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25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 후쿠자와 유키치 | 알라딘

[전자책]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 후쿠자와 유키치 | 알라딘


[eBook]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후쿠자와 유키치 (지은이),정명환 (옮긴이)기파랑2023-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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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종이책 15,3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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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원

340쪽, 

책소개
일본 개화기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후쿠자와가 보기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였던 당시의 일본사회의 격동과 열정은 일본이 문명국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서양이 밟아온 문명의 과정은 어떤 것이며, 일본이 지닌 그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책의 골격을 이룬다.

이 책은 서론과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일관된 주제는 반봉건주의, 진보사관, 그리고 창조적 지성에 대한 신뢰이다. 따라서 문명론이란 말을 바꾸면 봉건적 체제에서 해방된 민중이 보다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 조건을 획득하기 위해서 창조적 지성을 동원한 과정에 관한 관찰이며 또 그 가능성에 대한 진단이다.


목차


머리말
제1부
제1장 논의의 기준을 세우는 일
제2장 서양의 문명을 목표로 삼는 일
제3장 문명의 본뜻을 논함
제2부
제4장 한 나라의 국민의 지덕을 논함
제5장 앞장의 계속
제3부
제6장 지덕의 구별
제4부
제7장 지덕이 행해질 시대와 장소를 논함
제8장 서양문명의 유래
제5부
제9장 일본문명의 유래
제6부
제10장 자국의 독립을 논함

해설; 정명환
후쿠자와 유키치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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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및 역자소개
후쿠자와 유키치 (福澤諭吉) (지은이)
저자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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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江戶시대 막부 말기에 해당하는 1835년에 나카쓰 번中津藩 하급무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5세부터 유학을 배웠고 19세부터 난학蘭學을 배웠으며 이후 영.미 사상을 공부하게 된다. 1858년 번의 명령으로 에도에 난학숙蘭學塾을 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게이오대학교慶應義塾의 전신이다. 1860년과 1861년에 막부 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과 유럽을 두루 살펴보고 쓴 <서양사정>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큰 명성을 얻었다. 이후 <학문의 권장>, <문명론의 개략>과 같은 책을 집필하면서 메이지시대 일본의 지적 담론을 주도한 계몽사상가이자 교육가로 손꼽히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일본 1만 엔권 지폐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접기

최근작 : <[단한권]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큰글자책] 서양사정>,<메이로쿠 잡지> … 총 64종 (모두보기)

정명환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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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명예교수.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불문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한국외국어대학교 등에서 불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서로 『한국 작가와 지성』 『졸라와 자연주의』 『문학을 찾아서』 『현대의 위기와 인간』 『이성의 언어를 위하여』 『문학을 생각하다』 『젊은이를 위한 문학 이야기』 『인상과 편견』 외 프랑스어로 쓴 『Entre litterature et philosophie』(2012)가 있으며, 역서로 『20세기의 지적 모험』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2022년 3월 향년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접기

최근작 : <프루스트를 읽다>,<인상과 편견>,<Entre Litterature et Philosophie> … 총 23종 (모두보기)


출판사 제공 책소개

문명론은 ‘인간정신의 발달론’이다

일본 개화기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후쿠자와 유키치는 ‘메이지 8년(1875년) 3월 25일’ 날짜의 이 책(원제= 문명론의 개략) 서문을 “문명론이란 사람의 정신의 발달에 관한 논의이다. 그 취지는 한 개인의 정신의 발달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정신의 발달을 총체적으로 고찰하는 데 있다. 따라서 문명론은 인간정신의 발달론이라고 말해도 좋으리라.”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 책은 서론과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일관된 주제는 반봉건주의, 진보사관, 그리고 창조적 지성에 대한 신뢰이다. 따라서 문명론이란 말을 바꾸면 봉건적 체제에서 해방된 민중이 보다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 조건을 획득하기 위해서 창조적 지성을 동원한 과정에 관한 관찰이며 또 그 가능성에 대한 진단이다.
후쿠자와가 보기에 메이지유신(明治維新) 직후였던 이 책 집필 당시의 일본사회의 격동과 열정은 일본이 문명국으로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렇다면 서양이 밟아온 문명의 과정은 어떤 것이며, 일본이 지닌 그 가능성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책의 골격을 이룬다.

일본 이해를 위한 필독서

이 책은 오늘날까지도 일본사람에게는 근대의 가장 중요한 책으로 남아 있다. 그것은 19세기 후반기의 동양에서 문명의 본뜻을 논리적으로 그리고 심층적으로 밝혔을 뿐 아니라, 동양의 후진성의 연원을 정당하게 밝히고 고발한 유일한 책인 것이 사실이다. 그 점에서는 우리들 한국인 역시 그의 담론에 경탄하고 그것을 부러워해서 마땅하리라.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서양의 충격을 이겨내고 서양과 겨루기 위해서 서양을 왜곡된 형태로 섭취하면서 이어나간 일본의 초국가주의와 제국주의의 이론적 싹을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근대화의 초기 단계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의 일본, 그리고 심지어는 오늘날의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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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의 저작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概略, 문명론)>에 대한 요약과 평론입니다.

