지에서 수리조합이 활발하게 결성되었다. 수리조합은 식산은행의 대출자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했고, 총독부의 토지개량과는 공사의 설계와 기술을 지원하였다.
산미증식계획의 결과 수리시설을 갖춘 논이 증가하였다. 종자 개량도 추진이 되어 일본계 우량 품종이 대부분 농촌에 보급되었다. 1929년 흥남에 질소비료공장이 완공된 후에는 화학비료의 투입량이 크게 늘었다. 그 결과 쌀 생산량이 증가하였다. 증산된 쌀의 상당부분은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1910년대 후반에 비해 연평균 쌀 생산량은 700만 석가량 증가했는데, 그 가운데 570만 석이 일본으로 수출되었다.
쌀의 생산이 늘어난 데에는 쌀값이 다른 물가보다 더 많이 올랐다는 시장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농민과 지주는 다른 농사보다 수익성이 좋은 쌀농사에 주력하였다. 농민들은 산미증식계획의 지원을 받지 않고서도 자발적으로 수리시설을 개량하였다. 그런 토지가 수리조합에 속한 토지보다 훨씬 많았다.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pp86~87
여기에는 일본의 산미증신계획 의도가 잘 드러나 있지 않고, 그 결과로 우리민족의 근황이 어땠는지는 전혀 기술되어 있지 않다. 우량 품종이 농촌에 보급되었다는 이후 내용들은 모두 산미증식계획에 대한 우호적 기술들이다. 일본의 이 계획으로 일본에 많은 수출을 할 정도로 우리나라가 좋아졌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부정적인 기술을 하나도 찾을 수 없다.
똑같은 산미증식계획을 <우리역사>에서는 어떻게 기술했는지 보자. 참고로 한영우 교수의 이 책은 우리 역사의 객관적 기술과 탁월한 평이성을 인정받아 외국에 우리 역사를 알리는 가장 대표적인 역사서다. 러시아판, 영어판이 모두 번역되었다. 그리고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이자 문광부 선정 우수학술도서이기도 하다. 주요 인터넷 서점 추천도서임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역사>(경세원, 2007)에는 산미증신계획 내용이 534페이지에 나와 있는데, 그 바로 앞 페이지에 소제목이 ‘경제수탈의 강화’이다.
일본은 1910년대 이후 자본주의 경제가 급속하게 발전하면서 농민들이 도시에 몰려 식량 조달에 큰 차질이 빚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이른바 산미증식계획이 세워졌다. 이 계획은 토지개량과 농사개량에 의해 식량생산을 대폭 늘림으로써 일본으로 더 많은 쌀을 가져가고 우리나라 농민생활도 안정시킨다는 목표 하에 추진되었다. 그러나 제1차(1920~1925), 제2차(1926~1934)계획이 계속 추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1936년 현재 쌀 생산량은 1920년보다 약 30%가 증가한 데 불과하였으나, 일본으로의 수출량은 약8배로 증가하였다. 1932~1936년의 평균 쌀 생산량은 1700만석인데, 일본으로 가져간 것은 그 절반이 넘는 876만석이었다. 그 결과 한국인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1920년의 약 7두에서 4두 정도로 줄어들었다. 이에 비해 일본인은 1년에 1인당 1석 2두를 소비하였다. 한국인들은 부족한 식량을 만주에서 들여오는 잡곡[조,수수,콩] 등으로 메꾸어 갔다.
우리나라 농민들은 식량사정만 나빠진 것이 아니라, 과도한 수리조합비로 자작농이 소작농으로 몰락하는 사례가 많았고, 농업구조와 유통구조까지 쌀 중심으로 개편되어 경제구조의 파행성이 심화되었다. 결국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은 1920년대 이후 소작쟁의가 격화되는 원인을 제공하였다. <우리역사> p534
위의 대안교과서 내용과 비교해 보면 확연히 그 차이를 알 수 있다 비슷한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역사>에는 이 계획의 원인과 진행 결과를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 수탈정책으로 우리 민족은 매우 고통 받았다는 정황을 그대로 알 수 있다. ‘수탈’이지 ‘수출’이 아닌 것이다.
이번엔 을미사변을 기술한 부분을 비교해 보자. 대안교과서에는 을미사변 내용이 정말 짧게 기술되어 있다. 55페이지에 [3국간섭과 을마사변]이라는 소제목하에 15줄로 기술되어 있는데, 을미사변은 단 1줄로 처리했다. 나머지는 모두 3국 간섭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일본은 3국간섭으로 한국을 보호국으로 만들려던 책동이 좌절되고, 나아가 친러파가 정권을 잡는 사태가 벌어지자 1895년 10월 민황후를 시해하였다(을미사변). 이후 김홍집과 유길준 등의 내각이 조직되어 급진적인 개혁 정책을 시행했는데, 특히 단발령은 극심한 반발을 일으켰다.