<문명론의 개략> 요약 및 평론

1. 책 개요 및 핵심 요약

<문명론의 개략>은 후쿠자와 유키치가 1875년에 저술한 그의 대표적인 사상적 주저이다. 프랑스의 기조(Guizot)와 영국의 버클(Buckle) 등 서구 문명사학자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서구 열강의 식민지 침탈 위기 속에서 일본이 어떻게 '문명화'를 이루어 국가의 독립을 지켜낼 것인가를 치열하게 모색한 이론서이다.

문명의 정의와 발전 단계설

후쿠자와는 문명을 단순한 물질적 풍요나 화려한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지덕(智德)의 진보이자 인간 교제의 발달"로 정의한다. 그는 세계 역사의 발전 단계를 '야만(野蠻)' - '미개(半開)' - '문명(文明)'의 세 단계로 구분하고, 당시 유럽과 미국을 '문명',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미개' 혹은 '야만'의 상태로 배치했다. 그에게 문명이란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끝없이 진보하는 상대적 개념이다.

지덕의 불균형과 지(智)의 우선성

그는 인간의 능력을 '도덕(德)'과 '지혜(智)'로 나누어 분석한다. 도덕은 개인적 영역에 머물기 쉬우나 지혜는 시대를 거치며 축적되고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고 보았다. 그는 유교가 지나치게 형식적 도덕률에 얽매여 지식의 발전을 억압했다고 비판하며, 서구 과학과 합리적 사고를 대변하는 '지(智)'의 훈련이 문명화의 핵심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국가 독립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문명

이 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일본의 독립 유지'이다. 후쿠자와는 "문명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참된 목적은 국가의 독립"이라고 단언한다. 서구 제국주의의 위협 속에서 국가의 독립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형적 군사력 증강만이 아니라,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정신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쳐 서구 수준의 문명 상태에 도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2. 비평 및 현대적 의의

체계적 문명론의 정립과 봉건 유교 비판

<문명론의 개략>은 단순한 서구 지식의 소개를 넘어 문명사적 시각에서 동양 전통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파헤친 명저이다. 후쿠자와는 동양 사회의 정체 원인을 '권력의 편중'과 '지적 억압'에서 찾았으며, 인간의 비판적 지성과 실용적 합리주의를 해방시키고자 했다. 이는 전통 유교 질서의 해체를 가속화하고 근대적 제도와 교육 체계를 확립하는 데 결정적인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

사회진화론의 맹점과 제국주의 편입

그러나 이 책의 논리는 19세기 서구 사회진화론의 우열 사관에 깊이 매몰되어 있다. 서구 근대를 인류 역사의 보편적 정점이자 유일한 발전 척도로 상정함으로써, 비서구권의 고유한 문화와 역사적 맥락을 미개와 야만으로 단순화했다.

더욱이 문명을 '국가 독립을 위한 도구'로 규정하고 약육강식의 국제질서를 절대적 법칙으로 수용한 귀결은 치명적이었다. '먹지 않으면 먹힌다'는 불안감과 문명화에 대한 맹신은 이후 후쿠자와 자신의 <탈아론>과 일본 제국주의의 대외 팽창을 합리화하는 지적 정당화로 작동했다. 독립을 지키기 위해 시작한 논리가 결국 이웃 국가들의 독립을 유린하는 침략의 논리로 귀결되는 모순을 내포한 것이다.

총평

<문명론의 개략>은 서구 충격에 직면한 동아시아 지식인이 고투 끝에 빚어낸 가장 치밀하고 명쾌한 근대화 청사진이다. 인간의 지성과 제도의 진보를 설파한 통찰은 지금도 높은 학문적 가치를 지닌다. 하지만 문명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패권주의와 결합하여 타자에 대한 폭력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반면교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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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자와 유키치 『문명론의 개략』(文明論之概略, 1875)

— 1,000단어 요약·평론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의 개략』은 『학문의 권유』, 『후쿠옹 자전』과 함께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책이다. 『학문의 권유』가 개인에게 <독립하라, 배우라>고 말하는 책이라면, 『문명론의 개략』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문명이란 무엇이며 일본은 세계 문명의 어느 위치에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가>를 묻는다.

이 책이 출판된 1875년은 메이지유신으로부터 불과 7년 뒤였다. 일본은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급속히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후쿠자와가 보기에 단순히 철도·전신·군대·학교를 서양식으로 만드는 것만으로는 문명화라고 할 수 없었다. 진정한 문명은 인간의 <지력과 덕성>, 사회의 <자유로운 정신>, 그리고 국가의 <독립>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문명론의 개략』은 단순한 서양화론이 아니다. 오히려 <서양 문명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를 분석하여 일본이 그것을 어떻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를 탐구한 근대 일본 최초기의 체계적인 문명론이라고 할 수 있다.