2007년 국정교과서 <국사>에 서술된 내용과 흡사하다. 거기서도 1줄로 처리했는데, 근현대사 책이 따로 발간됐기에 별로 문제거리가 되지 않았다. 근현대사 검정 교과서들은 보다 자세히 이를 소개했다. 일부 검정교과서는 자료 박스로 제시하기 까지 했으니까.
<우리역사>에 기술된 내용을 보자. 487~488페이지에 걸쳐 소개돼 있는데, 절의 명칭은 [일본의 명성황후 시해와 을미의병(1895~1896)]이다.
친일세력의 실각에 불안을 느낀 일본은 또다시 폭력으로 정국을 뒤집어 놓기 위하여 먼저 당시 친러외교를 주도하던 명성황후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몄다. 이를 위해 일본은 이노우에 가오루 대신 육군 중장 출신의 과격한 인물인 미우라 고로를 우리나라 주재 공사로 보내 일본인 수비대와 경찰 그리고 신문기자 등으로 하여금 1895년 음력 8월 20일 새벽 경복궁을 습격하여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홍계훈을 비롯한 훈련대군인들이 저항했으나 흉도들을 막지 못했다. 45세의 황후는 시해된 뒤 시체가 불살라졌다. 이 사건은 우리 국민의 분노는 물론 국제적 비난을 크게 불러 일으켰는데, 일본은 미우라 고로 일당을 소환하여 히로시마 형무소에 가두고 재판하는 체하다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판결을 내렸다. 이 사건을 을미사변이라고 부른다.
근현대사 검정교과서들의 내용은 <우리역사>의 내용과 비슷하다. 단지 분량 차이(약 절반 정도만 기술)만 있을 뿐이다. 교과서포럼이 쓴 근현대사만 한 줄로 기술했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박정희 정권에 대한 기술 부분을 살펴보자. 여기서는 ‘독재’에 대한 기술 여부이다. 교과서포럼의 현대사 부분 중 박정희 정권을 기술한 60~70년대 내용을 샅샅이 살펴봤다. 놀랍게도 ‘독재’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2007년 국정교과서 <국사>에서 박정희 정권을 평가한 부분을 살펴봤다. 126페이지에 유신체제 대한 평가가 기술되어 있다.
1967년 선거에서 재선된 박정희는 3선 개헌을 강행하였고, 1972년에 비상 계엄을 선포하여 국회를 해산하였으며, 10월 유신을 단행하였다. 10월 유신은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민주적 헌정체제를 부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면서 장기적인 독재체제를 구축한 것이었다. 2007년판 국정교과서 <국사> p126
교과서포럼의 <근현대사>는 박정희 정권에 할애한 부분이 180페이지부터216페이지까지 무려 37페이지나 된다. <우리역사>는 10페이지 분량이고, 대부분의 검정 근현대사 교과서들은 20여 페이지 정도 된다. 요즘 잘나가는 <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휴머니스트, 2007)의 경우는 28페이지 정도 된다. 근데 여기에는 5장 5절의 제목이 [되살아난 군사독재]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사 교과서 개정 논란의 핵심은 박근혜 정부의 역사의식을 교조화하고자 하는 은밀한 시도라 추정할 수 있다. 그 정황적 증거가 교학사 교과서와 교과서포럼이 펴낸 <근현대사>이다.
여기에는 친일에 대한 단죄가 구렁이 담 넘어 가듯이 기술되어 있고(이완용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라는 내용이 하나도 없다), 일제 36년의 만행들이 완화 및 미화되어있다. 이는 산미증식계획을 기술한 부분을 보면 대번 알 수 있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을 기술한 부분에서 현 정권의 역사의식의 방점을 찍는다. 그 많은 분량을 할애했지만 정작 중요한 ‘독재’라는 단어를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현재 배우고 있는 국정교과서 실험본도 교과서포럼이 쓴 근현대사 책과 대동소이할 것이다. 이건 100분 토론에서 밝혀진 바 있다.
현 시점에서 국사교과서의 국정은 어불성설이다. 세계 제대로 된 나라에서 아이들을 단일화된 교과서로 자국의 역사를 가르친다는 건 일종의 코미디다. 만일 우익 인사들의 지적처럼 행여나 잘못된 곳이 있다면 현재 검정 교과서 내에서 타협점을 찾아 고치면 된다.
아주 편한 길을 놔두고 산을 옮기려는 행위는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고서야 납득하기 힘든 사안이다. 교조적 선전을 가려내는 국민들의 혜안이 절실히 필요한 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덧]
개인적으로 하도 언론에서 좌편향 교과서 운운해서 해당 부분을 찾아 한영우 교수의 <우리역사>와 대조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현재 검정교과서들은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내가 본 건 두산, 대한교과서, 지학사) 진짜 문제가 심각한 건 우익이 만든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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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5-10-30 공감 (35)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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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촌 이암의 생애와 사상 검색
한영우 (지은이) 일지사2002
목차
- 행촌 이암과 <단군세기>
- 행촌 이암의 생애와 정치 활동
- 조선 초기 이암 후손의 계보와 문화 활동
- 행촌 이암의 <농상집요> 도입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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