1. 문명에는 단계가 있다

후쿠자와는 인간 사회를 대략

<야만 → 반개 → 문명>

이라는 발전 단계로 파악한다.

오늘날 보기에 상당히 19세기적인 역사관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후쿠자와가 문명을 특정 민족의 고정된 속성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인이 본래부터 문명인이고 아시아인이 본래부터 야만인이라는 것이 아니다. 어느 사회든 역사적 조건과 학습에 따라 발전하거나 정체될 수 있다.

따라서 당시의 서양이 가장 발전된 문명이라는 것은 절대적 진리가 아니라 <현재의 상대적 상태>에 불과하다.

이 점에서 후쿠자와는 서양을 숭배하면서도 서양을 절대화하지 않는다.

서양에는 전쟁도 있고 빈곤도 있으며 정치적 갈등과 인간의 탐욕도 존재한다. 서양 문명이 완성된 이상사회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19세기 현실에서 과학·정치제도·경제·교육·군사력에서 가장 앞서 있기 때문에 일본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후쿠자와의 서양화론은 그래서 상당히 실용적이다.

<서양이 옳기 때문에 배우는 것이 아니라 강하고 발전해 있기 때문에 배운다.>

2. 문명은 물질보다 정신이다

후쿠자와가 가장 경계한 것은 <문명의 외형만 수입하는 것>이었다.

증기선, 철도, 무기, 서양식 건물과 옷을 도입했다고 해서 사회가 문명화되는 것은 아니다.

문명의 핵심은 인간의 정신에 있다.

사람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정부의 명령을 무조건 따르지 않으며, 학문과 지식을 활용하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문명은 단순한 기술 발전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 능력과 사회적 관계의 발전>

이다.

이것은 『학문의 권유』의 개인독립론과 직접 연결된다.

독립된 개인이 없는 사회에는 진정한 문명도 없다.

3. 개인보다 중요한 ‘국민의 기풍’

그러나 『문명론의 개략』에서 후쿠자와는 개인을 넘어 <사회 전체의 정신>을 강조한다.

몇몇 천재나 현명한 지도자가 있다고 해서 나라 전체가 문명화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말로 하면

<사회적 분위기, 공론, 국민적 정신>

이다.

후쿠자와는 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고, 무엇을 부끄러워하며, 무엇을 존중하는지가 정치제도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법률에 자유가 보장되어 있어도 국민들이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면 실제 자유는 존재하기 어렵다.

반대로 국민이 자유와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면 제도가 아직 완전하지 않더라도 사회는 점차 자유로운 방향으로 움직인다.

이 점이 『문명론의 개략』에서 매우 현대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후쿠자와에게 근대화는 단순한 <제도 개혁>이 아니라 <사회문화의 변화>였다.

4. 왜 일본은 뒤처졌는가

그렇다면 일본은 왜 서양보다 뒤처졌는가.

후쿠자와는 그 원인을 일본인의 지적 능력 부족에서 찾지 않는다.

핵심 문제는

<권력이 한쪽에 집중되고 개인이 독립하지 못했던 사회구조>

에 있다고 본다.

막부와 번, 신분제도, 유교적 위계질서 속에서 사람들은 위의 명령에 복종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특히 후쿠자와가 비판한 것은 정부와 사회 사이에 독립된 공간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서양에서는 상인·학자·종교인·도시민 등 다양한 사회집단이 성장하면서 권력이 분산되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정치권력이 사회를 압도했다.

그 결과 사회 구성원 스스로 조직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여기에서 후쿠자와의 유명한 문제의식이 나온다.

<정부가 강하고 국민이 약한 나라>

로부터

<정부와 국민이 서로 균형을 이루는 나라>

로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5. 지혜와 도덕을 구별한다

후쿠자와는 인간과 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면서 <지덕(智徳)>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도덕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전통적 유교주의에는 비판적이다.

유교사회에서는 충성, 효도, 절제, 인의 같은 덕목이 오랫동안 강조되었다.

그런데 후쿠자와가 보기에 아무리 도덕적인 사람이라도 과학·경제·정치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근대사회의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좋은 마음만으로 증기기관을 만들 수 없고, 국제정치를 이해할 수도 없다.

따라서 일본에 더 시급한 것은 추상적인 도덕훈계가 아니라

<지식과 합리적 사고능력의 확대>

였다.

이것은 조선의 개화사상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당시 조선에서도 국가 위기에 대한 해답을 군주의 덕, 신하의 충성, 백성의 윤리에서 찾으려는 경향이 강했다. 후쿠자와는 그러한 방식으로는 서양의 국가들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6. 문명의 최종 목적은 ‘국가의 독립’

그러나 『문명론의 개략』에는 후쿠자와 사상의 결정적인 긴장이 나타난다.

한편에서 그는 개인의 자유와 독립을 강조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문명화의 가장 긴급한 목적을

<일본의 국가적 독립>

에서 찾는다.

왜 그런가.

당시 국제사회는 평화로운 문명국들의 공동체가 아니었다.

서양 열강은 중국을 침략했고 아시아 각지에 식민지를 만들었다. 일본도 불평등조약을 강요받고 있었다.

후쿠자와에게 문명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단순히 가난하게 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식민지가 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의 논리는 다음과 같이 연결된다.

개인의 독립
→ 국민의 지적 성장
→ 사회의 문명화
→ 강한 국가
→ 국가의 독립.

바로 여기에서 후쿠자와 자유주의의 독특한 성격이 나온다.

자유의 목적이 자유 자체에만 있지 않고 <국가 생존>과 결합되어 있다.

7. 이것이 후일의 제국주의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문명론의 개략』을 읽을 때 가장 중요한 평론적 문제도 여기에서 발생한다.

후쿠자와는 분명 봉건적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개인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러나 세계를 <문명과 반문명>의 단계로 나누는 사고는 위험한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문명국으로 올라서고 중국과 조선이 <반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판단한다면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을 계몽하고 지도한다는 논리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쿠자와는 1880년대 조선 개화파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김옥균·박영효 등과 관계를 맺었으며 조선도 스스로 개혁하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갑신정변이 실패하고 청의 영향력이 강해지자 그의 조선관은 급격히 비관적으로 변했다.

이 흐름 끝에 흔히 후쿠자와와 연결해서 논의되는 1885년의 <탈아론>이 나타난다.

따라서 『문명론의 개략』에 이미 제국주의가 완성되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지나치다.

하지만

<문명 발전의 서열화>

<국가독립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 사고>

속에 훗날 제국주의적 논리로 이동할 수 있는 긴장이 존재했다는 것은 부정하기 어렵다.

8. 『학문의 권유』보다 훨씬 복잡한 후쿠자와

『학문의 권유』만 읽으면 후쿠자와는 비교적 단순한 자유주의자로 보인다.

<공부하라. 독립하라. 사람은 평등하다.>

그러나 『문명론의 개략』으로 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진다.

후쿠자와는 이미

개인과 국가,
자유와 권력,
도덕과 지식,
전통과 근대,
아시아와 서양

사이의 관계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후쿠자와의 가장 중요한 저술이라고 평가받을 만하다.

9. 조선과 일본을 비교하여 읽을 때

이 책은 특히 조선 후기와 메이지 일본을 비교하는 데 가치가 크다.

일본의 성공을 흔히

<메이지 정부가 좋은 제도를 선택했기 때문>

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후쿠자와의 관점에서는 그것만으로 부족하다.

제도를 움직일 사람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 사회가 있어야 하며, 정부 밖에서도 활동하는 지식인·상인·언론·학교가 있어야 한다.

후쿠자와 자신이 바로 그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는 정부 관리가 아니라 사립학교를 운영하고 신문을 만들고 책을 쓰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려 했다.

이것은 조선 개화파와 비교할 때 매우 중요한 차이다.

조선에서는 개혁이 곧 <정권을 잡아 국가를 위에서 바꾸는 것>과 거의 동일시되었다. 갑신정변이 대표적인 사례다.

반면 후쿠자와는

<정부를 바꾸기 전에 사회를 바꿀 수 있다>

고 생각했다.

교육과 출판, 언론과 민간 활동을 통해 사람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이 점에서 후쿠자와의 근대화론은 정치혁명론보다 <사회개혁론>에 더 가깝다.

종합 평론

『문명론의 개략』을 지금 읽으면 놀라운 두 가지 모습이 동시에 보인다.

첫째는 상당히 현대적인 후쿠자와다.

그는 근대화를 철도와 공장의 건설로 보지 않았다. 제도가 바뀌더라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사회관계가 바뀌지 않으면 진정한 근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 통찰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민주헌법을 도입한다고 민주사회가 자동으로 생기는 것이 아니며, 대학을 많이 만든다고 지적 사회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니다.

둘째는 철저하게 19세기적인 후쿠자와다.

그는 인류사회를 문명의 단계로 나누었고, 국가의 생존을 최고의 현실적 과제로 생각했다. 따라서 개인의 자유에 대한 그의 관심도 서구 자유주의처럼 개인의 권리 그 자체에서 끝나지 않는다.

<강한 국민을 만들어 강한 일본을 만든다>

는 국가주의적 방향이 계속 따라다닌다.

이 두 얼굴을 동시에 보는 것이 중요하다.

후쿠자와를 단순히 <일본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보는 것도 잘못이고, 반대로 처음부터 <일본 제국주의의 이론가>였다고 규정하는 것도 지나치다.

오히려 『문명론의 개략』은

<자유주의적 근대화가 어떻게 국가주의적 근대화와 결합될 수 있는가>

라는 근대 일본의 가장 중요한 모순을 보여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후쿠옹 자전』에서 우리는 <근대적 일본인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보았다면, 『문명론의 개략』에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그 근대적 일본인이 어떤 사회와 어떤 국가를 만들려고 했는가>

를 볼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문제에서 일본 근대의 성공과 비극이 동시에 시작된다.

<한 줄 평>

『문명론의 개략』은 서양을 따라가자는 단순한 서구화론이 아니라, <독립된 개인과 활력 있는 사회를 만들어 일본이라는 국가의 독립을 지키자>는 후쿠자와의 종합적인 근대화론이며, 동시에 그 자유주의가 훗날 국가주의와 제국주의로 넘어갈 수 있었던 내부의 긴장까지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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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문화재단 독서챌린지 1기] 26주차 : 노라, 명희의 가출 그리고 탈아입구(脫亞入歐)






밀폐해버린 것, 그것들은 모순이며 회의이며 욕망, 또한 절망이기도 했었다. 그것은 혈기였으며 자기 추구였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지순한 것, 방종 뒤켠에 숨겨진 맑은 것, 진실이었을 것이다. 끝도 시작도 없었으며 풀지도 맺지도 못하는 몸부림과 쓰라렸던 것. 그러나 살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적당한 곳에서 매듭짓고 적당한 곳에서 풀어버리고...... 그것들이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듯이 사람도 생명을 향한 비밀이 있겠으나, 그게 바로 방편일 수는 없다. 방편은 오히려 인위요 섭리에 반(反)한 것일 수도 있다. _ 박경리, <토지 13> , p416/596




<토지> 독서챌린지 26주차. 이번 주 읽은 <토지 13>에서는 이혼을 둘러싼 조용하와 임명희의 대립이 그려진다. 동생 찬하와 아내를 부정한 관계로 엮어 내며, 이들을 괴롭히던 즐거움을 바라던 용하는 오히려 이혼(離婚)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고 만다. 용하에게 명희는 일시적 장난감이 아닌 지속적인 장난감이라는 면에서 놓쳐서는 안 될 존재였지만, 명희는 용하의 음모를 통해 '박제되어 버린 학'이 아닌 창공으로 날아오를 백조로 새롭게 자신을 인식한다. 그리고, 이들의 모습에서 헨릭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1906)의 <인형의 집 Et Dukkehjem>을 떠올리게 된다.





지체만 얕았다 뿐이지 기품 있는 용모에 지적 분위기, 멍청하다 싶을 만큼 집착하는 것이 없었으며 약간 살풍경하고 무관심한 듯, 그런 감성은 이기적이며 싫증내기를 잘하는 용하 같은 성격에는 새로운 매력으로써 지속되어온 것을 부인할 수 없다. 물질적 정신적, 혹은 육체적으로 욕망이 강한 여자를 용하는 싫어했다. 밀착해오는 여자는 일시적 장난감으로서 끝내버린다. 홍성숙이 그런 예에 속한다. _ 박경리, <토지 13> , p597/724




'나는 생각을 잃어버린, 다리도 목도 다 부러져버린 인형일까? 현실 같지가 않아. 누가 내 손가락 하나를 부러뜨려버린다 해도 아플 것 같지가 않아. 피도 흐르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사람일까? 저기 저 계속하여 끝없이 주절대는 사내도 사람일까? 점심을 가져가는 농부의 아낙, 가래질을 하는 농부, 그들보다 천배만배 불행한 나와 저 사나이. 왜 화가 나지 않지? 나는 지금 모욕감도 없다! 구경꾼을 넘어서서 난 이제 송장이 되었나?' _ 박경리, <토지 13> , p603/724




<인형의 집>의 노라가 빌린 돈에 대한 채무로 인해 '인형'이라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면, <토지>의 명희는 자신을 지속적으로 압박하는 용하를 통해 '인형'임을 알게 된다. 비록, 두 인물 모두 자신이 '인형'에 불과하다는 인식에 도달하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자가 외부에서 주어진 충격을 계기로 자신의 삶 전반을 돌아본다면, 후자는 가정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곪아온 상처가 가정 내부의 폭발로 터졌다 것을 다른 지점이다.







헬메르 : 당신은 아내의 도리 그대로 나를 사랑했어. 통찰력이 부족해서 수단에 대해 옳은 판단을 내리지 못했을 뿐이지. 하지만 당신이 스스로 제대로 행동하지 못한다고 내가 당신을 덜 사랑할 것 같아? 아니, 아니, 그렇지 않아. 나에게 기대면 내가 당신에게 충고를 해 주고 인도하겠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88/112




노라 : 그래요.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91/112




이러한 이별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인식 문제는 노라의 남편 헬메르와 명의의 남편 용하가 이별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헬메르는 이별 직전의 대화가 채무와 관련된 문제에서 시작되었기에 노라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반면, 용하는 이별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싶지는 않지만 알기에 명희를 파멸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은 아닐런지. 결국, 용하는 명희를 능욕하며 마지막 잔도(棧道)를 스스로 불태우고 만다. 이런 면에서 헬메르-노라의 관계보다 용하-명의의 관계가 더 파멸적이다.





결코 저자세도 아니었다. 손이 떨렸던 것은 분노 때문인지 모른다. 아니, 사실이 그랬다. 조용하는 명희를 철저하게 부숴버리고 망가뜨리고 싶은 분노와 증오의 불을 태우고 있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그는 이를 갈았다. 집 앞에서 잡는 팔을 뿌리치며 명희가 대문을 밀고 모습을 감추었을 때는 살기마저 느꼈던 것이다. 그는 결코 단념하지 않으리라 맹세를 했다. 그러나 한밤중이면 문득 명희는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하곤 했다. 얼음장 같은 여자 옆에서 조용하는 지금 한밤중에 생각하곤 했던 그 절망을 되씹는 것이다. 단념을 하고 싶기도 했다. 끝내버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어떻게 포기를 하나. 그럴 수는 없다. 속수무책으로 끝낼 수는 없다. 낯가죽이라도 벗겨놔야지.(p585)... 능욕! 능욕, 스스로 목숨을 끊을 그런 힘조차 빼앗긴 능욕이었다. 철저하게 무자비하고 백정의 손에 달린 한 마리 가엾은 짐승같이 도살, 분명 그것은 육체를 통한 영혼의 도살이었다.(p607) _ 박경리, <토지 13> , p607/724




노라 : 우리가 함께 사는 생활이 진정한 결혼이 될 수 있다면 되겠죠. 잘 있어요.(현관문으로 나간다.)

헬메르 : (문 옆의 의자에 주저않아 머리를 손으로 감싼다.) 노라! 노라! (주위를 둘러보고 일어난다.) 아무도 없군. 그녀는 이제 없어. _ 헨릭 입센, <인형의 집> , p100/112








작품 안에서 노라와 명희는 모두 가출(家出)을 통해 가정과의 관계를 정리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렇지만, 가출이 기존 관계의 청산이 아닌, 기존 관계의 강화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우리는 이 가출을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의 탈아입구(脫亞入歐). 아시아를 벗어나 유럽 열강의 하나가 되고자 하는 일본의 욕망은 아시아라는 기존 체제를 벗어나려 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나아감이고 탈출이다. 노라와 명의의 나아감과 일본의 탈출은 무엇이 달랐을까. 문제는 그들의 나아감이 그들이 형서했던 기존 세계를 자신의 나아감을 위한 연료탱크로 활용했다는 점에 있지 않을까. 만일, <인형의 집> 노라가 집을 나가기 전에 집 명의와 통장의 잔고를 자신 명의의 계좌로 이체시켜 놓았다면, 이 작품의 장르는 아마도 범죄물로 바뀌었을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를 벗어나며 유럽체제로 편승하면서 벌인 모습은 이와 다르지 않게 보인다. 다만,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이러한 선택을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강변할 지 모른다. 근대화된 경제 시스템과 천황제에 기반한 봉건전인 정치시스템. 전근대와 근대에 걸쳐진 이들의 갈등은 유럽제국과는 또다른 양상으로, 그리고 더 긴급하게 다가왔기에 어쩔 수 없었다고 스스로를 변명하지 않았을까.











일본의 사회구조는 최상층에서는 가장 고도로 합리화된 독점자본이 우뚝 솟아 있지만, 그 저변에는 봉건시대와 거의 다름이 없는 생산양식을 지닌 영세농과 또한 거의 대부분 가족노동에 의존하고 있는 가내공업이 서로 비집고 늘어서 있었습니다. 최고도의 기술과 가장 원시적인 기술이 중첩적으로 산업구조 속에 병존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서는 봉건적 절대주의의 지배, 다른 한편에서는 자본의 독점화의 진전이 결코 서로 모순하지 않고서 상호 보완해주는 관계에 있다는 것, 그것이 일본 파시즘 운동에서의 위에서 본 것과 같은 운명을 결정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_ 마루야마 마사오,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 , p124




메이지유신(明治維新, 1868)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근대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봉건제 - 천황제로 대표되는 - 와의 모순속에서 이 모순이 드러나지 않도록 '밀폐'하려는 일종의 '방편'이 제국주의 침략이었다는 점을 연관시켜 생각한다면, 결국 '탈아입구'로 표현되는 일본의 가출은 끊임없는 '과거 부정'과 '과거 지우기' 그러면서도 '과거 수탈'에 근거한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용되었던 것이 바로 일본의 '내선일체(內鮮一體)'에 근거한 민족이론이라 여겨진다.





인간의 총체는 인류가 아닌가. 민족은 부분이다. 인간의 비극은 인류의 비극이요 민족의 비극도 인류의 비극이다. 개인이건 민족이건 생존을 저해하고 압박하는 것은 죄악이며, 근본적으로 부조리다.(p661)... 흔히들 국가와 국가 사이, 민족과 민족 사이엔 휴머니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들 하지. 그 말은 국가나 민족을 업고서 저지르는 도둑질이나 살인은 범죄가 아니라는 것과도 통한다. 하여 사람들은 얼굴없는 하수인, 동물적인 광란에도 수치심 죄의식이 없게 된다. 군중은 강력하지만 군중 속의 개인들은 무책임하고 방종하다. 권력이 그것을 조종할 때 권력은 인간의 부정적인 면 포악한 속성을 식지(食指)가 움직이는 곳으로 풀어주고 사냥해온 물소의 고기 한 점 던져주면서 국수주의의, 애국 애족의 이리를 만드는 거지. _ 박경리, <토지 13> , p663/724










다른 한 편으로 '내선일체'의 민족주의 속에서 어네스트 겔너(Ernest Gellner, 1925~1995)의 민족주의를 발견하게 된다. 내지(內地)의 근대화를 위한 사상기반으로 중심부-주변부를 아우룰 수 있는 사상 기반으로 '내선일체'가 이후 조선어 사용 금지 정책 등으로 발전하게 된 과정을 생각하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민족주의는 겔너의 민족주의였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에 대한 스미스(Anthony D. Smith, 1939~ )의 민족주의는 과거 전통과 종교의 역할을 대신하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의 일종을 민족주의라는 점에서 결을 조금 달리한다. 겔너와 스미스의 민족주의 차이는 거칠게 일본 제국주의와 이에 대항하는 독립투쟁의 민족주의의 차이로 여겨지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에서 자세히 살펴보는 것으로 넘기자.





겔너에게 민족주의는 근대 산업사회의 문화이다. 즉 서구에서 그야말로 '기적'적으로 성공한 근대화가 마치 해일과도 같이 전 지구를 불균등하게 휩쓰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 민족주의이고, 그 민족주의의 핵심 내용은 근대 산업사회가 필요로 하는 언어문화(linguistic culture)로 설명된다.... 민족주의는 근본적으로 이전에는 저급한 문화들(low cultures)이 주민의 다수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주민 전체의 삶을 차지하고 있던 사회에 고급문화(a high culture)를 전반적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것은 학교가 주선하고 국가교육기관이 감독하는 이디엄(idiom, 언어)의 확산, 즉 상당히 정확한 관료제적, 기술적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조건에 맞게 기호 체계화된 이디엄의 전반적인 확신을 의미한다. _ 김인중, <민족주의와 역사> , p749/927




이번 주 <토지> 독서 챌린지를 통해 가정의 속박을 거부한 근대화 시대의 두 여성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가정을 욕망을 밀폐시키고자 하는 일종의 방편이라고 본다면 비근대적인 요소로 볼 수 있을 것이며, 이의 연장선상에서 과거 전통을 떨쳐버리고 근대화를 향한 일본의 제국주의를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과거의 부정과 새로운 곳으로의 나아감. 이것이 정당성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명희와 노라, 그리고 탈아입구를 통해 생각하게 된다.




ps. 내부의 모순을 밖으로 표출하려는 일본의 다음 시선이 만주(滿州)로 향할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중일전쟁(中日戰爭) 때 함께 다루는 것으로 계획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일본은 지급 급해 있거든, 중국이 통일되어 물론 아직은 국공 간의 도저히 용해될 수 없는 문제가 남아 있지만 일단은 내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생각한다면 중국은 일본에 비하여 두말할 것도 없이 대국 아닌가. 공포지. 특히 공산당의 집권을 무서워한 것은 바로 시장을 잃는다, 그것과 직결이 되는데 그럴 경우 일본은 바람 빠진 풍선 꼴이 되어 순식간에 쭈그러들어. 해서 그들은 만주를 두고 염치 좋게 일본의 생명선(生命線)이라 외쳐대는데 그들의 현실이 그런 것만은 사실이거든, 초조해하고 서둘러대는 건 조금도 무리가 아니야. _ 박경리, <토지 13> , p574/724











1904~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러시아를 대체하여 이 지역의 지배적 외세가 되어 특히 1910년 조선의 합병 뒤, 그리고 1차대전 중 동아시아의 제국주의 파워의 공백에서 이권과 영향을 증대시켰다.(p104)... 농업은 1898년과 1908년 사이에 두 배로 증가한 인구의 요구로, 그리고 대두 수출의 지속적인 수요로 촉진되었다. 20세기 초 만주 수출의 80%나 차지한 대두(大豆)와 그 추출물들은 세계 대두생산의 59%를 점하며, 1920년대 말까지 계속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수출품이 되었다. 대체로 수출지역이 일본이었지만, 후일 유럽의 축산 사료시장도 확보했다... 만주 경제의 성장으로 이 지역에 대한 중국 본토와 일본의 이권들도 증대되었다. 1903년에서 1928년까지 만주의 대 중국 무역은 3.5%에서 32.5%로 늘었지만, 상당량의 것은 일본 무역이었다. 1931년에 여전히 만주는 주로 농업경제였지만, 소비재 생산을 위한 공업생산의 성장도 있었다. _ 프래신짓트 두아라, <주권과 순수성>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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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22-01-16 공감 (49)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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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나온 책들



새로 나온 책들뿐 아니라 다시 나온 책들도 매주 적지 않다(감당하기에 그렇다는 말). 지난주에 나온 책으로는 역사학자 시어도어 젤딘의 <인간의 내밀한 역사>(어크로스)가 다시 나왔기에, 다시 나온 책들을 찾아보았다. 네댓 권 정도를 적어두도록 한다.

















































프랑스사 전문가의 젠딘의 책은 <인생의 발견>과 <대화에 대하여>가 더 번역돼 있지만 주저급에 해당하는 건 <인간의 내밀한 역사> 정도다. 앞서는 2005년에 나왔던 책이니 15년만에 다시 나온 재간본(역자는 같고 출판사가 바뀌었다).




"옥스퍼드의 역사학 석학 시어도어 젤딘은 독창적인 역사 연구로 역사학계에 우뚝한 발자취를 남긴 역사가이자 사상가다. <인간의 내밀한 역사>는 그의 대표작으로 지금까지 27개 언어로 번역되며 전 세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이 책에서 그는 고독, 사랑, 공포, 호기심, 연민, 우울, 대화법, 섹스와 요리법, 이성애와 동성애, 운명 등 독특한 주제를 중심으로 ‘인간의 마음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류의 경험’을 고찰한다."




구입하고도 제쳐놓았던 책인데, 막상 다시 나오니 찾게 된다. 어디에 두었을까?
























































설혜심 교수의 <그랜트투어>도 7년만에 다시 나온 책. 유럽문화사에 대한 이해를 도울 뿐더러 문학 이해에도 유익하다(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같은 책을 이해하는 데에도 필수적이다).




















































저자는 독특한 주제의 문화사 책들을 연이어 펴내고 있는데, 가령 첫 책인 <온천의 문화사>를 비롯하여 <서양의 관상학>이나 <인삼의 세계사> 등은 독보적이지 않나 싶다. 독특한 주제와 시각의 책을 대중교양서로 펴내는 작업이 계속 이어지길 기대한다.




















































철학서로는 존 라이크먼의 <미셸 푸코, 철학의 자유>(그린비)가 오래만에 다시 나왔다. 인간사랑판(1990)이 무려 30년 전 판이었다(이런 책을 읽은 게 언제적인가!). 당시에도 요긴한 푸코 입문서로 꼽히던 책이었다. 절판된 상태지만 저자의 다른 책으로는 <들뢰즈 커넥션>(현실문화)도 있었다. 이건 15년 전에 나온 책이군.




















































이번에는 재간본이라기보다는 새 번역본이다.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소명출판)이 '후쿠자와 선집'의 첫 권으로 나왔다. 일본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 수용과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 음미해볼 만한 고전이다. 기존 번역본과는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기에 살펴보려 한다.




"<문명론 개략>이 출간되던 1875년 당시 일본은 그야말로 혁명과 문명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이처럼 긴박하고 혼란스러운 정세 아래에서 후쿠자와 유키치는 동도서기와 같은 방식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새로운 국가, 독립적인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기술뿐만 아니라 사상과 문화, 무엇보다도 ‘자유’ ‘독립’이라는 개념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독립자존하는 개인을 강조하며 봉건체제에서 근대국가체제로의 정치사상적 전환을 촉구했던 그의 주장은 김옥균, 서재필, 윤치호 등 조선의 개혁가들에게도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후 일본이 근대화를 향해 나아가는 커다란 한 발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이 책은 근대 일본의 사상을 형성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문명론 개략> 원본을 저본으로 하여, 현대일본어 번역본으로는 알 수 없는 메이지 초기 서양개념어의 한자번역어(신한어)를 정확하게 살리고 후쿠자와 유키치만의 독특한 문체와 문장 스타일도 생생하게 번역한 것이 특징이다."




















































후쿠자와 유키치 관련서로는 자서전을 포함해 다수가 소개돼 있다. 대부분의 책을 소장하고 있는데 몇 권 빠진 게 있어서 이번에 보충하려 한다. 한국 근대문학과 일본 근대문학에 대한 강의가 이번 가을겨울에 예정돼 있다는 핑계로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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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20-09-27 공감 (36)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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